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신장재편판 1 - 강백호
이노우에 타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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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90년대 대한민국 농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물론 80년대 '점보시리즈'와 '농구대잔치'부터 농구의 인기는 급상승하였다. 이충희, 허재를 뒤이어 '대학농구'가 인기를 끌면서 연대와 고대를 주축으로 수많은 농구스타를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장훈, 우지원, 문경은, 현주엽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그 시절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때 <슬램덩크>라는 만화도 공전의 히트를 쳤더랬다.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절이었기에 인기는 가히 독점적이었고, 만화의 주인공 이름이 '현역선수의 별명'이 되다시피 할 정도로 초절정의 인기를 끌었더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얼핏 보면, 그냥 '깡패만화'로 보일 정도로 폭력적인 만화에 불과했다. 당시에 <두사부일체>나 <조폭마누라>라는 '조폭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으니 만화도 마찬가지로 '폭력'이 난무한 소재가 먹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더구나 '교사체벌'과 '학교폭력'이 교육의 일부분으로 이해될 정도였고, 폭력에서 '낭만'을 찾을 정도로 웬만한 폭력에는 무신경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공이 '한 소녀의 꼬임(?)'에 넘어가 농구부의 일원이 되더니 '풋내기 슛~'을 던지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랬다. 허구헌 날, 주먹질만 일삼던 문제아가 일약 '농구스타'로 성장하는 드라마를 보여준 것이다. 거기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포기할 줄 모르는 무식함(?)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주인공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슬램덩크>는 농구의 매력을 '어느 고교생의 성장'을 통해 보여주는 만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뿐 아니라 <슬램덩크>는 농구를 잘 모르는 여성팬들 사이에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북산팀'의 선수들 이름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달달 외울 정도였고, 생소하기만 했던 '농구규칙'과 '전문용어'도 만화를 통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농구입문서'로 널리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물론, 서태웅처럼 잘 생긴 선수가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줄 때마다 환호를 아끼지 않았고 말이다. 이런 <슬램덩크>의 인기는 고스란히 '실제' 농구경기에 반영되었고, 실제 농구선수들의 인기가 다시 <슬램덩크>로 이어지는 시너지로 인해 대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최근 개봉한 <극장판: 슬램덩크>다. 무려 30년 전에 출간되어 내용을 전혀 모르는 소녀관객들이 영화관을 절반을 채우고서 '북산 VS 산왕'의 전설적인 경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가쁜 호흡 하나하나에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은 그 옛날 '소녀팬'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도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웬만해서는 '만화리뷰'를 잘 쓰지 않는데, 이 참에 리뷰를 올려볼까 한다.

 

  이번 '신장재편판'은 기존의 31권짜리 책을 20권으로 줄여놓음과 동시에 '겉표지'의 일러스트를 새로 그려넣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내용의 큰 차이는 없지만 더욱 깔끔해진 기분으로 오래된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긴 30여년이나 지난 만화책은 누렇게 변색되었을테니 찐팬이라면 새로 구입하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암튼, 제1권이다.

 

  1권의 핵심 포인트는 '강백호의 농부구 입부'와 '숙명의 라이벌, 서태웅과의 대결'이다. 하지만 초반부엔 문제아들의 전형적인 새학기 혈투가 벌어지는 장면 연출되는 관계로 '순수한 독자들'에게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째서 이토록 '멋진 만화'가 폭력배들의 싸움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일본만화'는 어쩔 수 없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감수하며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 품격 높은 독자라면 '나쁜 것'도 걸려서 볼 줄 아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하니 말이다.

 

  어쨌든 강백호는 첫 등장부터 실연을 당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중학교 내내 50번째 퇴짜를 맞은 강백호를 놀리는 친구들의 환호에도 우리의 주인공은 퇴짜의 이유가 귀에 맴돌 뿐이다. "난 농구부의 경민이가 더 좋아"라는 멘트로 인해 강백호는 '농구 포비아(공포증)'에 걸린 듯이 농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그러다 채소연이라는 동급생을 만나면서 급 반전을 일으키게 되는데, 다름 아니라 너무나도 예쁜 소녀가 "농구를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백호는 농구에 빠져들게 된다. 사랑하게 된 소녀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토록 순진무구한 주인공이 알고보면 엄청난 '피지컬의 소유자'라는 것이 밝혀진다. 비록 농구는 초보자에 불과했지만, 자유투 라인에서 뛰어올라 백보드에 머리를 꽈당 부딪혀 쓰려지는 모습에 소연이가 심쿵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강백호는 '북산고 농구부'에 입부하게 된다.

 

  한편, 중학시절부터 '농구천재' 소리를 듣던 서태웅도 '북산고 농구부'에 입부하게 된다. 너무나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인 까닭에 입부가 당연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모자란 구석이 너무 많고 '농구밖에 모르는 것'이 강백호와 비슷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농구천재'와 '농구초짜'가 기상천외하게도 '라이벌 구도'를 그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 강백호를 도와주는 스토리 라인을 짜다보니 '농구천재'조차 강백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번번히 벌어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채치수 vs 강백호'의 농구대결이었는데, 농구부 주장과 농구 초짜가 벌이는 말도 안 되는 대결을 통해서 독자들은 '농구의 매력'을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농구에 진심인 사람이 보더라도 '명장면'이 될 수밖에 없는 대격돌이 벌어지게 된다. 과연 이 둘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구이고, 강백호는 과연 농구부에 순탄하게 입부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2권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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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유튜브 채널은 따로 있다 - 네이버 대표 크리에이터 카페 <나는유튜버다> 강차분PD가 알려주는
강차분PD 지음 / 한빛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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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유튜브 채널은 따로 있다_강차분PD>


  주위에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라는 권유를 종종 받는 편이다. 오랫동안 논술쌤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온 터라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도 갖고 있고, 지난 18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고, 또 꾸준히 리뷰도 써온 탓이다. 실제로도 '수업 동영상'을 찍어 올리라거나 페이스북에 올린 나의 리뷰를 읽고서 '동영상 강의'가 있다면 구독할 의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던 터라...솔직히 말하자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픈 마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이유는 첫째, '영상편집'에 자신이 없다. 수많은 책을 읽은 만큼 '영화'나 그밖의 '동영상'도 자주 보는데, '아는 지식'이 많은 편이다보니 영상을 '보는 눈'도 꽤나 수준급(?)이 된 탓에 '남의 영상'에 감히 감놔라 배놔라는 식으로 지적질(!)을 꽤 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똥손으로 마구잡이로 편집한 영상을 찍어 '채널'을 개설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머리를 쥐어 뜯기 일쑤였다. 둘째, 책 읽고 리뷰 쓰는 이외의 시간은 참으로 게으른 편이다. 일년에 200여 권의 책을 읽고 100여 편의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서 '일상의 자투리 시간'에 독서에 편중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새로 영상을 제작해서 채널을 운용하며 '새 인생'을 개척(?)하라니...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다. 마지막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던데, 그 돈이 탐 나서라도 얼른 시작하라는 권유를 받곤 한다. 맞다. 별다른 '노후자금'도 없는 마당에 자금줄이 되어줄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 버린 유튜브에 뒤늦게 탑승해봤자 뾰족한 돈벌이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별다른 흥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런 연유로 '나의 유튜브 채널'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물론, 계획은 다 있다. 언젠간 유튜브 제작에 뛰어들 생각이고, 소소한 소득이라도 꾸준히 발생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소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만의 기록'을 남길 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의 소중한 인생의 '또 하나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펼쳐든 이 책은 '본격, 유튜브 채널 개설 및 운용 노하우'에 걸맞는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책 내용을 살짝 소개하자면, 유튜브 초보에게 유용한 조언이 가득 담긴 책이었다. 유튜브 채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고, 과잉경쟁구도 속에서 원하는 수익을 얻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 그렇기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더 많은 구독자를 얻기 위해 '눈에 번쩍 띄는 영상'을 제작하라는 조언은 실로 뼈와 살이 되는 영양가 높은 조언들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처럼 '채널 생성'에 망설이고 있는 독자들도 뛰어들 수 있게 '동기부여'에 좀 더 분량을 할애하지 않은 점이 아쉽기도 했다. 왜냐면 기왕 하고 있는 채널을 더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애초에 시작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면 '노하우'보다는 '노와이(know Why)'가 더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암튼, 유튜브 채널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상황 속에서도 엄청난 수익을 내는 유튜버들이 존재하는 한, 유튜브 채널은 날마다 생성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채널이 성공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꼭 알아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유튜브 채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꾸준함'에 있단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뛰어난 영상미, 황홀한 음향, 그리고 생동감이 넘치는 채널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반짝' 인기를 끌고서 더 이상 '업로드'를 하지 않는다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퀄리티는 좀 떨어지더라도 '한결 같은 주제'로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이 성공하는 채널의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비결이지만 '꾸준함'만큼 힘든 일이 없다. 왜냐면 '장수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만큼 적고, '소재'를 꾸준히 발굴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1개씩 올린다고 하더라도 1년 동안 52개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3~4일에 1개씩 올린다면 100개의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북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책 읽어주는 남자'와 같은 독서채널을 운용하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권씩 업로드 한다고 쳐도 '꾸준히' 독서하고, 구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선별'해서, 대본을 '짜고', 그 대본을 '리딩'하는 모습을 영상 '촬영'을 하고, 영상 '편집'을 하고, '업로딩'을 하는 컨셉을 잡는다고 한다면, 첫째, 일주일 안에 책 한 권 온전히 읽고, 핵심내용 파악하고, 대본(리뷰) 쓰고, 영상 찍고, 편집하고, 업로드 하는 일과를 꾸준히 반복해야만 한다. 거기에 구독자들의 바람을 수집하고, 비슷한 주제의 도서, 세상 돌아가는 이슈 등등을 매일 같이 체크하고 준비하다보면, 도저히 '부업'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고, 올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려면 유튜브 채널로 연간 3~40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해야만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 텐데...이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요란하게 시작하는 것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가능한 일이지 '1인 기획'으로 시작하는 일에 '거창함'은 내려놓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흔히 '동영상 업로드'를 하루라도 빨리하는 것이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가 있어서 일단 '업로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 많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코 맞는 말도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면 유튜브의 정책이 '새로운 인재 발굴'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초기에 유명세를 얻은 유튜버만을 띄워주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기획력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유튜버의 유입이 '유튜브'에게 더욱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에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어, 뒤늦게 채널을 개설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길도 함께 열려 있단다. 그러니 준비를 탄탄히 하고 힘차게 '시작'을 알리고, '꾸준함'을 덧붙인다면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버로 합류하는 길은 활짝 열려 있단다. 그러니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뛰어드는 자세가 '또 하나의 성공 비결'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밖에도 유튜브 채널을 운용하는데 '유용한 팁'이 가득한 책이니 유뷰트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은 일독을 권한다. 물론 성공에 이르는 길이 순탄치도 않고 지름길도 따로 없는 관계로, 나는 세 번 정도 읽은 뒤에 뛰어들 참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상편집'과 '영상업로드' 같은 일들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책을 연간 300권 읽고 쓰라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겠는데, 컴맹과 다를 바가 없는 '전자기계 똥손'이라, 이게 쉽지 않다. 누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마땅히 도와줄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손치더라도 '내 손'으로 만든 영상을 '내 맘'껏 아름답게 꾸며줄 사람은 결국 '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책의 도움이 절실하다.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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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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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화려한 색채'에 끌린다고 한다. 모던한 화풍이 포인트인 책표지를 비롯해서 책속을 장식한 수많은 '도감'이 풍족한 것에 만족감을 넘어 '소유욕'을 자극한다면서 말이다. 이렇게나 예쁜 책인데 책내용을 들춰보면, 한 인물에 담겨진 '삶의 정곡'을 찌르는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오롯이 돋을새김하고 있어 다른 책들과 '비교불가'할 정도의 감동을 선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더구나 '기행문' 형식의 글을 통해서 '인물의 발자취'를 더듬어 거슬러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엔, 마치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생생함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는 '현지 가이드'가 되어 까막눈과 다를 바 없는 독자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래서 '관심인물'이라면 특히 더욱더 이 시리즈의 매력에 풍덩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어찌 매력만 가득한 책일 수 있겠는가. 나처럼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기행문'은 더더욱 관심밖인 독자들에겐 '지식의 목마름'을 충분히 해소하기도 전에 '다른 곳', '빠듯한 일정'에 쫓기듯 따라가기 바쁜 여정이 마뜩찮기도 하다. 차라리 '한 곳'에 눌러 앉아 정지된 듯한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낯선 여행지'가 주는 감상을 충분히 만끽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니며 녹초가 되는 '독서'가 피곤한 느낌마저 느껴질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이 책만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린 나는 어쩐 일인 걸까?

 

  무엇보다 '비하인드 스토리'에 솔깃해졌다. 영국이 자랑하는 셰익스피어의 매력이 어디 그가 남긴 글에서만 찾을 수 있겠는가. 그가 살던 동네, 그가 머물던 극장, 그리고 그의 생의 전반에 걸쳐 작품에 영향을 주었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들과 인물들에게서도 셰익스피어가 겪었던 삶을 관통하는 '멋'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뒤쫓는 '풍문'들의 진위를 글쓴이의 나름의 판단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즐거움도 또 다른 재미였다. 특히, 그의 생애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와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는 글쓴이의 주장은 매우 신빙성이 높았다. 다름 아니라 '앤 해서웨이'라는 아내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작품이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보다 8살이나 연상인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스토리 전개조차 되지 않는 그 작품은 '상상의 산물, 그 잡채'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단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는 아내인 앤 헤서웨이와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잘 살았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너무나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해설하고 분석한 내용은 이 책만의 '백미'였다. 누구나 알만 한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물론이고, 수많은 대본과 시까지 열거하며 일일이 '주석'을 달아놓은 점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궁금증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햄릿'은 우유부단의 대명사라 부를 수 없다. 왜냐면 복수를 할 때는 우유부단할지 몰라도 비난을 할 때는 신랄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말하고, <맥베스>의 주인공은 맥베스가 아니라 그의 부인이었다. 왜냐면 맥베스가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왕의 가슴에 단검을 찌를 때조차 망설이고 머뭇거릴 때,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단검을 내리꽂은 이가 다름 아니라 그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란다. 아직 '문학'에 한해서는 스승도 없고 문외한에 불과한 나로서는 이런 번뜩이는 해석에 더욱 끌릴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만족할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잘 짜여진 계획에 충실하였다고 하더라도 '놓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똑같은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 법인데, 스치듯 지나친 첫 여행에서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난 하나의 풍경도 놓치지 않을 '느릿느릿'한 여정을 좋아하고, 갔던 길도 다시 되돌아가는 '반복적인 일상'을 좋아라 한다. 지겨울 것 같다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때론 '반복되는 일과'가 늘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좋아할 경우에만 말이다. 내겐 이 책, 이 시리즈가 그럴 것 같다. 그 여정이 빠르진 않을 테지만, 100권에 다다르는 그 길, 그 끝에 나는 서 있을 것 같다. 아직은 반(현재까지 31권 출간)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읽고 또 읽으며, 그 매력을 만끽하고 있을 테다. 물론 그 사이에 '셰익스피어 작품'도 좀 읽고 말이다. 셰익스피어, 좀 읽겠다고 다짐한 것이 재작년이구만, 아직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셰익스피어가 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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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백작 비룡소 클래식 47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귀스타브 스탈 외 그림, 윤진 옮김 / 비룡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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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릴 적에 읽고 또 읽던 책목록이 있었으니,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주인공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어야 할 결혼식날에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유도 모른채 14년동안이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뒤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고서,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 '배신자'들을 향해 치밀한 '복수극'을 펼치는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라는 것이 마뜩치는 않다. 더구나 '사적인 감정'이 가득 담긴 복수는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어릴 적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주인공의 복수가 너무나도 멋져 보이기만 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줄거리를 하나하나 꼬집으며 '책소개'를 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다. 놀랍게도 6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이 원작의 문장은 고스란히 남긴채 줄거리만 대폭 추려낸 '축약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대략 2000여 쪽이 훌쩍 넘는 '원작'을 리뷰하며 줄거리를 꼬집을 기회는 많을 것이기에 후일을 약속하는 바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적인 복수는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단지 '편지'만 전해주었을 뿐인데 '사상범'으로 내몰려 '종신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는 나폴레옹 황제가 실각을 하고 엘바섬에 귀양을 갔을 때이고, 당시 프랑스는 공화국을 거쳐 황제정에서 다시 '왕정복고'를 실현한 어지러운 정국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편지'라는 것이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할테니 지지자들은 결집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당시 집권자였던 '왕정복고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암튼, 그런 복잡한 역사는 쏙 빼고 읽어도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전날에 감옥에 갇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그 뒤에 다들 알다시피,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몬테크리스토(그리스도의 섬)라는 섬에서 엄청난 보물을 찾게 되고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게 된다. 에드몽 당테스는 엄청난 부를 갖게 된 뒤에 스스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 칭하며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배신자'들을 찾아 나섰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는 댕겅댕겅 '피의 복수'를 저지르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동안 배신자들은 대단한 출세를 해서 제각각 '엄청난 부'와 '명예'와 '지위'를 한껏 드높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몬테크리스토는 그들에게 '파멸'이라는 선물을 아주 신중하게 준비했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파국을 맞이했을 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어렵게 쌓아올렸을 명예와 지위도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복수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 사람에게 닥친 불행은 너무나도 슬프고 끔찍한 만큼 그가 펼치는 '복수의 칼날'은 화려하고, 그가 내세운 '도덕적 명분'은 맑고 깨끗하기에 독자들은 누구라도 몬테크리스토의 복수를 응원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이렇게 '사적인 복수'가 자행이 되고, 이를 허용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고 말 것인가? 복수는 끝없이 되풀이 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복수'가 실현되면, '또 하나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고, '한 쪽의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다른 쪽의 복수'는 서막이 열리게 된다. 이래서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되풀이만 반복할 뿐이다. 더구나 '공적인 복수'가 아닌 '사적인 복수'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니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사법 절차'를 밟아 정당하게 신원을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어나가야만 했을까? 아쉽게도 이런 방법으로는 속시원한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권력'을 차지한 세력들끼리 '봐주기식의 처분'만이 남발할 것이 분명하고, '억울한 이의 하소연' 따위는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오직 '법치주의'만을 내세워 정당한 절차를 거쳤음을 애써 강조하며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다'는 엉터리(?) 판결로 종지부를 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라 국정이 혼란한 시국에는 '뻔한 결말'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수많은 독자들이 바라는 명쾌한 결말은 '도덕의 승리'다. 부도덕한 짓을 일삼은 무리는 마땅한 벌을 받고, 억울한 누명으로 쓰고 불행에 빠진 이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도덕적인 명분'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이며, 복수를 행하는 이에게도 '도덕적 흠결'이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애초에 부도덕한 짓으로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은 개망신을 당해도 싸니 처절하도록 낭패를 보면 볼수록 분이 풀리고 속이 시원할 것이 틀림없다. 현실적으로도 수많은 대중들이 바라는 '복수의 귀결'은 이렇듯 소박(!)하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주제가 환영받는 이유도 우리네 서민들이 순하고 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배신과 복수, 그리고 처절한 응징이 뒤따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드몽 당테스의 타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다시 말해, 복수에도 '올바른 방도'가 있고, '응징의 수준'도 적절해야 한다는 말이다. 분명 에드몽 당테스는 억울한 옥살이로 삶의 비참함과 온갖 불행을 다 겪었고, 지난 14년간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극적인 탈출'과 동시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면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보상'은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일 것이다. 다만, 그동안 아버지가 굶어죽고, 사랑하는 약혼녀를 빼앗기는 등 '복수할 꺼리'는 남아 있다. 그리고 자신이 불행했던 동안에 '행복'을 누리던 배신자들에게 응당 복수할 이유도 마땅하다. 그러니 배신자들의 행복을 앗아가는 '정도'의 복수는 허용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처절한 응징을 하게 된다면 몬테크리스토의 복수는 정당성을 잃게 되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짐과 동시에 외면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반 대중이 원하는 '통쾌한 복수'란 딱 '받은 만큼'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준하는 복수다.

 

  이에 따라 '사적인 복수'는 허용하되 '도덕적 결함'이 없는 순수한 복수만을 허용할 뿐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허구적인 이야기'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결코 '사적 복수'를 허용해선 안 될 것이다. 왜냐면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이 사람들마다 들쭉날쭉 제각각이기 때문이고, 문서조항으로 '명문화'하기에 매우 까다롭고, 이를 '해석'하는 것도 애매하고 모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덕이라는 것이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마음가짐을 다루는 것이기에, 이를 '규율'로 삼아 분명히 하고자 하려면 '남의 물건을 훔친자는 10배로 물어주거나, 징역 3개월형에 처한다'라고 정한들, 재벌집 도련님은 남의 물건 400만 원을 훔치고서도 4000만 원 물어주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20억 원짜리 남의 집을 빼앗고도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아 뻔뻔스레 부를 자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이란 것이 그렇다. 가난한 이의 근검절약은 지지리궁상인 것이오, 부유한 이의 돈지랄은 플렉스한 것이다.

 

  그렇기에 도덕의 화려한 변신이 필요하다. 일명 '가진 자에게 걸맞는 처절한 응징'이 필요한 법이다. 즉, '잃을 것'이 있는 이에게 도덕에 반하는 행동을 할 시에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제거'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명예를 가진 자는 명예를 빼앗고, 재물을 가진 자는 재물을 빼앗고, 잘생김을 가진 자는 못생김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빼앗길 것'이 두려워 처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검사출신이라고 거들먹거린다면 '개검사' 딱지와 함께 전재산몰수 과태료를, 재벌이라고 돈 무서운줄 모른다면 '한량'이라는 딱지와 함께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금지시킴을, 잘생겼다고 사람을 우습게 깔보면 '국민밉상'이라는 딱지와 함께 평생 쪽팔림을 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무죄로 밝혀지면 '원상복구'시켜주면 그뿐. 그러나 '도덕적 흠결'로 인해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할 것이다. 이 정도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답지 않은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사적 복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복수'의 짜릿함은 알게 모르게 허용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속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우리네 서민들의 슬기로움이랄 수 있을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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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논술대비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명작 7
나사니엘 호손 지음, 한은선 옮김 / 지경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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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문학수업을 위해 '두꺼운 원작'이 아닌 '축약본'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출판사의 책들 선별하고 있는데, 일단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전집류의 도서'들은 과감하게 제외했다. 이유는 한꺼번에 구매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또한, 아동전집류의 책목록이 천차만별이어서, 정작 꼭 읽어야 할 목록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을 위해서 선별해야 할 책은 '낱권 구매'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똑같은 책이어도 '이책'은 이 출판사가, '저책'은 저 출판사가 더 나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뭐, 어찌 되었든 '나만의 초등문학수업책의 목록'도 꽤나 길 것이기 때문에, 이책 저책 가리지 않고 '비교분석'해볼 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경사책'으로는 <주홍글씨>를 골라보았다. 그동안 여러 번 읽은 책이기도 하고 다양한 출판사를 겪은 뒤이기 때문에 '비교분석'을 하기에 적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가의 기준'은 첫째, 줄거리 요약이 적당한가? 둘째, 초등생이 이해하기 적합한 주제선정을 했는가? 셋째, 삽화는 초등생에게 한 눈에 잘 들어오며 책의 이해를 적절하게 잘 돕는가? 이렇게 세 가지다.

 

  먼저, 줄거리 요약은 아주 훌륭했다.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리면서 '핵심내용'을 놓치지 않고 아주 잘 덜어내었다. 간혹 무리한 줄거리 요약으로 '축약'을 넘어 '각색'을 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책에선 그러지 않았다. 주제선정도 탁월했다. 줄거리 요약이 잘 되면 책의 주제도 크게 '변질'되지 않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을 거르고 덜어내다보면 종종 '원래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 원작과는 별개의 '교훈적인 이야기'로 탈바꿈 되는 경향도 있는데, 이 책은 애초에 '원작'이 출중한 탓인지 '간통'이라는 낯뜨거운 소재에도 초등생이 보기에도 크게 부끄러운 내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삽화는 아쉽게도 '초등저학년' 수준에서 더 낮춰진 듯 싶었다. 등장인물의 '감정'과는 동떨어진 예쁜 표정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이야기 전개와도 그닥 상관이 없는 '그린이의 상상력'이 동원된 딴 그림이 그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읽는 책에 '삽화'는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의 '상상력의 밑천'이 되는 까닭에 아주 잘 그려주어야만 한다. 차라리 '줄거리요약'이 엉망진창이어도 '삽화'만 훌륭하면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적으로는 꽤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줄거리 요약'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기나긴 '원작'을 읽는다면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내용이해'를 충실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로 인해 <주홍글씨>의 핵심인 '반성하는 삶이 주는 행복'을 초등생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죄의식과 구원'에 중점을 두었지만, 어린 학생들은 이 책을 '종교적인 주제'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실수와 반성', '상처와 복수', '화해와 용서'라는 일상적인 주제로 이해했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수를 한 뒤에는 '두 갈래길'을 가게 될 것이다. 한쪽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고 '철저한' 반성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성찰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감추고 덮어버려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는 길이다. 일단 이 길을 선택하게 되면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언제 들킬지 조마조마하게 살 것이고, 행여 들통이 나서 개망신을 당하는 않을지 걱정만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자책을 하고 속으로 뉘우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여전히 조마조마하기 마찬가지고, 걱정과 후회만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를 밝히고 철저히 반성하는 사람에게 '화해와 용서'를 하는 삶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관용정신'은 진정한 화해와 용서로부터 나오는 것일테다.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화해와 용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설령, 실수를 감추고서 온갖 근심과 걱정에 휘말려 있는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건전해지고 살 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남에게 받은 상처'를 절대 잊지 못하고, 그에 응당한 '복수'를 준비하며 끝장을 볼 때까지 남에게 해코지하겠다는 심보로 산다면 최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단 '복수심'에 불타오르면 남만 끝장이 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불태워버리기 십상이다. 피해를 본 만큼 되갚아주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되갚음을 당한 이가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또다시 '복수'를 하겠다고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런 복수심에 눈이 멀어버리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으며 오직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부각시킬 뿐이다. 남 또한 자신이 받은 상처처럼 아프고 쓰린 곳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채, 오로지 '되갚아주겠다'는 것에만 열을 올릴 뿐이니, 주고 받는 복수로 인해 '주변사람들'까지 불편하고 위태롭게 만들기 십상이라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주홍글씨>에서 초등생이 다뤄야 할 주제는 요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깊은 주제로 들어가버리면 아이들과 토론을 하기에도 부담스럽고 민망한 이야기가 오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덕적인 삶과 남을 도와주는 삶, 그리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대한 양성평등적인 개념을 일러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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