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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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장황한 서론을 끝내고 '일본의 부흥'을 알리는 명치유신(明治維新, 메이지이신)이 시작된다. 하지만 일본의 부흥은 '막부의 종말'을 뜻하기도 하기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유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시작하게 되었다. 동시에 일본은 다시 '일왕제'로 되돌아가야 했기에 '또 다른 아이러니'를 낳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신지사'들이 막부의 권력을 찬탈해서 '정당한 권력'으로 되돌려놓은 곳이 하필이면 전근대적인 중앙집권제 방식인 '왕정복고'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의 왕은 전통적으로 '신의 아들'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일왕이 다스리는 일본은 '인간신(현신, 또는 천손)이 다스리는 신의 나라'였던 것이다. 일본의 부흥을 알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근대화'가 왕정복고에, 신의 나라라니...고대의 건국신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어쨌든, 일본인들은 명치유신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소설을 꽤나 좋아한다. 일본의 국운이 하늘을 찌르고 뭐든 했다하면 통하는 기세가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비록, 1945년에 패망하긴 했지만, 60년부터 90년대까지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며 미국 다음으로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기까지 일본은 최고의 20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허나 그때 쓴 운빨이 다한 것인지, 1991년부터 버블이 사그라들면서 시작한 '잃어버린 30년'째를 맞은 현재에는 영락없이 비에 홀딱 젖은 생쥐 꼴을 면치 못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새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찾을 것인가? 모쪼록 그 발판이 '우리'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그정도로 어리석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인데...

 

  다시, 명치유신으로 되돌아 간다. '조슈정벌'이 한창이던 때, 쇼군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정벌은 흐지부지 끝나고 막부는 다시금 움츠러들어 버렸다. 때를 같이 해, 일왕도 승하하게 되니, 왕위를 승계 받은 이가 바로 '명치 일왕', 다시 말해, '메이지 일왕'이다. 막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유신지사'들은 모든 권력을 일왕에게 되돌리는 '대정봉환' 계책을 막부에게 들이미니, 당장 손을 쓸 수 없는 막부는 전쟁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받아들여 '왕정복고'를 성사시킨다. 이로써 일본은 '신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명치유신'은 서서히 발효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명치유신'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성사된 것은 아니다. 친막부세력과 반막부세력의 힘겨루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반막부세력에 의해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오랜 갈등이 한순간에 쏟아지며 '신정부군'과 '반정부군'으로 나뉘어 '무진전쟁의 시작'을 알렸으며, 서양의 신무기로 무장한 '신정부군'이 막부 사무라이로 구성된 '반정부군'을 토벌하고 승리를 연이어 거두었고, 전쟁 양상은 서남 방면의 신정부군과 동북 방면의 친막부 동맹군의 대결로 이어졌으나 신정부군의 최신무기와 서양식으로 훈련된 군대를 이끌고 손쉽게 전쟁을 끝맺으니, 이른바 '막부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명치유신'은 막부가 종말된 이후에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막부가 종식을 고하기 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명치유신'은 일본에게 무엇을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겉모습만 달라진 걸까? 속마음까지 싹 개조한 것일까? 겉으로 보여지기엔 일본의 겉과 속이 모두 싹 바뀐 듯이 보인다. 서구의 근대화에 발맞춰 일본의 사회와 문화까지 빠르게 변하고, 정신까지 '개조'하여 동양적 사고관이 아닌 서양의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허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바뀐 것은 '일본의 겉모습'뿐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일본의 야만성은 전통 사무라이 복장을 하던, 서양의 신식군복을 입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전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전통적인 동양의 예법을 따르던 시절엔 '도리'와 '예법'을 그나마 따르던 것이 서양의 '이기주의'를 맛본 뒤엔 '무법천지'로 바꾸고, 국가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몰염치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는 얌생이로 완전히 돌아섰기 때문이다.

 

  일본은 철저히 깔아뭉개야 말을 듣는 족속들이다. 애매한 '판정승'으로 일본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순 없다.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패야 겨우 패배를 인정하고,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리며 다시는 고개를 빳빳히 쳐들지 않는 '굴종의 심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을 향해 '겸양'을 떨거나 '겸손한 예법'으로 염치와 도리를 가르치려 들면 주인의 등에 칼을 꼿는 배은망덕한 일을 자랑스럽게 저지르고 말 종자들인 까닭에 버릇을 고치려 들땐, 가차없고 단호하게 매를 들고, 당근을 줄 땐 '절대복종의 서약'을 맺은 뒤에 줘야 한다. 우리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정도로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웃나라에 이런 족속이 살고 있는 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본의 야만성이 '명치유신'이라는 국뽕을 만나 어떻게 변했는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허나 그러기까지 세세하고 조목조목 알아둘 필요는 있다. 역사공부의 진정한 힘은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공부를 위해서 처음엔 두루뭉술하지만 '맥락의 흐름'을 파악할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더라도, '맥락 파악'이 끝나면 중요한 사건별로 '인과관계'를 세세히 따져가면서 '미세한 흐름'까지 이해해야 진면목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는 제격이다. 비록 '만화형식'이라 그 세세함이 띄엄띄엄 나타날지라도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상식'보다는 더욱 세분화하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그리고 '세계사'를 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편년체 방식의 서술과 더불어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기사본말체 방식으로 전세계사적인 스펙트럼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기에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사'라고 소개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중역사책 가운데 이 책처럼, 청왕조의 멸망을 일찌감치 부르고 신해혁명의 프로토타입이었던 '태평천국 운동'을 자세히 펼쳐보이고, '막부의 종말부터 명치유신까지' 일본의 변천을 펼쳐보이며, 조선후기 세도정치 이후의 양상을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풀어낸 책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단언컨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면 그만큼 동북아시아 삼국의 근현대사가 엄청나게 방대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고 중대한 사건이 뻥뻥 터지는 통에 이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역사책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 시리즈는 과감히 손을 댔고, 그것도 '만화형식'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역사서술 관점이 '균형잡혀 있느냐'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저 '완간'이 되기까지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면 어떻게 해서든 다뤄져야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역사책'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두손 두발을 들며 이 시리즈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삼천포에 잠시 갔다왔는데, 암튼, '명치유신'을 통과한 일본은 새롭게 '신일본'으로 거듭났다. 아니, 이제부터는 '일본'이 아니라 '일본제국'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서구열강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열게 되었지만, 그 열강으로부터 신문물을 발빠르게 도입해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실력을 쌓은 일본은 '일본제국'으로 거듭나면서 거침없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같은 문화권'을 갖고 있는 동질적인 관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허나 '일본제국'은 첫 수부터 악수를 놓았다. 그것이 초반에는 일본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대국 전체로 보았을 때, '패착'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패착'이란 바둑에서 그 돌을 놓음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된 나쁜 수를 말한다. 일본이 아시아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한 것까지는 '아시아의 자랑'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 자랑이 끝내 서구열강 뺨칠 정도로 악랄한 침략과 약탈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패착의 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대한민국'의 막판 대역전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초반에 펼쳐놓은 대마는 '잃어버린 30년'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형국인 탓이다. 안타깝게도 그 역전극이 이 시리즈에 담기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못난 모습을 거울로 삼기에 딱 좋은 소재이니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당장은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일본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빠르게 치고 오르는 모습도 눈여겨 볼 일이다. 능력이 실력으로 확인된 다음에 그 힘을 어떻게 써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지 말이다. 적어도 일본이 간 길은 옳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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