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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3의 비밀 ㅣ 우리 문화 속 수수께끼 1
김종대 지음, 이부록 그림 / 사파리 / 2021년 3월
평점 :
그림책은 짧은 만큼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읽을수록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는 재미가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서지도사' 교육을 받을 적에 선생님께서 이르기를 "하루 날을 잡아 가까운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그림책> 3~40권씩 후루룩 읽으며, '책의 진면목'을 읽어내는 힘을 길러 보세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실제로 도움도 참 많이 되는 책읽기 방법이었다. 그렇게 서점에 쭈그려 앉아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것으로 한 권쯤 사서 '책 읽은 값'을 치루면 출판시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요즘 책값 너무 비싸서, 나는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쿨럭쿨럭
암튼, 이 책은 '우리 문화 속 수수께끼'라는 주제로 4권을 펴낸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숫자 3'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물론 '개정판'이다. 책의 내용은 각각 '우리 문화 속 전래이야기', '우리의 얼과 혼, 그리고 전통 신앙', '우리 민족의 농사이야기, 24절기', '우리 민족의 상징, 용'을 담아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깊이 다루진 않았지만, 담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담아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시리즈였다. 이는 4~50년 전만해도 우리 나라가 '농촌사회'였기에 우리의 오랜 전통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데 비해, 오늘날에는 산업화를 넘어 첨단정보사회를 지나 '4차산업혁명'이 일궈낼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할 시점에 다달은 대한민국의 전통문화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기에 의미심장한 결의마저 느껴지게 된다. 과연 우리 나라는 '전통문화'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초고속으로 성장발전하였다. 그래서 더욱 다른 나라의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전통문화가 심하게 훼손하고, 빠르게 잊혀지고 있는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정말 이대로 전통문화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반가운 일일까? 아직도 초강대국 지위를 놓지 않고 있는 미국이 가장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유럽의 유구한 전통문화'다. 미국 사람들이 지금도 고풍스런 영국의 전통과 품위 있는 프랑스 예법에 경외심을 갖고 자신들의 '패스트 문화'를 부끄러워하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심지어 헐리우드 SF영화에서조차 '전통의상'은 죄다 중세유럽풍이거나 중동과 동양의 의상을 베껴 입고서 '영어'만 나불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전통문화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내세울 전통문화가 무궁무진할 따름이다. 그러니 전통문화는 모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도록 '농경문화'를 간직해왔고, '한자문화'로 기록했으며, 독특한 '세 박자의 흥'을 가진 문명국이란 사실을 점차 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은 '농사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도 현대의 농촌사회는 빠르게 고령화, 서구화 되어 '전통문화'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한자'는 중국만의 문자라는 착각에 빠져 '우리의 기록문화'마저 중국의 것을 기준으로 삼는 얼치기 상황에 빠졌다. 또한,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조차 '네 박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독특하게 '세 박자 장단'에 맞춰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노래와 춤을 만끽하는 흥과 재주를 갖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의 먹거리 독립을 위해서라도 '농경문화'는 잊혀져선 절대 안 된다. 또한 '한자'는 중국의 것이 아니라 2000년 동안 우리가 갈고 닦은 '우리 글'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우리가 '한글'을 유용하게 쓰고 있지만, 우리의 기록문화가 대부분 '한자'로 써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 기록을 '중국이나 일본의 잣대'로 해석하지 말고, 우리 식으로 해석해나가야 제대로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흥을 돋우는 '세 박자'는 이제 전세계 한류열풍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아주 뜻 깊은 일이란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 '세 박자'에 담긴 비밀인 '숫자 3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숫자 3'을 좋아하냐면, 뭐든 세 번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삼 세 판'은 오랜 옛날부터 국룰이었다. 삼족구, 삼족오, 삼두매 등 '다리(머리)가 셋 달린 동물'은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어 온갖 액운을 막는 부적에 쓰였을 뿐 아니라 나라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외적과 싸우는 전쟁에 나설 때 '우리 민족'을 뜻하는 상징으로 쓰이며 이마나 가슴팍, 그리고 깃발에 수를 놓아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고 적들을 벌벌 떨게 만들 정도로 용맹을 떨치기도 했다. 더구나 여러 신들 가운데 집을 지키는 성황신, 풍년을 바라는 토지신, 액운을 막는 여역신 등 '세 신'을 정성껏 모시는 풍습과 아이를 점지해주고 건강하고 복을 빌어주는 '삼신할매'도 세 명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죽 좋아하면 '셋째 딸'은 심성도 곱고 집안에 액운을 막아주며 복을 불러온다하여 얼굴도 보지 않고 데리고 온다고 했을까. 그 덕에 전국의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숫자 3'이 좋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 민족이 숫자 3에 미춰~버리는 끝판왕은 다름 아니라 '단군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부인(보통 칼, 방울, 거울이라 일컫는 우리 민족의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삼 천 명의 신하와 함께 태백산 정상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세우고 나라를 다스렸으니, 우사, 운사, 풍백는 날씨를 관장해 농사를 지으면 해마다 풍년이었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비니 해가 미치지 않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백 일을 버티면 된다고 말하니,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곰은 '삼칠일(21일)'만에 어여쁜 여인으로 변했으니, 인간으로 변한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더라... 여기서 세 가지 신물, 삼 천 명의 신하, 세 명의 신, 삼칠일 등은 모두 '숫자 3'과 연관이 있다.
이를 '중국의 음양설'에서는 남자는 1, 여자는 2, 남자(1)와 여자(2)가 혼인하여 낳은 아이는 3이라 하여 '숫자 3'을 완벽한 수라고 해석하였다. 우리도 이렇게 해석한 중국과 오래도록 이웃하고 있으니, 우리의 '음양오행설'에서도 '숫자 3'은 신비한 힘을 가진 수로 이해하고 있다. 허나 그런 중국이 '숫자 3'을 완벽하다면서도 굉장히 꺼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중국에서 '세 박자'는 죽음을 뜻하곤 한다. 왜? 이는 '숫자 3'인 한민족과 연관이 깊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황제(신화속 삼황오제 가운데 '황제 헌원씨'를 말한다)'와 치우(동이족의 전쟁신)가 오랜 전투를 하였는데, 황제가 치우에게 번번히 지기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마지막 전투에서 황제가 안개를 뿌려서 치우를 무찔렀다고 전하는데, 그 뒤로 황제는 해마다 동쪽바다에 직접 행차하여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잘난 한족이 이겨놓고서 왜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는 둘째치고, 이토록 황제를 곤혹스럽게 만든 치우를 상징하는 숫자가 바로 '3'이었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숫자 3'이라면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다고 일설에 전해지고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이처럼 중국도 '숫자 3'을 꺼리지만, 가까운 일본조차 '숫자 3'을 멀리하는 것을 보면 '숫자 3'은 한국만의 고유한 숫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다보면 끝도 없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오래도록 우리 조상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만 주워 담아도 이 정도인데,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성과'를 높이면 얼마나 더 훌륭할지 상상조차 안 될 정도다. 아직까지 이런 연구에 대한 성과가 미미한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숫자 3'에 대한 해석을 애꿎게도 '사료부족'이란 핑계를 대며 '중국의 사료'와 '일본의 사료'에서 그 증거를 찾으려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젠 우리의 자긍심을 드높여 봄이 어떨까 싶다. 우리 민족의 잘남을 시샘한 중국과 일본의 오랜 훼방에 놀아나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