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한빛비즈 문학툰
SunNeKo Lee 그림, 김성은 옮김, 샬럿 브론테 원작, Crystal S. Chan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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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툰'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교양툰'으로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올렸다면, '문학툰'으로 우리의 감성과 인성을 충만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문학툰'은 모두 4권으로, <제인 에어>, <레 미제라블>, <빨강머리 앤>, 그리고 <주홍글자>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제인 에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만화형식'의 책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훌륭한 '각색'인 덕분에, '원작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만화의 재미'까지 담아놓은 수작이다. 만약, 원작에 담긴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있었다면 '문학툰'을 적극 권한다. 주제를 알고 읽으면 더욱 감동적인 '문학툰의 세계'로 기꺼이 인도할 것이고, 기존의 해석과는 살짝 다른 '나만의 리뷰'를 읽어주신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이다. 자, 그럼 시작이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에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자, 세계를 압도하는 선진국이었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활동조차 '남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서, '그들만의 천국'을 위해 '그녀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여성 인권'의 암울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깜깜한 세상에 등불이 되어주는 인물이 꼭 있기 마련이고,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작가, 샬럿 브론테'였다. 그가 쓴 <제인 에어>에서는 '당당한 여성'을 등장시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여성도 자신의 꿈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해 주위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부각시킨 소설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 책이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목받아 마땅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열 살 소녀, 제인 에어는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지만, 자기 자식보다 더 애정을 쏟아준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나니 제인 에어를 곱게 보지 않던 외숙모와 외사촌들은 틈만 나면 제인 에어를 괴롭히며 못살게 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외치며 자신을 향한 부당함에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어 '하인'보다 못한 처우를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제인 에어에게 한줄기 희망이 찾아오니, '로우드'라는 자선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그닥 나은 상황은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해 병들어 죽어가는 학우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인은 열심히 학업을 이어나갔고 뜻밖에 '남을 가르치는 재능'을 발견해서, 8년 동안의 로우드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가정교사'라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에게 청탁하지 않고 스스로 광고를 낸 다음에 손필드로 교사일을 하기 위해 로우드를 떠난다.

 

  그곳에서 제인은 '로체스터'라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간 제인은 로체스터의 진실어린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승낙했지만, 결혼식장에서 벌어진 헤프닝으로 결혼은 무산이 되고 만다. 로체스터에게 '진짜 부인'이 있었던 것이다. 로체스터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사랑의 결실로 맺어진 결혼이 아니라 단지 '재산 증식'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으며, 그것도 로체스터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수많은 재산을 탐낸 아버지 계략에 빠져 원치 않은 결혼을 강요 당했으며, 심지어 결혼한 신부는 '정신병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일순간에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된 로체스터는 자신의 인생이 파멸되는 것을 알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다. 원치 않던 결혼과 생각지도 않았던 부를 한꺼번에 받게 된 로체스터는 큰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를 만나고 난 뒤에 로체스터는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삶'에 언제나 당당한 제인 에어를 보며 지난날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제인 에어에게 청혼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의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난 뒤에도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지만 로체스터의 '정식 부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자신은 로체스터의 정부(첩)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의 사랑이 아무리 진실하고 순결하다 해도 세간에서는 '가난한 18살 어린 신부'가 '늙고 돈 많은 40살 귀족'을 꼬드겨 결혼을 한 그렇고 그런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수근거림을 받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사랑'에 흠결이 없다는 자신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의 진심이라는 것도 고작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에 안주하며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앞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양심적 고백'이었을 것이다.

 

  제인은 그렇게 손필드의 저택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무작정 떠나고 말았다. 수중에 있는 돈만큼 마차를 타고 로체스터에게서 멀어졌는데, 그와중에 마차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마저 놓고 내렸기에 돈 한 푼 없이 굶게 되었고 머물 장소를 찾는 것도 마뜩찮게 되었다. 그렇게 죽기 일보직전에 용기를 내어 화목해보이는 집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집의 하녀가 거렁뱅이와 다를 바 없는 제인을 문전박대하니, 제인은 그대로 쓰러져 죽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세인트 존 리버스라는 젊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리버스댁에서 머물며 기력을 회복한 제인은 우연한 계기로 리버스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인이 막대한 유산의 상속녀라는 소식도 알게 되어, 한 순간에 가족이 생기고,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제인에게 다가온 행운 앞에서도 제인은 행복할 수 없었다. 제인의 마음속에 아직 '로체스터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리버스가 인도로 선교활동을 떠나는데, 제인에게 함께 떠나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제인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소중한 오빠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며 흔쾌히 허락하지만, 리버스는 동생이 아닌 아내로서 부탁하는 거라면서 갑작스런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둘의 결혼은 '신이 부여한 소명'이며, 그런 소명을 받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신부는 너밖에 없다며 막무가내로 결혼 승락을 요구한다. 제인은 친절한 리버스가 이토록 모질게 몰아부치고 조금의 배려도 없이 자신의 고집대로만 밀어부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며 결혼을 정중히 거절하게 된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구와 '신의 섭리'라면서 물고 늘어지는 청혼에 제인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물론,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지만 말이다.

 

  그때, 그 순간, 제인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제인의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었을테지만, 그 길로 제인은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아직도 로체스터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손필드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불에 타다만 흉물스런 저택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로체스터는 모든 것을 잃고, 장님에 한쪽 손까지 잃어버리는 불구자가 되어 의미없는 연명만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그런 로체스터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로체스터에게 제인이 돌아왔노라고 말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결혼을 하겠다는 맹세인 것이다.

 

  <제인 에어>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여성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선언이란 말이다. 남자의 도움으로 '아름답게 가꿔진 꽃'에 불과하니 '남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남자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쯤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통쾌한 메시지였다. 더구나 남자라는 족속이 얼마나 뻔뻔하고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짓만 골라 하는지 똑똑히 보라면서 '로체스터'와 '리버스'를 전면에 등장해보였다. 로체스터는 제인을 돈으로 꼬시려 했고, 리버스는 '신의 섭리'라면서 가스라이팅을 가했다. 물론, 제인이 로체스터를 선택하든, 리버스를 선택하든 어느 정도는 행복한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 틀림없다. 제인 에어만큼 당차고 멋진 여성이 살림살이를 맡았으니 오히려 로체스터와 리버스가 '행운아'가 되어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삶에는 '제인 에어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동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남편의 삶'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일방적이고 보편적인 강요로써 말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여성에게 굴레를 뒤집어 씌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성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의견을 밝히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말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권리이고, 당연히 해내야 하는 책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당연함'이 여성에게만은 전혀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매달리고 의존해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세뇌'를 하느냔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서는 더욱 안 되는 일이고 말이다.

 

  여성, 스스로도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다. 요즘에도 '백의의 천사'니, '사무실의 꽃'이니 하면서 여성의 '사회생활'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몰상식이 벌어지곤 한다. 그럼, 여성에게 '본질적인 직업'은 무엇이냔 말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로서만 '여성의 본질'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젠 여성들도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자녀육아와 교육'도 엄마만의 몫이 아니라 아빠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다. 바야흐로 '양성평등시대'이며, '인권존중의 시대'인 것이다.

 

  심지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도 보장하는 마당에 여성인권이 바닥을 치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없다. 어째서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남성을 향한 역차별'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실력순으로 뽑는다는 대원칙이 통용되기 위해서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한 '불평등과 불공정'이 개선되지도 않았는데, '실력순'이라는 대원칙을 앞세워 사회적 갈등만 조장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무지 서로를 위한 '배려심'을 찾아볼 수 없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또한, 여성이 남성을 배려하는 훈훈함은 찾아볼 수 없단 말인가?

 

  제인 에어가 '여성의 목소리'를 낸 지 200여 년이 지나도록 '양성평등'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요원한 모양이다. 아직도 '그들만의 천국'이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모양이다. 모든 면에서 멋있고 우월한 '그들'이 천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볼썽사나울 마당에 '찌질한 놈들'이 천국을 운운하는 것은 같은 남성이 봐도 못봐주겠다. 제발 좀 사람답게 살면 안 되겠는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소중한 시기'이자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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