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의 쓸모 - 어른의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66개의 단어들
김범준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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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의 쓸모 : 어른의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66개의 단어들>  김범준 / 한빛비즈 (2025)

[My Review MMCXXXII / 한빛비즈 174번째 리뷰] 우리 말에는 형용사가 많다. 그만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물의 모양이나 상태를 나타내주는 말이 많다는 건 '같은 사물'이라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길게 부연설명을 하지 않고도 '형용사 단어' 하나만으로도 풍부하게 표현해 낼 수 있기도 하다. 그럼 자연스런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외국어에는 우리 말처럼 형용사가 다채롭지 못하다는 것인가? 그 흔한 외국어인 '영어'조차 잘 못하는 나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지만, 외국인들의 입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한국어는 '악마의 언어'다"라고 할 정도로 뒤치기(번역하기) 힘든 언어라고 혀를 내두르곤 한다. 오죽했으면 한강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던 으뜸공로자는 다름 아닌 '뒤치미(번역가)'라는 말을 하겠는가. 한국 소설을 외국어로 뒤쳐내는 일이 무척이나 힘든 까닭이 바로 한국어의 어마어마한 '표현력'을 품고 있는 단어를 감히 외국어가 감당해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어려움 때문에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한류열풍'을 타고 'K-pop'이 큰 인기를 끌자 한국어의 묘한 매력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어떤 열성팬은 한국아이돌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제발 '한국어' 가사를 '영어'로 바꿔서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왜냐면 '영어 가사'로 바꿔 부르면 그냥 평범한 '팝송'이 되어 버려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당장은 '한국어 가사의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겠지만, 일단 뜻을 몰라도 '한국어 가사'만 들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그 매력에 빠져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노래 가사의 뜻까지 알고 나면 더 큰 매력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니, 제발 '한국어'로 불러 달라고 간절히 애원을 하는 열성팬의 의견이었다. 왜 전세계 K-pop팬들이 그리 많은지 짐작케 해주는 단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도 '우리 말 실력'을 높이기 위해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독서논술지도'를 하기 위한 노력의 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재미가 없었다면 <국어사전>을 소설책 읽듯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새롭게 알아낸 낱말들이 많았는데, 형용사의 순우리말 표현도 그때 알게 되었다. 형용사(形容詞)는 모양 형, 얼굴 용, 말씀 사를 쓰고 있기에, 곧바로 뒤치면(직역하면) '얼굴의 모양을 나타낸 말'이란 뜻이다. 여기서 얼굴이란 '사물을 대표하는 부위'를 뜻하는 것일테니, 사물의 모양이나 상태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말을 '형용사'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를 순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딱일까? 바로 '모양씨'다. 모양이나 상태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핵심(씨)을 이보다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런 매력을 깨우치니 다른 뜻도 함께 찾아보았다. 동사는 '움직씨', 명사는 '이름씨', 수사는 '셈씨', 조사는 '토씨', 부사는 '어찌씨'였다. 그리고 감탄사는 '느낌씨'다. 이렇게 풀어내니 딱딱하고 어렵기만 하던 '문법'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 책 <형용사의 쓸모>는 내게 그런 느낌을 다시금 불러 들였다. 그리고 또 하나를 떠올렸는데 인기 TV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던 <세대공감 올드 앤 뉴>였다. 어른 세대와 어린 세대가 쓰는 말이 서로 달라 '공감'하기 힘든 점이 없지 않았는데, 이 프로그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세대공감'을 이룸과 동시에 '우리 말의 매력'을 새삼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그때 익혔던 낱말 가운데 '두루뭉술하다', '휘뚜루마뚜루' 같은 말은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이 책에서도 '늘차다', '결곡하다', '습습하다', '늡늡하다', '여낙낙하다' 같은 말은 평소에 써본 적도 없는 신선한(?) 말이어서 그 당시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더 꼼꼼히 읽고 또 읽어나갈 지경으로 푹 빠지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 '늘차다(능란하고 재빠르다 :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경험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숙련도)'와 '여낙낙하다(성품이 곱고 부드러우며 상냥하다/미닫이 따위를 열거나 닫을 때에 미끄럽고 거침이 없다 : 내적인 힘과 외적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췄을 때 나타나는 특별한 품성)'는 뜻이 정말 마음에 흡족했다. 딱 내가 추구하는 삶에 어울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낙낙하다'라는 말을 알기 전까진 '외유내강(外柔內剛)'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겉으론 부드럽지만 속은 굳건한 사람이 되어 '어떤 어려움'에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멋진 사람이 어릴 적부터 존경스러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늘찬 삶'을 추구하면 아주 딱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내가 아무리 '늘차고 여낙낙한 삶'을 살기로 노력하고, 그런 말을 즐겨 쓴들 이 '아름다운 말뜻'을 알아듣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앞에서도 번역하다는 '일본식 한자표현' 말고 순우리말로 '뒤치다'라고 썼지만, '뒤침'이라는 말뜻을 알고 있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 표현은 나도 어떤 책의 저자가 '일본식 한자 표현'을 대신할 '우리 말'을 찾으려다 '번역'이란 말을 대신할 우리 말로 '뒤침'이라고 하면 좋겠다는 뜻에 십분 공감해서 따라 쓰게 되었다. 딴에는 '번역'이란 말 대신 '옮김'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외국어 번역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단순히 옮겨 놓는 일보다는 훨씬 차원이 높은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꼭 맞게 노력했다'는 뜻을 담아 '뒤치다(엎어지거나 자빠진 것을 바로 잡아 정돈하다)'로 대신하면 좋겠다는 글쓴이의 뜻을 쫓아, 번역이란 말을 대신해서 '뒤침'이라고 줄곧 써왔다. 하지만 이런 '뒤침'이라는 표현을 알아채는 이가 없어서 부득이 '뒤침(번역)'이라고, '뒤치미(번역가)', '뒤치다(번역하다)', '뒤친(번역한)', '뒤칠(번역할)', '뒤쳐진(번역된)' 따위로 활용해서 혼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늘차고(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순련되고)', '여낙낙한(외유내강한)' 삶을 지향하며 살아갈 것이다라는 식으로 '섞어서' 쓸 수밖에 없을 것이 씁쓸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한 번 뜻을 품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며 살아온 나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굽힐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 책은 단지 '우리 말의 숨은 뜻'을 새삼스레 밝혀내어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모양씨(형용사)가 갖고 있는 뜻을 활용해서 '인생의 교훈'을 찾고 지혜로 승화시켜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지침서로 활용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지식'을 쌓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지혜'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참신함을 느낄 수 있으니 재밌기도 했지만, 그보다 '일상'에서 지혜를 깨닫게 해주었으니 더욱 희망으로 가득해졌다. 멋진 어른이 되고픈 이들에게 권하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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