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올드 랭 사인보다 한국적인 음악도 아니다. 안익태는 독일에서 활동했으므로 그의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작곡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p11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국가, 즉 국민들이 진심을 담아 부르고 다른 나라들도 부러워하는 국가는 사실 그 나라의 민요에 기반한 국가이거나 술자리 노래다. 또는 위기의 순간에 만들어져 거리에서 불린 저잣거리의 노래다.
p26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국가는 만들어지자마자 정치도구화됐고, 통합하는 만큼이나 분열을 일으켰으며, 일상적인 만큼이나 논쟁적이 됐다
p44 이 노래는 혁명의 상징이어야 해요. 프랑스 혁명은 전 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전하기 위한 거였잖아요. 이 노래도 혁명의 일부였고, 내용도 그 이상에 관한 거죠
p65 사람들은 루제의 노래를 원했지 루제를 원하지는 않았다. 루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국가 작곡가들은 자신이 만든 노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할 운명인 걸까?
p81 모든 프랑스인들은 마르세유에서 올라온 몇백 명의 젊은이가 그날의 공격을 이끌었다고 알고 있다. 용감하고 대담하게 그들의 왕을 끌어내렸다고. 그 일을 하면서 그들이 부른 노래가 있다고. 그들이 왕을 끌어내린 적이 없다는 사실, 그다음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p101 국가에는 찬송가형, 행진곡형, 팡파르형, 서사시형이 있다. 그런데 네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p157 영국인이 너무 괴롭혀서 완전히 돌아섰죠.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요. 영국 지휘관들은 대체로 귀족 출신이 많았거든요. 자기네 국민들도 깔보는데 미국인한테는 오죽했겠어요.
p159 성조기의 첫구절은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실은 반쯤 진행된 전투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p196 그저 그 남자들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그들이 있는 곳을 비켜서 벚나무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가능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일본적 태도를 이보다 잘 입증하는 예가 있을까
p202 노조의 설립 목표 중 하나가 바로 국가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그들에게 월급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노조가 설립되고 나서 기미가요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
p204 이탈리아와 독일은 파시스트 정권에서 쓰던 공식 음악을 다시는 연주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p211 오늘날 도포로자와의 학생들은 기미가요를 부른다. 한 교사는 이제 학생들은 역사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교사들은 국가가 연주되면 기립해요. 직장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p242 그 노래 가사를 쓴 사람이 바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 있는 국가 지도자 중 자기 나라의 국가 가사를 쓴 유일한 사람이다
p253 소련에서 정치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실적 수정을 위해 누구에게 뇌물을 줄지 정확히 아는 게 다른 기술만큼이나 중요했다. 물론 상당한 운도 따랐다
p265 내가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대다수는 나자르바에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p293 남작이 뭘하고 말하건, 리히텐슈타인은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던 나라 중에서 '신이여 여왕 폐하를 구하소서'를 국가로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p305 최초의 진정한 국가가 전혀 국가적이지 않았다는 이 아이러니는 많은 역사학자도 지적한 바 있다
p358 내가 그에게 보스니아의 국가에 어떤 가사가 붙으면 좋을지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왜 우리는 아직 여기 살고 있는거지? 우린 진짜 멍청한가 봐
p394 이집트 최초의 국가는 1952년 이집트 혁명 이전에 불렸던 노래인데, 혁명을 통해 친영파였던 왕실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p429 모든 국가 작곡가들, 심지어 사예드 다르위시처럼 이름난 작곡가조차도 자신의 노래와 달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거의 잊혀져 가는 걸까?
p438 하지만 남아공의 국가가 특별한 이유는 이 노래가 그저 두곡의 혼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가사가 다섯 개 언어로 만들어져 있어서, 남아공의 모든 사람이 서로의 문화에 어떻게든 참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p445 1952년 아프리카 국민 회의가 아파르트헤이트법을 어기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최초로 전개했을 때도 이 노래는 거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감옥에 실려 가는 수레 위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1957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있었던 버스 보이콧 기간 때도 사람들은 매일 일과를 마치고 이 노래를 불렀다
p457 나라의 미래에 대한 협상 과정에서, 국가로 남아프리카의 외침을 계속 연주하되, 끝나면 즉시 주여 아프리카를 구하소서를 연주하고, 이어서 바로 그 노래의 세소토어 버전인 모레나 볼로카까지 연주하기로 협의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세 곡 묶음 국가였다.
p493 대포 8대와 마주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총독은 즉시 요구에 응했다. 고작 몇 안 되는 인력으로 단 한 발의 사격도 없이 독립을 성취했다는 사실은 스페인이 이 나라를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오지로 취급했는지 잘 보여준다.
p503 전투뿐만 아니라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 남은 인구는 약 15만 명에 불과했다. 파라과이는 성인 남성 인구의 90퍼센트를 잃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 영토의 4분의 1을 빼앗아 갔다. 파라과이는 공화국과 죽음 중 거의 죽음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p522 다른 남미 국가를 만든 작곡가들 도한 테발리와 같은 오페라의 광팬이었다. 브라질의 국가를 작곡한 프란시스코 마누엘 다 실바는 브라질에 오페라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다. 볼리비아와 콜롬비아의 국가는 이탈리아인이 작곡했다. 에콰도르의 국가를 만든 프랑스인은 애초에 오페라단과 함께 여행하다가 남미에 오게 됐다.
p550 서유럽, 발칸, 북미,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중동, 이슬람권, 아프리카, 남미 등 영국인의 시야를 통해 본 오늘날의 세계를, 각국의 국가가 만들어지고 불린 역사적 맥락을 곁들여 우리말로 풀어내는 작업은 애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골치가 아팠다
p550 미국 국가는 영국과 전쟁하다가 만들어진 노래이고, 일본의 국가는 영국인이 작곡했으며, 이집트의 국가와 남아프리카 국가는 영국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으 ㄴ노래이고, 리히텐슈타인의 국가는 심지어 영국 국가와 같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