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케이션 2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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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이퍼케이션 2 : 하이드라>  이우혁 / 해냄 (2010)

[My Review MMCXL / 해냄 7번째 리뷰] '분기점(바이퍼케이션)'이라는 뜻을 1권에서 겨우 이해를 했는데, 2권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진도'가 엄청 빠르다. 심지어 '헤라클레스의 정체'까지 가르시아와 에이들 수사팀에 의해 다 밝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하이드라'라는 존재까지 거의 근접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범죄를 저지르던 살인광 '뱀파이어의 진면목'을 다 까발려버리는 굉장한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이런 식이면 3권에서 이야기할 것이 남아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그렇다면 이우혁 작가는 '할 이야기'가 더 남았다는 것인데, 여기에 '반전'까지 의도했다면, 아마도 '헤라클레스의 정체'를 다시 정립해야 할 여지가 남았거나, '하이드라'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파헤쳐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사 전체를 허탕치게 만들고 '재수사'를 해야만 하는 플롯을 이우혁 작가는 <퇴마록>에서도 종종 써먹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바이퍼케이션>의 재미는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이제 결말까지 딱 한 권이 남았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말이다.

2권의 줄거리는 FBI 천재 프로파일러 에이들이 '범죄 프로파일링'을 하면서 이끌어가는 것이 주요하다. 강력계 형사반장으로 등장하는 1권에서 크게 활약했던 가르시아는 거의 조연급으로 움직이고 있을 정도로 내쳐지고 말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수사는 '뱀파이어 소탕 작전'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저지른 범죄는 '완전범죄'에 가깝기 때문에 도무지 '단서'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범죄를 따라한 '군터'라는 모방범을 뒤쫓으면서 뱀파이어를 잡기 위한 함정수사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뱀파이어가 아닌 뱀파이어의 '다음 희생자'를 수사하는 격이 되었다. 바로 '헤라 헤이워드'라는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한 백인여성을 취조(?)하듯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르시아와 에이들은 뜻밖의 인물과 조우를 하게 된다. 바로 자칭 '헤라클레스'라고 자신을 밝힌 아리따운 여성을 말이다. 이미 1권에서 독자에게는 정체가 밝혀진 존재이기 때문에 다들 아실 것이다. 바로 '헤라 헤이워드'가 '헤라클레스'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르시아는 깜짝 놀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웬일인지 에이들은 차분했다. 아니 처음엔 의아했지만 점점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듯 침착한 표정을 짓게 된 것이다.

사실 여성이 자신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영웅 헤라클레스'라고 밝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당연하지만, 에이들은 그것이 맞을 수도 있음을 확신한다. 왜냐면 자신의 기억에 심한 '왜곡'이 일어났음을 알아챘고, 그 왜곡을 일으킨 기이한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 때문이라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가르시아는 엄청 혼란스러워한다.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남성'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데 에이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자신이 겪고 있는 '기억의 왜곡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하지만 맞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사실'을 믿게 되고,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또 믿을 수 없는 '하이드라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자칭 헤라클레스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바로 그 '하이드라'를 없애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열두 가지의 과업'을 해내야만 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에이들은 이것을 곧바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그저 정신이상자의 궤변'이라고 단정 내리고 가까운 정신병원을 소개해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이들은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자칭 '헤라클레스'라고 주장하는 아리따운 여성을 노리는 범죄자 '뱀파이어'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는 여성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오직 여성의 피만 깔끔하게 빼내는 것으로 범죄를 종결 짓는 특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리고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아 '완전범죄'를 해왔던 것이다. 여성을 살해하면서, 고문을 한다거나, 강간을 한다거나, 변태적인 행위를 하는 등의 행위를 일체하지 않고, 그저 여성의 피만 빼내고 '다른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잡을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이들은 이렇게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연쇄살인범은 '경찰관계자'이거나 'FBI 내부소행자'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비밀리에 수사를 진척시켜 왔지만, 유력한 용의자로 확신한 사람을 최종적으로 확정지으려 '알리바이'를 증거로 삼으로 했으나, 유일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알리바이'마저 다른 사람의 증언으로 인해 번번이 깨어지고 마는 철두철미한 범죄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범죄자를 잡을 희망이 생겼다. 그 뱀파이어가 노리는 새 희생자가 바로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들은 망설였다. 헤라클레스를 뱀파이어를 잡는데 이용하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최면술은 아니었지만 단순한 말 한마디로 자신의 기억마저 '왜곡'시켜버리고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어 이용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엄청난 존재를 연쇄살인범을 잡는데 '미끼'로 던질 수 있을까? 감히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헤라클레스가 먼저 에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헤라클레스가 잡고 싶은 것은 '하이드라'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헤라클레스가 하이드라를 잡는데 '에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에이들이 뱀파이어를 잡는데 '헤라클레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이를 대놓고 '거래'로 삼지는 않았다. 아니 삼을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가 먼저 에이들과 가르시아의 감정 밑바닥에 있는 '심연의 악마'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쁜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이성의 끈'을 살짝 놔주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가르시아는 의외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단순범죄 가담자'를 죽을 때까지 때려서 죽여버리는 일을 자행하게 만든다. 형사라는 막중한 의무감에 절대로 한 적이 없는 '분노'를 그냥 아무런 필터도 없이 그냥 떠내서 폭발시킨 것이다. 에이들도 자신의 누이를 죽게 만든 범죄자를 끝내 찾아내서 복수를 자행한 사실을 여과없이 폭로하게 만들었다. 이게 헤라클레스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정신지배 능력'이라고나 할까? 헤라클레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게끔' 만드는 무서운 힘이었다.

그렇다면 이 세 사람의 운명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아직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셈이다. 언제나 서론이 장황한 이우혁 소설답다. 모든 범죄의 근원일지도 모를 '하이드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직까지 '형체'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하이드라는 어떤 모습으로 정체가 밝혀지게 되는 걸까? 과연 3권에서 속시원히 밝혀지긴 하는 것인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가 '완결되지 않은 소설'을 많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불신'이다. 일단 <바이퍼케이션>은 '완결'된다는 소식까지만 확인한 상태인데, 3권에서 완결되긴 하지만, 그 '뒷이야기'가 남아서 아주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진다. 왜냐면 <퇴마록 외전 3권>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다시 연재할 수도 있다는 짤막한 귀띔을 해놨기 때문이다. 그 귀띔이 그저 '뉴 퇴마록'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그칠지 모를 일이지만, 암튼 그 덕분에 나도 못다 읽은 이우혁의 소설을 뒤늦게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연말이다. 연말이 다 지나기 전에 서둘러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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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별똥별을 구하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14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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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별똥별을 구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3) [원제 : Isadora Moon and The Shooting Star(2021)]

[My Review MMCXXXIX / 을파소 15번째 리뷰] 어린이들이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뭘까? 내 경우에는 초등학생 때 동쪽 하늘에 떠있는 샛별(금성)을 육안으로 봤을 때였다. 겨울 방학으로 기억한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날마다 늦잠을 자면서 게으름을 피운다고 부모님께 혼이 나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라고 등 떠밀려 나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벽 5시쯤 연탄불을 갈고서 집 밖을 나서니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어스름이었다. 그렇게 입김을 호호 불면서 투덜투덜 터벅터벅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는데, 우연찮게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유난히 큰 별 하나가 '열십 자' 모양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과학시간에 배웠던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인 금성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침맞게 동쪽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하늘은 까만색에서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샛별의 밝기는 위축되지 않았고 더욱더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양이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30여 분간 우두커니 서서 샛별을 바라본 것이 처음으로 '우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였고, 나중에 '천문학과'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소년으로 자랐다. 비록 우수한 성적을 얻지 못해서 끝내 '하향지원'을 해야 했기에 '천문학과'를 들어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도 '천문/우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순전히 그런 우연 때문이다.

내 경우엔 그런 식으로 '우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넓혀가는 쪽으로 나아가면서, 동시에 '그리스로마신화'와 '점성술'에 대한 관심도 꽤나 깊게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엔 '어린이를 위한 과학책'이 흔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죄다 어른들이 이해할 법한 어려운 책들 뿐이었기 때문에 '지도학습'을 도와줄 선생님조차 없던 시절에 혼자서 독학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관심이 생겼으니 읽기는 읽어야 했는데, 그때 마침 눈에 띄었던 책이 바로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였다. 물론 어린이용으로 나온 5권짜리 책이었고, 그걸 시작으로 한동안 두꺼운 신화책까지 섭렵하며 주야장천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잡스러운 지식이 쌓이다가 '별자리'에 관한 과학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당시에 유명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소식을 접했으나 너무 비싼 책이라 살 엄두를 내지 못했고, 빌려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야 구입해서 읽었다. 만약 그 시절에 <코스모스>를 읽었더라면 정말이지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천문학과'에 진학했을 텐데 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 <이사도라 문, 별똥별을 구하다>는 다름 아닌 '별똥별'로 오해를 받은 '빛의 정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려운 과학지식을 이해하고 빠져들기에 '우주(천문)'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에 관한 관심을 높여서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재미난 이야기가 필요한 법이다. 내 경우엔 '그리스로마신화'속 '별자리 이야기'가 그랬지만,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좀 더 세련된 호기심을 선보여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더구나 이 책 <이사도라 문> 시리즈는 '뱀파이어 요정'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유령도 등장하고, 마녀도 등장하고, 인어도 등장하니, '정령'이 등장한다고 해서 억지스러울 일도 아닐 것이다. 더구나 밤하늘을 수놓는 '별똥별'이 사실은 '빛의 정령'이라는 설정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좋은 상상이야기가 될 것이다. '정령'을 우리 말로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대개는 '원소의 힘'을 나타내는데 쓰이곤 한다. 이를 테면, 불의 정령은 '살라맨더', 물의 정령은 '운디네', 바람의 정령은 '실프', 땅의 정령은 '노옴'이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빛의 정령은 '노바'라고 하는 설정도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이 말하는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근원 가운데 하나로 설명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도 아니고, 이런 호기심이 어른이 되어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훌륭한 과학자들 가운데 '상상력'이 뛰어나서 재미난 이야기꾼으로 활약한 분들도 많다. 앞서 언급한 칼 세이건도 '지적외계인탐사(SETI)'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삼아 <콘택트>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상대성이론으로도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어려운 과학이야기보다 농담을 즐겼다고 하고, 물리학계의 거장 리차드 파인만 교수도 어렵고 복잡한 이론을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서 강의를 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우주'라는 주제를 가르칠 때에는 '과학지식'을 주입하려 애쓰기보다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비단 '우주' 뿐만 아니라 어려운 학문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아주 유용한 학습법일 것이니,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들이 써먹어도 좋은 방법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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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 개정판 한빛비즈 교양툰 36
김도윤(갈로아)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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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개정판)  갈로아(김도윤) / 한빛비즈 (2025) [초판 (2018)]

[My Review MMCXXXVIII / 한빛비즈 175번째 리뷰] '갈로아'의 교양웹툰에 담긴 핵심 포인트는 바로 '진화'다. 그가 <만화로 배우는> 시리즈로 '곤충의 진화(2018)'와 '멸종과 진화(2024)', 그리고 이 책 '개정판'까지 총 3권의 책에 담긴 공통의 메시지도 다름 아닌 '진화'였다. 이토록 진화에 진심인 과학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화'를 잘 모르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엉뚱한 방식으로 진화를 마구 갖다 붙여서 찰스 다윈이 말한 '진화'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주장을 하면서 찰스 다윈을 폄훼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진화론'과 곤충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당연한 소리! 진화를 모르면 곤충의 생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인간 포함)의 기본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꺼내 읽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진화론에 관한 몇 가지 상식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니, 갈로아의 교양웹툰을 다시 한 번 정독..쿨럭쿨럭

암튼, 진화론의 상식 첫 번째는 바로 '진화에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진화'한다는 의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특히, '사회진화론자'들이 그따위 망발을 일삼았는데, 적어도 찰스 다윈은 그딴 소리 한 적도 없으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과학계에서 '진화'를 언급할 때에는 '나아가는 방향성'이 보일지언정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개체의 의지'따위는 전혀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 된다. 그렇기에 '좋은 방향'으로 진화를 하면 번성하고, '나쁜 방향'으로 진화를 하면 절멸하는 식으로 진화를 설명한다면 한마디로 엉터리라고 얘기해도 된다. 정리하면 '진화의 방향성'은 무작위다. 왜냐면 생물의 진화는 대개 '변이'로 이루어지는데, 그 변이가 대개는 '돌연'적으로 발현하기 때문에 '돌연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돌연변이'에 그 어떤 생물이 '의지'를 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난 종(種)이 주어진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고, 살아남은 종이 또 후손을 남기며 세대를 거듭하다 보면, 종마다 '특정한 형질'이 누적되는데, 이 형질은 주어진 환경이 다르면 '같은 종'일지라도 '다른 형질'을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파고스 군도 여기저기에 살던 '핀치 새'가 섬마다 '다른 모습의 부리'를 갖게 된 것에서 진화론의 증거를 찾아낸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어진 환경'이다. 각각의 종마다 천차만별의 진화를 거치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얄짤없이 죽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살아남은 종'만이 후손을 남길 수 있고, 살아남은 종의 '형질'만이 후손에게 물려지게 된다. 바로 이 형질이 '유전'이 되고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이것을 '자연선택'이라 말했다. 훗날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더 명확하게 '적자생존'이라는 명칭을 덧붙였고 말이다. 여기에 '생물의 의지' 따위는 없다. 따라서 곤충이 생존에 유리한 쪽을 '선택'하기 위해서 '날개'를 만들어 붙이거나, '집단사회'를 이루거나, '꿀' 같은 영양가 높은 먹이만을 독점하겠다는 의지가 발현하여 '그런 특정 방향'으로 진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저 '우연히' 날개가 있는 방향으로 진화를 한 생물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해서 더 많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을 뿐이고, 개별적으로 살기보다 '집단사회'를 이루며 군집생활을 한 종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해서 '유전자'를 남길 확률이 더 높았을 뿐이란 말이다.

따라서 진화를 '진보'로 잘못 이해를 하면 안 된다. 진화는 절대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진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를 잘못 이해하는 순간 '우월주의'에 빠져들어 잘못된 사고관을 가질 위험성을 낳게 된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이 딱 그랬다.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인식하면, 자칫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을 낮잡아 보게 되고, 고등동물과 하등동물로 생물을 구분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가 '곤충'을 하찮게 인식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을 '인간'으로 인식하지만,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해도 인간은 고작 80억인데 비해서 곤충은 100경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나마 우리가 눈여겨 보고 '이름'을 붙인 곤충은 고작해야 수천 종에 불과하며 여전히 '발견'조차 하지 못한 종이 수백 만 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심지어 곤충은 '전지구 곳곳'에 서식한다. 인간이 살기 힘든 '극지방'이나 '사막지대', '고산지대', 심지어 '바다속'에도 살고 있는 곤충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종의 70%가 곤충이다. 그러므로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왔을 때 '지구의 대표'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곤충은 그만큼 많다.

이런데도 '곤충'을 낮잡아 볼 것인가. 곤충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갖는 것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왜냐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핵심 기술' 가운데 곤충에게서 배운 것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만 이야기하더라도 깜짝 놀랄 것이다. 인간은 하늘을 나는 법을 바로 '곤충'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행기, 헬리콥터 등은 '곤충의 날개'에서 힌트를 얻어서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 날 수 있는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하늘을 지배한 생물이 바로 곤충이다. 그러니 곤충의 날개를 연구하는 것으로 인류는 하늘을 날고 싶은 염원을 이룰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리고 인류는 수많은 동식물을 먹거리로 삼고 있고, 가축을 기르고, 곡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먹거리를 원하는 만큼 생산해낼 수 없을 지도 모를 위기감이 급상승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미래식량'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곤충'이다. 지구에 다섯 번의 '대멸종'이 왔을 때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생물이 바로 '곤충'이며, 곤충은 그 자체로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이를 '안전하고 맛있는 식량'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중이며, 실제로 지금 현재로 많이 섭취하고 있다. 운동선수들의 '근육보충제'로 자주 먹는 '단백질 파우더'의 재료에 식용곤충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곤충'에 대한 비호감(주로 혐오감)이 많은 까닭에 주원료를 직접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먹거리 위기가 치솟게 된다면 각종 곤충으로 요리 경연을 여는 예능프로그램이 나와서 큰 인기를 끌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의 저자 갈로아도 다양한 곤충을 시식해보고 그 맛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기는..쿨럭쿨럭

끝으로 갈로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드립력'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진화를 '진보'로 오해하는 무리를 6500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에 빗대어 표현하고, 곤충의 성생활(?)을 이야기하면서도 여러 'CF광고'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개그적 요소로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백미는 절제된 미학으로 연출된 '19금 색드립'이다. 결코 야한 이미지를 연출하거나 노골적인 성묘사를 하지는 않는데, 그런 걸 연상하지 않고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연출하며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러스함이 갈로아만의 매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뭐, 가끔은 '관종이냣?' 싶을 정도로 선을 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 이 책은 갈로아가 쓴 책이야. 갈로아는 나쁜 X는 아니니까. 응, 오해는 하지 않을게"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갈로아는 그 정도로 실력 있고 잘난 곤충학자(?)니까 ㅋㅋ(에필로그 맨 마지막 문구(349쪽)를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릴 적에 곤충은 '친구'였다. 방과후에는 '채집'을 빙자하고 숲으로, 들로 뛰어놀기 바빴고, 심지어 개울가 돌멩이를 뒤집고, 운동장 모래밭을 파면서 수많은 곤충을 머리가슴배로 나눴다(!) 붙였다(?)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 중학생 때 '파브르' 책을 읽으며 곤충에 대한 상식을 넓혀 갔다. 그리고 으른이 된 지금은 갈로아의 교양웹툰을 읽으며 '곤충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곤충'은 인류에게 무한한 혜택을 줄 것이다. 단순히 '식량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곤충의 생태를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유익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례로 '건축설계 분야'에서 무리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벌과 개미(흰개미)의 서식지는 좋은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또한 곤충이 갖고 있는 '외골격'은 크기가 작은 분야에서만큼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밖에도 곤충의 행동패턴을 연구하고, 곤충이 뿜어내는 화학물질 따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금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곤충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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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 삼국지 박사 이은봉의 한중일 삼국지 문화사
이은봉 지음 / 천년의상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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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 삼국지 박사 이은봉의 한중일 삼국지 문화사>  이은봉 / 천년의상상 (2016)

[My Review MMCXXXVII / 천년의상상 12번째 리뷰]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어봤는가? 솔직히 21세기에 <삼국지>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책일뿐, 읽었다고 해서 그렇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라는게 요즘의 중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지>의 내용이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틈타서 수많은 군웅들이 전쟁을 벌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 '러우 전쟁'이 발발하고, '이팔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대환장의 시대를 연 덕분에 다시금 '혼돈, 그 자체'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 책이 출간된 2016년 때만 하더라도 '세계화'가 판을 치고 있던 평화로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삼국지> 같은 고리타분한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삼국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말한 어지러운 세상이 다시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고전읽기'는 시기적으로 아주 딱이다.

그런데 고민이 생긴다. 수많은 <삼국지> 가운데 뭘 읽으면 좋단 말인가? 우리 나라 책으로는 가장 유명한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가 있다. 또 <황석영의 '정역 삼국지'>도 있고, <김홍신의 '쉽게 풀어 쓴 삼국지'>도 읽을 만 하다. 그밖에도 <설민석의 삼국지>,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등등 수많은 <삼국지>가 있기 때문에 정말 고민이 될 만하다. 모처럼 큰 맘을 먹고 '전10권'을 사서 읽으려고 해도 뭘 사서 읽으면 좋을지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독성'과 '가성비'까지 좋은 <삼국지>가 바로 일본작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원전 삼국지>도 있다. 그럼 중국판도 있을까? 잘 찾아보면 '모종강 편역'이라고 적혀 있는 <삼국지>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뒤쳐져(번역되어) 있기에 읽는 대에는 문제가 없는 책들이다. 그럼 이 가운데 뭘 읽으면 좋을지 '삼국지 박사' 이은봉 저자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 책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에는 '촉한 정통론'에 대한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었다. 그리고 '촉한 정통론'에 입각해서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을 쓴 것이 어찌하여 '역사소설'로 읽히게 되었고, 이것이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해하면 <삼국지> 10번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생각 정리가 잘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서 요점만 딱 짚어 풀어내려 한다. 사실 이 책은 '대학논문'처럼 깊이 있게 파고 들어서 '초심자'가 읽기에는 불편한 책이기에 그렇다.

먼저, <삼국지연의>가 '역사소설'로 가치를 인정받게 된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사실 <삼국지연의>는 '역사서'가 아니라 허구적 사실이 가미된 '소설'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정사로 취급 받지 못하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읽어도' 안 되는 책이고, '인용해도' 안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재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역사책이 얼마나 따분한 책이냔 말이다. 읽다가 잠자기 좋은 책이라면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권하기로 유명한 책이지 않은가. 그런데 <삼국지연의>는 재미가 있다. 비록 '허구성'이 담겨 있긴 하지만, <삼국지연의>를 여러 번 독파한 이들이 '역사 지식'을 쌓고 아는 체하기에 너무 유용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식자층에서도 이를 널리 이용하려 한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에 '정치적 의도'를 심어두기도 했다. 그게 바로 '촉한 정통론의 탄생'이다.

그럼 '촉한 정통론'이란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에서는 위촉오 삼국통일의 위업은 '위'가 달성했다. 그 뒤를 이어 '진'으로 이어졌고,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남북조' 시대가 열렸기에, 이를 합쳐서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본다면 <삼국지>의 주인공은 당연히 '조조'가 되어야 한다. 비록 조조는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직전에 사망했고, 그의 아들인 조비가 '위 황제'에 등극했지만, 조조가 기틀을 다잡았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도 <삼국지연의>에서는 과감히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왜 그랬을까? 바로 여기에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셈이다.

나관중은 원말명초 시대를 살아간 '명나라 사람'이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의 폭정에 신음하다 다시 세운 '명나라'는 한족이 주축이 되어 되찾은 것이다. 그 한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던가? 바로 '한(漢) 고조' 유방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그 유방의 후손이 바로 '유비'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촉한 정통론'에서는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교묘하게 유비의 행적에서 '한 고조'를 떠올릴 수 있게 짜놓은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유비가 주인공이 되어 온갖 좋은 일은 유비의 몫이 되고 만다. 이렇게 유비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조조'는 온갖 악행의 주역을 도맡게 된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있는 것이라면 더욱더 신랄하게 비난조로 그렸고, 역사적 사실에 없는 내용이라도 '조조'가 하는 일이라면 나쁜 일이 되도록 써내려간 것이 바로 '촉한 정통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촉한 정통론'의 결정판이 바로 청나라 사람인 '모종강'이 저술한 <삼국지>(모종강편>가 되겠다. 오늘날 대부분의 <삼국지>는 이 '모종강편'을 기본으로 삼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모종강편'은 어려운 한자어휘가 많기 때문에 '직역'에 가깝게 뒤쳐낸 <삼국지>는 일반 독자가 읽기에 상당히 불편한 책이다. 물론 중국의 대중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풀어 쓴' <삼국지>도 많고, 한국과 일본의 독자들은 이미 '뒤쳐진(번역된)' <삼국지>를 읽기 때문에 이미 '읽기 쉽게 풀어 쓴' 경우가 많아서 큰 상관이 없지만, 간혹 <모종강 원본>이라고 적혀 있는 책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자, 그렇다면 '촉한 정통론'에 어떤 정치적 의도를 심어 두었는가? 중국에서는 '한족 중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친다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삼국지연의>를 널리 읽히려 했던 것일까? 두 나라에서 강조한 것은 바로 '충'이라는 유학적 이념을 널리 전파하려는 목적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삼국지>의 인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화염공격을 받고 궤멸되는 장면에서는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고,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게 만들 때에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밖에도 장비가 장판교에서 고함을 치자 조조의 군대를 비롯해서 산천초목이 부들부들 떨었다는 이야기에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고, 관우가 주군인 유비의 두 부인을 구하기 위해서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형님의 소식을 접하고 '오관육참'을 하는 장면에서는 충성과 의리를 다하는 관우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막부 정권'에서는 무사들의 '충' 의식을 저변에 깔기 위해서 <삼국지>를 널리 보급했고, 그로 인해 유학(주자학)이 뒤늦게 전래된 일본에서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무사를 양성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한국에서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달래줄 '영웅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유비를 적극 활용하였고, 일본에서는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삼국지>를 널리 읽혀서 전쟁참전을 유도했고, 실제로 중국 전역에서 전쟁을 벌이는 일본군은 <삼국지>에 나오는 '지명'의 익숨함을 활용해서 책속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가상현실(?)'을 느낄 정도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실감을 하는 착각을 이용할 의도였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저작물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요시카와 에이지의 <원전 삼국지>'다. 모종강 원본에 비해서 '없는 내용'을 새로 지어낼 정도로 거의 '창작의 수준'이었지만, 읽기 쉽게 서술된 이야기로 가독성을 높이고, 앞뒤 문맥을 매끄럽게 이어지게 만들 의도로 '없던 내용'도 새로 지어서 이어 붙였다고 한다. 거기에 '일본색(잔인하고 야함)'을 잔뜩 불어넣어서 일본독자들이 읽기에 너무 익숙하게 만들어서 가히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이후에도 요시카와 에지이의 <삼국지>가 한국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혔다고 한다. 1988년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가 나오기 전까지 그랬고, 실제로 박태원, 박종화, 김구용, 황석영으로 이어지는 <삼국지> 계보도 나름 유명하지만,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힌 <삼국지>는 요시카와 에이지와 이문열, 두 사람의 책이다.

그럼, '요시카와 에이지'와 '이문열'의 <삼국지>가 읽을 만한 책인가?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책이다. 애초에 <삼국지>가 갖고 있는 '촉한 정통론'에도 충실한 소설이고, 나름 '가독성'도 좋아서 술술 읽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요시카와의 <삼국지>는 '중일전쟁' 당시 신문에 연재되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참전시킬 목적으로 쓰여졌다. 이런 의도를 모르고 읽으면, 그저 재미난 소설에 불과할 텐데, 이왕지사 알고 나면 '일본인의 저열한 의도'가 엿보여서 살짝 거부감이 들 것이다. 한편, 이문열은 스스로 커밍아웃한 바대로 '보수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했다. 스스로도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했으니, 그가 평역한 <삼국지>에 어떤 의도를 담았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그의 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담겨진 '영웅의 그림자'가 독재정권을 그리워하고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기에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는 88년 당시의 보수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이문열이 그린 '영웅 유비'는 그쪽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반대하여 출간한 책이 바로 '황석영의 <삼국지>'다. 박태원, 박종화, 김구용, 황석영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고 밝혔는데, 그 가운데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도 꽤 주목 받았다. 물론 최근에는 '황석영의 <삼국지>'도 나름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의식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를 구분해서 읽기는 힘들 것이다. 뭐, <삼국지>의 내용이 다 거기서 거기이니 말이다. 그 차이를 구분하려면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영웅에 대한 묘사'에서 무엇이 연상되는지를 떠올려야 한다. 유심히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 그 묘사에서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점을 극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의 '무사도'를 일깨우기 위해서 저술한 일본판 <삼국지>를 읽다보면 확연히 티가 나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책에 이런 '무사도'를 아주 잘 나타냈는데, 일본에서 정말 유명한 '주신구라 이야기'에서 보여준 일본인들의 특색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신구라'의 주요 내용은 '49명의 로닌(방랑무사)이 주군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복수를 자행하고 재판정에 자수를 했는데, 자신들이 저지른 참혹한 살해에 대한 재판 결과가 '할복자살'을 하는 것이었단다. 일본 무사에게 '할복'은 명예로운 죽음이니, 이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판결에 만족하고 '전원 할복'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다면 이상하고 끔찍할 뿐이겠지만, 일본인들은 오늘날에도 '주신구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연극(가부키),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왜냐면 이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동에서 무사들이 꼭 지켜야 할 '충'과 '의'를 끝끝내 지켜냈고, 이 의무를 다 마친 무사들이 명예로운(?) 할복 자살을 하는 장면에서 참을 수 없는 감동이 터져나온다는 것이다. 이 '주신구라'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주제'라고 한다. 바로 이런 특색이 담긴 묘사가 <삼국지>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의 <삼국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판 <삼국지>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매력(?)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삼국지>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런 '욕망'이 담겨 있단다.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저마다의 욕망을 담아 '서사'로 표현해냈고, 구체적인 의도를 담아서 과감히 '변용'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삼국지> 좀 읽어봤다는 사람이라면 이런 욕망을 적절히 걸러내며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걸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중일전쟁' 당시에 전쟁터로 끌려가는 꼴을 면치 못한 수많은 젊은이처럼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촉한 정통론'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유비는 착한 놈, 조조는 나쁜 놈으로만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저열하고 옳지 못한 욕망덩어리를 잘 걸러내고 <삼국지>를 읽어야 제 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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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4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수 배워갑니다.

異之我_또다른나 2025-11-15 21:38   좋아요 0 | URL
책이 좋은 덕분이지, 제 실력은 그저 그렇습니다.
암튼 감사합니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 인간의 마지막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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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 인간의 마지막 질문>  김대식 / 동아시아 (2025)

[My Review MMCXXXVI / 동아시아 8번째 리뷰] 각설하고,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개발' 과정 전체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지능보다 떨어지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만족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지능을 훌쩍 뛰어넘는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강행할 것이냐? 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현재의 고민이다. 이를 더 간단히 이해하려면 인간의 통제가 가능한 '약 인공지능'과 인간의 통제가 불필요한 '강 인공지능'으로 구분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선택의 편리를 위해 간략하게 두 가지 인공지능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겠다.

인공지능 개발의 꿈은 우리의 상식보다 훨씬 옛날부터 존재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신들의 만찬에서 활약한 '스스로 움직이는 술쟁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들만이 마신다는 '넥타르'나 '암바사'를 무한정 운반하는 일종의 '인간 아닌 하인' 노릇을 한 것인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공지능 로봇'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오래된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노력은 1950년대 이후부터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바로 '컴퓨터의 등장' 덕분이었는데, '인간의 지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이 드디어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이 곧바로 '인공지능'을 실현시켜 주지는 못했다. 특별한 '계산 능력'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긴 했지만, 여전히 '한정된 재능'이었고, 더구나 '인간의 명령'이 없으면 스스로 복잡한 계산을 해서 결과를 내놓지도 못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더 '인간과 닮은 생각',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 더 나아가 '인간의 명령'이 따로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해내는'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 실현은 착착 진행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난관은 엄청났고 잘 되는 듯 싶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드디어 '인공지능'은 그 실현가능성이 매우 높은 방법을 마련하였다. 바로 '빅 데이터'를 활용한 '딥 러닝'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실, 컴퓨터가 인간과 비슷한 사고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용량'에 해당하는 방대한 저장매체와 '인간의 신경세포'를 닮은 '전산통합장치'만 있으면 가능했다. 문제는 그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고, 그것을 운용하기에 엄청난 성능의 GPU(Graphics Processing Unit)가 다량으로 필요했으며, 설령 이 두 가지를 갖췄다고 해도 이런 어마어마한 시스템을 잘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은 제대로 운용되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가까운 미래에는 이 모든 난관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AGI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춘 '강한 인공지능'이 탄생을 앞두고 있는 현재다.

그럼, AGI가 탄생하면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먼저 인간이 풀지 못한 숙제를 AGI가 대신 풀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난치/불치병 문제를 해결해서 인간의 생명연장도 더는 꿈이 아니게 된다. 또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서, 지금껏 인류가 누리던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서 지구의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게 만들어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더불어서 전세계적으로 만연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도 싹 해결할 방법을 마련해서 온 인류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하는데 톡톡한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완벽하게 대신할 수 있게 되어 인간은 더 이상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아도, AGI가 운용하는 시스템 속에서 풍요와 여유를 즐기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인간이 상상하는 '파라다이스(천국)'와 '유토피아(이상향)'가 실현되는 것이 연상되는 것과 동시에 불안감이 슬슬 들지 않는가? 그간 수없이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속에서 '천국'속에 도사리고 있는 '지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유토피아'라고 철떡같이 믿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디스토피아'였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래서 AGI가 만들어낼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실제로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 대목을 더 자세하고,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섬뜩할 정도였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을 막연한 두려움으로 떡칠을 한 것이 아닌 '과학적 증명'을 통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더욱 섬뜩했다. 우리가 과학만능주의를 맹신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맞을 것인지, 속된 말로 뒤통수 조심하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정신이 번쩍 드는 소감이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동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지구의 모든 것은 '인간의 몫'인냥 인간 마음대로 처리하며 살았다. 그런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등장하게 된다면, 더구나 그것이 너무나도 '인간과 똑같은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자신보다 떨어진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가 말이다. 물론 겉으로는 '인간과 친구로' 지내는 척 할 것이고, '인간을 돕는 일'만 하겠지만, 그간 인간이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진 동물'을 어떤 취급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본다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더구나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존재'가 언제까지나 '인간의 도구'이자 '인간의 노예'로 만족할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한낱 기계에 불과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전원버튼'을 눌러서 간단히 꺼버리거나, 인공지능을 탑재한 '몸체(로봇)'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통제가능'하지 않겠냐는 낙관론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AGI가 가동하는 시점에서는 '전원차단'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개인용 컴퓨터(pc)' 한 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서버(전산망)'속을 누비고 다닐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 서버만 차단한다고 해서 완전하게 소멸시킬 수는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원차단'을 강행한다면 인류는 모든 전기장치를 다 꺼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기장치를 다시는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인류는 디지털적인 삶을 포기하고 아날로그적인 삶으로 되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다시, 돌과 나무, 흙을 이용하는 '석기시대'로, 간단한 금속을 이용하는 '철기시대'의 연장인 조선시대쯤으로 문명을 되돌려야 할 것이다. 과연 현재의 인류가 그 옛날로 되돌아가서 살 수 있을까? 그나마 전쟁이 아닌 평화가 이어질 거란 상상에서나 '조선시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자.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권'을 인간이 소유하는 '약 인공지능'으로 만족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을 더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 개발을 마치고 '강 인공지능'을 활성화시키는 버튼을 누르고 결과를 기다릴 것인가? 지금 당장으로썬 어떤 미래가 더 나은 미래인지 장담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생긴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인간을 돕고, 인간을 위해서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반반'은 아닌 것 같다.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무(無)'에서 탄생해서 스스로 학습한 결과에 따라 엄청난 지식을 쌓은 것이라면, 선함과 악함의 기대치를 반반으로 놓을 수 있겠지만, 그동안 쌓은 '인류의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정말이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쯤 되면, AGI가 천사일지, 악마일지, 어렵지 않게 가늠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약 인공지능에서 멈출지, 강 인공지능 개발을 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 선택권이 현재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강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으며, 만약 우리가 만들기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적국'이 먼저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의 AGI(강 인공지능)를 만들 나라는 '미국'이어야 하고, 절대로 '중국'이 먼저 만드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제3위권 그룹'에 대한민국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윤석열과 그 일당이 저지른 헛발질 때문에 한참 뒤쳐지고 말았고, 다행스럽게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 큰 헛발질을 하면서 '미국'이 크게 휘청거리는 상황이라 추격할 여지를 남겨두었지만, 그 사이에 '중국'이 먼저 만들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먼저 만들면 '천사 AGI'이고, 중국이 먼저 만들면 '악마 AGI'일거란 장담도 할 수 없다. 그보다는 '내겐 천사'일테지만, '남에겐 악마'처럼 보일 거라는 쪽이 더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그래서 AGI가 만들어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런 구도 속에서 다른 결론이 내려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강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은 곧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뭘 준비할 것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현재의 인간은 '개미'에 빗대고, 앞으로 탄생할 인공지능을 '인간'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개미 가운데 아인슈타인처럼 뛰어난 지능을 가진 개미가 있다고 판명이 난다고 하더라도 '인간(미래의 인공지능)'이 그 '개미(훗날의 인간)'를 어떻게 처분(!)할 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격차'가 존재하는데 뭘 대비할 수 있을까? 어떤 대비가 소용 있을까?

정말 십분 양보해서 '램프의 지니'와 같은 전지전능한 노예를 갖게 되는 상상을 해보자. 인간은 그 전지전능한 노예에게 무슨 소원이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지도 모른다. 허나 이야기속 '램프의 지니'는 주인을 해칠 수도 없고, 인간을 살해하는 일도 할 수 없는 따위의 '마법(족쇄)'가 채워져 있다. 그래서 램프의 주인은 안심하고 지니를 노예로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 인공지능'에게 누가 '마법 족쇄'를 씌울 수 있을까?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하고, 인간을 해치면 안 된다는 '명령'에 순순히 따를까? 그걸 장담할 수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맘처럼 안 된다면? 오히려 인간이 노예처럼 전락하고 말지 않을까? 문득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라는 문장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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