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4 : 수레바퀴 아래서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4
백문호 글, 전현경 그림, 윤순식 감수, 손영운 기획, 헤르만 헤세 원작 / 채우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4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 손영운 / 전현경 / 윤순식 / 채우리 (2013)

[My Review MMCXVIII / 채우리 26번째 리뷰] 영화 <위플래쉬>(2015)를 보면 '위대한 드러머'가 탄생하는 여정이 보인다. 이를 두고 우리 나라에서는 '플레쳐 교수'의 훌륭한 교육관 덕분이라며 '앤드류가 가진 재능'을 끄집어 내는 탁월한 교습법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에서는 정반대다. 탁월한 교습법은커녕 입만 열면 쌍욕에, 인종차별까지 서슴지 않는 정신이상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모습 자체라면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플레쳐 교수는 자신의 커리어와 명성을 쌓아줄 '완벽한 악단'을 만들기 위해서 학생들을 그야말로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은 저열함을 보여줬다. 그렇지만 이조차도 한국의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무한 경쟁을 통한 성장'으로 보았고, 그런 혹독한 경쟁시스템을 이겨내야 진정한 넘버원이 될 수 있다며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영화대사의 뒤침(번역)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원래의 영어대사는 욕설과 비하, 인종차별를 서슴지 않게 쓰는 프레쳐 교수에게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한국어 자막'은 이를 꽤나 순화(?) 시킨 덕분에 욕설이 욕설로 들리지 않았고, 권위가 높은 교수가 실력도 인정 받지 못한 학생에게 '그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한국어 자막'만 보았을 때에는 '영어 원문'을 해석한 것을 읽어보니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저열한 말들만 잔뜩 늘어놓고 있는 인간 말종 맞았다.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를 먼저 꺼낸 까닭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바로 영화속 '앤드류'와 비교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한스와 앤드류는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스는 엄격한 신학교의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중퇴한 뒤에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지만, 앤드류는 끔찍한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다가 교수에게 이용 당한 선배의 죽음을 전해 듣고, 교수를 파면시키는데 협력하게 된다. 이에 대한 앙갚음을 당한 앤드류는 큰 무대에서 대망신을 당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 엿 같은 교수에게조차 '인정'을 받을 정도의 환상적인 드럼 연주를 선보이게 된다. 영화는 여기서 끝을 맺었지만, 이후에 앤드류는 '전설적인 드러머'로 거듭나서 승승장구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감수한 윤순식 교수는 '한스 기벤라트'의 이름에서 뜻풀이를 해냈다. 주인공의 이름 'Giebenrath'는 독일어로 'Geben Sie mir Rat' 즉 "내게 충고를 해 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이다. 한스는 과연 어떤 충고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한스는 어릴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곧잘 받았다. 한스에겐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었기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려 애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보다 '더 큰 목표'를 제시할 뿐이었다. 바로 우수한 학생들만 진학한다는 '신학교'에 당당히 입학하고 졸업해서 성공적인 삶을 보장하는 '목사'가 되라고 말이다. 물론 착하고 성실한 한스가 이런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는 짓을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자 한스는 온 동네의 자랑이 되었고, 주위 어른들은 모두 한스가 훌륭한 목사가 될 재목이라며 엄청 기대를 하게 된다. 한스는 이런 어른들의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왜냐면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에 매진해야 했고, 그 결과 한스는 또래 친구들과 놀이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고, 좋아하던 '낚시'를 하는 것도 성적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동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다녀야 할 정도였다. 막상 신학교 입학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를 한 뒤에도 '잠깐'의 여유를 즐길새라, 신학교에서 배울 학습을 미리 '선행학습' 시키며 닦달하고 있었다. 이런 강요조차 한스는 묵묵히 따를 뿐이다. 왜냐면 한스는 '공부' 이외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 한스에게 그 누구도 '그걸'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다. 딱 한 사람 '플라이크 아저씨'만 빼고 말이다. 그는 한스가 공부에 쫓겨 놀지도 못할 때,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며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충고하고 놀기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 한스였지만 '플라이크 아저씨'의 말씀은 자신에게 좋은 말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플라이크 아저씨의 충고가 아주 적절했지만, 그 아저씨의 배움이 짧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충고'를 해줄 수는 없었다. 한스도 딱히 '그 이상의 충고'를 바라지는 않았고 말이다. 왜냐면 한스도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학교에서 '헤르만 하일너'라는 동기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한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건 바로 '문학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것이다. 특히 '시' 말이다. 하일너는 틈만 나면 한스에게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한스는 하일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엄격한 규율과 뛰어난 학업 성적을 요구하는 '신학교의 학업 분위기'였다. 신학교의 수업에는 '문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학교의 선생들은 모두 '하일너'를 문제아로 내몰았고, 하일너는 줄기차게 주장했다. 자신의 꿈은 목사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말이다. 한스는 하일너를 친구로 사귄다. 신학교 생활의 모든 것이 한스의 숨통을 죄었지만, 하일너는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헤르만 하일너'의 이름이 헤르만 헤세를 떠올리게 하고, '힐러(치유사)'라고 읽히는 것은 무리일까? 실제로 헤르만 헤세도 부모님이 원하는 목사가 아닌 '시인'이 되고파 자살을 하려 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스는 하일너와의 만남으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점점 더 심해지는 신경쇠약과 두통에 고통을 받게 된다. 어릴 적부터 공부만 해왔던 탓에 '건강'이 뒷받침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스는 '병약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하일너는 자주 반항을 했고, 급기야 선생들의 뒷배를 믿고 하일너를 괴롭히던 학우와 싸움을 벌이기까지 한다. 이 싸움을 결과로 학교선생들은 하일너에게 '근신'이란 벌을 내리고, 한스를 비롯한 누구도 하일너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엄금하기에 이른다. 한스는 이런 부당한 처사에 '하일너 편'을 들지도 못하고 머뭇거렸고, 그런 한스에게 배신감이 든 하일너는 한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을 한다. 이렇게 학교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졌으며, 건강까지 발목을 잡자, 한스의 성적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이런 한스를 걱정(?)하며 여러 조언을 해주지만, 그들의 조언이란 '성적 향상'을 위해서 부지런히 공부하기 위해 '잡생각' 따윈 집어치우라는 수준이었으며, 결정타는 문제아로 찍힌 '하일너'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경고 뿐이었다. 여기서도 한스는 고민에 빠진다. 어른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성적관리'를 하긴 해야겠는데, 하나 뿐인 친구인 '하일너'도 잃기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스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애초에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무리를 하게 되니 성적은 더 떨어지고, 친구와도 즐겁게 지내지 못한다.

결국, 건강이 발목을 잡자 한스는 자퇴를 하게 된다. 학교측에서도 건강해지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위로를 해주지만, 한 번 뒤쳐진 '성적'을 따라잡기는 이미 글렀으니, 다시 돌아오더라도 환영해줄 것 같지 않음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이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한스의 아버지다. 마을의 자랑이자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는데, 그런 자랑거리가 '자퇴'를 하면서 사라져버렸으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마을에 도착하지마자 한스에게 '직장'을 알아봐주며 '돈벌이'를 배우라고 종용한다. 한스는 이마저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경험하게 된 한스는 '축하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강물에 뛰어든 것인지, 발을 헛디딘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말이다.

어떤가? 영화속 '앤드류'와 사뭇 다르지 않은가? 앤드류도 한스와 비슷한 학교생활을 한다. 우수한 성적을 가졌기에 '플레쳐 교수'에게 전격 발탁이 되는 영광을 받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플레쳐 교수에게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하며 '기량 올리기'에만 종용 당한다. 조금이라도 플레쳐 교수의 눈밖에 나면 그 길로 짐을 싸서 쫓겨나야 했고, 실력이 쫓아가지 못하면 '다른 연주자'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앤드류는 끝까지 버틴다. 정말 엿 같은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그 엿 같은 상황을 겪은 것이 앤드류 혼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례로 인해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는 '위원회' 측의 권고를 따라 '플레쳐 교수'를 고소한 뒤에 교수자리에서 파면시키는데 협조한다. 그렇게 플레쳐 교수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지만, 앤드류는 방황을 한다. 최고의 기량을 올리기 위해서 더 많은 연습과 코칭이 필요했는데, 플레쳐 교수의 실력만큼 앤드류를 잘 지도할 교수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에서 쫓겨난 플레쳐가 '개인 악단'을 만들었고, 마침 앤드류 만한 실력의 '드럼 연주자'가 필요하니 생각이 있으면 합류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함정'이었다. 연주자에게 카네기 홀 연주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망신을 당한다면 앞으로 연주자로 성공할 가능성은 완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레쳐는 앤드류를 개망신 당하게 만든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 개망신을 극복하고 수많은 관객 앞에서 '신명나는 드럼 연주'를 보여준다. 최고 중의 최고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명연주를 말이다.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는 종종 대한민국의 엄청난 학구열을 비판하는데 종종 입에 오르곤 한다. 주위 어른들의 위압적이고 학교교육의 권위적인 것에 비판을 하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위선적인 교육'을 강압할 것이 아니라, 진짜 '참교육'을 위해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어김없이 회자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학생들이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그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까지 한 나약한 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 오해를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건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서 플레쳐 교수의 무자비한 교습법이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다. 학생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행 되는 '잘못된 관행'이 우리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쳐도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왜냐면 그런 잘못이 많더라도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더 많은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만 한다'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수레바퀴 아래서>도 바로 그런 '나쁜 사회 분위기' 아래 깔리기 직전에 놓인 아이들이란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것이 어른들에겐 명예이고, 영광일지 모르지만, 그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고 고통 받으며, 심지어 깔려 죽어나가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쁜 수레바퀴' 탓을 하지 않고 '깔려 죽은' 아이들만 탓하는 억눌린 사회의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런 '배경지식'을 알려주고서 이 책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자신들이 경험하는 학창시절에 '문제'가 많구나 싶을 것이다. 물론 그걸 깨달은 학생들이 그 문제를 당장 바로 잡지는 못할 것이다. 허나 그런 '문제의식'을 깊이 고민해본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면, 그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해결법'을 분명히 찾아낼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어른들이 그런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 수가 너무 적다. 더 많은 어른들이 깨우쳐야만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올바른 가치관'을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정말이지 읽을 때마다 깊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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