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의 법칙 - 충돌하는 국제사회, 재편되는 힘의 질서 서가명강 시리즈 36
이재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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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 36] <지배의 법칙 : 충돌하는 국제사회 , 재편되는 힘의 질서>  이재민 / 21세기북스 (2024)

[My Review MMXLV / 21세기북스 38번째 리뷰] 바야흐로 '신(新)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양극의 축으로 삼아 극강의 대립을 선보였던 '1차 냉전시대'에 이어 '미국과 중국'의 대립 양상으로 시작된 '2차 냉전시대'는 양분되어서 벌이는 대립양상을 보이는 것을 넘어 '다극 체제', 또는 '무극 체제'로 사분오열된 전세계적인 대혼란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차 냉전시대'에는 무엇을 중심으로 놓고 갈등을 벌이는 것일까? 1차 때에는 '이념(이데올로기) 갈등'이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우기는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끝내는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듯이 극한의 대결을 선보였다. 그러다 1990년대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산주의'는 패배를 선언하고, 전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새로 정립되었다.

그렇다면 '2차 냉전시대'에는 무엇이 갈등을 야기한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패권주의'다. 지금도 미국은 전세계를 주름잡는 '초강대국'으로 다들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미국의 입김'이 그리 쎄지 않아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미국을 물로 보고, '미국의 중재'로 못할 것이 없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 되지 않고 있다. 일단 중국과 벌이는 '무역전쟁'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력이 그만큼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고, 중국의 입김도 나름 쎄지기는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미국의 위력을 좀처럼 엿볼 수가 없다. 러시아의 군사력을 둘째 치고, 미국의 군사력이 러시아를 상대로 압도하고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병력지원을 해서 단숨에 전황을 역전시킬 수 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또 어떤가? 미국이 아무리 이스라엘 편을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민간인 대학살에까지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전세계는 미국의 위상이 참 많이 추락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초강대국이고, 전세계 1위의 경제대국인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막강한 실력행사를 할 수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계 경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미국 하나만 남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여전히 미국이 '경제계의 큰 손'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에 미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나라들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치한 변덕(?)을 부려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라는 트럼프의 호언을 장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세계 여러 국가들은 트럼프의 비위(?)를 맞춰서라도 당장 '자국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냅두고 있는 형국이다. 도저히 못봐줄 정도의 미치광이 짓거리지만, 그걸 빌미로 훗날 미국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심리도 작용하는 듯 싶다.

암튼, 이런 '신 냉전시대'를 맞이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국제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무엇인지 간파하는 것이다. 그 기준이 될 것으로 '국제법'과 '국제규범'이라는 도구가 있음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세상이 엿 같이 돌아가서 배알에 꼴리더라도, 그 문제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바로 '국제법'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분열하는 혼란스런 세계라면 더욱더 '국제법'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니 우리는 이를 적극 활용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동시에 이익을 최대로 삼을 수 있게 도모하려면 '국제법'에 능통해야 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제법'이 실제로 발휘된 적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국제법'이 강대국의 무기는 되었을지언정 약소국들의 억울한 사정을 봐준 경우도 극히 드물다는 사실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힘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정의롭지 못한 국제법에 목을 매야 하는 게 옳은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한다. 왜일까? 그건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법을 잘 지키면 손해를 보는 것보다 이익을 얻는 것이 더 크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단다. 분명 대한민국은 약소국일 때 '국제법'이 족쇄처럼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국제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억압과 손해를 더 많이 보는 불의한 조약을 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인정 받고, 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대국'으로 그 실력을 증명했다. 그런 까닭에 전세계는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고, 큰 갈등이 있을 때 '대한민국'이 해결방안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경우도 과거에 비해서 엄청 많아졌다.

그런 예들은 너무 많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대한민국'이 누구를 편들까에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지경이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군수방위업체가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러브콜을 보냈고, 심지어 우크라이나는 지금도 한국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지원해달라고 끝없는 요청을 보내고 있다. 허나 그런 식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멍청이다. 왜냐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한민국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침략국인 러시아 편을 드는 것은 말도 안 되고, 피해국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는 것은 도의적으로 해줄 법도 싶지만, 우크라이나가 딱히 대한민국이 반드시 도와줘야 할 '우방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줄 까닭도 없다. 더구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러시아는 대한민국의 '최대교역국'이었다. 러시아는 대한민국을 좋아했고, 대한민국의 물건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와 하루 아침에 교역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오로지 '미국 탓'이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적대시하고 있으니 러시아에게 침략 당한 우크라이나를 도와줘야 한다면서 미국이 한국을 끌여들였고, 이를 본 러시아는 대한민국에게 우크라이나를 돕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우리는 현명하게 양쪽 모두를 돕지 않겠다며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하거나 지원하는 일은 하지 않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피해국에게 의료지원을 해주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여기서 '선'을 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으면 대한민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에 양쪽 모두에게서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왜냐면 러시아 편을 들었던 나라들은 '우크라이나 재건복구사업'에 뛰어들지 못할 것이고, 우크라이나 편을 들었던 나라들은 '러시아 경제회복사업'에 동참하기를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쪽 모두에게 원한 살 일을 하지 않고, 양쪽과 관계도 소원해지지 않았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 확실히 믿고 사업을 맡길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건설, 반도체, 전자제품 등등 첨단사업부터 근면성실한 일꾼까지 전세계 탑티어 1등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만이 그걸 감당할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그 역량을 발휘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것 가운데 우선적인 것이 바로 '국제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이 약소국일 때에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려서 '불평등조약(?)'까지 맺는 설움을 당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 전 세계를 상대로 대한민국에게 유리한 '조약'과 '규범'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 시킬 수 있는 국제적 위상까지 갖추었으니 말이다. 물론 '국제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무용론도 있다. 바로 트럼프처럼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패권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횡포를 부린다면 이를 저지하며 '실력행사' 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대한민국에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단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국제법'이 무용지물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아무리 국제법이 '힘의 논리'에 의해서 유명무실한 경우로 전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전세계가 '국제법'을 어긴 국가를 가만 두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에도 여러 번 보여주었던 방식이다. 미소간의 갈등속에 피해만 보던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서 '약소국의 단결력'을 보여주었고, 결국 강대국인 미소 양국도 '다자주의'를 인정하며, 저들에게만 유리했던 국제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낸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국의 힘만 믿고 '국제법'을 무시하는 등의 행동을 일삼게 되면, 결국 '후폭풍'이 불기 마련이고, '뒷감당'을 해낼 각오가 없다면 아무리 유명무실한 국제법이라도 쉽사리 어길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십분 활용해야 할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럼 향후 미래에 대한민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까? 이 책 <지배의 법칙>에서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 대한민국의 앞선 기술력으로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 수 있고, '우주 경쟁'이 펼쳐지면 나로호와 다누리호도 자력으로 발사할 능력을 갖췄기에 금세 따라잡을 수 있으며, '극지 쟁탈'이 심해질 때,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인 유리함으로 북극항로와 남극대륙, 모두를 대한민국의 '이익선'으로 포함할 수 있을 역량이 충분한 나라라고 조목조목 근거를 나열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대한민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데 아주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나라이기에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의 진정한 힘을 전세계에 보여줄 때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국제법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승자의 무기'라면서 우리의 관심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공감을 많이 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괴롭히던 불평등하고 부당한 조약이나 규범 들이 얼마나 많이 들먹였던가?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눈 뜨고 코 베인 격으로 맺은 강대국들과의 조약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걸림돌이었느냔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었으니 상황은 역전되었다. 우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던 '국제법'들은 이제 대한민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맺을 수도 있는 유용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를 괴롭히던 기억을 떠올려서 복수심을 불태우고, 손해를 본 만큼 본전을 되찾겠다면서 '악용'할 작정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실컷 욕을 하던 '제국주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가 되어선 안 된다. 진정한 패권 국가라면 서로의 이익과 균형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공정한 국제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후폭풍이 불지 않게 된다. 당장의 이익을 도모하다 나중에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때가 되면 '나쁜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손실을 만회하고 이익을 최대를 늘리기 위해서 약소국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국제법을 다시 만들어서 강요하곤 했지만, 대한민국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런 설움을 받았지만, 극복하고 당당히 우뚝 선 유일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패권 국가들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삼으며 힘을 과시했지만, 대한민국은 '문화선진국'으로 우뚝 서서 전세계를 감명시키고 뛰어난 '첨단기술력'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강대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대한민국이 만든 '국제법'은 뭔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우리가 보여주면 된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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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 : 플러드 헤일로
윌리엄 C. 디츠 지음, 정호운 옮김 / 제우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헤일로 : 플러드>  윌리엄 C. 디츠 / 정호운 / 제우미디어 (2015) [원제: Halo : The Flood]

[My Review MMXLIV / 제우미디어 2번째 리뷰] 새로운 SF소설을 읽을 때마다 버거운 것은 '방대한 세계관'을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이 완수 되고 난 뒤에는 그저 즐기면 될 뿐이다. 더구나 '광활한 우주'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SF소설이라면 이 과정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만화'로 이미지메이킹이 된 작품인 경우에는 그 과정이 좀 수월한 편이다. '플레이'를 한 경험을 토대로 세계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만화'로 먼저 입력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비록 삽화 하나 없이 '텍스트'에 기반한 SF소설이라 할지라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경우엔 <헤일로>라는 게임을 해보지 못했다. '최초의 콘솔 FPS(1인칭 슈팅게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는데, 그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나는 <헤일로>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메이킹'에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다만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시청했었다. 초반 스토리는 그저 그랬는데 중요 인물로 '한국말'을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에 흥미가 생겼고, 중반을 넘기니 나름 볼만 했다. 그래서 소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무작정 구매를 하긴 했는데, '판권 소멸'로 인해서 더는 유통 계획이 없는 도서가 되어 버려서 해당 도서를 모두 구매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판매했던 책이 <헤일로 : 플러드>, <헤일로 : 선제공격 작전>, <헤일로 : 사일런티움> 이렇게 세 권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시리즈의 순서를 전혀 몰랐던 탓에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순서'를 알게 된 시리즈는 <헤일로 : 리치 행성의 함락>이 1권이고, <헤일로 : 플러드>가 2권, 그리고 <헤일로 : 선제공격 작전>이 3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구매에 성공한 <헤일로 : 사일런티움>은 별도의 '선조 3부작'의 마지막 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알아봐야겠다. 암튼, 읽는 순서는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일단 '시리즈의 순서'를 알게 되었으니, 나름의 세계관을 확립하면서 차근차근 읽어야 할 것이다. 판권 소멸로 인해서 책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다 읽을 수 있을지도 장담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일단, <헤일로 : 플러드>를 읽었다. 첫 소감은 <스타크래프트>를 읽는 느낌이었다. <드라마 헤일로>를 시청할 때도 살짝 그런 느낌이 있긴 했지만, 소설로 읽으니 더욱 그런 느낌이 확연하게 들었다. 사실 '소설'과 '드라마'의 내용이 서로 딴판이라고 '저자(그렉 베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드라마'에서는 헤일로가 잠깐 등장하는데 반해서, '소설'에서는 아예 그냥 '헤일로'에서 인간과 코버넌트, 그리고 플러드가 치열하게 살육전을 벌이고 있었다. 앞으로 '드라마 헤일로 시즌3'가 나오게 된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도 사뭇 다르고, 드라마에선 '한국계 인간종족'이 등장하는데, 소설에선 '일본계 인간종족'이 등장하는 차이점도 있었다. 어쨌든 소설을 읽고 있으니 소설이야기만 주로 한다면, <스타크래프트> 느낌이 물씬 났다.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스타크래프트>에서는 3종족이 서로 각축전을 벌인다. 서기 3000년이 넘은 지구에서 '범죄자'들을 우주선에 실어 저 먼 우주 낯선 행성을 향해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범죄자 집단이라 하더라도 일단 '한 배를 탄 운명'이 되고 나니, 일종의 '개척자'의 위치가 되어 인간이 살만한 행성에 자리 잡고 터전을 일구게 된다. 이들을 '테란'이라 부른다. 그렇게 테란은 개척을 위해 이곳 저곳을 탐색하다가 마주친 '외계종족'이 바로 '저그'다. 저그는 괴상망측하게 생긴 생물체로 다른 생명체를 '감염'시킨 뒤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저그종족화에 성공하면 '대군주(오버로드)'의 일원화된 명령체계에 따르는 독특한 생명체다. 이렇게 테란과 저그의 만남으로 싸움이 시작되지만, 처음엔 테란이 우월한(?) 테세로 온순한(?) 저그 종족을 생포해서 연구를 시작한다. 물론 '저글링'만 보더라도 아주 무시무시한 살육본능을 숨기지 않기에 '극비'리에 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이 저그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숙주'가 된 인간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부터 테란과 저그는 만나자마자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이게 되는데, 저그의 대군주가 '테란의 존재'를 알게 되고 테란을 감염시켜서 '새로운 저그종족'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서 서서히 접근하게 된다.

사실, 저그종족은 온순한 생명체였다. 이들을 창조한 존재는 따로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너무 발달한 고도문명의 결정체, '프로토스'종족이었다. 이 프로토스종족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고서 관찰을 하였는데, 그 생명체가 바로 '저그'종족이었다. 그런데 저그종족의 대군주가 어느날 '프로토스의 존재'를 간파한 것이다. 애초에 저그종족에는 '날짐승'이 없었다. 대군주가 허공에 둥둥 떠다닐 수는 있었지만, 그런 정도로는 행성 바깥으로 진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 좋게 저그종족이 살던 행성에 '날짐승'을 감염시키게 되었고, 여러 돌연변이를 시도한 대군주는 드디어 행성 바깥으로, 다시 말해 '우주공간'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저그종족으로 변이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창공을 날아다니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존재, 즉 '프로토스'를 감염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프로토스'종족의 고도문명을 흡수한 저그의 대군주는 '또 다른 생명체'를 감염시켜 돌연변이를 만들 계획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종족이 바로 '테란'인 것이다.

한편, 프로토스는 저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게 된다. 분명 자신들보다 '하위종족'에 불과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통제불능'이 되어 버린 저그를 감당하지 못하고, 저그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프로토스의 '고향별'까지 저그에게 빼앗기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를 막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테란종족'과 힘을 합해서 저그를 저지하려 들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으로 인해서 테란과 프로토스도 갈등과 평화를 오고 가는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그럼에도 프로토스는 테란과 손을 잡고 저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이에 저그의 대군주는 '테란'과 돌연변이를 통해서 '새로운 군주(퀸)'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여기에 협력하는 테란의 미치광이 권력집단에 의해 '고스트대원(클로킹 저격병)' 한 명이 저그에게 사로잡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렇게 계획된 '감염'으로 인해 테란의 정예 고스트대원을 잃게 되고, 저그종족으로서는 자신들의 새로운 군주 '퀸'을 얻게 된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테란은 '지구'로부터 원군을 요청하게 되고, 새로 들이닥친 테란군과 기존의 테란군 사이에 갈등과 반목으로 인해서 힘겨운 싸움속에 프로토스와 저그의 총공세를 맞이하게 되는 우주 대서사시가 바로 <스타크래프트>다.

이런 익숙한 '세계관'에 새로 읽는 <헤일로>라는 세계관을 '일대일 대응'을 하면서 차근차근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먼저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하는 <헤일로 : 리치 행성의 함락>에서는 '인간 vs 코너번트'의 결전이 펼쳐졌던 모양이다. 코버넌트의 외형은 거의 '프로토스'의 질럿(광전사)과 아콘(집정관)을 빼다 박았다. 이에 맞서는 인간은 전형적인 '해병대'의 모습이지만, 일반 병사들로는 코버넌트의 강력한 무기와 화력 앞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쓸려나갈 정도다. 그렇지만 인간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특수한 전투병사를 새로 만드는데, 이를 '스파르탄'이라 부른다. 스파르탄은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고 감정도 지워버리고(마인드컨트롤) '강화 갑옷(묠니르 전투복)'을 입고서 엄청난 전투력을 선보이는데, '스파르탄'이 등장하면 코버넌트의 엘리트 전사들조차 그냥 썰려나가는 정도가 된다. 이런 '스파르탄' 병사를 이끄는 '마스터 치프(상등 상사)'가 있는데, 그가 바로 '스파르탄 117 마스터 치프'인 존이다. 다른 스파르탄 대원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췄고,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극적인 승리를 거둔 전적 때문에 '마스터 치프'의 등장만으로도 전세는 뒤바뀌고, 패색이 짙었던 전장에서도 '스파르탄 대원'이 등장하면 아군의 사기가 치솟아올라 결국 승리를 해내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 하게 되자, '스파르탄'의 명성은 엄청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스파르탄'에게도 어두운 음모가 있었고, 그렇게나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인간이 겪었다기에 너무도 끔찍한 '훈련과정'이 밝혀지면서 스파르탄 대원의 존속마저 위태롭게 되고 말았다. 1권에서 그 비밀이 밝혀졌을 텐데, 스파르탄 대원으로 인정받는 그 '훈련과정'이 사실은 헬시 박사라고 하는 연구원의 개인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한 범죄(뛰어난 자질을 갖춘 소년소녀 납치했다가 부모에게는 '(오래 살지 못하는) 시한부 복제인간'을 귀가시켰다)를 저지른 뒤에, 졸지에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면서 비인간적인 고도의 훈련을 시키고, 통과하지 못하면 그냥 죽게 내다버리는 비열한 방식으로 길러낸 '사병집단'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파르탄 대원'은 헬시 박사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게 만드는 '칩'을 뇌에 이식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스파르탄'을 말살하고, 폐기하려던 찰나에 코버넌트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서 마지막 거점 행성인 '리치 행성'까지 코버넌트 종족에게 내어주고 '필라 오브 어텀'이라는 함선에 남은 생존자를 태우고 '헤일로'라는 고리형 행성으로 향했던 것이다.

암튼, '스파르탄'에 대한 이미지는 '게임 스타크래프트'속의 마린(해병대)이 공방 풀업을 한 뒤, '스팀팩(아드레날린주사)'을 맞고서 돌격하는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에너지 방패'와 '방어막'을 겹겹이 둘러싼 질럿(광전사)과 드래군이 쏘는 광자펄스탄을 난사하는 전장터가 펼쳐지는 접전이 연상될 정도였다. 이렇게 '테란 vs 프로토스'의 대결양상이 펼쳐지던 것이 1권의 내용이었다면, 2권인 <헤일로 : 플러드>에서는 드디어 '저그종족'에 해당하는 감염기생체 '플러드'가 등장하게 된다. 다름 아닌 '헤일로' 속에서 오래 전 선조가 섬멸하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플러드'가 뛰쳐나오면서 코버넌트와 인간을 가리지 않고 '감염'시키며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그렇게 변이를 마친 '플러드' 들이 되려 코버넌트 전사들과 인간 병사들을 향해서 공격을 해온 것이다. 선조들이 남겼다는 '고대병기' 헤일로를 손에 넣고 서로 상대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꿈에 부풀었는데, 그 '고대무기'속에서 난데없이 '플러드'가 등장해서 되려 자신들이 전멸될 위기에 처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플러드의 위력'은 너무 막강했다. 선조들이 괜히 '헤일로'를 가동시켜 플러드를 섬멸하는 방법을 쓴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코버넌트와 인간도 선조들과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렇지 않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헤일로 : 선제공격 작전>에서 그 방법이 공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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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과학자 프래니 2 - 거인 큐피드의 공격 엽기 과학자 프래니 2
짐 벤튼 지음, 박수현 옮김 / 사파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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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과학자 프래니 2 : 거인 큐피드의 공격>  짐 벤튼 / 박수현 / 사파리 (2022) [개개정판(2005)] [원제 : Franny K. Stein, Mad Scientist #2: Attack of The 50-Ft. Cupid]

[My Review MMXLIII / 사파리 5번째 리뷰] 외국의 동화책은 우리와 달리 '흥미와 재미' 위주로 쓰여진 경우가 많다. 또한, 어린이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다면 때로는 '과격한 연출'까지 허용해도 무방한 듯 싶다. 물론 '상상의 범주' 안에서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 <엽기 과학자>시리즈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제목부터 꽤나 과격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어린이의 눈높이'에는 딱 맞는 듯 싶다. 그건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의 눈빛과 책 읽는 자세를 보면 짐작 할 수 있다. 초롱초롱 눈빛은 말할 것도 없고 눈 깜빡임도 확연히 줄어들고 책 읽는 자세는 각양각색이지만 어떤 자세든지 간에 책을 든 두 손에 흔들림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 명백한 증거다. 학부모의 시선에서는 자녀가 '교과서'를 그렇게 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고, 적어도 성적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학습만화'를 볼때라도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는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지만, 어린이 독자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그러거나 말거나 <엽기 과학자>를 맹렬히 읽는다.

그렇다면 어린이 독자들이 이 책 <엽기 과학자>시리즈를 읽는 것은 올바른 독서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무슨 까닭에서든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는 점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특별한 시간을 내서 읽기 매우 힘들다. 학업과 취미로 하루 일과를 다 보낼 수 있는 '학창시절'이라도 다량의 독서를 해내는 어린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어내는 어린이 독자들은 과연 무슨 비결이 있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책 읽는 시간'을 일부러 내서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짬 날때마다' 책 읽는 습관이 있는 어린이가 그처럼 수십 권의 책을 달마다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훌쩍 지난 시간이다. 그렇게 퇴근 후에 씻고 밥 먹고 스트레스 풀 겸 'OTT 시청'하고, '책리뷰'하려고 글쓰기를 1편을 마치고 나면 보통 밤 10시쯤이다. 도대체 언제 '책'을 읽었기에 거의 날마다 '리뷰'를 쓸 수 있는 것일까? 비결은 '수불석권'이다. 집을 나설 때에는 늘상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나선다. 그리고 걸어갈 때 1쪽, 버스/지하철 기다릴 때 2쪽, 버스/지하철 타고 이동할 때 3쪽, 업무시간 마치고 휴게시간에 5쪽, 점심 먹고서 커피 한 잔 하면서 10쪽 등등 틈날 때마다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잠시 펼쳐서 읽는 버릇이 있다보니, 늘 리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근래에는 '노안'이 찾아와서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읽곤 한다. 요즘 사람들 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은가. 나도 늘 손에 스마트폰(갤럭시 Z폴더6)을 펼쳐서 '전자책'을 손쉽게 읽곤 한다. 더구나 전자책의 장점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읽다가 '어린이책'을 잠시 읽고, '소설책'을 읽다가 '만화(웹툰)책'도 곧잘 읽는다.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는 습관이 몸에 베기 위해선 어릴 적에 '책속에 푹 빠져 본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자녀가 책을 집중해서 읽을 때에는 웬만해선 그냥 냅두는 것이 좋다. 그게 설령 '만화책'일지라도 일단 '그 경험'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그냥 두는 것이 낫다.

그렇다. 책은 '시간'내서 읽으면 얼마 읽지 못한다. 그냥 '짬'날 때마다 읽어재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독서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바로 '몰입'이다.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5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집중을 넘어서 '몰입'의 단계로 넘어서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단다. 드라마를 볼 때 많이 경험하지 않는가. 보통 90분 정도 하는 '한 회 분량의 드라마'를 초집중해서 보다보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고서 몰입해본 경험들 말이다. 독서도 그렇다. 자기 수준에 딱 맞는 책을 읽을 때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어린이들은 '장난'이라는 것에 금세 푹 빠지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곁에서 유심히 지켜본 분들은 그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른들은 그런 '장난'을 유치하게 생각해서 쉬이 집중하지 못하고 그만 두곤 하지만, 어린이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진짜 자신에게 딱 맞는 '장난'을 마주하게 되면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 소모할 때까지 절대 그만 두는 법이 없이 자꾸 반복을 하면서라도 계속하게 된다. 어릴 때에는 이런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 그게 소위 '적성'이고 '소질'이기 때문이다. 그걸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지 못하게 막거나 '규율'이나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못하게 만들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작용이 더 크니 엄청 신중하게 고려하고 감안하셔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몰입'이 독서라면 어떨 것 같은가? '장난'을 치는데 독서의 양상으로 반응을 보인다면 어쩔 것 같은가? 당신의 자녀라면 '로또' 맞은 것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책 읽는 어린이의 미래는 매우 밝다 못해 눈부시고, 꿀 수 있는 꿈의 한계가 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녀를 둔 부모들은 걱정을 쌓고 또 쌓는다. 자녀가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고 책을 즐겨 읽어서 기쁘긴 한데, 그게 하필 <엽기 과학자> 같은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고 '자극적인 소재'가 담긴 책들만 즐겨 읽어서 걱정이라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학부모들은 기왕이면 예쁘고 고운 동화책을 즐겨 읽었으면 싶고, 감동적인 책이라면 더 좋아서 은근히 '고전명작동화' 같은 것들을 집안 거실 책꽂이 즐비하게 꽂아놓고 자녀에게 읽기를 강요(?)하곤 한다. 물론 좋은 책들인 건 맞다. 근데 안 읽어서 탈이다. 괜히 '고전'의 정의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인게 아니다. 어른들도 안 읽는 고전명작인데, 어린이라고 읽고 싶겠는가 말이다. 적어도 고전명작을 어린이들에게 읽히려면 부모님들이 먼저 읽고서 그 책들이 얼마나 재밌는 책들인지 생생하게 말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먼저 쌓으셔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서 읽는 책을 권해주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독서논술쌤이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쿨럭쿨럭

딴에는 <엽기 과학자> 같은 책들이 너무 과격해서 문제라고 딴죽을 걸 정도면 굉장히 독서 수준이 높은 부모님이기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자녀가 읽기에 앞서 부모가 먼저 읽는 것이 매우 훌륭한 '독서지도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님들에게 묻겠다. 이 책 <엽기 과학자>의 내용중에서 어느 부분이 그토록 우려할 정도의 '과격함'인지 콕 찝어서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프래니가 무모한 과학실험을 해서 집을 폭파시키거나 괴상망측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그런 것으로 보이는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되묻고 싶다. 부모님들이 어렸을 적에는 무엇을 하면서 놀았느냐고 말이다. 곤충채집을 한답시고 잠자리채를 들고서 산으로 들로 뛰어나가 나비, 잠자리, 매미 따위를 엄청나게 잡으시지 않으셨던가? 그렇게 잡은 곤충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던가? 혹시 잡아온 나비가 맘껏 뛰놀 수 있는 '나비정원'을 가꿔놓고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셨던가? 잡은 잠자리 날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지 않고 행여나 잠자리가 좁은 채집통에 갇혀있지 않도록 손가락이나 손등 위에 올려놓고 사뿐사뿐 걸어다니셨던가? 그렇지 않으셨을 것이다. 애써 잡은 곤충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날개가 상하든 말든 손으로 함부로 잡고서 손땀을 가득 묻혀서 두 번 다시는 그 곤충들이 스스로 날아다니지 못하도록 망쳐놓기 일쑤였을 것이다. 물론 알고서 그러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다들 모르고서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지치면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를 잡아다 똥꼬를 핥기도 하고 다리를 하나씩 떼어내거나 신발이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개미를 학살(?)했던 경험은 없으셨던가? 만약, 그런 경험이 있으셨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으십니까? 혹시 어릴 적 경험을 살려서 '학살자'가 되셨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소시적에 그렇게 많은 곤충과 벌레, 양서류 등을 대상으로 못된 장난을 쳤지만, 지금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순둥이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쿨럭쿨럭! 그러니 어린이 독자가 이 책 <엽기 과학자>를 읽었다고 해서 폭력적인 것에 물들까봐 걱정이 드신다면 전혀 그럴 것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장난'은 장난일 뿐이다. 몇몇 소수의 사이코패스가 벌이는 '엽기행각'이 전하는 끔찍함 때문에 소중한 자녀는 그런 '폭력'에 절대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런 염려는 붙들어 놓으셔도 좋다고 말씀드린다. 이 책 <엽기 과학자>에 담긴 내용은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오히려 '소수자(외톨이) 조차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따뜻한 품에 안아주려는 담임선생님의 포근함'에 주목하길 바란다. 엽기 과학자로 보여주는 천재과학자 프래니는 사실 '현실에서는 너무도 특출나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유형의 친구'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프래니가 '따돌림'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프래니에게 '또래 친구들하고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방법' 따위를 아주 고심고심해서 보여주며 프래니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고 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래니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까지 없애려 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외톨이를 벗어나 보통의 친구들처럼 잘 어울릴 수 있게 된다고 해도 '프래니만의 개성'까지 사라지게 만든다면, 그건 더이상 '프래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래니는 자신의 독특함은 아주 잘 살리면서 외톨이가 아닌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소녀 영웅'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곤 한다. 물론 그 위기가 '프래니의 실수'로 인해서 벌어진 것이긴 하지만, 프래니는 '악의적인 마음'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실수로 인해서 큰 위기를 맞지만, 프래니는 소중한 선생님과 반친구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실력발휘하게 된다. 그렇게 매번 위기를 극복해내는 프래니를 선생님과 반친구들도 아주 좋아하게 된다. 이게 바로 <엽기 과학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핵심이다. 그저 짓궂은 장난만 치는 '괴짜'가 아니라 말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 <엽기 과학자>를 즐겨 읽는 어린이들도 처음에는 프래니가 저지르는 실수와 실패한 과학 실험에 주목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해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실수투성이 프래니를 따뜻하게 환영하는 선생님과 반친구들을 보면서 '안심'하곤 한다. 현실에서 어린이들은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그럴 때마다 어린이들은 가슴이 조마조마하기 마련이다. 누가 꾸지람을 하지는 않을까? 어떤 애가 실패했다고 큰소리로 놀려댈까? 하고 말이다. 그때 '프래니'가 위기를 극복하고 실수를 만회하는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프래니처럼 실수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 되새겨보기 마련이다. 그리고서 힘을 얻게 된다. 다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십분 살려서 결코 실수하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어린이들은 대다수 '순수한 탓'에 책 속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하는 편이다.

자, 이제 다시 한 번 <엽기 과학자>를 읽어보자. 여전히 말썽꾸러기만 보이는가? 아니면, 쉽게 친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외톨이'가 되었지만, 위기가 닥치자 좋아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온갖 재능을 쏟아부어서 모두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마음씨 착한 프래니가 보이는가? 이 책에는 엄청난 장난이 가득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보다 남을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쏟아붓는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소녀가 보인다. 이제는 잘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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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 : 사일렌티움 헤일로
그렉 베어 지음, 정호운 옮김 / 제우미디어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헤일로 : 사일렌티움>  그레그 베어 / 정호운 / 제우미디어 (2014)

[My Review MMXLII / 제우미디어 1번째 리뷰] 게임을 원작으로 한 소설이다. 게임도 '세계관'이 방대하고 탄탄하면 두터운 팬층을 이루게 되는데, <헤일로>도 바로 그런 소설이다. 그리고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SF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게임이 아닌 '드라마'로 <헤일로>를 접했다.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PC용 게임만 즐길 뿐, 플스(플레이스테이션)나 엑박(엑스박스) 게임은 해본 적이 없다. 뭐, 있었으면 즐겼겠지만 굳이 없는 게임을 마련하는 부유함이나 여유로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게임으로 접했다면 소설을 읽는 감동이 더 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살짝 '헤일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원작소설이 총 몇 권인지도 모르겠고, 더 중요한 '순서'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현재는 '판권 소멸'로 인해서 절판된 상태인 책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재밌게 본 뒤에 급히 구입할 수 있는 책을 몇 권 구매 했더랬다. 이 책이 그 첫 번째 책이다.

드라마에서 유독 관심을 끌었던 점은 등장인물 가운데 '한국인 배우'가 등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한국말'을 하는 배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작소설'에서도 한국인이 등장하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이 책 <헤일로 : 사일렌티움>은 '인간'과 '코버넌트'라는 외계종족이 싸우기 훨씬 이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아 '헤일로'라는 거대한 고리형 행성(이자 '그 자체'로 초강력 무기)으로 통하는 포탈을 열 수 있는 '고대 유물'을 남긴 '선조'라는 종족이 남긴 기록을 모아놓은 내용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탓에 '드라마'에서 나온 익숙한 스토리는 이 책에서는 전혀 맛볼 수가 없어서 엄청 당혹스러웠다. 더구나 게임이나 드라마 속에서도 정말 드물게 등장하는 '선조 이야기'인 탓에 굳이 몰라도 될 내용들이기도 하다. 게임이나 드라마를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첫 번째 책으로 선택을 한 것도 참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맨 마지막 '뒤친이(옮긴이)의 말'에 담긴 부연설명을 읽고 나서야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일로 4부작]이니 [해일로 선조 3부작]이라는 단서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 읽어볼 생각은 굳이 들지 않는다. 일단 현재 절판과 품절된 책이라서 구입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자료검색을 해보니 '없음'이라고 나온다. 중고서점에는 있긴 한 모양인데, 값이 너무 올랐다. 새책 같은 중고책 가격이 '정가'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굳이 '배송비'와 '발품'까지 팔아서 읽고 싶지는 않았다. 뭐, 이 책과 같이 구매한 <헤일로 : 플러드>와 <헤일로 : 선제공격>을 마저 읽고 난 뒤에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 같다.

SF소설은 '세계관'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스타워즈>, <파운데이션>, <스페이스 오딧세이>, <듄>,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그동안 내가 읽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SF소설들이다. 재밌게 읽은 만큼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헤일로>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 걸까? 일단 '우주전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은 의외로 '육군의 대결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왜 항성간 우주 항로를 개척한 첨단과학이 발달된 미래 시기(26세기)에 '함대함 우주전쟁'이 아닌 '전사 vs 전사'의 싸움 양상을 보여주는 것일까? 사실 대부분의 SF소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스타워즈>가 좀 특이한 경우라고 보여줄 정도이고, 최근에 개봉한 <듄>만 해도 '모래행성 듄'에서 벌레를 타고 다니는 '프레멘'과 하코넨, 또는 황제 직속 '사우다카'와의 전투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는 아마도 '보여주기'면에 있어서 '스타쉽'끼리의 함대함 대결을 보여주는 것보다 '전사들의 칼싸움' 또는 '육박전'이 더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듯 싶다. 그리고 모든 전쟁에서 '공군'과 '해군'은 막강한 화력으로 기선제압을 하는데 효과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는 '육군'과 '해병대'가 투입되어 점령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듯 싶다. 아무리 SF소설이라하더라도 '현실(사실)'을 무시하고 낭만적인 서사만 늘어놓는 것으로 허구적 결말로 맺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헤일로> 드라마에서도 압권은 '스파르탄(인간) 전사'와 '코버넌트(외계종족) 전사'의 대결이다. 특히 '마스터 치프'라고 하는 주인공의 활약은 엄청나다. <스타쉽 트루퍼스>에서도 '강화갑옷'이 등장하지만, '스파르탄'은 갑옷이 갖고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고도의 훈련을 통과한 선별된 군인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나중에는 '스파르탄'으로 선별된 군인들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비인간적인 면모'가 발각되어 곤경을 겪기도 하지만, 그런 슬픈 과거를 극복(?)하고서 '코버넌트 전사'들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헤일로>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가 담겨 있다.

그런데 '스파르탄'과 '코버넌트'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좀처럼 승부를 낼 수 없게 되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선조가 남긴 유물'인데, 그 유물을 통해서 '연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헤일로'다. 그런데 제목이기도 한 <헤일로>에 관한 내용이 너무 빈약해서 그 정체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베일에 쌓인 '헤일로'와 이를 만들고 써먹은(?) 종족인 '선조'에 대한 베일을 벗길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헤일로 : 사일렌티움>인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선조'와 '헤일로'의 관계가 드러나며, 선조가 '헤일로'를 이용하여 저지른 끔찍한 범죄(?) 또는 만행에 대한 기록이 이 책에 낱낱이 밝혀져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의문이 남는다. 그게 그렇게까지 끔찍한 범죄일까? 선조들의 만행이 저질러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인류의 문명'은 시작되었고, 지구로 유추되는 행성에 인류가 정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살짝 허무한 결론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다.

다음 책은 '선조'를 완전한 코너로 몰아붙인 '플러드'라는 외계생명체와의 대결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헤일로 : 플러드>다. 이 책에서는 좀 '전투씬'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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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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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마스다 미리 / 홍은주 / 비채 (2019) [원제 : 大阪人の胸のうち(2007)]

[My Review MMXLI / 비채 3번째 리뷰] 마스다 미리의 고향이 '오사카'인 모양이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오사카(大阪)'라고 해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국내여행'도 잘 가지 않는 '집돌이'인데, 외국이야 오죽 이해하지 못할 바야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잘 몰라서 '검색'을 좀 해보니, 오사카는 일본의 '간사이(関西) 지방'에 속한 지역이란다. 우리 말로 하면 '관문(關門)의 서쪽 지방'으로, 일본의 '세키가하라' 관문의 서쪽을 일컫는 지역을 말하는 거란다. 이 '간사이'에는 효고현, 교토부, 시가현, 오사카부, 와카야마현, 나라현, 미에현을 포함되어 있는데, 교토가 일본의 옛 수도였기 때문에 우리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긴키 지방'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암튼, 마스다 미리는 '크게(大) 비탈진(阪) 지역'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전적 검색'을 해도 오사카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한국 사람이고 현재는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평생을 서울 근처에서 살아온 나도 '서울 사람들의 속마음'을 말해달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뭐, 서울 깍쟁이, 남산골 샌님...뭐, 이런 별칭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것들조차 몇 십 년 전에 불린 별칭들이고, 현재에는 잘 쓰지도 않고 있으며,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그런 말이 있었는지도 잘 모를테니 말이다. 그런데 2007년에 쓰인 일본 오사카 사람들의 속마음을 회상한 작가의 에세이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인 1980년~1990년대의 '오사카 사람들'의 일상을 추억한 것일텐데, 2025년을 살고 있는 외국 독자가 그 '속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한마디로 이 책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은 도무지 내용파악을 할 수 없는 책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이 우리 나라에 소개된 까닭은 전적으로 '마스다 미리의 책들'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전작주의자들을 위한 배려(?)가 담겼다고 볼 수는 없고, 그저 '인가작가'의 저작물이니 어찌어찌 '판권'을 사들여 이득을 챙겨보겠다는 의도였겠으나, 이런 '일본인 작가의 개인적인 추억'을 한국 독자에게까지 소개해주는 친절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스다 미리 작가의 특색'이 아주 섬세한 감성의 언어유희가 아주 일품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짱 시리즈> 이후 수많은 독자들이 생겼을 정도다. 그래서 일본출판사는 '마스다 미리'가 일본인의 정서를 담뿍 담은 글들을 따로 모아서 연이어 출판하고 대박을 터뜨리곤 했는데, 아마도 이 책도 그런 책들에 섞여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아니올시다'였다. 일본 사람들에게 '오사카'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지역색(차별적 요소까지 포함된)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 독자들은 그런 사정까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를 테면, 외국인들에게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두 지역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골까지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그런 감정의 골이 '인류 공통적인 문제'로 드러났을 경우에는 잘 설명하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도 있겠지만,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그 지역의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느낌적인 느낌까지 '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전라도 사람이 "아따 거시기해부러"라고 말하는 것에는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나 '말하는 상황이나 정황'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설령 '같은 뜻'이라고 할지라도 '말하는 사람의 성별이나 연령, 억양 등'에 따라서 또 여러 가지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외국말'로 뒤쳐서(번역해서)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셈이다. 마찬가지로 갱상도 사람이 하는 "쫌", "마"라고 하는 말도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냔 말이다.

그런데 '표준 일본어'도 제대로 모르는 한국독자가 '오사카 일본어의 사투리'를 어찌 구분할 수 있겠으며, 그런 오사카 사투리만의 절묘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어찌 간파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전적으로 '마스다 미리'의 해석에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좁은 입지에서 이 책을 이해하려 노력해보면, 오사카 사람들은 매우 순박하고 감정에 충실하며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인 듯 싶고, 한편으론 '만담이야기(개그)'가 재밌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일본사람들이 속단하기에 '오사카 사람들'은 웃긴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한국 사람들 중에는 '경상도 사람'에다가 '충청도 사람'을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보다는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말 한마디한마디에 '유머'를 담아서 쿵짝을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보면, 자신이 '오사카 출신'이라고 밝히면서 순수하고 정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간간히 개그스런 행동으로 주위를 썰렁하게 만드는 캐릭터로 곧잘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짐작해보았다. 하지만 그나마 이런 캐릭터들은 대부분 '오사카 남자 캐릭터'가 많았기 때문에 마스다 미리처럼 '오사카 여자'가 말하는 귀여운 사투리 표현 같은 것을 전혀 짐작할 수도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도 답답해 했다.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일 수는 없다. 하지만 '출판인'이라면 그걸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이 책이 '한국독자'들에게 얼마나 유용할지 생각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어를 '1급 이상'으로 취득할 목적을 갖고 있고, '일본 문화'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분들에게만 권한다. 교양적인 호기심으로 만족하는 독자들이라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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