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온 인문학 - 사람과 세상이 담긴 공간, 집을 읽다 푸른들녘 인문교양 2
서윤영 지음 / 들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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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집에 들어온 인문학

저자 : 서윤영
옮긴이 : 
출판사 : 들녁
읽은날 : 2016/04/02 - 2016/04/06

 

제목을 보고 나 혼자 낚인 책.

집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라기보다는 집에 대한 수필정도로 보는게 맞을 듯 하다.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집안에 있는 다양한 공간에 대한 해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식 집이라는 양옥은 사실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 주택의 변형본이라든가, 다세대, 다가구등을 구분하는 방법등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유익한 내용들이었다.

재미있는 구분은 방과 간을 구분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전통주거는 방과 간을 구분합니다. 방은 신발을 벗고 앉아 생활하는 실내 공간이고, 간은 신발을 신은 채 일을 하는 노동 공간이자 실외공간입니다.(48 p)

이런 정의에서 보면 부엌은 부엌간이니 힘들에 일을 하는 곳이고, 사랑방은 안방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역시 여성은 예전에도 집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이었나보다.

2부 집 밖ㅇ로 나가다에서는 건축에 대한 일반론이 펼쳐진다.

과거에 지어진 사찰이나 성당등을 통해 어떻게 세속적인 사람이 종교장소에 들어와서 거룩감과 경외감을 갖게 할 것인지에 대해 건축학적인 장치들을 알게 된다.

모델하우스 역시 피해가지 못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집을 더 넓게 보이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책의 내용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이라는 말을 부쳤으면 그에 걸맞는 통찰이나 옛것과의 연결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좀 약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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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조선여행 : 전국 편 - 지식 가이드와 떠나는 팔도강산 역사 투어 한국사 여행 2
트래블레이블 외 지음, 이도남 감수 / 노트앤노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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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일치기 조선여행 : 전국편
작가 : 트래블레이블
출판사 : 노트앤노트
읽은기간 : 2026/05/09 -2026/05/12


예전에 서울편을 읽고 재미있어서 전국편을 추가로 읽었다.

결과는? 역시 재미있었다.

테마가 있는 여행이라 더 재미있다. 다만, 책에서 스토리로 읽는 여행지와 실제 추천하는 여행지가 약간 다르다. 아마 유적이나 유물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전국편이라 전국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는데 경주나 수원처럼 잘 알려진 곳도 있지만 대전이나 제주처럼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지역도 있었다.

새로운 곳을 배우니 배우는 기쁨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의 모진 역사를 알게 되니 마음이 아리고 슬프다.

식민지 역사는 읽어도 읽어도 힘들다.. 그당시를 살아내신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모두가 고생이다. 그런일 없기를...

전국편을 봐서는 좀 더 많은 지역을 다루는 후속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p28 방화수류정은 용두바위 위에 지은 각루입니다 정조는 각루 아래 용연과 용두바위를 보고 상서로운 바위의 모습이 우연은 아닐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용머리를 한 용두바위에 뿔을 선물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용의 뿔과 비슷한 형태인 십자각 지붕이 탄생했지요.

p44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겪을 때는 영혼 숭배자이다.

p48 광희문은 저승길의 첫 번째 관문이자 이승과 작별하는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먼 길 떠나는 망자의 평안을 바라는 유가족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무녀를 불러 노제를 치르곤 했습니다.

p58 세습무는 자신이 속한 고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사제이자 굿을 책임지는 일종의 행사 전문가였는데요. 고을의 사당, 신당 등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고을(골)과 당이 더해진 당골, 당골네, 단골 등으로 불렀습니다. 지역 사회에 굿이 필요할 때면 사람들은 지역 행사 전문가인 단골집을 찾아갔겠죠? 때마다 세습무를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단골손님이라는 표현이 파생되었습니다.

p76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은 각각 이와 기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며 이황의 주장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며 일단락되었으니까요. 8년간 두 수취인 사이를 부단히 오간 편지는 그 시절을 살았던 선비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p104 허초희는 어릴 적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시에 재능을 보였는데, 오빠 하곡 허봉은 그의 시가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소개해주고, 명나라를 다녀올 때 귀한 시집을 구해다 선물하기도 했지요.

p115 1957년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 공예에 공예적 회화란 글을 기고하는데,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게 구전되는 그림이라 정의하여 민화라 명명했죠

p157 1888년 개항장에는 국내 최초로 영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약식 호텔, 대불 호텔이 그랜드 오픈을 맞이합니다. 일본인 거류지에 위치한 대불 호텔은 일본인 사업가가 건립해 외국인 선교사, 외교관, 상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지요.

p180 친일 인사들이 서촌에 터를 잡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서촌을 두르고 있는 인왕산은 기세가 강하고 양의 기운이 넘쳐 엎드려 수도를 지키는 호랑이 형상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왕기가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권력자들도 탐내던 땅이었지요.

p186 김가진이 떠난 후 백운장은 요정이 되었다가 광복 후 부통령 관저로 쓰였고, 1962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매입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각석과 석조물이 전부지만, 이곳에 맑은 삶을 살았던 이가 있었음은 바위에 남은 그의 글씨처럼 선명히 우리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p206 400여 명의 환자와 함께 경성에 나타난 최홍종을 본 일제 총독은 크게 놀랍니다. 그제야 지금껏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태도를 바꾸어 나병 환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일본군의 휴양지였던 소록도가 한센병, 즉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알려지게 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p226 박태준은 1924년 자신의 모교인 계성학교로 돌아오 ㅏ합창부와 악대부를 지도했습니다. 또한 어릴 때 함게했던 대구제일교회 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일곱 살어린 후배 윤복진을 만납니다. 음악을 매개로 친구가 된 그들은 첫 동요곡집인 중중떼떼중을 시작으로 양양범버궁, 도라오는 배까지 총 3권의 책을 무영당을 통해 발간합니다.

p233 이상화는 벗어날 수 없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격렬한 울분과 저항을 시에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개벽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억눌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를 본 일제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개벽은 작두로 썰리고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p271 눈부신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이나 최상위 계층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한껏 공들여 만든 금관이었으니 얼마나 화려했을까요. 이 고분은 사상 최초로 금관이출토되면서 금관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p283 고려시대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경주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사성장 탑탑안해”, 절과 절이 하늘의 별처럼 많고, 탑과 탑이 기러기처럼 줄을 잇는다는 뜻입니다. 신라는 이 땅이 곧 부처가 계신 곳이라는 불국토 사상을 믿으며 경주 일대에만 100여 개의 사찰을 지었다고 합니다.

p310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은 대전에서 보기 드물게 원형이 잘 보존된 근대 건축물로,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관공서 건축 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시즈오카현 청사 본관과 외형이 유사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p319 대전 골령골 산골짜기에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가로 30m에 달하는 집단 매장지가 조성된 것입니다. 1950년 6월과 7월 사이, 20여 일 동안 수감자들은 골령골로 줄줄이 끌려갔습니다. 미결수부터 정치사범, 과거 좌익에 뜻을 뒀다가 전향한 이들까지 최소 1800여 명의 비명이 그 골짜기를 휘감았습니다. 좌우의 이념이 대립하던 시대, 학살자는 다름 아닌 정부와 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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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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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겸재 정선
작가 : 유홍준
출판사 : 창비
읽은기간 : 2026/04/28 -2026/05/07


취화선같은 영화로 보고, 간송미술관이나 역사책에서 미술작품으로만 봤던 겸재 정선에 대한 평전이다.

양반이었고, 꽤 많은 벼슬을 했고, 말년에는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역시 아는 듯 하지만 전문가들의 책을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정선의 그림을 여러 점 봤었지만 책에서 시대별로 설명해주니 훨씬 이해가 잘 됐다.

이해가 잘 됐다고 해서 그림을 잘 알게 됐다는 건 아니다.

유홍준 작가님의 설명중 상당수의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림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아는게 없으니 설명을 들어도 마음에 확 와 닿으면서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그게 내 한계이긴 하지만 그림을 볼 때 봐야하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됐다는 것으로도 만족한다.

다음책도 기대된다.


p25 금강전도는 이처럼 수직과 수평, 선과 점, 흰색과 검은색, 밝음과 어둠, 큰 것과 작으 ㄴ것 등이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상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변형과 과장, 필법의 강약, 광선의 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화면을 창출해냈다.

p51 겸재가 섵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이처럼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p54 겸재의 득의산수에서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소가 한 화면 속에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면 상단의 암봉과 먼 산은 인조,숙종 연간의 전통 산수화풍이고, 하단의 초가집과 안개 표현은 남종문인 화풍이며 버드나무, 전나무의 수지법과 냇가 암석의 표현에는 겸재가 진경산수에서 사용한 조선 산천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p64 겸재 그림을 기년작 중심으로 볼 때 겸재다운 필치가 구사되는 것은 환갑 이후이다. 특히 64세때 그린 청풍계도와 65세 대 그린 서원소정도, 그리고 이 즈음 그린 경교명습첩에 이르러야 겸재다운 멋이 흔연히배어나며, 그의 노숙한 필치는 76세에 그린 인왕제색도에서 구사되었으니 그는 확실히 대기만성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p67 본래 정통 산수화론에 의하면 산수화를 그리면서 기피해야 할 점 16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길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으니, 이를 모를 리 없는 겸재가 이와 같이 그렸다는 것은 지도의 구도를 참고하여 그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p77 신묘년 풍악도첩은 금강산을 사생한 첫 작품인 만큼 화가의 시각이 대상의 성격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여 붓끝이 아직 풀리지 않은 인상을 준다. 이에 반하여 해악전신첩은 대상의 포착보다 회화적 재구성에 더욱 힘쓴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

p81 정양사 앞에 일만이천 봉을 배치했다면 한 폭의 분경도에 불과했을 것이나 구름안개로 가려진 모습을 그려서 도리어 공계(허공의 세계)와 다르게 하였다.

p95 이 북원수회도는 훗날 단원 김홍도가 개성의 60세 이상 어른의 경로잔치를 그린 기로세련계도(일명 만월대계회도)의 선구로 삼을 만한 기념비적인 계회도이다

p108 조유수가 시중호만은 꼭 그려달라고 한 것으 ㄴ시중호가 흡곡현에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겸제는 결국 삼부연, 불정대, 삼일호, 시중대 4폭을 그려서 조유수에게 보내주었고, 이듬해 조유수는 흡곡현령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이 그림을 받고는 너무도 기뻐서 그림마다 시를 지어 부친 것이 그의 문집 후계집에 전해지고 있다.

p128 겸재는 훗날 60대 때 인곡유거도를 그렸는데, 이 그림을 보면 초가 대문 안 마당에 고목이 두 그루 있고 겸재가 사랑채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있다.

p196 겸재의 진경산수는 인왕제색도에서 보이듯 짙은 먹을 사용한 웅혼한 필치의 작품이 많다. 그러나 그의 한강 그림들은 은은한 담채를 사용한 아주 부드러운 그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겸재는 산을 그릴 땐 남성적, 강을 그릴 땐 여성적인 필치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p214 능숙한 필묵법을 구사하여 60대와는 또 다른 화풍으로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니 겸재느 ㄴ그야말로 대기만성의 화가였다.

p224 겸재의 취성도는 화견이 극상품이어서 조금도 변색되지 않고 마치 엊그제 그린 것처럼 선명하고 영롱하다.

p240 이처럼 앞 시기와는 확연히 다른 겸재의 70대 이후 필법의 중요한 특징을 이동주는 우리나라의 옛그림에서 강한 필세, 겹쳐진 먹빛의 묵직한 중묵, 바위의 양감이라고 하였다. 이느 ㄴ겸재가 즐겨 그린 장동8경에 잘 나타나 있다.

p260 관아재 조영석은 겸재의 진정한 예술적 동반자이고, 예리한 비평가이고, 전폭적인 지지자였다.

p293 영조는 이날 승지들을 입시시깉 가운데 인사 발령 명단을 본 뒤 특별히 배려해야 될 사람이나 관심이 가는 인사들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점검하다가 겸재의 이름을 보고 몹시 반가웠던지 “정선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부승지 한광조가 “나이가 거의 80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영조가 “요즈음도 아직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우부승지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p301 영조는 이렇게 겸재를 중용한 것이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결국 이 일은 영조의 비호 속에 겸재는 살아나고 오히려 정술조는 다른 사건과 연계되어 파직되고 끝났다.

p315 이 말년작 장동8경첩은 앞의 두 화첩과는 필치가 완연히 다르다. 대상을 소략하게 표현했고, 필치는 스스럼없이 그어간 스케치풍으로 노필이 주는 간명함이 역력하다

p322 겸재가 이룩한 진경산수의 세계는 진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적 산수화를 창시하고 완성했다. 그는 당대의 문화적 성숙에 힘입어 이를자신의 숙명적 과업으로 알고 신분을 떨쳐버리고, 남들이 천하다고 비웃는 소리에 괘념치않고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화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열정과 의지로 이와 같은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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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미술 전문기자의 유럽 미술관 그랜드투어
김슬기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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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작가 : 김슬기
출판사 : 마음산책
읽은기간 : 2026/04/20 -2026/04/26


제목이 멋들어져서 읽은 책..

저자가 1년간 유럽에 살면서 방문했던 미술관 투어를 기록했다.

우선 방대한 미술관 수에 놀라고, 그렇게 많은 미술관에서 특별전시회가 끝없이 진행되고 있음에 놀랐다.

남의 유적을 많이 빼앗아 자신들의 교양을 넓혔던 유럽은 그 이후 많은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것 같다.

덕분에 현대 예술의 다양한 사조를 만들고 예술세계를 이끌고 가는것 같다. 물론 지금은 미국에 좀 밀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쌓아놓은 업력은 무시할 수 없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듣던 작가들의 작품을 대중교통으로 방문해서 감상할 수 있는 유럽의 미술관이 부러웠다.

책으 읽으면서 이 미술관 한번 방문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특별전시전이라 내가 갈 때는 작품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고, 특별 전시전으로 통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의 작품이 함께 모일 수 있었고 그 곳을 방문해서 감동과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는 걸 부러워했다.

역시 돈 벌어서 유럽에서 살고 싶다.


p73 브레라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사실 따로 있다. 미술관 마지막 전시실에서 인사를 건네는 프라체스코 하예즈의 키스다

p92 엄혹했던 중세의 끝자락, 이 그림은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며 최초로 여인의 누드를 등장시켰다. 실물로 본 보티첼리의 작품은 눈을 비비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냈다.

p104 15세기말 고대 로마의 시장터에서 발견된 이토르소는 많은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장 유명한 이가 미켈란 젤로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심판 속 바돌로매 사도가 이 토르소와 같은 형태로 그려졌다.

p122 카라바조의 기법적인 특징으로는 명암 대비를 통해 입체감을 극대화시키는 키아로스쿠로와 후기작에서 도드라지는 테네브리즘이 꼽힌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 기법은 등장인물을 단순화하고 배경을 칠흑 같은 검정으로 칠해 마치 연극 무대의 핀 조명 같은 효과를 만든다.

p145 당시 사람들은 이 풍경화를 매우 급진적이라고 생각했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그림은 영국 시골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여겨진다. 세월은 모든 아방가르드를 평범하고 익숙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p154 반복해서 미술관을 찾으면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띈다. 그림이 교체되거나, 전시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번 찾을수록 더 좋은 곳이 미술관이다.

p175 아라크네는 제우스만 고발하지 않았다. 인간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포세이든, 크로노스 등을 모두 단죄했다. 아라크네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 강인하고 패기 넘치는 여성의 전형이라는 해석이 오늘날 얼마든지 가능한 이유다. 현실의 폭력에 입을 틀어막힌 채 실을 짓는 노동을 강요당해온 여성들은 모두 거미 여인의 후손, 즉 아라크네의 자식들이다.

p242 1897년 클림트는 빈 분리파를 창립하며 아카데믹한 회화 전통을 거부하고 장식적 접근 방식을 추구하는 예술가 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빈 대학 그레이트홀의 천장화 연작(철학, 의학, 법학)이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그의 명성이 위태롭게 되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던 빈 분리파에서 탈퇴한 직후에 키스를 완성했다.

p174 레오폴트 미술관은 레오폴트 부부의 컬렉션 덕분에 1900년대의 빈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게 됐다. 그래픽아트에서 문학, 음악, 연극, 무용, 건축, 의학, 심리학, 철학을 경제학 등이 교류하고 충돌하며 혁신을 만들어내던 모더니즘의 봄을 한 미술관에서 만나는 건 무척 즐거운 경험이다.

p301 독일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은 “라파엘로의 드레스덴 시스티나 마돈다는 독일인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예술과 종교에 대한 논쟁에서 독일인들을 통합하거나 분열시켰다”라고 책에 쓰기도 했다.

p310 나에게는 춥고 쓸쓸한 북구의 예술가만 그릴 수 있을 법한 황량한 폐허의 풍경으로 각인된 작가다. 프리드리히의 작품 10여 점을 걸어놓은 홀은 겨울 광야에 홀로 선 수도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숭고함이라는 단어가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작가는 없다.

p345 페르메이르는 열한 명의 아이를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이었으면서도 부엌의 작은 구석, 소녀의 방 한쪽으로 자신의 시선을 가져가는 미스터리한 화가였다.

p356 나는 아침 9시 이전에 도착했음에도 100미터가 넘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대형 미술관이 전시장별로 동선이 흩어지는 것과 달리 한 작가를 위한 이 미술관은 대부분의 관람객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연대기 순으로 1층부터 꼭대기층가지 올라가는 일관된 동선을 따르기 때문인 것 같다.

p375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소설과 동명의 영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성지순례의 인파가 부쩍 늘어났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특별했다. 소리 소문 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 속 한 화가의 삶에 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이 그림을 언젠가는 보고 말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p402 아르테미시아의 인생은 모든 면에서 선구적이었다. 20세기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던 성공한 여성 화가였다. 드로잉 예술 아카데미인 아카데미아 델레 아르티 델 디세뇨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일생에 걸쳐 후원자의 지원을 받고 그림으로 생계를 꾸리고 독립할 수 있었던 여성은 당시에는 그녀 외에 없었다.

p408 일반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집중된 드농 윙으로 입장해, 동쪽, 북쪽으로 향하는게 지름길로 알려져 있다. 조각상 밀로의 비넛,와 승리의 여신 니케, 함무라비 법전, 안토니오 카노바의 프시케 조각 같은 대표작을 지름길로 가다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p417 3부작이 각각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나눠져 있는 파울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를 만나며 회화관에 입장하게 된다.

p430 팔라초 바르베리니를 상징하는 그림은 이 미술관의 대표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지네브라 칸토폴리의 터번을 쓴 여성이다. 베이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로 알려진 터번을 쓴 여성은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이자 칸토폴리의 스승인 귀도 레니의 작업이라고 잘못 알려졌던 작품이다. 여성 화가 지네브라 칸토폴리는 뒤늦게 명예를 되찾았다.

p458 이 우연한 여행으로 나의 카라바조 순례는 막을 내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런던, 스페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들이 1년 동안 경쟁적으로 카라바조의 특별 전시를 열어준 덕분에 가능한 여정이었다.

p461 지루하면 죽는다에서 뇌과학자 조나 레러가 말하길 “인간의 뇌는 늘 향후 예측을 시도하는 패턴 기계지만, 도파민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건 뜻밖의 놀라움과 미지의 무언가, 즉 미스터리”라고 했다. 계획 없는 여행만큼 뇌를 자극하는 게 있을까

p462 463 나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장거리 트럭 운전사에서 미국 최고의 미술 평론가가 딘 입지 전적인 인물 제리 살츠가 예술가가 되는 법에서 한 조언을 좋아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이 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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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
김원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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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브랜드로 읽는 그리스신화
작가 : 김원익
출판사 : 세창출판사
읽은기간 : 2026/07/07 -2026/04/28


표지가 재미있어서 사서 읽었다.

책이 두꺼운데 이야기체로 쓰여 있어서 읽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서 읽다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나 나오고, 그 신화에 얽힌 브랜드들을 소개를 해준다.

저자가 참 꼼꼼하게 조사를 했다. 큰 브랜드 뿐만이 아니라 동네 브랜드까지 나와서 가끔 저자의 성실함과 꼼꼼함에 놀라게 된다.

각 브랜드들이 그리스신화를 사용한 것을 보면 어떤 브랜드들은 실제 그리스신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광범위하게 스토리를 가져다 쓴 반면, 어떤 브랜드들은 이름만 가져다 쓰기도 했다. 성공한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그리스신화를 좀 더 광범위하게 스토리라인을 만들었으면 더 멋있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나중에 브랜드를 만들면 이런 책을 참고해서 멋진 네이밍을 해봐야겠다.

재미있었다.


p19 가이아는 태초에 카오스에서 다른 4명의 신들과 함께 동시에 태어났다. 사랑의 신 에로스, 지하에서 가장 깊은 곳의 신 타르타로스, 밤의 여신 닉스, 지하 세계의 암흑의 신 에레보스가 바로 그들이다. 카오스는 누구와 짝을 이루지도 않고 혼자서 5명이나 되는 신을 낳은 셈이다.

p26 올림포스 신족이란 정확하게 어떤 신들을 지칭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제우스 6남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올림포스산에 산성을 쌓고 크로노스에게 반기를 들었던 티탄 신들을 말한다. 또한 제우스가 여신이나 인간들과 관계를 맺어 낳아 대업을 맡긴 자식들도 모두 올림포스 신족에 속한다.

p30 타이탄은 미국의 오토바이 회사나 슈퍼컴퓨터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 제품들이 힘이나 규모에서 세게 최고라는 이미지를 불어일으키기 위한 인문학적인 발상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 텍사스주의 엘링턴에 있는 식스 플래그스 놀이공원에 세워진 세계 최대 규모의 롤러코스터 이름도 타이탄이다.

p35 페르세우스는 아틀라스의 냉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힘으로는 그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갑자기 마법 자루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꺼내 아틀라스의 눈앞에 쳐들었다. 아틀라스는 그 순간 정상이 구름 속에 가려진 엄청나게 높은 산맥으로 변했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아틀라스산맥이다.

p74 그리스로 하이마는 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티폰은 피를 흘리며 다시 시칠리아로 도망쳤지만, 제우스가 재빨리 다시 그를 향해 던진 시칠리아의 에트나산 밑에 깔리고 말았다. 고대인들은 활화산 에트나가 뿜어내는 불을 괴물 티폰이 토해 내는 숨결이라고 생각했다.

p88 헤르메스는 언변의 신이었기에 또한 도둑의 신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유능한 장사꾼만 말을 잘한 게 아니라, 사기꾼들도 대부분 달변이다.

p121 신전 동편 오른쪽에서 세번째 기둥 아래쪽을 살펴보면 그리스 독립을 위해 애쓰다 열병으로 죽은 영국 시인 바이런 경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1810년 아테네에 머물던 바이런은 수니온곶을 찾아왔다가 매우 감동한 나머지 신전 기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두었다고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새겨 넣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은 특히 석양 무렵이 아름답다. 석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 못지않다.

p125 철학자 헤겔은 그리스 신 중 아테나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법철학 초안의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것은 어떤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아니라 한참 시간이 지나야 생긴다는 뜻이다.

p132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포도주의 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디오니소스는 헤라에 대한 원한을 씻은 지 오래였다. 그는 이미 소아시아를 거쳐 인도를 여행하며 헤라 때문에 생긴 마음의 앙금을 깨끗하게 털어 냈다.

p152 오래 전 아테네 근교에 여장을 풀었던 우리 신화 여행단 도반들이 밤늦게 바로 그 디오니소스 레스토랑에서 와인이나 맥주잔을 기울이며 바라보던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이 너무 그리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집결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p175 에리크토니오스는 아테나의 보호 아래 아크로폴리스에서 헌헌장부로 장성한 뒤 암픽티온이라는 당시 아테네의 부정한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에리크토니오스는 선정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고 명실상부한 아테네 시민들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아테나를 기리기 위해 판아테나이아 제전을 만들었고, 4마리의 마차가 끄는 마차를 발명했으며, 죽어서는 신으로 추대되어 아크로폴리스에 묻혔는데, 그곳이 바로 에레크테이온이다

p185 탄탈로스의 형벌이라는 관용구도 그가 받은 형벌에서 유래했다. 그것은 주변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애타는 상황을 넣고 하는 말이다.

p193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3가지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첫째,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다. 둘째, 제우스가 대홍수를 일으켜 멸하려 한 인간을 구해주었다. 셋째,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보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러기 위해 인간의 마음속에 맹목적 희망을 심어주었다.

p225 현대의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토론만 할 뿐 고대 그리스의 와인으로 대변되는 술은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내 생각엔 고대 그리스의 의미에서 심포지엄은 그 뒤에 벌어지느 ㄴ뒤풀이로 비로소 완성된다. 아니다. 그 뒤풀이에서 술을 마시면서 하는 토론이 진짜 심포지엄이다

p247 켈수스 도서관이 4개의 여신상을 세운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4개의 여신상은 지혜, 덕성, 지성, 지식을 고루 갖춘 인물들을 육성하겠다는 켈수스 도서관의 교육이념의 상징일 것이다. 1970년-1978년에 재건된 현재 도서관 정면의 4개의 여신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빈 미술사박물관 중 노이에 부르크의에페소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p248 아레테는 덕 혹은 탁월을 의미하는 그리스 철학의 핵심 개념의 하나이다. 아레테는 인간이나 사물이 각자 주어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살아내는 즉 각자의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하는 최선의 상태를 뜻한다.

p261 델피에는 또한 크로노스가 막내아들 제우스인 줄 알고 삼켰다가 게워 낸 또 다른 돌도 전시되어 숭배를 받았는데, 크기나 형태가 옴팔로스와 아주 비슷해서 사람들이 가끔 두 돌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p262 한반도의 배꼽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는 그곳의 기운이 가장 세다. 실제로 참성단의 자기장 수를 측정해 보니 65회나 되었다. 46회인 합천 해인사의 독성각이나 20회였던 운문사를 훨씬 상회하는 숫자이다. 기도발이 좋아 수능 철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팔공산 갓바위도 16회에 불과한다. 단군왕검이 왜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울러 마니산 참성단이 한바도의 배꼽이라면 그 맞은 편 등줄기의 한가운데 지점은 바로 태백산 천제단이다

p263 파우사니아스에 의하면 옴팔로스는 온래 옷감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밖에 있는 것이 옷감 안에 있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옷감으로 덮은 옴팔로스를 복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p269 이 메두사에 따르면 페이디아스는 메두사를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 얼굴을 보면 돌이 되지만,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미인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p280 이 관용구는 13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사르트르 성당의 남쪽 장미 창에 그려 있는 성화로도 시각화되어 있다. 이창에는 구약의 4명의 선지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거인의 모습으로 서 있고, 그들의 어깨위에는 각각 그들보다 훨씬 작은 모습으로 마치 난쟁이처럼 신약의 4대 복음서 저자인 마태, 누가, 마가, 요한이 올라서 있다.

p289 오리온자리의 앞에는 황소자리가 있어 마치 오리온이 황소를 사냥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황소자리안에 플레이아데스성단이 들어 있어서 마치 오리온이 황소뿐 아니라 여전히 플레이아데스 7자매를 추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304 알을 낳은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레다가 아니고, 또한 헬레네가 나중에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은 그녀가 바로 불화의 여신 네메시스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p320 그리스 신화에서 페가소스는 시인에게 바쳐진 동물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시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는 것이기에 날개 달린 천마 페가소스가 시인의 상상력을 상징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페가소스는 9명의 예술의 여신 무사이(뮤즈)와 자주 함께 어울린다.

p355 소크라테스는 델피의 신탁이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지목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오만을 떨지만, 자신은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솔직하게 시인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p365 이곳에서 벌어진 숱한 전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BC 480년 페르시아 전쟁 때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과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왕 사이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다

p375 동서남북 바람의 신 4남매를 총칭하는 아네모이의 로마식 이름인 벤티는 라틴어인데, 이탈리아어로는 숫자 20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에서는 20온스, 약 591ml의 커피 용량을 나타내는 단위로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커피 용량 벤티의 이름을 딴 더벤티라는 커피전문점이 있다.

p384 네메시스는 에리니에스와는 달리 혈연 관계가 아닌 인간들 사이의 복수를 담당했다

p389 주로 남자가 외모에 너무 강한 집착을 보여 자신보다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도니스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완벽주의자인 데다 자존감이 무척 낮아 자신의 외모나 몸매에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

p392 그러는 사이 아도니스의 시신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며 그의 핏속에서 아네모네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래서 그랬을까? 서양에서의 아네모네의 꽃말은 거절당한 사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병의 상징이고, 일본에서는 나쁜 소식의 상징이다.

p410 예로부터 핏줄은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부모로부터 예술가 유전자를 이어받은 오르페우스는 노래와 리라의 달인이었다. 그가 리라를 켜며 노래를 부르면 들짐승, 날짐승, 길짐승뿐 아니라 산천초목이 화답했다. 사자와 호랑이는 포악한 성정을 눅였다. 나무도 선율에 맞추어 춤을 추듯 가지를 흔들었다. 생명이 없는 바위나 돌조차도 기뻐 날뛸 정도였다.

p424 더 이상 사랑의 힘을 의심하지 마라. 나는 이 음습한 곳에서 너희들을 데리고 나갈 것이다. 이제부터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라

p470 부조리한 삶은 종교나 형이상학이나 심지어 자살을 통해서도 초월하거나 회피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지프 신화는 긍정적인 두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정상을 향한 (시지프의) 투쟁은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합니다.

p480 어떤 그림은 포르투나가 두 손으로 풍요의 뿔을 들고 그 속에 가득차 있는 보물들을 짐승들에게 쏟아붓는다. 부라는 것은 누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포르투나 기분대로 아무에게나, 심지어 짐승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p503 그런 퍼포먼스는 헤스티아 신전 앞에서 그녀의 여사제로 분장한 여인들이 해야 제격이다. 헤스티아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화로를 담당했던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번도 분쟁이나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다. 제우스가 티탄 신족과 싸울 때도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와 함께 한쪽에 비켜서 있었다. 올림포스 궁전의 평화를위해 디오니소스에게 12주신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평화와 화합을 사랑했으니 올림픽 정신에도 딱 부합되는 신이다

p514 그에 의하면 영웅은 (1) 일상적인 나날을 살아가다가 (2) 모험에의 소명을 부여받고 (3) 그 소명을 거부하다가 (4) 정신적 스승을 만나 (5) 첫 관문을 통과하여 모험의 세계로 들어서서 (6) 시험을 당하는 과정에서 협력자와 적대자를 만나고 (7) 두 번째 관문이자 괴물의 소굴인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8) 그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시련을 극복한 뒤 (9) 그 보상을 받아 (10) 귀환의 길로 접어들어 (110 마치 사지에서 부활하는 것처럼 세 번째 관문인 또 한 번의 엄청난 시련을 극복한 다음 (12) 드디어 영약을 가지고 귀환한다

p547 문학 작품 속에 그려지는 메데이아의 모습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자식 살해의 주제를 처음으로 작품에 도입한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해석에 따라 메데이아를 그리스 신화 최고의 악녀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메데이아에 대한 좀 더 오래된 기록들을 찾아 그녀를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복권시키려는 시도이다

p549 볼프는 여신이자 사제 그리고 치료사로서 전혀 부정적인 측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메데이아가 그리스 최고의 마녀나 악녀로 전락한 것은 바로 그사이 사회에서 무엇인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볼프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모권제 사회에서 가부장제 사회로의 이행이다. 여신, 사제, 치료사에서 악녀로 추락한 메데이아는 모권제 사회에서 부권제 사회로의 이행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p554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는 갑자기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 등장하여 벨로키랍토르 공룡에게 죽을 절제절명의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을 구해준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는 갑자기 거대한 독수리들이 등장하여 프로도아 샘와이즈를 모르도르로부터 구출해 낸다. 위에서 언급한 말 탄 사자, 티라노사우루스, 독수리들은 현대판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셈이다.

p582 캠벨은 전 세계 신화 속 영웅들은 여정은 똑같고 얼굴만 다른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p590 그때부터 아이게우스가 자살한 바다는 그의 이름을 따 아이가이온 펠라고스로 불렀다. 그것은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Aegean sea, 우리말로는 에개해라고 한다.

p595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가 잠깐 외출한 사이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고의로 손톱으로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도 냈다. 이어 히폴리토스가 혼자 있을 때 방으로 들어와 자신을 겁탈했다는 거짓 유언장을 하나 남긴 채 목을 맸다.

p603 다른 하나는 새어머니와의 사랑을 꿈꿀 정도로 자유분방한 알렉시스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지극히 도덕적이었던 바흐를 대비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이 곡의 제목이 바흐를 원망하고 조롱하는 듯한 굿바이 존 세바스치안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선곡이 아닐 수 없다

p619 헬레네의 납치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후세의 화가들도 이것을 의식했는지 2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그래서 어떤 화가의 그림에서는 헬레네는 납치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에 비해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 헬레네는 파리스의 손을 잡고 즐겁게 그를 따라간다

p622 트로이 전쟁은 파리스의 심판으로 인해 트로이에 납치당한 스파르타의 왕이 헬레네를 찾으러 간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벌어졌지만, 에우리페데스나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정작 헬레네는 트로이에 간 적이 없었거나 바람으로 빚은 가짜였고, 결국 애먼 트로이만 몰락시켰기 때문이다.

p636 괴테는 기행문을 쓸 만큼 이탈리아에는 오래 머물렀어도 그리스를 방문한 적이 없다. 다만 미스트라스에 관한 자료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곳을 파우스트와 헬레네가 만나는 장소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나는 그리스에 갈 때마다 거의 매번 미스트라스에 들러 여행 도반들에게 그곳에서의 파우스트의 행적을 설명해 주곤 한다

p706 프랑스의 대통령 궁 엘리제도 바로 엘리시온에서 나온 말이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샹젤리제는 엘리사온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p723 슈베르트는 총 18연으로 이루어진 실러의 그리스 신들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맨 마지막 연 8행만을 가사로 활용했다. 어떤 행은 중복해서 사용했다. 슈베르트의 가곡 그리스 신들의 가사 전문을 소개한다. 슈베르트는 이 가곡을 성스러운 그리움을 품고 천천히 부르라고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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