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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평점 :
제목 : 책문
작가 : 김태완
출판사 : 현자의마을
읽은기간 : 2026/02/22 -2026/03/08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책문이 있다.
왕이 시대에 해결해야할 과제를 문제로 제시하면,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시험이다.
요즘으로 보면 심층 면접시험정도 될까?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하게 알고 있어야 하지만, 질문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꾸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기에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책은 책문에 나왔던 시제와 급제자들의 답변을 모은 책이다.
세종과 같이 학문에 뛰어난 왕의 시제도 있고,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으로 등극한 중종의 시제도 있고, 임진왜란 이후 어려움이 극심하던 조선을 해결할 방법을 물었던 광해군의 시제도 있다.
급제자들의 글솜씨는 매우 빼어났지만 성리학의 나라답게 임금이 덕을 쌓고 군자를 가까이하고, 어질어야 된다는 도덕교과서같은 답변들이 많아 이런 답변이 정말 효과를 발휘할까 싶기도 하다.
그중에는 광해군이 잘못해서 나라가 이모양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던 급제자의 책문도 있다. 광해군이 합격을 취소시키려고 했을 만큼 강한 글을 썼는데 또 그를 장원급제 시키겠다고 하는 대신들도 있는 걸 보면, 조선은 왕의 나라긴 하지만 신하의 힘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는 대학수능에서 이런 식의 논술시험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렵겠지?
조선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p10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은 세월호라는 배가 바다로 빠져 들어간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이었다. 방송이 배의 침몰을 생중계하는 동안 나라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p22 성삼문은 마음이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라고 전제하고서, 군주가 먼저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신숙주는 적합한 인재를 얻어서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석형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듣고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같은 문제에 제출한 대책이 복수로 남아 있는 사례는 뜻밖에도 그리 많지 않다.
p28 이들 제왕은 마음을 보존하는 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법을 제정하더라도 오래 지나서야 폐단이 생겼고, 폐단이 생기더라도 구제하기 쉬웠습니다.
p52 후한의 실책은 무과시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권력이 내부에 집중되었던 폐단 때문입니다. 송의 위기는 번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군사의 대비가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은 마침내 환관으로 인한 내분을 피할 수 없었고, 송은 두 황제가 사로잡혀간 치욕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p64 설화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역사는 사실을 해석한다. 그러니 윤씨 부인의 자결이건, 숙주나물의 유래건, 사육신의 갖가지 야담이건, 그것들은 모두 나름대로 민중이 생각하고 바라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준다.
p67 예기 곡례 상에는 세 가지 꼭 물어야 할 삼문이 기록되어 있다. 나라에 들어가면 법과 제도로 금하는 것을 묻고, 성내에 들어가면 풍속을 묻고, 집에 들어가면 주인의 선조의 이름을 물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묻는 것을 삼문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는 모두 방문하는 나라와 주인을 공경하기 위한 몸가집이다.
p76 성삼문에게 어이없이 자기의 아이디어를 빼앗겨서 장원의 자리를 놓쳐버렸으면서도, 그것을 웃어넘길 수 있는 이석형의 풍도도 넉넉하다. 아이디어가 최대의 무기가 된 오늘날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옛 사람의 사귐이 불현듯이 그립다.
p95 원래 마음 그 자체는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를 알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군주를 보지 못하면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며, 재물을 만나지 않으면 탐욕스러운 마음이 없다. 정치가 문화를 숭상하면 학문을 높이고, 정치가 무력을 숭상하면 무용을 귀하게 여긴다. 이를 근거로 따져보면, 인재는 근본이 정치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p102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숨기고 펴지 못하며, 선비는 지혜를 품고서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 예 하며 순종하고, 속으로 비난하며 남의 일인 양 구경만 합니다. 또 안으로는 세상을 개탄하는 마음을 품고도 밖으로는 굽실거리며 공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p105 재능 있는 사람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장점을 취하면 누구라도 쓸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점만 보완하면 누구라도 쓸 수 있습니다.
p110 어린아이에게는 바른 몸가짐과 예절, 기본적인 생활기술을 익히게 하고, 자라서 성인이 되면 학문적인 이론과 지식을 가르친다.
p115 신분을 상징하는 갓끈을 씻느냐, 더러운 발을 씻느냐 하는 것은 물이 깨끗한가, 흐린가에 달려 있으니 오로지 물이 불러들인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모욕을 당하고, 집안이 무너지며,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원인이 일차적으로는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좋은 인재가 주위에 많기를 바란다면 인재가 저절로 찾아들도록 먼저 자기 몸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p127 인심은 사사로운 것을 생각하기는 쉬워도 공공을 생각하기는 어렵고, 도심은 밝히기는 어려워도 어두워지기는 쉽습니다. 순과 우 임금은 위대한 성인입니다. 이런 성인들도 이처럼 간곡하고 자세하게 훈계하고 깨우쳤으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135 선생님은 불천위로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를 지내주시는데 왜, 그렇게 말라 계시니껴? 그랬더니 퇴계 선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고, 말도 말게. 후손들이 나를 얼마나 뜯어먹는지” 일본에 거주하는 윤학준이라는 이의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p139 권벌과 이언적 두 분은 평소 행실을 반듯하게 하는 데는 권벌이 이언적을 따르지 못했으나, 재앙을 당하여서 꿋꿋하게 절개를 지키는 데는 이언적이 권벌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p140 권벌은 마음을 보존하여서 근본을 세우고, 도를 응용하여서 정치에 이용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러고는 마음을 끝까지 한결같이 유지하여서 위대한 제왕들의 선례를 본받고 실패한 왕들을 거울삼아 정치의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고 했다.
p156 그런데도 아직 기강이 서지 않고 법도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것이 어찌 임금님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겠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정치의 근본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기 대문일 것입니다. 근본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p163 조광조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이웃 고을 희천에 김굉필이 귀양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가서 배웠다. 김굉필은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유학의 정통을 이은 성리학의 학자였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이이라 하여 귀양을 갔다가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극형을 받았다.
p185 술은 제사를 지내고 겨레를 화합하게 하는 데 쓰이며, 온갖 예의를 갖추고 군주와 신하가 잔치를 베푸는 데 쓰입니다. 따라서 없앨 수도 없고, 쓰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p188 상이라는 잔에 술을 채우는 것은 술로 상할까 봐 경계한 것이고, 치라는 잔으로 술을 뜨는 것은 술로 위태로워질까 봐 경계한 것입니다.
p230 재능은 평상시라면 쓸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덕은 비상시나 평상시나 일관되게 쓸 수 있습니다.
p236 민중들 사이에서는 중국을 대국으로 섬겨야 하는 약소국의 비애와 조공은 물론 중국 사신의 공공연한 수탈과 내정간섭에 저항하는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다.
p251 학문의 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정치의 길은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p257 신사무옥의 계기를 만든 이 송사련의 아들이 바로 예 성혼, 율곡 이이, 송강 정철과 교분을 쌓으며, 동인들로부터 서인의 브레인이라는 평을 받은 구봉 송익필이다.
p260 연산군에서 명종 초까지 사화가 거듭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정계에서 물러나 학문을 닦고 은인자중하면서 후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의 지조와 양심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p262 그는 사직을 청하며 올린 상소에서 국정을 시정하라고 충고하면서, 문정왕후는 궁중에 있는 일개 과부이며, 명종은 선왕의 어린 아들일 뿐이어서 현실을 바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고 백성들이 병드는 원인을 자세히 살펴서 과감하게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정치가 잘못되고 민심이 병드는 것을 수습하기 어렵다고 드러내놓고 비판했다.
p264 칸트는 에술작품의 미를 평가할 때는 작품 이외의 어떤 측면도 고려해선 안 된다는 뜻에서 관심 없는 만족을 미가 지닌 본질의 하나로 거론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글이든 글씨든 그 사람의 인품이 보잘것 없으면 아무리 조형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p284 조광조가 지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정식 문과 시험을 거치지 않고 천거에 의해 유능하고 뛰어난 인재를 특별 채용하는 방법인 현량과를 실시했고 율곡 이이가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 이외의 방법으로 인재를 등용하려고 노력한 것도 기존 훈구세력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p311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를 듣고 난 뒤에 보인 조정 관료들의 견해차이는 시급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마저도 당쟁의 소재로 삼았던 당시 관료들의 어이없는 당파의식과 동서붕당의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p330 반드시 정벌할 만한 힘이 있어야 정벌하고, 화친할 만한 형세가 되어야 화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벌해도 목적을 이룰 수 있고, 화친해도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어서 영원히 쇠퇴하거나 어지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p375 전하께서 부드럽고 듣기 좋은 말과 마음에 드는 말만 듣고자 하신다면 좌우에서 뜻을 받들고 잘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굳이 여러 선비들을 대궐 뜰에 모아 놓고 낮추어서 궁벽한 시골의 무지몽매한 사람의 건방진 말을 물으시겠습니까?
p389 무엇보다도 동의보감이 지닌 불멸의 가치는 대다수 민중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점이다. 정식 처방과 값비싼 중국 약재를 접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약이라도 써보고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는데, 이를 헤아려 향약과 단방요법을 정리하여 수록한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었다.
p396 광해군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양국의 명분을 적절히 세우면서 이른바 윈-윈 게임을 했던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은원은 은원이고, 외교는 외교인 것이다.
p421 공납을 개선하는 까닭은 백성을 편하게하려는 것이니 토지의 주된 생산물로 세제를 정한다는 원칙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p439 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인 우의정 심희수가 장원으로 급제시키려 했으나 다른 사관들이 반대하여 병과로 합격했다. 광해군은 그의 대책을 읽고 자기의 실정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데 진노하여 그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명하는 삭과 파동이 일어났다.
p443 광해군은 일본에 대한 대비, 명에 대한 보은, 후금에 대한 경계라는 세 줄기 격량 속을 돛대도 없이 부러진 노로 저어가는 배와 같은 조선의 키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p447 궁궐 안의 기강을 바로잡아 청탁을 물리치고, 소인배들의 발호를 막을 것, 언로를 열어 군주와 신하가 허심탄회하게 정치를 논하고 간언을 받아들일 것, 외척 세력의 발호를 막고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고 직무에 힘써서 국력을 신장시킬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개혁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군주가 자기수양을 해나가면서 자만하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