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6 : 삼국지 2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6
허경대 글, 정규하 그림, 손영운 기획, 나관중 원작 / 채우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6 : 삼국지 2>  나관중 / 손영운 / 허경대 / 채우리 (2013)

[My Review MMCXXII / 채우리 27번째 리뷰] 2권은 '적벽대전'부터 '사마염의 진(晉) 건국'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전히 오타가 많아서 눈에 거슬렸고, 워낙 빠른 전개 때문에 <삼국지연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초심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읽기 어려운 책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수준 높은 독자가 읽기에 좋은 것도 아니었다. 중간 중간에 달린 '주석의 내용'은 유일하게 읽을 만한 정도였지만, 정작 핵심적인 '만화내용'이 매력을 깎아먹고 있는 듯 해서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숱한 <삼국지>를 읽었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요즘엔 '어린이를 위한' 책들도 꽤나 수준 높게 나오고 있는데, '서울대 선정'이란 타이틀을 달았으면서 이 정도인 것은 많이 아쉬웠다. 저자의 변명처럼 '2권'에 <삼국지연의>를 다 담기에 너무 벅찼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다른 '어린이용 만화책'처럼 '3~5권' 정도로 기획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말 2권 이상으로 기획하기 힘들었다면, 1권으로 줄여서라도 '핵심 사건'만 나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유비'와 '조조' 중심에서 벗어나 '동오의 인물들'이 많이 소개된 점이다. 이 책의 시작이 '적벽대전'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적벽대전'의 주인공은 제갈량이 아니라 '주유와 황개'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화공작전'을 구상한 것도 황개가 조조의 대선단이 빽빽하게 뭉쳐 있는 것을 염탐하고서 '화공'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도독인 주유에게 보고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한 역할은 조조의 80만 대군이 남하했을 때 손권의 신하들은 전쟁은 피하고 항복과 다를 바 없는 '강화회담'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젊은 손권의 혈기를 자극해서 '전쟁'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전부였다. '화살 10만 개'나 '손바닥에 불 화(火)자 쓰기', '동남풍 기원제' 같은 것은 나관중이 창작한 내용일 뿐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적벽대전'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전쟁이라는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실제 '적벽대전'이 일어났다는 지역을 답사하면 생각보다 협소하고, 도저히 조조의 80만 대군이 대선단을 이끌고 쳐들어왔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얕은 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사 <삼국지>에서도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조조군 측에 '역병'이 돌아 많은 군사들이 병들어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 뒤에 조조군 군영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 유비군에 쫓겨 퇴각했다는 점이 눈에 띨 뿐이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적벽대전'과 같은 대대적인 싸움의 흔적이 당췌 보이질 않는다. 이를 정리하면, '적벽대전'은 실제 벌어진 전쟁이라기보다는 풍토병과 같은 '지리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조조군이 '자진퇴각'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그렇기에 만약 조조군영 쪽에서 일어난 화재가 '황개의 화공'인 것으로 본다면 적벽대전의 일등공신은 '황개'에게 돌아가야 하고, 유비는 고작해야 패퇴하는 조조군을 쫓아 이득을 챙긴 것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암튼,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라고 하는 든든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갈량이 주장했던 '천하삼분지계'를 실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럼 유비는 그토록 바랐던 '영토'도 얻었고, 와룡과 봉추 등 걸출한 인재도 영입했는데, 어찌하여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했던 것일까? 사실 유비가 차지한 '형주와 서천(파촉)' 지역은 천하를 도모할 정도로 유리한 지역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중원을 차지해야 천하를 얻은 것'이라고 말할 때 '중원'은 황하의 중하류 지역을 이르는 말이고, 이 지역은 이미 조조가 다 차지했다. 그리고 양자강(장강) 유역의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하는 알짜배기 땅은 손권이 차지하고 있으니, 유비는 감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천하의 제갈량도 '천하통일'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겨우 '천하삼분'을 이야기하며 조조와 손권의 싸움을 관망하며 어느 한 쪽이 너무 우세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위치를 차지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골자로 담아 '천하삼분지계'를 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40대를 넘어선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는 너무도 요원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유비는 다리 한 번 쭉 뻗을 수 있는 '영토 한 뼘'도 없는 처지였으니, 일단은 수락했던 것이고, 그런 뒤에 '유표와 유장의 영지'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절반의 성공'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유비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갑작스레(?) 넓어진 영토를 다스릴 만큼 수많은 인재를 얻기도 전에 '방통', 관우'를 잃은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아직 나라를 안정시키지도 못한 상황에서 제갈량 한 명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주'를 잃어버린 것까지는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서촉에 들어가서 천천히 '권토중래' 기다렸다면 <초한지>에서 유방이 서초패왕으로 불린 항우를 사면초가로 몰아서 '한 나라'를 건국한 위업을 달성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비는 '유방'과 참 많이 닮았다. 그가 서촉을 다스리면서 스스로 '한중왕'이라 칭한 것도 유방이 진(秦)나라를 멸망한 뒤에 서촉땅에 유폐(?) 되면서부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방이 세운 나라 이름이 '한(漢)'이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비는 관우를 잃은 슬픔이 컸던 것인지 제갈량의 만류를 무릅쓰고 '동오 정벌'에 나선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릉전투'에서 대패를 한 뒤 백제성에서 쓸쓸한 퇴장을 하고 만다. 그렇게 유비까지 죽고 나자 '촉한'에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제갈량과 어깨를 나란히 할 방통도 이미 죽고 없고, 관우, 장비, 황충, 마초 등 걸출한 명장도 속절없이 죽어나갔고, 조운, 마속과 같은 인재도 운이 따르지 않아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기도 전에 퇴장 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선주의 유명을 충심으로 실천하며 열심히 '출사표'를 내보였지만, 번번히 사마의에게 막혀 별다른 수를 짜낼 수 없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면서 사마의를 깍아내리고 제갈량을 드높였지만, 실제 역사기록에서는 제갈량의 압도적인 패배만 남아 있다. 이런 면에서 사마의는 <삼국지연의>가 만든 이미지 때문에 두고두고 '저평가'를 받고 만다. 사마의의 제대로 된 실력은 그의 후손인 사마염이 위나라를 물려 받아 황제에 오르는 위엄으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도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번번이 골탕을 먹는 인물로 등장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 살았던 '원말명초'의 시대적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원나라가 기울고 사회가 혼란해지자 도적떼가 기승을 부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바로 '홍건적'이었다. 이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진 가난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세력인데, 후한말에 활약했던 '황건적'과 흡사했던 것이다. 나관중은 이런 혼란한 시기에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생각하다가 <삼국지>를 떠올렸을 것이고, 위촉오 세 나라가 들어서 각축전을 벌이던 '영웅담'이 민중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럼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서 '조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했을텐데, 그러기에는 조조는 마땅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행적 가운데 '충'과 '의'를 내세우지 못할 정도로 비열한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조가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굉장히 '실리'를 중시하고, '효율'이 좋은 것을 따박따박 잘 챙기는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조조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조조의 세력은 결국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조조는 민중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관중은 조조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조조에게 협조했던 세력들 전체를 깎아내렸다. 여기에 반사적 작용으로 덕을 본 인물이 바로 '유관장 삼형제'였던 것이다.

실제 정사 <삼국지>에 유비는 말할 것도 없고, 관우와 장비는 진짜 몇 줄 나오지도 않는다. 촉한 출신이었던 진수는 꽤나 '객관적인 관점'으로 <삼국지>를 기술했다고 평가를 받기에 이런 '몇 줄 안되는 기록'은 그들의 평가가 나쁘지도 않지만, 그닥 좋지도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관중은 다르게 본 것이다. 유비를 '한고조 유방'과 동급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으면서, 관우와 장비가 '복숭아밭(도원)'에서 한 목숨을 다 받쳐서 혼란한 정국을 바로 잡겠다는 '결의'를 다진 내용을 선보일 정도로 이미지를 급상승 시켰던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복숭아가 무슨 의미였겠는가? <서유기>에서도 손오공이 복숭아를 먹고 불로장생의 삶을 살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게 성스러운 장소에서 누가 보아도 멋짐이 폭발하는 충성과 의리를 다지며 굳센 결의를 하였다는데, 이들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누가 주인공이 될 것이냔 말이다. 그렇게 '도원결의'가 꽃을 피우면서 <삼국지연의>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사 <삼국지>보다 소설 <삼국지연의>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깊고 오래 가는 까닭이다. 명나라가 건국한 14세기부터 21세기 지금까지 '유관장 삼형제'가 주인공인 소설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만 보아도 나관중의 기획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유비 세력이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하다. 덩달아서 드높여진 인물이 바로 '제갈량'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표현되는 제갈량이지만, 사마의는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단지,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 조조가 '사마의'를 중요하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던 탓에 사마의에 대한 평가도 어쩔 수 없이 많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를 아예 '축소'하기까지 하면서 야심만 가득한 '이리'처럼 비열한 인물로 그려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마의에 대한 인상이 그리 썩 좋지 못하다. 그러나 그의 실력은 당대 최고였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는 점은 빼박이다.

사실 <삼국지연의>는 너무 많은 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읽고 난 뒤에는 '누가 쓴 책'을 읽었는지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 기회가 되어 다른이가 쓴 책도 읽는다면 그 느낌이 정말 많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한중일 삼국의 '서술 관점'도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600여 년이 넘도록 널리 읽힌 소설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 이야기'는 해도 해도 재밌다. 기회가 되면 또 들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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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5 : 삼국지 1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5
허경대 글, 정규하 그림, 손영운 기획, 나관중 원작 / 채우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5 : 삼국지 1>  나관중 / 손영운 / 허경대 / 채우리 (2013)

[My Review MMCXXI / 채우리 27번째 리뷰] 수많은 <삼국지>를 읽었지만, 이 책만큼 허섭한 책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제한'이 많이 따랐다고 하더라도, '삼국지의 매력'은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줘야 했을 텐데, 어느 것 하나 '장점'이라고 꼽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대 선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 '책의 해설'에 관한 내용은 꽤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조차 웬만한 <삼국지> 마니아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뻔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 <삼국지> 독자팬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을 텐데, 그런 점에서 많이 미흡한 것 같아 매우 아쉬웠다. 수천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삼국지>이기에 수많은 '등장인물의 얼굴'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힘들었을지 몰라도 '주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위촉오 각각 10명 씩(총 30명) 정도의 인물은 특징을 좀 잘 살렸어야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것도 많이 부족했다. 그 가운데 가장 아쉬운 점은 '유관장 삼형제' 가운데 유비가 가장 나이가 많다(?)도 했으면서도 유비만 수염이 없는 캐릭으로 그렸다. 심지어 '삼고초려' 때에는 유비 40대, 제갈량 20대인데, 유비는 여전히 수염 하나 없고, 더 어린 제갈량이 오히려 수염을 그려 넣어서 더 늙어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오타는 '하후돈'을 '하 장군'이라고 호칭하는 것이었다. 아니 '하후 씨 가문'인데, 왜 '하 씨'로 호칭한 것일까? 이런 자질구레한 실수까지 곳곳에 보이니 전혀 몰입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암튼, 아쉬움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그래도 <삼국지>이기 때문에 짚어 볼 것이 있기는 하다. 다른 <삼국지>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을 중심으로 몇 가지 정리하려 한다. 먼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통 <삼국지>라고 읽는 것들은 대부분 '모본(毛本)'이라 부르는 것으로 청나라 강희제 때, 모성산(毛聲山)과 그의 아들 모종강(毛宗岡)이 당시에 출간된 모든 <삼국지통속연의>를 모아서 '통일성'을 높이고, '간결한' 문체로 다듬어 새로운 책으로 간행한 것이라고 한다.

아시다시피, 정사 <삼국지>는 서기 280년 진(晉)나라 때 촉한 출신의 인물 '진수'가 썼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무려 1100여 년이 지난 명나라 초기다. 실로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사'가 어찌 '연의소설'로 쓰여지게 되었을까? 그건 수많은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훗날 나관중에 의해 '집대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 송 시절에는 '서민문학'이 발달하기보다는 시와 같은 고급진 '귀족문학'이 발달하였다. 그래서 역사서의 내용을 그대로 달달 외울 정도로 학식이 높은 분들에 의해 향유 되었으나, 명나라 시대가 되면서 귀족적, 사대부적인 고급스러움은 퇴색하고, '연의소설(장편소설)' 같은 서민문학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연의> 같은 방대한 내용은 '한 꼭지씩' 흥미롭고 재밌는 부분만 따로 뽑아 '장(章)'이나 '회(回)'로 구분하는 '장회소설'로 만들어져서 전기수(이야기꾼)나 설화인(舌話人)이 입담을 섞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나관중은 이를 한데 모아 '집대성'할 생각을 떠올렸고, 수없이 많은 '장회소설'을 모으고, '역사기록(진수의 <삼국지>, '삼국지'에 주석을 달아 놓은 <배송지서>, <자치통감> 등등)'을 참고하여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기도 하며 새롭게 총정리를 했던 셈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썼다는 '원본'은 사라졌고, 훗날 명나라 가정제 때 세간에 떠도는 <삼국지연의>를 모아서 정리를 했고, 청나라 때 '모본'이 등장하면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진수가 쓴 <삼국지>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판이하게 다른 책이다. 가장 큰 차이는 진수는 '조조'가 위업을 닦은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고, 나관중은 충과 의를 따져서 유비가 세운 '촉한'을 정통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까닭은 1100여 년이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조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뛰어난 재능과 빛나는 업적만 놓고 본다면 당대 '조조'를 따를 자가 없었지만, 그가 행한 행동들이 '황제(헌제)'를 볼모로 삼고 권력을 함부로 찬탈한 '패자'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조는 '명예'보다 '실리'를 더 중시하였다. 그 덕분에 위촉오 세 나라 가운데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나라가 이루는 큰 업적을 쌓았지만, 그 이미지가 그닥 좋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유비는 실제 '역사기록'에 도덕군자로 소개될 정도로 인자한 면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실제로도 유비를 따르는 백성들이 꽤나 많았다고 한다. 유비는 '군웅할거의 시대'에 변변한 영지도 얻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유비를 따르는 신하들도 다른 군웅집단에 비해 '배신'을 하는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똘똘 뭉치는 양상을 보일 정도다. 그래서 훗날 사마염이 세운 진(晉)나라의 신하가 되지만 '촉한 출신'이었던 진수도 유비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해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천 년이 지나는 동안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위인'은 누구였을까?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로 '유비쪽 인물들'이었다. 더구나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 시기에 '홍건적'이 횡포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후한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의 일화를 입에 올릴 때면 비슷한 느낌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도원결의'다. 실제 역사에는 없는 기록이지만,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가슴 뜨거워지고 뭉클해지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삼국지>에서는 조조가 주인공이었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유관장 삼형제가 단연코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삼국지>는 '도원결의'로 시작해서 '오장원에 지는 별'로 마무리하는 '촉한정통론'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정석(?)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더구나 '원나라 몽골족'에게 큰 피해를 본 '한족'들은 <삼국지연의>를 읽으며 자신들의 뿌리가 '한고조가 세운 한나라'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고조 유방의 혈통을 '정통'으로 보기 시작했고, 비록 무능한 황제였지만 '헌제'를 핍박해서 황위를 찬탈한 '조조 가문'을 곱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편향된 인식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유비'를 헌제의 숙부로 퉁치고 '유황숙'이라는 네임벨류를 단단히 심어준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나라의 계보를 보면, 유비가 경제의 아홉 번째 아들인 '중산 정왕 유승'의 아들로 나온다. 6대 경제는 '전한 시대'의 사람이었다. 훗날 광무제가 '후한 시대'를 열었고, 명제, 장제, 화제, 상제, 안제, 소제, 순제, 충제, 질제, 환제, 영제, 소제, 그리고 헌제로 이어져서 '전한 경제부터 후한 헌제까지' 무려 300여 년의 세월의 간극이 있는 셈이다. 이 지난한 세월동안 '직계 혈통'일지라도 엄청나게 먼 사이가 될 터인데, 헌제와 유비는 '직계' 혈통 사이도 아니었다. 만약 직계 혈통이었다면 유비가 돗자리나 짜며 연명했을 턱이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유황숙'이란 호칭은 나관중이 '조조'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당대에 형주의 유표, 서촉의 유장도 '같은 유씨'이고, '황족 출신'이었는데, 왜 '유황숙'이란 호칭을 유비만 줬겠는가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유표가 <삼국지연의>에서 홀대 받은 까닭도 살펴보자. 유비가 별다른 '영지'도 얻지 못하고 빌빌 거리고 있을 때, 유표는 알짜배기 땅이었던 '형주'를 다스리고 있었다. 우리는 <삼국지연의>만 읽으면 유표를 별별 일 없는 무력한 군주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유표는 원술과도 맞짱을 떴고, 손견을 궁지로 내몰 정도로 실력자였으며, 조조가 원소와 '관도대전'을 치를 때에는 원소와 함께 조조를 공략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갖추고 있던 대단한 능력자였다. 그리고 그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은 바로 그의 영지에서 제갈량, 방통, 서서, 사마휘, 최주평 등과 같은 걸출한 위인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유표가 얼마나 학문을 장려하고, 인재를 잘 키우려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왜 <삼국지연의>에서는 유표를 형편없이 저평가 했을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뛰어난 인물들이 '유표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 활약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토록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었으면서, 왜 그 인재들이 유표를 도와 대업을 이루려 하지 않았던 걸까? 그게 바로 '유표의 한계'였던 것 같다. 장자였던 '유기'는 허약했고, 서자였던 '유종'은 어리고 나약했다. 더구나 유종의 생모인 '채씨'는 아주 못됐다. 그래서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서 꿍꿍이를 벌이다 끝내 나라가 망하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유표가 진정 실력이 뛰어난 위인이었다면, 이런 못된 아내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유표가 늙고 건강까지 나빠지자 젊은 시절의 실력만큼 발휘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점점 저물어가는 유표 세력이었기에 수많은 인재들이 유표에게 기대지 않았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원소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능력자'였던 원소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끝내 조조에게 패배를 하면서 몰락의 길로 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 결과만 놓고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원소에게 부족한 딱 한가지는 바로 '결단력'이라고 폄하하곤 하는데, 이는 <삼국지연의> 속에서 너무 잘 그려 놓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원소를 저평가하기에는 너무 안타깝다. 결단력도 없고 우유부단하며 팔랑귀를 갖고 있어 '좋은 말'을 귀담아 들을 분별력까지 없는 인물이 '반동탁연맹'에선 총대장을 역임했고, 적시적기에 공략을 해서 '공손찬의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며 하북 일대의 일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겠는가?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승리한 것은 조조가 잘 나서라기보다는 '천운'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일 것이다. 패자는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삼국지연의>에서 원소의 못난 점만 부각한 것도 참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못다한 이야기는 <삼국지 2>에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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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뇌, 보수의 뇌 스켑틱 SKEPTIC 42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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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켑틱 42호 : 진보의 뇌, 보수의 뇌>  스켑틱 협회 / 바다출판사 (2025)

[My Review MMCXX / 바다출판사 16번째 리뷰] 전세계적으로 '극단의 대립 시대'를 살고 있기에 나온 것 같다. 이 책이 출간한 2025년 6월의 우리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대강 대치'를 보는 듯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이 탄핵 되고 '이재명 정부'가 탄생했지만, 극우집회는 계속 되었고 점점 극렬해진 집회 참석자들은 '서부법원 폭동사태'를 일으켜 난장을 이루었다. 그렇게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0월인 지금까지도 '극우세력'들은 내란을 부정하고 이재명 정부의 발목을 잡으며 어떡하든 '트럼프의 지원'을 바라며 트럼프가 원하는대로 '혐중시위'에 나서며 기대를 품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길 포기한 듯 싶을 정도다. 현재 상황에서 '트럼프가 바라는대로 다 해주면' 대한민국이 어떤 꼴을 당할지 몰라서 저러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럼프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짜고서 '대한민국 경제'를 폭망시키기 위해 협작을 했다는 정황까지 다 드러났는데도,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하라고 외치고, 일본보다 자동차 관세를 낮추지 못했다고 대한민국을 '무능하다'고 폄하하는 논리는 뭐란 말인가? 정말이지 이런 족속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이렇게 단순한 '의견의 차이'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를 부르고,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너희는 틀렸고 우리만 맞다"는 식의 무지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저들의 '비이성적'이고 '무논리적'인 행태를 보면서 어찌 저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최신 뇌과학 연구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보수주의자들의 '편도체'는 진보주의자보다 크고, 진보주의자의 '전대상피질'은 보수주의자보다 더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한마디로 둘 사이의 '생각(판단)을 결정하는 뇌 부위'가 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주의자들은 '본능적'으로 생각을 하고, 진보주의자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서로 대화를 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본능에 충실한 사람과 이성에 입각해서 논리적으로 말하려는 사람이 어찌 '격식'을 차리고 '점잖'을 빼면서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지 않으면 다행인 셈이다. 그나마 우리는 '촛불' 밝히고, '응원봉' 들면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즐겁게 집회라도 하지만, 외국의 집회 현장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니더냔 말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폭력적인 양상이 펼쳐져서 수많은 희생자도 나오게 되고 말이다.

한편, 유전학 연구에서는 '정치 성향'이 최대 65%까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정치적 판단마저 '이성적 판단'에 결과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부모님에게 물려 받는 유전자의 영향력'이 더 결정적이란 소리다. 거기에 '정치적 환경'까지 조성이 되어 있으면 부모의 정치적 성향이 자녀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결과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뇌과학적 결과와 유전학적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는 대부분 정치적 성향을 '무의식적인 범주'에서 이미 결정되었고, 그 영향력에 알게 모르게 지배 당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니 '극단적인 대립'은 쉽게 풀릴 이유가 없는 셈이며, 더구나 '스마트폰'과 '너튜브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아서 '보고 싶은 뉴스'만 줄기차게 '보고 또 보면서' 자신이 정치적 성향이 '확정적'이고 '편향적'으로 자리 잡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극단적인 대치 상황'은 개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인가? 과학은 문제를 진단할 뿐만 아니라 해법도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과학이 제시하는 '극단적 대립의 해법'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뇌는 고정불변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환경과 경험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민주적 시스템만 보장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뇌를 가장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타 집단과의 접촉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만나서 싸운다면 소용이 없다.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감정과 생각도 헤아려 보려는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면, 극단의 대립은 결국 '대화와 타협의 장'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수 있다고 한다. 뭐, 과학이 내놓은 해법이란 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했던 해결법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훨씬 더 안심이 되지 않은가? 뭔가 더 어려운 방법을 제시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아예 '뇌구조(?)' 자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너무 잘 알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과학이 제시한 해법일지라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만남의 장'에서는 극적인 타협과 타결을 내렸더라도, 서로의 진영으로 되돌아가면 말짱 도루묵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의 해법도 '과학적 제시'를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대립'이 결코 우리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양쪽 진영 모두가 인정하는 바라는 사실이다. 단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만 옳은 말을 하니 너희들은 사라졌으면 좋겠어'라는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겠는가? 총이라도 들고서 쏴야 속시원히 해결될 것 같은가? 실제로 미국은 '총기소유'가 합법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내전(시빌워)'이 발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총을 들고 가장 가까운 이웃집부터 방문해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겠다고 '군대'를 동원하게 된다면...그 뒷일은 상상에 맡기겠다.

진보와 보수가 바라는 것이 진정 이런 혼란이란 말인가? 그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나와 서로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경청해주는 일이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란 점이다. 설마 '대한민국을 망치기 위해서' 노력중이라면, 생각을 고치길 바란다. 진보든, 보수든, '대한민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 할 종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국을 위해서', '일본을 위해서', 그밖의 '다른 이익을 위해서' 애를 쓰고, 그토록 혐오와 증오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면 결단코 용서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뇌구조가 '진보쪽'이든, '보수쪽'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얼마든지 대화하고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무 걱정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뇌구조가 만에 하나라도 대한민국에 해악을 끼치는 쪽으로 작용하려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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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아동문학가 강원희 선생님이 다시 쓴 우리고전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우리 고전 20
김만중 원작, 강원희 글 / 영림카디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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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우리 고전 20>  김만중 / 강원희 / 알라딘북스 (2016)

[My Review MMCXIX / 알라딘북스 1번째 리뷰] 아동문학가이자 평론가인 강원희가 풀어쓴 <구운몽>이다. 특히 그녀는 1922년에 영국에서 <The Story of Guunmong>으로 '영문'으로 소개한 내용도 책에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의 특별한 언급은 없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어려운 어휘를 쉽게 풀어쓰는데 역점을 둔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책 치고는 두꺼운 편(268쪽)인데, 어려운 한자어휘에 대한 뜻풀이를 '칼럼' 부분에 적어 놓았기에 '전체 쪽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상 '생략'된 부분은 없지만, 스토리가 빠르게 전개되는 점이 어린이가 읽기에 딱 좋은 책으로 보인다.

앞서 '영문판'도 소개했는데, 그 제목은 '아홉 개의 구름과 꿈'으로 적었다. 또한 '일본판'도 있었고 좋은 평판이었다는 언급만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판의 제목은 그대로 <구운몽>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리고 이 책의 줄거리도 간추려보니 '불교적인 주제'를 매우 강하게 어필한 듯 싶다. 교과서에도 <구운몽>에는 '유불선의 융합'을 언급하고 있는데, 영문판의 제목으로 유추한 것을 보면 '유교와 도교적 색채'보다는 불제자 성진이 한바탕 꿈을 꾸고 난 뒤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에 중점을 둔 해석을 강조한 듯 싶다. 서양에서도 장자가 꾼 '나비의 꿈'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그런 색채를 더 강조한 듯 싶다. 하긴 우리 독자들도 '일장춘몽'이라는 세상 만사 모든 것이 헛되고 또 헛되다는 의미로 <구운몽>을 이해하고 있을 테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에게 <구운몽>의 진면목을 이해시켜주기 위해서는 '유교적인 이상향'을 잘 보여준 '양소유의 삶'을 좀 더 깊이 조명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한국의 멋'에 대한 극찬도 정말 듣기 좋아서, 그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만끽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서양인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예절'이라고 한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자기를 앞세우기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며 겸손한 마음가짐을 '예의'라고 말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에 경외심을 느낀다면서 말이다. 이런 예절, 공경, 겸손 등등이 다 어디서 유래했단 말인가? 다름 아닌 '유교의 가르침'이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신'을 숭배하기보다는 '충과 효'와 같이 '현실세계'에 꼭 필요한 일상규칙을 더 중시 여긴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한국 전통의 사상인 '현세구복적인 종교관'이 만나서 한국의 유교는 더욱더 '현세적인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쉽게 말해, 죽은 다음의 세상(내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현세)에서 잘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돌아가신 분'께 성대한 제사를 치루는 등 '제사문화'가 아주 중요했지만, 제사를 지내는 목적이 '조상님께 복을 빌어 후손들이 복을 누리는' 구복(복을 바라는)적인 경향이 더 강한 것이라, 죽은 뒤에 '영원한 안식'을 구하는 종교관보다 훨씬 더 '현세에서 잘 살고자' 하는 바람이 강한 것이다.

이렇게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했을까?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혼자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야 깜냥이 조금 못난 사람이어도, 재물이 풍족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주눅 들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더구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무얼 뜻하겠는가?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우선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다보면 '잘난 사람'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왜냐면 '모난 돌이 먼저 정 맞는다'고 튀는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평등을 강요하다보면 그 집단은 '하향평준화'가 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국사회는 유독 '경쟁'이 심했다. 아니 '빡센 경쟁'을 선호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덕분에 한국사회는 사회 전반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그 덕분에 국민 모두가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을 막고,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물론 전제왕권 시절에는 '골품제'와 '양천제(양반과 천민)'처럼 견고한 신분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계층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방법이 차단되어 있어서 그 효과가 미미했지만, 조선후기 신분제도가 허술해지고 부농과 거상이 등장하면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상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쉽게 찾기 힘든 현상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기 신분'에 만족(?)하고, 애써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수고를 잘 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자면 근대 초기에 혁명의 주체가 된 '부르주아 세력'을 꼽을 수 있겠지만, 한국사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거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상승욕구'를 불태우는 현상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런 '유교의 긍정적인 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고전소설이 바로 <구운몽>인데, 이렇게나 한국적인 고전에서 '유교적 색채'는 빛을 잃고 '불교적 색채'만 강조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영문판 제목인 <아홉 개의 구름과 꿈>에서 나오는 '꿈'을 일장춘몽으로 보지 않고, 입신양명을 바라는 욕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해석을 덧붙일 수 있는 것은 '평론가의 몫'이자, '뒤침이(번역가)의 몫'이 될 것이다. 현재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케데헌>으로 공부를 하고, <케데헌>으로 '한국의 멋'을 익히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세계의 어린이들이 한국의 고전을 스스로 찾아 읽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 분명하니, '아동문학가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굳이 외국의 말과 글로 뒤쳐내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어(한글) 공부'를 해서 우리 고전소설 <구운몽> 등등을 알아서 찾아 읽을 테니 말이다. 그들을 위해 '소개글' 정도는 각국의 말과 글로 뒤치는 수고를 해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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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4 : 수레바퀴 아래서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4
백문호 글, 전현경 그림, 윤순식 감수, 손영운 기획, 헤르만 헤세 원작 / 채우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4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 손영운 / 전현경 / 윤순식 / 채우리 (2013)

[My Review MMCXVIII / 채우리 26번째 리뷰] 영화 <위플래쉬>(2015)를 보면 '위대한 드러머'가 탄생하는 여정이 보인다. 이를 두고 우리 나라에서는 '플레쳐 교수'의 훌륭한 교육관 덕분이라며 '앤드류가 가진 재능'을 끄집어 내는 탁월한 교습법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에서는 정반대다. 탁월한 교습법은커녕 입만 열면 쌍욕에, 인종차별까지 서슴지 않는 정신이상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모습 자체라면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플레쳐 교수는 자신의 커리어와 명성을 쌓아줄 '완벽한 악단'을 만들기 위해서 학생들을 그야말로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은 저열함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이조차도 한국의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무한 경쟁을 통한 성장'으로 보았고, 그런 혹독한 경쟁시스템을 이겨내야 진정한 넘버원이 될 수 있다며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영화대사의 뒤침(번역)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원래의 영어대사는 욕설과 비하, 인종차별를 서슴지 않게 쓰는 프레쳐 교수에게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한국어 자막'은 이를 꽤나 순화(?) 시킨 덕분에 욕설이 욕설로 들리지 않았고, 권위가 높은 교수가 실력도 인정 받지 못한 학생에게 '그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한국어 자막'만 보았을 때에는 '영어 원문'을 해석한 것을 읽어보니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저열한 말들만 잔뜩 늘어놓고 있는 인간 말종 맞았다.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를 먼저 꺼낸 까닭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바로 영화속 '앤드류'와 비교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한스와 앤드류는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스는 엄격한 신학교의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중퇴한 뒤에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지만, 앤드류는 끔찍한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다가 교수에게 이용 당한 선배의 죽음을 전해 듣고, 교수를 파면시키는데 협력하게 된다. 이에 대한 앙갚음을 당한 앤드류는 큰 무대에서 대망신을 당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 엿 같은 교수에게조차 '인정'을 받을 정도의 환상적인 드럼 연주를 선보이게 된다. 영화는 여기서 끝을 맺었지만, 이후에 앤드류는 '전설적인 드러머'로 거듭나서 승승장구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감수한 윤순식 교수는 '한스 기벤라트'의 이름에서 뜻풀이를 해냈다. 주인공의 이름 'Giebenrath'는 독일어로 'Geben Sie mir Rat' 즉 "내게 충고를 해 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이다. 한스는 과연 어떤 충고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한스는 어릴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곧잘 받았다. 한스에겐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었기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려 애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보다 '더 큰 목표'를 제시할 뿐이었다. 바로 우수한 학생들만 진학한다는 '신학교'에 당당히 입학하고 졸업해서 성공적인 삶을 보장하는 '목사'가 되라고 말이다. 물론 착하고 성실한 한스가 이런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는 짓을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자 한스는 온 동네의 자랑이 되었고, 주위 어른들은 모두 한스가 훌륭한 목사가 될 재목이라며 엄청 기대를 하게 된다. 한스는 이런 어른들의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왜냐면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에 매진해야 했고, 그 결과 한스는 또래 친구들과 놀이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고, 좋아하던 '낚시'를 하는 것도 성적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동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다녀야 할 정도였다. 막상 신학교 입학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를 한 뒤에도 '잠깐'의 여유를 즐길새라, 신학교에서 배울 학습을 미리 '선행학습' 시키며 닦달하고 있었다. 이런 강요조차 한스는 묵묵히 따를 뿐이다. 왜냐면 한스는 '공부' 이외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 한스에게 그 누구도 '그걸'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다. 딱 한 사람 '플라이크 아저씨'만 빼고 말이다. 그는 한스가 공부에 쫓겨 놀지도 못할 때,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며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충고하고 놀기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 한스였지만 '플라이크 아저씨'의 말씀은 자신에게 좋은 말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플라이크 아저씨의 충고가 아주 적절했지만, 그 아저씨의 배움이 짧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충고'를 해줄 수는 없었다. 한스도 딱히 '그 이상의 충고'를 바라지는 않았고 말이다. 왜냐면 한스도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학교에서 '헤르만 하일너'라는 동기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한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건 바로 '문학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것이다. 특히 '시' 말이다. 하일너는 틈만 나면 한스에게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한스는 하일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엄격한 규율과 뛰어난 학업 성적을 요구하는 '신학교의 학업 분위기'였다. 신학교의 수업에는 '문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학교의 선생들은 모두 '하일너'를 문제아로 내몰았고, 하일너는 줄기차게 주장했다. 자신의 꿈은 목사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말이다. 한스는 하일너를 친구로 사귄다. 신학교 생활의 모든 것이 한스의 숨통을 죄었지만, 하일너는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헤르만 하일너'의 이름이 헤르만 헤세를 떠올리게 하고, '힐러(치유사)'라고 읽히는 것은 무리일까? 실제로 헤르만 헤세도 부모님이 원하는 목사가 아닌 '시인'이 되고파 자살을 하려 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스는 하일너와의 만남으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점점 더 심해지는 신경쇠약과 두통에 고통을 받게 된다. 어릴 적부터 공부만 해왔던 탓에 '건강'이 뒷받침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스는 '병약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하일너는 자주 반항을 했고, 급기야 선생들의 뒷배를 믿고 하일너를 괴롭히던 학우와 싸움을 벌이기까지 한다. 이 싸움을 결과로 학교선생들은 하일너에게 '근신'이란 벌을 내리고, 한스를 비롯한 누구도 하일너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엄금하기에 이른다. 한스는 이런 부당한 처사에 '하일너 편'을 들지도 못하고 머뭇거렸고, 그런 한스에게 배신감이 든 하일너는 한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을 한다. 이렇게 학교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졌으며, 건강까지 발목을 잡자, 한스의 성적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이런 한스를 걱정(?)하며 여러 조언을 해주지만, 그들의 조언이란 '성적 향상'을 위해서 부지런히 공부하기 위해 '잡생각' 따윈 집어치우라는 수준이었으며, 결정타는 문제아로 찍힌 '하일너'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경고 뿐이었다. 여기서도 한스는 고민에 빠진다. 어른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성적관리'를 하긴 해야겠는데, 하나 뿐인 친구인 '하일너'도 잃기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애초에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무리를 하게 되니 성적은 더 떨어지고, 친구와도 즐겁게 지내지 못한다.

결국, 건강이 발목을 잡자 한스는 자퇴를 하게 된다. 학교측에서도 건강해지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위로를 해주지만, 한 번 뒤쳐진 '성적'을 따라잡기는 이미 글렀으니, 다시 돌아오더라도 환영해줄 것 같지 않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이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한스의 아버지다. 마을의 자랑이자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는데, 그런 자랑거리가 '자퇴'를 하면서 사라져버렸으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마을에 도착하지마자 한스에게 '직장'을 알아봐주며 '돈벌이'를 배우라고 종용한다. 한스는 이마저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경험하게 된 한스는 '축하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강물에 뛰어든 것인지, 발을 헛디딘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말이다.

어떤가? 영화속 '앤드류'와 사뭇 다르지 않은가? 앤드류도 한스와 비슷한 학교생활을 한다. 우수한 성적을 가졌기에 '플레쳐 교수'에게 전격 발탁이 되는 영광을 받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플레쳐 교수에게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하며 '기량 올리기'에만 종용 당한다. 조금이라도 플레쳐 교수의 눈밖에 나면 그 길로 짐을 싸서 쫓겨나야 했고, 실력이 쫓아가지 못하면 '다른 연주자'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앤드류는 끝까지 버틴다. 정말 엿 같은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그 엿 같은 상황을 겪은 것이 앤드류 혼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례로 인해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는 '위원회' 측의 권고를 따라 '플레쳐 교수'를 고소한 뒤에 교수자리에서 파면시키는데 협조한다. 그렇게 플레쳐 교수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지만, 앤드류는 방황을 한다. 최고의 기량을 올리기 위해서 더 많은 연습과 코칭이 필요했는데, 플레쳐 교수의 실력만큼 앤드류를 잘 지도할 교수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에서 쫓겨난 플레쳐가 '개인 악단'을 만들었고, 마침 앤드류 만한 실력의 '드럼 연주자'가 필요하니 생각이 있으면 합류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함정'이었다. 연주자에게 카네기 홀 연주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망신을 당한다면 앞으로 연주자로 성공할 가능성은 완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레쳐는 앤드류를 개망신 당하게 만든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 개망신을 극복하고 수많은 관객 앞에서 '신명나는 드럼 연주'를 보여준다. 최고 중의 최고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명연주를 말이다.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는 종종 대한민국의 엄청난 학구열을 비판하는데 종종 입에 오르곤 한다. 주위 어른들의 위압적이고 학교교육의 권위적인 것에 비판을 하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위선적인 교육'을 강압할 것이 아니라, 진짜 '참교육'을 위해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어김없이 회자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학생들이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까지 한 나약한 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 오해를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건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서 플레쳐 교수의 무자비한 교습법이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다. 학생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행 되는 '잘못된 관행'이 우리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쳐도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왜냐면 그런 잘못이 많더라도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더 많은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만 한다'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수레바퀴 아래서>도 바로 그런 '나쁜 사회 분위기' 아래 깔리기 직전에 놓인 아이들이란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것이 어른들에겐 명예이고, 영광일지 모르지만, 그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고 고통 받으며, 심지어 깔려 죽어나가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쁜 수레바퀴' 탓을 하지 않고 '깔려 죽은' 아이들만 탓하는 억눌린 사회의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런 '배경지식'을 알려주고서 이 책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자신들이 경험하는 학창시절에 '문제'가 많구나 싶을 것이다. 물론 그걸 깨달은 학생들이 그 문제를 당장 바로 잡지는 못할 것이다. 허나 그런 '문제의식'을 깊이 고민해본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면, 그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해결법'을 분명히 찾아낼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어른들이 그런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 수가 너무 적다. 더 많은 어른들이 깨우쳐야만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올바른 가치관'을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정말이지 읽을 때마다 깊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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