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밤의 미술관 : 이탈리아 - 내 방에서 즐기는 이탈리아 미술 여행 Collect 13
김덕선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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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일 밤의 미술관 - 이탈리아

 : 김덕선

 : 동양북스

읽은기간 : 2024/03/14 -2024/04/12


'90일 밤의 ...'는 시리즈인것 같다. 음악도 있고, 미술도 있다.

이 책은 그중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이야기다.

밤에 잠자기 전에 읽어야 하는 책 같아서 침대 옆에 두고 중간중간 읽었다.

제목의 의도대로라면 한장씩 읽어야겠지만 보통 2-3장씩 읽어갔다.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은 이탈리아여서 그런지 소개되는 작품의 수준이 높았고, 아는 작품도 많았다.

미술관에서 설명을 들으면 더 좋았겠지만 책으로나마 사진으로 보니 아쉬움이 좀 달래지기는 했다.

나중에 여행가면 꼭 가서 봐야지 하는 작품이 참 많았다.

이탈리아는 참 복받은 나라인 것 같다. 부럽다..


p41 나는 붓으로 그렸거나 청동으로 구운 라오콘 군상도 여럿 보았는데 그 가운데 대리석으로 만든 이 작품이 제일 낫다. 한 덩어리의 돌을 재료로 사용해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의 모습과 ㅎ뱀들이 이들을 휘감아 조이는 놀라운 형상을 재현했다. 로도스 출신 세 족각가 아겐산데르, 폴리도루스, 아테노도루스가 작업한 것이다

p48 바티칸에서 볼 수 있는 마르수피니 대관식은 마사초의 원근법으로 공간의 깊이감이 완벽하게 표현되었고, 배경은 플랑드르 화풍을 따라 세밀학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필리포 리피는 세 패널 상단에 푸른 하늘을 그려 넣어 답답하고 막힌 공간이 아닌 천상의 하늘위에 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p58 이 작품은 벽면에 생석회를 바른 후 젖은 상태에서 스케치와 채색을 마무리하는 프레스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페루지노가 화가로서 돋보인 기술을 밝고 명료한 색감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 출신 화가답게 청명한 파란 하늘을 통해 깊이와 평안함을 넣고 지상에는 건축물, 단아한 나무를 수평으로 배치애 좌우 대칭의 안정되고 통일된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p69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문학가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생애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말을 확인해보려면 500년 전의 한 작품 아래 서야 합니다. 왜 작품 앞이 아니라 아래일까요?

p73 이전 화가들은 명암과 원금감을 사용해 정적인 3차원 공간을 표현한 것이 최선이었다면, 그의 첫 프레스코화는 각각의 장면이 움직이는 것 같은 입체감과 현실감이 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도 하죠.

p79 헤라클레이토스 왼편에는 이 그림의 유일한 여성,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히파티아가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플라톤의 정신과 아프로디테의 육신으로 불리며 신격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얼굴은 율리우스 2세의 조카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라 로베레를 모델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림 왼편에서 관람자의 시선을 맞추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라파엘로 애인의 얼굴이 모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p83 라파엘로는 페루지노 공방에서 일하며 스승과 당대 예술가들의 모든 기법을 받아들였습니다. 깊이 있는 색채 표현과 우아하고 서정적인 인물 묘사, 원근법을 이용한 균형 있는 공간 구성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죠. 가장 존경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까지 연구하며 아테네 학당을 통해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뽐냈습니다.

p85 이전에 추구하던 깊이 있는 색감을 뛰어넘어 빛과 어둠의 완벽한 대비를 통해 다가올 바로크 사조까지 암시하고 있죠. 즉, 이 그림은 구도, 색채, 운동감까지 르네상스 미술이 추구하던 모든 가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93 이전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선보인 수학적 규칙을 이용한 웅장한 건축적 배경이나 플랑드르풍 아름다운 자연은 그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시선을 옮기는 화려한 배경은 지워버리고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 사이로 드러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인물의 내면과 주제가 또렷하게 부각되는 강렬한 인상의 작품을 그려냅니다. 성화 속 인물들도 상상 속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그가 일상에서 만난 하층민들을 모델로 하여 현실적으로 그렸습니다.

p127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그의 작품 분위기가 어느 정도 예상되지 않나요? 그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하고 폭력적이라는 평을 받았고 그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답했습니다. “현재 삶이 폭력적이지 그림은 폭력적이지 않다”

p132 라파엘로는 마르게리타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가고 후원도 끊길지 모르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존재를 숨겼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마르게리타는 결국 라파엘로 곁을 떠났죠. 뒤늦게 마르게리타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은 라파엘로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사과의 마음을 담아 라 포르나리나를 그렸습니다.

p139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의 모습에는 눈물이나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얀색 두건을 쓴 소녀에게서 정결함이 느겨집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가 생기가 도는 붉은 입술은 20대 초반 아름다운 여인의 생기를 부족함 없이 우리에게 보여주죠. 억울하고 처연한 모습이 아니라 무력한 현실과 절망을 지나 내면의 자유를 얻어 온화해진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더 측은한 마음이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143 라파엘로는 이러한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 안정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인 그림을 표현했습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각 인물의 움직임과 근육의 표현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보고 배운 것입니다.

p160 청년이 된 바쿠스는 술에 취해 각지를 떠돌아다녔고, 사람들에게 포도 농사와 포도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며 수확물을 통해 축제를 즐기고 자신을 숭배하게 합니다.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그를 섬기며 벌인 축제는 유명했습니다.

p191 마에스타는 금빛 배경 중앙에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가 정면을 응시하며 옥좌에 앉아 있는 구성으로 그려졌습니다.

p193 1260년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시에나가 피렌체를 누르고 승리한 것을 기념해 도시를 성모에게 바치기로 결정합니다. 그 상징적인 의미로 시에나는 마에스타를 주문했고 시에나의 성직자와 시민들은 그림을 들고 전쟁에서 승리한 도시를 행진했습니다. 그래서 마에스타가 처음 탄생한 곳을 이탈리아의 도시 시에나로 보고 있습니다.

p203 필리포는 화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수도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늘 추문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이를 보다 못한 코시모가 메디치궁으로 그를 데려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는데, 그조차 견디지 못하고 침대보를 잘라 밧줄로 만들어 도망쳤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속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창문으로 도망친 수도사라니, 상상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려지지 않나요?

p215 그림을 정면이 아닌 좌우로 이동하며 살펴보던 학자들은 몸을 숙여 오른쪽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다가 이내 무릎을 탁 쳤습니다. 다빈치는 그림이 성당 제의실 오른쪽 벽위에 걸릴 것을 고려해 그린 것입니다. 오른쪽 하단에서 그림을 올려다보면 마리아의 오른팔 길이가 현실적으로 보이고 사물의 비율이 한 시선으로 제자리를 찾아간 듯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p238 이 그림은 르네상스 최초의 나체화로 매번 회자되곤 합니다. 당시 보수적인 기독교 사회에서 나체의 비너스를 그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당시 피렌체에서는 기독교를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결합하고자 하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이 연구되던 중이었습니다. 보티첼리 또한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읽고 그것을 연구하던 인문학자들과 자주 교류했습니다.

p271 르네상스라는 커다란 짐을 벗어 던지고 개인의 기교와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진정한 예술을 찾고자 노력한 파르미자니노. 300년이 지난 20세기에 이르러서야 그의 작품은 재평가되기 시작합니다.

p281 신화 속 메두사는 여자인데 남자의 얼굴로 그린 것은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작품에서 표방한 것은 사실주의, 즉 그림 속 내용과 사건이 눈앞에서 일어난 듯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p287 아르테미시아의 초상화를 보면 유디트와 닮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그녀를 능욕한 아고스티노 타시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p305 이전 조각가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마저 손대지 못한 대리석 토막을 그가 어떻게 다룰지 궁금했던 겁니다. 조르조 바사리의 기록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작업에 방해되어 혼자 작업하는 내내 작업실 문을 걸어 잠그고 칸막이를 쳐 구경꾼들이 볼 수 없게 했다고 합니다.

p322 어떤 형태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조소라고 합니다. 조소는 조각과 소조로 나뉘는데, 조각은 단단한 재료를 밖에서부터 안으로 깎아 만드는 반면, 소조는 찰흙과 같이 부드러운 재료를 안에서 밖으로 붙여가며 만듭니다.

p338 피렌체 화가들이 수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선명한 선을 스케치해 원근법을 표현했다면, 베네치아 화가들은 선보다 색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p385 창작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는 사회가 변화했음을 알려주는 기준이 되기도 하죠. 성경에 등장하는 주제와 인물만 그리던 종교 중심 시대에 정물화는 대외무역으로 빠르게 부자가 된 새로운 사회 계층을 만족시킨 최고의 문화 상품이 되었습니다. 16-17세기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음식을 그린 그림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p391 당시 유럽은 흑사병이 창궐해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눈앞에서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피에타를 보며 성모 마리아에게 안긴 죽은 그리스도가 곧 부활한다는 것을 떠올리며 희망과 위로를 얻었죠.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주제의 숭고함으로 많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피에타가 완성되었습니다.

p392 미켈란젤로는 나이가 들수록 신앙심이 더 독실해지면서 창조의 영역은 곧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의 창조물은 한낱 베끼기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강해집니다. 신이 아닌 이상 그 어떠한 것도 완벽하게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여러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긴 미켈란젤로는 가시적인 형태에서 드러나는 의미보다는 미완성 작품을 통해 형체의 본질적 의미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p407 당시 이러한 기법이 얼마나 혁신적이었을까요? 그가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캔버스를 찢어 구명을 뚫는 데도 10년이 걸렸다라고 말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술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 이러한 시도는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p432 그는 티치아노처럼 분위기 묘사, 질감, 색채가 뛰어났고, 특히 풍요롭고 화려한 잔치모습을 틴토레토처럼 극적으로 생생하게 잘 그려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규모가 큰 작품 주문을 많이 받았고 그 덕에 남겨놓은 작품도 많습니다.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는 베네치아의 3대화가로 꼽히기도 합니다.

p473 당시 로마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청동 작품을 모각 혹은 복제해 로마의 도로, 광장, 목욕탕 등 다양한 곳에 전시했는데, 헬레니즘 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반대한 로마의 정치가 포르키우스 카토는 그 모습을 보고 “로마에게 정복당한 그리스가 도리어 로마를 정복하고 말았다”라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록 그리스 청동 조각의 진품은 볼 수 없어도 로마인들의 복제품 덕분에 현재 우리는 그리스인들의 예술품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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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평전 - 음악, 사랑, 자유에 바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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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차르트 평전

 : 이채훈

 : 혜다

읽은기간 : 2024/03/05 -2024/04/15


보통 이런 유명 작곡가 평전은 외국인이 쓴 번역된 책들이 많은데 특이하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다. 더구나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방송국PD다.

책이 벽돌책이라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다보니 읽는데 오래 걸렸다.

오래 걸린 것 치고는 책은 괘 술술 넘어간다. 

방송국 PD답게 책의 짜임새가 꽤 탄탄하다. 

레퍼런스가 많지만 어느정도 취사선택을 해서 쓴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런 부분이 약간 아쉽다. 내가 모차르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더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아쉬움은 별로 없었을텐데... 알고 있는 지식이 짧은 내 탓이다. 

위대한 작곡가의 일생을 책으로 배운다는 건 도전적이기도 하지만 꼭 해볼만한 작업이다. 

천재라고 해서 머리속에서 막 악상을 끄집어 낸 건 아니다. 모차르트도 바흐를 연구하고, 하이든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점점 발전시켜 나갔다. 음악이 세련되어지고 깊이가 있어지는 게 느껴진다. 

이런 책은 여러번 읽고 다른 평전도 읽어가면서 더 배워야 한다. 

이런 천재와 천재의 음악을 모르고 죽는다는 건 인생에서 의미가 없다. 


p16 그는 “내가 쉽게 곡을 쓴다고 생각하면 오해”라며 “고금의 중요한 작곡가 중 내가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p17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페루초 부소니는 말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류 작곡가, 소수의 일류 작곡가, 극소수의 위대한 작곡가, 그리고 모차르트가 있다”

p27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저녁 8시,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가세 9번지에서 태어났다.

p33 흥미로운 사실은, 모차르트의 음악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1762년 3월 4일 작곡한 알레그로 B플렛 장조 K3, 5월 11일 작곡한 메뉴엣 F장조 K4, 7월 5일 작곡한 메뉴엣 F장조 K5등 하나하나가 이전 작품보다 뛰어나다.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가정을 보는 듯하다

p35 이렇게 어렵게 완성된 네크롤로그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1798년 프란츠 자버 니메첵은 이를 자신이 쓴 최초의 모차르트 전기에 통째로 인용했고 이 내용은 오늘날 거의 모든 모차르트 전기에 등장한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네크롤로그 집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그녀에게 부탁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거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

p38 그는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를 싫어한 반면, 마음으로 음악을 느끼는 사람들 앞에서는 몇 시간이고 기꺼이 연주해 주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음악을 사랑한ㄷ”고 거짓말로라도 설득해야 그의 연주를 청해 들을 수 있었다

p45 그는 1790년 형에게 황제 지위를 이어받은 뒤 모차르트를 싸늘하게 외면한다. 이 절대 권력자들은 모차르트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판단 하나하나가 모차르트 인생에 굴절을 일으키고 생존 조건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p68 조지3세는 미국독립전쟁 내내 식민지 민중에게 폭군, 압제자 소리를 들었고, 말년에는 정신병을 앓으며 온갖 기행을 저지른 왕이다. 그의 독특한 행로를 묘사한 조지왕의 광기라는 코미디 영화도 있다. 왕은 훗날 요제프 하이든을 런던에 초청하여 극진히 대접하기도 했다

p79 레오폴트와 안나 마리아는 절망에 빠졌다. 그들은 난네를에게 세상이 덧없음과 어려서 죽는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유아사망률이 높던 그 시절, 부모들은 비참하게 고생하며 살기보다 일찍 죽는게 낫다며 자위하곤 했다. 난네를은 10월 21일 종부성사까지 받았지만, 카롤리네 공비가 보내준 의사 토마스 ㅅ퓨벵케가 처방한 약을 먹고 2주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p92 레오폴트는 올뮈츠 주임신부인 포트 슈타츠키 백작을 찾아가서 애원했다. “볼프강이 천연두에 걸린 듯하니 제발 선처를 부탁합니다” 천만다행, 백작은 모차르트 가족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친절을 베푼 것이다.

p95 레오폴트 씨는 자식 교육을 참 잘했더군됴요. 특히 아들은 귀여우면서도 우아하고, 활기 넘치면서도 예의가 바른, 한번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아이였어요. 잘 자라면 정말 뛰어난 음악가가 될 겁니다. 하세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음악 교사로 나폴리와 베네치아, 드레스덴과 빈 궁정에서 일하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가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p104 이 오페라가 일으킨 소동은 큰 후유증을 낳았다. 그때까지 모라츠트 가족에게 친절하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이 사건 이후 태도가 돌변했다. 레오폴트가 빈 궁정음악가들과 충돌하고 탄원서까지 제출함으로써 궁정의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본 게 분명하다.

p122 바이올린 신동으로 꼽히던 이 소년은 모차르트와 동갑이었고 키도 똑같았다. 두 소년은 만나자마자 금세 친해졌다. 모차르트는 그때까지 또래 어린이와 사귀며 어울려 놀 기회가 없었다. 린리도 마찬가지였다. 음악 신동으로 화려하게 살았지만 평범한 어린 시절을 빼앗긴 두 소년의 우정은 애틋하고 아름답다

p123 토마스 린리는 20여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극음악 세익스피어 찬가, 오라토리오 모세의 노래 등을 작곡하여 영국의 모차르트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스물두 살 되던 1778년 8월 5일 보트사고로 갑가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p145 11월 23일과 24일 밀라노에서 연주된 K.113은 모차르트의 관현악곡 중 클라리넷을 처음 사용한 곡이다 .그때까지 잘츠부르크 궁정 악단에는 클라리넷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사랑으로 녹아내리는 클라리넷의 음색을 좋아했다.

p150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는 미사 중 크레도 다음에 대주교가 복음서의 한 대목을 읽으면 오케스트라가 교회 소나타를 연주하는 전통이 있었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위해 작곡한 교회 소나타는 모두 열일곱 곡으로 교향곡을 능가하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p156 루치오 실라가 공연되는 동안 모차르트는 라우치니에게 부탁받은 모테트 F장조 기뻐하라, 환호하라 K165를 작곡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종교음악 가운데 레퀴엠 D단조, 대미사 C단조, 아베 베룸 코르푸스와 함께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p169 모차르트의 이 G단조 교향곡은 막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던 모차르트의 반항심이 자유를 추구하는 시대정신과 만나서 빚어낸 절규가 아닐까? 음악학자 헤르만 아베르트는 이 곡을 그동안 모차르트 안에서 몇번씩 불타오르던 정열적이고 염세적인 기분이 가장 격하게 표현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p176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은 “모차르트는 어린이가 치기엔 너무 쉽지만 전문 피아니스트가 치기엔 너무 어렵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틀리거나 어색하게 연주하면 바로 표시가 날 뿐 아니라, 모차르트 특유의 단순한 진행을 명료하게 표현하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의미다

p201 이 자리에서 모차르트는 루바토 기법에 대해 유명한 말을 남긴다. 나네테가 연주할 때 놓치는 것은, 아다지오의 루바토에서도 왼손은 템포를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연주할 때 왼손이 오른손을 엉거주춤 따라가선 안돼요. 모차르트는 오른손이 감정을 담아서 노래할 때도 왼손은 정확하게 템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 원칙은 루바토 기법에 대한 쇼팽의 소신과 별로 다르지 않다.

p204 모차르트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음악을 썼으나 고상한 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p219 포글러는 만하임에서 공연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루치오 실라를 혹평해서 모차르트를 화나게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평범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건방지게 구는 사람을 혐오했고, 그런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도 모르게 경멸을 드러내고 직설적으로 비판해서 본의 아니게 적을 만들곤 했다

p233 공작이 들어와 음악에 진지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다. 이 해프닝은 모차르트에게 깊은 상처가 됐다. 그러지 않아도 프랑스 사람들의 음악 취향과 언어에 거부감이 있던 모차르트는 이 일로 프랑스 혐오가 더 깊어졌다

p251 모차르트는 매우 품성이 착하고, 쉽게 사람들을 믿습니다. 커리어를 만드는 데는 너무 무관심하죠. 이곳에서 인상적인 사람이 되려면 약삭빠르고, 주도면밀하고, 대담해야 합니다. 성공하려면 그의 재능 절반이면 충분하지만, 처세술은 지금보다 두 배가 필요해요

p264 265 놀라운 것은, E플렛 장조로 된 곡인데 비올라 솔로 파트가 D장조로 기보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올라를 반음 높게 조율해서 D장조로 연주하면 결국 E플렛 장조가 된다. 비올라의 음색은 은은하고 내성적이지만 이렇게 현을 팽팽하게 조율하면 더 선명하고 밝은 음색을 얻을 수 있다. 선율과 화음 뿐 아니라 음색까지 창조재 낸 모차르트의 재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p270 졸리만처럼 사후에 잔인하게 모욕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몽군주 요제프 2세는 그를 높이 평가했으나 1796년 그가 사망할 때는 황제 프란츠 2세가 지배하는 반동의 시대였다. 황제는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공개 선언하기 위해 졸리만의 시신을 이용했다. 조각가 프란츠 탈러가 박제한 그의 시신은 희귀한 중남미 짐승들과 나란히 박물관에 전시됐다. 유족이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황제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 1848년 빈의 폭격으로 박물관이 불팠을 때 이 수치스런 인종차별의 증거도 사라졌다.

p308 신분사회를 비판한 그의 오페라는 황제의 계몽 정치와 잘 어울렸지만 귀족들의 반발을 샀다. 황제의 개혁으로 기득권을 위협받은 귀족들은 모차르트를 황제의 푸들 정도로 여기며 미워했다. 요제프 2세가 살아 있는 동안엔 아무도 그에게 손대지 못했지만, 1790년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빈의 귀족들은 일제히 모차르트에게 등을 돌린다.

p313 그는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IQ가 높아진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ㅇ낳고,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기도를 하니 머릿속의 핏덩어리가 사라졌고” “천사가 자기를 도왔다”고 횡설수설했다. 돈 캠벨은 미국 전역은 물론 일본과 한국까지 찾아와 모차르트 효과에 대해 강연을 하고 책을 팔았다. 모차르트를 팔아서 잇속을 챙긴 사기나 다름없었다.

p320 클레멘티는 더 빨리, 더 화려하게 연주했고, 과거에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기교를 선보였다. 그러나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을 준 것은 모차르트였다. 클레멘티는 모차르트의 연주에 열광했다 “그때까지, 이렇게 영감에 가득찬 우아한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특히 아다지오에 압도됐지요. 황제가 골라준 주제에 번갈아 변주를 붙여서 즉흥연주를 했는데, 그의 솜씨는 놀라웠습니다. 모차르트의 반응은 까칠했다.

p351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사랑을 받았지만 음악사에서 가장 미움받은 여자”가 됐다. 전기 작가들은 대체로 콘스탄체를 인색하게 평가했다. 모차르트의 가난에 책임이 있고, 남편의 장례를 엉망으로 치러서 시신이 실종되게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p363 빈에서 쓴 첫 피아노 협주곡(F장도 K 413, A장조 K414, C장도 K415)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곡들은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게, 매우 화려해서 귀로 듣기에 즐겁지만, 그렇다고 공허하지 않게 작곡했어요. 전문가만 만족할 만한 대목들이 군데군데 있지만 아마추어들도 이유를 모르면서 좋아할 곡입니다”

p368 왜 모차르트를 받아들이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그의 위대한 재능과 다정다감한 성품을 그때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죠. 엄청나게 후회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레아 징어의 소설 벌거벗은 삶에는 “결혼한 뒤에도 모차르트는 언니 알로이지아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 같다”고 콘스탄체가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개연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이야기다

p377 하이든에게 바친 여섯 곡의 현악사중주곡 중 두 번째 곡 D단조 K421의 메뉴엣이다. 영국의 음악사가 빈센트 노벨로는 1829년 잘츠부르크에서 콘스탄체를 만난 뒤 이렇게 써다. “그녀는 자기가 첫아이를 낳으며 진통을 할 때 모차르트가 D단조 사중주곡을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특히 메뉴엣을 우리에게 노래까지 해주며, 이 대목이 바로 진통을 들으며 쓴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절규하는 메뉴엣의 주제는 고통스런 출산의 비명, 아니, 아내 콘스탄체의 고통을 함께 하는 모차르트의 마음이었다. 부드럽고 맑은 중간 부분에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도 담겨 있는 것 같다

p384 11월 4일 화요일, 린츠 극장에서 예약 연주회가 열렸다. “교향곡을 갖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서 새 교향곡을 써야 해요.” 닷새 만에 완성한 교향곡 C장조 린츠 K425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얘기할 때마다 늘 언급되는 바로 그 곡이다

p414 잘츠부르크에서 빈에 돌아온 모차르트는 새롭게 출발했다. 그는 열심히 살았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9시까지 작곡을 하고, 오후 1시까지 레슨을 했다. 식사 초대가 없는 날은 오후 2-3시경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작곡을 더 했다. 저녁에는 연주를 하거나 밤 9시까지 작곡을 했고, 급한 일거리가 생기면 새벽 1시까지 작곡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은 어김없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p418 모차르트의 연주를 뚫어져라 지켜보던 리히터가 한탄했다. “하느님 맙소사. 나는 아무리 열심히 땀흘려 연습해도 쩔쩔매는데, 당신은 애들 노래를 연주하듯 쉽게 하는군요!” 모차르트가 답했다. “저도 열심히 연습을 했지요. 더 연습을 않아도 될 만큼 열심히 했단 말입니다.” 모차르트가 누구보다 부지런히 연습한 사람이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내용이다.

p421 피아노 파트를 미처 쓰지 못했고, 리허설을 할 시간도 없었기 대문에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파트만 써주고 피아노는 악보 없이 즉흥으로 연주했다. 요제프 2세가 어리둥절해서 “자네 파트 악보는 어디 있는가?” 묻자 모차르트는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p427 난네를은 조넨부르크 남작과 세 명의 자녀를 두었고, 1801년 남편이 사망한 뒤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p431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타미노와 파파게노가 겪는 침묵과 죽음의 시련은 바로 이 프리메이슨 입문 의례를 묘사한 것이다. 고대 로마의 권력자들은 메멘토 모리라는 말로 늘 죽음을 기억하고자 했다. 프리메이슨 의례는 모든 사라미 죽는다는 것을 상기함으로써 덧없는 욕망과 집착으 버리고 순수한 자아를 찾는 방편이었다.

p434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의 관계를 추적한 캐서린 톰슨은 열두 살 모차르트가 빈을 방문했을 때 메스머 박사를 통해 프리메이슨을 처음 접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프리메이슨 회원인 메스머 박사가 어린 모차르트에게 장 자크 루소의 사상과 프리메이슨의 존재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p443 모차르트는 그해 1월 14일 사중주곡 C장도 K465를 완성한 직후 “나는 현악사중주곡 쓰는 법을 하이든에게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모차르트는 공들여 쓴 이 곡들에 대해 선배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고, 하이든은 익히 뛰어난 천재로 알려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하이든은 러시아 사중주곡을 완전히 새롭고 특별한 양식으로 작곡했다.

p448 모차르트 음악은 하이든과 비교해도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1786년 빈을 방문하고 있던 디터스도르프는 황제 요제프 2세와 대화를 나누었다. 황제가 “하이든 음악은 한 번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반면 모차르트 음악은 여러 번 들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자 디터스도르프는 화답했다. “제 의견도 그러하옵니다. 폐하”

p452 레오폴트는 이날 연주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을까? 비밀은 아름다운 안단테에 있다. 피아노 독주자가 연주하는 둘째 주제 마무리 대목의 왼손 파트가 아버지의 피아노 소나타 C장조의 느린 악장 왼손 파트와 똑같았던 것이다. 모차르트가 이 아름다운 안단테를 아버지에게 바치며 그의 작품 중 한 대목을 인용하여 오마주를 표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아차렸기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p463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소중한 희망을 간직하는 거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존업성이라는 사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은 이 점을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인 중세 신분사회의 벽. 그 어둠 속에서도 모차르트는 자유와 평등의 꿈을 잃지 않았고, 이에 따르는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p467 초견연주와 짝을 이루는 것이 즉흥연주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청중의 갈채에 즉흥연주로 보답하곤 했다. 덴마크 배우 요아힘 다니엘 프라이저는 1787년 1월 프라하에서 모차르트의 즉흥연주를 듣고 이렇게 썼다. 이 자그마한 인간, 위대한 거장은 두 번의 즉흥연주로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가장 어려운 패시지와 가장 사랑스런 주제를 교묘하게 결합한 멋진 연주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p478 요제프 2세는 계몽군주였기에 피가로의 결혼을 승인했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절대군주였기에 이토록 파격적인 결정이 가능했다. 피가로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빈 궁정의 수많은 귀족 중 단 한사람도 황제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p486 베토벤은 피아니스트 존 크라머가 연주한 이 곡을 듣고 나같은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곡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음악학자들이 “베토벤의 협주곡 3번 C단조는 모차르트의 이 곡에 대한 오마주”라고 지적한다

p487 오페라 작곡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됐으니 피아노 협주곡은 대중들의 취향보다 자기 내면의 충동에 따라 작곡하게 됐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로서는 3-4년 동안이나 빈 청중의 비위를 맞췄으니 오래 참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496 스페인 작곡가 마르틴 이 솔레르는 러시아로 가는 길에 빈에 들러서 희귀한 일을 공연했는데, 1786년 11월 7일 부르크테아터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이듬해 봄 시즌까지 무려 78회나 공연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희귀한 일이 오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인 피가로의 결혼을 압도한 것이다.

p508 모차르트가 방문한 프라하는 여전히 사회적, 민족적, 종교적으로 차별받는 도시였다. 한국으로 치면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와 같은 도시가 바로 프라하였던 것이다.

p514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연주는 다소 구식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직접 모차르트의 연주를 들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를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게 연주한 반면, 베토벤은 소나타 월광의 피날레나 소나타 열정에서 보듯 피아노 줄이 끊어질 정도로 강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법을 구사했다. 피아노 음악은 빠르게 발전했고, 열네 살이라는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생각보다 훨씬 큰 세대 차를 의미했다.

p526 빈에 도착한 뒤 거의 매일 저를 진료해줘요. 이렇게 충실했던 바리자니가 1787년 9월 3일,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모차르트 앨범에 짧은 글을 남겼다. “그대의 친구를 잊지 말아주오. 세상의 즐거움인 그대를 두 차례 치료해서 더 살 수 있게 해드린 것은 저의 자랑이자 행복이지요” 모차르트는 바리자니의 글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오늘 9월 3일, 내 목숨을 구해 준 이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바리자니가 오래 살았다면

모차르트도 좀 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p534 19세기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한 챕터를 할애해 모차르트의 돈조반니를 예찬했다. 돈 조반니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사랑의 천재이자 실존의 영웅이다. 그의 행동은 빠르고 정확하며, 그의 에너지는 고갈될 줄 모르며, 그의 의지력은 평범한 인간의 한계 저편에 있다. 여주인공들은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 책임으로 사랑과 실존을 직면했을 뿐이다.

p538 이 오페라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의 세계에 공포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기사장이 돈 조반니를 심판하려고 등장하는 순간 트럼본 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모차르트는 이 트럼본을 합창석 높은 곳에서 연주하도록 했다. 빈에서는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다.

p548 그는 소탈했고, 때로 광대처럼 행동했기에 외모나 행동에서 모차르트의 위대성을 찾으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에로틱한 것에서, 비극적인 것에서 결정적인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진정한 위대성의 조건으로 보았다. 모차르트는 위대성을 밖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그의 위대성은 그 시대에도, 그 자신에게도 감춰져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말한다. “그는 너무나 비밀스럽게 위대했기 대문에 그의 시대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 자신은 더 몰랐다”

p551 그는 제국이 잠자고 있을 때 황제는 깨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근면했다. 하지만 그는 귀족과 사제들의 기득권을 축소했기 대문에 많은 적을 만들었고 이 불만 세력을 잘 다독이지 못했다. 개혁 과정에서 대중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고, 특히 장례 제도 개혁처럼 전통과 관습을 거스르는 조치는 커다란 반발에 부딪쳤다

p565 그 해 여름 작곡한 마지막 세 교향곡은 모차르트의 기악곡 중 최고 걸작이다. 세상을 초월한 듯 행복으로 빛나는 39번 E플렛장조, 아름다움과 슬픔의 고귀한 결정체인 40번 G단조, 당당하고 위엄 있는 41번 C장조 주피터. 이 세 곡을 삼형제별처럼 나란히 빛나며 교향곡의 역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이룬다.

p568 모차르트는 관습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그 법칙들을 완성하려 했지 그것을 깨뜨리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차르트의 독창적 어법과 개성 있는 예술이 그 시대의 기준이자 특징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모차르트는 한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끝에 서 있었기에 베토벤보다 더 먼 미래에 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p571 야상곡 창시자로 유명한 아일랜드 피아니스트 존 필드는 한 연주회에서 그의 즉흥연주를 듣고 “이건 악마 아니면 훔멜이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훔멜은 전성기 때 베토벤과 쌍벽을 이루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고, 협주곡 여덟 곡과 소나타 열 곡 등 수많은 피아노곡들을 작곡해서 직접 연주했다. 그러나 1830년대에 쇼팽과 리스트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는 낡은 음악가로 취급된다.

p584 모차르트는 이 노력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내 콘스탄체에게는 도움이 됐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지난 1796년, 콘스탄체는 라이프치히에 레퀴엠 악보를 갖고 와서 공연했다. 이때 라이프치히의 음악 애호가들은 그녀에게 후한 사례를 했고, 라이프치히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는 모차르트 전집 출판을 그녀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p587 왕은 모차르트의 솔직한 태도가 맘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 와서 일해 보시지 않겠소? 그대 말대로 악단이 개선되는지 한번 보고 싶소. 1년에 3,000탈러를 드리겠소. 모차르트는 제가 모시고 있는 황제를 어떻게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 말에 감동한 왕은 한참 침묵한 뒤 덧붙였다.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시오. 나중에라도 약속은 지키겠소. 왕은 이 일화를 여러 사람에게 얘기했고, 모차르트 사후 베를린에 온 콘스탄체에게도 말해 주었다. 세상을 떠난 그녀의 전남편도 똑같이 말했다.

p598 그는 이 악기 소리를 듣자마자 매혹되어 잘츠부르크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썼다. “아, 우리에게도 클라리넷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있는 오케스트라의 빛난느 효과를 아버지는 상상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사랑으로 녹아내리는 느낌을 표현하는 클라리넷은 그 후 모차르트가 따뜻한 감정을 노래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 오중주곡은 균형잡힌 선율, 기품있는 형식, 우수에 찬 달콤한 울림이 가득한 주옥같은 작품이다.

p605 오페라의 주제는 여자는 정조 관념이 없다가 아니라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피와 살로 된 인간이라는 단순한 진리로 재조명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난 후에야 현실의 사랑이 시작되며, 끊임없이 나누고 존중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결혼 생황레서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p613 모차르트는 황후 마리아 루이사가 자기에게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해 여름, 황후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여자는 다 그래를 혼자 관람했다.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그녀에겐 두 편 모두 거슬리는 작품이었다. 황후는 모차르트처럼 자유사상가이자 제멋대로인 음악가에게 자녀의 교육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p624 그가 영국에 갔다면 어쩌면 이듬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연 기획자 요한 페터 잘로몬에게 비슷한 제안을 받은 하이든은 이미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아내와 별거중이라서 홀가분하게 영국행을 결단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모차르트는 늘 콘스탄체와 의논했고, 그녀의 반대에 부딪쳐서 주저앉은 것으로 보인다.

p633 모차르트는 춤곡을 판매하고 받은 영수증 위에 이렇게 썼다. “내가 한 일에 비하면 너무 큰 돈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비하면 너무 하찮은 일이다”

p647 모차르트는 아내 없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는 보고 싶다는 말뿐이다. “내 유일한 소망은 일을 빨리 처리하고 당신 곁에 있는 거야. 이토록 오랜 시간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지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p660 오페라를 준비할 때 늘 그러했듯 마술피리도 초연 이틀 전에야 완성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과로로 앓았던 게 분명하지만 마술피리 초연 무렵에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p669 카를은 그날 아버지의 오페라를 처음 보았다. “카를은 오페라에 가는 걸 아주 즐거워했어요. 참 멋지게 생긴 아이지!” 콘스탄체가 바덴에서 요양할 때 늘 그녀를 따라갔던 카를은 이제 일곱 살이 지나 학교에 가야 했기에 모차르트와 함께 빈에 남았다. 카를은 마술피리 작곡에 몰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새잡이 파파게노의 아리아 정도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카를에게 이날 오페라 관람은 평생 추억이 됐을 것이다.

p672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자전적 오페라로 인식됐다. 첫 장면, 괴물에게 쫓기는 타미노의 모습부터 모차르트의 힘든 처지를 뜻하는 걸로 보였다. 벨기에의 작가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는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어린이로 돌아갔다고 보았다. “모차르트는 신동이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겨뤄야 했다. 그에겐 어린 시절이 없었다. 서른다섯 살의 짧은 삶을 마감할 즈음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모차르트는 목소리와 오케스트라로 마법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p673 타미노처럼 고고한 것을 지향하며 노력하는 자, 고귀한 인간성의 이상으로 넘치는 자였다. 동시에 그는 (파파게노처럼) 유쾌하고 천진한 젊은이, 세속적인 향락에도 마음을 기울이는 젊은이였다.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거는 타미노, 음식과 와인과 사랑만 있으면 만족하는 파파게노, 두 사람을 합치면 모차르트가 된다는 것이다.

p687 1791년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쓴 과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7월 하순(날짜 미상) <레퀴엠> 의뢰받음, <황제 티토의 자비> 작곡 및 프라하 여행. 9월 17일 프라하에서 빈으로 귀환, 9월 30일로 예정된 마술피리 초연에 집중 10월 중순(날짜 미상) 안톤 슈타틀러를 위한 클라리넷 협주곡 완성 10월 중순(날짜 미상) <레퀴엠> 본격 착수 11월 중순(날짜 미상) 프리메이슨 칸타타 작곡 위해 <레퀴엠> 잠시 중다 12월 5일 <레퀴엠>, 라크리모사 8마디까지 작곡하고 미완성으로 남긴 채 사망

p693 집에 도착한 그는 차가운 물수건을 달라고 하더니 모차르트의 펄펄 끓는 이마 위에 얹었어요. 하지만 열은 떵저지지 않았고, 모차르트는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모차르트는 사망할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어요. 레퀴엠의 팀파니 음률을 입으로 웅얼거린 게 형부의 마지막 동작이었어요. 지금도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요.

p696 모차르트는 이렇게 말하며 쥐스마이어가 쓰기에 버거운 대목들을 아픈 몸으로 직접 썼다. 지금도 레뮈엠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라크리모사 8마디까지만 듣는 사람이 적지 않다.

p706 콘스탄체와 카를 토마스의 증언을 보면 모차르트 유족들은 독살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p723 영국 사람들은 독일 출신인 헨델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정중히 모셨다. 이 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통탄할 일이다. 우리 스치스런 역사에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어떻게 이 일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모차르트여! 그대가 아끼던 찌르레기가 죽었을 때 그대는 셋집 정원에 묘비를 세워주고 직접 애도의 시를 쓰셨지요. 그대가 새를 추모하듯 누군가 당신을 추모할 날은 언제일까요?

p727 모차르트 음악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슬픔의 흔적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슬픈 대목은 일정한 희망의 빛을 담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우리가 모차르트 음악에서 찾을 수 있는 인간성의 단서가 된다

p734 모차르트는 한때 큰 도시의 궁정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어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모차르트 가족은 죽은 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장크트 제바스티안 성당, 누나 난네를은 장크트 페터 수도원,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멀리 파리의 생 의스타슈 성당에 잠들어 있다. 콘스탄체의 묘는 장크트 제바스티안 성당, 시아버지 레오폴트의 묘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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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 세계적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의 15가지 양육 법칙
버지니아 사티어 지음, 강유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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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 버지니아 사티어

 : 포레스트북스

읽은기간 : 2024/04/09 -2024/04/12


아이가 청소년이 되다보니 요즘은 육아책을 잘 안읽었다.

아동기까지는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을 하니 육아책을 읽으며 아이를 양육한다는 게 와 닿았다.

청소년기부터는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잘 보여주지도 않고, 생각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청소년기 육아책이라는게 주로 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책을 읽는게 한계가 있다.

맨날 아이와 성교육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이와 주로 이야기하는 건 아이돌, 개그이야기, 게임이야기이다. 

이런 분야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도록 알려주는 책은 전무하다. 

요즘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읽어본 이 책도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는 정말 아이인 것 같다. 

그래도 하나 팁을 얻은게 있다면 몇 달에 한번정도는 내가 어떤 부분이 변하고 자랐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써보라는 것...

작은 변화라도 서로 느끼고 축하해주는 건 좋을 것 같다.

육아는 쉬운 건 아니지만 또 즐겁기도 하다.

오늘도 아이와 하루 또 성장한다. 


p16 나는 가족 심리학자로 활동하면서 가정생활에는 다음 네 가지 요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이 요소들이 자녀가 어떤 성인으로 자라는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존가 :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과 생각 / 의사소통 : 서로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 규칙 : 어떻게 느기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법칙 / 관계 맺기 : 가족 이외의 사람 및 조직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p38 기분이 침울한 것과 솥이 비어 있을 대의 감정은 같은 게 아니다. 솥이 비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치 않는 감정을 겪을 때 그런 감정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p48 몇 달에 한 번씩 온 가족이 모여 각자에게 일어난 변화를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를 최신 정보 업데이트라고 부른다.

p57 몸 : 신체적인 부분 / 생각 : 지적인 부분 / 감정 : 정서적인 부분 / 감각 : 감각적인 부분 / 관계 : 상호작용적인 부분 / 환경 : 공간, 시간, 공기, 색깔, 소리, 온도 / 영양 : 섭취하는 액체와 고체 / 영혼 : 영적인 부분

p90 여기에는 두 가지 위험 요소가 있다. 첫째는 내가 내 기준대로 당신을 읽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신에게 라벨을 붙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남자인데 내가 당신이 우는 걸 봤다고 치자. 남자는 약해보이면 안 되므로 절대 울지 말아야 한다는 게 평소의 내 생각이라면, 나는 당신이 약한 사람이라고 결론짓고 그렇게 대할 것이다

p138 나는 예언자에 실린 칼릴 지브란의 사랑과 결혼관을 좋아한다. 함께 있더라도 그 사이에 공간을 두라 /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도록 / 서로를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를 바다가 춤추며 흐르도록 /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 서로에게 자기 빵을 거네되 한쪽의 덩어리만을 먹지 말라 /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되 각자 홀로 오롯하라 / 한 가락 음률을 위해 함께 떨리는 류트의 현들조차도 서로 떨어져 있듯이 / 그대들의 마음을 건네되 서로의 마음에 가둬두려 하지 말라 / 오로지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온전히 품을 수 있으니 / 함께 서 있되 서로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 신전의 기둥들조차 서로 떨어져 서 있으며 /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지 못하니까

p149 서로에 대한 이끌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배우자와의 호흡, 결혼에 대한 기대치, 둘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은 어떤 결혼 생활을 영위하느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p180 고유성은 자존감의 핵심 단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부는 동일성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차이점을 토대로 성장한다. 동일성과 차이점,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한 것이다.

p190 서글프지만, 실제로 가정은 꿈을 포기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p209 가족들은 함께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착각에 가깝다. 어떤 가족들은 함께 살지만 같이 살지 않는다.

p240 수십년 동안 아침에 1시간, 저녁에 2시간 정도만을 같이 보내던 그들이 이제는 하루 24시간을 함께 지내게 됐다. 널찍한 침실 세 개에 각자의 작업실까지 갖춰진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그마한 방 한 칸에서 함께 지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즐겁게 지내려면 높은 자존감, 아주 특별한 관계, 많은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

p244 나이가 들수록 학습 능력이 높아진다. 정신은 자극을 받으면 성장을 계속한다. / 성적 흥분과 만족 능력도 지속되며,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높아지기도 한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적 관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 몸은 높은 자존감, 목적인 있는 활동, 신체 운동, 만족스러운 애정관계와 합쳐질 때 높은 재생력을 보인다. 몸은 살아 있는 조직이며 세심한 보살핌에 잘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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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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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페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

읽은기간 : 2024/04/02 -2024/04/08


꽤 인기있는 책이라 오래 기다려서 대출을 받았다.

제목이 정말 중요하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예측되면서 읽고 싶어진다. 

저자는 형의 죽음을 보고 잘나가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갑작스러운 심경의 변화가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경비원 생활을 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재미있게 읽었다.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나서 대화하고 일을 한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고 할 수 있는 예술품들을 감상한다.

물론 중간중간 경비원이라는 직업에 자괴감을 갖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돈많은 사람들의 무시는 저녁에 술한잔 하며 욕을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일에 만족하고, 희열을 느끼며 생활한다.

아주 작은 일에 뜻밖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술관 경비 구역의 바닥에 쿠션이 살짝이라도 있는 곳에 배치되면 다리가 덜 아파서 너무나 좋다라는 이야기...

후반부로 가면서 저자는 결혼을 하고 더 많은 급여가 필요해 경비원 직을 그만두게 된다. 

나도 돈걱정이 좀 덜할 수 있다면, 은퇴후 국립중앙박물관 경비를 해보고 싶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직업인데 책을 읽다보니 충분히 도전해보고 싶다. 

재미있었다.. 


p27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p86 나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군중의 절반 정도가 큐레이터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 사후에서 시작해 대 피라미드 시대와 왕국 이전의 시기로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p95 동료들과 나는 일주일, 40시간 내내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사회의 사무실 관습에 따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습에 따라 책상에서 책을 펼 수도 머리는 식히는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두가 그러듯 인터넷을 뒤적이고 책을 읽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점점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래지 않아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을러진 것이다.

p120 메트의 부서들은 모두 합쳐 많게는 매년 서른 개의 기획전을 개최하는데 이 중 전세계의 박물관에서 작품을 대여해 올 정도로 광범위한 전시도 있고 한두 개의 전시실만 채우는 아담한 규모의 전시도 있다. 다시 말해 이곳에는 항상 새로운 볼거리가 있다.

p141 그들은 에술계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메트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워하면서 실망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으로 가득찬 채 미술관을 나선다.

p151 조지아 오키프의 손, 발, 몸통, 가슴, 얼굴, 다시 얼굴 그리고 다시 얼굴.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것보다도 이 시리즈는 대체로 사람이 얼마나 구체적이고도 독특하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태도와 몸짓으로 얼마나 많은 의사소통을 하는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선, 색깔, 빛, 그림자로 보이는지를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p178 내 직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화가 난다. 이렇게 평화적이고 정직한 일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바보 같으며, 심지어 배신 행위라는 생각까지 든다.

p183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p186 “검사 결과를 보면서 생각했지. 내가 유일하게 되고 싶었던 건 개인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부자였다고. 이게.” 그는 입고 있는 푸른색 근무복의 옷깃을 잡아당겨 편면서 말한다. “그 꿈에 제일 가까워”

p202 이 불명확한 세계에 대해 읽으며 그리스인들은 죽음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오직 삶에 관해서만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아는 것을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과 같은 작품을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p206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p230 자기 아들을 보고는 작은 사람들한테는 작은 힘이 어울리지. 인생이 그래. 기대했던 것만큼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이 무겁게 끝나자 사람들은 엄숙하게 고개를 젓고 “빌어먹을…”이라고 중얼거리며 이런 차원의 도덕적 부패에 대해 곱씹어 생각한다.

p232 사이먼과 루시는 바로 이런 자리에서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들은 친구 사이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먼은 자기가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 함께 유타로 이사할 거라는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결국 우체부 일자리를 찾고 개 몇 마리와 함께 산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게 진짜 인생이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없는 이 왁자지껄한 바에서 우리는 진짜 인생을 논하고 있다.

p235 사람들에게 그림이 진품이라고 확인해주고, 그 옆의 작은 캡션에 적힌 말이 복제품이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걸 좋아한다. 거기엔 그림의 액자가 복제품이라고 쓰여 있는데, 큐레이터들은 유명한 그림 근처에 그 단어를 두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p242 멀어져가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메트보다 좀 덜 신중한 미술관에서 실력이 끝내주는 연주자를 데려다가 마음대로 전시 케이스를 열고 악기를 다뤄보게 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자는 매일 페르시아의 카만체, 일본의 고토, 수우족의 구애용 플루트, 이탈리아의 하프시코드를 익힐 수도 있다.

p250 인상파 그림은 왜 항상 그렇게 흐릿해 보이는 거 같아? 처럼 익숙한 대화를 엿듣게 되면 언제, 어떻게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지 안다(요즘엔 끼어들지 않고 내버려두는 편이긴 하지만). 달리 ㅁ라하면 나는 이제 베테랑이 됐고 이 일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p252 얼마 전에 라커룸에서 우연히 듣게 된 웃긴 이야기도 떠올려본다. “내가 그 여자한테 말했지. 우리는 경비원이 아니에요. 보안 예술가들이죠라고”

p280 메트에서 열린 전시는 좀 더 아담한 규모지만 내게는 거장의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물은 미켈란젤로의 70년 커리어 전반에 걸친 133점의 소묘 작품들로, 대부분이 아무에게도 보여줄 의도가 없었던 습작들이다.

p284 전시가 시작된 후 내내 나는 미켈란젤로의 짜증과 절망이 섞이 편지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결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신이여, 도와주소서!”

p289 대부분의 관람객이 미켈란젤로가 70년 정도 걸려 완성한 작품들을 끝내는 데는 한 시간 가량이 걸린다.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미켈란젤로의 성미를 아는 나로서는 그가 이 사실을 알면 꽤 짜증을 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p313 나는 이 미술관을 떠나고 나면 나이가 나보다 곱절이나 많은 세상 반대편에서 태어난 사람과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이 일상적이지 않은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메트 경비원들 사이에서 그런 일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p324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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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 - 나의 하루를 그림과 클래식으로 위로받는 마법 같은 시간
안인모 지음 / 지식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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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

 : 안인모

 : 지식서재

읽은기간 : 2024/03/28 -2024/04/01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피아니스트 안인모님의 책...

이번에는 음악과 그림의 콜라보다. 

제목을 봤을때는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제목은 책 안의 한 꼭지를 뽑아낸 것이었다.

책에는 다양한 미술관의 그림들과 쇼팽을 비롯한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이 실려있다.

저자는 그림을 보며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내용을 표현하고, 이후 그 그림에 어울리는 음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그림은 근대 이후의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고, 음악도 비슷한 시절의 음악을 엮어 마치 음악과 그림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었다. 

음악이 주는 힘이 있어서인지, 그림을 잘 볼 줄 모르지만 그림에 더 멋져 보인다. 

촛불이나 무드등 아래에서 책에서 소개한 음악을 틀어놓고 와인을 한 잔 하며 그림을 감상하며 글을 읽어야 제맛이 날 것같다.

괜한 허세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걸 어쩌랴.. 

분위기 잡고 싶은 책이다.. 여자꼬실때 아는 체 하기 좋은 책이다.. 

역시 책이란 허세가 좀 섞여야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속물같아서 미안하다. 


p13 클래식을 공부하다 보면 당대의 철학을 접하게 되고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동시대를 살며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들이 문화와 예술의 큰 흐름이었지요.

p28 아주 엄격하게 이 반복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죠. 위 성부의 선율에 어떠한 변화가 있더라도 베이스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정해진 화성 진행을 반복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p47 하마터면 변호사가 될 뻔했고, 피아니스트를 선택했지만 그 꿈이 좌절되자 작곡가로 살아가는 슈만. 슈만의 꿈은 좌절된 게 아니라, 키워진 것이에요.

p80 피카소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당당한 표정과 근육질의 다부진 몸에서 열정적인 스페인 기질이 우러나요. 스무 살의 자화상 <나, 피카소>에서도 그는 한껏 힘준 강력한 눈빛으로 선전 포고를 합니다.

p88 파리의 여느 카페에서 연주되는 뻔한 음악도 아니에요. 드뷔시는 피아노의 해머가 피아노 줄을 때려서 내는 소리를 너무나 싫어했어요. 그래서 피아노 소리에서 해머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 음악을 추구합니다. 그 결과, 드뷔시가 지향한 음악, 그 음색과 음향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눈앞에서 그림을 펼치는 마법을 부려요.

p95 너무나 놀라운 건, 슈베르트가 특히 아팠던 말년에 작곡한 곡들이 그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주옥 같은 명곡이라는 점이에요.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아프레지오네 소타나,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세 곡, 그리고 현악 5중주와 가곡집 백조의 노래까지.

p109 밤의 음악 녹턴을 들으며, 밤의 그림을 봅니다. 덴마크 화가 페테르 일스테드의 촛불에 책 읽는 여인. 그녀는 독특하게 앉아 있어요. 벽에 붙은 테이블과 마주 앉은 것도 아니고, 벽에 기댄 의자와도 어긋난 방향으로 앉아있어요. 초에서 나오는 불빛을 좀 더 잘 받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녀의 주 목적은 책을 읽는 것이니까요

p122 불현듯, 공존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가 와닿습니다. 특히 소리 내는 일을 하는 음악가는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민폐일 수밖에 없어요. 붓을 든 그녀가 오른팔로 캔버스에 매달린 걸 보면, 피아노 소리가 조용히 집중해야 하는 작업을 방해한 걸까요? 그리고 보니 화가의 표정이 힘들어 보여요. 피아니스트는 연습에 열중하느라 자신의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두 사람은 한 공간을 공유할 뿐, 그 외 것들은 서로 공감하지 못합니다.

p156 프리앙의 그림 연인과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모두 그들이 30대가 되기 전의 작품이에요. 20대의 열렬했던 사랑,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대단했던 그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도 합니다. 사랑도 상황도 바뀌기 마련이니, 처음의 그 사랑을 그대로 끝까지 지켜내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죠

p167 포레는 이 곡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중후하고 아름답게 녹여냅니다. 마치 하소연할 곳이 없어 악보에 잉크로 구구절절 외치는 듯해요. 포레가 자신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엘레지는 그의 낭만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마지막 작품이에요. 포레는 자신의 감정을 악보에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자신답지 않다고 느끼고, 이후엔 음악에 감정 표현을 절제합니다.

p174 그대를 사항해나 알레라이데가 사랑 앞에서 찬진난만한 스물다섯 청년 베토벤의 노래였다면, 멀리 있는 연인에게는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은 중년 베토벤의 노래잡이에요. 그래서 더 아프답니다.

p183 60살이 된 브람스는 클라라를 만난 지 40년이 되자 6개의 피아노 소품을 작곡해서 그녀에게 헌정합니다. 그중 두 번째 곡 인터메조(간주곡)에서 브람스의 가슴 아픈 사랑이 들려옵니다. 그의 마음속 이야기를 읊조리듯 담아낸 이 곡은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생애 마지막 연서였어요. 악보를 전해 받은 74세의 클라라는 브람스가 평생을 담아온 사랑을 오롯이 느껴요. 브람스의 사랑이 오선지 위 검정 잉크가 퍼지듯이 사방에 울립니다.

p190 상드는 쇼팽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어요. 들라크루아는 장례식에 참석해, 쇼팽의 친구 세 명과 함께 관을 운구합니다. 쇼팽이 가쁜 숨을 내쉬며 임종을 맞는 순간에 곁을 지킨 것도 들라크루아였어요. 이후 들라크루아는 상드와 우정을 유지하며, 죽기 직전까지 편지 왕애를 이어나가요. 결과적으로 둘의 편지 속에 언급된 쇼팽 이야기는 쇼팽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었지요

p197 아무것도 모른 채 시동생과 사랑에 빠진 프란체스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어요. 게다가 파울로는 프란체스카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가련한 그녀에게 연민까지 느끼며, 둘의 사람은 깊어집니다. 그들은 신랑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요. 이 위험한 만남은 결국 형 조반니에게 발각돼요. 조반니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죽여버려요. 용납 받지 못하는 사랑을 한 두 영혼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곧장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p199 귀차르디는 귀족, 베토벤은 평민이었어요. 게다가 그녀는 어느 백작과 약혼한 상태였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는 데다 미래가 불투명한 음악가였죠. 고통이 없는 사랑이 있을까요? 이 사랑도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귀차르디의 사랑으로 행복을 찾아가던 베토벤은 그녀를 향한 사랑과 격정을 피아노 소나타 14번에 녹여냅니다. 그리고 이 곡을 그녀에게 헌정해요

p235 건반 위의 슈퍼스타 리스트가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을 위로하는 로맨티스트 리스트가 작곡한 이 곡에는 왕년의 그가 보여주던 화려한 기교는 들리지 않아요. 단순하고 소박한 선율로 보듬고, 진한 울림으로 다독이기 위해, 리스트는 시를 쓰듯 음표를 써 내려가요. 한 줄 한 줄 여백이 느껴지는 이 곡에는 공작부인에 대한 리스트의 사랑과 신뢰가 가득합니다.

p240 둘의 만남으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후, 70세의 클라라가 자신의 은퇴 무대에서 연주한 곡은 바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어요.

p256 라흐마니노프는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우울증을 치료해 준 달 박사, 언제나 곁을 지켜준 아내 나탈리아, 라흐마니노프는 이 노래를 N에게 헌정해요. N이 누구인지는 라흐마니노프 본인만이 알지요. 니콜라이 달 박사아 나탈리아, 혹은 그들 모두를 의미할 수도 있어요. 아마도 라흐마니노프가 마음 깊이 고아뭐할만큼, 도움을 준 사람일 거에요. 눈먼 소녀의 그림을 보며 노래를 들으니 N이 라흐마니노프의 손을 잡아주었듯,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싶습니다.

p271 저녁 퇴근길의 차디찬 공기를 맞으며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들어요.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이 곡은 프랑스 시인 부르제의 시에 드뷔시가 선율을 붙인 노래에요. 드뷔시는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빛을 그려냅니다. 음표에 말이죠. 그는 특정 순간의 기분과 느낌, 정취, 또는 시를 읽고 떠오르는 장면을 음악으로 담아내요. 그러니까 이 곡은 해가 지고 저녁이 시작되는 그 시점의 풍경을 전해요

p282 도시무도회와 부지발 무도회에 등장하는 발라동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에요 르누아르뿐 아니라, 드가,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등 당대 웬만한 프랑스 화가들의 캔버스엔 그녀가 그려져 있지요. 그녀의 예쁜 얼굴은 다양한 붓끝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화가의 모델 일을 하며 그들의 애인 역할도 하던 다른 모델들과 달리, 발라동은 모델 일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화가가 되어 직접 그림을 그려요

p309 음악에 대한 사티의 관념은 다소 독특했어요. 대부분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이 주목받길 바랐지만, 사티는 그 반대였어요. 사티는 주목받는 음악이 아닌, 공간속에서 가구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공존하는 음악을 추구합니다.

p310 짐노페디는 사티의 대표 가구 음악이에요. 짐노페디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청년들이 나체로 추던 춤이에요. 아마도 사티는 우연히 이 낯선 단어를 접하고 그 생소함에 이끌려 제목으로 사용한 것 같아요. 3개의 짐노페디 중 1번은 다양한 미디어에 등장해 유명해졌어요.

p337 스탈린이 죽고 4년 후, 51세가 된 쇼스타코비치는 사랑하는 아들 막심의 19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파이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해요. 막심은 자신의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 연주회에서 이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합니다. 특히 이 곡의 2악장 안단테는 낛을 놓고 듣게 되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여운이 느껴지는 간결미와 느린 템포의 조화로움이 지친 영혼을 달래줍니다.

p364 온 사방이 꽃이고, 나무이고, 생명체입니다. 화관 속에 누운 듯한 그녀만이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아요. 투명한 냇물에 누운 그녀는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요. 그녀의 눈에 하늘은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과 그속에 자리한 그녀의 차디찬 육체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p366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바흐에요. 바흐는 마르첼로가 오보에로 새긴 깊은 슬픔에 감동해 하프시코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해요. 이렇듯 바흐의 손에 의해 마르첼로의 협주곡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마르첼로의 이름도 주목받게 됩니다.

p374 물이 내게 준 것은 칼로의 그 유명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지만 그녀의 모든 희로애락을 잘 보여주는 진정한 자화상이에요. 얼굴 없는 자화상이면서, 그녀의 삶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자서전이죠.

p381 그녀의 생애 마지막 그림이 된 수박 그림. 칼로는 빨간 과육에 대문자로 마지막 메시지를 써요.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1954년 멕시코 코요아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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