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인간 - 인공지능이 인간을 낳는 시대, '인간다움'에 대한 19가지 질문
이미솔.신현주 지음, 이성환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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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다. 알파고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인공지능'은 단박에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것으로 보여질 정도였고,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당장 시작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보면, '인공지능'은 3~4세 정도의 어린이 수준의 뇌와 같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걸음마 단계라는 말이다. 그러나 2045년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는 '특이점'으로 꼽고 있는 과학자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의 대응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아이가 눈 깜짝할 새에 훌쩍 자라는 것처럼 '인공지능'에 관한 기술도 그렇게 껑충 성장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무엇이고,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를 대비해 그에 걸맞는 질문을 던져봄직 하다. 이 책 <4차 인간>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첫 번째는 '우리는 영원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인간은 기계인가?', 마지막으로는 '어떻게 기계와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질문을 통해서 뭔가 감이 잡히시는가? 맞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의 교류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기술'이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을 개발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늦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탄생하였고, 인공지능은 그동안 우리가 '노예'처럼 부리던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어쩌면 '주인'으로 섬겨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척 혼란스러울테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다.

 

  먼저,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이미 개발되었다. 엘런 튜링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만든 '보편기계'가 컴퓨터의 전신이었고, 그렇게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인공지능'에 대한 구상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인공지능'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럽게 개발되었단 말이다. 하지만 잘 되어가던 '인공지능 기술'은 난관에 봉착했다. 인간은 쉽게 배우는 것을 인공지능은 대단히 어렵게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수천 배나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컴퓨터가 막상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아니 '개와 초코칩 쿠키'를 구분하기 위해 수천만 장의 사진을 서로 비교대조해야 겨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 어렵게 판단을 내리고도 '오류투성이'였고 말이다.

 

  그렇게 '인공지능 기술'은 답보상태에 머물다가, 구글의 '알파고'가 탄생하면서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라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딥 러닝'이었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니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언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수 있는지로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지게 되었다.

 

  한편, 인간은 불멸을 꿈꾸게 되었다. 진시황이 꿈꿨던 불로장생의 실현과는 사뭇 다른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으로 옮겨 인간의 몸을 버리고 기계의 몸을 얻어 '기억'만을 온전히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생전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목록'으로 만들고, 이를 '저장'한 뒤에, 인공지능 시스템에 탑재하고서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를 때마다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였다. 인공지능은 아들의 질문과 대화에 걸맞는 '아버지의 말씀'을 적절히 골라서 응답해주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수준의 대화만으로도 아들은 만족할 수 있었단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인공지능에 완벽하게 담을 수도 있을까? 과학자들은 가능하다고 본다. 미래에는 인간의 뇌를 대신해서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신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에는 '냉동인간 기술'로 부활과 영생을 꿈꿨다면, 이제는 '인공지능 기술'로 영생..아니 불멸에 도전하는 셈이다. 아직은 '기계의 몸'으로 대체하겠지만, 생체공학, 유전공학이 발달한 어느 시점에서는 '인간의 몸'까지 완벽히 재생가능해져서 완벽한 불멸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신의 섭리'에 어긋나게 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죽지 않는 인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둘 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자나, 권력가 등 '선택받은 인간'만이 불멸하게 될 세상이 도래하게 되면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몸'이 아닌 '기계의 몸'으로 불멸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남겨지는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기계의 몸'을 빌린 것이라면 '인간답지' 않은 것일까? 아니, 심지어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인공지능'으로 복제가 가능해진다면, 복제된 인공지능은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실제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면 '인간의 판단능력', 다시 말해, '자유의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저 '뇌의 신호'에 의해 작동하는 생체기계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실험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의 머리에 '전기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서 '사물을 인지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과학자들이 예상하기로는 '선택(자유의지)-뇌세포신호-행동' 순서였으나, 실험결과는 '뇌세포신호-선택(자유의지)-행동' 순서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세포신호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뇌세포신호'에 따라 조작되는 생체기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뇌가 보낸 전기자극'에 따르는 행동체계였던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생각을 '인공지능'에 대입해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공지능은 애초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이 '신호자극'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곧, 기계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이런 실험결과에 의문을 갖는다. 과연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느냔 것이다. 우리는 '기계'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없기 때문이냐는 되물음이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은 '기계'와 다름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실험과정에 오류나 모순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인간을 '뇌'로 한정한 것에 맹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실험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상당하다고 전한다.

 

  마지막 질문은 '공존'이었다. 이제와서 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다. 이미 구현된 기술은 정체될지언정 퇴보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공존'일 것이다. 기술을 배제하고 살 수 없는 현대인은 기술을 발전시켜 더욱 유용하고 편리하게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순수한 인간만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두렵기 그지없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공존'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데 어울려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꿔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계를 '노예'처럼 부려먹기 일쑤였지만, 미래에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평등한 '친구'로 지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인간이 가진 '사물의 의인화' 능력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형 로봇과 동물형 로봇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인간형 로봇을 발로 차 넘어뜨리거나 동물형 로봇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엔 '거울 신경세포'가 있어서, '움직이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곰모양의 젤리를 머리부터 뜯어먹거나 손발부터 물어뜯어 씹어먹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형, 동물형 로봇처럼 움직이는 대상은 살아있는 생물로 감정을 이입해서 불쌍하다고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이런 '인공지능 로봇'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 인간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인공지능 로봇'에게 노예가 전락한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로 '인공지능'을 친구이자 동료로 여기며 서로 보살펴주는 공존을 꾀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갈림길에 섰다. 새롭게 등장한 '인공지능 로봇'과 더불어 살아가는 '4차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비관적인 상상의 결과처럼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양상(전쟁도 있겠지만, 일자리 쟁탈전 따위도 포함)으로 펼쳐지는 비극을 연출할 것인지 말이다. 더 끔찍한 상상은 '인공지능이 된 인간'이 인간을 절멸하고, 나머지 인간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당신이 상상한 미래에는 어떤 인간이 살고 있을까?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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