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로 듣는 세계사 - 영국인 저널리스트의 배꼽 잡는 국가(國歌) 여행기
알렉스 마셜 지음, 박미준 옮김 / 틈새책방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국가로 듣는 세계사

 : 알렉스 마셜

 : 틈새

 : 2021/11/18 - 2021/11/30


국가를 통해 세계사를 쓰다니...

이런 책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유럽뿐만이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서아시아등 다양한 나라의 국가를 수집하고 작곡가, 작사가를 추적하여 글을 썼다.

세계사라고 하기엔 너무 지엽적이지만 각 나라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가 몰디브와 한때 같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됐다.

많은 나라의 국가가 혁명을 끼고 만들어져서인지 과격하다.

그리고 그 과격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가는 정말 얌전하다. 국민성은 그렇지 않은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주제라서 즐겁게 읽었다.

재미있다. 



p11 올드 랭 사인보다 한국적인 음악도 아니다. 안익태는 독일에서 활동했으므로 그의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작곡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p11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국가, 즉 국민들이 진심을 담아 부르고 다른 나라들도 부러워하는 국가는 사실 그 나라의 민요에 기반한 국가이거나 술자리 노래다. 또는 위기의 순간에 만들어져 거리에서 불린 저잣거리의 노래다.

p26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국가는 만들어지자마자 정치도구화됐고, 통합하는 만큼이나 분열을 일으켰으며, 일상적인 만큼이나 논쟁적이 됐다

p44 이 노래는 혁명의 상징이어야 해요. 프랑스 혁명은 전 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전하기 위한 거였잖아요. 이 노래도 혁명의 일부였고, 내용도 그 이상에 관한 거죠

p65 사람들은 루제의 노래를 원했지 루제를 원하지는 않았다. 루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국가 작곡가들은 자신이 만든 노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할 운명인 걸까?

p81 모든 프랑스인들은 마르세유에서 올라온 몇백 명의 젊은이가 그날의 공격을 이끌었다고 알고 있다. 용감하고 대담하게 그들의 왕을 끌어내렸다고. 그 일을 하면서 그들이 부른 노래가 있다고. 그들이 왕을 끌어내린 적이 없다는 사실, 그다음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p101 국가에는 찬송가형, 행진곡형, 팡파르형, 서사시형이 있다. 그런데 네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p157 영국인이 너무 괴롭혀서 완전히 돌아섰죠.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요. 영국 지휘관들은 대체로 귀족 출신이 많았거든요. 자기네 국민들도 깔보는데 미국인한테는 오죽했겠어요.

p159 성조기의 첫구절은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실은 반쯤 진행된 전투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p196 그저 그 남자들이 그곳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그들이 있는 곳을 비켜서 벚나무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가능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일본적 태도를 이보다 잘 입증하는 예가 있을까

p202 노조의 설립 목표 중 하나가 바로 국가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그들에게 월급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노조가 설립되고 나서 기미가요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

p204 이탈리아와 독일은 파시스트 정권에서 쓰던 공식 음악을 다시는 연주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p211 오늘날 도포로자와의 학생들은 기미가요를 부른다. 한 교사는 이제 학생들은 역사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교사들은 국가가 연주되면 기립해요. 직장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p242 그 노래 가사를 쓴 사람이 바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 있는 국가 지도자 중 자기 나라의 국가 가사를 쓴 유일한 사람이다

p253 소련에서 정치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실적 수정을 위해 누구에게 뇌물을 줄지 정확히 아는 게 다른 기술만큼이나 중요했다. 물론 상당한 운도 따랐다

p265 내가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대다수는 나자르바에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p293 남작이 뭘하고 말하건, 리히텐슈타인은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던 나라 중에서 '신이여 여왕 폐하를 구하소서'를 국가로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p305 최초의 진정한 국가가 전혀 국가적이지 않았다는 이 아이러니는 많은 역사학자도 지적한 바 있다

p358 내가 그에게 보스니아의 국가에 어떤 가사가 붙으면 좋을지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왜 우리는 아직 여기 살고 있는거지? 우린 진짜 멍청한가 봐

p394 이집트 최초의 국가는 1952년 이집트 혁명 이전에 불렸던 노래인데, 혁명을 통해 친영파였던 왕실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p429 모든 국가 작곡가들, 심지어 사예드 다르위시처럼 이름난 작곡가조차도 자신의 노래와 달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거의 잊혀져 가는 걸까?

p438 하지만 남아공의 국가가 특별한 이유는 이 노래가 그저 두곡의 혼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가사가 다섯 개 언어로 만들어져 있어서, 남아공의 모든 사람이 서로의 문화에 어떻게든 참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p445 1952년 아프리카 국민 회의가 아파르트헤이트법을 어기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최초로 전개했을 때도 이 노래는 거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감옥에 실려 가는 수레 위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1957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있었던 버스 보이콧 기간 때도 사람들은 매일 일과를 마치고 이 노래를 불렀다

p457 나라의 미래에 대한 협상 과정에서, 국가로 남아프리카의 외침을 계속 연주하되, 끝나면 즉시 주여 아프리카를 구하소서를 연주하고, 이어서 바로 그 노래의 세소토어 버전인 모레나 볼로카까지 연주하기로 협의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세 곡 묶음 국가였다.

p493 대포 8대와 마주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총독은 즉시 요구에 응했다. 고작 몇 안 되는 인력으로 단 한 발의 사격도 없이 독립을 성취했다는 사실은 스페인이 이 나라를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오지로 취급했는지 잘 보여준다.

p503 전투뿐만 아니라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 남은 인구는 약 15만 명에 불과했다. 파라과이는 성인 남성 인구의 90퍼센트를 잃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 영토의 4분의 1을 빼앗아 갔다. 파라과이는 공화국과 죽음 중 거의 죽음 쪽으로 기운 상태였다.

p522 다른 남미 국가를 만든 작곡가들 도한 테발리와 같은 오페라의 광팬이었다. 브라질의 국가를 작곡한 프란시스코 마누엘 다 실바는 브라질에 오페라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다. 볼리비아와 콜롬비아의 국가는 이탈리아인이 작곡했다. 에콰도르의 국가를 만든 프랑스인은 애초에 오페라단과 함께 여행하다가 남미에 오게 됐다.

p550 서유럽, 발칸, 북미,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중동, 이슬람권, 아프리카, 남미 등 영국인의 시야를 통해 본 오늘날의 세계를, 각국의 국가가 만들어지고 불린 역사적 맥락을 곁들여 우리말로 풀어내는 작업은 애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골치가 아팠다

p550 미국 국가는 영국과 전쟁하다가 만들어진 노래이고, 일본의 국가는 영국인이 작곡했으며, 이집트의 국가와 남아프리카 국가는 영국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으 ㄴ노래이고, 리히텐슈타인의 국가는 심지어 영국 국가와 같은 곡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령왕릉의 비밀 - 50년만에 풀어낸 한국사 미스터리 3
오운홍 지음 / 시간의물레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무령왕릉의 비밀

 : 오운홍

 : 시간의물레

 : 2021/11/10 - 2021/11/15


우리나라는 원래 역사기록을 열심히 하던 나라다.

그런데 전쟁때문인지 일제강점기 때문인지 제대로 전해오는 역사서가 많지 않다.

그나마 조선왕조실록이 있어서 조선시대는 좀 많은 내용을 알 수가 있지만 그 이전시대는 여러 역사서 또는 이웃나라 역사서를 참고해야만 한다. 

고대로 갈수록 역사서가 역사를 기록하기보다는 통치권강화를 위한 신화를 기록한 내용이 많다보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뻥인지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환단고기같은 책들이 국뽕의 힘을 받아 잘나가는 것 같다.

이른바 중국만물설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

무령왕의 이야기를 통해 백제에는 친고구려파와 친왜파로 나뉘어 권력투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백제는 한반도에 있지 않고 중국쪽에 있었고, 무령왕릉은 한반도에 몰래 만든 무덤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름 역사책의 오류를 지적하며 재미있게 논리를 풀어나간다. 

백제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겐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주류 역사책과 비주류 역사책을 같이 읽어나가는 것은 즐겁다. 

재미있게 읽었다. 


p31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로 공주 근처의 유적은 일제강점기 공부고보 일본어 교사로 있었던 일본인 가루베 지온에 의해 샅샅이 털렸다. 가루베는 공주를 더날 무렵인 1940년 스스로 "백제 고분 1000기 이상을 조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p81 상업국가의 특징은 국부와 이재가 우선이고 안보를 담당하는 군대는 최소화하면서 예기치 못하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안위 문제는 돈을 주고 용병으로 해결한다는 인식이다

p105 담은 40세 이전에 이미 담로국 월주 백제를 경영했다고 말할 수 있다

p163 보통의 상식과 전례로 보면, 전승지에 진을 치고 그곳에 고구려의 군현을 두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 군현을 두지 않고 개로왕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내고 퇴각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장수왕의 출병은 개로왕 제거라는 족집게 전략에 있었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로 읽는 여왕의 세계사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김서형 지음 / Muse(뮤즈)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명화로 읽는 여왕의 세계사

 : 김서형

 : 뮤즈

 : 2021/11/05 - 2021/11/07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이래 여자들이 대접을 받았던 시절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의 페미니즘도 내가 보기에는 여성이 남성화 되는 것이지 여성이 여성으로서 존중받는 것은 아닌것 같다. 

옛날 여왕이 있던 시절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는 6명의 여왕이 나온다.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선덕여왕, 측천무후 등 나름 잘나가는 여왕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남성들이 역사를 기록해서일까? 여왕의 시대가 그리 좋은 모습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왕이 자신의 정치를 마음껏 펼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들의 권익이 많이 향상된 지금조차도 힐러리는 트럼프를 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자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딸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여성도 충분히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p23 이시스 숭배가 확산됨에 따라 그녀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풍요와 치유,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전통적인 역할 이외에도 이시스는 행우이나 바다, 여행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숭배했고, 폼페이처럼 해양 무역에 의존하는 도시들도 이시스를 숭배했다.

p32 프톨레마이오스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학문과 예술의 후원이었다. 그는 고대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건설했다. 한 문서에 따르면 이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설립한 무세이온으로부터 유래했다.

p75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여주불능선리였다.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선덕여왕이 통치했던 시기가 신라 역사 속에서 얼마나 위기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p82 이렇게 선덕여왕의 통치를 둘러싸고 학계에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었기 때문에 유독 선덕여왕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과 평가가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선덕여왕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리더십이 부재했거나 전쟁에서 패배하고 영토를 상실했던 것은 아니다

p103 당시 유럽 지식인들 가운데 볼테르나 드니 디드로 등 계몽사상가들은 중국의 과거제도를 채택해서 학문을 숭상하고, 이를 통해 인간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p109 일부 기록에 따르면, 측천무후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죽인 사람은 총 93명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가운데 23명은 자녀를 포함한 가족과 친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공포정치를 시행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p118 압바스 왕조를 세운 압바스는 우마이야 왕조의 왕족들을 모두 죽였다. 학살 속에서 살아남은 압드 알 라흐만은 오늘날 스페인의 코르도바로 피신해서 756년에 그곳에 왕조를 수립했다.

p129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슬람 제국이 팽창하면서 후추 공급이 점차 감소했다. 따라서 후추 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후추 한 주먹은 노예 10명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결과적으로 후추는 금이나 은보다 비쌌다.

p136 특히 정적으로 제거하는데 주로 이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숙종 때 송시열의 정적이었던 윤휴를 들 수 있다. 그는 주자의 해석을 둘러싸고 송시열과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는데, 결국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p144 정치적으로 강력하고, 국토의 재통일을 이룩했던 이사벨 1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만, 유대인 탄압이라는 부정적인 업적은 보다 엄격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p157 러시아 역사 연구자들은 고대나 중세,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보다 표트르 이전과 이후라고 구분한다. 표트르 1세를 기점으로 러시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p160 표트르 3세의 제안은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패전한 국가에게 이득이 되는 협상을 제안했던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203 종 호 사건을 알게된 퀘이커 교도들을 중심으로 노예무역 반대 서명운동이 발생했고,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종 호 학살은 이 시기 노예무역의 비참함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또 하나의 조선

 : 이숙인

 : 한겨레출판

 : 2021/10/21 - 2021/10/28


또하나의 조선이란 여성의 삶을 말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살았던 여성의 삶을 조선시대 문헌을 통해 알아본다.

여성들이 쓴 글도 있지만 남편이나 다른 남자에 의해 남겨진 모습도 담겨있다. 

이 수많은 여성들중에 아는 사람이라곤 신사임당과 허초희뿐이다.

그만큼 다른 여성들의 삶은 철저히 감쳐줘있다.

조선시대에도 여성들이 살았고, 그들도 감정이 있고, 분노도 있고, 욕망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당연한 것인데 생각을 못하고 있던 부분이다.

그만큼 여성은 억압받고 없는 존재였으니까..

이런 연구가 계속 책으로 나와야 할 이유다.


p20 조씨에게서 일상을 긍정하는 힘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세상을 보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섬세하면서 담대하고, 낙천적이면서 감성적인 남평 조씨의 삶과 꿈의 기록인 병자일기는 사대부가 안주인이 쓴 17세기 조선의 또 하나의 역사이다

p32 사십 줄에 앉은 김돈이는 제사에 무성의하다는 질타를 자주 듣는다. 남편이 아내에게 언짢은 언사를 보내면 아내는 남편에게 '애교스러운 말'을 돌려주는 것으로 보아 김돈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젊은 김돈이는 제사보다 세상의 화려한 이야기에 관심이 더 컸다

p37 송덕봉은 술을 잘 마셨던 것 같다. 술기운을 비려 읊은 시가 수편이고, 술로 인해 자아가 커지는 경험을 한다. 취함 김에 읊다에서는 천지가 넓다고 하지만, 규방 안에서는 그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p41 생전의 그는 빈궁하고 고단한 삶을 산 것 같다. 그림도 생계를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창작되었을 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p77 조선에서 가장 미천한 신분이 여비에서 출발해 세자의 유모가 되고 종1품의 관작을 얻어 죽을 때까지 권세를 휘두르며 뒤탈을 남기지 않은 것을 보면 보통 총명은 아닌 것 같다

p93 늦게 낳은 아들을 너무 사랑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으로 내탕고의 모든 보물을 받게 된 영응은 노비 1만 명을 거느리는 거부가 된 것이다

p97 바뀌는 왕마다 통 큰 거래를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 그 자체로도 송씨의 능력은 특별하다

p102 홍혜완만큼 부부관계가 원만하고 남편의 존중을 받으며 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산은 가족의 중심에 아내가 있음을 두 아들 내외에게 주지시켰다

p107 묵은 가지가 다 썩어가는 즈음에 갑자기 푸른 가지가 나와 꽃을 피웠다라는 내용이 있어 소실과의 만남으로 다산의 스러져가는 심신이 되살아났음을 알 수가 있다. 논어고금주 등 다산의 대표적인 저술들이 그녀를 만난 이후 쏟아지듯 나온 사실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p119 난설헌이 시인으로 성장한 데는 오빠 허봉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허봉은 아무 허균에게 "경번[난설헌의 자]의 글재주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누이의 재능을 살리고자 형제들이 힘을 모은 것이다

p138 당파적 이익에 빠져 적군을 응원하는 믿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를 통해서도 수긍이 간다

p143 그녀는 지금 나이 71세의 할머니가 다른 방법으로는 정을 표시할 길이 없다라며 자신을 혈족으로 돌본 정미수 부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p145 내훈의 저자 내지는 성종의 모후로 주로 언급되는 소혜왕후는 무엇보다 가부장 사회의 비호 속에서 자기의 욕망을 실현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p150 자신의 책이 민간의 우매한 여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그 내용은 주로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서술은 학식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여성 앞에 펼쳐진 세계 자체가 하나의 역할만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

p173 경국대전에 첩은 처가 될 수 없다라고 규정해놓았지만 당시의 권력 문정왕후의 승인으로 난정은 외명부 정1품 정경부인에까지 오른다. 신분의 수레바퀴에서 신음하던 한 여자의 인간 승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란 늘 명암이 있고 모순적인 것들이 뒤섞인 흥미로운 해석의 장이다

p184 소현세자가 청국 황족과 친교를 맺고 원만한 관계를 이룬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왜곡된 권력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p206 끌려가는 사람들의 원한이 하늘을 찔렀고 이로 인해 팔도의 민심이 크게 돌아섰다. 신분제를 공고히 하려는 지배층의 요구와 맞물린 어처구니없는 국가의 이 대책을 역사에서는 옥비의 난이라고 한다

p211 국왕 정조가 김은애의 행위에 주목한 것은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만연했던 시대에 용기와 기백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코자 했다는 데 있다

p219 남명이 뭐라고 하든 무시하고 아예 상대를 하지 말라는 투의 조언이 퇴계 사후 선조 33년에 간행된 퇴계집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정인홍을 비롯한 남명 문도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남명과 퇴계, 그 문인들의 관계가 벌어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p238 2백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범죄 피해에서는 여전히 자기 파괴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누구의 몫인가

p258 조선의 정치 이념은 감정 가는 대로 욕심 나는 대로 즐기려는 삶을 규제하는데 유독 여성이 그 대상이었다.

p263 세조는 윤덕녕과 같은 민초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지만, 홍윤성을 국문하여 죄를 밝히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빗발치는 상소에는 귀를 닫았다. 홍윤성이 정난 원훈이라는 이유로 따로 불러 책망만 할 뿐이었다

p266 가부장제 가족에서 자식의 존재 증명이 아버지로부터 나온다면, 종모법 아래 노비의 존재 증명은 어머니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p274 왕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세 사람, 황치신은 정승 황희의 아들이고, 전수생과 배상동은 개국공신의 아들이다

p285 남의유당의 구경욕망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 보편의 것이라 치더라도, 특유의 언어와 열정이 밴 기록들은 길이 남을 유산이 되었다

p297 그녀는 아들이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에 주목하였다. 사주당이 세운 자녀 교육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성품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

p303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초영이 무딘 글만 못하다"라는 옛말에 힘입어 나중을 생각하여 적어두었다고 한다. 틈틈히 읽고 정보와 생각을 정리해놓은 것인데, 그것이 저술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p313 성인의 시대에 살지 않아 성인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성인이 남긴 말씀 들을 수 있고 성인의 마음 볼 수 있다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로 보는 유럽사 - 아테네, 로마부터 파리, 프라이부르크까지 18개 도시로 떠나는 역사기행 도시로 보는 시리즈
백승종 지음 / 사우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 사우

 : 2021/10/17 - 2021/10/29


유럽사는 언제 읽어도 즐겁고 재미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나름 역사가 있고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큰 도시들 위주로 책이 씌여지다 보니 큰 사건들 위주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큰 사건들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쓰나, 사람을 중심으로 쓰나, 국가를 중심으로 쓰나 비슷한 것 같다. 

결국 왕이 나오고 군대가 나오고 전쟁이 나온다. 

작은 소도시 이야기도 나오면 좋겠다.  


2% 유럽의 종교인 기독교도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유교, 불교에 못지않게 금욕적이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별로 구애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조상과는 달리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5% 그리스 반도에는 언어와 신화,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비잔티움 등 수십 개 도시국각가 때로 연대하고 때로 갈등하면서 공존하였을 뿐이다

7% 그리스는 탈세의 나라이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내가 자주 찾아간 자그만 음식점이 하나 있다. 처음 몇 번은 꼬박꼬박 영수증을 끊어주더니, 서로 낯이 익자 영수증이 자취를 감추었다. '세금은 내서 뭐 해? 재벌들도 안 내는데, 우리 같은 서민이 왜' 이런 식이었다

9% 유난히도 변화와 실용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타민족의 기술, 특산품 및 장점을 수용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좋게 말해 로마 사람들은 실질을 숭상했다

11% 생태계의 재앙 앞에 천하의 로마제국도 속수무책이었다.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로마제국 말기에 이상 저온 현상이 심했다고 주장한다

14% 스웨덴은 강대국으로 착실히 성장했다. 그 정점에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있었다. 왕은 신교와 구교가 정면충돌한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에 참전하였다. 그는 신교 측의 명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이름을 떨쳤다

15% 바이킹은 술이 셀수록 남자답고 영웅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전통이 아직도 스웨덴에 남아 있다.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유독 많은 사회이다

21% 그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동방의 찬란한 기독교 도시가 이른바 십자군원정대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혔다. 기독교 국가가 십자군원정대의 침략으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25% 상인들 수중에 있었던 베니스 공화국, 그 정식 명칭은 좀 길다. 가장 고귀한 공화국 베니스이다. 그들의 자존심이 그대로 반영된 국호였다. 8세기부터 1797년까지 베니스는 무려 1천년 동안 독립성을 유지했다

32% 브뤼헤는 문자 그대로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도시 경제가 힘차게 회생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이래 그 물길이 막히고 트이고를 반복할 때마다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였다. 역사에 보기 드문 사례였다

37% 체코 지식인들은 이른바 2천어 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시민운동으로 맞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얀 후스의 후계자임이 명백했다

40% 스페인은 계속해서 대항해시대를 열어갔다. 16세기가 되자 스페인은 아즈텍과 잉카에서 막대한 금은 보물을 찾았다. 용감하다 못해 잔인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송두리째 약탈하는 데 성공했다

42% 가세트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돈키호테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스페인의 혼이라고 했다. 언제까지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라는 말이다

49% 영국 사회의 특징이 무어냐고 묻는 나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실용주의에 기초한 합리성이라고. 그래서일까, 영국에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계몽사상가는 많았으나 독일의 칸트나 헤겔에 견줄 만한 형이상학적 철학자는 없었다

54%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궁전에서 즉위했다. 여제는 오늘날까지도 비엔나 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계몽적 전제군주였다고 볼 수 있다. 테레지아는 재위 기간에 걸쳐 많은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여제가 다스리는 동안 오스트리아 황실(합스부르크 왕가)은 전성기를 맞았다

55% 여제는 조상 전래의 결혼정책을 유지했다. '축복받은 오스트리아여, 전쟁일랑 다른 나라에게 맡기고, 너희는 결혼에 힘쓰라!' 이것이 조상의 유훈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대대로 결혼정책을 중시했다

60% 내 친구 알랭이 몇 차례나 강조했듯, 프랑스인 입장에서 보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특정한 종교기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천 년 동안 프랑스가 겪은 역사적 경험의 총체가 응축된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5% 프랑스의 위그노는 조국을 등지고 베를린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낙후된 베를린을 개조하는 데 공헌했다

71% 어린이는 내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읽는다. 성숙한 어른이라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안데르센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복잡한 현실 문제를 우회적으로 고발하기 위해서 동화라고 하는 수단을 선택하였다

72% 키르케고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자로 살기를 원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타인과 균질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시대적 풍조를,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74% 미국 같은 강대국의 신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왜곡할 때가 많았으나, 스위스 언론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었다

82% 인기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얽힌 사연이다. 1936년, 그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이 상연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날 스탈린도 볼쇼이 극장에 왔다. 그러나 독재자는 혹평을 남기고 중간에 극장을 떠났다. 다음날이 되자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는 쇼스타코비치를 거세게 비난했다. 스탈린의 한 마디 때문에 영웅적 작곡가로 추앙받던 음악가가 인민의 정서도 모르는 형편없는 3류로 추락했다. 무섭고 웃기는 사건이었다

84% 현재의 푸틴 대통령은 스탈린 시대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스탈린 시대를 미화하기에만 급급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퍼스트를 외치듯, 푸틴은 강한 소련을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러시아에서 인권문제는 아직 뒷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