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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2년 1월
평점 :
미노타우르스가 갇혀 있는 미궁속으로 들어간 테세우스가 무사히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아리아드네가 미리 마련해준 실타래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살아선 나올 수 없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워서 이겨내고 아테네 청년들을 무사히 구출해낸 영웅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영웅 서사시'로 딱 어울리지만, 정작 생사의 갈림길의 최종 미션은 괴물도 때려잡는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했던 겁니다. 뜬금없이 '그리스신화'의 한 토막을 끄집어냈지만, 고전읽기의 중요성과 고전읽기를 도와줄 '길라잡이'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썰을 좀 풀까 합니다.
고전은 어렵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말할 것도 없도 어른조차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질색할 정도로 고전은 읽기 싫은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한결같이 '고전읽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고전의 제목'은 읽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통할 따름이지만, 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바로 고전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의 '원전'이 바로 <고전>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플라톤의 <국가>를 읽지 않았어도 '동굴의 우화' 내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은 어떤가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말했던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도 역시, 읽지 않아도 교과서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배웠던 내용일 겁니다. 심지어 게임을 즐기는 어린 친구들은 게임 캐릭터 가운데 '리바이어던'이라는 고대 괴물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어디서 유래한 괴물인지 몰라도, 어쨌든 '들어는 봤다'는 것이 <고전>입니다.
이토록 유명한 <고전>이라면 우리가 읽어줘야 하는 게 예의입니다. 그리고 읽어보면 의외로 재밌다는 소감을 풀어놓는 이들도 꽤나 많습니다. 어릴 적에는 너무 어려워서 손도 댈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어렴풋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힌다는 얘기도 곧잘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르니까 어렵고 알면 쉽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곧잘 써먹는 '격언'인데, '아는 것이 힘이다'와 '아는 만큼 보인다'를 적절히 섞어서 제가 만든 문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조차 제가 처음 쓴 말은 아닐 겁니다. <고전>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을 문구를 제가 우연히 써먹게 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고전>은 인류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암튼 샛길로 더 빠지기 전에 본론을 얘기하려 합니다.
<임수현의 친절한 인문학>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작가가 엄청 미인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운 고전을 '미모의 길라잡이'와 함께 읽으니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책표지'를 보면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미인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서 '뷰티책'인가 싶지만, '책제목'을 보면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있어서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심지어 '써니피디아'라는 너튜브를 검색하면 아름다운 피아니스트가 쇼팽을 연주하는 동영상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인문학책을 소개하는데, 저자의 미모를 따지는 어리석음은 도대체 무슨 의도냐?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법도 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는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강력한 힘이 되는 법입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꼬꼬마들도 '선생님'이 못생겼으면 말 안 듣고 잘 생기고 예쁘면 말 잘 듣는다고 합니다. 씁쓸하지만 '원초적 본능'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에 끌리고 매혹되는 법입니다.
자, 이제 중요한 사실을 언급할 겁니다. 우리에게 '고전읽기의 길라잡이'가 꼭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두께도 두껍지만 내용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임수현과 함께 읽으면 12쪽만에 <국가>에 담겨 있는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480쪽에 달하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15쪽이면 대강의 줄거리는 물론 책속에 담겨 있는 주제까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뿌려주는 것만으로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맑은 물을 퍼올리게 해주는 마중물 말입니다. 요즘이야 자동펌프가 있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마중물'을 접해볼 수고조차 필요치 않게 되었지만, 우리가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과학적 원리'를 담아 인간이 쓰기에 편리한 기계를 만든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딴에는 '그딴 것'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겁니다. <돈 키호테>를 읽지 않아도 연극과 드라마를 통해서 '돈 키호테' 같은 등장인물이 펼치는 코믹한 행동에 웃음보를 터뜨릴 수 있습니다. 고아 소년의 눈을 통해 미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점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문제점까지 고발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몰라도 사는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임마누엘 칸트의 <비판철학 3부작>을 꼭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고전읽기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가요?
읽으면 다릅니다. '고전의 무게'는 책 두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의 남다른 깊이'로 정해집니다. 때론 고전을 읽다가 우주만큼 광활해지는 '혜안'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전은 '생각의 깊이'와 '사고의 드넓음'을 주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의 여운'이랍니다. 고전의 저자들은 고뇌와 고뇌를 거듭하며 '한 문장'을 써내려갔고, 그 고뇌의 끝자락에서 어렴풋이 한 가닥 불빛을 잡아낸 듯한 '진한 감동'을 <고전> 속에 녹여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면 다른 책에서는 읽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에 꼭 읽어보라고 간절히 권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한 눈에 보일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의 미궁' 속에서 실타래가 되어줄 '길라잡이'가 필요한 법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 길라잡이가 되고자 '리뷰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 뿐입니다. 언젠간 저도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여러분에게 보탬이 된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 전에 임수현이라는 '아름다운 고전 길라잡이'와 먼저 재미난 인문학 여행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친절함은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