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 아동문학가 강원희 선생님이 다시 쓴 우리고전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우리 고전 20
김만중 원작, 강원희 글 / 영림카디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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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우리 고전 20>  김만중 / 강원희 / 알라딘북스 (2016)

[My Review MMCXIX / 알라딘북스 1번째 리뷰] 아동문학가이자 평론가인 강원희가 풀어쓴 <구운몽>이다. 특히 그녀는 1922년에 영국에서 <The Story of Guunmong>으로 '영문'으로 소개한 내용도 책에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의 특별한 언급은 없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어려운 어휘를 쉽게 풀어쓰는데 역점을 둔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책 치고는 두꺼운 편(268쪽)인데, 어려운 한자어휘에 대한 뜻풀이를 '칼럼' 부분에 적어 놓았기에 '전체 쪽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상 '생략'된 부분은 없지만, 스토리가 빠르게 전개되는 점이 어린이가 읽기에 딱 좋은 책으로 보인다.

앞서 '영문판'도 소개했는데, 그 제목은 '아홉 개의 구름과 꿈'으로 적었다. 또한 '일본판'도 있었고 좋은 평판이었다는 언급만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판의 제목은 그대로 <구운몽>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리고 이 책의 줄거리도 간추려보니 '불교적인 주제'를 매우 강하게 어필한 듯 싶다. 교과서에도 <구운몽>에는 '유불선의 융합'을 언급하고 있는데, 영문판의 제목으로 유추한 것을 보면 '유교와 도교적 색채'보다는 불제자 성진이 한바탕 꿈을 꾸고 난 뒤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에 중점을 둔 해석을 강조한 듯 싶다. 서양에서도 장자가 꾼 '나비의 꿈'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그런 색채를 더 강조한 듯 싶다. 하긴 우리 독자들도 '일장춘몽'이라는 세상 만사 모든 것이 헛되고 또 헛되다는 의미로 <구운몽>을 이해하고 있을 테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에게 <구운몽>의 진면목을 이해시켜주기 위해서는 '유교적인 이상향'을 잘 보여준 '양소유의 삶'을 좀 더 깊이 조명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한국의 멋'에 대한 극찬도 정말 듣기 좋아서, 그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만끽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서양인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예절'이라고 한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자기를 앞세우기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며 겸손한 마음가짐을 '예의'라고 말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에 경외심을 느낀다면서 말이다. 이런 예절, 공경, 겸손 등등이 다 어디서 유래했단 말인가? 다름 아닌 '유교의 가르침'이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신'을 숭배하기보다는 '충과 효'와 같이 '현실세계'에 꼭 필요한 일상규칙을 더 중시 여긴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한국 전통의 사상인 '현세구복적인 종교관'이 만나서 한국의 유교는 더욱더 '현세적인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쉽게 말해, 죽은 다음의 세상(내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현세)에서 잘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돌아가신 분'께 성대한 제사를 치루는 등 '제사문화'가 아주 중요했지만, 제사를 지내는 목적이 '조상님께 복을 빌어 후손들이 복을 누리는' 구복(복을 바라는)적인 경향이 더 강한 것이라, 죽은 뒤에 '영원한 안식'을 구하는 종교관보다 훨씬 더 '현세에서 잘 살고자' 하는 바람이 강한 것이다.

이렇게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했을까?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혼자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야 깜냥이 조금 못난 사람이어도, 재물이 풍족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주눅 들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더구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무얼 뜻하겠는가?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우선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다보면 '잘난 사람'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왜냐면 '모난 돌이 먼저 정 맞는다'고 튀는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평등을 강요하다보면 그 집단은 '하향평준화'가 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국사회는 유독 '경쟁'이 심했다. 아니 '빡센 경쟁'을 선호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덕분에 한국사회는 사회 전반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그 덕분에 국민 모두가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을 막고,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를 이루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물론 전제왕권 시절에는 '골품제'와 '양천제(양반과 천민)'처럼 견고한 신분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계층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방법이 차단되어 있어서 그 효과가 미미했지만, 조선후기 신분제도가 허술해지고 부농과 거상이 등장하면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상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쉽게 찾기 힘든 현상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기 신분'에 만족(?)하고, 애써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수고를 잘 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자면 근대 초기에 혁명의 주체가 된 '부르주아 세력'을 꼽을 수 있겠지만, 한국사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거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상승욕구'를 불태우는 현상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런 '유교의 긍정적인 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고전소설이 바로 <구운몽>인데, 이렇게나 한국적인 고전에서 '유교적 색채'는 빛을 잃고 '불교적 색채'만 강조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영문판 제목인 <아홉 개의 구름과 꿈>에서 나오는 '꿈'을 일장춘몽으로 보지 않고, 입신양명을 바라는 욕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해석을 덧붙일 수 있는 것은 '평론가의 몫'이자, '뒤침이(번역가)의 몫'이 될 것이다. 현재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케데헌>으로 공부를 하고, <케데헌>으로 '한국의 멋'을 익히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세계의 어린이들이 한국의 고전을 스스로 찾아 읽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 분명하니, '아동문학가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굳이 외국의 말과 글로 뒤쳐내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어(한글) 공부'를 해서 우리 고전소설 <구운몽> 등등을 알아서 찾아 읽을 테니 말이다. 그들을 위해 '소개글' 정도는 각국의 말과 글로 뒤치는 수고를 해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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