-
-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ㅣ 북클럽 자본 시리즈 12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4월
평점 :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빌어서 '잔혹동화'를 들려준다. 농민에게서는 '땅'을 빼앗고, 노동자에게선 '생산물'을 빼앗은 자본가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생산자들의 이득을 가로채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더욱 끔찍한 일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이 모든 수탈이 '합법'이라는 점이다. 더욱더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본가는 '생산자(농민과 노동자)'들을 이리 끔찍한 자본주의 체제로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 발로' 스스로 그 끔찍한 곳으로 들어와 사지가 찢겨나가고 온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고통스런 노동을 한 뒤에 헌신짝처럼 버리지더라도 그저 '순응'하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행동할 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문제를 제기하고 '생산자들'에게 현실을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본론>을 썼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맞서 생산자들을 위한 체제를 직접 구현해 보여주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를 '공산주의'라고 말한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매겨 자본가들이 함부로 노동을 착취하지 못하는 세상을 꿈꾸며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허나 우리 시대에는 '공산주의'가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체제는 생각보다 잘 굴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은 '최선'이었지만, 생산물이 커져 '자본'을 이루어야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그저 '자본가'를 때려잡는 일에만 열중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나쁘지만 '자본, 그 잡채'가 나쁜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인간의 욕망이 '자본'으로 향한다는 기본 전제를 배제한 공산주의는 그렇게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정답이었을까? 역시나 정답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점점 살을 찌우며 잘 살게 되었지만, 농민과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못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계층사다리'마저 없어진 듯,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극심할 지경에 이르렀고, '노동의 가치'는 더욱더 푸대접을 받으며 '노동의 생산물'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손에 만져볼 수조차 없게 된 것도 여전하다. 대기업에서 20년을 넘게 밤낮없이 일을 해도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만들어진 '생산물'은 전부 자본가의 것이다. 노동자는 그저 '자신의 노동'을 판 대가로 월급(임금)을 챙겨갈 뿐이다. 그 임금마저도 대부분 CEO가 가져가고 그 밑에 있는 직급은 푼돈을 받을 뿐이다. 그런 푼돈일망정 정규직은 그나마 만족할 정도지만, '비정규직'은 동일한 노동을 했는데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하도급 직원'이라면 더더 적은 임금'으로 만족해야 한다. 볼멘소리라도 하면 '해고'를 당한다. 부당한 대우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그저 '윗선의 비위'에 거슬리면 근태점수를 깎아 해고하면 그뿐이다. 이러니 자본가들에겐 '자본주의, 만만세'인 셈이다. 아직도 자본주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전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를 이행하고 있다. 이 경제체제에서 벗어난 '다른 대안'이 없을 정도로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삐걱거린다는데 있다. 분명 문제가 심각한데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고 '수정'을 하면서 나름 처방을 내리고 있지만, 조그마한 변수에도 삐그덕삐그덕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이 때문에 전세계 경제학자와 수많은 석학들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예언하고 지적했던 마르크스를 다시곰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자본론>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읽어야만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마르크스의 대안'은 건너띄고 '마르크스의 지적'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폐해가 이렇게 시작했기 때문이니, 그 폐해의 근원을 파헤치고 근본부터 뜯어 고치면 '자본주의의 병폐 현상'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시점이란 말이다.
이런 병폐 현상을 고치기 위해선 몇몇 선각자의 가르침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농민봉기'나 '노동자파업'과 같은 혁명적인 움직임도 대단히 위험하다. 그보다는 <자본론>이 모든 시민의 교양으로 자리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시민 모두가 자본주의의 '병폐현상'에 대해 일반상식처럼 직시하고 직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고, '어떤' 목소리가 올바른 목소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못 살겠으니 갈아엎고, 그저 불만이 있으니 뒤집어엎어야겠다는 발상은 무모하다. '교양시민'으로 성장한 농민과 노동자가 사회적 모순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정곡을 찌르면서 비난이 아닌 비판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다면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자본론>은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해를 얻고자 <북클럽 자본>을 읽었다. 물론, 단 한 번의 일독으로 완벽히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점이 무엇이고, 무엇을 직시해야 할지는 얼추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쌓은 작은 지식으로 더 많은 '마르크스의 저작물'을 접해볼 작정이다. 기회가 닿는대로 <북클럽 자본>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때는 한발짝 더 나아간 '교양시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