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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6 - 여명의 쓰나미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6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평점 :
이쯤해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1권이 '시리즈의 소개'였다면, 2, 4권은 '중국편-태평천국'이었고, 3, 5권은 '일본편-막부시대의 종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6권에서는 일본 막부 말기의 혼란 상황을 총정리하면서, 서양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드디어 '한국편'을 다루면서 세도정치 시기의 혼란과 민란, 동학, 그리고 대원군의 등장 등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정리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6권은 [1부 끝, 2부 시작]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앞서서도 태평천국을 집중조명하면서도 영국과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지에서 펼쳐진 여러 사정을 함께 살펴보았고, 막부가 개항을 하면서 겪은 내우외환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전세계의 사정을 동시에 살펴보기도 했기에, '한 권의 책'마다 다채로운 세계사의 편린을 펼쳐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6권에서는 뭔가 달라졌다. 1~5권까지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한국사'를 제외하는 느낌이었는데, 6권부터는 갑작스레 '한국사'를 집중조명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이 시리즈를 읽을 독자들께서 '한국사' 정도는 통째로 꿰고 있을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중국과 일본 등 이웃나라를 중심으로 서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변화이기에 마음에 쏙 들었다. 세계사를 다루면서 한국사를 조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구열강이 중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뜯어먹을 것이 별로 없는 일본, 한국이었기에 '패싱'하는 분위기였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패싱 당하는 처지인데도 일본사는 줄줄 읊으면서 한국사는 쏙 빼놓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훗날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해서 '제국주의' 대열에 올라서서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을 두고, 근대화 이전, 정확히는 명치(메이지)유신 이전의 존재감 없던 일본을 그리 집중하며 미주알고주알 해놓는다는 것은 '과대포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관계로 이 시리즈는 진도가 꽤나 느린 편이다. 13권까지 출간된 지금(22년)도 시리즈를 마무리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할 것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역사를 함께 조명한 역사책이 결코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역사관'이 어떤지는 지금 시점에서 중요하지 않다. 일단은 느리고 자세하게 풀어놓은 역사책이 필요하고, 쉽고 재밌는 만화형식이라면 더욱더 반가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암튼, 그동안 사모은 보람을 새삼 느끼며 '뒷북 리뷰'를 올리고 있지만, 한국사를 논하면서 세계사를 함께 논할 수 있는 이 시리즈의 장점만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기에 몇 자 적어 보았다.
다시, 일본이다. 지난 시간에 '존왕양이 지사들'이 양이(반외세)를 외치며 일왕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본이라는 판을 짜겠다고 '막부 패싱'을 주장했다가, 막부가 먼저 선수를 쳐서 '일왕가'와 정략결혼을 진행시켜 '공무합체'라는 맞대응에 제대로 통수를 쳐맞고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에 '조슈'와 '사쓰마'가 막부에 반기를 들고 외국과 전쟁을 선포했다가 '실력차이'만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현실을 실감한 일왕이 막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존왕양이 지사들'은 낙담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조슈 번'만이 홀로 자신들의 진정성(충성)을 인정해달라며 일왕이 머무는 교토로 군대를 끌고 가는데, 이를 막기 위해 막부와 나머지 번들이 교토를 수비하면서 전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 조슈 번은 패배하고, 전쟁의 여파로 교토는 불바다가 되는 것까지 다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왕은 막부에게 '조슈 정벌'을 명하게 되고, 막부는 여러 번들에게 명령을 내려 정벌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뭐랄까. 일본 특유의 '느림'이라고나 할까?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공격 결정이 났는데도, 공격 준비는 미적거리고, 공격하기 위한 '출정'은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끌게 된다. 뭐, 나름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랜 쇄국 끝에 '개항'으로 발등에 불이 붙어 버렸고, 그것을 끄겠다고 사부작사부작거리다가 혼란만 가중시킨 결과, 일본의 내부적인 문제만 더욱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았고, 배상금이다, 피해복구다, 거기다 서로를 향해 칼부림까지 해댔으니 '재정'이 말도 못하게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면서 '정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먼저 발을 넣지도 빼지도 못하는 상황에 쳐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 2차로 나누어 진행한 '조슈 정벌'은 막부의 막강한 전력으로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물론 조슈가 주민들까지 동원하며 하나로 똘똘 뭉쳐 막은 것과는 달리 전력면에서 월등했던 막부군은 실상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도 장기전으로 돌입했으면 막부군의 승리로 끝났을 테지만, 졸전이 진행되던 와중에 총사령관인 '쇼군'이 죽음을 맞이하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을 맞고 '조슈 정벌'은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이로써, 막부의 붕괴는 가속화되는데, 그건 나중 일이다.
한편,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이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남북전쟁'이 그 원인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처럼 '남북전쟁의 승리'는 북부군이 차지했다. 하지만 전쟁 초기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강자'는 늘상 '남부군'이었다. 실제로 두 군대가 싸우면 승리는 '남부군'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부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물량공세'가 원활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남부군은 '노예주 찬성'이라 노예가 많았다. 그래서 주로 농사를 지었고 말이다. 하지만 북부군은 산업화가 이루어져서 공장이 많았다. 그래서 노예보다는 '노동자'가 더 많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노예'나 '노동자'나 헐값으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발달할수록 '소비의 주체'가 절실해졌고, 적은 임금이지만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노동자가 더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다 전쟁이 발발하자, 공장은 더 많은 생산을 하게 되고, 기술은 더 발전하고, 그렇게 향상되고 풍부해진 물량은 '철도'를 통해 더 빠르게 전쟁터로 옮겨지게 된 셈이다. 그래서 북부군은 실력에서 형편 없었을지언정 '물량'이 딸린 적은 한 번도 없게 되었다. 반면에 남부군은 '보급로'가 끊겨 강한 군대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변변한 무기가 없어서 싸우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리지만 전쟁에서는 점점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남부군은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유럽에 손을 내밀었다. 바로 그때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을 한다. 어차피 똑같은 백인끼리의 싸움이라 '백인우월주의'에 쩔어있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북부군은 '노예해방'이라는 명분까지 얻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 각국은 '남북전쟁'에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하고 관망하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남부군'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바다 건너 유럽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영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도 '노예해방'이라는 명분 때문에 남부군을 도와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남부군의 '면화'가 탐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남부군은 외롭게 고립되어 말아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남북전쟁의 승리는 북부군에게 돌아갔고, 미국은 '대영제국'을 재치고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물량공세'를 감당할 정도의 엄청난 생산력에, 전쟁으로 다져진 실전경험과 자체 기술개발까지 이루어져 '미군'은 상상 이상의 강력한 군대로 거듭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군의 실력을 검증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세기 이후에 '세계대전'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미국의 근본적인 힘인 '물량공세'를 원 없이 쏟아부으며 전세계인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이것도 나중에 벌어질 이야기다. 만약, 영국이 일찌감치 '남부의 편'을 들어서 남북전쟁의 승패를 뒤집어 놓았다면...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말이다.
한편, 조선에서는 정조가 죽고 김조순의 후손이 권력을 잡으면서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가문이 8가문이나 된다고 하지만, 세도 60년 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내노라한 가문은 '안동 김씨'가 유일하다. 그러니 세도정치는 '안김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세도정치' 시기에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세금 문제'였다. 오늘날에도 세금은 내기 싫고, 내더라도 조금만 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문제가 없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 시기의 문제는 그야말로 나라를 들끓게 만들 정도로 문란해졌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바로 이름도 유명한 '삼정의 문란'이다.
삼정이란 '전정(토지세)', '군정(군역세)', 환곡(구휼제도)' 세 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잘 돌아갔기에 조선은 부강할 수 있었고, 이 시스템만 잘 돌아가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탐관오리' 때문이었단 말이다. 관리라는 것들이 '매관매직'을 하기 위해 백성의 고혈을 빼돌려 뇌물로 상남하기에 급급하다보니 나라의 곳간이 텅텅 비게 되었단 말이다. 그렇게 빈 나라살림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다시 채우기 위해서 '특별세'를 걷겠다고 나서니, 성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며 여기저기 '민란'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잘못은 저들이 해놓고 책임은 백성들보고 지라고 하니 열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냔 말이다.
하지만 민란이 발생했어도 '혁명'까지는 아니었다. 성난 백성들이 '하급관리(아전)'는 도살할지언정 '지방관(고을사또)'까지 죽이거나 나랏님을 갈아엎자고 외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잘만 관리하면 우리가 사는데 별 문제 없을 것이니 '제대로 된 관리'를 뽑아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을 한 셈이다. 하지만 세도정치로 썩을대로 썩은 시스템이 민란으로 보여준 백성들의 성난 목소리에 귀 기우릴 턱이 없다. 그래서 백성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종교'다.
사람들은 힘들 때마다 '기댈 곳'이 필요한 법이다. 육신이 힘들면 마음이라도 편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교식으로 '제사'도 성대히 지내보려 했지만, 양반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큰 비용 때문에 기대기 힘들었고, 유교가 양반사회를 지탱해주고 있기에 '위로'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불교'였고, 때마침 전파된 '서학(천주교)'이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유교사상에 젖어있던 백성들에게 '내세적인 사상'은 낯선 면이 없잖아 있었다. 이에 최제우는 유교에 불교, 천주교 사상을 버무려 '동학'이라 일컫고 백성들에게 널리 퍼뜨렸다. 백성들도 이질적이지 않은 '동학사상'에 심취하게 되었고, 훗날 '동학농민운동'을 펼치게 된 힘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아직 먼 이야기고, 동학운동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대원군의 등장'부터 해야 할 것이다.
대원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다루도록 하고,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박규수'다. 조선 후기의 천재적인 인물을 꼽자면, 박규수를 절대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여러 학문에 빼어난 실력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도 밝아 조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실력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규수는 청 왕조의 몰락과 서구열강의 힘을 '열하(청 황제의 피서지) 방문'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 단박에 파악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이제 조선은 박규수 같은 인물에게 힘을 실어주어 '재능'을 마음껏 펼쳐줄 수 있게만 하면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도와주지 않았다. 효명세자의 눈에 띄어 젊은 나이에 자문역할을 맡아 빵빵한 실력을 보여 주려 했지만, 임금에 오르기도 전에 죽고 말았고, 뒤이은 헌종 때에도 중임을 맡았으나 뜻을 펼치기도 전에 헌종이 붕어하고 만다. 그렇게 철종, 대원군 때까지 '밝은 눈'으로 온세상을 밝히려 했으나 바로 그 '세상'이 박규수를 감당하지 못해 비운의 천재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조선의 운명이 그렇게 돌아갈 것만 같다고 예언이라도 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