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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평점 :
<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 이세욱 / 열린책들 (2023) [원제 : L'Ultime Secre (2001년)]
[My Review MMCXXX / 열린책들 25번째 리뷰] 지난 1권 리뷰에 이어 질문의 '답'을 먼저 말한다면, 인간이 느끼는 쾌락과 행복의 근원이 되는 위치는 바로 '뇌량'이다. 현재는 의학용어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의 일환으로 '뇌들보(corpus callosum)'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좌뇌와 우뇌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신경세포가 집합된 곳'이다. 소설에서는 이곳에 전기자극을 주어서 '최강의 쾌락, 또는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위치 많고,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아직도 뇌의 신비는 모두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행복감과 '인위적인 조작'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만약 '자연적 행복'과 '인위적 행복'을 구분할 수 없고 똑같이 느낀다면 베르나르의 소설에서처럼 누구에게든 '뇌수술'을 시술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뇌수술'을 하지 않고도 '뇌들보의 쾌락 중추'를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는 알약을 개발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법은 옳지 못한 것 같다. 행복의 느낌이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그 느낌의 정도가 똑같든, 같지 않든 간에, 일상 생활에서 '쾌감'과 '행복'을 누릴 만한 행동과 일을 한 뒤에 받는 '보상'이 아니라, 단지 '버튼'을 누르는 행위나 '알약'을 삼키는 단순함을 통해서 얻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쾌감과 가족의 행복을 얻으려 윤리도덕적인 바른 생활을 하려 노력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그저 '버튼'의 쾌감과 '알약'의 행복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버튼과 알약을 차지하려 폭력을 쓰는 것조차 자제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중화' 되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게 된다면 쾌감과 행복의 오남용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우려스러운 상황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사무엘 핀처'가 뇌수술을 받고 난 뒤에 보여준 말과 행동의 과격성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쾌락의 중추'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는 스위치를 얻기 전에는 선하고 품위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하지만 '그 스위치'를 손에 넣게 되자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빠져들어서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계속 더 많은 자극, 더 강한 자극을 원할 뿐이었다. 그러다 '치사량'이 넘는 자극을 주었다 판단하여 스위치를 멈추는 순간, 사무엘 핀처는 "멈추지마! 더 자극해달라고!"라면서 자제심과 이성을 잃고 오직 쾌락만을 쫓는 야수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 자극을 그만 멈추고 쾌락 수위가 현저히 낮아지고 나서야, 방금과 같은 상황에서 절제하지 못한다면 자칫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사무엘 핀처는 '행복 스위치'를 타인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스위치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 바로 장루이 마르탱이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핀처는 '행복 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동기'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목표달성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방식이어야 했다. 핀처는 그 동기로 '체스 대결'을 선택했다. 바로 이 '체스 대결' 이야기가 소설의 맨 처음에 보여주었던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소설의 전개 방식을 상당히 흥미롭다. 현재에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이지도르와 뤼크레스 두 탐정(?)을 가장한 두 기자가 감춰진 비밀을 풀어나가고,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거듭 교차하면서 하나씩 나타나는 단서를 풀어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그 과정중에 밝혀지는 '뇌의 비밀'이 이 소설의 핵심 포인트다. 그래서 겉으로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처럼 보이지만, 다 읽고 나면 '인간의 뇌에 감춰진 신비'가 한가득 풀어헤쳐 진다. 마치 한 편의 <백과사전>을 다 읽고 난 듯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다. 이게 베르나르 소설의 특색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20여 년이나 지난 '낡은 지식'이긴 하지만, 아직도 '뇌 연구'는 속속들이 밝혀진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기에 베르나르의 <뇌>로 호기심을 가득 품고서, 본격적인 '뇌 탐구'로 들어가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이 처음 나왔던 시절에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관한 풍부한 지식도 얻을 수 있었겠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그쪽 분야는 눈부신 발전과 성과를 이미 얻어냈다. 그래서 인간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AGI)'이 곧 실현될 것으로 전망하는 지금에 와서, 고작 '체스 대결'로 인간을 이긴 컴퓨터가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옛이야기가 되버리고 말았다. 짧게는 5년, 길게 보면 20년 안에 인간의 뇌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AGI가 상용화될 것이다. 그 때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제발 인간이 초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설령 노예가 될 수밖에 없더라도 초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윤리도덕적으로 선한 행동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