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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환 -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기 ㅣ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9월
평점 :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인문학'이 다시 유행으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은 참 보기 좋은 현상이다. 사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에 앞으로도 그닥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지식과 교양을 갈고 닦는 일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별개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 소양'으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배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것'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엄청나게 많은 금화와 값비싼 보석, 그리고 진귀한 물건들을 자랑했더란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겉모습이 초라해서 자랑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지혜를 얻었다는 말한마디만 하더란다. 사람들은 그것은 값진 것이 아니니 자랑할 것이 못 된다고 타박을 주었는데, 때마침 해적이 배에 올라타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것'을 다 빼았기고 빈털털이가 되었는데, 오직 한 사람 '지혜'를 가진 이만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한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인문학 열풍'의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단순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기에는 심오하고 깊은 학문이다. 물론, 단순지식을 쌓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도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아는 힘'을 얻은 뒤에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갓난아기가 '뒤집기'에 성공한 뒤에 '배밀기'를 하고, 그 뒤엔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하고, 무엇이든 잡고 '일어서기'를 하다 수없이 엉덩방아와 머리쿵을 한 뒤에 최초로 '두 발로 서기'에 성공하고 나면 뒤뚱뒤뚱 '걷고', 걷는 것이 수월해지면 '뛰기'를 하며, 일단 뛰기 시작하면 '방안'을 누비는 것으로 모자라 '집안'을 뛰어다니고, 집밖에 나서기가 무섭게 '온동네'를 주름잡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아는 힘'을 경험하고나서는 멈출 수 없고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아는 맛'을 스스로 구별해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면, 드디어 '인문학' 좀 다룰 줄 아는 지식인이 된다. 그러면 '인문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좀 더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단 말이다. 이런 물음에 '정답'이 있을 턱은 없다. 그저 누군가의 '견해'만 있을 뿐이고, 어떤이의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그 수많은 견해와 해석 가운데 '이거다!'라는 모범답안은 누구도 정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인문학 좀 공부한 이들은 겸허하게 '다른이의 생각'을 경청할 따름이다.
이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의 매력이 느껴지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명의 글쓴이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저마다의 생각이 담긴 책'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마구잡이 쓰여진 책은 결코 아니다. 이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세 책의 제목이 [멈춤]-[전환]-[전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거나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서 반드시 '멈춤'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하는 '전환' 단계를 거쳐, 무겁게 멈춘 발걸음을 다시 움직여 보다 활기차게, 그리고 확고한 결심으로 '전진'하여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단계 가운데 [전환]에 대한 주제를 선정해 '인문학적 소양'을 펼쳐내었다.
물론, 제작의도가 그렇다는 것 뿐, 이 책을 '전환기'를 맞이한 이들만이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인문학'은 다양한 견해를 저마다의 생각으로 읽어나가며 교양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답'으로 인지하고 달달 외울 생각은 말고, 다른이의 명석한 견해를 '나의 소양'을 끌어올리는 지렛대로 삼으면 참 좋다.
그런 의미에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매우 적절한 '생각의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글의 양이 너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적으면 지렛대로 삼기에 너무 무르고, 너무 많으면 지렛대를 잡고 힘을 주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주제'를 날마다 접하게 해주니 폭넓은 교양을 쌓을 기회를 제공해서 '관심분야'를 접하면 흥미진진해질 것이고, '비관심분야'를 접하면 생각의 지평을 넓힐 기회가 되니 어떻게 보아도 장점투성이다. 마지막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는 '퇴근길'을 인문학으로 물들이게 해주는 기획의도가 너무나도 기발하다. 아직 '인문학의 맛'을 모르는 이가 들으면 '꼰대들의 청천벽력 같은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하루의 피곤을 싹 잊게 만들어주는 '퇴근길 토론회'를 경험한 이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이게 뭔소린 고하니, 수다를 떨더라도 교양이 넘치고 품격 높은 주제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 수다참석자들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품격수다를 듣는이들도 덩달아서 수준 높아지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퇴근길에서 펼쳐지는 '대중교통 포럼', 퇴근길에 술 한 잔 걸치면서 벌이는 '호프바 심포지엄', 그리고 뚜벅뚜벅 걸으며 펼쳐지는 '교양수다의 향연' 따위를 이 책을 읽은 이들과 서로 나눌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멋진 '퇴근길'이냔 말이다. 딴에는 '홀로' 읽으면서 내 안에 깃든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일명 '나 자신과의 대담'이랄 수 있겠다. 요즘처럼 '인문학 열풍'이 부는 시절에 딱 어울리는 풍경 아니겠는가.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