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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 문학과지성사 (2010)
[My Review MMCXXIX / 문학과지성사 5번째 리뷰] 거듭 말하게 되지만, '한강 소설'은 내게 어렵다.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가 강렬하게 빛나지만, 동시에 '죽음'이라는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끌어들여 찬란한데도 감탄할 수 없고 경건하다 못해 위축 들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이게 내 솔직한 감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서 그녀의 소설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소년이 온다>를 맨 처음 읽었고,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도 바로 이어서 읽었다. 그리고 살짝 텀을 두고서 <희랍어 시간>과 이 책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게 되었는데, 좀 힘들었다. 여느 통속소설과 같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가족'을 그리고 있지만, 한강 작가는 전혀 통속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자를 어두운 심해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깊고 깊은 심해가 주는 '경이로울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은 곧 '죽음'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했기에 무척이나 이겨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도 '화가 서인주의 죽음'이 주된 이야기였다. 그녀의 친구인 이정희는 '자살'이 아니라 주장했지만, 평론가이자 그녀를 사랑했던 강석원은 '자살'로 기정사실화 한다. 그리고 서인주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살인사건(?)의 단서처럼 제공 되다가 마침내 마주하게 된 '진실'이 밝혀지자, 모두는 결국 '혼돈'속으로 빠져들고 말게 된다. 이런 이야기 전개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한강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는 술술 잘 읽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서인주의 죽음이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피안의 세계'였고, 그렇게 밝혀진 진실이 주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기보다는 '혼돈'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결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또 이해하기 힘든 점은 '먹'으로 그려진 그림에 대한 예술적 감각과 효과, 그리고 그에 따른 해석과 감춰진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과 다를 바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아리송할 따름이었다. 다만, 천문학적인 지식을 열거하며 서술하는 것을 통해서 '간접적'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비문학적 관점을 더 많이,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무슨 의미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눈이 녹으면?"이라고 운을 띄웠다면, 이과적 독자들은 "물이 된다"라고 태연하게 답을 하겠지만, 문과적 독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봄이 오지요!"라고 답을 할 거라고 한다. 이런 답을 들은 이과적 독자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눈은 당연히 '고체화 된 물'이기에 상온에서는 자연스럽게 '액체화 된 물'이 될 것인데, 눈을 '물'이 아닌 '겨울'로 이해하고, 시간적 흐름에 따른 계절적 변화를 머릿속에 떠올려서, 눈이 녹는 계절인 '봄'이 온다는 서정적인 답을 내놓는다는 것이 그야말로 신기할 따름인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는 [LIFE]라는 글자를 보면 문과적인 독자들은 '삶'이나 '인생'으로 이해하겠지만, 이과적인 독자들에겐 'Li(리튬)'과 'Fe(철)'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과적 관점이 더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과적 독자들이 정말 신기한 사람들로 인식될 것이다.
나에게 한강 소설은 그런 면모로 다가 온다. 물론 나에게 '문학적 이해력'이 많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실제로도 나는 '소설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은 편이긴 하다. 뭐, 무협지나 애정소설, 미스터리(추리)소설 같은 것도 '소설'로 쳐준다면 학창시절에 참 많이 읽긴 했지만, '순수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학소설을 섭렵하지 못했다. 그래서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난 다음에 특히 '문학소설'을 많이 읽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한 '만학도의 한계'를 한강 소설을 통해서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