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원전 완역판 6 : 적벽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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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제갈공명이 등장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등장했다는 것은 '천하삼분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등장인물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비 삼형제도 40~50대에 접어들었는데 반해 비교적 젊은 조자룡도 30대 후반이었다. 그에 비해 제갈량과 방통 등 새로 등장한 인물들은 아직 2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 <삼국지>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유비 삼형제는 반백살이 다 되어서도 아직 제대로 된 영지 하나 만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조조에게 쫓기듯 형주의 유표에 기대어 '친족 버프'를 받아보려 했으나 수명이 다한 유표가 거저 준다는 형주도 마다한 유비였다. 그렇게 '쪽박 인생'이었건만 제갈량은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감복해서 천하는 삼분하는 지혜를 유비와 함께 이루겠다며 다부진 출사를 하였다. 그 시작은 신야성에서 거둔 '박망파 전투'의 승리였으며, 이제 '적벽대전'을 통해 (아직은 아니지만) 위나라의 조조와 오나라의 손권을 피로하게 만든 뒤 형주땅을 차지해 파촉땅까지 세력을 넓혀 '위촉오 삼국의 형세'를 형성하겠다는 것이 제갈량의 1차 목표인 셈이다. 이렇듯 천하를 세 나라로 균형을 맞추고 나서야 <삼국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제갈공명처럼 거의 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인재가 어찌하여 강력한 조조나 풍부한 손권의 세력으로 들어가 출세가도를 달리지 아니하고 무일푼에 가까운 빈털털이 유비와 손을 잡고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것 말이다. 여기에 이문열은 자신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조의 세력은 이미 걸출한 인물이 등용된 터라 아무리 재능을 뽐낸다고 하더라도 '출세가도'를 달리기 어려울 것이며, 손권의 세력은 너무 안정을 추구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평화와 안정을 꾀하는 집단이기에 크게 쓰이는 재목으로 활용되기 힘들다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조조는 '서서'라는 젊은 인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음에도 별달리 써먹지 않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고 있었으며, 손권은 이미 제갈근이라는 공명의 형을 영입하고도 중책을 맡기지 않고 인재를 썩히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판국에 제갈량이 재주를 보이며 '등용문'을 통과했을지라도 크게 쓰이기도 힘들고 초고속 승진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본 것이다.

 

  반면에 무일푼에 가까운 유비진영에서는 이와 상황이 완전 달랐다. 떠돌이 집단에 불과했지만 나름 중산정왕의 후예로 '황족 버프'를 살릴 수도 있었고, 관우, 장비, 조운 등 무장들의 역량은 '탑티어'였으며, 미축, 간옹, 손건 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탁월한 재무능력'을 갖춘 명석한 신하들이었다. 이런 유비진영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모사능력'이 뛰어난 군사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장수와 유능한 신하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살림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자리를 처음으로 꿰찬 인물은 '서서'였지만, 조조의 계략에 빠져 유비의 품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후임으로 들어온 제갈량은 유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초고속 승진이 보장된 자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경쟁자'도 없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으니,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은 '금상첨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이제 제갈량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를 하여 유비진영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형주땅'과 '파촉지역'을 가질 수 있는 지혜보따리를 마음껏 펼쳐놓게 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적벽대전'이다. 허나 적벽대전은 너무나 유명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전은 다음 권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릇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뤄야 하는 과정이 너무도 끔찍하기에 그렇다. 과연 '평화를 이루기기 위해서는 전쟁은 필수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권력자'다. 하지만 잔혹한 전투에 임하는 것은 부하장수들이고, 하나뿐인 목숨마저 희생 당하는 것은 병졸들이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한 뒤 얻은 이득은 '권력자'가 차지하며 온갖 명예도 독차지한다. 그러나 병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얻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잃는 것은 전부다. 그런데도 참혹한 전쟁에 앞장 세워지고 살아도 죽어도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도대체 이런 전쟁을 왜 해야만 한단 말인가? 북쪽의 병졸과 남쪽의 병졸이 큰 원한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전쟁은 권력자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며 옛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며 필독을 권장한다. 과연 무슨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민중들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지배계층의 잔인함을 배우라는 것일까? 아님 전쟁의 승패를 통해 속고 속이는 지략이 펼쳐지니 그속에서 '인생교훈'을 찾아내 배우라는 것일까? 고작 남을 속이는 계략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흔히 말하는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 수만 명을 몰살시키면 위인', '자신의 성공을 바란다면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한다' 따위의 격언을 인생의 모토로 삼으라는 것일까? 모두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에 권장도서로 손꼽기 꺼려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난 '반면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옳지 못한 일을 보고서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를 갖춰, 자신은 결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겠다는 성찰의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다. <삼국지> 내용은 어느 것 하나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만큼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나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천하가 혼란해지면 평화는 유지하기 힘들고 전쟁을 일삼는 무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게 되니,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첫 번째이고, 전쟁을 일삼을 정도로 혼란한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선 '부국강병'을 이뤄야 하며, '부국'은 나라안의 모든 국민들이 넉넉한 삶을 산다는 뜻이고, '강병'은 주변국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힘과 실력을 두루 갖추는 것을 뜻한다. 단지 '강대국'이 되어 주변을 잡도리한 뒤에 휘어잡는 방식은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없고, '도덕적 우월'을 내세운 강국이 되어야 비로소 주변을 평정하고 평화를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란 말이다. 정말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강대국이 되어 쳐들어오는 적들을 모두 야만으로 치부하고, 공격적 성향을 띠는 것만으로도 주변국이 알아서 '나쁘다'고 면박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도덕적 우월'을 내세워 천하를 통일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유비'가 그렇다. 난세의 정국으로 보면 유표가 병사한 뒤에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제갈량도 유비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유비는 이 방법을 거절한다. 한마디로 예의에 어긋나고 도리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리고서 형주땅이 조조의 손을 거쳐 손권의 전리품이 된 땅을 '빌리는 형식'으로 차지하면서 '파촉땅'을 차지할 때까지 빌리겠다는 약조를 하며, 그 사이에 별다른 전투도 치루지 않고 저절로 땅이 굴러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전략으로 영토를 늘려나간다. 땅이 늘어나니 '부국'이요, 세력을 끌어모아 제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니 '강병'인 셈이다. 이렇게 유비는 '도덕적 우월'을 앞세워 형주와 파촉의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더 큰 영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런 장면이 바로 <삼국지>에서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아 읽게 하는 묘미일 것이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다. 도덕적 우월을 내세우니 천하통일의 명분까지 얻게 된 셈이다. 허나 실제 역사는 '조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정한 세력이 천하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토록 '비열한 현실'이 펼쳐지니 '인생은 달콤하지 않고 씁쓸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남에게 속기 전에 남을 먼저 속여 이득을 챙기라고 <삼국지> 필독을 권하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맞고, 현실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씁쓸할 뿐이다. 어찌하여 착한이는 허약해 빠진 것인지...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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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10 - 현대 세계의 냉전과 변화 처음 세계사 시리즈 10
초등역사교사모임 지음,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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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제 뜨거운 열전의 시대는 저물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전세계가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로 갈라져서 맹렬하게 대립하는 양산을 띠게 되었다. 이른바 '냉전시대'가 열린 것이다. 냉전은 과거의 피튀기는 열전과 대비될 정도로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전쟁'만 벌어지지 않았을 뿐 열전 못지 않은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이 대립하는 구도로 말이다.

 

  현대사를 간단하게 소개할 방법은 없다. 크게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벌어졌고, 작게는 이 두 나라의 '대리전' 양산을 띠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에 비해서는 매우 협소한 '공간' 안에서 세계대전 못지 않은 살육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전'의 성격을 띠었지만 조금만 들춰보면 결국엔 '미국 vs 소련'이라는 양진영의 갈등이 그 원인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대표적인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두 전쟁 모두 '자본주의 vs 공산주의'라는 이념전쟁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 속내에는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자존심 대결이었던 것이다. 물론, 두 전쟁 모두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을 했지만, 소련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물밑작업은 '핵폭탄 개발'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는데, 결국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왜냐면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핵개발의 시작은 히틀러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맨하튼 프로젝트'였다. 독일이 먼저 핵개발에 성공한다면 히틀러가 반드시 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애초에 개발할 의사도 없었다는 것이 독일이 항복하고 난 뒤에야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미국은 핵개발에 성공하게 되고 진작에 항복했어야 마땅할 일제를 상대로 '핵폭탄 실험'을 실시하게 된다. 1945년 8월 6일에 '리틀보이(우라늄 폭탄)'를 히로시마에, 9일에는 '팻보이(플로토늄 폭탄)'를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파괴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핵폭탄의 무서움은 눈으로 보이는 파괴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위험'이 더 컸다는 사실을 직접 떨어뜨려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방사능에 피폭되고 나면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는 환자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2세대, 3세대, 4세대...끝없이 그 고통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후에는 '방사능 피폭'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인류는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소련의 핵개발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쪽이 새로운 핵개발에 성공하면, 저쪽이 더 무시무시한 핵개발에 성공한다는 식으로 '무한경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핵을 쏘는 전쟁에 돌입할 수는 없었다. 핵폭탄의 위력을 너무 잘 알았기에 서로를 향해 쏘아대면 결국 인류 전체가 절멸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폭탄을 보유하게 되면 초강대국이라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는 '핵억지력'이라는 역설적인 진실이 암묵적으로 합의될 정도였고, 그 덕분에 전세계는 '핵폭탄 보유 경쟁'에 뛰어드는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미국, 소련, 중국, 유럽, 인도, 파키스탄 등을 넘어 끝내 북한까지 핵폭탄을 보유하고, 이를 실어 쏠 수 있는 미사일과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정찰위성까지 보유하는 현실이 펼쳐지게 되었다.

 

  결국 인류는 '핵전쟁'에 뛰어들게 될까?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냉전'은 21세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소련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하며 잦아들게 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전쟁은 끝없이 진행되었다. 제국주의 시절 식민통치로 몸살을 앓았던 나라들이 냉전시대에 독립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지만, 낙후된 경제와 혼란의 정치로 인해 '내전'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민족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망령처럼 떠돌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생계마저 앗아가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만행을 잠재울 힘은 '강대국'에게 있는데, 이들은 해결해야 할 의무는 저버리고 자신들이 누릴 권리만 앞세우며 끔찍한 만행을 방치하고 관망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전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강대국들의 무책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온실가스 배출은 선진국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그로 인한 피해는 약소국들이 짊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21세기 전세계는 '핵전쟁'과 '기후위기'라는 두 가지 인류 절멸 시나리오를 맞이하고 있다. 그 어떤 시나리오라도 인류 절멸이라는 결말로 끝맺게 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될까? 가장 현명한 선택은 그 시나리오가 제기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슬기로움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전인류가 모두 힘을 합쳐야만 겨우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과연 인류는 멸망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 슬기로움을 발휘할 수 있을까? 없다면 '현대사'는 머지 않아 종료하게 될 것이다. 더는 역사로 기록할 인류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그딴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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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9 -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 대전 처음 세계사 시리즈 9
초등역사교사모임 지음,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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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승전국은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며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던 1320억 마르크를 배상금으로 요구했다. 물론 승전국들의 전후복구비용으로 충당하려는 속셈이 더 크다고 하겠다. 허나 독일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은 뒤였기에 배상금을 하루 아침에 지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이 갚을 배상금'을 담보로 삼아 미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에 급급했고, 미국도 역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외상(?)'으로 대금을 지불받고 유럽에 수출을 했더랬다. 그래서 미국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은 전쟁에서 큰 피해도 입지 않고 막대한 수출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은 1920년대 '경제호황'을 맞았고 공장에서 만든 물건은 만드는 족족 남김없이 수출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 있었던 미국은 흥청망청한 '재즈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허나 미국의 경제성장은 속빈 강정과 다를 바 없었다. 물건을 잘 팔렸으나 팔린 물건의 '대금'을 제때에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건을 가져간 영국과 프랑스가 그 대금을 치뤄야 했는데, 전쟁으로 황폐해진 터라 독일로부터 받을 배상금으로 치뤄야했는데, 독일도 경제가 말이 아닐 정도로 엉망이니 배상금을 제때에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대호황을 짧게 누린 뒤에 '미국발 경제대공황'을 겪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반면에 1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한 소비에트 연방은 슬기롭게(?) 대공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모든 자산을 '국유화' 시켰기에 자본이 돌지 않아서 생기는 '대공황'의 여파에서 비켜날 수 있었고, 자급자족에 가까운 배급제로 대공황의 위기에서 '경제성장'까지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에는 마르크스가 예언(?)한대로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 착착 진행되어 결국엔 자본주의가 폭망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예견했더랬다. 허나 자본주의는 쉽게 망하지 않았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다음 기회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암튼, 경제대공황으로 가뜩이나 전후처리로 어려움을 겪던 나라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것이다. 이 세 나라는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추축국'이 되는데, 모두 경제대공황으로 경제가 위태롭게 되자 '군사력'을 앞세워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여기에 전체주의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내세웠고, 집권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통치를 하는 독재국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론 독재자라도 개인의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정책을 지향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고, 애초에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체주의 국가이니 국민 모두가 일치 단결하여 아주 큰 시너지 효과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딴에는 일치단결한 국민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허나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군국주의 국가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추구했지만 결국 '독재자'의 이익만을 채울 뿐이었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 한 몸을 아끼지 않고 앞장 서겠다던 독재자는 하나같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총알받이'와 '방패'로 삼아 혼자만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공통점도 아주 잘 돋보인다. 결국에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또 다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의 연합군이 승리하는 시나리오를 썼다.

 

  허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제국주의'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고, 프랑스혁명 이후 서서히 자라난 '민족의식'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민족의식'을 내세운 식민지국가들이 독립을 추구하게 되는데, 과거에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속속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등 식민지 건설에 앞장 섰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의 꿈'을 품은 세력에게 아주 몹쓸 짓을 하게 된다. 독립의 기운이 커져가면 군대를 보내 짓밟거나 거대한 경제재제를 통해 독립운동을 훼방놓거나, 유력한 독립지사들을 암살하거나 상대세력에 막대한 지원을 해서 독립의 열기를 꺾으려 했고, 그마저도 안 되면 '위성국가(속국)'으로 만들어버리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많은 '독립국가(신생국)'가 생겨났으며, 이들은 훗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의 한 편이 되든가, 아니면 '제3세계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한편, 한중일 삼국은 1920년부터 1945년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군사력을 앞세워 집어삼키더니 끝내 1910년에 한일병합을 하고 말았다. 이후엔 만주국을 세우고 몽골까지 세력을 뻗치더니 1930년대부터는 중국까지 거침없이 점령해나갔다. 한편, 나라잃은 한국인들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며 3·1 혁명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망해버린 왕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한국인'임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일제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지만 독립의 열기도 더욱 굳세어져만 갔고,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등 무장독립투쟁을 이어나갔다. 허나 1930년대 이후엔 일제가 본격적인 중국침략을 할 정도였기 때문에 우리의 독립운동은 위축되는 듯 싶었다. 허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대대적인 토벌작전과 야만적인 탄압을 피해 중국과 러시아 각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히 활동을 했는데, 이들은 중국의 '군벌'과 손잡기도 하고, 때로는 '마적단'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본격적으로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과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활동할 때는 이들과 손을 잡고 일제와 맞서 싸워나갔다.

 

  서구열강의 침략을 막아내던 손문(쑨원)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저항을 이어나갔는데, 이때 '중국 공산당'도 창건하게 되었다. 그리고 손문의 국민당은 장개석을 중심으로 부족한 군사력을 키워나갔고,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서구열강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허나 손문이 죽고 장개석이 국민당을 이어받자 상황은 급변한다. 서로 손을 잡았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둘로 갈라졌던 것이다. 장개석은 지주와 자본가와 손을 잡고 반공 정책을 내세웠고,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를 기반으로 세를 불려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장개석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그 때문에 모택동(마오쩌둥)은 자신을 따르는 공산당원을 이끌고 '대장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둘로 갈라진 중국의 빈틈을 더욱 파고 들어 나갔고 끝내 '남경(난징)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까지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이에 중국은 '1차 국공합작'으로 일제에 저항하게 되고, 중국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서양에 전해지자 '국제연맹'을 앞세워 일제에 압력을 행사하자 일제는 연맹에서 탈퇴를 하고, 석유를 비롯한 자원수출을 중단한 미국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태평양전쟁'을 벌이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지만 일제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며 두 발의 핵폭탄을 맞고서야 뒤늦은 항복을 한다.

 

  전체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확실히 패배를 맞보며 사라지는 듯 싶었다. 허나 이후에 벌어진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 국가들과 새롭게 독립을 했던 국가들 가운데 독재자들이 '또 다른 전체주의'를 내세우며 자신들만의 욕심을 챙기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전체주의'는 여러 모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가 한 나라의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장점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독재는 독재일 뿐이라는 사실만 재확인시킬 뿐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박정희 정권'이 그러했다. 분명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형적인 경제구도로 인해 현재에도 '대기업 위주 성장발전의 폐해'를 고스란히 맛보고 있으며, 독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민주주의를 혹독하게 탄압한 결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평화적으로 안착하기 힘든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독재정권의 강압에 의한 경제성장은 친일적폐세력의 면죄부로 작용하여 '친일우파세력'과 '독립좌파세력'의 대결이라는 웃기지 않은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따위 못난 짓거리는 종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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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 세계대전부터 태평양 전쟁, 중국 근대사까지 전쟁으로 읽는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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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공부 좀 한 분이라면 '고대사'보다 '근현대사'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물론 '시험공부'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까닭인즉슨, 공부할 분량만 따진다면 '고대사'가 분량도 적고 외워야할 것이 한정된 탓에 시험대비하기에 수월한 편이지만, '근현대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뭐 하나 빼놓을 수 없을만큼 중대하고 굵직한 사건이 수두룩 빽빽이라서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기 때문이다. 허나 시험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면 너무나 오래된 옛기록이 띄엄띄엄 전개되는 '고대사'보다는 숨막힐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인과관계'가 명백한 사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근현대사'가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빼곡하게 전개되는 '근현대사'를 조목조목 읽어나가는 작업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특히, '1차 세계대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 20세기 전반기를 아우르는 부분은 너무나도 많은 국가와 인물이 얽히고 설켜있기 때문에 복잡한 전후맥락 파악도 쉽지 않고, '부분과 전체'적인 역사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밖에 없다. 하지만 '썬킴'은 해냈다. 이 복잡한 역사구도를 '전쟁사'라는 타이틀만으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관통하는 '전체'맥락을 잡아냈고, '부분'에 해당하는 일본제국의 태평양 전쟁 전개과정과 중국 근현대사까지 녹여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가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속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조목조목 끄집어내면서 '구한말의 혼란기와 국권피탈, 일제강점, 그리고 해방까지'의 대한민국사를 책 한 권으로 엮어낸 것이다. 거기에 '역사관련 영화'를 소개하면서 역사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안내까지 빼놓지 않아 역사를 더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역사책이 쉽고 재밌게 느껴지면 역사를 '단면'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관된 관점'으로 서술하여 역사의 흐름이 거침없이 흘러가게 되고, 역사의 맥락을 어렵지 않게 쏙쏙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거나 '역지사지'를 하게 되면 매끄럽던 흐름도 틀어지게 되고, 쏙쏙 이해되던 '역사적 인과관계'도 복잡한 미궁속으로 빠져들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쉽고 재미나게 읽을수록 그속에 감춰진 '역사의 이면'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숙제를 남긴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이 책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오로지 '히틀러'라는 악당이 혼자서 지지고 볶고 있다. 그리고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전쟁도 종식된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히틀러와 대적해서 싸웠던 '연합군'은 모두 선량한(?) 모습만 그려내고 있다. 과연 '2차 세계대전'을 이렇게만 알고 끝내면 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으로 맥락을 잡았다면, '또 다른 역사책'으로 더 자세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되어 나치 독일 같은 나쁜 놈들은 절대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착한 연합군은 또 다른 나쁜 놈들을 때려잡아도 되는 '반쪽짜리 교훈'만 얻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착한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이 다 나쁘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히틀러'가 나쁜놈이라는 사실은 잘 알면서 왜 그 시대에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잘못을 가리지 않기 일쑤다. 만약 1차 세계대전을 종전하면서 전세계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도 있다는 뼈아픈 실책을 낱낱히 밝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연출하지 않기 위해 처절한 반성을 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승전국은 의미 없는 전쟁에서 잃어버린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독일에게 가혹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했고, 이를 갚을 길이 없는 독일은 '전체주의(나치즘)'를 통해 대반전을 꾀했던 것이다. 이런 망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떠벌리는 '히틀러'라는 미치광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또한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은 '승전국'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짓밟아버릴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고, 설마 미치광이일지라도 전쟁까지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완벽한 오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모든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에게 덤터기 시키고 '연합국' 측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철저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면 큰 잘못이다. 이런 잘못으로 또다시 '푸틴'이나 '김정은', '시진핑' 그리고 '네타냐후' 같은 미치광이들을 자극한다면, 이들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것이냔 말이다. 끝내 전쟁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악당'을 처치하는 것으로 종결지을 것인가? 그런 종결이 수 억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동반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고백하건대, 난 이 책을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 지금도 썬킴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으며, 역시나 매우 재밌게 읽고 있다. 그런데 '전쟁사'를 위주로 재미나게 풀어냈고, 어렵기만한 역사를 쉽게 접하게 해주며, 몰랐던 사실을 일깨워주어 그동안 궁금했던 '역사의 진면목'을 깨닫게 해주는 유익한 독서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인류가 경험한 가장 끔찍한 전쟁을 '블럭버스터급 전쟁영화'로 감상한 것 같은 느낌만 들고, 두 번 다시 이런 전쟁을 치르지 말자는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칫 '밀리터리'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역사책인 것만 같이 안타까웠단 말이다.

 

  전쟁은 절대 홀로 치룰 수 없다. '고장난명'이라는 고서성어처럼 손바닥 하나로는 손뼉을 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나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도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화감상'하듯 나몰라 관객이 되어 관망하게 된다면 끔찍한 전쟁은 결코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특히, '전쟁사'를 공부한다면 발발원인만 분석하며 패배한 쪽의 잘못만 부추기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승리한 쪽'은 잘못을 탕감하게 되어 '전쟁은 승리하면 무죄'라고 하는 그릇된 편견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도 언젠간 끝이 나겠지만, 승리한 쪽이 '착한 편'이라고 판결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재미난 책에 딴죽을 걸어 죄송스런 마음뿐이지만, 너무 재밌다보니 하마터면 나도 '전쟁광'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우려스런 마음에 몇 자 적어보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착한 전쟁은 없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만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히틀러 같은 '미친 전쟁광들의 뇌구조'라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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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목표인 150편의 리뷰까지 21편이 남았다.

한 달 목표치로 부족함이 없지만 올해 최고치가 17편이라는 점에서

살짝 부담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연말에는 미친듯이 써왔으니 올해도 '목표달성'을 위해 달려보련다.

 

11월에는 '어린이책', '소설책', '청소년책' 위주로 많이 읽었다.

상대적으로 '인문학책'과 '역사책', '과학책'을 소홀히 했는데...

12월에는 '역사책'을 좀 읽어보려고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으로는

<로마인 이야기>, <리비우스 로마사>, <썬킴의 세계사> 등이 있는데

호흡이 긴 책들이니 조금 시간적 여유를 두고 차분히 읽어보려 한다.

또, <처음 세계사>와 <인류이야기> 시리즈가 있는데,

읽는 족족 리뷰로 정리해보려 한다.

 

아직 허리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

그나마 앉았을 때 통증이 많이 줄어서 리뷰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운동량(움직임)이 많은 동작은 무리인데 입맛은 되살아나서

살이 찌고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간헐적 단식이라도 하면서 식단조절을 하려고 하고 있지만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고 찬바람이 슝슝 부니 얼큰한 궁물을 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아픈 몸에 살까지 찌면 회복이 더딜테니...참아보려고 한다.

 

벌써 반백살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먹었나 싶었는데...

세월은 참 빠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모르니 부지런히 읽고 쓰련다.

숫자로 한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1만편의 리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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