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끼린 그러는 거 아니란다. 서로 눈만 마주쳐도 설레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상황에서 '가족'을 연상시켜선 안 된다는 '묻지 않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부부사이일지라도 끈적끈적하면서 달달해지면 안 된다니...그럼, '가족'이란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여기 <불편한 편의점>에는 '불편한 가족'이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그저 '노숙자'를 채용한 맘씨 좋은 편의점 사장님이 떡상을 하고,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서 어렵고 힘든 상황을 용케 헤쳐나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만 있을 것 같지만, 책의 내용을 한꺼풀 벗겨내고 속살을 들춰내면 가족인데 '불화'로 인해 애간장을 태우고 속을 끓이고 마음에 상처받고 눈물마저 메마른 말 못할 사정을 간직하고서 '불행의 늪'을 허우적거리는 우리네 이웃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따뜻하다. 곰처럼 우직한 주인공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불쑥 나타나 어렵게 꼬여버린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해법)'을 툭툭 던져주기 때문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현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중이다. 5급도 아니고, 7급도 아닌, 그저 평범한(?) 9급을 말이다. 설령 합격한다고해도 주민센터에서 허드렛일이나 할 것이고, 시덥잖은 자잘한 업무지만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투철한 봉사정신'을 발휘해야만 하는 하는 대표적인 '3D 업종'인 것이 9급공무원인 것이다. 그런데도 석박사에 해외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온 '고급인재'들이 국가고시에 뛰어들어 경쟁률만 미친듯이 올려놓고 있는 것이 '노량진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왜 이런 고급인력들이 한낱 쪼잔한 업무나 하는 '쪼랩 공무원시험'에 몰려드는 것일까?

 

  먹고 사는 문제가 그만큼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란 '안정적인 돈벌이'를 하나쯤 챙기고 난 뒤에야 '인생'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국내경기 뿐만 아니라 세계경기가 침체되고 '일할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태부족인 상황이 지속되니,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나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자, 급속한 발전의 배경이 되었던 '헝그리 정신'도 고학력, 고스펙의 시대가 도래하자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 따위가 헝그리 정신을 대체하기도 했지만, 왜 유독 '청년'에게만 아픔을 감당하라고 '강요'를 하느냔 말이다. 청춘은 불타오를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인데, 가뜩이나 경기가 사그라들어 불태울 곳이 없는 청년들에게 '아픔'만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는 정말이지 노땡큐란 말이다.

 

  그런데 시현씨에게 '9급공무원'은 천직에 가깝다. 성적이 그리 우수한 것도 아니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남들이 귀찮아하는 일'도 누구보다 친절하고 성실하게 해내는 천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박사 취준생들에게 치어서 번번이 공무원시험에 낙방을 하고 있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편의점 업무가 쉬운 것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번거롭고 까다로운, 그리고 때로는 더러운(!) 일도 도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진상 손님 처지'가 그렇다. 간신히 '포스기기 사용법'을 익히고, 매장관리에 익숙해질 즈음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JS(진상) 손님'을 고객으로 맞이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고 꼬투리를 잡히면 쌍욕이 날라오고 갑질을 쳐바르기 때문이다. 하루에 8시간 이상 꼬박 한 달을 일해야 겨우 150~200만 원의 월급을 손에 쥘 수 있는 박봉인데, 초딩부터 노인까지 다채로운 'JS 손님'들이 찾아와서 속을 긁어놓기 일쑤인 것이 '편의점 알바'다. 대한민국 헌법 어디를 뒤져봐도 '친절하고 착한 편의점 알바'를 개무시해도 된다는 문구가 없는데도 '진상들'은 꼭 매너도 없이 갑질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훈계에, 으름장을 늘어놓기 일쑤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생'은 얼굴도 내놓고 다닐 수 없는 초라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 친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취업했다'고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없는 부끄러운 직업이 되고 말았다. 그런 알바생인 시현씨에게 '노숙자 출신' 야간 알바에게 업무를 가르치라는 사장의 분부가 내려왔다. 냄새도 고약하고, 말도 느리고, 말투도 어눌하다 못해 더듬거리기까지 하는 노숙자를 채용하는 것부터 의심스러운데, '가르치기'까지 하라니...사장이 살짝 돈 것도 같지만, 그래도 지시는 지시니까 부닥쳐 보기는 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잘 배운다. 물론 빠른 속도로 배우는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꼭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해내며, 진상손님을 처리(?)하는 요령까지 신박하게 보여주며 듬직한 일꾼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그래서 보기보다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줬는데, 그가 말하길, 시현씨가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어서 배우기 쉬웠단다. 시현씨가 가르쳐주면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쉽게 배울 수가 있다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시현은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나?'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가르치듯 '너튜브'에 편의점 업무(포스기 사용법) 동영상 찍어 올려보라고 권했다. 자기처럼 느리게 배우는 사람에게 '시현씨의 가르침'은 딱 안성마춤이라면서 말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속는 셈치고, 서툴지만, 동영상을 찍어 올려 보았다. 의외로 '조회수'가 가파르게 올라갔고, 고맙다는 댓글도 달리면서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편의점 점장'으로 스카웃을 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편의점을 새로 오픈하는데, 시현씨처럼 친절하고 꼼꼼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점장'이 되어, '관리'를 해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알바에서 점장으로 승진한 셈이다. 아니, 이제는 당당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찬란한 인생'이 열린 것이다.

 

  이렇게 어느 날 찾아온 '노숙자'로 인해 달라지는 인생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특히, '가족끼리'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툭하니 일러주기도 하고, 인생 자체가 '꼬여버린' 사람에겐 술 대신 옥수수수염차를 내밀며 '맑은 정신'으로 인생을 극복해보라고 응원해주기도 한다. 마치 '용한 점쟁이'라도 되는 양, 복잡하고 뒤틀린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진찰'한 다음에, '신의 손'으로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용한 의사라도 되는 양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정체는 바로 '성형외과의사'였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환자의 생명과 가족의 사랑을 외면해버린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버리고 자기 자신을 폐인으로 만들어진 불우한 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선량하고 착한 '편의점 알바'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에 '가족'보다 돈을 더 중요시했던 '나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차츰차츰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서야 '완벽'을 운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착하고 친절하며 자기보다 남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와주고 힘이 되어 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참 많다. 그러면 그런 착한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맞다. 그런 사람조차 '완벽'할 수는 없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수를 통해서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다시 말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름지기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

 

  염치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사람이 깨끗해진다. 세상이 아무리 더럽다고 해도 더러워진 손발과 얼굴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깨끗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잘못을 했다고 심하게 나무랄 것이 없다. 정작 나무랠 '본질'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마음이니까 말이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르고 뉘우치고 반성하면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부끄러움도 모르는 '몰염치'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도 갖추지 못한 말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 사이에 '염치 없는 인간'들이 종종 있다. 가족을 남보다 못하게 대하는 족속들이기도 하다. 남들 눈에는 친절하고 성실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착해보이는데, 정작 가족에게는 '인간말종'처럼 구는 썩을넘들이 있단 말이다. 그런 넘들은 차라리 '가족'을 남 보듯이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부모의 유산을 '쌈짓돈'으로 여기고, '아내의 내조'를 당연한 희생으로 여기고, '자식의 미래'를 부모의 못다한 꿈으로 보상받으려는 철부지 들이 참으로 많다. 가족으로서 '자기 역할'도 못하는 못난이들이 "가족인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면서 푸념만 늘어놓곤 한다. 정작 자신조차 '다른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면서, 자기 자신의 속상함만 내세우며 가족 전체를 괴롭하는 얼뜨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된다. 가족이니 더욱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허물까지 보여주는 사이가 '가족' 아니냔 말이다. 그 허물을 보듬어주고 아프지 않게 달래주며 행여 남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함께 감추고 묻어주는 사이가 가족이다. 그러니 가족끼린 '서로 부끄러운 사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서로 서로 도와주고 힘이 나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대화'가 필요하다. 자신의 부끄러운 속마음을 털어놓고 서로의 해결방법이 되어주며, 더러운 곳이 있다면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도와주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론, 불편해야 할 경우가 있다. 흔히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부르는 '불편한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처럼, 불편해야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가족끼리 투닥거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편한 사이일 때는 몰랐던 서로의 속마음과 속사정을 허물 없이 털어놓는 순간이 찾아오려면 '불편한' 무엇이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편한 것 중에 가장 불편한 것은 '가족'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가족을 통해서 얻는 에너지야말로 이 힘겨운 세상을 버티고 이겨내는 힘인 것이다. 믿기 힘들다고? 아직도 의심스럽다고? 누구에게 업혀본 적이 있는가? 세상 가장 불편한 자세인데도, 엄마아빠 등에 업힌 아기는 세상 모르고 침을 질질 흘리며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궁디 팡팡을 맞으면서도 골아 떨어지는 편안한 잠을 어부바 상태에서 맞이한다. 왜일까?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맡겨 놓은 '가장 불편한 자세', 업힌 사람도, 업은 사람도 모두가 힘든 그 자세를 '가족끼리'는 해준다. 그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족끼린 그러면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