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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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의 시선으로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본다는 것은 '역지사지'라는 효용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간단하게 '우리의 역사를 제3의 관점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다'고 표현하면 될 것을 말을 어렵게 하느냐고 따진다면 '일본인 저자의 글쓰기'가 늘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에둘러서 말을 길게 끌다 못해 말꼬리를 붙잡기까지 한다고 핑계를 대련다. 이를 흔히, '혼네(감춘 속마음)와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낸 표현)'라면서 상대에게 폐를 끼치기 싫고 예를 다하기 위하는 일본인의 이중적인 표현법이라고 소개하지만, 이것조차 간단하지 못하니, 그냥 '일본의 사고방식'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고 싶다.

 

  이 책의 골자는 전세계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까닭을 살펴보면서 '이해당사국들의 셈법'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일본은 '타자의 관점'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일본의 관점'에서만 세계사를 이해하려 들고, 특히 '청일전쟁 이후 태평양전쟁까지'의 세계사를 일본편향적으로만 이해하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일본인 저자의 입을 통해서 처절한 '역사반성'이 나오는 것인가 기대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다다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릴 뿐, 여전히 '일본은 잘났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연이어 '일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질타를 서슴지 않는데, 일본인 치고는 '참 잘 때린다' 싶을 정도로 속시원하고, 역시 일본답지 않게 '빠른 전개'로 역사서술을 펼치고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 들 정도로 시원시원한 역사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 근현대사'에 대해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저자의 관점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 스스로 "정정당당하지 못했던 전쟁이었으며 일본에게 유리한 결론도 내지 못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의 결론은 '일본 청년들에게 바라는 바람직한 역사관 형성'으로 끝맺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닥 중요한 내용은 아니겠으나, <손자병법>에 이르길 '지피지기'하라 했으니 철저한 탐색은 필수라는 점에서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일본의 잘못된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청일전쟁 승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인에겐 대국과 싸워 이긴 첫 번째 전쟁이었고, 근대화로 이룬 최대의 성과라는 점에서 일본에게 이득만 가져온 '청일전쟁의 승리'가 왜 일본인에게 독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청일전쟁의 승리로 인해 뒤이어 벌어진 전쟁에서 일본과 일본인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연이은 헛발질을 하게 된 '원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에 벌인 전쟁에서 "얻은 것은 없고, 얻은 것이 있더라도 수많은 젊은이들의 주검 위에 차린 밥상"이라는 식으로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런 식의 표현 때문에 일본 청소년들 앞에서 강연을 한 저자가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꿋꿋하게 주장한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전쟁은 돈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면서 일본은 패망의 길로 접어 들었다고 말이다. 물론,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초반까지 일본은 승승장구 했고, 일본을 '제국주의국가의 대열'에 낑기게 하여 대(大)일본인의 자긍심을 우주너머까지 찌르게 만들기도 했지만,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으로 인해 수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죽어나간 것을 필두로, 청일전쟁을 빼고는 승리한 뒤에 '배상금'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으며 어마어마한 빚만 잔뜩 지게 되어 모든 일본인들을 경제난에 빠뜨렸으며, 심지어 '전쟁을 승리한 비결' 또한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비겁한 기습'이었다고 일본 청소년들에게 강연하였다. 그러면서 일본 청소년들에게 "세계사적 관점으로 일본사를 보아야 진실을 보게 된다"며 역사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밖에도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피해국의 관점에서 보면 '새발의 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허나 일본 내부에서는 그정도만으로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릴지경이라는 것이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들 뿐이고 말이다.

 

  암튼, 글쓴이는 일본이 전쟁을 통해서 얻을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과거의 집권세력들'이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면서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감이나 우리가 바라는 처절한 반성 따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일본인의 역사관점은 이런 것이다'라는 대략적인 그림이 보여질 뿐이다. 물론, 그 그림이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허나 '일본이 자랑스러워하는 과거의 전쟁의 진상은 이랬다'고 말하는 일본저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기에 색다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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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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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노타우르스가 갇혀 있는 미궁속으로 들어간 테세우스가 무사히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아리아드네가 미리 마련해준 실타래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살아선 나올 수 없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워서 이겨내고 아테네 청년들을 무사히 구출해낸 영웅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영웅 서사시'로 딱 어울리지만, 정작 생사의 갈림길의 최종 미션은 괴물도 때려잡는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했던 겁니다. 뜬금없이 '그리스신화'의 한 토막을 끄집어냈지만, 고전읽기의 중요성과 고전읽기를 도와줄 '길라잡이'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썰을 좀 풀까 합니다.

 

  고전은 어렵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말할 것도 없도 어른조차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질색할 정도로 고전은 읽기 싫은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한결같이 '고전읽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고전의 제목'은 읽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통할 따름이지만, 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바로 고전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의 '원전'이 바로 <고전>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플라톤의 <국가>를 읽지 않았어도 '동굴의 우화' 내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은 어떤가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말했던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도 역시, 읽지 않아도 교과서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배웠던 내용일 겁니다. 심지어 게임을 즐기는 어린 친구들은 게임 캐릭터 가운데 '리바이어던'이라는 고대 괴물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어디서 유래한 괴물인지 몰라도, 어쨌든 '들어는 봤다'는 것이 <고전>입니다.

 

  이토록 유명한 <고전>이라면 우리가 읽어줘야 하는 게 예의입니다. 그리고 읽어보면 의외로 재밌다는 소감을 풀어놓는 이들도 꽤나 많습니다. 어릴 적에는 너무 어려워서 손도 댈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어렴풋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힌다는 얘기도 곧잘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르니까 어렵고 알면 쉽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곧잘 써먹는 '격언'인데, '아는 것이 힘이다'와 '아는 만큼 보인다'를 적절히 섞어서 제가 만든 문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조차 제가 처음 쓴 말은 아닐 겁니다. <고전>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을 문구를 제가 우연히 써먹게 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고전>은 인류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샛길로 더 빠지기 전에 본론을 얘기하려 합니다.

 

  <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작가가 엄청 미인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운 고전을 '미모의 길라잡이'와 함께 읽으니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책표지'를 보면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미인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서 '뷰티책'인가 싶지만, '책제목'을 보면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있어서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심지어 '써니피디아'라는 너튜브를 검색하면 아름다운 피아니스트가 쇼팽을 연주하는 동영상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인문학책을 소개하는데, 저자의 미모를 따지는 어리석음은 도대체 무슨 의도냐?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법도 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는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강력한 힘이 되는 법입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꼬꼬마들도 '선생님'이 못생겼으면 말 안 듣고 잘 생기고 예쁘면 말 잘 듣는다고 합니다. 씁쓸하지만 '원초적 본능'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에 끌리고 매혹되는 법입니다.

 

  자, 이제 중요한 사실을 언급할 겁니다. 우리에게 '고전읽기의 길라잡이'가 꼭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두께도 두껍지만 내용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임수현과 함께 읽으면 12쪽만에 <국가>에 담겨 있는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480쪽에 달하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15쪽이면 대강의 줄거리는 물론 책속에 담겨 있는 주제까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뿌려주는 것만으로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맑은 물을 퍼올리게 해주는 마중물 말입니다. 요즘이야 자동펌프가 있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마중물'을 접해볼 수고조차 필요치 않게 되었지만, 우리가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과학적 원리'를 담아 인간이 쓰기에 편리한 기계를 만든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딴에는 '그딴 것'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겁니다. <돈 키호테>를 읽지 않아도 연극과 드라마를 통해서 '돈 키호테' 같은 등장인물이 펼치는 코믹한 행동에 웃음보를 터뜨릴 수 있습니다. 고아 소년의 눈을 통해 미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점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문제점까지 고발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몰라도 사는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임마누엘 칸트의 <비판철학 3부작>을 꼭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고전읽기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가요?

 

  읽으면 다릅니다. '고전의 무게'는 책 두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의 남다른 깊이'로 정해집니다. 때론 고전을 읽다가 우주만큼 광활해지는 '혜안'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전은 '생각의 깊이'와 '사고의 드넓음'을 주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의 여운'이랍니다. 고전의 저자들은 고뇌와 고뇌를 거듭하며 '한 문장'을 써내려갔고, 그 고뇌의 끝자락에서 어렴풋이 한 가닥 불빛을 잡아낸 듯한 '진한 감동'을 <고전> 속에 녹여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면 다른 책에서는 읽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에 꼭 읽어보라고 간절히 권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한 눈에 보일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의 미궁' 속에서 실타래가 되어줄 '길라잡이'가 필요한 법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 길라잡이가 되고자 '리뷰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 뿐입니다. 언젠간 저도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여러분에게 보탬이 된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 전에 임수현이라는 '아름다운 고전 길라잡이'와 먼저 재미난 인문학 여행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친절함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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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세계문학산책 15
너대니얼 호손 지음, 붉은 여우 옮김, 김욱동 해설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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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물론 실수의 경중을 따져서 무거우면 벌을 받고 가벼우면 용서를 받아 '잘못'을 뉘우치는 이에게는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뉘우치지 않고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른다면 엄벌을, 심하면 사형에 처하거나 완벽한 격리를 시켜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직한 사회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실수를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죄를 저지른 이에게 패널티(불이익)를 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무겁든 가볍든 말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면 어떤 벌을 주어야 마땅할까? 흔히 말하는 '간통죄'를 저지른 부정한 여자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나오는데, 일곱 번째 계명이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이 책의 배경이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인데, 청교도 신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까닭에 청렴하고 경건하며 엄숙하며 독실한 신앙만을 믿고 따르는 사회에서 '제 7계명'을 어긴 여인은 사형을 처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셈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사형을 면했다. 왜냐면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지른 죄였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다면 사형판결이 마땅하지만, 남편이 이미 죽은 상황이라면 정상참작을 할 여지가 남겨졌다고 중지를 모은 결과다. 그럼에도 중죄인 것은 묵과할 수 없기에 사형을 대신해서 평생토록 가슴에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징표'인 'A' 글자를 달고 살 것을 주문했다. Adultery의 앞글자인 셈이다. 이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부정한 여인'인 헤스터 프린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에 '낙인'을 달고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헤스터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감내하는 형벌을 받을 때, 그녀를 감싸주는 이가 있다. 바로 아서 딤즈데일이라는 목사다. 그는 헤스터에게 '죄의 무거움'을 혼자서 감내하지 말고, 사생아(펄)의 아버지를 밝혀서 불륜남도 똑같은 죄를 받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죄의 무게'를 덜게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당하는 수치와 모욕을 똑같이 앙갚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헤스터는 끝내 불륜남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아니 밝힐 수 없다고 한다. 끝내 까닭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독자들은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고, 명석한 독자들이라면 그 불륜남이 다름 아니라 '목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불륜남녀의 등장으로 충격적인 상황에 '진짜 남편'이 등장하면서 막장(?) 드라마의 구성요건은 모두 갖추게 된다. 헤스터는 펄을 가슴에 꼭 안고서 남편을 만난다. 2년만에 나타난 남편은 불륜의 상징인 'A' 글자와 사생아를 함께 바라보면서 담담히 말할 뿐이다. 못난 남편으로서 당신의 죄를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수치스럽게 만든 '그 남자'는 용서할 수 없으니 밝히라고 말한다. 헤스터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당신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불륜남을 꼭 찾아서 복수를 하겠다고 말하고 헤스터 곁을 떠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이렇게 '세 남녀'를 주목하며 작가는 각자의 세계를 펼쳐보일 뿐이다. 아빠 없이 사생아로 자라는 펄의 모습도 간간히 보여주지만, 세 남녀의 죄를 부각하거나 깊게 고뇌하게 만들거나 형언할 수 없는 순진무구함을 보여주는 '감초 역할'을 할 뿐, 작품의 주제와는 살짝 비켜서 있으니 이번 이야기에서는 논외로 하련다. 암튼, 간통녀와 간통남, 그리고 원래 남편의 삶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독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독자들은 '원래 저지른 죄(결과)'보다는 '죄 지은 뒤의 삶(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헤스터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고, 주어진 시련을 '감내'하고, 끝내 '극복'한다. 가슴에 '낙인'을 달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지나간 상처를 다시금 헤집어서 기어코 피를 본 뒤에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를 파헤치는 '고난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스터는 자신의 죄를 감내할 뿐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한 삶을 살며, 그렇게 아낀 재산을 더 배고픈 이들에게 선뜻 나눠주는 '청교도적 신앙'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반면, 불륜남인 아서 딤즈데일 목사는 나날이 초췌해져 간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차마 밝히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고뇌'를 경험담 삼아 설교를 해나가며 수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목사님이지만, 홀로 남겨진 시간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병들어가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한편, 로저 칠링워드라는 '가명'으로 살기를 선택한 '복수남'은 해박한 의학지식으로 온 마을의 존중받는 지식인이자 의사로 거듭나지만, 오직 '복수'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못된 심보로 인해 그의 외모는 나날이 '추악'해져만 간다. 그래서 그가 마을에 처음 나타났을 때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헤스터마저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외모가 달라져서, 그가 헤스터의 원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세 남녀는 각자 죄를 저질렀다. 헤스터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죄'를, 딤즈데일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밝히지 않은 죄', 그리고 칠링워드는 '법의 심판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심판하려는 죄' 말이다. 하지만 죄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죄를 지은 '다음'이 더 중요한 법이다. 다시 말해,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담아 세 남녀의 마지막을 그렸다.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오히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훌륭한 행동을 몸소 실천한 헤스터에겐 '해피 엔딩'을, 자기 죄를 고백하지 못한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며 겉으로는 '존경받는 목사'지만, 속으로는 스스로를 '고행의 도구'로 삼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다 죽음 직전에야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에야 겨우 평안한 안식을 받은 딤즈데일에겐 '새드 엔딩'을, 그리고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못난이가 권리만은 놓을 수 없다며 '복수의 일념'으로만 살다가 추악한 행동에 걸맞는 추악한 외모를 갖추고서 삶에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한 '초라한 지식인의 삶'을 산 칠링워드에겐 '허무한 엔딩'을 보여 주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뉘우치고 참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무나 못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봐도 '원죄의 극복'을 위한 경건한 삶의 실천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나타내는 글자 'A'를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상징 'A'로 만드는 삶을 살아간 헤스터 프린이 아주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선명한 '주홍빛'과 찬란한 '금빛'으로 수를 놓아 가슴 한복판에 장식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에 걸맞는 넓은 아량과 이타적인 삶은 처음부터 잘난 사람보다 자신의 잘못을 성찰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실수에 관대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더욱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이렇게나 훌륭한 작품을 담은 책인데도 평점이 후하지 못한 까닭은 '뒤침(번역)'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소년을 위한 책인데, 직역을 한듯 매끄럽지 못하고 읽기에도 딱딱한 문장들은 어른이자 선생인 나조차도 읽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울컥할 정도였다. 같은 뜻이라도 더욱 아름다운 문장으로 다듬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 책 덕분에 '같은 제목'을 다른 책을 섭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빼고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반면에 <작품해설>은 매우 수준급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책에 걸맞는 이해하기 쉽고 깔끔한 분석이 '고전명작'을 즐기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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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4 - 1926-1930 학생 대중아 궐기하자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4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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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35년>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내용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배우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 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여러 사상들이 봇물처럼 밀려들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친일파'도 '독립운동가'도 저마다 다양한 이념과 사상, 신념, 그리고 이해타산의 결과로 행동하였다. 그 여러 사상 가운데 1920년대 이후 급성장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상은 바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였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뒤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설 즈음에 전세계인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에 열광을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재건'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 미국에서 '대공황'이란 먹구름이 스물스물 올라왔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더욱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 문제점이란 바로 '부의 불균형'이고, '실직자의 증가'였다. 자본주의는 경기가 호황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황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무산자(노동자, 빈자, 프롤레타리아 따위로 불리는 이)'들에게 큰 타격을 안겨준다. 반면에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앞세우기 때문에 부를 '공평하게' 나누고, 모두가 '근면성실'하면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사상이라고 널리 알려진 덕택에 수많은 무산자들을 들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모두 '실패'하였다는 것을 다 안다. 소련은 해체 되었고, 동유럽 공산국가들은 '자유시장경제'로 체제를 바꾸었고, 중국도 '흑묘백묘'를 핑계대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서는 '사회주의 사상통제'를 병행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공산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은 거의 모두 못 사는 나라의 대열에 선착순 한 셈이다. 땅덩이가 크고 자원과 인력이 풍부한 러시아와 중국은 예외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서구 열강이 내세우는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심지어 더 큰 힘을 발휘하며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멋진 사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런 사상들이 '식민지' 처지로 전락한 조선인들에게는 일제(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빛나는 희망으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레닌 사상'은 조선의 지식인과 학생,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들과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던 여성과 백정 들에게까지 손쉽게 파고 들었고, 그 가운데 '독립운동가'로 혁혁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꽤나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내용을 '역사책'에서 배운 적이 없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처절한 전쟁까지 치룬 뒤에 '공산당'과 '공산주의',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이라는 이름은 입밖에도 내어서는 안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른바 '반공주의'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공산계열의 독립운동가'를 잊고 살아야 할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반쪽짜리 역사책'을 배우는 것은 엄마 아빠 가운데 '한쪽'만 선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둘 사이가 아무리 철천지원수 사이라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식이라면 두 분 모두를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 반드시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평화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서로 갈라서게 된 까닭도 알아야 하고, 서로 힘을 합쳐 '독립의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했던 것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신간회'의 등장은 서로 갈라졌던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하나의 힘'으로 뭉쳐 독립운동을 앞장섰던 대표적인 사건이다. 신간회의 지원으로 원산총파업, 광주학생항일운동 등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의 독립운동이 '소수의 항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3·1혁명'과 같은 대동단결과 전국적인 조직망으로 일제의 혹독한 탄압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저력과 독립 의지를 보여준 크나큰 사건이었다.

 

  이처럼 노동자(농민)와 학생들에게까지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공산주의'였다. 하지만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총독부의 탄압과 밀정의 방해로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못하고 발각되어 해산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의 코민테른에 '조선공산당'은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마저도 여러 계열로 쪼개져서 갈등과 반목만 일삼을 뿐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적은 하나로 모아진다. "조선공산당은 몇몇 지식인들의 모임일 뿐, 무산자(프롤레타리아)들과 함께 하지 않는 한 활동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속빈 강정처럼 지식인들의 모임으로 사상만 뽐내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실천'하는 사상가로 거듭나라는 뼈 아픈 지적이었던 셈이다.

 

  실상 마르크스도 잘 나가는 변호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맹점'을 신랄하게 공격하며 이론적으로 악랄한 자본가들의 약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앞장 선 '실천가'였기 때문에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공산당 지식인들은 계열을 불문하고 일제로부터 온갖 차별과 수탈, 약탈을 당하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도움을 주고 일제의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더랬다.

 

  이 가운데 학생들의 항거는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3·1혁명 때부터 학생들의 항거는 활발했지만, 일제와 총독부의 철저한 탄압에 이렇다 할 운동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인 학생들과 차별을 두고 '식민지 교육'으로 제대로 된 대우마저 받지 않은 상황에 처하자 학생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날카롭게 벼려진 셈이다. 그런 와중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시작되었다. 광주라는 좁은 지역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연대의 힘'까지 보여준 것은 앞서 설명한 '신간회'의 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조선학생들이 일본학생들보다 더 우수하고 뛰어나다는 자긍심이 저변에 깔려있었던 탓에 일찌감치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버린 '교장 이하 선생님 일동'에게 빅엿을 먹이는 '동맹휴학'으로 실력행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독립운동가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수많은 '독서회'를 조성했다. 말 그대로 독서를 하고 토론을 나누는 모임인데, 이런 모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사상이 바로 '마르크스레닌 사상'이었다. 이른바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한 셈인데, 일제와 총독부는 '공산주의'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시행하였고,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색출과 검거를 철저히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제국주의(자본주의)'에 가장 활발히 저항한 세력들의 이념이 바로 '공산주의'였던 탓에 자칫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으로 제국주의가 흔들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도 컸던 탓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의 공산주의자 활동은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달랐다. 일제가 탄압하면 할수록 '공산주의자'는 더욱 똘똘 뭉쳤고, 조선에서 활동이 힘들어지자 만주와 연해주, 중국, 소련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독립운동의 기치를 결코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지 탄압이 가혹해지면 가혹해질수록 우리의 항거도 만만치 않았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친일파들의 뻔한 변명을 변변치 못한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이름도 남김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 이토록 많았음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죽은 자의 말없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의 비겁한 변명'만 듣고서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을 잊고서 친일적폐들의 무도함에 기죽어 지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들의 변명이 결코 '필연'이 아니었으며 '대한민국'이 애초부터 약한 나라가 아니었음도 기억해내야 한다.

 

  이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해나가기 위해서 힘찬 날개짓을 하려 한다. 창공을 훨훨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힘을 모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따위로 갈려서 갈등은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로의 생각의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도 무수히 많은 파벌로 갈려 반목했더랬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에 공감하고 함께 힘을 모았다. 바로 '독립'이라는 하나의 꿈을 위해서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서로의 생각과 신념을 고집하며 반목하고 있지만, '세계를 선도할 대한민국'이라는 자긍심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파벌로 나눠서 서로 갈등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갈등의 끝이 '파국'으로 끝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식은 절대로 곤란하다. 누구든 대한민국을 선진국에서 끌어내려선 안 된다. 바로 그런 심보를 가진 이들이, 대한민국은 약소국이니 미국에 의지하고 일본을 따라하고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북한까지도 눈치보며 살아야 한다는 '적폐들'을 솎아내야 한다. 반드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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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 1921-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3
박시백 글.그림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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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무단통치-문화통치-민족말살기'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상'의 구분일 뿐, 일제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세계속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애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아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길 뿐이다. 그저 '필요'에 따라 '이용'해먹을 가치쯤으로 여길지는 몰라도 여전히 '무시 일변도'라는 점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1920년대 이후에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일제는 '3·1혁명'을 겪으면서 조선을 철저히 '식민지화'하기로 본색을 드러낸다. 허나 '무단통치기'에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부드러운 정책'을 앞세웠다. 그것이 바로 '친일파 키우기'였다. 이 당시의 친일파들은 '3·1혁명'을 지켜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조선인'들은 저항을 상실하고 일본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매국을 하고 변절을 한 까닭도 '조선의 무능'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세계대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일제의 우월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립'을 바라는 조선인들이 이토록 많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일제는 튼튼했다.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주의'로 팽창해나가는 일제의 강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조선인'은 두 갈래 길목에 서게 되었다. 임시정부와 독립군으로 험난한 길을 걸을지, 아니면 변절과 앞잡이 따위의 친일파로 달콤한 길을 걸을지 말이다. 물론 일제의 교활한 수법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처럼 악랄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친일파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 씁쓸하게도 많아졌다.

 

  친일파들의 변명은 한결 같다. 강력해진 일본을 상대로 조선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내세운 것이 '참정권'을 얻어내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었고, '자치'를 허락받아 조선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며, '민족실력(문화운동)'을 키워서 추후에 독립을 이루자는 '그럴 듯하고 미적지근한 주장'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하긴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승만 등의 '외교론'과 안창호 등의 '실력론'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심지어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던 동학의 후예인 '천도교' 가운데 변절자가 많이 생긴 것도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회유에 따라 '동조'한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독립의 꿈'이 얼마나 멀고도 험한 시절이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험난한 독립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이들이 있었단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 시절엔 다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친일파들의 뻔한 변명이 무색할 정도로 당당히, 그리고 기꺼이 고통스런 가시밭길을 걸어간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무장투쟁'만이 독립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을 보여주어야 온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 결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청나라, 러시아, 그리고 서구열강과 싸워서 승리를 거둔 일제가 부끄러워서 '패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일부 폭도들의 만행이었고 일제의 피해는 미미했다고 '사실 왜곡'마저 할 정도로 말이다.

 

  또, 의열단의 투쟁도 불을 뿜었다. 이들은 정의로운 일을 불꽃처럼 행하겠다고 선언한 이들로서 매국노와 친일파, 그리고 누구를 막론하고 일제협력자 등을 '칠가살'로 정하고 폭탄투척, 사살 등을 거리낌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유명한 사건을 꼽으라면 일본경찰 40명의 추격을 쌍권총을 들고서 홀로 대적했던 김상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의열단의 투쟁은 변화를 주어야만 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이들뿐 아니라 '무고한 희생자'도 속출했기 때문이다. 던져진 폭탄과 총구를 벗어난 총알은 '나쁜놈'만 골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조선은 독립의 꿈을 계속 꿀 수 있었다. 비록 당장은 일제의 압제에 눌려 기를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쓰러져간 독립운동가의 뒤를 쫓아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간 이들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의 독립'은 누가 뭐래도 독립운동가들에게 공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한편, '3·1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약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초기부터 임시정부 운영에 삐걱거리는 면이 없지 않으나, 다양한 '독립운동노선'의 변화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독립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탄핵, 이념에 따른 파벌다툼 등등의 혼란은 오히려 임시정부가 제대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파벌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비난도 들어 마땅하지만, 그런 혼돈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독립운동을 했다면 오히려 일제의 철통같은 압제와 악랄한 탄압에 의해 쉽게 발각이 되어 일망타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된 만큼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었지만 분열되었기에 '다양한 독립운동의 방향'을 탐색할 수 있었고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혼란속에서 꽃피운 것이 바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깨어난 노동자, 농민, 여성 들이 노동·농민·여성운동으로 활발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국가와 국경을 초월한 '무정부주의(아나키즘)'가 독립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는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등이다. 암튼, 이들의 활약은 다음 권에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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