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삼국지 9 - 출사표를 올리다 ㅣ 이희재 삼국지 9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이희재 삼국지 9 : 출사표를 올리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7)

[My Review MMCCCXXXIV / 휴머니스트 5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세 번째 리뷰는 이릉대전에서 크게 패배한 유비는 제갈량에게 뒷일을 맡기고, 제갈량은 유비에게 충심을 보이며 출사표를 내미는 <이희재 삼국지 9>이다. 관우가 죽자 유비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사실 곧바로 동오의 손권을 상대로 복수전을 펼친 것은 아니다. 한중왕에 오른 유비는 아직 조조를 상대해야 하는 바쁜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유비도 '촉한의 황제'에 즉위한 뒤에야 비로소 '복수전'을 떠날 차비를 마친다. 물론 제갈량은 동오는 동맹으로 손을 잡아야 할 대상이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며 만류하지만, 유비는 때마침 찾아온 장비의 통곡 소리에 관우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허나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비극이 펼쳐진다. 관우형님의 복수를 하려 군사를 정비하던 장비가 부하 장수의 배신으로 인해 전투도 치루기 전에 비명횡사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졸도를 할 지경이었지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만은 꺾지 않았다. 그렇게 삼국지 3대 대전 가운데 하나인 '이릉대전'이 펼쳐진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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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9> 관점 포인트 :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초반에 유비군이 연전연승을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 승리의 주역이 죽은 관우와 장비의 아들들인 '관흥과 장포'가 대활약을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릉대전이 한창일 때 관우의 혼령이 이끌어 자신을 죽인 오나라 장수 반장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관흥과 마주치게 한 뒤에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유비군을 달래기 위해 장비의 목을 가지고 항복했던 범강과 장달을 유비에게 보내며 화친을 꾀하지만, 유비는 분노를 참지 않고 두 사람을 장포에게 맡기자 장포 역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두 사람의 목을 베어 장비의 영전에 제물로 바친다. 이때 마량이 유비에게 복수는 이쯤에서 멈추고 동오와 손을 잡고 함께 조비를 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건의했으나 유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결국 손권을 멸하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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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손권은 육손을 총사령관으로 내세워 유비의 100만 대군을 막으라고 명하자, 육손은 '이릉'을 목전에 두고 성안에 틀어박힌 채 수비만 할 뿐 도통 나가서 싸우려 들지 않는다. 때는 한여름으로 뙤약볕을 막지 못하는 평지에 진채를 세웠는데 육손이 맞서 싸우지를 않자 더위와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유비는 진채를 길게 이어진 강가 숲속으로 옮겨 해결하고자 했는데, 육손이 이때를 노려 '화공' 작전을 펼치며 유비의 '장사진'을 단박에 무너뜨리고 만다. 이에 깜짝 놀란 유비는 진채에 불이 옮겨 붙고 육손의 대군을 막지 못하고 괴멸되자 겨우 몸만 빼내어 '백제성'으로 숨어들고, 때마침 달려온 제갈량에게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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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역시 정사 삼국지에서는 완전 다른 내용으로 전한다. 애초에 유비의 100만 대군은 많아야 10만이 채 안 되는 8만이라 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육손군도 최소 6만에서 많게는 10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비가 초반에 파죽지세로 손권군을 밀어붙이며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은 거짓이다. 그리고 관흥과 장포도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충조차 이 전쟁에 참전한 기록이 없다고 할 정도니, 소설 삼국지의 내용은 시작부터 끝까지 '허구적 창작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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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릉대전 자체가 허구라는 얘기는 아니다. 유비의 공격에 손권은 초반에 허둥거리다 육손을 내세워 '장기전'으로 유비군을 지치게 만들고 난 뒤에 빈틈을 노려 대반격을 가해서 유비를 패배시키고 비통한 마음에 불귀의 객이 되게 만든 사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나관중의 스펙타클한 서사는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관도대전'과 '적벽대전'도 모두 나관중의 손을 거쳐 화려하게 둔갑(?)한 작품인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 역사서에는 모두 짤막한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 담백한 역사서술을 화려하고 생생한 묘사와 인물 간의 심리전을 극적인 서사로 펼쳐냈으니 정녕 천재 작가라고 해도 물색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바로 그 재미로 소설 삼국지를 읽는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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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비가 세상을 뜨면서 제갈량에게 중임을 맡기니 촉한은 전쟁을 멈추고 동오와 손을 잡고 조비를 상대하려 한다. 왜냐면 이릉대전으로 촉한과 동오가 모두 지쳐있는 빈틈을 노려 조비가 다섯 갈래로 촉한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제갈량은 조운과 마초, 위연 등을 몰래 보내 네 갈래 공격은 막아내지만, 조비의 부추김을 받아 동오의 손권이 쳐들어오는 길목은 아직 막지 못했다. 이에 제갈량은 등지를 보내 손권과 다시 손을 잡고 조비를 공략하자고 약조를 받아낸다. 이렇게 한 차례 조비의 공격을 막아낸 제갈량은 느닷없이 '남만 정벌'을 공표한다.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풀어주길 반복하여 정벌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대대적인 조비 공략을 위해서 '출사표'를 내놓았다. 무려 여섯 번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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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단단한 각오'를 내비칠 때 '출사표를 던지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많이 퇴색된 표현이 되고 말았다. 왜냐면 제갈량이 여섯 번이나 출정했다고 모두 실패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제갈량이 쓴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다고 전하지만, 나는 한 번도 눈물이 난 적이 없다. 아마도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제갈량이 보잘 것 없던 처지일 때 유비가 몸소 세 번이나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유비의 꿈'을 충직한 신하인 제갈량 자신이 '대신' 이루겠다는 다짐이 주요 골자이긴 하지만, 그 내용 말고도 차고 넘치는 '한자말'로 구구절절 읊조리고 있기에 뭘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나불거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이 '격식'을 따지고 '품위'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기에 눈물 따위를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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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제갈량의 첫 출정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아직 사마의가 조비의 의심을 사서 군권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제갈량보다 한참 모자란 조진 장군이 총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허나 병참보급을 위해서 필히 막아내야 할 '가정'이란 요충지를 마속이 시건방을 떨다가 빼앗겨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자 제갈량은 모든 병력이 굶어죽기 전에 퇴각을 해야 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렇게 1차 출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보급 문제'는 제갈량을 끝까지 발목 잡게 되고, 결국 출정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하는 꼴을 면치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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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읍참마속'인데, 사실은 마속을 죽이긴 하지만 목을 참해서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둬두고 천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가솔을 보살펴 달라고 간청하였고, 마속을 아들처럼 여겼던 제갈량도 이 간청을 받아들여 마속의 아들들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다만 막속이 저지른 죄에 대한 감형은 없었다. 심지어 제갈량 스스로도 패배한 과실을 엄중히 물어서 '승상'직을 내려놓고 '우장군'으로 지위를 격하시켜 패배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출정 당시에 다른 장수들은 마속이 실전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가정'을 지키는데 적임이 아니라고 충고했지만, 제갈량이 이를 묵살하고 마속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며 중임을 맡겼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제갈량이 아들처럼 여긴 마속을 '자신의 후임자'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큰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비리'를 일삼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제갈량도 사리사욕을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도 있지만, 제갈량이 '내정'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에 반해서 '실전'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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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갈량의 업적은 '정사 삼국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실 '박망파 전투'를 비롯해서 '적벽대전', '한중공략' 등등 제갈량이 참전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박망파 전투는 유비의 작품이며, 심지어 삼고초려를 하기 전에 벌어진 전투였다. 그러니 제갈량이 활약할 수조차 없는 전투였고, 적벽대전의 성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노숙과 주유의 공이 크다. 노숙은 손권과 유비의 동맹을 이끌었던 주인공이고, 주유는 조조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소설 삼국지에서 보여준 제갈량의 활약은 모두 소설 속의 허구적 묘사일 뿐이다. 그리고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고 조조와 '한중공략'에 맞서 싸울 때에 제갈량은 '성도'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조조와 대면하고 맞서 싸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비였단다. 역사상 조조와 제갈량이 서로 대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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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갈량은 한 것이 무엇인가? 촉한의 내정을 빠른 시일내에 초과달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반면에 전쟁에서는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했고, 큰 활약을 한 적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천재적인 전략'을 펼치며 모든 전장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으며 무조건 승리로 이끌어내고, 심지어 천변의 재주까지 가지고 있어서 '하늘의 운수'에 통달하고 '동남풍'까지 맘대로 부리는 귀재로 묘사하는데, 이는 나관중의 '허구적 장치'로 소설을 읽는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탁월함을 나타낸 것일 뿐, 실제 제갈량의 재주는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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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소설 삼국지를 '역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앞서도 강조했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왜 읽어야만 하는 걸까? 다름 아닌 수많은 영웅들의 다채로운 인생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남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모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모략적 처세술'에 어릴 적부터 노출되어 있어서 남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것도 훌륭한 지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그런 지혜도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지혜임에는 틀림 없다. 그렇지만 '절박한 생존'을 다투는 일이 없을 때에는 그런 저급한 지혜를 사용해서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삼국지>는 온통 전쟁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에 매 순간이 '절박한 생존'을 요구하는 혼란한 시대를 담았다. 그렇기에 그런 저급한 지혜마저 엄청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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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평화로운 시대에는 어떤 지혜를 써야 할까? 그래서 우리가 소설 삼국지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유비'다. 그는 절박한 순간에도 저급한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기보다는 '신의'와 '인'을 내세우며 기다릴 줄 아는 처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역사속 유비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당시 다른 영웅과 마찬가지로 '저급한 처세술'을 사용하며 촉한의 황제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나관중이 묘사한 유비는 다르다. 소설 속의 유비는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 결국 '올바름'으로 '그름'을 이기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과는 많이 왜곡된 모습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왜곡된 유비의 모습을 통해 배우는 지혜가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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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10권이 남았다. 기대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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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8 - 중원이 셋으로 나뉘다 ㅣ 이희재 삼국지 8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희재 삼국지 8 : 중원이 셋으로 나뉘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XIII / 휴머니스트 5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두 번째 리뷰는 비로소 삼국정립은 완성했지만 익숙한 주인공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는 <이희재 삼국지 8>이다. 소설 삼국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도 '유관장 삼형제'가 빠진 대목에 이르면 책을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급기야 책에서 손을 놓는 독자들도 꽤 많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학창시절에 <삼국지>를 읽을 때면 늘 유비가 '입촉'을 하는 대목에서 멈추곤 했다. 그 뒷내용에 제갈량이 대활약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 걸 알고 있지만, '팥소가 없는 찐빵'을 먹는 듯 읽는 맛이 시들하기 때문에 점점 읽기가 싫어지곤 했다. 그래서 소설 삼국지를 '완독'한 것은 놀랍게도 2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역시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희재 삼국지 8>에서 비록 관우는 생을 마감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관우가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우'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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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8> 관점 포인트 : 지난 편에서 유비가 드디어 서촉을 정복하고 '한중왕'에 오른다. 이에 조조는 대노하며 유비를 공략하는데, 먼저 관우가 버티고 있는 형주를 공략하기 위해서 '번성'에 집중한다. 하지만 천하의 관우가 버티고 있는 형주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조조는 관우를 상대하며 우금과 방덕을 보냈지만, 둘 다 관우의 상대가 못되어 우금은 포로가 되고, 방덕은 패배한 장수라는 이유로 죽음을 바란다. 이렇게 쓰디쓴 패배를 당한 조조는 '형주 공략'을 위해 손권에게 손을 내미는데, 이게 관우의 목숨줄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손권도 이미 유비와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조조와 손을 잡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유비와 잡고 있는 손을 꼭 잡을 까닭도 딱히 없었기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관우의 딸'이 혼기가 꽉 찼으니 '손권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하여 함께 조조와 맞선다면 큰 이득이 될 거라는 제갈근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허나 관우는 이를 단 한 마디로 거절한다.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낸단 말이냐. 그대가 군사(제갈량)의 형만 아니었어도 당장 목을 베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 말로 인해 관우는 자신의 목숨줄을 끊어 짧아지게 만들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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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손권의 혼인 제안은 관우에게 있어서 손해볼 일이 아니다. 손권은 대대로 '동오의 제후'였고, 관우는 '한중왕 유비의 신하'였지 않은가. 아무리 관우가 한중왕에 오른 유비와 '호형호제'하는 막연한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손권은 관우보다 급이 높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다면 관우는 거절을 하더라도 '완곡'히 했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조조가 군사를 보내 형주를 넘보고 있는 실정이 아니었던가. 일찍이 제갈량도 조조와는 험악하더라도 손권과는 막역하게 지내라 충고했었는데, 관우는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양쪽의 적국 모두를 '적대시'하는 만용을 부리고 만 셈이다. 결과적으로 관우는 이렇게 만용을 부리다 죽음을 면치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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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도 불같이 화를 냈다. 모처럼 내민 화해의 손을 야멸치게 거절한 것으로도 모자라 '모욕'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손권은 여몽을 총대장으로 삼아 '형주 공략'의 선봉으로 보낸다. 졸지에 관우는 양쪽 모두와 전쟁을 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허나 관우도 지략이 뛰어난 장수였다. 말을 타고 싸우는 전장에서도 늘 품에 <춘추좌씨전>을 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었을 만큼 똑똑한 면모도 있었다. 그래서 관우는 조조를 상대로는 '강공'을 펴며 형주로 쉬이 내려오지 못하게 했고, 손권을 상대로는 '길목'을 막고 대군을 진입조차 하지 못하게 꽉 틀어막는 전략을 펼쳤다. 그래서 소수의 병력으로도 양쪽의 전장을 모두 막아내는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여기에 '봉화대'라는 연락망을 깔아서 손권의 기습에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로 발휘했던 것이다. 손권군 총사령관인 여몽이 이것이 골치였다. 대규모 수군을 빠르게 접안시키고 형주의 길목인 '육구'를 통해 대병력으로 밀어붙이려 했는데, 봉화대로 침략의 소식이 전해지면 관우도 '수비병력'을 급파해서 여몽의 기습을 차단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관우도 여몽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적극적인 수비대책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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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긴다. 여몽이 병으로 총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육손'이라는 젊은 장수가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첩보를 관우가 받게 된다. 관우는 여기서 엄청난 실책을 하고 만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고 새파랗게 어린애가 총사령관이 되었다면 더욱 신중하게 더 많은 첩보를 얻어 조심성을 높였어야 하는데, 관우는 '방심'한 것으로도 모자라 '개무시'하는 전략을 짰고, '봉화대' 하나만 믿고 대다수의 병력을 조조군 공격에 나서게 만들었다. 영특한 육손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감시망'을 뚫어 봉화대를 하나둘 무너뜨린 뒤에 형주성을 차레차례 점령해버린다. 이렇게 관우는 '본진이 털렸다'는 소식을 전하고 뒤늦게 철군하지만, 이미 형주성을 굳게 지키고 있는 육손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형주성 안에 있던 식솔들의 안부가 걱정이었던 관우의 병사들은 육손에게 점령 당했지만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탈영을 하고 만다. 이렇게 육손에게 눈 뜨고 코 베인 관우는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맥성'에서 버티면서 서촉에서 구원병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지만,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손권군이 사방에서 공격을 해오니 관우는 더 버티지 못하고 맥성에서 나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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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손권 앞에 끌려온 관우는 패장이 되었으니 죽이라고 말하지만, 손권도 조조와 마찬가지로 관우와 같은 '만인지적의 영웅'을 탐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항복을 하고 충성을 다짐하면 살려주겠다고 꾀어 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거기에 덧붙여서 관우는 손권을 또 모욕하기 시작한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손권은 어차피 관우는 순순히 항복할 인사가 아니라는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참수'하고 만다. 당장의 분을 풀긴 했지만 손권은 뒷일이 걱정이었다. 관우를 죽였으니 유비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권은 그 화를 조조에게 떠넘기고자 '관우의 수급(목)'을 소금에 절여 조조에게 보낸다. 조조는 관우의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바라보았지만, 관우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무섭게 노려보자 조조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했다나...암튼, 조조는 관우의 몸을 대신해서 '나무 몸통'을 만들어 관우의 시신을 정중히 모시고 장례를 성대히 치뤄 관우의 넋을 보냈다. 그러자 관우의 넋은 여몽에게로 달려가 여몽을 급사하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뒤 조조도 관우의 혼령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앓다가 220년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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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소설 삼국지에서는 '관우의 죽음'으로 여몽도 죽고, 조조도 죽고, 뒤이어 장비도 죽고, 황충도 죽고, 유비도 죽는 비운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정말 '관우의 원혼'이 이들을 하나하나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일까? 사실 '정사 삼국지'에 전해지는 관우에 대한 사료는 빈약하다 못해 1천 자 정도라고 한다. 200자 원고지 5매 정도, A4 용지 1장 정도의 적은 분량이 전부라는 말이다. 이를 나관중은 '소설 삼국지'에서 관우를 스타급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관우 숭배'를 하며 신으로 모실 정도고, 지식인들도 관우의 충성과 의리가 남다르다며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낼 정도다. 심지어 국가차원에서는 '관성 대제'라고 불리며 거의 황제급으로 대우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도대체 관우에게는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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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유비, 장비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 토벌을 위해 의병을 일으키기 전에는 고향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을 친 살인자였다. 그렇다고 관우가 죄 없는 사람을 살인강도한 전과자였다는 얘기는 아니고, 의롭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악인'을 보고 참지 못하고 단칼에 베어버렸던 의로운 살인자(?)였던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관우에게서 첫 번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관우가 '정의로움'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사실이다.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성격을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진리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관우의 '정의로운 모습'은 참을 수 없는 매력포인트가 분명하다. 살인을 용납할 수는 없으니 '폭행' 정도에서 그치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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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번째 매력은 무엇일까? 곤궁한 처지에 빠졌어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게 지키는 지고지순한 매력이다. 물론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집불통'에, 앞뒤 꽉 막힌 '꼰대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바른말만 하는 '바른생활의 싸나이'가 고집을 부리니, 이게 또 매력적으로 보인다. 제 잇속만 챙기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바쳐 국가에 충성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더 챙기며, 한 번 맺은 '의리'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변치 않고, 아무리 더 좋은 조건으로 회유를 해도 굴하지 않고 꺾이지 않으니, 그게 또 매력적인 것이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조폭 냄새'가 풀풀 나지 않은가? 의리 지키는 건 좋은데 오직 '자기집단의 이익'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혹여라도 '자기집단'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으면 냉혈동물보다 더 차갑게 외면하는 일면도 보이기 때문이다. 손권의 아들과 혼사를 논할 때도 그렇다. 때와 상황에 맞춰서 때때로 유연하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일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의리 따지고, 의리 따지고, 또 따지는 꽉 막힌 모습은 그야말로 꼰대, 꼴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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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겠지만 마지막 세 번째 매력은 무엇일까? 그건 '만인지적'이라 불릴 정도의 용맹함이다. 말 그대로 만 명의 적을 상대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지략과 용맹을 갖춘 장수를 일컫는 말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관우와 장비를 일컫어 '만인지적'이라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장(날으는 장수)'이라 불렸던 여포와 비교하면 어떨까? 소설 삼국지에서는 호뢰관 전투에서 여포와 유비 삼형제의 대결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꼬나들고 연합군의 장수를 일격에 죽이고 있자 장비가 앞장서서 나가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싸우니, 이를 지켜보는 관우가 불리하다 여겨 청룡언월도를 옆구리에 끼고 부리나케 달려가 싸움에 합류했으며, 곧이어 유비도 쌍고검을 들고 싸움에 합류하니, 그때서야 버거움을 느낀 여포가 빈틈을 엿보다 몸을 빼내어 달아났다. 유관장 삼형제는 그 뒤를 바투 쫓았으나 여포가 탄 말이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적토마였던지라 끝내 놓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고사를 남겼으니, 사람 중에는 여포가 최고이고, 말 중에는 적토마가 최고라는 뜻이다. 이런 서사를 참고한다면 '만인지적'은 '비장'에 비해 한 단계 낮은 급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포는 지략이 부족하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해서 대중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우는 다르다. 그의 용맹은 정의로움과 의리와 함께 하니 더욱 찬란히 빛나게 된 것이다.

​

이렇게 관우를 살펴봤는데 어떤가? 오늘날의 여러분 시선에서도 관우는 충분히 매력적이라 느껴지는가? 아니면, 대부분 꾸며낸 허구 속 설정이라는 '팩트'에 기반해서 실망감이 앞서는가? 그도 그럴 것이 관우의 업적이라 불리는 술잔이 식기 전에 '화웅을 죽인 업적'은 손견이 죽인 것이 정설이고, 안량과 문추를 베었다는 이야기도 '문추를 죽였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유비 형님을 찾아 '오관육참장 했다'는 이야기는 소설에만 나오는 뻥이며, 관우가 독화살에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화타'가 치료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다. 관우가 독화살에 맞아 치료한 시기는 이미 화타가 조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우가 엄청 멋있게 묘사된 내용은 거의 전부 '소설 속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설 삼국지를 읽으며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 재미난 이야기를 읽고 '역사적 호기심'이 생긴 것이라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

비록 관우의 모습은 '실제로 있을 법한'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지만, 너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관우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정의로움', '의리', 그리고 '용맹함' 정도는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관우의죽음 #관우의매력 #만화삼국지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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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 제대로 알고 부르는 가족 호칭 ㅣ 우리말 표현력 사전 8
이윤진 지음, 임광희 그림 / 한솔수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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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수북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 제대로 알고 부르는 가족 호칭> 이윤진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CXXXII / 한솔수북 2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한 번째 리뷰는 가족 간에 가장 기본이지만 요즘엔 정말 부르기 힘든 '가족 호칭'을 알려주는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다. 이 책은 한솔수북에서 나온 '우리말 표현력 사전' 시리즈 가운데 여덟 번째 책으로 고모와 이모처럼 '가족끼리 부르는 호칭'에 대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과거에는 우리 민족의 가족 형태가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가족을 부르는 호칭을 꼭 알아야 했고 제대로 불러야 했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산업사회가 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게 되자 가족의 형태도 '핵가족'이 되었다. 핵가족이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명의 자녀가 있는 4인 기준의 소규모 가족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핵가족 형태가 되었어도 명절이 되면 '민족 대이동'을 하며 부모님(할머니, 할아버지)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떠나는 '귀경길'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가족 호칭'은 꼭 알아야 하고 제대로 불러야 했다. 그럼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관점 포인트 : 요즘에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다.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이 많아졌고, 이혼이나 맞벌이 등과 같은 다양한 사정으로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도 점점 증가 추세다. 그러다보니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 '가족 호칭'을 부를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저출생'과 '결혼 기피 현상'과 같은 사회문제가 두각되면서 '가족 호칭'을 아예 불러볼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인구수가 점점 줄어드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가족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일은 단순히 '가정 교육'이나 '공교육'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멸종(?)을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할 수도 있다.

​

시작부터 엄청 무거운 주제로 시작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최근에는 늦은 결혼으로 인한 '불임', '난임'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자녀를 하나만 두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고,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는 '1인 가정'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걱정스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족 호칭' 따위는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왜냐면 '가족 호칭'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 표현력 사전'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바로 소중한 우리네 전통문화를 지키고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다. 1권 '나이와 시간'을 나타내는 말, 2권 '비슷한 말, 높임말', 3권 '관용 표현', 4권 '맞춤법', 5권 '의성어, 의태어', 6권 '이것 저것 세고 재는 말', 7권 '우리 속담' 등.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빼거나 없애버릴 것이 있느냔 말이다.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가족 호칭'은 제대로 알고 불러줘야 한다.

​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제대로 부를 줄 알고 있어도 '부를 일'이 없는 것이 문제다. 한 자녀 가정에게는 형제/자매가 없으니 훗날 그 자녀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둘셋 낳아도 '삼촌'이 없다. '촌수'로 삼촌에 해당하는 호칭은 친족으로는 '삼촌', '고모'가 없는 셈이고, 외족으로는 '외삼촌', '이모'가 없다. 삼촌이 없으니 당연히 '사촌'도 없다. 오촌 당숙(아저씨)이란 호칭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 뿐만 아니라 '동서'가 사라지기 때문에 '형수/제수', '매형/매제', '처형/처제' 같은 호칭도 자연스럽게 없는 셈 쳐야 한다. 그러니 '가족 호칭'을 부를 일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와 동시에 한민족의 멸종(!)까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

그렇다고 그런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조건 결혼을 강요하고,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족 호칭'을 자주 불러 주는 방법이 있다. 아니 '없는 사람(존재)'을 불러..부를.. 그럴 수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 귀띔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비록 나의 '친삼촌'은 아닐지라도 삼촌이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친근하게 부르는 방법이 있다. 친족 관계는 아니어도 좋다. 이미 우리는 '식당 이모'라고 부르지 않은가. 이렇게 삼촌과 이모라는 호칭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호칭'이 되는 것이다.

​

나가는 글 : '가족 호칭'을 살려내면 앞서 말했듯이 한민족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 그만큼 위대한 일이란 말이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중대한 죄를 지은 죄인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렸는데, 이때 '삼족을 멸하라'는 형벌이었다. 여기서 '삼족'은 할아버지, 아버지, 나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이는 '삼대'라고 부른다. 그럼 '삼족'은 무엇일까? 바로 나의 아버지 가족을 통틀어 이르는 '친족', 나의 어머니 가족을 통틀어 이르는 '외족', 그리고 나의 아내쪽 가족을 통틀어 이르는 '처족'을 모조리 처형하는 형벌이었다. 그야말로 온가족이 풍비박산 나고 '사돈'에 '팔촌'까지 쑥대밭이 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요즘에는 팔촌까지 갈 것도 없이 사촌간에도 데면데면해서 왕래가 없는 집안도 많은 형편이다. 가뜩이나 자주 불러줘야 할 '가족 호칭'인데 말이다.

​

이 책에는 '친족'과 '외족'은 물론 '처족'에 대한 호칭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하지만 딱 '사촌 사이'까지만 나와 있다. 오촌, 그 이상의 촌수에 대한 호칭은 벌써 오래전부터 '부를 일'도 없고, '가르칠 일'도 없는 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촌 이내마저 '그럴 일'은 없어야겠다. 누차 강조하지만 누구라도 불러주기만 하면 '꽃'이 되는 법이다. 나도 누구에게라도 기꺼이 '꽃'이 되어 주리다.

​

#리뷰 #에세이 #우리말표현력사전 #도대체뭐라고말하지 #가족호칭 #표현력사전 #표현력 #어휘력 #말하기 #글쓰기 #한솔수북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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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 공주 ㅣ The 그림책 1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김시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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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공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 김시아 / 한솔수북 (2024)

[My Review MMCCCXXXI / 한솔수북 2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 번째 리뷰는 그림형제의 원작동화를 넘어 그 속내까지 파헤친 <아듀, 백설공주>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 책등이 없는 '누드 사철'과 상상 이상의 '크기'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놀람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 '백설공주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그림부터 기괴하고 등장인물들의 속내는 추악한 동화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백설처럼 희고 하얀 아리따운 공주가 등장하지 않는 그림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

<아듀, 백설공주> 관점 포인트 :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예술을 감상하는데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이는 '기존의 예술'을 뛰어 넘어 '새로운 예술'로 다가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방법이라도 기존에 '아름답게' 보던 것을 굳이 '추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아주 좋은 그림책이 바로 <아듀, 백설공주>다.

​

우리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통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꿈과 환상을 키워 왔다. 어릴 적에 누구나 읽어보거나 들어본 이야기에서 백설공주는 눈처럼 하얗고 고운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아리따운 공주에게 시련이 찾아왔으니 친엄마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 채 '못된 계모'에게 시기와 질투, 미움을 받으며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지만 끝내 계모의 차갑고 어두운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이웃나라 왕자에게 '키스'를 받고 되살아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그냥 들으면 '예쁜 여자아이가 고생 끝에 행복을 찾았다'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일 뿐이다. 그런데 곰곰이 이야기를 따져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속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계모가 의붓딸을 살해하는 이야기이고, 늙은 여자가 어린 여자의 미모를 샘내는 이야기며, 예쁜 여자는 착하지만 멍청하거나 더 예쁜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린아이가 읽는 '동화책'인데 말이다.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부도덕한 이야기를 우리의 사랑스런 어린이들에게 읽혀줘도 괜찮은 것일까?

​

오늘날 '올바른 여성상'을 따져가며 <백설공주>를 읽으면 더욱 기괴하다. 훌륭한 여성상이 되려면 '모성애'가 가득해야 하고, 더 나아가 만물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미모'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먼저 돕고 나서서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기꺼이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텐데,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계모는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젤 예쁘니?"라고 묻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거울이 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은 왕비님이십니다"라고 답하면 온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감을 만끽하는 낙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왕도 죽고 백설공주만 남게 되자 왕국을 차지한 새왕비는 왕국을 잘 다스린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거울에게 묻고 '정해진 답'을 듣는 낙으로만 살아간다. 그러다 백설공주가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게 되자 새왕비에게는 둘도 없는 '경쟁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새왕비가 '경쟁'에서 패배를 선언받자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자신의 미모를 뛰어넘은 '경쟁자'를 제거하려 든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처음엔 사냥꾼, 다음엔 허리띠, 머리빗,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사과'를 사용해서 죽여버린다.

​

예쁜 공주가 받게 되는 '살해 시도'는 일곱난쟁이들과 이웃나라 왕자에 의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백설공주는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아름다운 결말로 끝을 맺지만, 이게 정말 '해피엔딩'이 맞을까?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또 하나 감춰져 있다. 백설공주는 예쁘기만 할 뿐, 정말 '멍청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아름다운 여자는 똑똑하면 안 된다'는 사회통념이 팽배했었다. '백치미'라는 말이 예쁜 여자에게 듣기 좋은 말로 꼽힐 정도였단 말이다. 반대로 예쁜 여자가 '박사 학위'를 따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출세'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끼리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백설공주'는 여러 공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멍청한 공주였다. 이런 문제의식이 가득한 '백설공주'인데도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백설공주처럼 아름답다"는 말은 욕이 아니라 칭찬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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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이 책의 저자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백설공주> 이야기는 끔찍한 동화책이라고 문제의식을 최고조로 까발렸다. 그런 의미로 작가는 <아듀, 백설공주>를 그렸다. 읽어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아름다운 '새왕비'도 찾아볼 수 없고, 아리따운 '백설공주'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추악한 속내'가 그대로 외모에 투영된 새왕비가 등장하고, 자신을 쫓아다니는 '문제의식'을 전혀 깨닫지 못한 백설공주 또한 곱게 그려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백설공주>를 읽고 '잘못된 꿈'과 '왜곡된 환상'을 애초부터 갖지 못하게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비록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로 읽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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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아름다운 여성을 더는 '멍청하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바다. 더불어서 아름답지만 '자기 욕망'에만 충실하고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주지 못한 새왕비에게도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그 끔찍한 처형식을 백설공주에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무엇이고, 반대로 '해야만 할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가 작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비록 기괴하고 어둡고 추한 그림으로 가득한 그림책이지만,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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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렇게 좋은 의도를 굳이 '그로테스크(기괴한) 기법'으로 전해야만 했을까?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로 가득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추악한 속내'가 밝혀진 새왕비를 참혹한 형벌로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같은 의도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른바 '충격 요법'이라면 시종일관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보다는 처음엔 아름답다가 끝에는 참혹한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극적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씨~게 맞은 것처럼 말이다. 물론 백설공주도 아름다움 속에 '멍청하게 휘둘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놓으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물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완성도'는 걸작 수준이다. 예술성에서도 '수준급'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를 '몇 살의 여자아이'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독서교육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9금 딱지'를 붙여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폭력성'이 너무 강렬하다. 절대 10대 이하의 여자어린이에게 보여주면 안 될 그림책 같기도 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소녀에게도 조금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독서교육 필독서로 사용할 경우라면 '능력 있는 독서지도사'의 교수법을 거쳐서 '성숙한 양성평등 의식을 갖자' 등등의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아무 생각 없는 '사춘기 소년'을 대상으로 충격 요법에 가까운 '성평등 수업'을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고 말이다. 여러 모로 '초등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이 '바라는 여성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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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세이 #아듀백설공주 #베아트리체알레마냐 #한솔수북 #바람직한여성상 #양성평등 #진정한아름다움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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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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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이중톈(易中天) / 김성배, 양휘웅 / 김영사 (2007)

[My Review MMCCCXXX / 김영사 3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아홉 번째 리뷰는 중국 국영방송의 교양인문학 강의를 통으로 씹어 먹은 이중톈 문학박사가 쓴 <삼국지 강의>다. 무려 20년 전에 했던 강의지만 지금 읽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명강의다. 올해 <삼국지>를 본격적으로 다시 읽으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책이기에 여기 몇 자 적어 볼까 한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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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관점 포인트 : 이중톈은 '문학' 박사지만 '역사 고전 해설가'로 더 많이 알려진 분이기도 하다. 이 분의 손을 거치면 '썩은 물'도 수백 미터 암반에서 뽑아올린 '청정수'가 된다고 할 정도로 '고전'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런 까닭에 이중톈이 <삼국지연의>를 강의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실제로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가 방영된 이후에 기존의 '삼국지 해설'은 싹 씹어먹을 정도의 파급력을 보여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비교분석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한서>, <자치통감>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서'를 비롯해서 <배송지본>, <모종강본> 등의 '삼국지연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도 수많은 학자의 역사서와 해설서, 소설 등등 전방위적인 '1차, 2차 사료' 및 수많은 '이본(異本)'까지 들이밀며 자기 주장의 '객관성'을 선점하며 강의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와 이해가 술술 되는 명강의를 보여줬다. 이 책 <삼국지 강의>는 바로 그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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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어렵지 않게 '고전'에 대한 교양을 쌓을 수 있으며 <삼국지>를 10번 이상 읽은 초고수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까지 속시원히 긁어주는 훌륭한 책이다. 그런 관계로 <소설 삼국지>를 좀더 깊이 읽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필독서로 꼭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400쪽이 훌쩍 넘는 책이라 솔직히 부담이 되는 분량이긴 하다. 더구나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두꺼운 2권이 남아 있다. 그래서 거의 10권 분량의 소설책을 읽는 것 같은 부담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걱정하지 않고 읽기 시작하면 결코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깊은 몰입감과 깨알같은 재미를 보장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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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을 살펴보면,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해준다. 다들 '정사'에서는 조조가 주인공이고, '소설'에서는 유비가 주인공인 것을 알지만, 그 둘 중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속시원히 까닭을 밝히며 말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 다 천하통일을 이룩하지는 못했지만,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조조를 주인공으로 꼽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설에서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고 조조를 '악인(조연)'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조조가 결국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유비가 주인공인 소설 속에서도 분량적인 면에서 '조조'가 압도적으로 많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인공 유비가 나올 때에도 조조와 얽힌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으로 나올 정도다. 이쯤 되면 <삼국지>는 '조조'를 배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그렇기에 조조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중톈이 이 책에서 "조조가 주인공이다"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조차 '조조의 분량'이 절반을 넘는다. 결국 조조가 주인공이라는 얘기를 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는 역사의 승자이며, 동시에 '기록'의 주체다. 그러므로 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조차 '조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진행하고 플롯을 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조가 동탁 암살을 하려고 '첫 등장'을 할 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며, 조조의 세력 확장 과정을 살펴야 <삼국지>의 줄거리가 착착 어긋남이 없이 진행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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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를 무리하게 틀어버려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다. 그러다보니 조조를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악인'으로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중톈은 이런 조조에 대한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삼국지 강의> 첫 머리를 슬며시 열여재낀다. 그렇게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오명부터 풀어간다. 조조가 그토록 '간사한 영웅'이었는지 말이다. 겉으로 보았을 때 조조는 한나라 황실을 옥죄어 황제를 볼모로 삼고 스스로 '승상'이란 최고의 자리에 올라 전국의 제후들을 황제 대신 호령한 인물이다. 나중에 '위왕'에 책봉되고, 감히 '황제의 자리'까지 넘봤다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조조는 살아생전에 황위를 찬탈하지 않았다. 헌제에게 선양을 강요하고 끝내 폐위시킨 인물은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한 일이다. 자식이 한 죄를 아비에게 물어야 한다면 조조는 '역적'이 맞겠지만, 그조차 조조가 죽고 난 뒤의 일이다. 유언으로 조비에게 황위를 찬탈하라는 유언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간웅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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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조가 황제의 밀서(의대조 사건)로 '역적의 반열'에 오른 것이 이유로 충분할 수 있지만, 당시 헌제는 조조 한 명 암살에 성공한다고 '권력'을 온전히 되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견고히 하지 못했다. 궁궐 전체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조조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조가 죽어도 '조씨 천국'에서 헌제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조조에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웅'이 홀연히 헌제에게 찾아와 구출해주고 '조조의 압제'에서 유유히 빠져 나와 조조 세력을 짓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헌제에게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지고지순한 충신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대 그런 영웅이 '조조' 말고 또 있었을까? 또한, 조조를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헌제에게 충성을 다할 영웅이 있기는 했을까? 그런 점에서 조조는 헌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조조는 '헌제'를 보살펴주고 '한 황실'을 건재하게 보존했으며 '한나라'의 명맥을 잇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영웅'이었다. 이는 진수가 쓴 <삼국지>를 비롯해서 <후한서>, <자치통감> 등 여러 역사서에도 비슷한 논조로 적혀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사실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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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서술하면서 조조를 철저하게 '악인'으로 묘사했다. 왜냐면 역사서에서는 조조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백성들에게는 조조가 큰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이란 게 그렇다. 좋은 정책을 펼치고 국가를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가혹한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난세가 아닌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피치 못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렇다보니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나랏님'을 향해 욕하기 마련이다. 헌데 당시 황제였던 '헌제'는 힘 없는 존재였다. 모든 '실권'은 조조가 틀어쥐고 있다. 그리고 조조를 둘러싼 군웅들은 호시탐탐 조조를 노린다. 여포가 그랬고, 원소가 그랬고, 유비가 그랬고, 유표가 그랬고, 손권이 그랬고, 마등이 그랬고, 마초가 그랬다. 조조는 늘 전쟁을 치뤄야 했다. 아무리 '둔전제'를 시행하고 전쟁의 효율성을 높였다고는 하나, 전쟁은 아주 극단적인 '국력 소모'를 전제하기 마련이다. 승리를 해도 잘 해야 본전치기인데, 패전을 하게 되면 손실은 눈덩이가 된다. 이런 시기를 겪었던 백성들은 조조가 살아있을 때도 욕했지만, 조조가 죽은 뒤에도 욕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민간에서조차 조조는 인기가 없었던 군주였다. 그런데 나관중이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큰 인기를 끌었고, 역사가 아닌 소설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소설의 이미지'를 역사에 투영하며 의식을 굳혀 갔다. 그래서 조조는 억울하다. 실제로는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정책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민간에서 널리 인식하기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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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 <삼국지 강의>는 조조에게 얽힌 '진실과 거짓'을 낱낱히 밝히며 역사와 소설의 차이점을 분명히 밝혀준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런 점에서 속시원한 면모를 느끼게 될 것이다. 비단 조조 뿐만 아니라 손권과 유비를 비롯해서 수많은 군웅들의 면모를 일일이 '사료'와 '소설'을 번갈아 보여주며 속사정을 까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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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그렇게 까발린 속사정 가운데 '삼고초려'와 '적벽대전'을 이야기해보자. 과연 유비는 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이 사실일까? 그러기엔 당시 유비는 이미 '영웅'이었고 공명은 '무명'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일 가능성인 매우 적다고 밝혔다. 지금으로치면 대기업 회장직에서 밀려난 총수가 어느 촌구석에 숨어 있다는 현자를 직접 찾아가서 '세상물정'을 물어본 뒤에 그를 '대기업 비서실장 겸 CEO'로 발탁한 것과 맞먹는 일이다.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실제 역사서에서도 유비가 '삼고초려'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하지만 유비가 공명이 머물고 있는 '융중'을 찾아가 '천하삼분지계'를 조언 받은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단다.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한 번 정도는 찾아갔을 것이고, 만남이 이루어진 그 자리에서 '천하삼분지계'를 이야기 나누고, 공명을 책사로 받아들인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긴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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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적벽대전'의 진실도 조조가 남하해서 유종에게 항복을 받고 형주를 차지한 것은 맞지만,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 까닭이 애초부터 '손권'을 쳐서 정벌하겠다는 야욕을 벌이다 '제갈량이 손권 진영을 입방아'로 휘몰고, '주유와 제갈량이 지략대결'을 벌이고, '지푸라기배로 화살 10만 개'를 낚아채고, '동남풍을 빌리는' 따위의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나오는 허풍에 가깝다고 말한다. 왜냐면 조조는 애초에 손권이 목적이 아니라 유비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조군이 적벽에서 패전한 까닭은 첫째, 전염병에 돌았기 때문이고, 둘째, 100만 대군이 아니라 20만 정도였으며, 셋째, 그마저도 수전에는 취약한 보병과 서둘러 남하하느라 지쳐버린 기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남풍이 부는 계절에 화공을 당해서 조조 진영이 배는 물론 육지까지 화염에 휩싸이는 '불운'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적벽대전의 진실은 조조의 '작전 실패'였던 것이다. 애초부터 자랑이던 기병과 보병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남하를 했더라면 유비는 물론이고 손권까지 다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을, 어찌하여 무리하게 '강행'을 서두르고, '수전'을 고집해서 자신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는지가 미스테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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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적벽대전의 승리를 '조조의 불운'으로만 정리할 수는 없다. 분명 제갈량과 주유, 그리고 노숙의 공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 방통의 연환계는 아예 기록에 없는 내용이다. 먼저 제갈량의 공은 형주가 조조에게 홀랑 넘어간 뒤에 강하에 남아 있던 '유기의 1만 군사'와 '관우가 이끌던 1만 수군'을 밑천 삼아서 손권을 전쟁에 끌어들이고 '주유가 데리고 온 3만 군사'와 합해서 조조의 20만 대군과 맞서 싸우게 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20만 vs 5만의 대결이다. 결코 쉽지 않은 대결인데, 자신이 모시는 유비를 위해서 '조조 vs 유비'의 전쟁을 '조조 vs 유비, 손권'의 전쟁으로 만든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주유의 공은 단연 '수적 열세'에 놓인 전투를 앞에 두고 '황개의 화공작전'을 받아들여 조조의 약점인 수군을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게 만든 점이다. 말이 20만 vs 5만이지 무려 4배의 차이가 나는 전쟁이었다. 자신이 2미터의 장신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4배나 큰 8미터의 거인과 맞서 싸우는 셈이었다. 그런데도 용감히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주유는 대단한 장수였던 셈이다. 한편 노숙은 제갈량 못지 않은 책사인데, 소설에서 너무 무능하게 묘사되어 안타까울 지경이다. 제갈량이 유비를 위해서 '천하삼분지계'를 꺼냈다면, 노숙은 주유와 함께 손권을 위해서 '천하이분지계'를 내놓은 지략가였다. 더구나 적벽대전에서 유비, 손권의 승리를 거두는데 노숙의 지략도 톡톡히 해냈다.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 유비 세력을 형주에 묶어두고 손권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판을 짠 것도 모두 노숙의 공로다. 헌데 소설에서는 능글맞은 유비와 제갈량에게 손쉽게 속아넘어가는 바보로 만들었으니 노숙이 <삼국지연의>를 직접 읽었다면 분통을 터뜨렸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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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정사'와 '소설'을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맛으로 읽어도 존맛이다. 거기에 <삼국지>에 담긴 지혜와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고 말이다. 특히 <삼국지연의>를 두번, 세번 탐독한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소설만 읽어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되어 한층 안목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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