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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 - 그 바다는 무엇을 삼켰나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 : 이순신의 바다
작가 : 황현필
출판사 : 역바연
읽은날 : 2022/04/05 - 2022/04/08
역사강사로 유명하신 분이 이순신 일대기를 썼다.
어릴 때 이순신 위인전을 읽었었는데 위인전을 다시 읽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무과 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실제였구나.
하늘이 조선을 버리지 않아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보낸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적재적소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에 비해 원균은 어찌 그렇게 무능한지...
능력은 없는데 욕심만 많은 경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지 원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는데, 지금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임진왜란의 전장터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어 이해도 쉽고 내용도 참 읽기 쉽게 잘 썼다.
좋은 책이다.
p22 조선의 무과 합격자들은 말을 타고 칼을 쓰고 활을 다루는 등 제대로 된 정규 무인 코스를 수년간 밟은 프로급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낸 무인들이었다.
p79 긴장된 상황에서 이순신은 전 수군을 엄중히 타일렀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정중하라”
p104 당시 직책만 전라좌수영의 조방장일 뿐 실제 이순신의 고문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이 거물급 고참을 진중에 모셔놓고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으니, 정걸을 부른 이순신도 대단하거니와 도와 달라는 새까만 후배의 요청을 받아들인 정걸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
p145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의 상황까지 계산해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고, 또 적군 패잔병에 의한 우리 백성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이순신의 애민의 마음을 원균은 헤아릴 수 없었다
p153 한산도 대첩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 차례 이순신과 대결하였지만 용인전투에서처럼 용감한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어떤 전투를 앞두건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와키자카는 이순신에게 패배의 쓴맛을 톡톡히 보았고 이순신에게 겸손을 배웠다
p185 부산포해전 한달 후인 1592년 10월, 일본군은 호남으로 넘어갈 수 있는 관문이었던 진주성을 공격했으나, 성주 김시민과 진주성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진주성은 지켜졌고 일본군은 육지로의 호남 진출을 다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시민은 전사하였지만 그의 위명은 일본에까지 남아 모쿠소라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p204 나라로부터 별로 받은 것도 없으면서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떨쳐 일어나는 이상한 DNA를 가진 민족성을 일본군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p235 사상 최초의 수륙합동작전에서 최고 지휘관인 윤두수와 권율은 전장 근처에 오지도 않았다. 이들은 이순신에게만 무리한 공격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 수군은 장문포해전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은 채 2척의 일본 함선을 격침시켰다.
p236 이원익은 이순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순신은 침착하고, 남에 대한 말을 하지 않으며, 오로지 나라 걱정이 가득했다. 항상 계획적이었고 꼼꼼한 사령관이다”. 사람 보는 눈이 밝은 이원익은 원균 또한 직접 만나보고는 이렇게 평가했다. “원균은 결단코 기용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p244 순왜자는 조선인으로서 왜에 항복하고 왜군 편을 들었던 이들을 말한다. 반면 항왜자는 일본군임에도 조선에 항복한 후 조선 편을 들면서 일본에 저항하는 이들을 가리켰다
p263 1595년 한산도를 찾아와 잔치를 베풀며 수군을 위로해주었고, 이순신이 옥에 갇혔을 때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원익은, 직접 구례까지 백의종군 중의던 이순신을 찾아와준 것이다. 이원익은 이순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고 소복을 입고 이순신을 문상했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p287 칠천량해전은 육지의 용인전투와 더불어 임진왜란의 최대 패전이었다. 134척의 판옥선 중 122척이 불탔거나 침몰하였다는 기록이 일본의 정한위략에 남아 있다. 배설의 판옥선 12척이 살아서 이순신에게 돌아가게 되니 교차 검증이 된 셈이다
p298 실제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직을 다시 임명받은 후 정유재란이 전개되는 동안 임금 선조를 향한 망궐례를 올리지 않았다. 지방관이라면 당연히 보여야 할 충성의 의무를 이순신은 행하지 않았다.
p369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북적거린다. 그러나 현충사는 한적함이 좋다. 그게 서글프다
p385 이순신은 나라를 잃고 이민족에게 지배당할 뻔한 역사적 수치스러움을 개인의 능력과 헌신으로 막아내었다. 이순신은 분명 조선을 살린 것이 맞다. 그렇지만 이순신은 조선의 미래까지 바꾸지는 못하였다.
p387 훗날 시마즈 가문의 사쓰마번이 조슈번과 연계하여 에도 막부를 타도하면서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내었고, 그들이 정한론의 선두주자가 되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며 조선을 도다시 침략했던 중심세력이 되었으니, 역사가 참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도 이들은 일본 내 가장 극우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