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이 열린다 - 당신이 선점할 수 있는 마지막 시장, 인도 투자 전략
김민수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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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엔 주식도 시들, 부동산도 시들해 보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식도 사고, 아파트도 사고, 심지어 코인까지 사면서 '투자의 광풍'이 불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 성과가 오르지 않고 침체기를 겪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실망을 넘어 절망에 빠진 듯 고요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태풍의 눈'과 같기만 하고, 우리를 둘러싼 주위는 광풍이 불어재끼며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날려버리고 있는 것 같다. 투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전문가들의 눈에는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상황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일까?

 

  이 책은 인도라는 새로운 주식 투자처를 소개하고 있다. 인도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는 사연은 '인도가 중국과 맞먹는 인구 대국'이라는 사실이고, 인도가 후진국의 이미지를 떨치고 '신흥 제조국'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디지털화'로 인해 인도의 소비심리는 다른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훌쩍 성장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인도시장'을 지금 투자하지 않고 놓친다면 비트코인을 초기에 사지 않아 후회하는 것과 맞먹을 거라는 조언도 살짝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인도시장에 주목해야 하는가?

 

  먼저. 인도의 인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는 '브릭스'의 회원국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은 영토가 거대해서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인구도 엄청나게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대국끼리 뭉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인도는 비교적 후진국에 머물러 있었다. 왜냐면 10억 인구의 90%가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내수가 급성장하기 힘들다. 그래서 마땅한 투자처가 되지 못해 강대국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인도가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중국에서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14억의 중국이지만, 오랜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요즘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인도는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수가 14억으로 중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인구수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인도는 큰 변수가 없다면 조만간 '인구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한끼 식사로 라면 하나씩만 팔아도 14억 개 팔리는 참으로 매력적인 시장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동안엔 중국이 갖고 있던 매력이 인도로 넘어가게 되었단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인도의 인구 90%가 빈곤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소비심리'는 물론 '소비할 능력'도 없는 저소득층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2014년 모디 총리가 취임하면서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이 정책을 통해 인도는 '아시아 제조 허브'로 우뚝 설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이 또한 그간 중국이 차지하고 있던 타이틀이었는데, 중국의 공산당이 깽판을 치는 통에 중국내에 진출해 있던 전세계의 제조공장들이 발빠르게 발을 빼고 있는 현실이라 인도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란다. 그렇게 '신흥 제조국'으로 발빠르게 급성장하면서 인도의 빈민층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투자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인도가 '디지털 인디아'로 쐐기를 박고 있단다. 그동안에는 '현금거래'가 전부였는데, 인도 국민들에게 빠르게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현급거래를 대신할 '신용거래'가 부쩍 성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국민에게 '1인 1통장'을 만들게 하고 자동차 같은 '할부 매매'가 필요한 고액 상품의 판매가 촉진되어 인도의 내수 소비심리가 들썩들썩 거리고 있기에 인도는 투자자들에게 신대륙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자상거래시장'도 단단히 한 몫하고 있고 말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시장을 강 건너 불구경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를 비롯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마존', '애플', '테슬라' 등등 금융시장과 제조사에 대한 직접투자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주식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내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식 유경험자들에겐 고마운 정보가 될 것이다.

 

  이 책 <10억이 열린다>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인도의 10억 인구가 신흥 소비국의 대열로 진입한다는 뜻도 있지만, 이렇게 발빠르게 성장하는 인도에 투자를 잘 하면 '10억, 그 이상의 수익'이 열릴 수도 있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속담도 있다. 때를 잘 맞추면 '똑같은 힘'을 들이고도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다. 그런 단순한 진리가 바로 '인도'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제 미국과 중국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저물어가고 있는 중이다. 더는 발전가능성이 없는 나라에 투자성공을 해봐야 그 이득이 예상치를 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도는 다르다. '메이크 인 인디아'를 넘어 '디지털 인디아'까지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중국'처럼 공산당 리스크도 없다. 인도는 '자유시장'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한 마디'로 경제정책 방향이 휘청거릴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 인도의 국민들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 대체로 '급성장'에는 위험요소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10억이 넘는 인구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든든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인도'에 주목하지 않는 투자자는 없으리라고 본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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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인간 - 인공지능이 인간을 낳는 시대, '인간다움'에 대한 19가지 질문
이미솔.신현주 지음, 이성환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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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이다. 알파고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인공지능'은 단박에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것으로 보여질 정도였고,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당장 시작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보면, '인공지능'은 3~4세 정도의 어린이 수준의 뇌와 같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의 현주소'는 걸음마 단계라는 말이다. 그러나 2045년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는 '특이점'으로 꼽고 있는 과학자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의 대응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아이가 눈 깜짝할 새에 훌쩍 자라는 것처럼 '인공지능'에 관한 기술도 그렇게 껑충 성장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무엇이고,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를 대비해 그에 걸맞는 질문을 던져봄직 하다. 이 책 <4차 인간>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첫 번째는 '우리는 영원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인간은 기계인가?', 마지막으로는 '어떻게 기계와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질문을 통해서 뭔가 감이 잡히시는가? 맞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간과의 교류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기술'이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을 개발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늦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탄생하였고, 인공지능은 그동안 우리가 '노예'처럼 부리던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어쩌면 '주인'으로 섬겨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무척 혼란스러울테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다.

 

  먼저,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이미 개발되었다. 엘런 튜링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만든 '보편기계'가 컴퓨터의 전신이었고, 그렇게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인공지능'에 대한 구상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인공지능'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럽게 개발되었단 말이다. 하지만 잘 되어가던 '인공지능 기술'은 난관에 봉착했다. 인간은 쉽게 배우는 것을 인공지능은 대단히 어렵게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수천 배나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컴퓨터가 막상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아니 '개와 초코칩 쿠키'를 구분하기 위해 수천만 장의 사진을 서로 비교대조해야 겨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 어렵게 판단을 내리고도 '오류투성이'였고 말이다.

 

  그렇게 '인공지능 기술'은 답보상태에 머물다가, 구글의 '알파고'가 탄생하면서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라질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딥 러닝'이었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니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언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수 있는지로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지게 되었다.

 

  한편, 인간은 불멸을 꿈꾸게 되었다. 진시황이 꿈꿨던 불로장생의 실현과는 사뭇 다른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으로 옮겨 인간의 몸을 버리고 기계의 몸을 얻어 '기억'만을 온전히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생전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목록'으로 만들고, 이를 '저장'한 뒤에, 인공지능 시스템에 탑재하고서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를 때마다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였다. 인공지능은 아들의 질문과 대화에 걸맞는 '아버지의 말씀'을 적절히 골라서 응답해주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수준의 대화만으로도 아들은 만족할 수 있었단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인공지능에 완벽하게 담을 수도 있을까? 과학자들은 가능하다고 본다. 미래에는 인간의 뇌를 대신해서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신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에는 '냉동인간 기술'로 부활과 영생을 꿈꿨다면, 이제는 '인공지능 기술'로 영생..아니 불멸에 도전하는 셈이다. 아직은 '기계의 몸'으로 대체하겠지만, 생체공학, 유전공학이 발달한 어느 시점에서는 '인간의 몸'까지 완벽히 재생가능해져서 완벽한 불멸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신의 섭리'에 어긋나게 된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죽지 않는 인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둘 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자나, 권력가 등 '선택받은 인간'만이 불멸하게 될 세상이 도래하게 되면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몸'이 아닌 '기계의 몸'으로 불멸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한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남겨지는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기계의 몸'을 빌린 것이라면 '인간답지' 않은 것일까? 아니, 심지어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인공지능'으로 복제가 가능해진다면, 복제된 인공지능은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실제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왜냐면 '인간의 판단능력', 다시 말해, '자유의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저 '뇌의 신호'에 의해 작동하는 생체기계에 불과했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실험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의 머리에 '전기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고서 '사물을 인지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과학자들이 예상하기로는 '선택(자유의지)-뇌세포신호-행동' 순서였으나, 실험결과는 '뇌세포신호-선택(자유의지)-행동' 순서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세포신호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뇌세포신호'에 따라 조작되는 생체기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뇌가 보낸 전기자극'에 따르는 행동체계였던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생각을 '인공지능'에 대입해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공지능은 애초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이 '신호자극'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곧, 기계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이런 실험결과에 의문을 갖는다. 과연 인간이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느냔 것이다. 우리는 '기계'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인간'에게 인간다움이 없기 때문이냐는 되물음이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은 '기계'와 다름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실험과정에 오류나 모순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인간을 '뇌'로 한정한 것에 맹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실험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상당하다고 전한다.

 

  마지막 질문은 '공존'이었다. 이제와서 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다. 이미 구현된 기술은 정체될지언정 퇴보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공존'일 것이다. 기술을 배제하고 살 수 없는 현대인은 기술을 발전시켜 더욱 유용하고 편리하게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순수한 인간만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두렵기 그지없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공존'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데 어울려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꿔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계를 '노예'처럼 부려먹기 일쑤였지만, 미래에는 인간이 인공지능과 평등한 '친구'로 지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인간이 가진 '사물의 의인화' 능력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형 로봇과 동물형 로봇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인간형 로봇을 발로 차 넘어뜨리거나 동물형 로봇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뇌엔 '거울 신경세포'가 있어서, '움직이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곰모양의 젤리를 머리부터 뜯어먹거나 손발부터 물어뜯어 씹어먹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형, 동물형 로봇처럼 움직이는 대상은 살아있는 생물로 감정을 이입해서 불쌍하다고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이런 '인공지능 로봇'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 인간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인공지능 로봇'에게 노예가 전락한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로 '인공지능'을 친구이자 동료로 여기며 서로 보살펴주는 공존을 꾀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갈림길에 섰다. 새롭게 등장한 '인공지능 로봇'과 더불어 살아가는 '4차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비관적인 상상의 결과처럼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양상(전쟁도 있겠지만, 일자리 쟁탈전 따위도 포함)으로 펼쳐지는 비극을 연출할 것인지 말이다. 더 끔찍한 상상은 '인공지능이 된 인간'이 인간을 절멸하고, 나머지 인간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당신이 상상한 미래에는 어떤 인간이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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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 잘하고 싶어 시작을 망설이는 세상의 모든 완벽주의자들을 위한 진짜 완벽주의 활용법
윤닥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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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 '완벽주의'를 강요받고 있다. 완벽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성장하게 된 '원동력'이기도 했고, 선진국들 가운데서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민주주의'를 확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우리 사회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정에 대한 완벽주의, 정의에 대한 완벽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들은 제외다. 정말이지, 후진적이고 구태스러운 낡은 정치인들만 싹 갈아치우고 나면 대한민국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1등 국가이자, 모범국가가 되어 전세계인을 선도하는 멋진 나라가 될 것이다. 암튼,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완벽주의는 심리학용어는 아니란다. 완벽주의가 병적인 증세는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주의'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다치는 일을 종종 당하고 있기에 '심리학자'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한다. 흔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결벽증'과 '강박증' 등과 같은 질병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완벽주의'는 개인적인 원인에서든, 사회적인 문제에서든 '이상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단다.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발전상을 가져온 원동력이 어쩌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된 것일까.

 

  남들 앞에만 서면 심장이 요동을 치고 손발이 벌벌 떨리며 땀을 비에 흠뻑 맞은 듯 흘리는 경험을 하면 '무대 공포증'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그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은 연습과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이겨보려고 하지만, 더 많은 연습, 더 많은 경험이 더 큰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단다. 왜 그럴까? 이들을 지켜보고 분석한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완벽해지려는 마음가짐'이 더 많은 떨림과 불안, 긴장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었단다.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공황장애, 강박장애, 식이장애, 번아웃 등을 의심하며 병원을 찾아오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완벽주의'에서 찾을 수 있더란 말이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주위에서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들이 더욱더 완벽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이나 완벽하지 못한 '현재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 '완벽한 계획'을 세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모습 따위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치며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강요하듯 권장하기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병적인 증세로 보일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며 더욱더 정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만다. 물론, 정반대의 양상도 있다. 정말 내노라할 정도로 대성공을 한 인물이 자신의 성공비결은 '완벽주의'에 있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인터뷰하는 모습을 정말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는 이런 '완벽주의'를 권장하며, 너희가 아직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체크리스트와 계획서를 들이밀면서 '완벽한 성공비법'에 어서 승차하라고 손짓한다.

 

  이렇듯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두 얼굴의 모습으로 늘상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도 '완벽주의'를 마음의 병으로 단정짓지 못하고, '관찰'만 하고 있는 셈이란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완벽한 사람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뭐든 완벽하려고 들기보다 '즐기는 사람'이 가장 성공하는 법이라고 말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성공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고, 성공에 이르는 길도 달라야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성공을 향해 성장하는 이들에게 '완벽'을 강요하고,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완벽주의를 강요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완벽'이 필요한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테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험천만한 공사현장이나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한순간의 방심이 대형재해를 일으키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늘 '완벽'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긴장된 채 8시간을 근무를 하면 '5일 근무'가 아니라 하루만 지나도 녹초가 되어 다음날 근무를 정상적으로 해낼 수 있는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충분한 휴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완벽한(?) '교대 근무'도 하나의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강행군' 뒤에 꿀맛 같은 '휴식'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리 언성을 높이냐고? 바로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루 9시간 근무에 1시간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오후에 한 번씩 20분 몰아서 휴식을 하는 방식으론 정상적으로 근무를 이어가기 힘들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법정근로시간'에 저촉되지 않기에 합법이라는 것이 문제다. 하긴, 대통령이 주당 120시간 근무(주5일근무 기준, 24시간 노동)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마당에 뭔들...쿨럭쿨럭

 

  암튼,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완벽주의'를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인생은 즐겁다는 본을 보여줄 때란 말이다. 더는 '네가 가난한 이유가 게을러서야'라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적당히 게을러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들조차 '여유'를 부릴 때 더 멋져 보인다. 그게 황새여서 그럴까? 뱁새 주제에 감히 황새처럼 여유를 부릴 생각을 하는 것이 가당찮아 보이는가? 황새가 유유자적하며 시냇가를 휘적휘적 걸어갈 때, 뱁새는 조막만한 날개를 부지런히 퍼덕여서 하늘을 날며 쫑알거리면 된다. 그게 더 뱁새다운 '라이프 스타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왜 뱁새에게 짧은 다리를 원망(?)하게 만들며 가랑이 찢어지도록 다리를 놀리라고만 강요하는가 말이다.

 

  또한,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성공만 하며 빠르게 출세를 한 이들이 '단 한 번의 실패'로 심한 좌절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보다는 '칠전팔기'를 외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깨달은 이들이 성공가도를 탄탄하게 다지며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기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나온 것일테다. 마찬가지로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거나 너그럽게 대하는 환경속에서 자란 아이가 큰 실패에도 주눅들지 않고 재기에 성공하며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는 인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그렇다. 과학실험은 수많은 실패 위에 '단 한 번의 성공'을 쌓아올려 '과학혁명'을 이루는 법이다. 이처럼 실패와 실수의 저변을 깔아두어야 빛나는 성공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비단, 과학에서만 통용되는 성공비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심리학> 책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 '어떤 유형의 완벽주의자'인지 체크하고, 유형별로 자신의 완벽을 다스리고, 완벽을 내려놓는 방법을 제시하며 '심리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허나 진짜 '완벽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스스로 체크하는 것이 적절치 않는 분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체크'하기에 앞서, 완벽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먼저 인지하고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헤집듯이 분석하는 내용을 읽다보면 막상 '완벽주의자'들은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 역시 꽤나 '완벽주의', 아니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관리에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뭘 할 때마다 '강박증세'에 시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려놓기'를 실천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늘 부족한 '무엇'을 찾으며, 그것을 채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면서 고쳐지지 않는 단 하나가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완벽한 모습도 '나'이고, 쫌 부족한 모습도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만 잊지 말자. 그리고 늘 완벽할 수도 없다. 긴장의 끈을 조금쯤 느슨하게 잡고 있어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여유'를 부리면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쌓이면 문제가 발생해도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고, 문제가 생긴 다음에 해결해도 전혀 늦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완벽한 사람'이란 문제를 하나도 발생시키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생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잘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슨한 완벽주의' 또는 '여유만만 완벽주의자'가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가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완벽주의는 모두 나쁜 것이 아니란다. 완벽해지려 할수록 한 텐포 '쉼'을 가질 여유를 가지려 노력하고, '긍정적인 완벽주의'도 얼마든지 있음을 잊지 말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 다가올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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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한빛비즈 문학툰
SunNeKo Lee 그림, 김성은 옮김, 샬럿 브론테 원작, Crystal S. Chan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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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툰'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교양툰'으로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올렸다면, '문학툰'으로 우리의 감성과 인성을 충만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문학툰'은 모두 4권으로, <제인 에어>, <레 미제라블>, <빨강머리 앤>, 그리고 <주홍글자>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제인 에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만화형식'의 책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훌륭한 '각색'인 덕분에, '원작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만화의 재미'까지 담아놓은 수작이다. 만약, 원작에 담긴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있었다면 '문학툰'을 적극 권한다. 주제를 알고 읽으면 더욱 감동적인 '문학툰의 세계'로 기꺼이 인도할 것이고, 기존의 해석과는 살짝 다른 '나만의 리뷰'를 읽어주신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이다. 자, 그럼 시작이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에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자, 세계를 압도하는 선진국이었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활동조차 '남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서, '그들만의 천국'을 위해 '그녀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여성 인권'의 암울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깜깜한 세상에 등불이 되어주는 인물이 꼭 있기 마련이고,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작가, 샬럿 브론테'였다. 그가 쓴 <제인 에어>에서는 '당당한 여성'을 등장시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여성도 자신의 꿈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해 주위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부각시킨 소설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 책이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목받아 마땅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열 살 소녀, 제인 에어는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지만, 자기 자식보다 더 애정을 쏟아준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나니 제인 에어를 곱게 보지 않던 외숙모와 외사촌들은 틈만 나면 제인 에어를 괴롭히며 못살게 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외치며 자신을 향한 부당함에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어 '하인'보다 못한 처우를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제인 에어에게 한줄기 희망이 찾아오니, '로우드'라는 자선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그닥 나은 상황은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해 병들어 죽어가는 학우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인은 열심히 학업을 이어나갔고 뜻밖에 '남을 가르치는 재능'을 발견해서, 8년 동안의 로우드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가정교사'라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에게 청탁하지 않고 스스로 광고를 낸 다음에 손필드로 교사일을 하기 위해 로우드를 떠난다.

 

  그곳에서 제인은 '로체스터'라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간 제인은 로체스터의 진실어린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승낙했지만, 결혼식장에서 벌어진 헤프닝으로 결혼은 무산이 되고 만다. 로체스터에게 '진짜 부인'이 있었던 것이다. 로체스터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사랑의 결실로 맺어진 결혼이 아니라 단지 '재산 증식'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으며, 그것도 로체스터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수많은 재산을 탐낸 아버지 계략에 빠져 원치 않은 결혼을 강요 당했으며, 심지어 결혼한 신부는 '정신병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일순간에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된 로체스터는 자신의 인생이 파멸되는 것을 알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다. 원치 않던 결혼과 생각지도 않았던 부를 한꺼번에 받게 된 로체스터는 큰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를 만나고 난 뒤에 로체스터는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삶'에 언제나 당당한 제인 에어를 보며 지난날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제인 에어에게 청혼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의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난 뒤에도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지만 로체스터의 '정식 부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자신은 로체스터의 정부(첩)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의 사랑이 아무리 진실하고 순결하다 해도 세간에서는 '가난한 18살 어린 신부'가 '늙고 돈 많은 40살 귀족'을 꼬드겨 결혼을 한 그렇고 그런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수근거림을 받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사랑'에 흠결이 없다는 자신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의 진심이라는 것도 고작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에 안주하며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앞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양심적 고백'이었을 것이다.

 

  제인은 그렇게 손필드의 저택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무작정 떠나고 말았다. 수중에 있는 돈만큼 마차를 타고 로체스터에게서 멀어졌는데, 그와중에 마차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마저 놓고 내렸기에 돈 한 푼 없이 굶게 되었고 머물 장소를 찾는 것도 마뜩찮게 되었다. 그렇게 죽기 일보직전에 용기를 내어 화목해보이는 집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집의 하녀가 거렁뱅이와 다를 바 없는 제인을 문전박대하니, 제인은 그대로 쓰러져 죽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세인트 존 리버스라는 젊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리버스댁에서 머물며 기력을 회복한 제인은 우연한 계기로 리버스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인이 막대한 유산의 상속녀라는 소식도 알게 되어, 한 순간에 가족이 생기고,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제인에게 다가온 행운 앞에서도 제인은 행복할 수 없었다. 제인의 마음속에 아직 '로체스터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리버스가 인도로 선교활동을 떠나는데, 제인에게 함께 떠나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제인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소중한 오빠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며 흔쾌히 허락하지만, 리버스는 동생이 아닌 아내로서 부탁하는 거라면서 갑작스런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둘의 결혼은 '신이 부여한 소명'이며, 그런 소명을 받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신부는 너밖에 없다며 막무가내로 결혼 승락을 요구한다. 제인은 친절한 리버스가 이토록 모질게 몰아부치고 조금의 배려도 없이 자신의 고집대로만 밀어부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며 결혼을 정중히 거절하게 된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구와 '신의 섭리'라면서 물고 늘어지는 청혼에 제인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물론,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지만 말이다.

 

  그때, 그 순간, 제인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제인의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었을테지만, 그 길로 제인은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아직도 로체스터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손필드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불에 타다만 흉물스런 저택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로체스터는 모든 것을 잃고, 장님에 한쪽 손까지 잃어버리는 불구자가 되어 의미없는 연명만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그런 로체스터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로체스터에게 제인이 돌아왔노라고 말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결혼을 하겠다는 맹세인 것이다.

 

  <제인 에어>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여성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선언이란 말이다. 남자의 도움으로 '아름답게 가꿔진 꽃'에 불과하니 '남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남자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쯤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통쾌한 메시지였다. 더구나 남자라는 족속이 얼마나 뻔뻔하고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짓만 골라 하는지 똑똑히 보라면서 '로체스터'와 '리버스'를 전면에 등장해보였다. 로체스터는 제인을 돈으로 꼬시려 했고, 리버스는 '신의 섭리'라면서 가스라이팅을 가했다. 물론, 제인이 로체스터를 선택하든, 리버스를 선택하든 어느 정도는 행복한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 틀림없다. 제인 에어만큼 당차고 멋진 여성이 살림살이를 맡았으니 오히려 로체스터와 리버스가 '행운아'가 되어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삶에는 '제인 에어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동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남편의 삶'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일방적이고 보편적인 강요로써 말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여성에게 굴레를 뒤집어 씌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성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의견을 밝히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말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권리이고, 당연히 해내야 하는 책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당연함'이 여성에게만은 전혀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매달리고 의존해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세뇌'를 하느냔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서는 더욱 안 되는 일이고 말이다.

 

  여성, 스스로도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다. 요즘에도 '백의의 천사'니, '사무실의 꽃'이니 하면서 여성의 '사회생활'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몰상식이 벌어지곤 한다. 그럼, 여성에게 '본질적인 직업'은 무엇이냔 말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로서만 '여성의 본질'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젠 여성들도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자녀육아와 교육'도 엄마만의 몫이 아니라 아빠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다. 바야흐로 '양성평등시대'이며, '인권존중의 시대'인 것이다.

 

  심지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도 보장하는 마당에 여성인권이 바닥을 치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없다. 어째서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남성을 향한 역차별'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실력순으로 뽑는다는 대원칙이 통용되기 위해서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한 '불평등과 불공정'이 개선되지도 않았는데, '실력순'이라는 대원칙을 앞세워 사회적 갈등만 조장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무지 서로를 위한 '배려심'을 찾아볼 수 없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또한, 여성이 남성을 배려하는 훈훈함은 찾아볼 수 없단 말인가?

 

  제인 에어가 '여성의 목소리'를 낸 지 200여 년이 지나도록 '양성평등'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요원한 모양이다. 아직도 '그들만의 천국'이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모양이다. 모든 면에서 멋있고 우월한 '그들'이 천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볼썽사나울 마당에 '찌질한 놈들'이 천국을 운운하는 것은 같은 남성이 봐도 못봐주겠다. 제발 좀 사람답게 살면 안 되겠는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소중한 시기'이자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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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코노미 - 돈도 벌고 세상도 바꾸는 밀레니얼 경제 공식
크레이그 킬버거.홀리 브랜슨.마크 킬버거 지음, 이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착한 일을 했는데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자선사업'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선사업의 두 얼굴'을 종종 맞대곤 하기 때문에 덜컥 의심부터 들기도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선한 일을 하면서 유명세와 돈방석에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착한 기업의 대명사인 '위코노미'가 되겠다.

 

  위코노미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의'를 도모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경제, 환경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으며 지독한 가난과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위해 사회복지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도 그런 사명감을 느끼면서도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어쩔 줄을 모르기 일쑤다. 심지어 '가난은 나랏님도 못 고친다'라는 부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휘둘려서 가난을 '게으름병'으로 치부하며 나몰라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가난을 스스로 물리치고 일어나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 얼마든지 복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 문제는 도와주고 싶어도 적절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되고자 '금전적인 기부'를 가장 손쉽게 접하기 일쑤지만, 이 방법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못한 방법이다. 또한 대부분의 자선단체들도 적극적 활동을 하기보다 소극적으로 '기부'만 받아 '물품'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어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서 말이다. 이를 테면, 연말이면 '연탄'을 배달하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허나 방바닥만 따뜻하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추운 날씨에 오그라든 손발은 녹일 수 있을지언정 매서운 칼바람에 꼭 닫아버린 마음의 문은 열지 못하고 '사회일원'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소일거리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에 그치고 말 뿐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자선사업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가난으로 내몰린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사람 사는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목골목에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하고, 하루 일과에 지친 아빠엄마들이 아늑한 집에 돌아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마을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찐도움이 되는 사업을 벌여야 진짜 자선사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달동네로 방치하면서 연탄 몇백 장 쟁여 놓는다고 해결될 사업이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유명한 자선사업가와 자선기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그들이 하는 '적극적인 자선활동'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공통적인 활동은 바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학교 짓기'와 '수도관 사업' 등과 같은 일을 벌이는 것이다. 학교를 짓는 것은 개발도상국 이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아동 노동착취'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가난'이라는 굴레에 갇혀 미래를 빼앗긴 채,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전선'으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10대 이전에 '밥벌이'라는 명목으로 구걸을 하거나 저임금 노동현장에 강제로 들어가거나 힘든 농사를 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배우지 못하고, 배움이 없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가 되어 가난을 되물림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무료교육'이 절실하다. 그리고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면 온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다름 아닌 자기 나라와 자기 사회가 말이다. 그래야 온나라가 빈곤을 떨치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먹고 살만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 '인재'가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또한, 식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도 저소득국가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지곤 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돈벌이를 하러 나가면 아이들은 '마실 물'을 길러오기 위해 하루에 수십 킬로를 물통을 이고지고 밀고끌고가며 몇 번이고 왕복해야 한다. 그러니 '학교'는 고사하고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건강'을 위해서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부족국가에서는 우물을 파기 위해서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까지 '수도관'을 뚫는 기계가 절실한데, 그 기계를 마련하지 못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곤 한다. 그래서 자선사업 가운데 '수도관 사업'이 많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자선사업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여성인권'이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더욱더 열악한 환경에 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비롯해서 농사일, 심지어 공장노동자가 되어 '노동착취'를 쉽게 당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성착취'도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10살도 안 된 '어린 신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늙은이들의 첩 가운데 한 명으로 팔려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또, 그렇게 길들여진(?) 여자아이들이 엄마가 되어서 자신의 딸이 헐값에 노동을 착취 당하고, 성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지옥 같은 현실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여성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여자아이'에게 도움을 손길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자선사업이 해야 할 '일순위'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의 경제독립'이 절실하다. 여성도 얼마든지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 사회에서는 '발전가능성'조차 없으며, 나아가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조차 없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의 손아귀로 되돌아가자 벌어진 참혹한 현실이 그것이다. 여성에게 족쇄를 채우고 강요를 일삼는 국가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제대로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절반의 엔진'만으로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단 말인가. 양성평등은 선진국, 나아가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밖에도 자선기업이 할 일은 많다.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환경을 되살리는 일이라든지, 자연재해로 일순간에 터전을 잃어버린 국가나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일, 누구에게나 부여받은 평등할 권리를 빼앗긴 채 '소수자'로 전락해 온갖 사회적 불평등을 한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등등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한 것'이 자선사업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자선사업가가 '오프라 윈프리'가 될 필요는 없다. 남을 돕고는 싶은데 천성적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착한 일에 많고 적음이 따로 없고,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도 따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착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멋진 '자선사업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것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연예인들의 '재능기부'도 바로 그런 일환의 하나다. 자신의 재주를 '많은 이들과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방법도 아주 좋은 일이다. 자선사업에는 항상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저 돈만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고 나면 아무런 보람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이들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확실한 기부'를 해야 한다. 이를 테면, 생리대가 없어서 신발깔창을 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면 그 소녀에게 확실히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자선단체를 찾아 '정확하게' 기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기부에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길거리에서 화상 자국을 보여주며 구걸하는 어린아이에게 돈을 쥐어주면 안 된다. 그 돈이 그 어린아이에게 쓰이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일부러 화상을 입혀 '앵벌이' 시키는 나쁜놈들에게 선량한 마음을 이용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부금만 전달하는 자선사업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 자선기업'이 기부금을 대신 모아 정확한 용도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투명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맹목적인 기부만으론 '사기' 당하기 딱 좋다.

 

  우리 나라에서도 '형제복지원'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었다. 거리의 부랑아를 거두어 건전한 사회일꾼으로 만들어 사회에 환원시킨다는 명목으로 벌어진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로 수십 년간 노예처럼 부려진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형제복지원'이 정부의 지원과 수많은 후원가들의 기부금마저 착복한 사실이 밝혀져 우리 사회의 경종을 울렸지만, 악마 같은 원장은 구속은커녕 법적처벌도 미미하게 받은 뒤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았더라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지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지하철역 앞에서 하루종일 엎드린 채 구걸을 하는 불쌍한 사람도 '나쁜놈들'에게 사지를 절단 당하고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기업형 구걸꾼'으로 이용당한 나쁜 사례다. 장님 행세를 하며 구걸한 이들도 사기꾼들이고 말이다.

 

  이처럼 선량한 마음이 상처 받지 않고,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자선사업'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착한 기업이 하는 일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며,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을 정부가 알아서 척척 도와주면 좋으련만, 정부를 꾸려나가는 돈은 '세금'으로 쓰이는 탓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세금을 펑펑 쓴다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자선사업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쓰이는 세금이 절대 아까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도 자선사업가가 할 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부자에게 쏠리는 돈이 가난한 이들에게 적재적소에 쓰이는 것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만인 분들이 있다. 세금을 많이 내야만 하는 부자들의 볼멘소리 말이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세금을 덜 내고 '자신들의 몫'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법마저 바꾸려고 지랄발광을 한다. 법인세 감면, 상속세 인하 따위 말이다. 종부세는 더더군다나 내기 싫은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안 내겠다는 각오가 정말 대단하다. 우리 나라에도 "세금을 더 많이 거둬달라"고 외치는 착한 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들이 이 책을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 그분들이 착해지면 정말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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