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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
비앙카 보스커 지음, 오윤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평점 :
제목 :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작가 : 비앙카 보스커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읽은기간 : 2025/11/10 -2025/11/21
미술에 좀 관심을 가지고 미술관도 가고 미술관련책도 읽고 있다.
그런데 절대 가보지도 않고 관심도 안두는 영역이 있다.
바로 현대미술이다.
내 망막에 뭔가가 맺히긴 하는데 내용도 모르고, 해석도 안되고, 의미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런데 엄청나게 비싸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혹시 나를 속여보겠다는 몰래 카메라일까? 물론 그럴리 없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이해도 안되는 그림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리는 걸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외국에도 있었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가격과 그 의미를 파헤쳐보기 위해 갤러리스트, 현대미술작가의 어시스턴트, 미술판매상, 그리고 미술관의 경비 역할을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배운 내용을 책으로 썼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라 그런지 내용이 생동감있고 몰입된다.
결국 저자는 현대미술을 보는 눈을 뜬 것 같다. 나도 현대미술을 알려면 저정도 노력을 해아 하는걸까?
우선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 미술에 전념하고 시간이 되면 현대미술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아직은 예쁜 그림 보는데도 시간이 모자르다.
그래도 책 내용은 정말 재미있었다.. 올해의 책 후보다.
p7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내가 평범한 기자 생활을 버리고 갤러리에서 미술품을 팔고, 작업실에서 작가들을 돕고,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보낸 몇 년에 걸친 이야기다.
p20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겠지만 놀랍게도-나도 놀랐다- 에술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으니, 바로 과학하들이다. 예술은 인간이 가장 일찍부터 만들어 낸 발병품 중 하나이고(인간은 바퀴보다 물감을 먼저 만들었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소통 수단 중 하나이며(우리는 글자를 쓰기 훨씬, 훨씬, 훨씬 전에 그림을 그렸다)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욕망이다(구석기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거주 환경과 연령대를 불문한 모든 인간이그림을 그린다)
p35 수익은 갤러리와 작가가 50대 50으로 나눠 갖는 게 보통인데, 잭은 아직 갤러리 일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잭을 비롯해 많은 젋은 갤러리스트가 다른 갤러리에 가서 작품을 설치하거나 사진 촬영을 하는 등 부업을 뛰었다.
p37 그는 내가 못 알아들었을까 봐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글 쓰는 사람 말이에요” 글쟁이는 상종 못할 천민이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농담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으나 나는 맨 처음 귀에 들어온 단어가 뇌를 후벼 파는 듯했고 속이 뒤틀렸다. 적이라고. 내가 그것도 최악의…
p47 단 보의 생애와 1970년 전후 덴마크의 이민 정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삶이 과연 잭처럼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잭이 예술을 사고하는 깊이와 작품에 감동하는 능력이 부러웠다.
p56 내가 전시의 성공은 가늠하는 방법은 세 가지예요. 첫째는 전시의 모습, 설치.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전시가 어떻게 보이는가인데 이건 작가가 전시의 모습에 만족하는지로 확인하고, 오프닝에 가서 일반 대중이 전시를 처음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로 확인해요. 그 다음이 언론 반응이고, 그다음이 판매실적이에요.
p75 이 직군의 필수 업무 중 하나는 뒷이야기였다. 잭에 따르면 “예술계에서는 가십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미술계에 속한 사람이라면 미술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미술계를 이야기하려면 의견이라는 게 있어야 하니까요.
p84 난 공중화장실을 쓸 때마다 마이클 블레이크를 떠올려요. 드디어 그가 무게감을 띤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일단 게이 남성에 관한 작품이에요. 여기서 공중화장실은 사랑을 찾아낼 수 있는 곳. 로맨킥한 관계를 가질 수 있고,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흠씬 두들겨 맞을 수도 있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장소에요. 누군가는 두 개의 화장실 문을 볼 때 잭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행복과 잔인성을 통찰했다
p86 이젠 내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에술은 빅맥 버거가 아니었다. 우리의 혀를 자극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술은 체스에 가까웠다. 규칙부터 배워야 하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p100 갤러리가 문을 닫는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져선 안 되었다. 이 업계에선 사업이 될고만 있는 것처럼 연기해야 해요. 내가 맨날 하는 말이 그런 척하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된다잖아요.
p106 맥락이란 작가의 주변 사람들 이름으로 이루어진 뭉게구름이다. 이 판에서 맥락은 예술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내가 작품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부차적인 소음들이 사실은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였다. 예일대 방문에서 돌아온 뒤 잭이 말했다. “맥락을 모르면 당신이 눈으로 보고 있는 그것이 대체 뭔지 이해할 수 없어요”
p111 그 날 무슨 작품을 보았는지는 깡그리 잊어버렸다. 작품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작품 곁다리의 다른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바꿔 말하면, 마침내 나에게도 안목이 생기고 있었다.
p122 웃긴 소리 같지만, 예술을 볼 필요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물론 나는 줄곧 예술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에서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줄리가 작업하는 모습은 나에게 예술가처럼 그림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나는 더 느린 속도로 작품의 물리적 형태를 면밀히 살피고 작가의 선택을 고찰할 필요가 있었다. 작품은 끝없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p139 나는 이날 잭이 보인 반응을 여러 번 반추했다. 오프닝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라. 하지만 정말로 오프닝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선 안된다? 뭘 어떡하란 소리인가?
p179 만약 잘 팔리고 있지 않다면 현 상태를 유지한다. 가격은 아무 때나 마구잡이로 올리는 게 아니라 개인전, 미술관 전시 같은 경력상의 큰 도약과 함께 올린다.(미술관에 입장한다는 건 곧 예술사의 연대기에 등록된다는 뜻이다. “미술관에서 전시한 작품은 가격을 10배 올린다”)
p188 임장 시각뿐만 아니라 입장하는 요일에도 위계가 있었다. 자부심 있는 퍼스트 초이스 VIP들은 목요일 이후에는 마이애미에서 목격되지 않는다. “수요일에 오거나 아예 안 오거나 둘 중 하나죠”
p200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는 성관계를 맺고 싶은 대상을 아름답다고 인식한다. 영문학자인 일레인 스케리에 따르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리고 찍고 모사하고 싶어한다.
p212 나는 전부터 동시대 미술 작품 앞에서 자주 느끼던 대로 이 작품들 앞에서도 누가 밑에서 다리를 걷어찬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할 줄 모르게 움켜잡는 듯한 그 감각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p238 예술이라는 단어는 확장되고 확장되어 이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부터 뒤상의 소변기, 올파이어의 엉덩이 셀카까지 온갖 것을 아우른다. “어떤 사물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를 이론의 여지 없이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선언한 예술 작품의 모호성이라는 논문은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p244 어느날 오후에 어멘다가 그렇게 말했다. “난 더 이상 예술이 뭔지 모르겠어요. 특히 지금 같이 모두가 예술가인 시대에는요. 아이폰을 가진 모든 사람이 예술가잖아요”
p259 솔직히 말해 만약 대학생 시절에 만난 철학과 학생이 내 남편이 된 후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나의 부모님이 안정적인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만약 내가 아아비리그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졌을 테다.
p260 우리는 사람을 가루가 될 때까지 갈아요. 로브가 나에게 말했다. “아무도 월급을 못 받으니까요. 월급을 안 받아도 되는 사람은 원래 돈이 있는 사람이고요”
p296 이제 작업실은 재치 있는 손님이 잔뜩 참석한 떠들석한 파티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그랬다는 뜻이고 줄리에겐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림들 때문에 작업실이 중환자실 같다고 했다. “마치 다들 도와주세요 나 위독해요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요
p307 줄리의 작업실로 돌아와서 나는 첨탑과 출입문 위로 철망을 덮은 독특한 나무 대성당 조각을 보고 감탄했다. “누구 작품인가요?” 줄리는 의심쩍은 눈빛으로 내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닌지 확인했다. “아, 그건 쥐덫이에요” 그는 어딘가에서 그 쥐덫을 주웠고 마르센 뒤상의 전통에 따라 쥐덫의 용도를 조각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p314 신선한 경험은 새로운 취향을 이어질 수 있고 그럴 때 삶이 더 기나길게 느껴진다고 줄리는 말했다.
p320 전문가는 작품의 양식에 집중하는 반면 문외한은 작품의 내용에 집중한다. 전문가는 맥락에 주목하는 반면 문외한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
p332 마침내 난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가 에상 여과기를 치우기만 하면 세상은 어지러운 정보의 도가니가 돼요. 리베카는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 일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색채의 지저분한 향연과 저 문을 바라보는 긴긴 응시 끝에, 줄리는 지금 자신의 에상 여과기를 치우고 저 회색에 담긴 광채을 온전히 포착하는 중이었다.
p360 바허만스는 예술가가 극히 익숙한 환경에 생소한 경험을 들여온다고 썼는데, 이 내용은 수많은 갤러리 보도 자료가 이 작가는 익숙한 것을 생소한 것으로 바꾼다고 강조하는 지점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p373 애초에 내가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던 이유는 예술을 다르게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나는 예술만이 아니라 아니라 모든 것을 조금씩 다르게 보게 되었다.
p402 예일대의 필수 수강 과목이 되었고, 다른 많은 의학 교육 기관에서도 채택한 이 강의에서 브레이버맨은 학생들에게 J.M.W. 터너의 도르트레히트 항구의 범선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15분씩 들여다보게 한 뒤 그림에서 본 것을 설명하게 했다. (브레이버맨에 따르면 이 활동의 목표는 관찰의 문턱을 낮추어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만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익숙했던 것을 생소하게 만드는 것으로 바꿔 표현해도 무방하겠다)
p415 컬렉터로서 로브의 철학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현재 눈여겨보는 작품을 사고 싶다였고, 에릭의 철학은 사람들이 장차 눈여겨볼 작품을 사고싶다였다.
p436 알아채라. 가장 눈에 띄는 것을 알아채고, 가장 의외의 것을 알아채고,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을 알아채라. 거기 있을 법한 것을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라.
p445 그는 어떤 물건이 눈물방울 형태고 그 주변은 물결치는 부분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안에는 두 개의 타원이 가로로 뾰족하게 놓여 있다고 묘사했다(이것의 정체는 사자 머리 모양의 작은 브로치였다)
p447 내가 아는 수많은 작가가 아름다움이라는 부르주아적 개념에 치를 떨었지만 나는 줄리와 함께 지내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틀에 박힌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고 의식의 감압 밸브를 활짝 열어 주는 경험들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라고. 동굴에 그린 멧돼지 그림이 그러한 경험을 가능케 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겐 더더욱 강렬한 경험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