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미워! 내책꽂이
최형미 지음, 지영이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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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맘은 그게 아닌데, 다른 사람이 내 맘을 몰라줘서 너무 속상했던 적은 없었나요? 그런데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까지 '내 맘'을 몰라주고 오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너무 속상해서 울고 싶을 심정일 겁니다. 그럴 땐 누구라도 붙잡고 엉엉 울면서 위로 받고 싶고, 억울한 사정을 이해 받고 싶고, "나는 '그 마음' 이해해. 누구라도 그런 일을 당하면 속상했을거야."라는 말을 들어야만 진정이 될 겁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선호'가 그런 속상한 상황에 처했어요. 과연 선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의 주인공 선호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학교에 가기 싫어했죠. 공부하기가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유치원에서 기역 니은 배우는 것도 얼마나 힘들어했다구요. 그런데도 날마다 똑같은 걸 배우고 또 배우고 했어요. 정말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선호니까 당연히 학교 가는 것이 정말 싫었죠. 근데 엄마가 꼬드겨서 억지로 학교에 가긴 갔는데, 학교가 좋아졌어요. 민도연 담임 선생님이 정말정말 예뻤거든요. 엄마는 화만 내고 뚱뚱해서 싫었는데, 선생님은 예쁜데다가 소리도 안 지르고..암튼, 지금까지 본 여자들 중에서 가장 예뻤어요. 그래서 학교가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긴 하지만 민도연 선생님이 계시니까 그냥 다니기로 했어요.

 

  그러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 들어 보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선호는 유치원에서 억지로 속담을 배웠기 때문에 '사공'이란 낱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손을 들었죠. 그리고 자신있게 대답했어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힘을 모으면 다 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라고요.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누가 가르쳐주었냐고 되물었어요. 선호는 혼자서 생각했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선생님이 왜 그런 뜻일거라고 생각했냐고 다시 물었어요. 그때야 비로소 선호는 "배가 산으로 오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힘을 모아서 그 힘든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은 '엉뚱한 답'을 한 선호를 혼내지 않고 선호의 마음을 헤아려주려 했던 것이고, 그 마음까지 알고 난 뒤에 반친구들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칭찬을 아까지 않았아요. 선호는 예쁜 선생님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반친구들에게 모두 알아들으라는 듯이 선생님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선호 어린이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기에 정말정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역시 학교 다니길 참 잘한 것 같다고 선호는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벌어진 사건들은 너무너무 끔찍하기만 했을 거예요. 칭찬을 들은 이후로 선호는 선생님의 수업에 열중하며 공부했는데, 그만 코가 너무 간질간질해서 손가락을 넣어 코딱지를 판 뒤에 손끝에 놓고 튕기는 것을 옆 짝꿍인 소영이에게 딱 걸린 거예요.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소영이가 수업중에 고래고래 "으아앙~ 선호, 더러워!"라고 소리를 질러버려서 엄청 창피했어요. 그걸 본 예쁜 선생님도 얼굴을 찡그리면서 선호를 흘끗 쳐다보았죠. 선호는 창피한 것보다 선생님이 자기를 더러운 학생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 너무 속상했죠.

 

  사건은 또 일어났어요. 엄마가 교실에 배식을 하러 온 날이었는데, 하필 엄마는 카페를 국자로 퍼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머리 손질을 덜 했는지 엄마 머리에 꽂혀 있던 머리핀이 그만 카레통 속으로 쑥 빠져버린 거예요. 나는 아이들이 보기 전에 얼른 손을 집어넣어 머리핀을 들어올렸지만, 정윤이가 그 장면을 보고 만 거예요. 그 정윤이는 그 소영이랑 단짝친구였거든요. 꼬딱지 판다고 더럽다고 소문을 내던 소영이 친구, 정윤이도 카레통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나를 보고서 또 '더럽다'며, 더러운 카레를 먹지 않겠다며 반친구들이 모두 들으라고 질색팔색하며 떠들어댔어요. 그 소리를 듣고 선생님이 와서 정말로 카레 속에 손을 넣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엄마에게 머리핀을 쥐어주며 "엄마, 사실은..."이라고 진실을 얘기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내 말을 가로채더니 "아니, 얘가 더럽게 왜 그랬어?"라고 내 입막음을 하고, 선생님에게는 "얘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왜 그랬나 몰라요. 오호호~"라고 얼버무리고 만 거예요.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데...

 

  선호는 속상했어요. 더럽다고 소문을 낸 것보다 선생님이 나를 오해하는 것이...짓궂게 장난질이나 치고 더러운 행동도 서슴지 않게 하는 '나쁜 어린이'로 오해하는 것이 정말정말 싫었거든요.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또 생겼어요. 미술시간이었는데, 손에 물감을 칠해서 커다란 스케치북에 찍으며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었어요. 정말 신났죠. 그런데 선생님이 내 옆으로 다가와 건너편에 있는 친구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였어요. 선생님의 엉덩이 부위에 뭔가 붙어있는 걸 봤어요. 그래서 누가 먼저 보고 예쁜 선생님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떼어줄려고 했는데, 그 순간 선생님이 움직인 거예요. 내 손은 그만 선생님의 엉덩이를 만지게 되었구요. 그러자 예쁜 선생님이 비명을 질렀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죠. 선생님의 예쁜 원피스에 선호의 손도장이 선명하게 찍혔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왜 화가 난 걸까요? 화가 난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속상하긴 할 것 같아요. 선생님만큼 예쁜 옷을 망쳤으니까요. 하지만 옷은 다시 빨면 깨끗해질텐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학교에 엄마가 찾아오셨고, 엄마에게 선생님 옷을 깨끗하게 빨아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다짜고짜 내 머리에 꿀밤부터 놓았어요. 얼마나 아팠는지 '빨래'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죠. 그리고 연신 선생님에게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하시는 거예요. 그날 저녁에는 아빠에게 불려갔어요. 근데 아빠도 한숨만 푹푹 쉬면서 뭐라 말씀을 못하시는 거예요. 그러다 한 말씀 하셨죠. "쬐끄만 게 벌써...너를 어쪄면 좋으냐"고요. 선생님 옷에 붙은 걸 떼려는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일까요? 아무도 제 맘을 몰라줘서 너무 속상해요.

 

  그 뒤로도 사건은 계속 이어집니다. 과연 선호는 이대로 말썽쟁이가 되고 마는 걸까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선호는 '나쁜 어린이'로 찍히고 마는 걸까요? 누가 우리 선호 마음을 좀 잡아주면 좋겠어요. 이대로 계속 선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 들테니까요. 하지만 독자들은 알고 있겠죠. 우리 선호가 정말 착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요. 비록 엉뚱한 사건이 벌어져서 선호를 오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언젠간 그 마음이 알려져서 오해가 풀릴 날이 올 거예요.

 

  순수한 마음은 종종 오해를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을 알아봐주기 전에 '의심'부터하기 마련이거든요. 세상이 그렇답니다. 참으로 더러운 세상이지요. 그렇다고 순수한 마음이 더러운 세상에 질 수는 없어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알 거든요. 더러운 흙탕물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라는 것을요. 나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한방울 한방울 더해주면 아주 조금씩이지만 더러움이 씻겨나가고 점점 맑아지게 될 거라는 것을 말예요.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선호도 삐뚫어져서 말썽쟁이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어쩌죠. 또 다시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버릴 것 같아요. 우리 착한 선호를 위해서 '변호'를 준비해야 겠어요. 예쁜 선생님이 선호편이라면 정말 힘이 날텐데 말이죠. 과연 선생님은 선호의 착한 마음을 알아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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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온다, 우주 과학 와이즈만 미래과학 6
김성화.권수진 지음, 김영곤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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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호의 발사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우주강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이제 달탐사를 비롯해서 달착륙에도 성공을 해서 우주에서 펼치게 될 미래경쟁력 대결에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가 우주에 대한 관심을 부쩍 쏟아야 된다. 옆나라 중국에서는 교과서 제목조차 <우주지리>라고 지어놓고 우주에 대한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우주를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삼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한민국은 절대로 질 수 없다. 반만년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중국에 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중국이 조그만 한국을 그토록 질투하고 시샘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옆나라가 그러거나 말거나 모든 인류의 공영을 위해서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평화를 위한 우주개발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은 반드시 해낼 것이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주에 대한 상식을 더욱 넓혀야 한다.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펴낸 책이긴 하지만 청소년이 읽어도 충분하고, 일반독자들이 읽어도 유익한 '과학시리즈'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우주천문, 로켓공학, 우주탐사, 태양계상식, 그리고 외계생명체의 비밀을 밝혀줄 '세티 프로젝트'까지 우주에 관한 상식을 모두 담아 놓은 듯한 방대한 내용을 고르고 골라서 간추려 어린이들이 읽어도 흥미롭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너무 방대한 내용을 한 권에 담으려다보니 '수박 겉핥기'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점이다. 그래서 조금 수준 높은 독자들이 읽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우주상식'이 그만큼 방대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했던 나라였던지라 '우주개발'과 같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천문학 같은 '기초과학'에 투자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선진국인 미국이나 러시아(구 소련) 같은 나라처럼 기초과정부터 차근차근 밟을 수 없었고, 인도나 중국과 같이 후발주자들처럼 막대한 자본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력 또한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항우연' 연구자들의 기술습득력은 어느 나라도 쉽게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으니 말이다. 기존의 우주강대국들이 바짝 긴장을 할 정도로 말이다.

 

  이제 겨우 '후발주자'라고 해서 아쉬워 할 것도 아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지구인이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 고작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넓고 깊은 우주를 지구인이 탐사한 장소 또한 지구의 위성인 달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주강대국의 수준이 아직 여기까지였던 셈이다. 오죽했으면 우주를 가득 채운 물질을 '암흑물질', 우주의 근원을 '암흑에너지'라고 부르겠냔 말이다. 아직까지도 우리 인류는 우주에게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이제 막 우주에 발을 딛는 '후발주자'라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 곧 실현할 '달탐사'와 '달착륙'에 당당히 성공한다면, 까마득히 멀리 앞서 간 것 같았던 우주강국들과 맞먹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탄력으로 계속 밀고 나간다면 우주개발 선도국이 되는 것도 더는 꿈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이 참에 '우주'에 대한 상식과 교양을 넓히는 독서를 하고자 목표를 세웠다. 예전에 읽었던 칼 세이건의 책들을 리뷰하면서 말이다. 이제 다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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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인간 - 인공지능이 인간을 낳는 시대, '인간다움'에 대한 19가지 질문
이미솔.신현주 지음, 이성환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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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다. 알파고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인공지능'은 단박에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것으로 보여질 정도였고,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당장 시작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보면, '인공지능'은 3~4세 정도의 어린이 수준의 뇌와 같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걸음마 단계라는 말이다. 그러나 2045년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는 '특이점'으로 꼽고 있는 과학자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의 대응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아이가 눈 깜짝할 새에 훌쩍 자라는 것처럼 '인공지능'에 관한 기술도 그렇게 껑충 성장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무엇이고,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를 대비해 그에 걸맞는 질문을 던져봄직 하다. 이 책 <4차 인간>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첫 번째는 '우리는 영원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인간은 기계인가?', 마지막으로는 '어떻게 기계와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질문을 통해서 뭔가 감이 잡히시는가? 맞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의 교류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기술'이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을 개발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늦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탄생하였고, 인공지능은 그동안 우리가 '노예'처럼 부리던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어쩌면 '주인'으로 섬겨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척 혼란스러울테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다.

 

  먼저,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이미 개발되었다. 엘런 튜링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만든 '보편기계'가 컴퓨터의 전신이었고, 그렇게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인공지능'에 대한 구상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인공지능'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럽게 개발되었단 말이다. 하지만 잘 되어가던 '인공지능 기술'은 난관에 봉착했다. 인간은 쉽게 배우는 것을 인공지능은 대단히 어렵게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수천 배나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컴퓨터가 막상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아니 '개와 초코칩 쿠키'를 구분하기 위해 수천만 장의 사진을 서로 비교대조해야 겨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 어렵게 판단을 내리고도 '오류투성이'였고 말이다.

 

  그렇게 '인공지능 기술'은 답보상태에 머물다가, 구글의 '알파고'가 탄생하면서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라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딥 러닝'이었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니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언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수 있는지로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지게 되었다.

 

  한편, 인간은 불멸을 꿈꾸게 되었다. 진시황이 꿈꿨던 불로장생의 실현과는 사뭇 다른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으로 옮겨 인간의 몸을 버리고 기계의 몸을 얻어 '기억'만을 온전히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생전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목록'으로 만들고, 이를 '저장'한 뒤에, 인공지능 시스템에 탑재하고서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를 때마다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였다. 인공지능은 아들의 질문과 대화에 걸맞는 '아버지의 말씀'을 적절히 골라서 응답해주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수준의 대화만으로도 아들은 만족할 수 있었단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인공지능에 완벽하게 담을 수도 있을까? 과학자들은 가능하다고 본다. 미래에는 인간의 뇌를 대신해서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신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에는 '냉동인간 기술'로 부활과 영생을 꿈꿨다면, 이제는 '인공지능 기술'로 영생..아니 불멸에 도전하는 셈이다. 아직은 '기계의 몸'으로 대체하겠지만, 생체공학, 유전공학이 발달한 어느 시점에서는 '인간의 몸'까지 완벽히 재생가능해져서 완벽한 불멸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신의 섭리'에 어긋나게 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죽지 않는 인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둘 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자나, 권력가 등 '선택받은 인간'만이 불멸하게 될 세상이 도래하게 되면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몸'이 아닌 '기계의 몸'으로 불멸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남겨지는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기계의 몸'을 빌린 것이라면 '인간답지' 않은 것일까? 아니, 심지어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인공지능'으로 복제가 가능해진다면, 복제된 인공지능은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실제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면 '인간의 판단능력', 다시 말해, '자유의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저 '뇌의 신호'에 의해 작동하는 생체기계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실험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의 머리에 '전기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서 '사물을 인지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과학자들이 예상하기로는 '선택(자유의지)-뇌세포신호-행동' 순서였으나, 실험결과는 '뇌세포신호-선택(자유의지)-행동' 순서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세포신호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뇌세포신호'에 따라 조작되는 생체기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뇌가 보낸 전기자극'에 따르는 행동체계였던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생각을 '인공지능'에 대입해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공지능은 애초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이 '신호자극'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곧, 기계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이런 실험결과에 의문을 갖는다. 과연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느냔 것이다. 우리는 '기계'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없기 때문이냐는 되물음이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은 '기계'와 다름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실험과정에 오류나 모순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인간을 '뇌'로 한정한 것에 맹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실험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상당하다고 전한다.

 

  마지막 질문은 '공존'이었다. 이제와서 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다. 이미 구현된 기술은 정체될지언정 퇴보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공존'일 것이다. 기술을 배제하고 살 수 없는 현대인은 기술을 발전시켜 더욱 유용하고 편리하게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순수한 인간만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두렵기 그지없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공존'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데 어울려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꿔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계를 '노예'처럼 부려먹기 일쑤였지만, 미래에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평등한 '친구'로 지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인간이 가진 '사물의 의인화' 능력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형 로봇과 동물형 로봇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인간형 로봇을 발로 차 넘어뜨리거나 동물형 로봇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엔 '거울 신경세포'가 있어서, '움직이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곰모양의 젤리를 머리부터 뜯어먹거나 손발부터 물어뜯어 씹어먹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형, 동물형 로봇처럼 움직이는 대상은 살아있는 생물로 감정을 이입해서 불쌍하다고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이런 '인공지능 로봇'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 인간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인공지능 로봇'에게 노예가 전락한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로 '인공지능'을 친구이자 동료로 여기며 서로 보살펴주는 공존을 꾀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갈림길에 섰다. 새롭게 등장한 '인공지능 로봇'과 더불어 살아가는 '4차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비관적인 상상의 결과처럼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양상(전쟁도 있겠지만, 일자리 쟁탈전 따위도 포함)으로 펼쳐지는 비극을 연출할 것인지 말이다. 더 끔찍한 상상은 '인공지능이 된 인간'이 인간을 절멸하고, 나머지 인간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당신이 상상한 미래에는 어떤 인간이 살고 있을까?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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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온다, 인공 지능 와이즈만 미래과학 5
김성화.권수진 지음, 이철민 그림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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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가 온다' 시리즈가 벌써 10권이 넘게 출간되었다니, 처음 '로봇'편이 나왔을 때 설레었던 감상이 무량해질 만큼 많이 나왔다. 서둘러 다시 읽어 봐야겠다. 내가 이 시리즈를 주목했던 이유는 '어린이과학책'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빼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과학책이 어려운 까닭은 너무 어려워서도 안 되고, 너무 쉬워서도 안 되며, 전문적이지만 너무 전문적이면 안 되는 까다로운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린이독자의 수준'이 천차만별인 까닭에 어느 정도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아 출간할지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장르다. 그런데도 '미래가 온다' 시리즈는 그 까다로운 수준을 적당히 잘 맞춘 듯 해서 '어린이'가 읽기에도 좋고, '청소년'이 읽어도 무난하며, 학부모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권해주기도 참 좋은 과학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과학적 교양'을 담뿍 길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니 강추하는 바다. '학습과학만화'보다는 조금 더 어려운 난이도에 도전하고 싶은 어린이들에게 권해주면 딱 좋을 책이고, '만화형식'이 아닌 '전문서적'을 읽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에게 권장해도 좋을 책이다. 칭찬은 이쯤하고, '인공지능'에 대해서 썰을 풀어보자.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과 승부를 겨뤄 '4:1의 승리'를 거둔 알파고의 소식은 '인공지능'의 실현이 한층 가까워졌다는 증거였으며, '4차 산업혁명'이 당장 펼쳐지게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므로 '로봇'이 인간이 하기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대신해주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기 귀찮고 복잡한 '계산'을 대신해주는 것을 넘어서 '생각(판단)'마저 대체해버리는 세상을 실현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노동과 생각(판단)까지 다 로봇과 인공지능에게 떠넘기게 되니 마냥 편하게 쉬고 놀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문제가 생겼다. 아니, 아직 '인공지능'이 실현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어떤 문제냐 하면, '일자리'를 빼앗길 것 같다는 문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소비도 하고, 세금도 내며,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한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이런 세상은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것들을 대신해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면,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지게 될까?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놓았다. 낙관적인 결론과 비관적인 결론, 두 가지로 말이다. 먼저 낙관적인 결론은 이렇다. 2차 산업혁명으로 사람의 노동을 대신할 '기계'가 등장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빼앗겼지만, 그 '기계'의 등장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어 사람들의 '노동'은 여전히 필요했고, 더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니, 4차 산업혁명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비관적인 결론도 있다. 지금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각한데, 인공지능이라는 '노동 싹쓸이'가 등장하는 순간, 저임금노동자는 설 자리를 잃고 더욱 빈곤한 삶에 처해지게 될 것이며, 일부 '부자'들만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며 더욱 부유하고 편리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지극히 극단적인 결론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허나 깊이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과연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인간을 '대신'할 정도로 똑똑한 인공지능의 탄생을 앞당길지, 뒤로 미룰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그 '순간'을 2045년으로 딱 꼬집어 말하고 있지만, 개발 속도라든지, 사회시스템 미비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교양시민'이라면 인공지능에 대한 상식을 더 많이 키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은 '컴퓨터'가 없었다면 실현불가능한 꿈에 불과했을 것이다. 우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힘든 노동을 대신할 '로봇'을 꿈꿨지만, '저절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간단히 해낼 동작도 로봇은 '수많은 계산(연산)'을 한 뒤에 '제어시스템'을 갖추고서야 겨우 '한 동작'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계산이 엄청나게 많은 데이타를 바탕으로 하며, 순간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해내야 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 방대한 계산을 일일이 하려다간 머리가 터져 죽을 수도 있었겠지만, '컴퓨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컴퓨터의 발명은 '엘런 튜링'이라는 천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튜링은 '보편기계'라는 장치를 만들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를 풀어내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불우하기만 했다. 세상은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간절히 요구했지만, 그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동성애자(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가 구한 세상은 비정하게 그를 '범죄자(당시, 영국사회는 동성애를 범죄로 단정)'로 매장해 자살로 몰아세웠다. 이토록 물색없는 세상은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보편기계(컴퓨터)'의 활용가치를 깨닫고, 각국이 적극적인 개발에 나서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튜링은 '컴퓨터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튜링이 상상한 것은 '컴퓨터'뿐이 아니었다. 복잡한 계산만 해내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판단)까지 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을 구상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복잡한 계산'만으로도 벅찼기에 '인공지능의 실현'은 까마득하게 먼 훗날의 일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딥 러닝'의 실현으로 인해 더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딥 러닝'의 핵심은 '빅데이터'의 실현이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건이 바로 구글사의 '알파고'였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라는 날개를 만나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 더 나아가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바지 단계까지 구현하며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AI)로봇'이 등장할 날(특이점)을 2045년으로 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인간의 뇌(사고능력)를 본떠서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인간의 아이가 학습하는 과정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이라는 능력을 활용해 '비슷한 것'끼리 한데 묶어서 퉁쳐버리는 능력이 뛰어났지만, '인공지능'은 추상하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주어진 데이터'를 끝없이 분석처리한 뒤에야 이것과 저것이 서로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결정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단순반복'이 힘들지만, '인공지능'은 단순반복이 너무 쉽고, 인간은 상상하고 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공지능'은 입력된 데이터 '그 이상의 것'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단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45년쯤에는 이런 '인공지능의 난관'을 더 많은 '빅빅데이터'를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처리해서 '더스마트인공지능'으로 인간보다 더 지능적인 인공지능으로 태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일컫는데,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인류 파멸'로 이끄는 인공지능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강한 인공지능의 탄생'을 두려운 시선으로 보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희망적인 메시지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과학자들도 상당하다.

 

  암튼,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이 스마트폰처럼 흔해지 날이 올 것은 틀림없다. 좋든 싫든 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동을 넘어 생각까지 '대신'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게 된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마냥 '인공지능이 주는 문명적 혜택'을 받으며 먹고 놀기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노래도, 춤도, 연기도 '인공지능 가수와 댄서, 연기자'가 대신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판사, 검사, 변호사, 심지어 의사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텐데,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과연 '인간의 가치'는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여겨졌는데, 그런 '인간'을 대신할 인공지능이 등장하게 된다면, 지구의 주인공 자리는 '인공지능'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마냥 두려워서 뒷걸음을 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지금도 '사물인터넷'과 '가상현실'이라는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TV, 전기밥솥, 세탁기, 청소기, 심지어 냉장고까지 인간에게 말을 걸고 오늘 무얼 먹을지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딱! 이정도 수준까지만 허용하고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좀더 발전시켜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서 골라주는 똑똑한 인공지능을 원하는가? 그렇게 길들여진 인간은 끝내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아닐까? 고민의 끝은 또 다른 고민을 만들어내며 결국 '끝없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마저 인공지능에게 내어준다면(강한 인공지능의 탄생),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가 온다' 시리즈는 이런 상상의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재미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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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 잘하고 싶어 시작을 망설이는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진짜 완벽주의 활용법,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윤닥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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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 '완벽주의'를 강요받고 있다. 완벽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성장하게 된 '원동력'이기도 했고, 선진국들 가운데서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민주주의'를 확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우리 사회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정에 대한 완벽주의, 정의에 대한 완벽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들은 제외다. 정말이지, 후진적이고 구태스러운 낡은 정치인들만 싹 갈아치우고 나면 대한민국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1등 국가이자, 모범국가가 되어 전세계인을 선도하는 멋진 나라가 될 것이다. 암튼,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완벽주의는 심리학용어는 아니란다. 완벽주의가 병적인 증세는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주의'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다치는 일을 종종 당하고 있기에 '심리학자'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한다. 흔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결벽증'과 '강박증' 등과 같은 질병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완벽주의'는 개인적인 원인에서든, 사회적인 문제에서든 '이상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단다.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발전상을 가져온 원동력이 어쩌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된 것일까.

 

  남들 앞에만 서면 심장이 요동을 치고 손발이 벌벌 떨리며 땀을 비에 흠뻑 맞은 듯 흘리는 경험을 하면 '무대 공포증'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그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은 연습과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이겨보려고 하지만, 더 많은 연습, 더 많은 경험이 더 큰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단다. 왜 그럴까? 이들을 지켜보고 분석한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완벽해지려는 마음가짐'이 더 많은 떨림과 불안, 긴장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었단다.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공황장애, 강박장애, 식이장애, 번아웃 등을 의심하며 병원을 찾아오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완벽주의'에서 찾을 수 있더란 말이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주위에서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들이 더욱더 완벽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이나 완벽하지 못한 '현재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을 세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모습 따위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치며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강요하듯 권장하기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병적인 증세로 보일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며 더욱더 정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만다. 물론, 정반대의 양상도 있다. 정말 내노라할 정도로 대성공을 한 인물이 자신의 성공비결은 '완벽주의'에 있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인터뷰하는 모습을 정말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는 이런 '완벽주의'를 권장하며, 너희가 아직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체크리스트와 계획서를 들이밀면서 '완벽한 성공비법'에 어서 승차하라고 손짓한다.

 

  이렇듯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두 얼굴의 모습으로 늘상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도 '완벽주의'를 마음의 병으로 단정짓지 못하고, '관찰'만 하고 있는 셈이란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완벽한 사람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뭐든 완벽하려고 들기보다 '즐기는 사람'이 가장 성공하는 법이라고 말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성공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고, 성공에 이르는 길도 달라야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성공을 향해 성장하는 이들에게 '완벽'을 강요하고,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완벽주의를 강요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완벽'이 필요한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테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험천만한 공사현장이나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한순간의 방심이 대형재해를 일으키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늘 '완벽'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긴장된 채 8시간을 근무를 하면 '5일 근무'가 아니라 하루만 지나도 녹초가 되어 다음날 근무를 정상적으로 해낼 수 있는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충분한 휴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완벽한(?) '교대 근무'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강행군' 뒤에 꿀맛 같은 '휴식'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리 언성을 높이냐고? 바로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루 9시간 근무에 1시간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오후에 한 번씩 20분 몰아서 휴식을 하는 방식으론 정상적으로 근무를 이어가기 힘들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법정근로시간'에 저촉되지 않기에 합법이라는 것이 문제다. 하긴, 대통령이 주당 120시간 근무(주5일근무 기준, 24시간 노동)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마당에 뭔들...쿨럭쿨럭

 

  암튼,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완벽주의'를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인생은 즐겁다는 본을 보여줄 때란 말이다. 더는 '네가 가난한 이유가 게을러서야'라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적당히 게을러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들조차 '여유'를 부릴 때 더 멋져 보인다. 그게 황새여서 그럴까? 뱁새 주제에 감히 황새처럼 여유를 부릴 생각을 하는 것이 가당찮아 보이는가? 황새가 유유자적하며 시냇가를 휘적휘적 걸어갈 때, 뱁새는 조막만한 날개를 부지런히 퍼덕여서 하늘을 날며 쫑알거리면 된다. 그게 더 뱁새다운 '라이프 스타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왜 뱁새에게 짧은 다리를 원망(?)하게 만들며 가랑이 찢어지도록 다리를 놀리라고만 강요하는가 말이다.

 

  또한,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성공만 하며 빠르게 출세를 한 이들이 '단 한 번의 실패'로 심한 좌절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보다는 '칠전팔기'를 외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깨달은 이들이 성공가도를 탄탄하게 다지며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기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나온 것일테다. 마찬가지로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거나 너그럽게 대하는 환경속에서 자란 아이가 큰 실패에도 주눅들지 않고 재기에 성공하며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는 인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그렇다. 과학실험은 수많은 실패 위에 '단 한 번의 성공'을 쌓아올려 '과학혁명'을 이루는 법이다. 이처럼 실패와 실수의 저변을 깔아두어야 빛나는 성공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비단, 과학에서만 통용되는 성공비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 '어떤 유형의 완벽주의자'인지 체크하고, 유형별로 자신의 완벽을 다스리고, 완벽을 내려놓는 방법을 제시하며 '심리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허나 진짜 '완벽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스스로 체크하는 것이 적절치 않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체크'하기에 앞서, 완벽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먼저 인지하고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헤집듯이 분석하는 내용을 읽다보면 막상 '완벽주의자'들은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 역시 꽤나 '완벽주의', 아니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관리에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뭘 할 때마다 '강박증세'에 시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려놓기'를 실천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늘 부족한 '무엇'을 찾으며, 그것을 채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면서 고쳐지지 않는 단 하나가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완벽한 모습도 '나'이고, 쫌 부족한 모습도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만 잊지 말자. 그리고 늘 완벽할 수도 없다. 긴장의 끈을 조금쯤 느슨하게 잡고 있어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여유'를 부리면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쌓이면 문제가 발생해도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고, 문제가 생긴 다음에 해결해도 전혀 늦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완벽한 사람'이란 문제를 하나도 발생시키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생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잘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슨한 완벽주의' 또는 '여유만만 완벽주의자'가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가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완벽주의는 모두 나쁜 것이 아니란다. 완벽해지려 할수록 한 텐포 '쉼'을 가질 여유를 가지려 노력하고, '긍정적인 완벽주의'도 얼마든지 있음을 잊지 말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 다가올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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