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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이주, 왜 고국을 떠날까? - 책가방문고 23 ㅣ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4
루스 윌슨 지음, 전국사회교사모임 옮김, 설동훈 감수 / 내인생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세더잘 시리즈 4]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4 : 이주, 왜 고국을 떠날까?> 루스 윌슨 / 전국사회교사모임 / 설동훈 / 내인생의책 (2010)
[My Review MMCXXXI / 내인생의책 11번째 리뷰] 이주(Migration)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뜻도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자기가 태어나지 않은 나라'로 떠나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국제이주'나 '이민'이란 말로도 쓰고 있으나, 정치적 · 경제적 · 종교적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가 살던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2010년 이전에 벌어졌던 '사례'가 소개되어 있으나, 이 글을 쓰는 2025년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사례를 예로 들어서 리뷰하고자 한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 이유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박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이 지금 원만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강제이주', '난민' 문제는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자국보호와 자국이익이 우선시 되는 '자국우선주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센 '극우화'로 인해서 이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천박해진 선진국들의 낯뜨거운 민낯이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 볼까 한다.
우리는 '외국인'에게 얼마나 너그러울까?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오버투어리즘'이 문제되고 있다. 엔저효과(?)로 인해 전세계 관광객들이 일본을 찾아갔지만, 시골 구석구석까지 탐방하듯 관광을 하며 소비를 하는 '한국관광객'과는 다르게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주로 관광하는 곳은 '유명 대도시'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그로 인해 짭짤한 수익을 본 곳은 '도쿄' 같은 대도시 정도였고,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관광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적자'를 맞을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외국관광객들이 '값싼 일본돈'을 물쓰듯 펑펑 쓰고 돌아다녔지만, 그로 인해 수익을 창출한 곳은 '대기업 프렌차이즈' 정도였고, 일본 소상공인들에게는 별로 수익이 돌아가지 않아서 '서민 경제'는 빨간불이 켜진 셈이었다. 더구나 일본의 물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는 바람에 외국인들은 자국에 비해서 엄청 싸다며 엄청나게 소비를 했고, 그로 인해서 일본 서민들은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올라서 가뜩이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데, 외국인까지 무지막지하게 들어와서 '싹쓸이'를 해버리니, 일본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빈곤한 삶을 살게 되는 일이 벌어졌단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는 '이중가격제'를 허가하고, 외국인 손님과 일본 지역 손님에게 '가격차등'을 두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외국인들은 이를 '차별'이라 느끼고 일본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버리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은 '관광대국'으로 성장하겠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관광객을 향한 차별정책을 추진하는 이상한 행보를 걷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외국인 혐오'다. 외국 관광객이 일본을 찾아오는 것은 좋지만, '일본문화'까지 존중하는 예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절'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 이게 단순 관광객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으로 '이주'를 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감을 부추기는 일이 매우 빈번해졌다고 한다. 물론 일본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각자 '고국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겠다면서 '민폐'를 끼치거나 '일본문화'를 폄하하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 이주민들에 대한 반감은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정도를 넘어서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당연하게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EU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젠지세대 시위'는 점점 극우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큰 문제다. 물론 EU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극우열풍(?)'이 벌어지고 있는 듯 하고, 특히 10대, 20대의 젊은 층이 그런 '극우세력화'하려 시위와 폭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것이 우려스러울 정도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극우화'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화가 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불똥은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러 온 '외국 이주민'들에게 향하고 있다. 자국의 젊은이도 일자리가 부족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외국 이주민이 들어와서 더욱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맞지 않은 점이 있다. 외국인이 구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낮은 임금의 노동이고, 자국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고학력, 고임금, 사무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들이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극렬하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인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게 되면 각국의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복지정책의 혜택'을 보게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젊은 세대가 폭발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외국인들을 먹여 살리는 정책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세금인상'과 같은 정책을 쏟아내는 선진국에서는 더욱더 가열찬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프랑스가 그렇다. 엄청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세금인상안'을 내놓고, '복지혜택'은 줄이는 정책을 쏟아내자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간 것이다.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경제 적신호'가 켜진 나라들은 요즘 대부분 이렇게 성난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단다. 그리고 이들은 '외국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고 말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어떤가? 관세 전쟁을 해서 미국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실상은 만만한 '동맹국'들을 후려쳐서 뜯어낸 돈으로 잔치를 벌이려 했던 것이 들통났다. 그러다 대한민국 이재명 정부가 굳건히 버티며 불리한 협정문에 끝까지 사인을 하지 않자 '조지아'주 이민관리국(ICE)이 대한민국 국민을 불법체포감금한 뒤, 강제추방을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체포된 이들은 '불법'을 저지른 범죄자가 아니라 '미국인 일자리'를 늘려주기 위한 공장을 '대신' 지어주는 일을 하던 고급엔지니어들이었다. 그들은 '공장'이 완공된 뒤에 미국에 눌러앉아 살 사람도 아니고,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되돌아올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한 일도 철저히 '미국인'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늘려주기 위한 일을 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미국 당국은 이들을 '불법이민자' 취급을 했고, 미국에서 내쫓아 마땅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물론, 이 사건의 결말은 대한민국의 완승, 미국의 무조건 항복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미국의 '이민정책'에 완벽한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바로 이민으로 성공한 미국조차 '이민'은 불편한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제 더는 '이민'을 환영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인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정상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끝나고 난 뒤의 '반세기 동안의 평화 번영'이 인류의 역사를 되돌이켜 봤을 때 '비정상'이었다는 말이다. 인류는 그만큼 폭력이 일상이던 삶을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그럼 앞으로 '이민'은 절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펼쳐질 거란 예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주'는 멈추지 못할 것이다. 왜? 평화가 지속되지 못하고 전쟁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게 되면 피치 못하게 '난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에도 아프리카 · 아시아에서는 정치갈등이 심해서 혼란 끝에 '내전'을 벌이고 있으며, 오랜 갈등과 내전으로 인해 경제적 빈곤을 겪게 되면 '먹고 살기' 위해서 고국을 등지는 '난민'이 속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이주'를 결심하고 고국을 떠나고 있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분쟁으로 인해서, 경제적 빈곤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향하는 이주민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유엔난민기구(UNHCR), 국제이주기구(IOM) 등에서 이주 난민을 도와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국제기구조차 '재정 부족'을 호소하며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선진국들의 경제여건이 지금보다 더 나았던 2010년대에도 '재정 부족'을 호소했는데, 요즘처럼 선진국들조차 '재정난'을 호소하며 내부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얼마나 더 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재정적 여유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재정 지원이 원활하다고 '난민 문제'가 단박에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말이다. 유대인 경전 <탈무드>에도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줘라"고 말했다. 난민들에게, 이주민들에게 적은 임금이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인 대책이란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가? 이 문제를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 인류 역사상 '일자리'는 늘 부족했고, 경제가 호황일 때에도 '외국인 차별'로 인해서 이주민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주민들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게 어렵다는 말이다.
그럼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훌륭한 이주민'에 대한 예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 책에도 소개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그가 전쟁을 피해서 미국에 이주했을 때, '외국인 이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했더라면, 오늘날의 미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또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정착했다면 오늘날의 초강대국은 아마도 '그 나라'가 아니었을까? 물론, 아인슈타인이 대단히 뛰어난 인재였으니 '외국인 이주민'이었을지라도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니 '뛰어난 인재'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지만, 평범한 외국인들은 입국을 거절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물론, 오늘날에는 그런 인재를 서로 영입하기 위해서 각국이 경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누가 얼마나 현명하고, 누가 뛰어난 업적을 남길 줄 알고 '골라서' 환영한단 말인가? 일단 누구라도 환영해서 받아들인 뒤에 잘 대우하고, 잘 교육시켜서,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꾀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은 아닐까? 대만계 미국인 잰슨 황이 왜 대만이 아닌 미국에서 '사업'을 했겠느냔 말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사업'을 벌이기 유리한 환경조건을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훌륭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뛰어난 인재가 탄생하는 것이다. 결국 세계 모두는 '이주'에 대한 시선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회와 그런 사회의 차이는 앞으로 더욱더 큰 차이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뭐, 독일의 메르켈 정책의 사례처럼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