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의 온도 첫 여름 서재 2
한정민 외 지음, 김은영 그림 / 리아앤제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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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온도> 한정민, 임나헌, 전현진, 김동찬 / 리아앤제시 (2026)

[My Review MMCCCXL / 리아앤제시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아홉 번째 리뷰는 흔들리는 열다섯 청춘들의 솔직담백한 고백이 담겨 있는 <열다섯의 온도>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쉬운 청소년들을 표현할 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다. 뭉뚱그려서 MZ세대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밀레니엄 세대'도 아니고 'Z세대'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과거의 어른들은 자신과 너무 다른 청소년을 '신세대'라고 갈라치기하면서 애써 '다른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X세대, Y세대 따위로 '시기별'로 구분을 짓더니 급기야 '신인류'라는 명칭까지 쓰면서 아예 '종의 분류'를 달리 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명백한 '기성세대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이다. 그러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들으면 기분만 나빠지니 말이다. 그런데 더 먼 옛날 독일에서는 청소년 시기의 혈기왕성함을 '질풍노도'라고 단정 지어버리며 청소년들의 정체성조차 저들끼리 섣부르게 단정 지어버렸다. 정말 이것으로 우리 청소년들을 '묶음'으로 만들어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열다섯의 온도> 관점 포인트 :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훌쩍 커버렸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눈에 띄는 시기를 우리는 뭉뚱그려서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는 그들에게 크게 실례되는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청소년을 이르는 또 다른 표현인 '미성년'이라는 표현에 이르면 살짝 기분 나빠진다. 성년이 이르지 않았다는 표현일 뿐이지만, 여기에는 아직 성숙한 '인간 대접' 받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아주 많다는 뜻도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도 딱히 성숙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일삼고, 미성숙하고 교양 없는 미숙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바둑에서 결코 죽지 않는 돌이라는 뜻으로 쓰는 '완생'의 반대말로 완벽하게 살아남지 못할 돌이라는 뜻의 '미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말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쓰여서 널리 알려진 표현이기도 한데, 암튼 어른들조차 '완생'이 아닌 '미생'으로 살면서 청소년은 미생보다 못한 '착수', 또는 '포석'에 쓰이는 돌처럼 미약하다고만 하느냔 말이다.

의외로 청소년들도 어른들 못지 않은 '깊은 고민'에 빠져 답을 찾으려 애를 쓰고,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색다르고 더 날카로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어른이라면 청소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곰곰이 헤아려보아야 '성숙한 어른', 다시 말해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른들도 모두 '청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 시절에 어른들을 향해 얼마나 많은 푸념과 질타를 날렸던가? 그러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당시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십분 이해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럼 왜 청소년들의 고민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으려 하는가?

이 책 <열다섯의 온도>에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꿈이 담겨 있는 짧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시시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도 없고 교훈도 찾을 수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울림'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울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야기는 <사과 노을빛>,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 그리고 마지막은 <AI 메모> 순서다. 먼저 <사과 노을빛>은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거짓말'을 정작 어린 친구들에겐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들어서 딱 거짓말인 것을 눈치 챌 수 있는데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어른들을 '추적'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은 어른들의 거짓말에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거짓말을 했다고 앞뒤 사정도 살펴보지 않고 잡도리를 하려 든 '미성숙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열다섯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 <수취인 불명 묵호로부터>에서는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묵호'로 둘만의 여행에 들뜬 열다섯 주인공이었지만, 그 '묵호'가 사실은 엄마에게 단순한 관광지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아픈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열다섯이던 그 시절의 아픔을 열다섯 딸이 그 시절의 엄마가 되어 '공감'을 해보려 애쓴다.

세 번째 이야기 <절대 공 맞지 않는 애.mp4>는 열다섯 주인공의 '꿈'에 관련된 이야기다. 피구 경기에서 공을 한 번도 맞지 않고 승리를 거둔 날렵한 몸놀림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속상함을 '춤'이라고 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뚱뚱한 몸매인데도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을 '영상'만 보고 댄스동아리에 초대하며 친구로 사귀게 되지만, 정작 '꿈'을 찾아준 그 친구는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 맹연습을 하는 와중에 불운한 사고를 당해 온몸을 가누지 못하는 치명상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꿈이 없던 아이'는 꿈을 갖게 되고, '꿈을 펼치려' 날개를 단 친구는 의도치 않은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을까? 마지막 <AI 메모>는 SF 판타지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억하고 싶은 않은 과거를 '잊게' 해준다는 AI 메모를 '접속'해서 손쉽게 지우고 싶은 기억을 '삭제'하길 바랐지만, 사실은 '삭제'가 아닌 '이전'에 불과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그렇게 '이전'된 기억들은 다른 누군가의 '꿈' 속에서 재현되며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데, 과연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수도 있는 SF판타지의 결말은 어떻게 이어질까?

나가는 글 : 사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반성'하는 모습을 몸소 실천해달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불행도 겪으면서 '극복'하고 한층 성장하길 바라며 청소년들에게 가르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의 '실수'는 감추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어린 청소년들에게만 '실수'를 용납치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어른이 되면 옛날 어른들처럼 '똑같이' 실수를 부정하고 변명만 늘어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성숙은커녕 발전도 없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방법 뿐이다.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도 그랬지 않은가 말이다.

거짓말은 나쁘니까 하면 안 될 일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남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거짓말은 거짓말이다'면서 박박 우기는 덜 성숙한 인간들이 있다. 반면에 '함부로 남을 의심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며 진짜 선행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참어른도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딱 봐도 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어줍잖게 거짓말하는 모습을 목격했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어른들이 베푸는 아량을 몸소 실천해주길 바란다. 요즘 '촉법소년 문제'가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이는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어른 친구들의 문제이기에 앞서 '그들의 부모'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음을 우리 사회가 각성해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혼나는 것이 당연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을 가르쳤어야 마땅한 '부모들'이 이 책임을 망각하고 제 자식이 볼 피해를 감싸고 도는 나쁜 짓을 원천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악영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잘못에 처절하게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어른이 정말 많아져야 한다.

한편, 청소년 시기에는 '꿈'이 많다. 비록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질지라도 소중한 꿈임에는 틀림 없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하나의 꿈에 올인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 것처럼 너무 꿈이 많고 자주 바뀌는 것도 단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어른들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기 일쑤인데, 청소년 시기에 꿈이 너무 많고 너무 자주 바뀐다고 탓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청소년인데도 '꿈이 없다'는 친구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더욱 다양한 꿈을 어른들이 청소년 눈높이로 보여줄 '의무'가 있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서 청소년 돌봄이 미흡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이 충분한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시기에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 그래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침과 저녁에 기분이 상이하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연약해 빠졌으며, 변덕이 죽 끓듯이 쉬이 변한다고 탓하면 되겠는가? 어른들의 감수성이 무딘 까닭은 너무 많은 '경험'을 겪어봤기 때문에 충분히 단련되고 무뎌졌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변덕을 부리면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받기에 애써 감수성을 감추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에게 '어른답지 못하다'며 놀림을 줄 셈인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을 예민한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꼭 필요한 감각이냔 말이다. 이를 통해 어른들은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판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느끼기에 현재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어떤 느낌이니? 어른들이 잘 하고 있다고 느껴지니?"라고 수시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소통 부족'이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부족하기만 하다면 다행일 정도로 '소통 부재' 현상이 극심한 지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배려심'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개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인데 말이다.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법은 바로 '청소년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분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당장 '열다섯 청소년'이 주변에 있다면 그들의 솔직한 감정을 묻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행히 초기 증상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것이다. 이때 너무 쉽다고 방치하거나 놀리지 말고 소통의 폭을 더욱 넓히고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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