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동물대탐험 5 : 황제펭귄의 행진 - 남극의 육아 천재, 황제펭귄 최재천의 동물대탐험 5
최재천 기획, 박현미 그림, 황혜영 글, 안선영 해설 / 다산어린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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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동물대탐험 5 : 황제펭귄의 행진>  최재천 / 황혜영 / 다산어린이 (2024)

[My Review MMCLIV / 다산어린이 9번째 리뷰] 어린이들에게 '책 선택권'을 자율적으로 주시는 학부모들이 많다. 최근에는 자녀의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많아서 웬만한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전문가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도서선정'에 있어서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 그 비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이 읽을 책을 '아이들의 의사'에 전적으로 맡겨놓고 학부모들은 그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만 '검사'하는 형식으로 독서교육을 진행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모들도 '맞벌이'를 하느라 독서교육까지 '전담'하며 교육을 진행하기는 무리가 있어서, 주말을 이용해서 온 가족이 다 함께 도서관에 방문해서 일주일동안 읽을 책을 싹쓸이(?) 해서 바리바리 싸들고 귀가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온 수확물들은 온가족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정말이지 좋은 독서교육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레 '독서 편식'이 심해지고, 그로 인한 '지식 불균형'이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자녀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러 장르의 책 가운데 '호불호'가 명백히 갈려서 애써 기른 '독서력'에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잘못된 '독서습관'으로 책을 열심히 읽는데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독서로 쌓은 지식은 초등시절까지는 '문학 50%', '비문학 50%'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똑똑한 어린이로 가르치고 싶다면 '문학 30%', '비문학 70%'로 비문학 비중을 높여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저학년보다는 고학년부터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여기서 욕심이 나는 학부모라면 '문학 비중'을 그대로 50% 수준으로 놓은 다음에 '비문학 비중'을 80% 수준으로 늘려서 더 많은 책을 읽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초등시절을 보낸 어린이들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고등시절에도 '책 읽는 습관'을 내려놓지 않게 된다.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며, 진정한 '독서교육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초등시절에 읽은 책보다는 중고등시절에 읽은 책이 더 감명 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시절에는 '경험'이 폭넓지 못하고 '안목' 또한 좁을 수밖에 없다보니 아무리 좋은 책을 읽었더라도 자기 스스로 '뇌 각인' 시킨 지식이 좁고 얕을 수밖에 없다. 허나 중고등시절에 읽은 좋은 책은 '평생 기억'으로 남아 성인이 된 뒤에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비판적 사고로 되새김하며 올바르고 올곧은 '가치관 형성(자아성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중요한 힘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시절인데, 초등시절에 '읽었던 책'이라며 중고등시절에 소홀히 하면서 '독서량'도 현저히 줄여버리면 이 좋은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가장 좋은 책이 '문학책'이 아니라 '비문학책'이다. 물론 문학책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비문학책 속에 담긴 '고급지식'을 많이 접할수록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학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문학은 이런 '고급지식'이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비유와 상징' 같은 것으로 감춰놨기 때문에, 그걸 다시 한 번 '해석'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해석 능력을 키운다면 정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그걸 스스로 터득하라고 던져주기만 한다면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렇다고 '모범답안'처럼 어린왕자는 이렇게 해석하고, 홍길동은 저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답을 정해준다면 '비유와 상징' 따위의 고급진 표현법도 더는 고급지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문학은 해석이 생명이며 어려운 것이다. 남들과 똑같지 않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창의성까지 요구하는 경향이 문학쪽에선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허나 비문학은 '이해 요구'를 우선하기 때문에 창의력을 기를 부담을 줄여 주게 된다. 그리고 비문학 자체가 '고급 지식'으로 가득한데, 그 지식이 왜 그러한지부터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고급 지식을 습득하는데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거기다 비문학적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만물을 '이해하는 폭'이 점점 더 넓어지기 때문에, 비문학책을 한 권 섭렵할 때마다 '생각하는 힘'이 점점 더 넓어지고 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강해진 '생각하는 힘'으로 문학책 속에 담긴 '비유와 상징'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천편일률적으로 달달 외우던 '모범답안'을 넘어 자기가 이해한 세상을 상상력(창의력)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밀 수 있게 된다. 이게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렇기에 어릴 적에 비문학책을 즐겨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 초등시절에는 어떤 비문학책을 많이 읽으면 좋을까? 단연 '수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 분야의 책들이다. 물론 '역사'나 '정치사회' 같은 책도 읽어두면 좋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이런 사회탐구적인 과목의 책들은 얼마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될 수도 있다. 허나 '과학탐구' 과목의 책들은 '인공지능'조차 탐구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에 좀 더 발빠르게 섭렵해나가면 가장 좋을 것으로 본다. 전세계적으로도 '이공계 계열의 인재'를 많이 선호하는 편이고, 그 가운데서도 컴퓨터, 반도체, 에너지 관련 이슈는 가장 핫한 축에 속한다. 그럼 이 책 <최재천의 동물대탐험>은 동물학, 생태학 등과 관련이 깊은 책이니 후순위로 밀리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평소 최재천 교수님이 '통섭'을 강조하면서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지식을 섭렵'해서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왜냐면 요즘 학문의 트랜드가 여러 분야를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융합적 인재를 요즘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만능 스포츠맨'처럼 과학계에서도 '만능 과학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동물과 생태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온갖 '첨단기기'들을 선보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을 신문물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동물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할 테지만, 이 책에서 활약하는 탐사대원들이 쓰고 있는 물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으며 두 눈을 번뜩일 '엔지니어(기술자)'와 '공학자' 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한편, 남극이라는 혹독한 자연환경에서도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을 맞은 남극대륙의 한가운데의 기온은 영하 3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추위를 맛볼 수 있다. 거기다 '블리자드' 같은 눈폭풍을 만나게 되면 '체감온도'는 더 떨어져 영하 50도 이하의 강추위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런 혹한의 환경에서도 생명은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황제펭귄 무리'다. 이들은 혹한의 환경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도는 '허들링(최재천 이름짓기 '옹송그림')' 덕분이라고 한다. 황제펭귄의 덩치는 1미터가 훌쩍 넘어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정도의 몸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피부는 두터운 지방층을 형성해서 내부의 온도를 밖으로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덩치 큰 황제펭귄이 '블리자드'를 만나면 서로의 피부를 맞댈 정도로 모여들어 체온을 더 높이기 위해 '피부접촉'을 늘려 빙글빙글 무리지어 돈다고 한다. 이때 '옹송그림' 한복판의 온도는 무려 37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체감온도 영하 5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모은 것이다. 그래도 '옹송그림'을 하는 무리 가운데 가장 바깥에 있는 황제펭귄들은 강추위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체온을 빼앗길 위험에 놓이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안쪽에 있는 황제펭귄과 바깥에 있는 황제펭귄이 주기적으로 위치를 바꾸며 계속 돈다고 한다. 이때 어린 새끼가 있거나 덩치가 작아 체온유지에 불리한 황제펭귄이 있다면 '옹송그림'의 안쪽에 위치시켜서 생명유지에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더구나 황제펭귄의 부성애는 너무 감동적이다. 짝짓기를 한 뒤에 암컷이 하나의 알을 낳게 되면, 알이 빙하 위의 추위에 얼지 않게 곧바로 수컷의 발등 위에 알을 품게 된다고 한다. 그 상태로 수컷은 암컷이 바다에 나가 '먹이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2~3달 동안 알이 발등 위에서 굴러떨어지지 않게 생활해야 한다고 한다. 당연히 먹이사냥을 할 수 없는 남극대륙 한복판에 서식하기 때문에 암컷이 교대해주기 전까지 그대로 굶게 된다. 그래서 짝짓기 할 때 수컷은 덩치가 큰 놈이 유리하다고 한다. 암튼 블리자드가 불어서 '옹송그림'을 할 때에도 알을 발등에 올려두고 조심조심 하면서 돌고 잠을 잘 때에도 알이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버틴다고 한다. 만에 하나 알이 발등에서 굴러떨어지면 딱 20초가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알은 그대로 얼어서, 알 속에 있는 새끼의 생명도 그대로 얼어버린단다. 이런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2달을 품고 나면 알껍질을 깨고 새끼가 태어나는데, 이때 새끼가 추위에 얼지 않도록 또 수컷의 발등 위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끼가 갓 태어났으니 먹이를 줘야 하는데, 이때까지 완벽히 소화되지 않은 위속의 먹이가 있으면 그것을 게워내 새끼에게 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수컷의 몸무게가 반쪽이 될 정도로 쏙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컷의 위벽을 헐어서 게워내는 '펭귄 밀크(최재천 이름짓기 '펭귄 초유')'를 첫 먹이로 준다고 한다. 정말이지 자신의 생명을 갉아내며 새끼를 살려내는 생명의 신비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겨우내 알을 품고 새끼를 길러낸 수컷은 마침맞게 돌아온 암컷과 '바통 터치'를 하고, 수컷은 '먹이 사냥'을 떠나고, 암컷은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게워내서 새끼에게 먹이는 일을 3년 동안 계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솜털을 털어내는 어른 황제펭귄이 된 새끼들은 바닷속으로 첫 사냥을 떠나며 새로운 세대 교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답고 감동적인 생태의 현장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남극의 기온이 올라가는 바람에 '도둑갈매기' 같은 천적이 극성을 부려 황제펭귄이 남극대륙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먹이사냥을 하는데 '이동 거리'가 늘어나서 굶어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단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알 수 있는 내용으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벽 붕괴'로 인해 황제팽귄 서식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빠지게 되었고, 아직 솜털도 벗지 못한 새끼들은 '방수 기능'이 없기 때문에 헤엄을 치지 못해 물에 빠져 죽거나 '저체온증'으로 얼어죽고 마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대로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게 되면 황제펭귄은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내몰리고 말 것이라고 한다.

우리 지구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기에 '한 종의 멸종'은 별 것 아닌 것으로, 큰일이 날 것도 없는 심각성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허나 한 종의 멸종은 생태계의 파괴를 부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심각성을 넘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 종의 멸종은 단순히 '먹이사슬' 한 가닥 끊어지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다. 먹이사슬은 여러 개가 얽히고 설켜 있기에 '먹이 그물'이라 부르고, 그 그물의 일부가 망가지게 되면 '전체적인 붕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그리고 대멸종을 겪을 때마다 '기존의 생태계'는 완전히 아주 화끈하게 붕괴되었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새로운 생태계'가 구성될 때까지 엄청난 변화를 보여왔다. 그럼 우리 인류가 겪게 될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이한 뒤에는 인간의 운명은 어떨까? 간단히 말하자면 '인류'도 당연히 멸종하게 된다. 이것은 분명 최초일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대멸종'을 스스로 불러오지 않았는데, 오직 인류만이 자신의 멸종을 자신이 불러오게 되는 최초이자 유일한 종일테니 말이다. 멸종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되도록 그 멸종의 시각을 최대한 늦추는 방법 뿐이다. 뭔가 황제펭귄에게서 얻은 지식이라면 그 멸종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 책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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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권 - 개화기편,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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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 :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7)

[My Review MMCLIII / 인물과사상사 25번째 리뷰] 강준만은 '사회문화 비평가'로 소개되고 있다. 현재에는 '보수적인 경향'을 드러낸 논객이라고 보여지지만, 이 책이 쓰여질 당시만해도 '보수와 진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은 균형잡힌 시선으로 글을 썼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 근거는 이 책에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들을 '비교분석'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만 봐도 그렇다. 보수쪽의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의 지평을 나열하였으면, 반드시 진보쪽의 견해로 이를 비판하며 균형추를 맞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역사에 관한 많은 관심만으로도 '독자만의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25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혼돈과 난맥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시금 재조명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찰나에 떠오른 책이 바로 강준만의 '근현대사 산책' 시리즈였다. 비록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지난 옛 책이긴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던 시기에 쓰여진 역사책이기에 '역사교과서 논란'을 전후로 한 한국사 재평가를 논하던 시점에 쓰여진 책이기에, 지금과 같은 빠르게 변모하는 '변곡기'에 딱 어울릴 책이라고 여겨 다시금 리뷰를 기획했다.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꾸준히 리뷰해보겠다.

2025년 현재 '한국사'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은둔의 나라'였기에 아무나 관심을 가지지 않은 나라의 역사였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 하나로 일약 '전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로 등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만화영화만 인기를 끌고 만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적인 것으로 관심이 확장되면서 '한국의 위상'이 재정립되어 국제적으로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는 계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1년 전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지만, 국민들이 저지해내고, 심지어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내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운 것도 놀라운데, G7, APEC, G20까지 일사천리로 성과를 거두면서 '대한민국의 놀라운 민주회복력'을 전세계에 각인 시켜줬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미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MAGA 정책'에 발맞춰 전세계를 향해 '관세폭탄'을 던지는 와중에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사태'가 벌어지자 한국은 신속하게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고, 끝내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켜내는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며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대등한 외교를 달성해내는 위업을 보여주었기 때문에라도 '대한민국'은 위풍당당하게 전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자평할 수 있을 정도까지 일어섰다.

암튼, 이런 위상에 걸맞는 '역사 평가'를 다시 매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한국사는 다분히 위축된 역사관을 보여줬고, 세계사적으로도 미미한 영향력을 보여준 '약소국의 이미지'가 강했기에, [국사/세계사]로 따로 구분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경향까지 생기지 않았던가. 그러다보니 '자국의 역사'를 배우면서도 아이들의 입에서 "한국사는 부끄러워서 배우기 싫어요"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고, 이런 말을 들은 역사교사조차 별다른 반박도 하지 못하면서 '자국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아이에게만 면박을 주는 일도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부러워하고 있는 까닭은 '제국주의적 만행'을 저지르지 않고도 세계적으로 강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으며, 그로 인해서 절대 미움 받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는 전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런 나라의 역사를 왜 부끄러워 해야 하느냔 말이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사를 다시금 써나가야 할 것이다. 식민주의 사관으로 위축할 것도 없고, 민족주의 사관으로 과장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도, 자긍심이 넘치도록 말이다. 그간 우리 역사에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정복하는 역사가 없이, 외국의 침략에 맞서 지켜내는 역사만을 가르치면서, 세계적으로 훌륭한 위인으로 알렉산더, 칭기스칸, 나폴레옹 등을 거들먹거렸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았던가? 정복의 역사가 없는 '선한 국민성'을 자랑하면서, 내심으로는 '세계정복의 꿈'을 꾸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반된 가치관'을 어린 학생들에게 강제로 주입했으니, 앞서 나왔던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대답할 것도 마땅히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당당히 가르치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정복'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한 민족이었고, 오늘날에는 그런 비폭력적이고 선한 영향력만으로 전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러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우리 민족은 한 점 부끄럼 없이 이 땅을 당당히 지켜왔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사'는 재조명해야만 한다.

이 책 <한국 근대사 산책 1>은 조선이 서양과 조우한 명백한 증거인 '천주교 박해'부터 급진개화파가 저지른 성급한 실책, '갑신정변의 실패'까지 여러 사학자들의 견해를 아우르고 있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 했듯이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수많은 견해들 속에서 '비교분석'하기 딱 좋은 책일 것이다. 그럼 시작해보자.

조선 후기 '개화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은 청 문물을 기꺼이 수용해서 먼저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자고 주장했던 '북학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주로 남인 계열의 지식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청을 통해서 접한 문물 가운데 '천주교'도 있었다. 허나 조선 민중이 천주교를 '종교'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유교가 정치사회적으로 민중들의 의식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신 사상'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종교 개혁'을 하기에는 너무 앞선 일이었으며, 그게 가능하리라 믿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주교는 종교가 아닌 학문적 성격이 강한 '서학'으로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조선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는 문구를 전파했고, 소수이지만 '모두가 귀천이 없이 평등한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해줬다. 그래서 서학(천주학)은 이런 매력으로 조선사회에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대목이 무엇일까? 바로 조선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있었던 이들이 귀천을 막론하고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꿈꾸었던 것이 바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꿈을 갖게 된 이들이 이후에 벌어진 '천주교 박해' 때 수많은 순교자를 낳게 되었다는 사실과 부합하게 된다. 당시 '한자 성경'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글 성경'이 많이 보급되었을리 만무하다. 그럼 대부분 '영어'나 '불어', '독어' 같은 '외국어 성경'이 대부분이었고, 이를 직접 읽을 수 없는 조선 사람들은 외국인 신부의 말을 '통역'해주는 역관들의 도움으로 성경구절의 몇 마디만 겨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경구절 몇 마디만 알고 있던 대다수의 조선사람들이 '독실한 신앙심'으로 절두산에 올라 기꺼이 순교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그것보다는 성경 말씀에 기초한 '평등사상'이 너무 옳다고 믿었고, 자신의 세대에선 이루기 힘들지라도 '자식의 세대'에선 가능할 거란 희망을 품고 배교를 거부하고 기꺼이 순교의 길로 들어서길 바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삽시간에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을 당연한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사상]'이라는 평등사상을 주장한 동학은 만나기 힘들고, 믿음을 유지하기 힘든 '천주교'보다 수월하게 퍼져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때는 '안동 김씨'를 위시한 세도정치가 횡행하던 엄혹한 시절이었고, 동학세력은 자연스레 '저항의 중심'으로 힘을 모아 마침맞게 일어난 '농민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농민항쟁'으로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동학농민항쟁'은 훗날 '반외세'를 불러일으키며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에 앞서, '정부의 탄압'이라는 내부의 억압과 먼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당시 지배세력인 '양반사회'가 지닌 모순과 세계 정세에 어두운 권력계층의 무능부터 타파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영민한들 '시대를 앞선 천재'가 맞은 불운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물론 동학교도들이 '시민교육'을 받지 못한 미성숙한 면이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허나 당시의 사회상이 99%가 농민이던 시절에 하루종일 농사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교육수준'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니 너무 시대를 앞선 비판에 앞서서 당시 조선사람들이 사상적, 문화적으로 변모해나가는 장면을 중점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암튼, 세도정치의 명맥을 끊은 영웅은 '흥선대원군의 등장'이다. 열두 살 난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상왕의 입지에 올라 향후 10년 간 조선의 정치권력을 손에 쥐고 흔든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먼저 조선 민중과 개혁세력은 대원군의 등장을 환영했다. 그가 시작한 일이 '세도정치의 종지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도 가문의 본거지였던 '서원'을 철폐했고,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걷는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서 권력의 향배가 '세도가문'에서 '대원군'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는 이후에 '왕권 강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그간 억압 받고 착취 당하던 조선 민중들은 대원군의 집권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허나 이런 분위기가 오래 가지 못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오페르트 도굴 사건으로 인해 두 차례의 양요가 벌어졌고, 전국에 척화비가 세워지는 등 '개항'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에서 대원군이 실책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원군이 실책을 하는 과정중에 '고종의 친정'을 둘러싼 '민비와 대원군의 대립'은 날로 격화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사이에 '경복궁 중건'은 대원군의 뼈아픈 실책이 되었고, 기대했던 '왕권강화'를 달성하기도 전에 '원납전 실시'로 양반들의 불신을 불러왔고,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백성들의 원망까지 덤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운양호) 사건'까지 연이어 벌어지며 개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과도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개화를 주장하는 세력과 손을 잡고 '고종의 친정'을 도모하는 '민비 세력'은 새로운 정치권력을 불러들여 치열한 권력다툼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전차로 조선은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 그리고 '위정척사파'로 갈라져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개화파는 '진보', 위정척사파'는 '보수'의 성격을 띤 정치집단이라는 것은 명백한데, 진보세력이 '급진'과 '온건'으로 나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까? 급진개화파는 외세를 불러들여 빠르게 개혁을 완수하자는 쪽이었고, 온건개화파는 개항을 통해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의 실력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점진적으로 개혁을 하자는 원론적인 분파였으면 이해하기도 쉬웠겠지만, 개화파들의 주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었고, 권력의 향방이 대원군과 민비 사이에서 치열한 대립양상을 띨 때, 이런 혼란을 틈타서 저들만의 계략(?)을 꾸며 구국을 위한 결단과는 상관없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는 개화파의 활약보다 '위정척사파'의 활약에 더욱 명분이 서는 모습이었다. 허나 위정척사파는 너무 고루했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조선은 '변함없이' 가려고만 했으니 실익이 전무했던 것이다. 다만 '의기'만 충만했다. 강력한 외세의 등장에도 조선이 보여줄 '당당한 성리학적 명분'만 내세우면 도덕적으로 열세(?)인 야만스런 서양오랑캐들이 저절로 물러설 것이라 철떡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조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이런 와중에 조선은 '운양호 사건' 이후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으로 최초의 근대식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을 시작으로 서구열강들과 차례대로 '불평등조약(최혜국대우)'을 맺게 된다. 자연스럽게 조선의 이권이 서구열강과 일제에게 넘어가기 시작한 셈이다. 이때 일본의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획책하게 된다. 조선의 개화파를 가르쳐(!)서 일본의 꼬붕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야심을 꿈꾼 것이다. 그래서 움직이게 된 인물들이 바로 '갑신정변의 주역들'이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당의 핵심 인사들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 '장기말'이었던 셈이다. 물론 김옥균 등은 조선을 근대화시키려는 충성심에서 나온 애국적 행위라 철떡같이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변'을 일으킬 정도로 혁명적인 사상에 충실했던 인물이 자국내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직 '일본'이라는 외세의 힘만 믿고서 순진하게 일을 벌였다는 것이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래서 갑신정변은 오늘날까지도 그 평가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긴 했으나, '정변을 일으킬 정도'로 급박할 사정이 무엇이었느냐를 두고서 논란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계획 하에 김옥균 등은 '갑신정변'을 일으켜 개혁을 발빠르게 추진하려 했으나, 조선 민중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는 변수를 미리 짐작하지 못한 후쿠자와의 오판으로 인해 갑신정변을 무리하게 추진했고, 청병 1500여 명을 미리 주둔시켰던 원세개(위안스카이)의 발빠른 진압에 '일본공사관'의 소수의 병력은 정변을 돕기는커녕 도망가기 급급했고, 일본의 군대와 지원금만 믿고 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은 유일한 희망이었던 '고종'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고, 개화파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만들어서 김옥균 등을 '역적'으로 결단케 만들었기에 결국 '3일 천하'로 끝맺게 된 것이다.

허나 이런 실패조차 일제의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일본 군부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노선을 더욱 확고히 했고, 후쿠자와조차 '탈아론'을 주장하며 "동양의 후진국과 교제하지 말고 그들을 유럽인들이 대하듯 대하라"는 메시지를 내세웠고, 이는 '흥아론'으로 확장되어 "같은 문자를 쓰는 같은 아시아 민족이 일본을 맹주로 대동단결하여 서구열강을 아시아에서 물리치고 부흥시키자"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후쿠자와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대륙침략에 앞장서게 된다.

이런 일본의 야만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과 이웃한 나라임에도 우리가 '경계대상 1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명백한 근거다. 이런 야만적인 이웃 나라를 두고도 '침략과 정복'을 기치로 삼지 않은 대한민국이 더욱 돋보이지 않는가? 2권에서는 우리가 받게 된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용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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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3 - 소중한 보물을 찾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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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에메랄드 3 : 소중한 보물을 찾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5) [원제 : Emerald and The Lost Treasure(2024)]

[My Review MMCLII / 을파소 20번째 리뷰] '이사도라 문' 시리즈에서 또 하나의 작품이 나왔다. <마녀 요정 미라벨>에 이어 <프린세스 에메랄드>로 이야기를 확장시킨 것이다. 왜 확장이란 표현을 썼냐면 '이사도라 문'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요정에 관한 이야기'인 탓에 숲이 울창한 깊은 산속이거나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한 '육지'였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인어'가 주인공인 덕분에 아주아주 깊고 넓은 바닷속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배경이 '바다'이기 때문에 확장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의 주인공은 '에메랄드 공주'다. 하지만 애초의 주인공이었던 '이사도라 문'과 친구였던 인어는 다름 아닌 '마리나'여서 직접적인 연결점이 없었다. 하지만 해리엇 먼캐스터 작가가 <프린세스 에메랄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점에 등장했던 <이사도라 문, 인어와 헤엄치다> 편에서 에메랄드가 등장하면서 이사도라 문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 바통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사도라 문' 이야기가 종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무대를 '바닷속'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 새 캐릭터를 만든 것으로 짐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바다'를 소재로 해서 이야기할 것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해양 쓰레기'나 '미세 플라스틱' 문제는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이런 속도로 바다환경을 오염시켜 버린다면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지구생명체들의 절멸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 정치, 경제, 종교, 민족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갈등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 당장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위기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바로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생태계가 아주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양쓰레기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일본 핵발전소 오염수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방류중'에 있다. 하나 뿐인 지구를 이렇게 오염시켜 나간다면 과연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위협을 받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심각성을 매일 '경고'하고 기분 나쁘고 암울한 소식만을 계속 이야기하면 이런 문제가 진정 해결될 수 있을까? 물론, 위기 경고도 중요하고, 듣기에 기분 나쁘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숨김 없이 '보여주기'하는 것도 꼭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그런 '팩트'만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사람들은 '비극'보다 '희극'을 보며 소망을 빌고, 꿈과 낭만을 보여주어야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쓰레기 무단 투기로 더러워진 골목길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CCTV를 설치하고 법적 처벌을 하겠다는 '경고'보다는 골목길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꾸고 담장에 꽃과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는 것으로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프린세스 에메랄드 3>에서는 에메랄드와 학급의 친구들이 바닷속 쓰레기를 주우면서 깨끗하게 청소도 하고, '재활용품'을 구분할 수 있는 수업을 하다가 해초 사이에 엉켜있는 귀여운 곰인형 버티를 주웠다. 에메랄드는 곰 인형이 너무 귀여워서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곰인형에게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육지에서 살고 있는 '잭'이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적은 듯한 메시지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 곰 인형을 주운 사람은 꼭 돌려주세요'라고 말이다. 에메랄드도 소중히 여기는 '불가사리 인형'이 있었기 때문에 인형을 잃어버린 잭의 마음을 너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어가 '육지'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왜냐면 물밖에서 숨을 쉬는 것까진 할 수 있어도 '다리'가 없어서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어의 피부는 물밖에서 오래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건조해지면 비늘이 벗겨지고 심하면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지에 사는 잭에게 인형을 돌려줄 방법도 없었다.

그러다 떠올린 좋은 방법이 있었다. 바로 마리나의 친구인 '뱀파이어요정 이사도라 문' 말이다.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하면 곰 인형을 잭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편지를 써서 갈매기 편에 보내 이사도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이사도라 가족은 다시 한 번 바닷가로 찾아와 '마리나와 에메랄드'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이사도라 문만 온 게 아니었다. 이사도라의 사촌언니인 '마녀요정 미라벨'도 함께 온 것이다. 그리고 에메랄드의 사정을 듣고 난 뒤에 '함께' 잭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왜냐면 미라벨은 마녀이기 때문에 요정보다 더 강력한 마법을 부릴 줄 알기 때문이다. 비록 미라벨이 부리는 마법이 서툴기도 하고 실패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불안정'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미라벨에게는 늘 '말썽꾸러기'라는 수사가 따라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마법으로 인해 '인어들은 새로운 모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다. 과연 어떤 마법을 부렸던 것일까?

이사도라 문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총 출동한 이번 이야기는 '스케일'도 컸지만, 던지는 '메시지'도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형'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보물로써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아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애착 인형'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인형을 정말 소중히 여기는 어린이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곁에 항상 '존재'하는 동물이나 인형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잘 아실 것이다. 이건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기본 공식'처럼 지켜지고 있는 규칙인 셈이다. 이건 어린이들에게 '깜찍하고 귀여운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거듭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그런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엄청날 것이다. 이럴 때 어른들은 '새 인형'을 사주는 것으로 대신하려 들지만, 그 방법이 잘 먹혀 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예로 들기에도 끔찍한 일이지만, 부모에게 소중한 자녀를 잃어버렸다고해서 '또 다른 자녀'로 대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 상실과 아픔을 위로 받기도 전에 '새로운 대체품(?)'으로 무마시키려는 방법은 정말 끔찍한 일이니 함부로 그러지 말았으면 싶다. 그 슬픔과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없이 달래주는 것이 먼저란 얘기다. 어린이들에겐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보물을 원래 주인에게 되찾아주는 여정은 아주 큰 감동을 선사한다. 현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정말 낭만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물건은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다'라는 건은 전세계적인 불문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불상사로 '잃어버린 물건'과 함부로 '버린 물건'을 같은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임자 없는 물건'일지라도 함부로 가지거나 하기 전에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려는 노력'을 꼭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귀찮고 힘들다면 차라리 '있던 그 자리'에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원래 주인도 '버린 물건'이 아니라면 '찾으려는 노력'을 분명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려는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로 잘 하고 있다. 이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일상'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임자 없는 물건을 탐내지 않고, 잃어버린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배려 깊은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에 전세계인이 감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낭만적이고 이름다운 이야기가 일상이 되는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꼭 만들어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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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눈꽃 축제에 반하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18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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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눈꽃 축제에 반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5) [원제 : Isadora Moon And The Frost Festival(2023)]

[My Review MMCLI / 을파소 19번째 리뷰]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화려한 축제'를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30세 이후로 가본 적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봄이면 '유채꽃 축제', 가을이면 '코스모스 축제'를 개최하고 마지막날 밤이면 어김없이 불꽃놀이로 하늘을 수놓고 있지만, 참가한 적은 한두 번이 고작이다. 20대까지는 '남자친구'하고 밤새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서른 살이 넘어가니 남자들끼리 화려한 축제를 찾아다니며 낭만을 즐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가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젊은 연인들'이고, '부부동반'이거나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선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속에서 '중년 남성'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은 정말이지 꼴불견 가운데 베스트라는 것을 자각하고 난 뒤에는 축제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저곳은 아름답겠구나'하는 정도로 달래고 있을 뿐이다. 올 겨울도 '여우목도리' 장만하지 못했고, '토끼같은 자녀'랑 손잡고..쿨럭쿨럭..난 글렀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가 어느 사이에 '확장'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녀 요정 미라벨>(2020)과 <프린세스 에메랄드>(2023)가 '이사도라 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빠른 시일 내에 읽고 리뷰를 쓰긴 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장담'은 못한다. 물론 '빠른 시일'이라는 것에만 해당하고, '리뷰'는 꼭 쓴다. 실제로 몇 년 뒤가 될지라도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데, 먼저 '내 주머니'가 그리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바로바로 사서 읽을 처지는 못 된다. 그나마 몇 년 전까진 '리뷰어 선정'을 하는 책에 무진장 공을 들여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빠르게 리뷰할 기회라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간 리뷰어가 될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인스타그램이 중요하냐고? 내가 '페이스북(메타)'에는 글을 올리지만 '인스타그램'에는 글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지 않다보니, '신청할 기회'마저 거의 박탈(?) 당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예전처럼 다시 '도서관 대출'을 통해서 책을 빌려보는 통에 '신간 리뷰'를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사도라 문>시리즈도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거나 '대출 가능'해야 겨우 리뷰를 올리고 있는데, 어린이 인기도서이다보니 대출순서에서 밀리고, 도서관이기에 '최신간'이 비치되기까지는 적어도 반 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다면 '대형서점'이라도 발품을 팔았는데, 나이가 드니 그것도 힘에 부치는 요즘이다. 정말 한창때는 '반디앤루스'나 '종로서적', '영품문고' 등지에서 바닥에 기대 앉아서 신간을 읽는 낭만을 즐겼는데...그것도 이제는 옛 추억이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 리뷰'를 고대하시는 분들도 없는 마당이니 '리뷰한다'는 약속조차 나 혼자만의 다짐일 뿐이다. 매년 300편의 리뷰를 다짐하지만, 늘 그 언저리에서 그치고 마는 것도 크게 실망할 것이 없다. 그저 '나와의 약속'을 어겼다는 자책을 할 뿐이고, 내년에 기필코 300편의 리뷰를 완성하리라는 새로운 다짐을 하며 '자기합리화'를 할 뿐이다. 내 주변에는 '내 리뷰'를 읽어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도 읽지 않고, 친구들도 '그래, 썼구나'라는 정도라서 그저 나 혼자만 책 읽고 리뷰 쓰는 '별종 취급'을 받을 뿐이다. 그나마 '블로그 지인분들'께서 간간히 읽어주시고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주실 뿐이다. 정말이지 그분들마저 없었다면 '리뷰'는 쓰지도 않고 '독서'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인기는 없다. 그건 내 리뷰가 그리 큰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남기는 리뷰도 '혼잣말같은 리뷰'를 쓰곤 한다. 책의 줄거리도 무시하고, 나 혼자만의 '사고의 흐름'에 따라,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위주로 끄적거릴 뿐이다. 그 정도로도 내 기억속엔 '책의 내용'이 다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에 다시 읽고 했던 습관이 어릴 적부터 있었는데, 그 습관을 대신해서 '리뷰'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2회차, 3회차 리뷰의 경우에 앞서 쓴 리뷰와 완전 다른 리뷰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같은책'으로 10번의 리뷰를 쓰라고 하면 완전 다른 10편의 리뷰를 쓰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런...또 샛길로 빠져버렸다. 이 책 <이사도라 문, 눈꽃 축제에 반하다>는 겨울 축제를 맞아 엄마의 자매인 '겨울요정'의 마을축제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사도라의 아빠는 뱀파이어고, 엄마는 요정인데, 더 정확하게는 '여름 요정'이라서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자매는 '겨울 요정'이기에 꽃이 아니라 '눈꽃'을 만들 수 있는 요정이다. 그래서 이사도라네 가족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겨울풍경'을 배경으로 화려한 눈꽃 축제에 초대를 받아서 한껏 들뜬 상태다.

먼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참석하게 된 '눈꽃 축제'는 정말 경이로웠다. 온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눈으로 이루어진 풍경에 아름다운 감탄사를 늘어 놓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꽃 축제장은 정말이지 넓고 또 넓었다. 이사도라네 가족이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모든 놀이기구를 탈 수 없고, 모든 매장을 다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축제에 참석한 요정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로 분비는 '혼잡한 장소'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은 무엇일까? 한 가지 힌트를 더 첨가하자면, 가족이 함께 참석한 축제 현장이다. 맞다. 길을 잃어버린 '미아 사건'이다.

나 어릴 적인 70~80년대만해도 어린이 미아 건수가 상당히 많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탓도 있어서 '어린이의 수'가 많은 반면에 그 많은 어린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해마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축제가 많은 날에는 '미아보호소'에 어린이들이 넘쳐났고, 길을 잃은 어린이를 보호하고 있거나, 그런 어린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정말 불행한 일이지만 그런 '미아 사건'이 어린이 유괴 사건이나 사망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릴 적의 기억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엄마아빠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니기 바빴던 것만 기억이 날 정도다. 놀이동산, 동물원, 남산 타워, 전국 각지의 국립공원 등등 정말 많은 장소가 떠오르긴 하는데, 뭘 제대로 보거나 재밌게 즐겼던 기억보다 정말 사람이 많아서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거나 겨우 찾아낸 '나무 그늘 아래'서 김밥 서너 개 먹은 것만 기억날 뿐이다. 하도 엄청난 인파에 휩쓸리다보니 집에 갈즈음에는 파김치가 되어서 귀가하는 차편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고 나면 아침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낭만을 좋아하는 내게 이런 기억은 정말이지 낭만적이지 않은 기억일 뿐이었다.

그런 탓에 이사도라도 '눈꽃 축제' 현장에서 그만 부모님께 떨어져서 길을 잃고 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사도라가 나쁜 행동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겨울 요정에게 반해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그 겨울 요정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점등식 행사'에 쓰일 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 잃어버린 별을 찾아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선행'일지라도 축제와 같이 혼잡한 장소에서 부모님과 떨어질 경우에는 반드시 '행선지'를 알리거나 '동행자'가 누구인지 먼저 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이사도라가 길을 잃어버린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걱정이 앞서서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이사도라를 찾아나설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사도라의 엄마아빠도 이사도라를 만나지 못해 찾아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혼잡한 축제 현장이었기에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같이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었고, '길찾기 앱'이나 '위치추적'이 가능한 앱이 스마트폰에 깔려 있기 때문에 아무리 혼잡한 곳일지라도 예전처럼 길을 잃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정말 급박한 상황이라면 '전화통화'를 시도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사람이 많이 붐비는 혼잡한 장소에 갈 때는 반드시 '부모님과 동행'하고,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볼거리가 많은 축제에서는 잠시라도 한 눈을 팔거나 넋이 나갈 정도로 흠뻑 빠진 상태에서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끔찍한 사고라도 발생할 수 있으니 절대로 '흩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더구나 외국 여행중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더욱더 큰 일이다. 대한민국처럼 치안이 잘 된 나라가 몇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이나 이국적인 장소에서는 절대로 '흩어지는 일'을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안전 교육'을 어린이책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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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 3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바이퍼케이션 3 : 하이드라>  이우혁 / 해냄 (2010)

[My Review MMCL / 해냄 8번째 리뷰] 니체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괴물을 상대하는 자 괴물이 되지 않게 주의하라. 그대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리니."라는 언급을 했다. 그리고 이우혁 작가가 15년 간 골머리를 썩힌 끝에 내놓은 역작 <바이퍼케이션>(전 3권)을 드디어 다 읽었다. 참 힘들었다. 이우혁 작가의 소설을 이토록 길게 끌며 읽은 책이 없었는데, 정말이지 이 소설은 내게 역대급이었다. 정말 괴물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범죄심리'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왠지 모르겠지만 너무 끔찍한 '범죄'를 '미화'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의 작품성과 완성도, 그리고 재미로만 보자면 '범죄'를 소재로 다룬 심리소설, 스릴러소설, 공포소설, 추리소설 등등 모두 흥미롭고 재밌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재미라는 것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살인'이라고 하는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인 것이 전부이다. 나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보면서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대중을 보는 게 마뜩찮은 사람이기에, 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명탐정' 같은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범죄자나 악당을 처단하고 죄값을 받게 만드는 결론만을 좋아라하지, 뤼팽처럼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찰을 농락하고 악행을 저지르면서 '사회정의' 운운하는 이야기는 쓰레기 취급하는 쪽이다. 뭐, 여담이지만, 조만간 '뤼팽 전집 리뷰'도 올릴 예정이다. 그렇지만 듣기 좋은 리뷰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예고한다. 암튼 <바이퍼케이션>은 내가 읽은 '범죄심리소설'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살점이 사방을 튀는 잔혹한 소설이었다.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바다.

앞서 '괴물'을 언급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인물 가르시아 반장, 에이들 요원, 그리고 헤라 헤이워드 부인(헤라클레스)은 '하이드라'라고 하는 괴물이 온 도시를 피로 범벅을 만들자, 그 괴물을 잡기 위해 수사에 나서게 된다. 허나 '하이드라'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범죄는 점점 더 끔찍해지고 살인은 더욱 빈번해진다. 그리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살해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이 다름 아닌 '헤라 헤이워드 부인'이라는 금발의 미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는 까닭도 다름 아닌 '헤라 헤이워드 부인', 아니 그녀의 '또 다른 인격체(?)'인 자칭 '헤라클레스'라고 하는 인물에 의해서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지난 1, 2권의 내용이 그랬다. 하지만 그녀(헤라클레스)도 '하이드라'라고 하는 더 끔찍한 괴물에 의해서 '조종 당한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진짜 괴물을 잡기 위해 수사력을 총동원하는데, 과연 '하이드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줄거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범죄소설에 나오는 살인사건들은 창작자의 상상 100%라기보다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꾸며진 이야기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속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살인자가 실제 현실에서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연쇄살인범'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있었으며 그들의 희생양은 언제나 '힘 없는 여자와 아이, 노인'을 대상으로 했으며, 사회 소수자들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과 살해를 저지르면서도 눈곱만큼의 '반성'이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너무도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한 뻔뻔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분노'가 일기에 앞서 '구역질'이 날 정도다. 왜냐면 그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듯 말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렇다. 그들은 하나같이 '괴물'이었을 뿐이다. 흔히 '짐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짐승들도 배가 고파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최소한의 희생(살육)'을 할 뿐이지, 이런 괴물들은 피에 굶주린 모습을 하고서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부재'라도 느끼는 듯, 죽이고 또 죽이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해한 희생자를 모욕하고 '죽어 마땅한 존재'로 치부하는 씻지 못할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엿 바꿔 먹은 셈이다.

이 소설에서는 '헤라 헤이워드(자칭 '헤라클레스')'가 바로 그런 괴물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얻게 된 '초능력'으로 사람을 말 한마디로 '정신지배(마인드컨트롤)' 같은 것을 시행해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리는 일을 한다. 물론 처음부터 대놓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 '범죄자'들이 찾아와 헤라를 납치하려 들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제 발로 찾아온 범죄자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 까닭은 바로 자신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라고 하는 영웅이자 '신적인 존재'인 까닭에 하찮은 인간의 목숨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고 둘러댈 뿐이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다 '헤라 헤이워드(헤라클레스)'의 초능력(?)을 목격하게 된 가르시아 형사와 에이들 요원은 결국 '헤라클레스'와 엮여, '하이드라'라고 하는 또 다른 괴물의 정체를 밝히고 쫓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르시아와 에이들도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물론 겉으로는 '헤라클레스'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긴 하지만, 그들도 애초에 형사와 요원이 되기 전에 끔찍한 살인사건을 경험했고, 그 사건의 범인을 '사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서 형사와 요원이 되었다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된 '원인제공'을 스스로 한 셈이다.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범죄사건', 그것도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며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대환장의 살육파티'에 초대된 셈이다.

난 이걸 끝까지 읽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퇴마록>에서도 끔찍한 장면이 곧잘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장면들은 대부분 '악령'들이 저지른 일들이었고, 이런 악행을 막고자 '퇴마사'들이 등장해서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악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렸던지라 아주 감명 깊게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이우혁의 또 다른 소설 <파이로매니악>에서도 폭발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폭발물에 희생당하는 이들은 전부 '대한민국'을 해치는 악질적인 악인들이었으며,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법정에 세울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설정이었기에 큰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이퍼케이션>은 그런 '최소한의 양심' 같은 설정이 전혀 없다. 그저 '괴물'에게 이용 당했기 때문에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냥 죽어나갈 뿐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하이드라'와의 대결을 앞두고 수많은 이들이 '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총과 칼에 맞아 '대신' 죽어나간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그렇게 죽어야만 했던가? 그런데도 '괴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도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겪는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 당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변명' 같지도 않은 핑계를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불편함'을 정신지배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너무 쉽게 퉁쳐버리고 말았다. 퇴마사들이 단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신 담보(?)로 내놓는 명장면을 선보인 이우혁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작가가 15년 동안이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역작이 이따위 '피에 굶주린 괴물'을 등장시킨 범죄소설이었다니 대단히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미완에 그친 다른 소설과 다르게 <바이퍼케이션 : 하이드라>는 비록 종결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시켰지만, 주요 등장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가르시아 형사와 헤라클레스가 온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손버그 에이들 요원은 비록 헤라클레스의 사주에 의해 온몸이 칼과 둔기로 난자 당하고 시신을 불태워 죽인 것으로 설정(?)했지만, 끝내 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여운을 남겨 놓았다. 유능한 FBI 요원이면서 '천재 프로파일러'로 등장하지만, 그에겐 모든 것을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초급자 수준이라고 하지만 '최면술'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그가 비록 최후를 맞이하긴 했지만,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된 '극적인 사연'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 듯 싶다. 그런 연유로 이 소설에는 '후속작'이 나올 듯 싶다. 아마도 제목은 <바이퍼케이션 : 헤라클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왕 헤라클레스가 살아남았고, 그녀가 영웅으로서 해야 할 과업은 아직도 10가지나 남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네메아의 사자'였고, 두 번째는 '레르나의 히드라'였으니, 이제 겨우 2개를 해결했을 뿐이다. 나머지 10개를 한 큐(?)에 해결할지, 아님 가르시아와 에이들이 헤라클레스의 또 다른 범죄를 저지하고 처단할 수 있을지...그런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무려 15년이나 침묵하고 있는 작품을 다시 꺼내 들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비록 <퇴마록>의 부활을 선언한 이우혁 작가지만, 과연 <바이퍼케이션>의 뒷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을까? 재미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너무 끔찍한 범죄만을 나열한 듯한 느낌은 다시 살려내지 않았으면 싶다. 차라리 마동석의 <범죄도시>처럼 악당을 때려잡는 결말이라도 참고 했으면 싶다. 그래도 너무 폭력성이 짙다는 소문에 나는 <범죄도시>를 아직도 보지 않고 있다. 살인, 폭력, 범죄 따위를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봐야 '나쁜 것'이지 않느냔 말이다. 나쁜 것은 절대 멋지게 포장하면 안 된다. 그저 떼찌떼찌 해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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