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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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럽 도시 기행 3
작가 : 유시민
출판사 : 생각의길
읽은기간 : 2026/09/28 -2026/10/03


유시민 아저씨의 세번째 책..

이번 도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두 가봤던 도시라서 더 정겨웠다..

특히 포르투갈은 무엇을 해도 좋은 동네였다..

유시민 아저씨는 역사와 알고있는 내용을 버무려서 독자가 새롭게 볼 수 있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도 같은 지역과 유물과 건물을 보았는데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을 알려줘서 좋았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재미있었다..


p46 점심을 먹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문화와 취향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E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을 즐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가우디, 미로, 피카소도 좋아하지만 주로 나라 안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고야와 벨라스케스를 더 좋아한다, 지역마다 언어와 역사와 문화가 다른 것을 스페인의 장점으로 여긴다. 그런 점이 내 마음에 들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가치 판단의 무게 중심을 자신의 내면에 두고 사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p57 왕도 귀족도 부자도 아닌 한낱 회계사의 초상화를 왜 저렇게 많이 그렸을까? 알고 보니 흔한 회계사가 아니었다. 16세기 초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산을 관리했던 유럽 최가 금융업자의 회계사였다. 슈바르츠는 패션을 취미로 삼고 살았던 덕분에 의상 디자인의 선구자, 세계 최초의 패션 북 제작자, 아날로그 시대의 파워 인플루언서라는 평가를 얻었다.

p67 괴물이 깨어난 시대를 살았던 그는 괴물을 다시 잠재우려면 잠들어버린 인간의 이성이 눈을 떠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담은 그림으로 타인의 이성을 깨우려 했다. ‘어둠의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예술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예술이 무엇이라 하든,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었던 그 시대에 고야 같은 예술가 한 사람도 없었다면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106 시내 북서쪽 가르멜 언덕의 구엘 공원에서 바르셀로나 탐사를 시작했다. 언덕 바로 아래 그라씨아 지구를 구경하면서 엑삼쁠레지구로 내려와 사그라다를 비롯한 명소를 본 다음 중세와 로마 시대를 품은 고딕지구와 라발지구를 거쳐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남동쪽 해별까지 걸어서 갈 생각이었다.

p115 유럽도시기행 1권과 2권의 도시를 다닐 때 이스탄불 말고는 가이드를 고용한 적이 없었다. 유능한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이 두 배 즐거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G는 바르셀로나 관광업계의 핵인싸인지 어디든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알고보니 그럴 만도 했다. 갈리시아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그는 한국계 스페인 사람으로 스페인어뿐 아니라 까딸루냐말과 갈리시아말도 구사한다고 했다. 이틀 동안 동행하면서 배운 게 많았고 몬세라트 수도원도 그가 연결해 준 분의 도움을 받아 다녀왔다.

p124 민중의 소망을 이루어준 리더도 귀하지만 현실에서 패배한 리더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민중은 그보다 더 귀하다.

p145 그림의 분위기는 신의 자비 쪽에 무게를 싣는다. 피카소는 19세기 막바지 스페인의 문화 권력자들이 회화의 모범답안으로 인정했을 법한 그림으로 큰 상을 받았고 그 덕분에 수준 높은 미술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때로 어른들 말을 따르는 게 현명하다.

p154 까사 바뜨요를 보고 알았다. 그는 돈 버는 방법과 돈 쓰는 방법을 다 잘 알았다. 가우디는 그가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다. 바뜨요는 집을 올려다보는 거리의 구경꾼들한테 손을 흔들면서 돈의 힘과 맛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소유권이 남한테 넘어간 뒤에도 집에 자신의 이름이 남는 행운도 얻었다.

p167 나는 믿는다. 종교 없이도 우리가 도덕을 세울 수있다는 것을. 신앙심 없이도 이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원이나 다음생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도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p190 바르사 팬들은 경기 시작 17분 14초에 이벤트를 한다. 왜 하필 17분 14초인가? 앞에서 말했지 않은가. 1714년 바르셀로나 공방전의 참혹한 패배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p199 현지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하는 도시가 길을 잃었을 때도 흥미로운 것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살기 좋고 경쟁력 있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울은 최근 들어서야 그런 도시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지만 바르셀로나는 오래전부터 그랬다.

p217 살라자르는 초등교육을 장려한 반면 고등교육은 사실상 폐지했다. 글을 읽고 셈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국민을 교육한 우민화 정책을 쓴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의 지적수준은 하락했고 과학기술은 퇴보했다. 1968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서도 총리 자리를 지킨 살라자르가 1970년 봄 죽었는데도 포르투갈 사회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혁신을 추진할 정치세력이 좋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28 사라마구 전집의 표지 디자인이 특이했다. 제목을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썼는데 책마다 필체가 달랐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창작자들이 손으로 쓴 글씨였다.

P277 역사가들은 뻬드루 1세 왕에게 응징자라는 별칭을 주었다. 아내의 복수를 해서가 아니라 귀족도 죄를 지으면 가차 없이 처벌했고 사형 집행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민의 범죄는 너그럽게 대했던 뻬드루 1세는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고, 왕위는 이네스가 아니라 K와 T가 낳은 아들들이 차례로 물려받았다.

p305 포르투갈은 오래된 출판 선진국이다. 대항해 시대의 항해 기록과 탐사 보고서를 쌓아나갔던 15세기부터 그랬다. 언론의 자유를 혹심하게 탐압했던 살라자르 시대에도 출판 산업은 생명력을 유지했고 시민들은 서점에서 정치 정보를 나누었다. 언덕과 비탈이 많은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서점은 커피와 음악을 즐기는 쉼터이기도 했다.

p307 세상은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책은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 또한 아니다. 책을 쓰는 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나는 책을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로 여긴다.

p336 술은 마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법화할 수가 없는 마약이다. 어차피 마실 거라면 품격 있게 마시는 게 좋다. 음식과 궁합을 맞추고 철학과 문학의 향기르 ㄹ입히면 최선이다. 와인은 그렇게 하기에 알맞는 술이다.

p342 해석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텍스트라 하고 텍스트를 해석하느 ㄴ데 필요한 정보를 콘텍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는 아무 콘텍스트가 없는데도 분명한 감정을 전달했다.

P348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에서 기술 발전으로 이룬 거대한 물질적 풍요보다 소박하고 인간적인 삶이 아름답고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다. 뽀르투 국립 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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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로 보는 한국사 - 기후가 바꾼 5천 년, 새롭게 읽는 우리 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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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후로 보는 한국사
작가 : 박정재
출판사 : 바다출판사
읽은기간 : 2026/09/28 -2026/10/03


박정재 교수님의 책을 여러권 읽었다.

지리학과 교수님이라 그런지 책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Long term으로 기후가 계속 변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대응을 했고, 그로 인해 문명과 문화가 바뀌어왔다는 것.

빅히스토리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 낯설지는 않다.

역사학자들이나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소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빅히스토리라는게 큰 변동 사이에 있는 작은 변동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이야기했던 케인즈의 말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빙기나 온난화 기간동안 역사와 문화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부분은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난 학자가 아니니까 빅히스토리에도 공감하고, 미시적 추동이론에도 공감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p16 주기적으로 한랭한 기후가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키며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결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약 5000년 전 이후 지속된 한랭화와 대략 500년을 주기로 반복된 급격한 저온 현상은 홀로세 후반 한반도인들을 추위에 강한 집단으로 단련시켰다.

p25 요하(랴오허) 문명은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사 문명 가운데 하나로 홀로세 중기에 황하 문명 못지않은 문화수준을 자랑했다.

p32 우리 모두 적도 서태평양에서 비롯된 기후 변화가 요하 유역과 한반도, 두 지역 사회의 성쇠를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요하 지역과 한반도가 가까이 있고 양 지역 집단의 문화가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 할 것이다.

p40 3200년 전 즈음에 한반도로 진입한 송국리형 문화 집단과 철기 저온기(2800-2300년 전)의 중반부터 한반도 남부로 이주해 들어온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은 다른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한다.

p58 흔리 로마 온난기라 불리는 시대다. 유럽에서는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기원전 27년)이 꽃을 피웠고, 동아시아에서는 전한(기원전 202-기원후 8년)이 한무제의 위업을 발판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한반도 북부에 자리한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 또한 비록 9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한반도 남부 사회는 이주 물결이 잦아듦에 따라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p94 훈족, 서고트족, 반달족 등 당시에 강력함을 풍기던 민족 집단이 모두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움직였다. 훈족의 이동은 374년에 시작되어 468년까지 이어졌으며, 서고트족의 이동은 376년에서 416년까지 이어졌다. 반달족의 이동은 406년부터 439년까지 계속되었다. 모두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했던 시기와 엇비슷하다. 이때의 기후 변화가 북반기 전역에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와 서유라시아 양 지역 사회에 비슷한 파장을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p113 후환융선은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의 헤이허시에서 남서부 원난성의 텅충시를 잇는 대각선으로 이 선의 서쪽에는 인구가 적은 반면, 동쪽에는 인구가 밀집해 있다.

p127 3-4세기에 다수의 부여민이 정치적 망명과 생계형 이주를 감행한 것 그리고 수단에서 격렬한 내전이 발생하면서 난민이 급증한 것은 모두 엘리트의 리더십이 부실하여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 기후 위기에 리더의 정치력 부재까지 겹칠 때 사회의 갈등과 혼란이 얼마나 커질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p161 1168년 이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현령을 쫓아내고야 마는데, 이 난을 양수라는 인물이 주도했다고 하여 양수의 난이라고 한다. 이후 제주도에서는 수백 년에 걸쳐 섬 주민의 반란이 이어졌다. 1374년 목호의 난부터 1862년과 1898년 제주 민란, 1901년 이재수의 난, 1948년 제주 4.3 사건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민란이 끊이질 않았다.

p173 정말로 큰 폭발은 30년 후 1257년 인도네시아 롬복섬에서 있었다. 이 섬의 사말라스 화산에서 거대한 분출이 일어 최고 50미터 두께의 화산 새설물이 섬의 절반가량을 덮었다. 이 폭발로 적도 태평양에서 무역풍이 약해지고 장주기 엘니뇨가 강화되었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다.

p192 세차 운동이 이렇게 소빙기의 도래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소빙기의 저온 현상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태양과 화산이다. 태양 활동이 저조하여 흑점 수가 줄어들 때,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폭발이 잦았을 때, 북반구의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 결과 곤경에 처했던 인간 사회의 사례를 우리는 유물이나 문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p211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으로 조선은 큰 피해를 본 반면, 같은 시기 강희제가 통치하던 청나라는 오히려 번성했다. 양국 간에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이유를 곱씹으면서 정조는 무엇이 왕으로서 추구해야 할 통치방식인지 깨우치지 않았을까? 정조는 재해 예방과 재난 관리를 통해 백성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고자 했다.

p235 1809년 폭발은 가뭄을, 1815년 폭발은 홍수를 불러왔다. 같은 공간임에도 ㅎㅘ산 폭발의 여파는 확연히 달랐다. 폭발한 화산의 위치 혹은 폭발의 ㄱㅠ모가 물 순환의 차이를 가져왔을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그 정확한 인과관계를 알기란 어렵다.

p265 병자년 가뭄(1876년)으로 조선이 힘겨워할 때 산동, 산시, 허난, 허베이 등 중국 북부 지역에서도 1876년에서 1879년까지 최악의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 기근을 정무기황이라 부르는데 1000만 명 이상 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1876년부터 1878년까지 가뭄과 기근이 이어졌다. 남인도 대기근이라 불리는 이때의 식량난으로 굶어 죽은 사람 수만 500만에서 800만 명에 달했다. 중국가 인도의 기근 모두 엘니뇨가 주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p293 여전히 역사학계에서는 여기서 소개한 딥히스토리, 진보 사관, ㅎㅘㄴ경결정론, 인류세 등의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지나치게 ㄷㅏㄴ순화된 거대 서사에 경계심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 식물, 미생물, 강, 산, 기후, 바다, 돌, 기계 등 이른바 비인간 요소를 인간만큼 비중있게 다뤄야 한다는 방법론적 부담 역시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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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 - 클래식 무대 뒤, 오케스트라 악보를 둘러싼 세계
김보람 지음 / 사농공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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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악보가 말하지 않는 것들
작가 : 김보람
출판사 : 사농공상
읽은기간 : 2026/09/15 -2026/09/24


재미있는 역할을 하는 분의 책을 읽었다.

악보위원..

이런 역할도 있나?

악보를 복사해서 가져다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작곡가가 악보를 여러번 바꾸기도 하고,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악보를 조정하기도 해서 생각보다 원본이라는 것이 어느 것인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지휘자가 보는 총보와 연주자들이 보는 악보가 align을 시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라고 한다.

악보를 분석하고 지휘자가 원하는 악보를 찾아 출판사와 협의하고 정리하고 배분하는 일이 모두 악보위원의 일이라고 한다.

사회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나도 모르는 새로운 업무와 역할이 계속 생기는것 같다.

재미있는 업무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좋았다.


p12 공연 기획회의에서 한 시즌의 프로그램이 결정되는 순간 악보위원은 바빠진다. 전 세계 악보 출판사를 뒤져 알맞은 에디션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지휘자가 어떤 악보를 선호하는지, 최근 많이 연주되는 악보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악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조사한다.

p28 악보위원은 리허설과 공연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흐름을 읽는다. 리허설과 본 공연은 확연히 다르고, 같은 곡도 어제와 오늘의 공연이 서로 다르다.

p69 리허설을 며칠 앞둔 어느날 C.F. 피터스 출판사로부터 선물 하나가 도착했다. 향후 연주에 최신 교정본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프로모션 증정용 총보였다. 오랜 논쟁 끝에 마침내 바로잡힌 안단테-스케르초 버전이었다. 동봉된 편지에는 마에스트로께 전달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서울시향이 원할 경우 언제든 악보를 준비해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한 세기에 걸친 논란을 종결짓는 이 악보에는 수십 년 동안 분투해온 학자들의 노고와 출판사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p71 학술적으로는 오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가장 풍성하며, 소리의 성당이라 불리는 브루크너 특유의 건축적 아치 구조가 살아 있다는 평가와 함께 여전히 많은 지휘자들이 사랑하는 판본이 하스판이다. 하스의 뒤를 이은 노바크는 훨씬 엄격했다. “부르크너가 그 시점에 그 악보에 사인을 했다면, 그것이 곧 그 버전의 완성”이라는 원칙으로 간 연도별 판본을 철저히 분리하여 출판했다. 오늘날 부르크너 8번 1890년 판본이라고 하면 십중팔구 노바크 에디션을 가리키는 이유다.

p85 해외 오케스트라가 내한 공연을 하는 경우 서울시향에 한국관객들을 위해 앙코르로 아리랑이나 그리운 금강산 악보를 구할 수 있는지 연락이 온다. 또한 연주하고자 하는 특정 곡의 악보를 급하게 빌릴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런 게 바로 클래식 업계의 정이다.

p108 악보를 들여다보기만 한다고 해서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음악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아닌지는 결국 연주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리허설은 그 과정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바로잡는 시간이며, 사전에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 놓아도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다시 수정되고 변경된다. 원래 리허설을 바로 이런 과정을 위해 준비된 시간이다.

p134 한번은 공연을 처음 보러 온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왜 현악기들은 모두 똑같이 팔을 움직여? 너무 로봇 같아. 무서워!” 이 말에 “야! 나는 똑같이 안 움직이는 게 더 무서워!”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 눈엔 연주자가 똑같이 활을 움직이는 모습이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p148 조악기란 악보에 적힌 음(기보음)과 실제로 들리는 음(실음)이 서로 다른 악기를 말한다. 만약 도레미솔 음표가 적힌 악보를 F조 호른으로 부른다면 완전5도 낮은 파솔라도 음이 연주된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다양한 이조악기가 함께 연주되기 때문에 각 악기의 조성과 이조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총보를 읽는 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p153 연주자들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지만 호른은 가장 불기 어려운 악기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까다로운 악기다. 긴 관과 좁은 배음 간격 때문에 입술과 호흡이 조금만 흔들려도 의도한 음에서 이탈하기 쉽고, 벨 안의 오른손 위치에 따라 음색과 음정까지 달라지기에 신경쓸 일이 많다. 또 곡 전반에 걸쳐 화음과 색채를 채우기에 많은 연주량을 담당한다. 오죽하면 한 거장 지휘자가 “호른 주자들에게 뭐라고 하지 마라. 그들은 목숨 내놓고 연주하는 중이니”라고 변호했을까

p166 처음엔 테오르보 연주자가 온다는 말을 듣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테오르보는 별도의 파트보가 없어서 무슨 악보로 대체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연주자는 그냥 총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해주어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연주가 매번 즉흥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p173 제본 방식도 연구를 거듭했다. 스테이플러를 사용할 경우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시중에 파는 돼지본드를 이용해 제본하고 종이테이프로 마무리하는 방식이 최적임을 확인했고, 이것이 훗날 돼지본드 제본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p199 초창기에는 “이게 바로 현대음악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소위 쎈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무대 위는 100명에 가까운 연주자와 방대한 타악기들로 꽉 찼지만, 객석은 무대 위 연주자 수만큼만 겨우 채워질 정도로 휑하기 일쑤였다. 텅 빈 객석의 공기와 익숙하지 않은 음악 사이의 괴리는 낯선 풍경이었다. 진은숙 선생님은 관객과 연주자 모두가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조율하기 시작하셨고 이후 점점 매 시즌을 기다리는 마니아층까지 생겨나면서 객석도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p213 수많은 소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거짓 없이 전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결과물이었다. 프로가 프로를 만났을 때 부딪치는 긴장과 높아지는 완성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연주곡과 뮤직비디오에 모두 담겨 있었다.

p243 악보위원으로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악보를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서울시향의 한 인터뷰에서 “가장 소중한 것도 악보, 제일 잃어버리기 싫은 것도 악보”라고 말하며, “잃어버리면 다시 살 수는 있지만, 정성이 담긴 가치가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p249 서울시향 협연에 있어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바이롤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과 함께한 무대다. 정명훈 감독님과 정경화 선생님이 리허설을 하던 중 의견이 엇갈렸는지 한참 대화를 나누시더니, 갑자기 정명훈 감독님의 등짝을 탁 하고 내리치는 게 아닌가

p253 한번은 경회루 야간음악회 때 힘차게 부는 바람에 악보가 하늘로 날아가 버린 적이 있다. 멋진 클라이맥스 구간에 날아가서 보긴 좋았다. 음악과 어울리는 명장면이었지만 한 사람은 웃을 수 없다. 그게 나다. 악보가 경회루 앞 호수에 빠진 것이다.

p272 나는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 빈 무대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순간을 즐긴다. 조용하고 고요한 그 순간이 마치 마음을 정리해주는 시간처럼 편안하다. 악보를 자리에 놓고 단원들이 들어오긴 전까지의 이 고요함을 지금도 좋아한다.

p306 클래식은 처음엔 소음처럼 들린다는 말이 있다. 그건 감수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정보량을 감당하지 못해 내리는 일종의 항복선언이라고 한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서서히 리듬과 멜로디가 들리고, 어느 순간 화음과 음색까지 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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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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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실험하는 고고학자
작가 : 샘 킨
출판사 : 해나무
읽은기간 : 2026/09/08 -2026/09/22


최근 읽은 책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책중의 한권..

고고학을 실험한다니.. 고고학이 실험이 가능한가?

관찰과 발견이 주요 과학적 도구아닌가?

그런데 진짜 실험을 한다. 그것도 꽤 과학적으로...

그리고 그 실험이 진지하게 실시된다. 최대한 동시대와 비슷하게 경험될 수 있도록 당시의 도구와 물질들을 사용한다.

실험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만든 유물의 정밀성과 사용 용도를 더 다양하게 상상하고 추측할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실험 고고학은 학계에 공인을 받고 있지는 않은듯 하다.

그러나 좀더 과학적 엄밀함이 쌓이고 경험이 축적되면 충분히 고고학의 한 분야가 될 것 같다.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어 즐거웠다..


p12 고대 이집트의 빵이나 수백만 년 전의 도구를 정말로 재현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 답은 갈수록 가까워진다.

p29 실험고고학은 이렇나 부담을 안고있다. 이 분야는 오래 전에 사라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실질적이고 풍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카이테와 그의 가족이 잠을 자는 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겼었는지 생생하게 알려줌으로써. 하지만 어떤 과학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p100 윌라마야 파타에서 특히 하스를 들뜨게 한 바견-표토에서 1m 아래에 묻혀 있던 뼈와 치아들-이 있었는데, 사냥꾼에게 필요한 도구 전체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을 죽이고 처리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라고 설명했는데, 처트, 창끝, 돌로 만든 긁개와 칼, 가죽 무두질에 사용하는 석간주(산화철을 많이 함유해 붉은 색을 띤 흙)가 포함돼 있었다

p107 나무가 부족한 알티플라노 같은 곳에서는 나무 자루가 특히 소중하다. 그런데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발굴 현장에 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나무 자루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에렌은 사색에 잠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예컨대 나무-이 옛날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긴 것일 수 있어요. 어쩌면 석기 시대가 아니라 목기 시대라고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이것은 정말로 참신한 통찰인데 고고학 교과서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통찰이다.

p127 아사나가 숨을 몰아쉬는 수컷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암컷이 필사적으로 속도를 높이며 뒤에서 돌진했다. 모하가 또다시 비명을 질렀지만, 고개를 돌린 아사나가 할 수 있는 일은 방어 자세로 겨우 팔을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모하가 고향에서 수없이 겪은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었다. 암컷의 앞발이 아사나의 머리뼈를 강타하는 순간,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p148 오늘날 이 지역은 건조하고 먼지가 자욱하며, 여름의 태영은 여느 사막에 못지않게 혹독한 열기를 내뿜는다. 하지만 수천 년 전에는 이곳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습지대였고, 진흙탕 강이 그 사이로 구불구불 흘렀다. 고고학자들은 발굴 현장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가 식품의 풍부성에 경탄했다.

p171 가죽 표면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그동안 일어난 변화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내장이 범벅되어 상한 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죽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기 피부보다 부드러운 의복을 손에 들고 있었다.

p205 고고학자들이 5000년의 이집트 역사에서 확인한 빵의 종류는 비스킷에서 바게트, 피타를 비롯해 약 40가지에 이른다. 어떤 제빵사들은 꽃, 남근, 오벨리스크, 새, 소, 악어, 가젤, 물고기처럼 재미있는 모양의 빵을 만드리고 했다.

p211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가설을 모든 고고학자가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실제로 취향이 더 고상한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말도 안 되는 가설로 여기는데, 세상의 위대한 문화들이 남긴 모든 예술과 시, 감동적인 건축물이 맥주를 꿀꺽 꿀꺽 들이켜던 평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개념을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p225 이 실험이 과학적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 실험은 우리가 이전에 몰랐던 고대 이집트인의 미라 제작과정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미라 제작자들이 어떤 칼날을 사용했고, 뇌는 어떻게 적출했고, 나트론은 얼마나 사용했고, 그 당시 미라 제작 작업대의 폭이 1.2m에 이를 정도로 왜 그토록 넓었는지(시신을 건조시키는 데 필요한 나트론을 잔뜩 쌓아야 했기 때문에) 등의 질문에 답을 제공했다.

p234 고고학자들은 노동자들이 피라미드의 돌에 새긴 낙서를 발견했는데, 그것들은 자신들을 힘이 넘치는 무리, 불굴의 무리, 쿠푸의 사람들이라고 선언하는 문구였다.

p288 하와이 설화에서 카누의 수호 여신인 레아는 종종 이 새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나무를 쪼는 행동은 불승인으로 간주되었다. 더 세속적으로 해석하면, 엘레파이오는 벌레를 잡기 위해 나무를 쪼는 습성이 있고, 벌레가 먹은 나무는 선체로 쓰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배 만드는 사람들이 알아챘을 가능성이 크다.

p290 어떤 별이 북동쪽에서 떠올랐다 하더라도 그 방향을 유지하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그래서 항해사는 밤이 깊어짐에 따라 방향의 기준점으로 삼는 별을 바통 터치하듯이 한 별에서 다른 별로 바꿔야 했다. 그들은 실제로 5개 별 항해나 7개 별 항해라는 표현을 썼고, 여러 밤에 걸친 항해도 흔했다.

p352 결정적인 깨달음은 2005년에 찾아왔다. 라틴어 사전에서 acus라는 단어를 찾다가 그것이 “옷 수선공과 미용사가 사용하는 바늘”이라는 풀이를 읽었을 때였다. 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되었다. 수세기 동안 학자들은 오르나트릭스가 핀으로 머리카락을 고정해 땋아올렸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머리를 꿰매고 있었던 것이다.

p374 밤이 깊어 만찬이 끝날 무렵, 그레인저의 남편 크리스가 토가를 한 병 꺼내어 누군가에게 입히는 법을 시연해 내게 기쁨을 더해주었다. 그 과정은 들었던 대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위로 두르고 아래로 감고 이리저리 교차시키는 것이 마치 미라에 붕대를 감는 것 같았다.

p405 무엇보다도 문신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선언했는데, “우리는 저쪽 집단이 아니라 이쪽 집단에 속한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p420 일부 부족이 화살로 적을 괴롭혔지만, 근접전에서 곤봉으로 상대를 죽이는 행위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고, 따라서 전사에게 더 큰 명예가 돌아갔다. 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죽이는 행위에는 뭔가 원초적인 요소가 있다.

p476 고고학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충격 무기로 인해 생긴 상처와 마찬가지로 천공술의 흔적이 대부분 머리뼈 왼쪽-오른손잡이 전사가 무기로 상대를 내리쳤을 때 생기는 바로 그 위치-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공술은 뇌출혈, 뇌부종, 감염, 낭종, 종양을 치료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p511 해양 포유류의 장기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근육 고기에도 약간 들어 있다. 단 조리를 하지 않은 경우에만 비타민 C를 섭취할 수 있는데 열을 가하면 비타민 C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고기 섭취는 북극 지방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적응이었다.

p623 내가 울라말리츠틀리를 직접 해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아즈텍족이 정말로 강인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가 하루 종일 지속되거나 심지어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경기는 한쪽 팀이 충분한점수를 얻거나 아니면 탈진해 쓰러져야 끝났다. 전쟁의 고난에 대비하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훈련이었을 것이다.

p646 받침대 주변의 잔디는 군데군데 새까맣게 그을렸고, 사방에 돌과 모래가 흩어져 있었다. 초록색 울타리 말뚝들은 담배 파이프 청소 도구처럼 마구 휘어져 폐품 처리장으로 보내야 할 지경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여름철에 정원에 전시한 공구점 용품들을 누군가 폭격한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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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 - 당신이 수학을 사랑하게 만들 책 : 젠더·인종·국경을 초월한 아름답도록 혼란스럽고 협력적인 이야기
케이트 기타가와.티모시 레벨 지음, 이충호 옮김 / 서해문집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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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
작가 : 케이트 기타가와
출판사 : RHK
읽은기간 : 2026/08/06 -2026/09/10


수학사는 처음 읽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수학자는 피타고라스, 아르키미데스, 유클리드 등 주로 그리스 사람들이었다.

이 책에서는 여성 수학자, 아랍수학자, 중국수학자들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존의 서양 남자들 중심의 수학사에서 탈피하여 수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많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머리는 다 거기서 거기인가?

비슷한 문제를 맞이하고 풀어나가는 과정도 유사하다.

그러다보니 뉴튼과 라이프치히가 다퉜던 미적분의 개념도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수학으로 넘어와서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수학이 펼쳐진다.

이제 수학은 전문가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듯한 느낌이다.

가끔 유투브를 통해서 예전에는 알지 못한 다양한 수학이론들을 보게 되는데 이젠 수식을 이해하기도 벅차다.

좀더 친절한 수학이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보인다.

수학이 한걸음 더 멀어진 느낌..

이런 수학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수학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p43 마야인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측정했다. 예를 들면 음역(태음력)으로 149개월이 4400일이라고 계산했다. 이것은 음력으로 한 달이 29.5302일에 해당한다는 뜻인데, 오늘날 우리가 측정한 값은 29.5306일이다. 또한 1년의 길이가 365.242일이라고 계산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아낸 값은 365.242198일이다

p56 수학에 초점을 맞춘다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책 두 권이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주역과 구장산술이다.

p59 17세기 독일의 수학자이자 박식가였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주역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읽다가 라이프니츠는 주역의 괘가 자신이 연구하던 수 체계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란 사실을 알고서 크게 놀랐다. 그래서 그 책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예수회 선교사 조아킴 부베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 체계가 내가 새로 고안한 산술 방식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랍소”

p73 황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지위 덕분에 반소는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화제가 죽은 뒤 섭정에 오른 황후 등씨는 중요한 국정 문제에 대해 반소에게 자문을 자주 구했다. 조정 사람들은 반소를 재능과 업적을 칭송하는 의미로 조대가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 남편의 성을 딴 것이었다.

p82 모두 13권으로 이루어진 유클리드의 원론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책 중 하나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미친 그 영향력은 동아시아에서 구장산술이 미친 영향력에 맞먹는다.

p88 서양 최초의 여성 수학자라는 타이틀은 판드로시온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더 유명한 수학자인 히파티아가 이 영예를 차지하고 있었다.

p96 알렉산드리아에는 히파티아 이전에도 여성 지식인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아는 한 히파티아는 유명한 여성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최초로 확실하게 인정받은 인물이다. 히파티아의 강연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왔다.

p98 폭도는 히파티아를 근처 건물로 끌고가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마구 찔러 죽인 뒤, 시체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다가 불에 태워버렸다. 이 끔찍한 공격은 알렉산드리아 주민이 최악의 범죄자에게 가하는 처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p108 기원전 350년에서 기원전 5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한 점토판에는 바빌로니아 점성술사들이 목성이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이동했는지 계산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한 계산 방법은 14세기에 유럽에서 발명되었다고 알려진 것이었다.

p116 19태양년이 지난 뒤에는 이 달력은 실제 태양년과 2시가 5분 20초 차이가 났을 것이다. 스무 번 째 태양년이 시작될 때, 이 오차는 새로운 초승달이 뜰 때 날을 세는 작업을 재개함으로써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아질리카야가 이런 식으로 사용되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테지만, 이 신성한 기념물이 대규모 달력이었다고 생각하면 아주 흥미롭다.

p130 0을 나타내는 기호를 맨 먼저 발명한 민족은 마야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인도의 황금기인 4-6세기에 이르러서였다.

p135 이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가 무한의 성질을 연구하면서 수학 분야에서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많은 수학자가 칸토어의 개념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러 가지 무한의 정확한 크기를 둘러싼 질문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앟은 채 남아 있다.

p139 아리아바타는 또한 하늘에서 나타나는 별들의 운동은 지구의 자전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가 1유가 동안 15억 8223만 7500번 자전한다고 추정했는데, 힌두교에서 사용하는 시간 단위인 유가는 432만 년에 해당한다. 이에 따르면 지구의 자전 주기는 23시간 56분 4.1초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통찰이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전 속도(더 정확하게는 23시간 56분 4.091초)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결과이다.

p150 이 모든 단어들의 뿌리에는 무가 중요하다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데, 무한한 세계는 공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 때문에 브라마굽타 같은 수학자들이 이전 사람들보다 이 개념을 더 깊이 통합해야겠다는 동기를 느꼈을 수도 있다.

p166 알 콰리즈미는 0에 대한 브라마굽타의 견해와 10진법의 편리성을 높이 평가했다. 비록 알 콰리즈미가 쓴 원본은 지금까지 전하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 체계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책이었다.

p196 여성이 왕립학회 회원이 된 것은 1945년에 이르러서였는데, 결정학자 캐슬린 론즈데일이 기존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신규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에서는 그보다 더 늦은 1979년에야 여성 회원이 선출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수학자 이븐 쇼케-브뤼아였다.

p210 이 싸움에서는 공식적으로 승리했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은 진짜 승자는 뉴턴도 라이프니츠도 아니다. 두 사람보다 앞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도 단지 몇 년이나 수십 년 정도가 아니라 수백 년이나 앞섰다. 그 사람은 앞에 나왔던 14세기의 인도 수학자 마다바이다.

p235 뉴턴의 비웃음은 계속되었다. 라이프니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수학 내용으로 편지를 마무리 짓는 대신에 이렇게 썼다. “이 연산의 기초는 사실 충분히 명백합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설명을 자세히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숨기는 쪽을 택하겠소. 6accdae 13eff7i319n4o4qrr4s8t12vx. 이것은 조롱이었다. 이 기묘한 숫자와 문자열은 미적분의 기본 정리를 라틴어로 표현한 암호메시지였다.

p251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은 점점 더 멀어져가다가 중력이 가장 약해지는 지점에서 방향을 훽 꺾는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만약 속도가 딱 들어맞는다면 그 물체는 원형 궤도를 돌 수 있다(예컨대 금성의 궤도는 원에 거의 가깝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타원 궤도를 돌게 되는데, 튀코와 소피아의 골치를 썩인 화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p282 행운의 사건 덕분에 샬은 목숨을 건졌다. 큰 지진이 일어나 청형장이 파괴되었고, 하늘에 희귀한 유성이 목격되었다. 미신을 믿던 대신들은 이것을 샬과 선교사들을 처형해서는 안된다는 징조로받아들였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풀려나 중국 남부의 광둥성으로 유배되었다.

p311 제르맹은 개인적 부탁으로 라그랑주의 강의노트를 얻어 독학으로 수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제르맹의 정체를 안 라그랑주는 그녀의 지식에 큰 감명을 받아 수학에 관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다가 제르맹의 개인 지도 교수가 되었다.

p322 코발렙스카야의 논문은 봉투와 논문 자체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좌우명이 적혀 있었다. 아는 것만 말하고,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하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p351 이 정리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감을 잡고 싶다면, 우주를 기술하는 모든 방정식을 적는다고 상상해보라. 여러 과학 분야에서 나온, 온갖 기이한 수를 포함한 방정식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뇌터의 정리는 그 모든 방정식에 대해 뭔가를 알려준다.

p365 코넬대학교의 창립자 에즈라 코넬은 초기부터 노예 제도를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코넬대학교는 매년 소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받아들였다.

p372 데이비드 블랙웰은 초등학교 교사가 도기를 열망하며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나-섐페인 캠퍼스에서 공부했다. 그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1941년에불과 22세의 나이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p405 어마어마하게 큰 수중에서 두 소수로 쪼개지지 않는 짝수가 존재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것은 정형적인 정수론 문제이다. 즉, 어마어마하게 큰 수학 반례가 나오기 전까지는 참인 것처럼 보이는 진술이다.

p408 두 사람이 너무나도 큰 성공을 거두자, 수학자이자 국제적인 축구선수인 하랄 보어는 1947년에 영국에는 위대한 수학자가 세 명 있는데 바로 “하디와 리틀우드, 그리고 하디-리틀우드”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거둔 성공을 아주 잘 표현했다

p414 지금도 우리는 라마누잔의 수학이 남긴 영향을 겨우 이해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그 후 장-피에르 세르와 피에르 들리뉴는 수십 년 동안 그의 연구를 깊이 탐구하다가 정수론에서 갈루아 표현이라는 중요한 도구를 개발하여 수학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상인 필즈상을 받았다. 이것이 촉발한 진전은 결국 350년 동안 풀리지 않고 남아 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하는 길을 열었는데 이 추측은 1995년에 영국의 앤드루 와일스가 증명했다.

p419 카오스는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 뿐이다. 이런 종류의 예측 불가능성을 1960년대에 카오스 이론이 발전하기 20여 년 전에 카트라이드와 리틀우드가 발견한 것이다.

p427 많은 세월이 지난 뒤 그는 설령 리만 가설이 틀렸다 하더라도 자신의 수가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일부 수학자들은 이것이 과연 올바른 접근법인지 의심했다. 수학에서는 옳거나 그르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다. 결정 불가능이라는 세번째 범주도 있다. 사용된 수학의 공리가 지닌 제약 때문에 결과가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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