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김연지의 돈 되는 AI 콘텐츠 설계 - 프롬프트로 기획하고 하네스 엔지니어링으로 완성하는 상위 1%의 수익 자동화
김연지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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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크리에이터 김연지의 돈 되는 AI 콘텐츠 설계 : 프롬프트로 기획하고 하네스 엔지니어링으로 완성하는 상위 1%의 수익 자동화> 김연지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CXLIV / 한빛비즈 18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흔세 번째 리뷰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제대로 돌아가는 AI 시스템을 만드는 설계도가 담긴 <돈 되는 AI 콘텐츠 설계>다. '생성형 AI'가 완벽하게 구현된다면 '내가 잠든 사이'에도 수익형 사업 콘텐츠를 AI가 스스로 제작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나의 수고는 덜고 일정한 수익은 꾸준히 보장되는 환상적인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정말 꿈 같은 일이 머지 않아 완벽하게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꿈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현할 수 있다는게 이 책의 핵심이다. 그 핵심을 실현해줄 수 있는 것이 '시스템 설계자가 되라'는 조언이다. 그럼 '시스템 설계자'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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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AI 콘텐츠 설계> 관점 포인트 : 사실 간단한 '프롬프트 명령'으로 AI가 알아서 시스템을 이론적으로 구현 가능하다지만, 실제로 AI에게 명령을 하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대로 착착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런저런 프롬프트 명령어를 다시 짜서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AI를 이용하기보다 애초에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다른 전문가는 몇가지 '프롬프트 공식들'을 활용하니 아주 쉽게 뚝딱뚝딱 잘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공식들'을 베껴다가 직접 AI를 굴려보지만 또다시 원하는 만큼 제대로 구현되지는 않아 또 고치고 또또 고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뭐를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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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AI의 탓이 아니다. 내가 쓰고 있는 AI를 잘 길들이지(!) 못한 탓이 더 크다. 왜냐면 AI는 '스스로 생각하는 도구'가 아니라 '단순한 계산'을 어마어마하게 잘 할 수 아는 유용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가 일할 수 있는 시스템, 다시 말해 자신만의 '하네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 포인트인 것이다. 하네스란 말을 마차에 연결하는 도구를 뜻하는데, 최근에는 '시스템을 통제하는 안전장치, 또는 제어환경'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AI라는 도구를 잘 쓰기 위해서 '더 좋은 프롬프트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일하는 환경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란 말이다. 이렇게 '하네스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 자신이 만든 수익 채널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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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많은 크리에이터의 고민은 매일매일 꾸준히 '창작'을 하고, 날마다 '업로드'를 해서 구독자를 늘리고 조회수도 높이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인기폭발해서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고, 구독자도 급속히 늘어났다고 해서 '안정적인 수익'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작했더라도, 그것이 일년 연속 이어지기 힘든 것이고, 향후 노후보장까지 되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지려면 적어도 20~30년 동안 꾸준히 인기 콘텐츠를 창작하고 업로드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과연 인간이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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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AI를 활용해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우선 사람이 일일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몇 가지 '프롬프트 공식'만 잘 쓰면 일정 수준의 콘텐츠가 정말 똑딱하는 사이에 뚝딱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걸 몇 가지 수정을 하는 과정을 거쳐 '콘텐츠 제작'을 한 뒤에 '업로드'만 하면 수익으로 이어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AI가 만든 콘텐츠가 '완성도'면에서 상당히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훌륭하고 수려한' 프롬프트 명령어를 입력하라는 조언이 많은데, 사실 그것만으로 '완성도'를 향상하는데에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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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이 책은 바로 그런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림과 동시에 '수익 자동화'를 완성해서, 수고는 덜고 수익은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비결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하네스 시스템' 구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내 콘텐츠의 경우에는 이를 실제로 적용해볼 것이 별로 없기에 실제로 이 '하네스 시스템'을 써먹어 볼 수가 없었다. 지금 '네이버 블로그'에서 운영하고 있는 '책리뷰'는 내가 직접 책을 읽고 진솔한 리뷰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독자도 별로 없고, 조회수는 현저히 낮다. 그래서 좋아요 클릭도 변변치 못한 편이다. 이를 생성형 AI로 돌려버리게 되면, 새로 출간된 책이건, 베스스셀러나 스테디셀러 등등 '책내용'을 알아서 요약하고 '핵심적인 사항'을 정리하고 나름의 '감상평'을 써보라는 프롬프트 공식을 돌려 콘텐츠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에 5권 정도 간단히 소개하는 글을 날마다 꾸준히 올리면, 구독자와 조회수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고, 좋아요와 댓글도 현저히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퇴근 후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넷플릭스를 시청하면서 올라온 댓글을 읽고 답글을 달아주며, '상위 1% 블로그 운영자'에게 주어지는 일정한 수익을 챙기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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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 '내가 쓴 리뷰'가 아닌 셈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읽은 책'도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콘텐츠에 '하네스 시스템'을 적용할 수도 없고, AI를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수익을 위해서 '내가 직접 하는 것'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수익창출은 내가 원하는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뭔가 그 '시스템'이 무엇인지는 감을 잡았다. 현재 내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향후 이 시스템을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있을 거라는 영감이 떠올랐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설계까지 완성한 단계는 아니지만, 일단 감을 잡았으니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써먹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당장 써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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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대신' 책리뷰를 써달라 명령하고, 벽돌책도 A4용지 1장으로 내용을 요약해달라 명령하고,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초중고 학부모를 겨냥한 3000자 분량의 '홍보글'을 쓰라는 '하네스 시스템'을 구축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가능은 하겠지만, 이건 '사기'치는 것 같아 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내게 '책 읽는 즐거움'과 '리뷰 쓰는 보람'을 빼앗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하루에 리뷰 한 편씩 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이 뚝딱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세상은 언제쯤 찾아올까? 그럼 하루에 몇 편의 리뷰도 쓱쓱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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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2 ㅣ 삼국지톡 12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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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2>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6)

[My Review MMCCCXLIII / 문학동네 4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흔두 번째 리뷰는 뿔뿔이 흩어졌던 유비삼형제가 다시 모이고 '관도대전'은 조조의 승리로 장식되고 바야흐로 '적벽대전'이 시작하는 <삼국지톡 12>다. 수많은 <삼국지> 가운데 이토록 '관도대전'을 극적으로 펼쳐낸 작품은 없었다. 어릴 적 막역한 친구로 지냈던 조조와 원소가 서로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피하지 못할 격전을 펼쳐내고 승부가 나기까지 두 인물의 세세한 감정 묘사가 아주 뛰어났고, '관도대전'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펼쳐낸 극적효과까지 아주 잘 나타났다. 이미 '소설 삼국지'나 '정사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라 하더라도 이 책 <삼국지톡>에서 펼쳐낸 '미묘한 감정선'까지 읽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비록 웹툰만화로 그려낸 '만화 삼국지'이지만 역사의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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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2> 관점 포인트 : 이미 완결된 웹툰이지만 이리 '단행본'을 보는 까닭은 잊을만 하면 읽고 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죽치고 앉아서 만화책만 읽을 수 있는 '만화방'이 거의 사라졌지만 한창 유행할 때도 가지를 않았다. 그 까닭은 만화책 한 권을 2시간 남짓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픈해서 마감까지 하루종일 읽는다고해도 10권을 채 읽지 못했기에 차라리 '구매'를 해서 읽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리한 독서습관이 딱 하나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나는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 읽은 책은 책꽂이에 꽂아두고 '책등'만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책의 내용이 줄줄줄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그 맛에 책을 사고 소장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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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자책'이 나오면서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종이책보다 싼 맛에 '전자책'을 즐겨보고는 있는데, 최근에는 '노안 이슈' 때문에 활자가 작은 편인 '종이책'은 잘 읽지 못하고 있다. 이 책도 [주석]에 해당하는 내용이 깨알 같은 활자로 적혀 있어서 '종이책'으로 볼 때는 돋보기를 들이대야 하고, '전자책'으로 볼 때는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며 읽어대곤 했다. 싼 맛에, 확대까지 좋은 장점도 있는 전자책이지만, 종이책처럼 오래 기억하기는 곤란을 겪고 있다. 자주 눈에 띄어야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할 텐데 전자책은 '리더기'에서 검색을 하기 전까지는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감도 안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오직 '종이책'만 구매하는 편이다. 집안에 책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어 처치곤란이긴 하지만 말이다. 암튼, <삼국지톡> 시리즈가 소장하기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이리 길게 나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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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12>의 주요 내용은 유비가 조조의 품에서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청산하고 서주로 도망갔다가 조조의 공격에 삼형제가 뿔뿔이 흩어진 전편의 내용에 이어 유관장 삼형제와 더불어 조자룡까지 합류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편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70만 대군의 원소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맞짱을 뜨자니 '병력'이 부족했고, 성을 지키고 버티자니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조조는 '작전상 후퇴'를 결심하지만 '순욱'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10만이 안 되는 조조군이 굶주리고 있다면 원소군은 70만 병력을 먹여야 하니 열 배는 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때 마침맞게 원소 진영의 책사였던 '허유'가 조조를 찾아온다. 그리고 조조에게 원소군의 병참기지가 '오소'에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오소를 지키는 장수는 '순우경'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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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조군은 원소군의 복장으로 위장을 하고 '오소'로 진격해 원소진영의 병참을 불사르는데 성공하지만, 원소 진영 한복판에서 조조는 거대한 원소군에 쫓기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 순간 원소의 지병이 도지며 원소가 쓰러지고 만다. 과거 원씨 가문의 적장자로 인정받기 위해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 얻었던 지병이다. 하지만 원소의 목숨이 딱 여기까지라니!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이제 조조군을 격파하고 하북 일대를 호령할 일만 남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프린스 원소'는 운명을 달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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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조군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가고,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프린스 원소 한 명 죽었다고 '원씨 가문'이 한순간에 망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 망했다. 원소의 자식이 원담, 원희, 원상 순서인데 맏이 원담이 후계자가 아니라 셋째 원상이 정식 후계자라는 유언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원담은 조조에게 귀의하고, 원상은 기주로 틀어박히니 형제간의 '골육상쟁'이 시작될 찰나였다. 그럼 조조는 무얼 했을까? 형제끼리의 싸움을 부추기며 저들끼리 서로 망할 것을 기다렸다. 물론 아주 고상하고 우아하게 말이다. 그렇게 싸우다 지친 원소의 자식들을 조조는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원담, 다음엔 원희, 원상 순서로 말이다. 왜 조조는 자신의 우세한 형국을 앞세워서 원씨 가문을 쳐부수는 방법이 아닌 저들끼리 싸움을 부추기고 서서히 옥죄여 가면서 저들 스스로 파멸에 이르기를 기다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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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원소가 차지했던 지역이 너무도 광활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밀무역을 한 러시아를 정벌하러 대군을 보냈지만 러시아의 광활한 땅을 소수의 병력을 다 정복하지도 못하고 한겨울 동장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맛본 것에는 비할바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조의 소규모 병력으로는 원소진영을 일거에 섬멸하는 방식으론 그 땅을 다 점령할 방법도 없고, 그 지역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길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곽가의 조언을 받들어 원씨 형제끼리 싸우다 지치는 걸 기다렸고, 원희와 원상이 유주 깊숙이 '공손씨 세력'에 도움을 받으러 도망쳤을 때에도 진격을 멈추고 느릿느릿 진군하며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 원씨 가문을 멸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조조는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고 화려한 개선을 하려 했지만, 그 사이에 아끼던 참모 곽가가 어린 나이에 요절해버린 소식을 듣게 된다. 조조는 비통하고 참담한 소식을 접하고 목놓아 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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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이렇게 '관도대전'은 대미를 장식했고 바야흐로 '적벽대전'이 시작되려 한다. 조조는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형주의 유표'와 잘도 도망다니던 '유비'까지 싹다 잡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내친 김에 '강동의 손권'까지 굴복시키려 한다. 그렇다. 손책이 아니라 손권이다. 관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손책도 젊은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로는 '도사 우길'을 죽인 탓이라고 하지만, 기실 '관도대전'이 한창일 때 손책은 원소의 밀서를 받고 조조의 후방을 급습하려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조조는 손책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며 회유하려 들지만, 손책은 그따위 벼슬보다 '천자'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하를 호령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었으나 이렇게 손책이 조조의 뒤통수를 칠 것이란 '사실'을 조조에게 알리려던 허공의 첩자를 우연히 잡고 손책이 그 사실을 알자, 손책은 허공을 배신자라면서 사형에 처한다. 이에 분을 품은 '허공의 식객 셋'이 주인의 복수를 하겠다며 손책을 급습하는데, 천만다행으로 치명상을 피했는지, 화타의 의술이 훌륭했던지 손책은 다시 살아난다. 그러다 우길을 죽여 만백성의 참된 주군은 '한낱 도사'따위가 아니라 '손책'이라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 토착세력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다 다친 상처가 터져서 비명에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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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웹툰에서는 이런 세세한 설명은 피하고 우길을 죽인 뒤에 뒤따라 죽을 것을 안 손책이 자신의 동생 손권에게 당부하는 말 한마디로 '함축'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은 내가 더 낫지만,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네가 나보다 더 낫다"는 말을 전한 뒤에 말이다. 어린 손권을 위해 주유를 비롯한 황개, 정보, 한당 등 충신들에게 잘 돌봐줄 것을 부탁하지만, 그들 뒤에 서있는 강동의 토착세력들은 '손책의 죽음' 앞에서도 싸늘한 눈빛만 교환하고 있을 뿐이다. 손책은 용감하게 싸우고 정복할 줄은 알았지만, '정치'는 잘 몰랐던 것이다. 정복을 해서 영토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복한 지역의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토착세력(허공 등)'의 마음까지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손책은 잘 못해서 불의의 습격을 당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 것이다. 그럼 손권은 어떻게 잘 나갈 것인가? 한편, 유표의 품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던 유비는 '비육지탄'이라 하소연하며 뒤룩뒤룩 살만 찌고 아무 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다. 과연 유비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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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소설 삼국지'와 '만화 삼국지'와 <삼국지톡>이 큰 차별을 둔 점은 다름 아닌 인물간의 '감정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왕조실톡>을 쓴 '무적핑크(변지민)'가 가장 잘 표현한다. 그래서 원소를 '프린스'로 표현한 것도 대단히 신선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원소는 대개 '우유부단한 인물'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소는 삼대에 걸쳐 고관대작을 지낸 명문가 집안의 장자였기 때문에 대단한 귀공자 타입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원체 우유부단하고 과감성이 없는 인물로 묘사된 탓에 그저 '무능한 재벌 4세' 정도로 묘사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에서는 '프린스'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것도 주인공인 '조조'보다 훨씬 더 멋지고 화려하게 말이다. 이는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무적핑크'만의 특색을 살려 새롭게 등장인물을 재탄생시킨 셈이다. 거기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녹아 있는 '세련미'는 정말이지 흰 쌀밥, 그 자체다. 그런 프린스 원소와 건곤일척을 놓고 싸우는 조조는 정말 처절하게 맞서 싸운다. 어릴 적에는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상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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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대전'을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해놓았으니 '적벽대전'은 또 어떤 미쟝센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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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
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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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 이정민 / 사이드웨이 (2026)

[My Review MMCCCXLII / 사이드웨이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혼한 번째 리뷰는 여전히 초강대국인 미국이 흔들리는 까닭를 분석한 책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다.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미국을 뺀 나머지 전세계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다 합쳐도 미국 한 나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을 '강대국'이라고 믿기 힘든 상황이 점점 더 많이 펼쳐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 으름장을 놓기만 해도 세계 모든 나라가 벌벌 떨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미국이 아무리 '협박'을 하고, 심지어 '선제공격'을 해도 맞짱을 뜨거나 버티기 전략으로 미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조차 바짝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박을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제재를 풀고 유화적인 자세로 바꾸었으며, 침략전쟁을 시작해놓고도 멀찌감치 미사일 공격만 하고서는 육상 병력을 투입하는 것에는 자꾸 뒤로 미루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모습은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안팎에서 '위기'를 맞았다는 보고가 연일 나오고 있다. 과연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무너져내리고 말 것인가?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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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관점 포인트 : 이정민 저자는 워싱턴 특파원 시기에 미국을 가까운 곳에서 아주 폭넓게 지켜볼 수 있었단다. 그곳에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가자 전쟁 발발까지 지켜본 결과를 토대로 자신만의 지론을 갖출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책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바로 그 지론의 결정판이다. 그리고 그 결론의 핵심은 미국이 아직 건재하긴 하지만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는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뒤쳐지고 있고, 이런 위기에 빠진 미국을 중국 같은 나라가 빠르게 '대체'해나가면서 미국은 점점 '설 곳'을 잃고 쪼그라들어가는 모양새가 점점 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국이 무너지고 있는 원인은 '트럼프'라는 미치광이(?)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거부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단지 트럼프 한 사람만의 문제였다면, 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다음 대통령'이 들어설 때 뭔가 '정상화'가 되는 듯한 시그널이 더 많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을텐데, 이대로 미국이 무너지는 것이 '확정'된 것이라면 그동안 유지되었던 '세계 질서'가 무너지면서 평화와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세계 정세는 겉잡을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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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미국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대전환 시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미국이 더는 '세계 경찰' 노릇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된 냉전시대의 종말 이후 미국은 '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지자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톡톡히 재미를 봤다. 전세계에 미국의 문화를 강요하면서 미국의 상품을 강매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무역장벽'을 낮추는 세계화 전략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나라가 있으면 군사력과 경제력을 아낌없이 보여줬고 전세계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미국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챙겼고, 이를 바탕으로 흥청망청 어마어마한 경제규모를 키워가며 '소비력'을 늘려갔다. 자본주의 경제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소비'가 뒷받침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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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점점 늘어나는 소비에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늘어나는 소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데도 소비는 더 확대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미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서 부채를 과감히 늘리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문제는 부채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다. 여기에는 '기축통화'를 갖고 있는 이점을 적극 활용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통화량'을 전세계에 뿌려대며 국내 경제를 안정(?)시키는 꼼수를 부렸고, 이것이 점점 불어나서 미국 경제는 해마다 엄청난 적자를 키우는 '경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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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과 경제무역을 하는 나라들에게도 부담이었다. 그래서 각국은 자국의 경제부양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미국이 포기하는 '제조업 분야'에 뛰어들면서 미국에 수출하는 것으로 적자를 메우려는 각고의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게 미국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제조업 분야'는 개발도상국에게 떠넘기고 '고부가가치'를 챙길 수 있는 첨단기술사업에 올인하면서 짭짤한 이익을 챙기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선회하게 된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이런 자유무역에 균열이 생기자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첨단무기는 만들 수 있는 미국이 생필품인 마스크나 두루말이 휴지 따위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없어서 '경제대란'이 일어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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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둘째 문제가 부각된다. 미국이 포기한 '제조업 분야'를 누가 차지했을까?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를 앞세워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단순한 제품부터 첨단공법이 들어간 제품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로 급성장을 했다. 이로 인해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까지 위협하는 자리에 올라 바야흐로 'G2 시대'를 활짝 열어버린 것이다. 이제 미국은 강력한 '경쟁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이 위기를 맞이한 두 번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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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부차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미국은 '패권 국가의 지위'를 점점 잃어버리게 되었다. 한 마디로 미국은 흔들렸고, 흔들리며 비워진 자리와 잠시 한 눈을 팔며 놓친 자리에는 어김없이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국은 영향력을 점점 키워 갔고, 이제는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말았다. 더구나 중국은 미국과 달리 엄청난 '물량 공세'가 가능했고, 더구나 그 '공세 속도'마저 미국을 압도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항공모함 1척을 만들 동안 중국은 8척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물론 미 항공모함의 성능이 중국의 것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에 돌입했을 때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베틀크루저 풀업 1대와 뮤탈 8마리가 맞붙는다고 생각을 떠올려 보면 쉬운 것이다. 한 차례 대전에서 베틀크루저가 승리를 했더라도 또 다시 밀려오는 뮤탈 8마리를 상대하기에는 벅찰 것이다. 물론 또 한 대의 베틀크루저가 합류하게 된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승부의 결과는 '물량과 속도'가 결정지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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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미국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중국과 전면전, 아니 총력전에 돌입했을 때, 과연 미국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건재함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속시원한 답을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트럼프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일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트럼프조차 미국의 적대국인 중국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수출 금지같은 강력한 경제조치와 고율의 관세로 중국을 압박하면 할수록 중국은 '희토류 수출 금지' 같은 '미국의 숨통'을 꽉 조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며 수위를 조절하고, 트럼프조차 중국을 향해 압박을 가하지 못하고 항복하는 모양새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애꿎은 동맹국을 향해 분풀이를 하고 있다. 이게 진짜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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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미국은 자국이 무너지는 위기를 맞이하자 '적국'을 향해서는 동업자 마인드를 보이면서, 어처구니 없게도 '동맹국'을 향해서는 계산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중국 시진핑과 러시아 푸틴, 심지어 북한 김정은에게까지 트럼프는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러브콜을 던지며 미국과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다. 그런데 유럽과 일본, 한국, 대만 같은 동맹국들에게는 그동안 미국이 너희들을 '공짜(?)'로 도와줬다면서 향후 '미국의 도움'을 바란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오직 '미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거짓을 날조하면서까지 악착같이 이득을 챙기겠다는 심보를 보여준 셈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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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속셈은 간단하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전쟁 발발을 저지하는 것에도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미국이 '동맹국을 지킬 의무'를 삭제하고, 각자 알아서 살아남길 바라며, 그래도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것만 해내도 트럼프는 미국이 겪고 있는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경제부흥'에 성공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마가정책'이다. 그래서 과거의 적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북한 같은 나라들에게 "너희와는 전쟁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미국 쳐들어오지마. 대신 너희가 전쟁을 하든말든 미국도 간섭하지 않을게. 미국은 앞으로 돈드는 일은 삼갈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대신 전통적으로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미국을 '패권 국가'답게 행세할 수 있게 도와줬던 동맹국들에게는 야박한 계산서를 내밀었다. "앞으로는 너희들을 돕기 위해 미국이 엄청난 부담금을 낼 수 없어. 그러니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그 대신 미국의 도움이 계속 필요하다면 미국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호응하고, 그에 상응하는 돈도 확실하게 지불하라고. 안 그러면 미국의 도움은 없어"라는 협박성 으름장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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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예외 상황은 아니다. 이제 더는 미국에 의지하고 기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아니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기에 강력해진 대한민국을 든든하게 받쳐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대전환 시기'의 중간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그 시기의 입구에 막 들어선 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아직은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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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요 수출국이 바로 중국과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가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대한민국은 당장 수출할 상대국이 사라지는 아찔한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도, 넘볼 수 없는 '강대국'이 된다면 두 나라가 전쟁을 하든 말든 아무런 관계도 없고, 오히려 두 나라를 상대로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도 있을테지만, 현재로서는 두 나라의 '중간'에 낑겨있는 대한민국이 저들의 '대리전'을 펼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과거 '한국전쟁' 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최악을 피하고자 두 나라의 '눈치'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나서서 감히 대한민국을 해코지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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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은 더이상 대한민국의 '우방'이 아니게 됐다. 미국이 대한민국을 '혈맹'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한민국도 언제든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내다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취급 받으며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우리도 국방력과 경제력을 저들의 덩치에 맞게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중국이든 미국이든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북한'이란 변수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언제든 넉넉히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이미 경제력에서는 그 차이를 이뤄냈다. 문제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의 비대칭적인 상황이다. 아무리 '현무 5'급 이상의 미사일로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핵무기 vs 재래식 무기'로는 상대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핵우산'이 언제까지 작동할지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여차하면 미국이 나몰라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체 핵무장'만이 정답인데, 그럴 만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핵무기 보유를 선언함과 동시에 전세계는 그 빌미로 대한민국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은 하나다. 핵무기 없이 '세계 군사 순위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핵무기든, 그 이상의 무기도 대한민국이 스스로 원하면 언제든지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막강한 실력을 키우는 일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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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 삼국 시대 인물들의 진짜 인생 엿보기
구청푸.성쉰창 지음, 하진이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 삼국 시대 인물들의 진짜 인생 엿보기> 구청푸, 성쉰창 / 하진이 / 시그마북스 (2012)

[My Review MMCCCXLI / 시그마북스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일흔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와 정사 삼국지 사이를 오가며 삼국지의 참모습을 살펴보려 시도하는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다. 한중일 가운데 '팩트체크'에 진심인 나라는 한국 뿐이다. 특히 역사에서는 유별날 정도다. 일본은 '왜곡'을 일삼고 중국은 '공정'을 획책하는 마당에 왜 한국은 '진실'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는 오직 '진실'만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한국의 위치는 대륙의 수혜를 받아 해양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한국은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던 까닭에 대륙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고 해양은 감히 얼씬 거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이런 '역사적 지위'가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거대한 대륙이 서구열강에 짓밟히고 해양세력이 득세하면서 열도를 넘어 반도를 거쳐 대륙까지 집어 삼키는 파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경험을 당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밑바닥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위업을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업을 보여줄 근본적인 원동력은 오직 하나 '진실'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드디어 '진실'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고만장했던 일본은 추락 직전으로 내몰렸고, 어마어마한 덩치로 위용을 뽐내던 중국도 비실비실 휘청거리고 있다. 물론 아직 일본과 중국은 건재함을 자랑하고 '과거의 영광'을 뽐내려 든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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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진실과 허구> 관점 포인트 : 삼국지 책을 이야기하면서 '진실' 어쩌구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 의아할 것이다. 차근차근 그 속내를 밝힐테니 따라오길 바란다. 이 책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는 소설 삼국지에 담겨 있는 '허구성'을 찾아내 '역사적 진실'과 대조하고, 저자인 나관중이 그렇게 진실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설'은 역사가 아닌 까닭에 모든 내용을 '진실'로 담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독자가 재미를 느끼고 '역사'에 흥미를 가질 의도로 '허구성'을 가미할 필요성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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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살던 시기는 '원말명초' 였기 때문에 오랜 오랑캐의 지배에서 벗어나 '한족의 자긍심'을 살리고 '민족의 위대함'을 돋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이는 이민족에게 핍박을 받고 살았던 세대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일 것이다. 우리도 일제의 폭력과 약탈에 신음할 적에 우리 '한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고 '조국의 위대함'을 돋울 수 있는 민족 정신을 찾으려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나관중은 그런 목표를 삼고 한족의 뿌리를 찾았고, 그 결과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자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던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모았던 것이다. 그 시대가 3세기였는데 원나라가 망한 14세기에 집필했으니 무려 1000년 전의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촉한 출신의 진수가 진(晉)나라 때 쓴 <삼국지>라는 정사가 있었기에 이야기를 쓰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다. 허나 진수가 쓴 <삼국지>는 문장이 너무 간결하다는 흠이 있었다. 그 때문에 역사서에서 꼭 필요한 '객관성'을 높일 수 있었으나, 이야기를 쓰기에는 오히려 주관적일 망정 '장황한 서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송나라 때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을 붙인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덕분에 나관중은 '소설 삼국지'를 집필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톡톡히 살려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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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니 '역사소설'을 쓰다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이 너무 '진실'을 추구하다보면 발목이 붙잡혀서 '허구성'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7할의 진실에 3학의 허구성이 가미한 셈이다. 이로써 '역사소설'의 지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흥미'를 한껏 돋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를 더 해결해야 했다. 바로 '한족의 자긍심'을 되찾을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한족 영웅'를 내세워야 했다. 역사상 삼국을 통일한 것은 '위나라의 기틀' 위에 '진나라의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조를 뒤이어 사마의가 매듭을 짓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조조와 사마의는 '실리'를 챙기는데에는 충실했지만, 흩어지고 무너진 '한족의 자긍심'을 되찾기에는 적절치 못한 인물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임자가 바로 '유비'였다. 전한 경제의 후예인 '중산정왕의 후손'인 유비를 정통으로 내세운 '촉한정통론'이 대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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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비를 주인공으로 낙점한 뒤에 주인공을 돕는 조연도 필요했다. 관우와 장비가 있었기에 이들을 한데 엮어 '도원결의'라는 아름다운 미담으로 의형제로 삼았다. 완전 거짓은 아니다. 유비는 측근의 사람들과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관우, 장비를 콕 집어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나관중은 그리 정했다. 그렇게 '복숭아 밭에서 형제를 맺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형제의 의리로 끈끈하게 맺어진 관우, 장비다 보니 자연스레 '오관육참장'이란 고사도 만들게 되었다. 옛 주군을 찾아 떠난 급박한 길임에도 대단히 구불구불하다. 분명 유비가 있다는 원소의 진영은 북쪽인데, 관우는 두 분 형수님을 모시고 조조의 배웅까지 받으며 서쪽으로 향했다가 살짝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간 뒤에 강을 건넜다가, 형님이 이미 남쪽으로 몸을 피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한다는 줄거리인데, 사실 헤어졌던 관우와 유비가 다시 만난 장소는 어처구니 없게도 조조의 진영 동남쪽인 여남땅이었다. 그러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애초에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달리면 될 일인데, 그러면 이야기가 밋밋해지니 일단 때려부술 수 있는 관문이란 관문을 다 조지고 형제끼리 애뜻한 상봉을 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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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까닭을 이해했다면, '진실'을 밝히고 '허구의 의미'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정'이나 '왜곡'과는 다른 일이다. 나관중이 허구성을 가미한 목적이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모두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역사가 부끄럽기 때문에 '거짓 날조'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거짓 날조는 '재미'도 없다. 위안부가 사실은 '자발적 매춘'을 하고, 김치의 원조가 '파오차이(채소절임)'였다는 것에서 무슨 재미가 느껴지느냔 말이다. 감동적이기라도 한가? 그런 거 없다. 하지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는 재미라도 있다. 그리고 역사적 흥미를 느끼고 역사의 진면목을 찾아보려는 노력까지 기울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촉한정통론'은 거짓이지만 오늘날에도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재미와 역사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장치로 옳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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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그럼에도 독자들은 '촉한정통론'에 만족하지 못하고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 노력한다. 기왕에 '역사적 흥미'를 유발시켰으니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역사를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역사적 진실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정과 왜곡한 역사에 누가 관심을 갖고 있는가? 의외로 관심을 별로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애써 공정을 하고 왜곡을 한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상당수다. 더구나 그런 허튼 노력이 '들통'이 나면서 쪽팔림까지 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그런 쪽팔림은 자신들의 '강한 국력'으로 무마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정작 속아넘어가야할 '피해자(한국)'이 호락호락하고 만만한 나라가 아니며 점점 더 강한 국력을 갖게 되니, 속된 말로 '똥줄이 타들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에 애초부터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찾고 증명하려 애썼기에 한국은 오히려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더구나 한류열풍을 넘어 'K-컬처의 붐'을 맞이하며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편'을 들고,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있으니, 도리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역풍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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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책 <삼국지의 진실과 허구>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한족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저자 나관중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민족의 정체성'과 '조국의 위대함'을 되새길 수 있는 초석이 되는 '역사적 진실'을 되찾을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게 뭔소리냐면, 중국 오천년 역사 가운데 '위촉오 삼국시대'만큼 빠삭하게 알고 있는 역사가 있느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 삼국지'가 가진 위대한 힘이다. 전세계인이 중국사는 몰라도 '삼국지'는 알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수천이 넘는 군웅들의 이름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쏟게 된 까닭이 무엇이냔 말이다. 다름 아닌 'K-드라마', 'K-영화' 덕분이다. 지금도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끝없이 시청되고 있단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런 역사드라마와 역사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 방문을 하려 한다. 만약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만들었다면 '흥행'에도 실패하고, '관심' 유발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재밌게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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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소설 삼국지'의 인기에 힘 입어서 이 책과 같은 '진실과 허구'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관중이 소설의 재미를 추구하고 적절히 '허구'를 가미한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재미를 추구하려고 '거짓 날조'를 방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애초에 관심조차 끌어낼 수 없다. 더구나 진실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역사'는 더욱더 그렇다. 한껏 흥미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한 '역사'라 하더라도 '진실이 없는 거짓'을 바탕으로 한 것이 밝혀지면 가차없이 외면 받는 것이 또한 '역사'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 삼국지'조차 진실로 마주하고 싶어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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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ㅣ 첫 여름 서재 2
한정민 외 지음, 김은영 그림 / 리아앤제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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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한정민, 임나헌, 전현진, 김동찬 / 리아앤제시 (2026)

[My Review MMCCCXL / 리아앤제시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아홉 번째 리뷰는 흔들리는 열다섯 청춘들의 솔직담백한 고백이 담겨 있는 <열다섯의 온도>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쉬운 청소년들을 표현할 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다. 뭉뚱그려서 MZ세대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밀레니엄 세대'도 아니고 'Z세대'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과거의 어른들은 자신과 너무 다른 청소년을 '신세대'라고 갈라치기하면서 애써 '다른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X세대, Y세대 따위로 '시기별'로 구분을 짓더니 급기야 '신인류'라는 명칭까지 쓰면서 아예 '종의 분류'를 달리 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명백한 '기성세대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이다. 그러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들으면 기분만 나빠지니 말이다. 그런데 더 먼 옛날 독일에서는 청소년 시기의 혈기왕성함을 '질풍노도'라고 단정 지어버리며 청소년들의 정체성조차 저들끼리 섣부르게 단정 지어버렸다. 정말 이것으로 우리 청소년들을 '묶음'으로 만들어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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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관점 포인트 :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훌쩍 커버렸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눈에 띄는 시기를 우리는 뭉뚱그려서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그들에게 크게 실례되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청소년을 이르는 또 다른 표현인 '미성년'이라는 표현에 이르면 살짝 기분 나빠진다. 성년이 이르지 않았다는 표현일 뿐이지만, 여기에는 아직 성숙한 '인간 대접' 받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아주 많다는 뜻도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도 딱히 성숙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일삼고, 미성숙하고 교양 없는 미숙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바둑에서 결코 죽지 않는 돌이라는 뜻으로 쓰는 '완생'의 반대말로 완벽하게 살아남지 못할 돌이라는 뜻의 '미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말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쓰여서 널리 알려진 표현이기도 한데, 암튼 어른들조차 '완생'이 아닌 '미생'으로 살면서 청소년은 미생보다 못한 '착수', 또는 '포석'에 쓰이는 돌처럼 미약하다고만 하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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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청소년들도 어른들 못지 않은 '깊은 고민'에 빠져 답을 찾으려 애를 쓰고,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색다르고 더 날카로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어른이라면 청소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곰곰이 헤아려보아야 '성숙한 어른', 다시 말해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른들도 모두 '청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 시절에 어른들을 향해 얼마나 많은 푸념과 질타를 날렸던가? 그러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당시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십분 이해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럼 왜 청소년들의 고민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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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열다섯의 온도>에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꿈이 담겨 있는 짧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도 없고 교훈도 찾을 수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울림'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울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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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과 노을빛>,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 그리고 마지막은 <AI 메모> 순서다. 먼저 <사과 노을빛>은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거짓말'을 정작 어린 친구들에겐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들어서 딱 거짓말인 것을 눈치 챌 수 있는데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어른들을 '추적'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은 어른들의 거짓말에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거짓말을 했다고 앞뒤 사정도 살펴보지 않고 잡도리를 하려 든 '미성숙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열다섯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에서는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묵호'로 둘만의 여행에 들뜬 열다섯 주인공이었지만, 그 '묵호'가 사실은 엄마에게 단순한 관광지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아픈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열다섯이던 그 시절의 아픔을 열다섯 딸이 그 시절의 엄마가 되어 '공감'을 해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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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는 열다섯 주인공의 '꿈'에 관련된 이야기다. 피구 경기에서 공을 한 번도 맞지 않고 승리를 거둔 날렵한 몸놀림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속상함을 '춤'이라고 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뚱뚱한 몸매인데도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을 '영상'만 보고 댄스동아리에 초대하며 친구로 사귀게 되지만, 정작 '꿈'을 찾아준 그 친구는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 맹연습을 하는 와중에 불운한 사고를 당해 온몸을 가누지 못하는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꿈이 없던 아이'는 꿈을 갖게 되고, '꿈을 펼치려' 날개를 단 친구는 의도치 않은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을까? 마지막 <AI 메모>는 SF 판타지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은 않은 과거를 '잊게' 해준다는 AI 메모를 '접속'해서 손쉽게 지우고 싶은 기억을 '삭제'하길 바랐지만, 사실은 '삭제'가 아닌 '이전'에 불과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그렇게 '이전'된 기억들은 다른 누군가의 '꿈' 속에서 재현되며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데, 과연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수도 있는 SF판타지의 결말은 어떻게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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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사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반성'하는 모습을 몸소 실천해달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불행도 겪으면서 '극복'하고 한층 성장하길 바라며 청소년들에게 가르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의 '실수'는 감추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만 '실수'를 용납치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어른이 되면 옛날 어른들처럼 '똑같이' 실수를 부정하고 변명만 늘어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성숙은커녕 발전도 없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방법 뿐이다.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도 그랬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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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나쁘니까 하면 안 될 일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남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거짓말은 거짓말이다'면서 박박 우기는 덜 성숙한 인간들이 있다. 반면에 '함부로 남을 의심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며 진짜 선행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참어른도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딱 봐도 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어줍잖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목격했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어른들이 베푸는 아량을 몸소 실천해주길 바란다. 요즘 '촉법소년 문제'가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이는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어른 친구들의 문제이기에 앞서 '그들의 부모'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음을 우리 사회가 각성해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혼나는 것이 당연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가르쳤어야 마땅한 '부모들'이 이 책임을 망각하고 제 자식이 볼 피해를 감싸고 도는 나쁜 짓을 원천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악영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잘못에 처절하게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어른이 정말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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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청소년 시기에는 '꿈'이 많다. 비록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질지라도 소중한 꿈임에는 틀림 없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하나의 꿈에 올인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 것처럼 너무 꿈이 많고 자주 바뀌는 것도 단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어른들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기 일쑤인데, 청소년 시기에 꿈이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바뀐다고 탓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청소년인데도 '꿈이 없다'는 친구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더욱 다양한 꿈을 어른들이 청소년 눈높이로 보여줄 '의무'가 있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서 청소년 돌봄이 미흡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이 충분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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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청소년 시기에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 그래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침과 저녁에 기분이 상이하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연약해 빠졌으며, 변덕이 죽 끓듯이 쉬이 변한다고 탓하면 되겠는가? 어른들의 감수성이 무딘 까닭은 너무 많은 '경험'을 겪어봤기 때문에 충분히 단련되고 무뎌졌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변덕을 부리면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받기에 애써 감수성을 감추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에게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줄 셈인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을 예민한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꼭 필요한 감각이냔 말이다. 이를 통해 어른들은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판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느끼기에 현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어떤 느낌이니? 어른들이 잘 하고 있다고 느껴지니?"라고 수시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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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소통 부족'이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부족하기만 하다면 다행일 정도로 '소통 부재' 현상이 극심한 지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배려심'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인데 말이다.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법은 바로 '청소년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분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당장 '열다섯 청소년'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의 솔직한 감정을 묻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행히 초기 증상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것이다. 이때 너무 쉽다고 방치하거나 놀리지 말고 소통의 폭을 더욱 넓히고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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