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줄 영어 일기 - 조금씩, 매일, 계속! 영어가 일취월장하는 3대 습관 자기계발은 외국어다 1
ALC 편집부 지음, 정은희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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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과 글'로 유창하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멋진 일을 난 실패했다. 지금도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난 외국인과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다. 언어라는 것이 '말과 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짓과 표정'으로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탁월한 눈썰미만 갖고 있다면, 웬만한 상황의 앞뒤 맥락을 파악해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눈썰미'에 세련된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춘다면 정말 멋질텐데...난, 그걸 해내지 못했다.

 

  사실, 외국어공부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인 친구'를 곁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간단한 표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졸 이상의 일반 성인이 영어회화를 하는데, '일상단어 800개' 정도면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수다를 떨 때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어휘'를 거의 쓰지 않듯이, 외국어도 그렇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동사활용'만 능숙하게 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면 금상첨화라고들 한다. 실제로 어느 나랏말이나 '품사'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동사'이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닐테고, '형용사'를 중간중간 넣는다면 세련된 표현쯤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게다.

 

  이렇게나 '이론'에 빠삭한데도 영어를 못하는 까닭은 '습관'이 되도록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기껏 동사 100개를 외웠다고한들 써먹을 외국인 친구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써먹을 외국인 친구가 없다고하더라도 '습관'이 될 정도로 '꾸준함'을 유지했더라면, 지금쯤 영어 정도는 능숙하게 쓸 수 있었을텐데, 난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명처럼 들릴테지만, 진짜 이유가 그렇다. 재미가 없으니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처럼 '습관'을 들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절대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습관을 들인 것이 있다. 바로 '책읽기'와 '리뷰쓰기'다. 지난 17년 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주 제대로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고,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독서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1년에 100권 읽기를 도전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다이어리' 구매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어리 속에 딸려 있는 '달력'이었다. 1년 남짓을 '기록'할 수 있는 선만 그어져 있는 그 '빈 달력'에 내가 읽은 '책의 제목'과 '지은이 이름', '출판사 이름' 따위를 깨알 같은 글씨로 채우면서 서서히 '책 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한 달에 한 권, 그 다음엔 한 달에 2권, 조금 더 분발해서 한 달에 6권, 조금만 더 노력해서 일주일에 2권, 좀 더 욕심을 부려서 일주일에 2~3권씩 '칸'을 채워나갔더니, '책읽기'가 재밌어졌던 것이다. 어찌보면 '빈칸 채우기'를 하려는 욕심이 컸던 모양이다. 결국 난 '책 읽는 습관'을 들인 지 15년이 지난 어느 해에 '1년에 300권 읽기'를 달성하고 말았다. 어느 새, 책만 읽는 습관만이 아닌 '리뷰쓰기'까지 덩달아 생기면서 지난 17년간 약 1500여 편의 리뷰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글쓰기 실력은 둘째치고 말이다.

 

  이 책, <하루 3줄 영어 일기>도 바로 이런 '습관의 힘'을 기반으로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는 도움책이다. 마침맞게 '다이어리 형식'으로 짜여진 이 책은 '영어일기'를 꾸준히 작성하면서, '영작실력'을 키울 수 있게 구성되었다. 핵심은 '꾸준함'이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꾸준함'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다. 이 책이 재미 있어야 '영어실력'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재미있을까?

 

  그건 독자에게 달려있다. 무작정 사다놓고 책꽂이에 덩그라니 장식만 하지 않기 위해선 '깨알 같은 재미'를 스스로 찾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어일기를 작성하기 위해 '빈 노트'를 마련해놓지 않았다. 사실 어느 나라 글이건 '일기'를 쓰려면 먼저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엔 '366개의 질문'이 각 페이지마다 달려 있다. 첫 질문은 "Where would you like to visit the most?"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영어문장으로 3줄'을 적어보라고 줄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예시글'이 적혀 있다. "I would most like to visit Machu Picchu. It is one of the most fascinating places in the world. I'd like to hike through the ruins and see the old buildings." (마추픽추를 가장 가 보고 싶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곳 가운데 하나다. 유적 사이를 돌아다니고 오래된 건축물들을 구경하고 싶다.)

 

  만약, 아직 영작에 자신이 없거나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만, 막상 영작을 하려니 글문이 막혀 써지지 않는다면 '예시글'을 따라 쓰면서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렇게 날마다 '질문 하나'에 '영작문 하나'를 꾸준히 쓴다고 생각해보라. 오래지 않아 영어문장 쓰기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그정도 실력이 되면 굳이 '예시글'을 따라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한 문장'으로 나만의 일기를 작성하면 될테니 말이다.

 

  바로, 이런 습관을 꾸준히 들이면 누구라도 '영어실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바로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을 '재미'라는 요소 말이다. 이런 방식에 '재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분명 성공할테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역시나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행여나 실패했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실패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사실 '습관'만큼 지겨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 '지겨움'을 재미로 승화시키는 독자라면 정말정말 멋지게 성공할 것이다. 당신도 그럴 수 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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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청약의 모든 것 -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이 선보이는 대한민국 주택청약 바이블
한국부동산원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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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 살면서 '내집 마련'만큼 간절하고도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그토록 간절하기에 해마다 주택(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도 수많은 젊은이들은 대출로도 모자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을 해서라고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고자 노오오오력을 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인한 '대출이자 상승'으로 빚더미에 빠지고 말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내집마련'에 올인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한편,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절묘한 한 수가 있었으니, 바로 '주택청약'이다. 청약을 통해서라면 '일반 분양'보다 훨씬 이득이 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청약으로 내집을 마련하면, 일반 분양보다 비교적 빠르게 '입주'가 가능하며, '분양가상한제'이라는 제도를 통해 입주하기 전에 체결한 '계약금'보다 훨씬 오른 중도금을 치르거나 '늦어진 입주'로 인해 분양가가 인상되어 계약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잔금을 치룬 뒤에야 겨우 입주할 수 있는 불편함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약에 당첨되는 것을 '로또'에 비유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내집 마련'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청약 당첨은 그야 말로 '시작'에 불과하며 '부적격취소'를 당하지 않고, '중도금'을 꼬박꼬박 정확한 계획 아래 다 치루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약으로 내집 마련의 꿈을 완수하기 위해선 철저하고 꼼꼼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면 그동안 정부는 '청약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꽤나 복잡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당첨자를 선정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투기과열과 같은 부작용을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였고 말이다. 무엇보다 '주택청약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못 알아먹을 전문용어'들 때문에 쉬이 이해하고 절차를 따라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이라도 공모에 참여해봤다면, 이후에는 비슷한 과정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마냥 어렵지만도 않다고 하니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이 책, <주택청약의 모든 것>에 '1순위 당첨비결의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져 있으니, 청약에 관심이 있거나, 청약을 통해 내집 마련 계획을 짜실 분이라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으면서 '복잡한 절차'와 '어려운 용어'를 먼저 학습한 뒤에 도전을 하신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난 엉뚱한 고민을 했더랬다. 사실 오랜 의문이기도 했는데, 왜 하필 대한민국에서는 '내집 마련'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느냔 말이다. 주택 물량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해마다 '신도시 계획'에 따라 새로 분양 될 아파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는 눈에 띄는 증가세를 멈추고 제자리걸음을 한 지 오래 되었는데도, 집값은 점점 올라 갈수록 구하기 힘들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해마다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오름세가 주춤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고, 여전히 집값은 비싸디 비싸 구매하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국의 경우에는 '99년 임대'와 같은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집 걱정'을 하지 않고 '의식주'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하지 않은 청춘들이 저마다의 꿈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부럽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이 되어서도 '내집'을 갖지 못한 나로서는 정말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정녕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사실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한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좌우되는 아파트 시세는 이미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져서 차라리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것이 더 속 편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주택청약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 청년들을 돕고 있다고 하지만, 청년들이 빠져들고 만 시름을 덜어주기엔 너무나도 동떨어진 해법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운'에 따라 결과를 맡기는 '당첨'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오죽했으면 '청약 당첨'을 로또에 비유하겠느냔 말이다. 그만큼 혜택을 받는 젊은이들이 '희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액수의 대출을 받지 못하면 어렵사리 당첨된 주택청약도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청년임대주택'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지만, 이 또한 허울 좋은 눈가림에 불과한 까닭은 '20년'이란 짧은(?) 기간 때문에 늦은 결혼으로 육아와 자녀교육 등으로 한창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40대에 또다시 '주택 걱정'을 해야 하는 자충수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50년 임대', 아니 '평생보장임대'라는 정책을 내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건축기술로 5~60년 이상 거뜬하게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아파트를 짓지 못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물론, 아파트(주택) 건설이 한두 푼 드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 파는 대상'으로 삼아 자유로운 시장경제 속에서 기업의 관리 아래에서 건실히 운영되게 만들어서 정부와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보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청약제도'를 통해서 그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을 마련하는 정부의 노력도 잘 알고 있다. 허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서민들의 고민'까지 덜어주는 획기적인 방법을 짜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정상적인 투자가 아닌 '소수의 이득'만 챙겨주는 투기를 근절하지 못하고, 부의 상위계층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이 앞장 서서 '개인적인 부를 늘리는 비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눈꼴 시릴 뿐이다. 서민들의 서러움을 일갈에 해소시켜주어야 할 '능력자'들이 오히려 '빌런(악당)'이 되어 약자를 서글프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현실이 비극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뜨거운 불만'을 잠시 마음속에 묻어두고 '차가운 이성'으로 살살 달래며 '주택청약 공부'로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결코 그 뜨거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 뜨거운 열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더욱더 잘사는 나라로 만들 것이고,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이끌어갈 '중심축(구심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은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자랑일지니, 그런 멋진 젊은이들이 고작 '주택마련' 때문에 골머리를 쌓게 만드는 비정한 현실을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비록 나의 젊음이 그랬을지언정 그들의 젊음마저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덧붙여 보았다.

 

추신...참, 주택청약의 시작은 '청약저축(기왕이면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부터다. 가까운 시중은행에서 가입가능하며, 19세 이상부터, 기왕이면 10만 원/매월(1500만 원이상)이면 '1순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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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엄마와 물건 -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심혜진 지음, 이입분 구술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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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거창한 것만 떠올리기 일쑤다. 교과서에서조차 '임금의 업적'만 나열을 하고 '위인들의 생애'만 다루며, 인류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굵직한 사건' 들을 예로 들면서 스케일을 한껏 키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로 오면서 역사의 범위는 점점 복잡해지고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으며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위대하고 유구한 역사의 흐름만을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늘 거창해야만 하는 걸까?

 

  한편, 임금이나 위인이나 모두 같은 사람인데, '그들'만 역사의 주인공이 되란 법이 있느냔 말이다. 더구나 무릇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다고 친다면 '개인의 취향'이 얼마든지 반영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역사책'에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아는 사람'이 얼마든지 위인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를 테면, '엄마' 같은 위인 말이다.

 

  엄마가 왜 위인이냐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당신은 엄마를 존경하지도 않으신답니까? 세상에는 인류 모두를 위해 헌신하는 위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신 엄마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모든 것'을 역사책으로 쓸 수도 있다. 특히, 엄마 때부터 '즐겨 쓰던 물건에 담긴 현대사의 질곡'을 주제로 삼아 역사책을 쓴다면, 바로 이 책일 것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역사책>은 아닐지라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리신 분들이 꽤나 많을 게다. 왜냐면 대한민국만큼 '빠르게' 변천한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발만 보아도 그렇다. 지금 100세를 살고 계신 분이 살아계신다면 그분은 어릴 적에는 '짚신'을 신으셨을 것이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나막신'도 신어보셨을 것이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고무신'도 신어보셨을 것이고, '가죽신'을 신고 폼을 내기도 해보셨을 것이다. 젊어서 직장에 다닐 때에는 '구두'를 신고 다녔을 것이고, 평상시에는 '운동화'를 신고, 근래에 들어서는 '기능성 신발'을 신으며 발건강에 신경 쓰면서, 요즘처럼 부쩍 추워진 날씨에는 발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털신'을 신으며 평생 자신이 신어본 '신발의 변천사'를 떠올리실 수도 있을 게다. 이렇듯 '신발' 하나에도 동서양을 아우르고 전통과 현대, 그리고 시대별 유행까지 모두 담겨 있고, 시대마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기술의 발전'까지 수용하였으니,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사소한 물건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발달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글쓴이와 글쓴이의 엄마가 나눈 '대화'가 주를 이룬다. 지금 현재의 '나'는 이런 물건을 쓰는데, 과거의 엄마, 또는 엄마의 엄마는 어떤 물건을 써왔었는가하고 말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읽다보니, '나 어릴 적의 추억'이 떠올라 색다른 감상에 빠지기 일쑤이기도 했다. 이런 점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었다. 또 다른 매력은 글쓴이가 '여성'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남자'들은 늘 쓰던 물건에 그닥 애착을 갖지 않는 편이다. 그저 손에 익숙하고 편하면 그뿐, 그 이상도 없고, 쓰다가 없어도 그만이기에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는 편이 아니다. 더구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거나 '까라면 까..'라는 묘한 신조(?)가 남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까닭에 망치가 있으면, 못을 박는데 쓰다가도, 밤송이를 깔 때도 쓰고, 땅을 팔 때도 쓰고, 심지어 밥 먹다가 이를 쑤실 때도 쓰는..무던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아무래도 '군대식 문화'라 남자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에 그런 점이 없지 않나 싶지만, 확실히 '여성'들의 관점에서 물건에 대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세탁기, 청소기, 밥솥, 김치냉장고 등과 같은 '전자제품'에 대한 위대함을 저절로 깨닫곤 한다. 나 어릴 적에는 부뚜막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스레인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풍로', 또는 '곤로'라고 불리는 기구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음식을 조리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리면 '즉석밥'이 뚝딱 만들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어릴 적에 밥 타는 냄새에 눈을 뜨고, '삼층 떡밥'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도시락도 싸지 못해 점심시간에 물배를 채우고 1시간 남짓 출렁출렁거리는 뱃속 장단을 치던 것이 '컵라면'의 등장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게 되는 추억을 갖고 있는지라, 집안에 '전자제품'이 하나둘 들어오는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곤 한다. 실제로 세탁기가 없을 적에 울 엄마는 화장실에서 빨래판에 빨래비누를 듬뿍 묻혀서 비비고 또 비비곤 하셨다. 좀 두꺼운 빨랫감에는 빨랫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패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세탁기가 들어오자 '세상 참 편해졌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하지만 늘 처음에만 그러셨다. 세탁기가 들어와도 '빨랫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기에 빨래를 널고 걷고 개고, 다시 꺼내 입히는 수고는 똑같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베란다에 널어서 빨래가 마르지 않으니 '연립주택' 앞마당에 집집마다 '빨간 빨랫줄'을 걸고서 널어놓기 일쑤였다. 빨래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날에 잘 말랐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는 뽀송뽀송 잘 마르던 빨래가 한겨울이면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려 있기 일쑤였다. 초창기 세탁기에는 '탈수기능'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그 고드름을 참 잘도 따먹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세제성분'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아 '화학물질 덩어리'였다는 생각에 먹지 않았겠지만, 그 당시엔 뭐든 참 잘 먹었다.

 

  암튼, 전자제품이 쏙쏙 들어와서 '엄마의 수고'가 덜어진 듯 싶었지만, 집안살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남정네'들은 전자제품이 '여성을 게으르게 만든다'라고 단단히 오해했지만, 정작 '전자제품'이 집안살림을 대신한다고 '집안일, 그 자체'가 사라진 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젖은 손이 애처로워 '고무장갑'을 사주며 생색을 내도 '고무장갑'이 엄마 손을 보호해줄 수는 있어도 '설겆이, 그 잡채'를 대신 해주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훨씬 더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도 똑같을 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 집안일 로봇'이 등장한들, '집안일, 그 잡채'는 여전할 것이다. '로봇청소기'가 그렇지 않느냔 말이다. 얘가 아니라 '물걸레 기능'까지 탑재되었다고 해도, 꼼꼼한 사람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훨씬, 훨씬 더 나중에는 '꼼꼼한 사람손길'이 탑재된 전자제품이 등장한다고해도 그닥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새삼 옛일을 떠올려 아스라한 추억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책이기도 했고, 대한민국의 급속한 변천사를 들여다보는 역사기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암튼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 쓰다 버린 '파란 비닐우산'이었고, 비가 오면 학교앞으로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오신 엄마가 있나 없나 살펴보던 추억이었다. 대개는 바빠서 학교앞에 오시지 못했지만, 간혹 오시는 날에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기도 했다. 울엄마가 너무 예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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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 저널리스트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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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널리즘은 신문이나 잡지를 통하여 대중에게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그럼 요즘처럼 신문이나 잡지를 도통 읽지 않는 시대에는 누가 저널리스트라 할 수 있을까? 대중에게 시사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더 저널리스트'가 있기는 한 걸까? 순방길에 오른 현 대통령 전용기의 추락을 기원하는 사제일까? 그 사제들이 신부직위에서 해제되고 종교계에서 파문을 당한 것을 보도한 기자일까? 아니다. 뭔가 부족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시사 내용'을 전달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단박에 알아챌 정도로 명쾌한 '기사'가 아니고서는 감히 '저널리스트'라고 입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는 '더 저널리스트'가 없다.

 

  헤밍웨이는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기자'로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직접 뛰어든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현장감'이 뛰어난 기사를 쏟아낸 '저널리스트'라고도 전한다. 그가 '더 저널리스트'가 된 까닭도 바로 그 '현장감' 때문이다. 비겁한 기자들은 종종 자신이 직접 취재하지도 않고 증거를 찾기 위해 발로 뛰지도 않고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정보원의 말만 믿고 섣불리 기사를 쏟아내기도 한단다. 기자들이 양심도 없이 이런 짓을 서슴지 않는 까닭은 '속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누구보다 더 빠르게 기사를 쏟아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그런다고도 하고, '대서특필'로 남기 위해 누구와의 정보공유도 없고, 사실검증(팩트체크)도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찍어내듯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 뒤에 나몰라라 하는 얌체라서 그런다고도 한다. 암튼 이유를 불문하고 이렇게 비겁한 기사를 써놓고서 뻔뻔스레 '유명세'를 거머쥐는 이들이 종종 발생하기에 너나할 것 없이 '거짓기사 경쟁(?)'에 뛰어든다고 한단다.

 

  이미저도 오늘날엔 '유사언론(너튜브, 포털사이트 등)'이 인터넷기사를 도배하다시피하는 까닭에 전통적인 신문이나 잡지는 아무도 보지 않고, 팔리지도 않는 처지에 내몰리면서 '무한경쟁'에 돌입한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무책임한 저질기사'가 온통 도배를 한 지 오래되고 말았다. 그래서 '저널'다운 저널을 좀처럼 찾아보기도 힘들고, 간혹 이슈가 된다 싶은 기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검증'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추측성 소설'에 불과하다고 판명이 나는 등.. 정말이지 '정통 저널리즘'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그렇다면 이 책, <더 저널리스트>에 나오는 헤밍웨이의 기사는 눈여겨 볼 만한 저널리즘 기사들이었나? 무려 100여 년전의 기사들이다보니 '기사'가 갖고 있는 시사가 적절했는지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를 테면, 1910년대 미국 어느 도시의 정치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어서 주목된다는 기사를 남겼다할지라도 '기사의 배경'이 됨직한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그 기사'가 적절한 시사성을 지니고 있는지 가늠하기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헤밍웨이'가 꽤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권력가'와 '유명인' 들을 까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또한, 헤밍웨이가 직접 본 현장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내전 속 마드리드' 따위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있으므로 '간접적'이나마 헤밍웨이가 던지는 '시사점'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험천만한 곳에서 직접 겪고 본 것을 사실 그대로 '기사'에 담으려는 진실된 마음이 절절하게 전달되는 느낌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널리스트'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현장(르포)을 직접 탐방하고 사실검증을 마친 뒤'에 전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이 벌어진 마드리드 한복판에 뛰어들어 취재를 하면서 '거짓기사'를 작성해서 대박을 터트릴 욕심에 동료기사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덜떨어진 기자를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내전의 한복판인 마드리드였지만 '전쟁의 위협'은 잦아들고 모처럼 '평온한 일상'을 되찾은 마드리드였는데,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하루만에, 그것도 호텔방 한 구석에서 상상으로 써낸 '무시무시한 전쟁속에서 공포에 떠는 마드리드 시민들'이란 기사를 제 손도 아닌 동료 여기자의 손에 들려서 스페인 밖으로 송출하려 한 몹쓸 기자였다. 만약, 스페인군의 검열에 그런 내용의 기사가 들통이 났더라면 '그 기사'를 국외로 빼돌리려던 여기자는 그 자리에서 검거되어 총살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무사히 국외로 빼돌려 미국시민들에게 '그 공포감'을 전달했더라면 모처럼 평온을 맞이한 마드리드는 '외부에서 찾아든 오해'로 인해 다시금 피비린내나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로 인해 '스페인'에 남겨진 현장취재 기자들의 생명도 위험해졌을 것이고 말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흐린다는 속담은 이럴 때 딱 어울릴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헤밍웨이는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우두머리인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돌려까며 이탈리아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밝혀냈고, 독재자를 비호하는 여타의 강대국들의 검은 속내를 까발리며 '공산주의(볼셰비즘)'를 막기 위해 '파시즘(무솔리니, 히틀러)'을 감싸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위정자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에티오피아 전선에 파병된 이탈리아 병사의 주검을 선명한 사진으로 보여주며 하나하나 주석을 달기도 했다. 강대국(?) 이탈리아의 병사들이 전쟁터에 보내진 뒤에 벌어지는 사실들이라면서 이들은 분명 조국의 환호를 받으며 이곳으로 보내졌을 텐데, 환대를 받기는커녕 차가운 시신으로 눕는 것으로도 모자라 날짐승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손과 발, 심지어 얼굴의 일부까지 총탄과 포탄에 찢겨져서 날아가버린 채, 그곳에 방치되어 있다면서 전쟁은 애국하는 병사들의 주검조차 수습하지 않는 비정한 것인데도 '전쟁'에 환장한 이들은 전세계 어느 곳에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날것, 그대로' 기사에 담아냈다.

 

  저널리즘이란 그렇다. '날것, 그대로' 전해져야 한다. 기자는 이런 생생한 정보를 모든 이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생생한 정보'에는 기자의 '가치판단'으로 걸러낸 정수가 담겨야만 한다. 아무리 '날것'이라 해도 그냥 '전달'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생한 정보에 기자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 기사로 뽑아내야만 한다. 그 기사가 대박을 칠지 어떨지는 운에 달리긴 했다. 그럼에도 '날것, 그대로'의 기사에 독자들은 반드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저널리즘'이다. 물론 '저널리스트'도 중요하지만, 사람보다 먼저 양성해야 할 것은 '저널리즘'에 목마른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저널리즘'을 소비하기 위해선 교양을 쌓아야 한다. 시쳇말로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비로소 '저널리즘'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널리즘'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져야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들이 활동할 터전이 마련된다. 그 반대라면 저널리스트들이 아무리 입 바른 소리를 높이고 날카로운 기사를 쏟아낸 들 맥이 빠져서 금세 시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용감하고 굳센 저널리스트라 하더라도 그들도 사람인지라 '먹고 사는 문제'가 결부되면 저널리즘을 쏟아내고 싶어도 못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기껏 용기를 내어 '밥줄 끊어질 각오'를 하고 저널리즘을 썼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그 저널리스트는 끝내 굶어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널리즘에 목마른 교양있는 독자들이 먼저 양성되어야 한다. 그런 뒤에 '더 저널리스트'가 없는 현실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는 성명을 내면...어디선가 스물스물 저널리스트들이 싹을 튀울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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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요리의 역사 - 선사시대 불의 요리부터 오늘날 비건까지, 요리의 위대한 진화 한빛비즈 교양툰 20
브누아 시마 지음, 스테판 두에 그림, 김모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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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쳇말로 역사는 '승자가 남긴 기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패자는 말이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기록'은 승자, 패자, 양쪽 모두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 유독 남기는 것일까? 두 가지를 추론해볼 수 있다. 하나는 '두 기록'이 서로 저울질을 하다 '승자'쪽의 입김이 점점 쎄지면서 승자의 기록만이 옳은 것이라 여겨지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승자가 '고의'로 패자의 기록을 삭제하고 승자의 기록만 남는 것일게다. 물론, 대부분의 역사는 '후자'쪽의 방법으로 선택(?)되어 질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후대의 역사가들은 기본적인 '사료'만을 곧이 곧대로 믿고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이 써내려가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적힌 '모든 것'이 모두 진리일 거라는 맹신은 절대 금물이다. 우리가 '비판적 읽기'를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편, <요리의 역사>라는 제목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요리'로 유명한 나라는 손으로 꼽힐 정도이고, 그런 나라 중에서도 '역사'를 운운할 정도의 나라는 '프랑스'와 '중국' 두 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작가의 책이라면...이 책의 내용이 '프랑스 미식가'의 내용이 주로 담길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인 '의식주의 차원'에서 '요리'를 다루고 있었고, 말그대로 선사시대의 요리부터 오늘날 먹거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참신했다. 그럼에도 책내용 곳곳에 '프랑스 궁중예법과 요리'를 소개하는 장이 꽤나 자세하게 나오며 오늘날 '고급요리의 대명사'는 서양(프랑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을 보면서 살짝 아쉬웠고, 그밖의 유럽 이외의 나라들의 요리를 소개할 때는 '위키백과사전'의 내용을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올린 듯한 '설명식 나열'에 그쳐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요리' 하나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담겨 있어서 그것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새삼 즐거움을 선사했다. 로마 공화정시절의 검소한 식문화가 제정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치의 향연'이 되어 부와 권세를 자랑하는데 잔치(음식)를 빼놓을 수 없게 된 사연이나, 중세 유럽에서는 '하늘의 음식'과 '땅 위 음식', 그리고 '땅 속 음식'으로 나뉘어 신분에 따라서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가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식탁위에서 포크를 사용하면 편리했을텐데도 포크를 사용하던 공주가 결혼을 한 지 얼마 뒤에 흑사병으로 죽자 불경스런 도구(사탄이 쓸 법한 도구)로 알려져서 오래도록 쓰지 않고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요리'를 역사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인류는 오랫동안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기에 불과 100년 전만해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먹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먹거리가 너무나도 풍요로워져서 오히려 '다이어트'를 해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쉽게 말해, 과거에는 너무 못먹어서 죽었다면, 현대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인류는 '건강음식'을 찾게 되었고, 더 나아가 '비건(채식주의자) 음식'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현대인들은 '정크(쓰레기)푸드'를 너무 많이 먹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났지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고통스런 질병에 시달리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비극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미래의 음식과 요리는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될까?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식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세계인구는 80억 명을 넘겼으며, 곧이어 찾아올 빙하기는 인류의 식단은 물론이려니와 요리법까지 싹 다 갈아치우게 만들 것이다. 운이 좋아 '빙하기의 도래'를 훨씬 더 늦추거나 '빙결상태'에 빠진 지구를 무사히(?) 탈출해서 '제2의 지구'로 찾아 떠나는 등등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반드시 '요리법' 또한 빼놓지 않고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미래라고 해도 인간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뭐, 모든 인류가 '안드로이드화' 되어 전기충전만 해주면 그만이라든가, '식물화'가 되어 광합성만으로도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쪼록 먹거리에 관한 한 '인류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는 현대에 살면서 <요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져줘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이 살짝 아쉽게도 '한국의 음식'을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고 있지만, 21세기엔 '한류의 바람'이 '한식'에까지 불어닥칠 것이 분명하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건강까지 탄탄히 보장해줄 '요리법'이 한식에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비법'을 정갈하게 포장해서 세계에 알리는 일만 남았다. 믿지 못하겠다고? 요리의 천국으로 불리는 '중국'이 자국에서 난 요리로 만족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맛나다고 소문난 '모든 것'을 자기네가 원조라고 박박 우기는 일을 왜 하겠냔 말이다. 뒤늦은 '원조논쟁'까지 벌이며 '김치'를 비롯해서 한국의 음식, 한국의 문화, 심지어 '한국인'조차 중국인이라고 사기(?)를 치고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중국을 볼작시면 10~20년 뒤엔 '한국의 요리와 음식'이 전세계를 제패할 것이 분명하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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