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 - 내가 사랑한 가야,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잊혀진 나라 여행기
정은영 지음 / 율리시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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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

 : 정은영

 : 율리시즈

읽은기간 : 2025/10/11 -2025/10/20


알려지지 않은 나라. 가야..

우리나라 고대사는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많다보니 항상 신화에 쌓여있다. 

그러다보니 얼토당토 않은 사이비 역사가들의 허풍과 거짓말의 잔치가 계속 벌어진다. 

가야는 더더욱 안 알려진 나라.. 임나일본부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런 가야를 탐방하는 책이 있다 해서 열심히 읽었다. 

저자는 가야의 영향력이 있는 지역을 매우 넓게 보았다. 

가야의 중심지인 김해, 부산, 고령, 함안 뿐만이 아니라 전주까지도 가야의 영향력 하에 두고 탐방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유물과 유적, 그리고 고고학적 성과가 있었다. 

순장이 있었던 고분도 발굴이 됐고, 많은 고분군과 토기, 철제류가 연구됐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구슬에 꿰어 보배로 만들고 있었다. 

반성한다.. 가야에 대해서 더 배워야갰다.. 

좋은 책을 읽어서 즐겁고 행복하다. 


p7 고고학의 목적은 화려한 유물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인간이다. 저자는 역사에 과잉된 내셔널리즘을 투영하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수많은 무덤에서 사랑하고 때론 다투던 과거 사람들의 외침을 느낀다.

p29 흉노족 후손이 가야뿐만 아니라 신라를 이끌었다는 주장은 두 개의 비석 문무왕릉비와 대당고김씨부인묘명이 발견되면서 주목받았다. 문무왕릉비에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이 7대를 이어 내려와라고 되어 있고, 대당고김씨부인모명에는 김씨 부인의 선조가 요동지방으로 피난하고 번성해진 김일제의 후손으로 소개되어 있다.

p40 봉황대가 바다였음을 알려주는 유적은 회현리 패총이다. 패총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등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유적으로 그곳이 옛날에 바다였음을 알려주는 자리다. 봉황대의 회현리 패총은 특히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진 곳으로 중요한데, 지금도 봉황대 아랫마을 입구에는 이를 기억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p44 신화는 역사가 놓칠 수 있는 진실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여러 세대를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소망과 마음이 모여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함께 신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p51 이곳의 발굴은 1969년부터 2008년 일단락되기까지 40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의 정성스러운 발굴 결과로 무덤만 총 20여기가 발견되었고 가야토기, 철제무기류, 갑옷, 금동관 등 1만여 점이 넘는 유물이 나왔다. 복천박물관은 복천동 고분에서 나온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1996년 개관한 곳이었다. 미지의 왕국으로 남아 있는 가야의 신비를 풀며, 고대 부산에 있었던 가야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p58 덧널무덤의 특징은 덧널의 흔적을 안타깝게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무의 특성 때문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껴묻거리만 있고 관의 흔적이 없을 때 고고학자는 이를 덧널무덥으로 추정한다. 덧널무덤을 볼 때면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른다.

p69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아라가야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함안을 샅샅이 뒤졌다. 1917년 일본의 역사학자 이마니시 류의 첫 발굴, 1918년 야쓰이 세이이치의 말이산 정상 13호분 발굴이 있었다. 이때 발굴된 유물들을 일본인들이 화차로 실어 가 남아 있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p76 이곳이 일본서기에 기록된 529년 안라고당회의 장소였다는 설이 있다. 안라고당회의는 당시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놀의하기 위해 신라, 왜, 아라가야, 백제가 함께 만난 국제회의로 알려져 있다. 그 회의를 위해 고당을 새로 지었다는 이야기다.

p87 소가야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가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의미의 작은 가야라는 설도 있고, 철이 많이 나는 쇠가야가 잘못 전해야 소가야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소가야가 언제 멸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가야 멸망했다는 562년경으로 짐작되고 있다.

p105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신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p117 해인사에는 대가야 시조 신화의 주인공인 산신 정견모주를 모신 국사단이 있다. 해인사의 국사단은 절을 구성하는 단순한 전각이 아니라 대가야를 지탱했던 성소이다.

p125 지방 박물관들은 흔히 고분을 끼고 있다. 고령의 대가야박물관, 김해의 대성동박물관, 고성의 고성박물관의 입지가 다 그러하다.

p143 일본서기에 512년 있었다는 임나4현 할양 기사는 조심스레 읽어내릴 필요가 있다. 임나 4현은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인데 호남 동부를 아우른다. 백제가 왜에 조공하며 임나 4현을 달라고 해서 주었다는 기록이다. 백제와 왜의 조공과 할양 부분은 왜곡되었지만, 6세기 초 호남 동부가 가야에서 백제로 넘어가는 일단의 과정을 시사한다.

p153 기억나는 것은 청정한 장수의 밤을 강타하는 시원한 물소리였다. 알고 보니 장수는 물의 마을이었다. 금강의 발원지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우물지인 뜬봉샘이 바로 장수에 있다. 그날 밤 내가 들은 물소리는 깊은 소나무를 뚫고 나오는 세찬 빗소리 같았다.

p162 순천의 가야는 인디언 서머처럼 짧고 굵은 시간이었다. 순천의 가야는 5세기에서 6세기까지 채 100여 년이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시기를 제외한 대다수 시간은 마한과 백제 문화권에 속했다.

p165 순천은 6세기 백제가 조공을 바쳐 임나5현을 요청하니 왜가 이를 허락했다는 문제의 임나4현으로 거론되는 곳이다. 일본서기의 기록이 맞다면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의 4현이 왜의 땅이었다는 얘기다. 상다리와 하다리는 여수, 모루는 광양으로 비정되고 사타가 바로 순천이었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다.

p168 우리의 근대에 간송 전형필이 있다면,. 우리의 현대에는 한창기가 있다. 전시실의 카피가 말하듯, 한창기는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이다.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어서 순천은 더욱 그리운 곳이 될 것 같다.

p192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된 유물의 10퍼센트가 리움미술관 소장이다. 고미술은 4층 청자, 3층 분청사기, 2층 고서화, 1층 불교미술과 금속공예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고, 4층에서부터 한 층씩 계단을 내려오면서 관람하는 동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층을 다 보는 것도 좋지만, 관심이 있는 층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도 괜찮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거쳐 나눠보기 방식이다. 4층은 국보와 보물 천지다. 3층에는 호랑이의 눈빛과 털이 생생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있다.

p202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한 박물관이다. 가야가 생경했던 1998년 개관했으니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가야인의 삶과 생업, 전쟁과 사랑, 철의 제국과 해상강국 등의 모든 이야기를 다 담아놓았다. 김해, 함안, 부산, 창년 발굴 가야 유물들을 전부 포함하고 있다. 금관가야, 아라가야, 비화가야 등 가야 소국들의 유물을 함께 관람하며 서로의 양식과 특징을 비교해볼 수 있어 가야 문화 전반에 대한 조망이 가능하다.

p210 굴가마라는 토기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낸 가야인들의 과학정신도 대단하지만, 가야토기는 다양성에서 더욱 빛난다. 여러 가야 소국이 연맹과 네트워크로 작동한 정치체를 운영했던 것의 문화적 결과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데서 창조성과 다양성이 꽃핀다.

p226 5세기 죽막동은 대가야가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으나, 그 땅의 주인은 백제였다. 그 백제 땅에서 주변국의 토기들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백제, 가야, 왜의 토기, 금세공품, 철기들이다. 이 유물들이 서로 섞여 투명박스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국적이 다른 유물들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이곳은 국제 해양 제사가 열린 곳으로 알려지게 된다. 풍어와 해상의 안전, 나라의 평안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

p228 순장은 원래 스키타이, 흉노 등 북방 유목민들의 풍습이었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스키타이족의 순장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스키타이 왕이 죽으면 왕의 시신을 안치한 후 왕의 후궁, 술따르는 사람, 요리사, 마부, 집사를 각 한 명씩 죽여 순장했다. 그 왕의 1주기가 되면 왕의 시종 50명과 말 50필을 죽여 이들을 서로 연결해 무덤 주위에 빙 둘러 배치한다. 마치 50명의 기마병이 죽은 왕을 호위하고 있는 느낌이다.

p243 아요디아가 아유타국으로 지목된 데는 쌍어문과 허황옥을 일생에 걸쳐 좇은 두 연구자의 공이 크다. 아동문학가이자 삼국유사 연구자인 이종기와 고고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였던 김병모다. 이종기가 펜클럽대회 참석차 들른 아요디아에서 쌍어문을 발견했듯이, 김병모 또한 아요디아에서 쌍어문을 찾았다.

p257 아내이자 엄마로 살면서 나라가 부를 때 갑옷과 투구를 쓰고 참전한 주체적인 가야 여성을 대성동박물관에서 만났다. 특히 57호분 순장녀들이 여전사들이었음을 보다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홀로그램을 만날 수 있었다.

p262 죽음을 앞두고 그는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 속에 묻힐까. 차차리 돌로 덮어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자손은 구형왕의 유지를 받들어 돌무덤을 만들었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7층의 돌무덤이 되었다.

p273 그는 1961년 북한 노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에 우륵의 음악 활동이라는 글을 남겼다. 진흥왕이 낭성에 이르러 우륵과 제자를 불러 하림궁에서 연주를 들은 해 551년을 기점으로 141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진흥왕과 우륵의 역사적 만남이 북한 땅에서도 기억되고 있다.

p287 무엇보다 가야를 하나로 묶는 기능은 건국신화가 했을 듯하다. 가야에는 두 개의 건국신화가 있다. 금관가야 중심의 것은 삼국유사에 수록된 수로왕의 구지봉 신화다. 지금의 김해 땅에 있는 얕은 언덕, 구지봉에 6개의 황금알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알에서 6명의 동자가 깨어났다. 그 중 가장 먼저 깨어나온 동자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 동자는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또 하나는 대가야 중심의 건국신화인데 조선시대 진증동국여지승람에 신라 말기 최치원이 쓴 석이정전의 내용으로 소개되었다.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이비가지가 만나 형제를 낳는다. 뇌질주일과 뇌질청예다. 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이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이다.

p304 하워드 카터가 왕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수천년의 시간 동안 마른 한 묶음의 꽃다발을 만나게 되었다. 무엇일까. 어린 나이에 홀론 된 왕비가 남편인 투탕카멘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지 않을까. 이렇듯 무덤은 남은 자들이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선물이 그윽한 곳이다.

p314 고고학자 강인욱은 고고학 여행에서 무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랑이라고 했다. 작별을 준비하면서 가야인들은 토기를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p321 신라의 탈해왕이 된 석탈해는 철기 집단의 수장이라는 추정이 우세한데, 기록에 보면 석탈해가 가야에 와서 수로왕과 술법을 겨루는 장면이 있다. 이 술법 싸움을 석탈해와 수로왕의 철기 집단 사이의 패권 다툼으로 보는 해석이 우세하다. 캄차카반도에서 이주한 석탈해 중심의 철기 집단이 먼저 이주해온 김수로왕의 철기 집단에 싸움을 걸었다가 패배하고 결국 신라로 갔다는 해석이 있다.

p341 1970~1980년대 한국 고고학은 일제강점기의 어둠을 넘어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발굴은 1977년 고령 지산동 고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순장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한 고고학계 일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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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외 지음, 김병화 옮김, 이상희 감수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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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것의 새벽

 : 데이비드 그레이버

 : 김영사

읽은기간 : 2025/06/27 -2025/09/20


벽돌책답게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 대여를 했는데 책이 두꺼워 다 못읽고 반납을 했다가 다시 빌려서 봤다. 

제목이 매우 매력적인데 읽는데는 쉽지 않았다. 

인류 역사 초기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흥미롭긴 하지만 머릿속으로 정리하기엔 쉽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기존 역사와 믿음과는 다른 내용이다 보니 더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초기 문명시절에도 평등한사회에서 왕과 권력자가 생겼다는 단선적인 방향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 민주사회, 왕 및 귀족사회등 다양한 사회가 파노라마처럼 함께 있었고, 단선적인 방향으로 역사가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특히 그동안 많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아메리카의 초기 문명을 중심으로 내용이 설명이 되니 흥미롭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저자는 수십년 내에 이와 같은 문명발달사가 주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 아니면 기존의 이론이 더 많은 증거를 보강해 강화될 지는 모르지만 초기 문명의 다양한 아규와 토론이 문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재미있지만 읽기는 쉽지 않았다. 


p19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물질적 자원(토지, 칼로리, 생산수단)이 확실히 중요하다고는 해도 인간의 역사에서 궁극적인 질문은 그런 것을 얻을 기회가 평등한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에 관한 결정에 도움을 줄 능력이 평등한가다.

p28 고대 무덤의 증거에서 얻어진 건강 관련 지표들이 발견되는 통계적 빈도를 근거로하여 인간 사회가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일반적 결론을 내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우리는 홉스와(그리고 핑커와도)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종은 기르고 보살핌을 베푸는 종이며, 삶이 불쾌하고 잔혹하거나 짧아야 할 필연성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p34 그녀는 야노마미족의 습격의 잔혹성을 묘사한다. 하지만 그는 1956년에 그녀가 야노마미족을 떠나 원래 가족을 찾아 나섰고 다시 서구 문명에서 살게 되었지만, 수시로 굶주리고 끊임없이 거부당하여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얼마 뒤 충분한 상황 인식에 근거하여 판단할 능력이 생기자 엘레나 발레로는 야노마미족과의 삶이 더 좋다고 판단하고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돌아갔다.

p48 갑자기 유럽의 더 강력한 몇몇 왕국들이 지구상의 방대한 지역을 장악했고, 유럽 지성인들은 중국과 인도문명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사회적, 과학적, 정치적 이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런 세 이념의 홍수가 초래한 최종 결과가 계몽주의라 알려진 현상이다.

p51 우리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점차 그들 나름으로 유럽의 제도에 대해 놀랄만큼 일관성 있는 비평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비평이 유럽 자체에서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53 토머스 홉스, 휘호 흐로티위스, 존 로크같은 저자들은 다들 출발점으로 삼는 성경의 서사를 건너뛰고,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것이 인간성뿐이라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p61 그들은 호의에 응답하며 읍과 마을에 거지가 한 명도 없도록 서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도와준다. 그리고 프랑스에 그토록 궁핍한 거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그것을 아주 나쁜 일로 여겼고, 그것이 우리에게 자선의 마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를 심하게 비난했다.

p68 정치적 기준에서 프랑스인들과 아메리카인들이 토론한 것은 평등이 아니라 자유에 대해서였다.

p88 칸디아롱크의 의견은 독일어, 영어, 네델란드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고, 한 세기가 넘도록 여러 판본으로 계속 출판되었다.

p92 프랑스의 관찰자들은 거의 모든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개인의 자율성과 행동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본다는 것-어떤 인간 존재가 다른 존재의 의지에 복종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운영하며, 그런 이유로 프랑스 사회를 본질적으로 파벌적 노에의 삶으로 본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으면서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p113 칸디아롱크 같은 선주민 비평가들의 안내를 받아 인간의 과거에 대한 증거에 새로운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

p121 우리가 고대 선조들의 사회적 조직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지극히 다양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고대의 인간은 해안과 열대우림부터 산지, 사바나까지 무척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살았다. 그들은 오늘날의 인간보다 훨씬, 훨씬 더 신체적으로 다양했다.

p124 사피엔트 패럭독스(유적적, 해부학적 현생 인류의 등장과 현생 인류와 관련된 복잡한 행동의 발달 또는 문명의 등장 사이에 왜 긴 시간 간극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리킨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왜 후기 구석기 문화가 나온 이후 오랜 정체 상태를 거쳐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신석기 문화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옮긴이)라고, 몇몇 연구자들은 심지어 인간 두뇌에 어떤 뒤늦은 변이가 있다고 가정하고 후기 구석기 혁명에서 보이는 외견상 탁월한 문화적 능력을 그것으로 설명하려고도 있지만, 그런 견해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p131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가 낳은, 그래서 고고학자들로 하여금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에 대한 견해를 바꾸게 만든 또 하나의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거대 구조물의 출현이다. 유라시아에 있는 이런 구조물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튀르키예 남동부의 하란 평원을 바라보는 게르무스산맥에 위치한 석조 신전이다. 1990년대에 그 평원의 북쪽 경게를 조사하던 독일 고고학자들이 그 지방에서 괴베클리 테페라 부르는 장소에서 아주 오래된 고대 유적을 발견했다.

p142 어떤 인간 사회에나 회의론자와 비순응주의자가 있다고 믿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차이점은 타인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있다.

p146 남비콰라족 족장을 그토록 유달리 눈에 익은 정치적 인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특성이었다. 공동의 이익과 개인적 야망 간의 규형을 맞추면서도 사실상 다른 두 가지 사회 시스템 사이를 이동하면서 유지하는 차분한 지혜라는 특성 말이다.

p151 거의 모든 사람은 아예 매장되지도 않는 와중에 일부 사람들이 풍부한 부장품과 함께 매장되는 상황이 문제되는 것이다.

p154 다른 말로 하면, 또 그 자체로 놀랍기는 하지만, 기우너전 3000년대에도 분명히 영국제도의 많은 지역에서 모종의 협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톤헨지가 지배 씨족의 고위급 설립자들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면-현재 몇몇 고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들 계보의 일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요구했을 가능성은 크다.

p158 로위가 관찰했듯이, 이런 명명백백한 독재는 엄격히 게절적이고 일시적인 수준에서만 작동했다. 사냥철이 -그리고 그 다음에 집단적으로 거행하는 선댄스 제의가- 끝나면 그런 독재는 그가 아나키스트적 조직 형태라 부른 것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면, 사회는 다시 한번 작고 기동력 있는 무리로 쪼개진다. 로위가 관찰한 내용은 놀랍다.

p162 그들은 교대디는 사회적 설정 사이에서 계속 왕복하고, 거대한 구조물을 지었다가 다시 허문다. 한 해의 특정한 시기에 전제주의적 구조가 등장하도록 허용한 다음 그것들을 해체한다. 그 모든 행동은 특정한 사회적 질서가 결코 고정되거나 불변적이지 ㅇ낳다는 것을 아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p173 왜 위계 형식들을 구축했다가 해체하면서 수천 년을 보낸 뒤에, 호모 사피엔스-영장류 가운데 가장 영리하다고 하는-는 영구적이고 고치기 어려운 불평등 시스템이 뿌리를 내리게 허용했는가?

p178 동부 아프리카의 하드자족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마르투족 그룹들에 대한 연구는 현재의 채집인 사회가 수적으로는 작은 규모일지 몰라도 구성원들의 성격은 놀랄 만큼 국제적임을 보여준다.

p184 만약 모든 사회가 특정한 핵심 가치(부, 경건성, 미, 자유, 지식, 전투 기량)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면, 평등 사회는 모든(혹은 거의 모든) 구성원이 최상의 가치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분배되어 있다고 동의하는 그런 사회다.

p193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적어도 최초의 질문을 다시 다듬어볼 수 있다. 진짜 수수께끼는 족장이나 심지어는 왕과 여왕이 처음 등장한 게 언제인가가 아니라, 그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치부하여 궁정에서 몰아내는 것이 언제부터 불가능해졌는가이다

pp198 살린스가 제시한 큰 그림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해둘 필요가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평균적으로 억압하에서 살아간 중세 농노도 아홉 시에서 다섯 시까지 근무하는 현대의 사무직이나 공장 노동자보다 적게 일했으며, 스톤헨지를 짓기 위해 큰 석판을 끌고 온 헤이즐넛 채집인과 유목민의 평균 작업 시간은 분명히 그보다 더 적었다.

p200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단순히 농사를 지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몽공고 넛이 사방에 천지인데 왜 식물을 심어야 하는가? 쿵족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p203 인간은 농업에 손을 대기 오래전부터 수만 년 동안 상이한 삶의 방식을 실험해왔다. 차라리 변화의 전반적인 방향을 찾아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우리가 던진 질문에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어찌하여 한때는 우리의 사회적 관계의 본성이던 유연성과 자유를 잃고 영구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고착되었는가

p216 정착민이 야만적이고 손대 않은 황무지라고 여기는 땅은, 대개 알고 보면 선주민들이 소각 관리, 잡초 제거, 잡목림 식립, 비료 주기, 가지치기를 통해 또는 특정한 야생 식물군의 서식지를 넓히기 위해 하구 땅을 계단식으로 관리하고, 조개의 번식력을 높이기 위해 개펄에 대합 밭을 조성하며, 연어, 농어 등을 잡기 위한 보를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수천 년 동안 능동적으로 관리되어온 땅이었다.

p249 이런 특에 의거하여 볼 때, 재구성된 문화 지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질문이 된다. 그것은 농경을 수용할지 말지와 같은 결정이 단순히 칼로리상의 이익 계산이나 무작위적인 문화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 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서로서로 어떤 관게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p284 그들이 그런 수탈이 자신들의 사회에서도 가능한 줄 알고 있었지만 거부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노예 보유는 자신들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살이 찌고 게을러질 것이다)

p293 우리는 미래의 사건을 예견할 수 없지만, 그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가 힘들어진다.

p307 김부타스는 이런 식의 논리를 제안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중동과 신석기시대의 유럽에 여성의 자율성과 제의적 우선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자 그녀의 생각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에코페미니즙이나 뉴에이지 종교, 또 다른 수많은 사회운동의 현장에 수용되었다.

p336 중요시해야 할 지점을 농경과 길들임이 아니라 식물학이나 텃밭농사로 옮겨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단번에 신석기시대 생태학의 현실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들은 야성적인 자연을 길들이거나 한 줌의 풀씨에서 최대한 많은 칼로리를 쥐어짜내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마당의 텃밭을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다.

p349 오랫동안 농업혁명의 요람이라 여겨져온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사실은 구석기시대의 채집인에서 신석기시대 농부로의 전환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로 야생 자원으로 먹고살던 단계에서 식량 생산에 근거하는 삶으로의 이행은 약 3,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리고 농업으로 인해 부가 더 불평등하게 집중될 가능성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거의 모든 경우에 그 가능성의 씨앗이 뿌려지고 나서 1,000년 뒤에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의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사실상 시험 삼아 짓는 농사, 취미 농사를 시도하고 있었고, 각자의 사회적 구조를 이리저리 전환하면서 생산 양식을 바꾸었다.

p366 농경의 안팎으로 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혹은 그 문턱에서 머무는 것은 결국 알고 보면 인간 종이 과거의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해온 일이었다. 그런 유동적인 생태적 설정-텃밭 경작, 호수나 오아이스 주변 범람 퇴수 농법, 소규모의 지형 관리(가령 불지르기, 가지치기, 계단식 밭 조성)와 반야생 상태에서 동물의 길들임과 사육과 광범위한 수렵, 어로, 채집 활동의 혼합-은 과거 세계 여러 지역 인간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p376 이런 반려동물은 흔히 사냥당해 잡아먹힌 동물의 새끼인 경우가 많다. 인간 양부모에게 받아들여지고, 어렸을 때는 먹이를 얻어먹고 보살핌을 받다가, 주인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된다. 이런 복종은 성체가 되어서도 지속된다. 반려동물은 잡아먹히지 않는다. 또 그 주인들이 새끼를 치는 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려동물들은 저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은 반려동물들을 아이들처럼 키우며 애정의 대상이자 즐거움의 원천으로 여긴다.

p394 마치 현대의 채집인 사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규모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하나는 작고 친밀한 규모이며, 다른 것은 광대한 영토, 심지어는 대륙에까지 확장되는 규모다. 이는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인지과학의 시각에서 볼 때는 완벽하게 타당하다.

p411 주민들의 식물성 식단에는 밀, 보리, 공과 식물 외에 사과, 배, 체리, 자두, 도토리, 헤이즐넛, 살구도 포함되어 있다. 메가 유적의 거주민들은 농사를 짓고 삼림을 활용하는 동시에 붉은 사슴, 노루, 멧돼지를 사냥했다.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취미 농사였다. 이는 도시 인구가 엄청나게 다양한 야생 식품과 함께 소규모의 재배와 목축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형태다.

p429 우루크가 유명해진 것은 그쓰기 덕분이다. 그곳은 우리가 문자 기록을 대량으로 갖게 된 최초의 도시이며, 이런 자료 가운데 일부는 왕의 지배가 들어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석하게도, 그런 자료는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p449 지금까지 우리는 유라시아의 별개의 세 구역에서 도시가 처음 출현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았다. 각 경우에 우리는 군주제나 전사 엘리트가 존재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과, 그와 함께 각각의 도시가 공동체의 자치 제도를 개발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p454 투웨이 강변의 스마오에서 이루어진 발굴은 이 모든 것과 함께 복잡한 공예와 전쟁의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했으며, 기원전 2000년경 있었던 전쟁, 대량 살해와 포로 매장의 증거도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후대의 궁정 전통의 연감에서 상상되던 것보다 훨씬 더 활발한 정치적 장면을 발견한다.

p459 지금 우리는 도시 테오티후아칸이 멕시카족이 오기 전 여덟 세기 동안, 그리고 스페인인들이 오기 1,000년도 더 전에 전성기를 누렸음을 알고 있다. 그것이 세워진 시기는 기원전 100년경이며, 몰락한 것은 기원후 600년경이었다. 또 그 몇백 년 동안 테오티후아칸은 제국으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의 로마와 쉽게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장엄하고 수준높은 도시가 되었다.

p474 거대 구조물 건설의 모든 작업에는 노동력과 자원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을 바치는 공양이 요구되었다. 건설의 중요한 단계마다 항상 제의적 살해의 고고학적 증거와 결부된다. 피라미드 두 기와 신전에서 나온 인간 유골을 합치면 희생자의 수는 수백에 이를 것이다. 그들의 시신은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그 위로 솟아오를 구조물의 평면도를 그리게 될 구덩이나 참호에 놓였다.

p482 이 설명에는 기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틀라스칼라에는 왕이 없었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의미로도 왕국의 연합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만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수상 경력이 있는 과학 분야의 언론인이지만, 16세기 중앙아메리카 역사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그는 2차 자료에 의존했고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문제가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p491 의회는 합리적인 논의와 장시간의 숙고를 통해, 필요하다면 몇 주일씩이라도 심의한 뒤에 결정을 내리고 합의를 추구했다.

p495 틀락스칼라 의회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개인적 카리스마나 경쟁자를 능가할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하, 심지의 수치의 정신을 실행해야 한다. 그들은 도시 주민들에게 복종하도록 요구받는다.

p525 저서 문화 성장의 설정에서 크로버는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예술, 철학, 과학, 인구의 관계를 살펴보았지만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또 그런 패턴은 같은 노선을 계속 밟아나간 더 최근의 몇몇 연구에서도 파악되지 못했다

p529 장래의 이집트학자들이 아무리 그것들을 높이 평가하게 될지라도, 중왕국 때 쓰인 시누헤 이야기 같은 문학의 우아함과 오시리스 숭배의 번영은 수천 명의 징집 병사, 강제 노역자, 처형된 소수민족 들에게는 전혀 위안을 주지 못했다. 그 이전의 암흑시대에 그들의 조부 세대는 대부분 아주 평화롭게 살았는데 말이다

p536 올멕에서도 그랬지만, 그 영향력의 놀랄 만큼 많은 부분이 행정적, 군사적 혹은 상업적 제도와 관련된 기술의 전파보다는 이미지의 형태-안데스의 경우, 작은 도기그릇과 개인 장신구와 직물에 그려져 분포되었다-로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p544 위대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반 나체즈족은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것 같고, 그들의 표면상의 지배자의 소원을 기쁘게 무시하는 모습도 흔히 보인다. 그들은 독자적인 상업과 군사적 원정을 행하며, 때로는 위대한 태양이 보내는 신하들이나 친척들을 통해 전해진 명령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p548 지금까지 우리는 처음에 시작한 세 원칙-폭력, 지식, 카리스마-각각이 1차 체제에서 어떻게 하여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국가라 여기는 것과 닮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명백히 닮지 않은 정치 구조의 토대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p553 수십 명,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인간 제물, 특별히 이 행사를 위해 살해된 인간 제물로 둘러싸인 왕의 무덤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왕조적 도시국가인 우르에서 누비아의 케르마 정치집단, 중국의 상 왕조에 이르기까지 군주제가 결국 확립된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 티베트, 일본, 러시아 초원에도 믿을만한 문장으로 된 묘사가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남아메리카의 모체와 와리 사회, 그리고 미시시피강 유역의 도시 카오키아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p569 사실상 왕이 내린 모든 결정은-전쟁이든, 동맹이든, 새 도시의 건설이든, 심지어 왕실의 사냥터를 확장하는 것 같은 외견상 사소해 보이는 문제든- 신과 조상 혼령, 즉 지고의 권위에 의해 인증되어야만 진행될 수 있었다.

p591 전쟁은 대체로 농사를 짓지 않는 계절에 하는 일이었다. 사제와 법관 역시 전업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사실 이집트 고왕국, 중국의 상 왕조,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왕조, 또는 고전기 아테네의 거의 모든 정부 기관을 맡은 직원들은 순환제로 일했고, 시골 영지의 관리자, 상인, 건설업자, 그 밖에 다른 직업인으로서 다른 삶을 살았다.

p597 이 책 전체에서 계속 다루었듯이, 세계 전역에서 작은 공동체들은 확대된 도덕적 공동체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명을 형성했다. 영속적인 왕, 관료나 상비군 없이도 그들은 수학적 지식, 달력과 관련한 지식의 성장을 촉진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야금술을 개발했고, 올리브, 포도, 대추야자를 재배했으며, 발효 빵과 발효 밀백주를 발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옥수수를 기르고 식물에서 독과 약품, 향정신성 물질을 추출하는 법을 익혔다. 이 참된 의미에서의 문명은 직물과 광주리짜기에 적용된 주요 직물 기술과 도자기 제작용 물레, 석재 산업과 구슬 가공, 돛과 항해술 등등을 개발했다.

p604 학자들은 여사제 집단이 다스린 도시란 민족지학적 기록이나 역사적 기록에 전례가 없었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동일한 논리에 따라 남성이 지배하는데도 시각적 표상에서는 권위 있는 인물이 모두 여성으로 묘사된 왕국의 전례 역시 없었다고 똑같이 지적할 수 있다. 크레타에서는 뭔가 색다른 일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p631 투커의 지적에 따르면 씨족은 외교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단순히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교적 임무의 의전을 정하고 전쟁을 막기 위한 보상을 지급하거나 포로를 받아들이는 일도 포함된다.

p651 체로키, 치카소, 촉토, 크리크, 세미놀레 부족을 말한다. 그런 부족들은 모두 참여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며 합의 도출의 과정에 의해 운영되는 공동체 위원회가 다스리는 패턴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두가 원로 사제들, 카스트, 군주의 흔적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세습적 지도부가 19세기까지도 남아 있으면서 더 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선호하는 광범위한 추세에 거역하면서 최대한 버텼다.

p663 북아메리카의 사례는 전통적인 진화론 구도를 혼란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국가 형성의 덫에 한번 걸리게 되면 출구가 없다는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명확하게 입증했다.

p677 드농비유를 무찌른 뒤 기조나세는 군대를 해산하고 대위원회를 재구성하기 위해 새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다르게 행동하기로 선택했더라도 전례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p691 아이러니한 일인데, 앞에서 보았듯이 이제 그의 성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현대 고고학의 결과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호카트가 예언한 대로, 구석시대 후번은 거창한 부와 명예를 대부분 죽었을 때 끌어모은 것으로 보이는 개인들을 위해 꼼꼼하게 연출된 장대한 매장의 증거를 정말로 남겼다.

p704 그들을 진정으로 경악하게 한 것은 채찍질하고, 끓는 물에 넣고, 낙인을 찍고, 살을 베는-때로는 요리하여 먹기까지 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웬다트족 마을이나 소도시의 거의 모두가, 여성들과 아이들까지도 거기에 참여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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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서울 사찰 여행 - 조선 불교 이야기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5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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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서울 사찰 여행

 : 황윤

 : 책읽는고양이

읽은기간 : 2025/08/11 -2025/08/23


우리나라 유물, 유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황윤님의 2025년 책..

예전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처럼 이야기체로 글이 쓰여져 있어서 읽기 쉽고, 내용도 알차다. 

이번 내용은 서울의 사찰이야기다. 그것도 주로 조선시대 사찰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신각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동했었는지, 봉은사는 어떤 의미인지, 조계사가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게 됐다. 

생각보다 서울의 유적을 내가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가 다르다보니 불화나 부처님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책에서 꽤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서 나중에 부처님을 보러 가게 되면 삼존불이니, 삼세불이니 하는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교와 유교의 충돌속에서도 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물이 사찰과 불화로 나타난다는 것도 재미있다. 

과거 사람들과 대화하며 내가 사는 세상을 돌아볼 수 있어서 역사가 참 좋고 재미있다. 

좋은 책이다. 


p38 간경도감은 11년간 운영되다 친 불교 기관이라는 비판 속에 성종 2년인 1471년에 문을 닫았는데, 짧은 기간 동안 한문, 한글 불경까지 합쳐 무려 47권 이상의 책을 인쇄 출판하였다.

p51 성리학 근본주의에 빠지면 빠질수록 불교를 더욱 업신여기며 비판하곤 했다. 이와 달리 왕실, 특히 왕실 여성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은 계속 이어졌기에 왕의 입장에서는 난처한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p56 정확안 위치는 현재 명동성당이 자리 잡은 장소다. 그러다가 광해군 때 옛 종루 터에 종루를 짓고 종을 다시 옮겨왔으니, 앞서 보신각에서 이야기했듯 이때부터 사실상 보신각종이 된다.

p70 사실 이러한 조선 초 무덤 디자인은 불교가 국교였던 시절 조성된 고려 공민왕의 능을 모범으로 조성된 것으로 세종 시대를 기점으로 유교 의례가 강조됨에 따라 불교식 디자인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p107 이르 ㄹ미루어 보 ㄹ때 연산군 말기부터 중종 초반까지 조선의 분위기는 1960-1970년대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과 유사했던 모양이다. 특히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반달리즘이라는 부분이 동일하다.

p120 18세기 후반부터 사대부들의 불교에 대한 관점은 조선 전기에 비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는 사실.

p132 아미타불이 모셔진 장소는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등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사찰 여행 때 큰 도움이 될 듯하다.

p152 하나의 그림 안에 동일한 사람이 여러 번 등장하고 있으니, 이는 시간 순서에 따라 이어지던 여러 사건을 하나의 그림 안으로 묶어 표현한 스토리텔링으로 보인다. 즉 해당 그림은 석가모니 탄생때 벌어지던 여러 일을 묶어 한 폭으로 그려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p209 석가모니 양 옆에 위치한 문수보살은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며 보현보살은 실천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최고의 지혜를 깨닫고 이를 실천해야 함을 의미. 이에 따라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에는 보통 석가모니의 오른편에는 문수보살을, 왼편에는 보현보살을 모신다. 아미타불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함께하는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이를 협시보살이라 부른다.

p224 석가모니가 포함되어 삼신불 또는 삼세불이 구성되는데,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하나의 전각 안에 1. 석가모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 삼신불을 모시기도 하고, 또는 2. 아미타불, 석가모니, 약사불 = 삼세불을 모시기도 한다.

p232 미를을 표현한 것으로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이 유명하며, 본인이 미륵이라 주장한 궁예, 고려 말 미륵 신앙에 기댄 이성계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더 자세한 미륵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일상이 고고학 :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을 참고하면 좋겠다

p232 흥미로운 부분은 자장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설사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이도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조상에 대한 제사 문화가 남달랐던 조선 시대에 들어와 특별히 더 사랑받는 보살이 되었다는 점이다.

p237 은퇴한 왕실 여성들은 정업원 외에도 궁궐 주변의 궁가에 머물기도 했는대, 예를 들면 의빈궁, 자수궁, 혜빈궁, 신빈궁, 수성궁, 창수궁, 정청궁, 인수궁 등이 그것이다. 선왕의 후궁들이 머문다 하여 격을 높여 궁이라 부른 것인데, 궁궐 법도에 따르면 왕이 죽으면 왕비를 제외한 나머지 후궁들은 궁궐 밖으로 나가 살아야 했기에 이들의 거처가 따로 필요했다.

p249 문정왕후의 400점 불화 조성은 왕실 여성이 지원한 조선 시대 불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p262 견성사는 성종의 능이 조성되자 이번에는 왕릉을 위한 능침사가 되었다. 대군의 원찰에서 왕의 원찰로 격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선릉 동쪽으로 조금 이동한 후 견성상에서 봉은사로 이름이 바뀐다.

p287 금표가 세워지자 에전처럼 유생들리 사찰로 마음대로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것을 막게되었으며, 금표 내 모든 물자를 왕실의 재산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사찰과 왕실 간 상부상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p291 마륵대불 뒤편의 언덕쪽에서 코엑스를 바라보면 사찰과 코엑스 주변 건물이 함께하는 엄청난 뷰가 등장한다.

p303 1593년에는 사명대사를 당상관으로, 1594년에는 정3품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로, 1602년에는 종2품 하계 가선대부 및 동지중추부사로 증진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1605년 종2품 가의대부에 이르게 된다.

p305 조선 불교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호국 불교의 이미지로 다시 한 번 부활하였다. 그동안 매번 불교와 승려는 나라에 쓸모없는 존재라며 비판하던 유학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쾌거이기도 했다.

p310 이 판전은 김정희가 죽기 불과 사흘 전에 쓴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사실. 유배 생활이 완전히 마무리된 1852년부터 과천에서 지내던 그는 이 당시 아예 승복을 입은 채 봉은사를 다녔다고 하는데, 젊을 때부터 유달리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나 힘든 유배생활을 거치며 말년에는 더욱 깊은 종교인이 된 듯하다.

p316 사실상 판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근현대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만일 임진왜란 때 피해를 받지 않았다면 봉은사에 얼마나 수준 높은 옛 작품들이 많이 있었을까 종종 상상해본다.

p332 이 일을 기점으로 정조의 옥불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식어버렸는지 어떠한 기록에도 더이상 관련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별다른 효험이 없는 불상으로 여겨지며 무관심 속에 사라진 모양이다.

p338 제목이 관음32응신도인 이유는 앞서 보았듯이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이 부처님부터 집금강신까지 총 32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p342 제목은 수월관음보살도로 이때 달=영원불면한 불법, 물=불성을 뜻한다. 마치 하늘에 떠 모든 곳을 비추는 달처럼 불법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있으니, 마음을 맑게 하여 자신의 불성을 깨닫는다면 맑은 물에 달이 비추듯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진리를 관세음보살이 알려주고 있는 장면이라 하겠다.

p363 참고로 불교 5대 명절은 석가모니 탄생일(음력 4월 8일), 석가모니 출가일(음력 2월 8일), 석가모니 깨달은 날(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열반일(음력 2월 15일), 백중(음력 7월 15일)이다.

p380 이러한 인식은 동시대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덕분에 우란분재 또한 점차적으로 지장신앙과도 연결되기에 이른다. 지옥에 빠진 이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시점이 된 것이다.

p384 지장보살은 이전에 이야기했듯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 새로운 부처가 될 때까지 석거모니를 대신하여 여러 죄를 짓고 지옥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해탈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p390 사실 창빈 안씨의 묘가 현충원에 있는 이유는 이곳 현충원 영역의 대부분이 본래 창빈 안씨의 묘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창빈 안씨 묘 영역에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현충원을 조성했기에 지금까지도 창빈 안씨의 묘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 주변 땅의 원주인이니까

p397 우리가 전에 방문했던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흥천사는 명부적 이름을 지닌 건물 안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그 주위로 사후세계를 관리하는 10명의 왕과 지옥 관리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p400 뛰어나고 영험한 지장보살이란 무슨 의미일까? 이는 곧 49재를 마친 직후 가족의 꿈에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너무나 평온하고 기분 좋아 보이는 경험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p410 달마사 도착 후 한강뷰를 바라본다. 기와지붕 사이로 펼쳐지는 한국 전통건축의 미와 현대 건축이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낸다. 여의도가 지척이라 63빌딩을 포함한 여러 높은 빌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걸. 특히 요즘 들어 서울에서는 한강뷰를 최고로 꼽던데, 그렇게 보면 최고의 한강뷰를 지닌 사찰이 아닐까 싶다

p421 한때 보천교의 중심 건물로 지어졌던 건물이 조계사 대웅전이라 하겠다.

p432 만일 조계사에 영산전이 만들어진다면 한정된 부지 내 건물뿐만 아니라 그안에 조성할 부처님 제자인 십육나한 조각과 불화까지 조성해야 하니 엄청난 불사가 필요하겠구나. 이렇듯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기에 쉽게 진도가 가가지 않는 듯하다

p436 이렇듯 조계사의 역사는 아직 채 100년이 안되었기 때문에 대웅전에서 만날 수 있는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근현대에 조성된 모습이다.

p439 감로도는 당대 풍속이 가장 아래 부분에 그려진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근대인 1939년에 그려진 흥천사 감로도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나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 도로 공사, 자동차, 코끼리가 등장하는 서커스, 근현대 전쟁 장면 등이 묘사되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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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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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넥서스

 : 유발 하라리

 : 김영사

읽은기간 : 2025/04/14 -2025/07/08


이렇게 오래 읽을 책은 아닌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 책은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점심시간에 읽었는데 회사에서 점심약속이 많다보니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정보에 대한 빅히스토리같은 책이고, 인공지능의 위험성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인류의 위험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이 되어 있다. 

인류를 능가하는 지능과 능력을 가진 존재의 출현은 당연히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수많은 SF영화의 주제였으니까.. 

큰 문제가 없다면 인류는 인공지능을 적절하게 제어하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될 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해를 입는 인류가 나오겠지.. 

제발 내가 아니고 우리 가족이 그런 피해자가 아니길 빈다... 

크나큰 변화의 시기에 별일없이 사는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p8 늙은 마법사가 돌아오자 제자는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제가 불러낸 영혼들, 이제 다시는 떨쳐낼 수 없군요” 마법사는 즉시 주문을 풀고 물난리를 멈춘다. 제자와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함부로 불러내면 안 된다.

p10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물러내는 인간의 경향은 개인 심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대규모로 협력하는 우리 종의 독특한 특징에서 비롯한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인간은 대규모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막대한 힘을 얻지만 바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그 방식 대문에 애초에 힘을 지헤롭게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p20 만일 21세기의 전체주의 네트워크가 세계 정복에 성공한다면, 그때 전체주의를 운영하는 주체는 인간 독재자가 아니라 비인간 지능일 것이다.

p21 AI는 스스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AI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다

p22 호모 데우스가 출간된 후 수년 동안 변화의 속도는 오직 가속화되었을 뿐이며, 힘은 실제로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따. 예술을 창조하고 인간인 척 가장하는 알고리즘, 우리 삶의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우리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알고리즘처럼 2016년에는 과학소설처럼 들렸던 시나리오들이 2024년에 이르러 일상이 되었다.

p27 직접 연구한 것만 믿으라는 말은 어뜻 과학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상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4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과학은 개인적인 탐구가 아니라 제도적인 협업이다.

p31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은 현재의 정보 기술이 AI의 무엇이 새로운지, 그것이 과거의 인쇄술이나 라디오와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 그리고 미래의 AI 독재가 어떤 면에서 우리가 과거에 본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를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p43 나는 순진한 정보관에 대해 많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진실이 현실을 정화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입장은 정보의 대부분은 현실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며 정보를 정의하는 기준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라는 것이다.

p61 브랜드는 특정 종류의 이야기다. 상품을 브랜딩한다는 것은 그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상품의 실제 품질과는 거의 관계가 없지만 소비자들은 그것을 듣고 해당 상품을 떠올린다.

p68 2010년에 라스즐로 핸예츠가 1만 비트코인으로 피자 2판을 샀다. 그것은 비트코인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공식적인 상거래였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자였다.

p73 마르크스주의 관점은 냉소적일 뿐만 아니라 틀렸다. 물질적 이해관계가 십자군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이라크 전쟁 등 인간의 분쟁들 대부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종교, 민족주의 자유주의 이상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p81 미국 헌법은 우리 합중국 국민은이라고 시작한다. 인간이 작성한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수정할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십계명은 “너희 하나님은 나 야훼다”로 시작한다. 즉 신적 기원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이 수정할 여지를 차단한다. 그 결과 성경 텍스트는 지금도 여전히 노예제를 지지한다.

p100 또한 관료들은 현실을 경직된 사람으로 나누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이 미칠 광범위한 영향은 고려하지 못하고 좁은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p102 진화는 관료주의적 도식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진화의 핵심은 종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므로, 각각의 종을 하나의 고정된 사람에 넣는다는 사실 자체가 생물학적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p116 대부분의 할리우드와 발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부채담보부증권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21세기에도 대부분의 블록버스터는 사실상 영웅이 여자를 구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는 석기시대 이야기다.

p140 미시나가 정경화되어 사본이 만들어지자마자 유대인들은 미시나의 올바른 해석을 두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미시나의 해석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5,6세기에 세 번째 거룩한 책 탈무드로 정경화되었지만, 유대인들은 또다시 탈무드의 해석에 동의하지 못했다.

p1 마법에 대한 중세 교회의 공식 입장이 담긴 문서로 자주 인용되는 10세기 문헌 종교법령에 따르면, 마법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대부분 환상이며 마법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미신이었다. 유럽의 마녀사냥 광풍은 중세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근대적 현상이었다.

p167 근대초 유럽을 휩쓴 마녀 광풍의 역사는 정보 흐름의 장벽을 없앤다고 해서 진실된 정보가 확산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짓과 환상이 확산되어 유해한 정보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도 그만큼이나 쉽다.

p179 과학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제도적 실수를 기꺼이 시인하는 태도 덕분이다. 일단 증거가 확인되면 정설로 인정되던 이론이 몇 세대 내에 폐기되고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다. 21세기 초 대학에서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한 세기 전에 배웠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p190 독재는 강력한 자정 장치가 없는 중앙 집중화된 정보 네트워크다. 반면 민주주의는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춘 분산된 정보네트워크다.

p193 민주주의는 숫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민주적 네트워크에 필수적인 자정 장치 중 하나를 해체하는 것과 같다.

p197 정부가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살인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일 것이다

p203 포퓰리스트들은 표를 많이 받지 못해도 여전히 자신들만이 국민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유사 사례로 공산당을 들 수 있다.

p205 그렇다면 누가 국민이고 누가 국민이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지도자를 지지하면 국민이다. 독일 정치철학자 얀베르나 뮐러에 따르면 그것이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즉 포퓰리스트는 자신만이 국민을 대변하며 의견이 다른 사람은 누구든 (국가 관료든, 소수 집단이든, 심지어 과반수의 투표자일지라도) 허위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진짜 국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p232 2장에서 언급했듯이 건국의 아버지들은 노예제를 지지하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등 엄청난 실수를 범했지만, 동시에 후손들이 이런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 이것야말로 그들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p236 전체주의는 전국의 모든 사람이 매일 매 순간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통제하려는 시도다.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도 통제할 수 있다.

p244 전체주의의 세 부분은 병렬적으로 운영되었다. 민주주의가 서로를 견제하는 중첩되는 자정 장치를 둠으로써 유지되듯이, 현대 전체주의는 서로를 통제하는 중첩되는 감시 장치를 두었다.

p255 백해-발트해 운하 건설과 북극 지역 광산 개발 등 수많은 악명 높은 국책 사업이 수백만 죄수들의 노동력으로 달성되었는데, 그중 상당수가 쿨라크였다. 이는 역사상 가장 신속하고 큰 규모로 진행된 노예화 작전 중 하나였다.

p265 나는 2019년에 체르노빌을 둘러보러 갔을 당시 원전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던 우크라이나인 가이드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인은 질문을 하면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지만, 소련 시민들은 질문을 하면 곤란에 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p273 스탈린주의는 연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진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덕분에 거대한 규모의 질서를 월등히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p280 21세기에 정치가 분열된다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의 분열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실리콘 장막은 민주주의 체제를 전체주의 체제와 분리하는 대신, 모든 인류를 불가해한 알고리즘 지배자와 분리할 것이다.

p288 미얀마 인구의 90퍼센트에 육박하는 불교도들은 자신들이 쫓겨나거나 소수 집단이 될까봐 두려워했다. 이런 선전 공세가 없었다면, 조직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ARSA의 몇 차례 공격에 전체 로힝야족을 겨냥한 총력전으로 맞대응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그런 선전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p290 알고리즘은 사용자들의 뉴스 피드 상단에 무엇을 배치할지, 어떤 콘텐츠를 홍보할지, 어느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하라고 추천할지 결정했다. p292 알고리즘은 수백만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면서 분노가 참여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은 자비를 가르치는 법문보다 증오로 가득한 음모론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알고리즘은 사용자 참여도를 늘리기 위해 분노를 퍼뜨리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p293 기계가 이렇게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이는 것이 AI의 특징이다. 알고리즘의 책임이 단 1퍼센트라 해도, 이 사건은 비인간지능이 내린 결정 때문에 일어난 사상 최초의 민족 청소 운동이다.

p296 의식이 없는 페이스북 알고리즘도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질 수 있다. 그런 다음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의도적으로 퍼뜨리기로 결정할 수 있다.

p302 컴퓨터는 관료제에 능통해서, 자동으로 법안을 작성하고 법률 위반을 감시하고, 법적 허점을 찾아내는데 초인적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

p314 단순한 비유로, 우리가 지금 인류가 축축한 점토에 막대기로 기호를 새기는 방법을 처음 생각해낸 지 80년이 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시점에 우리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성경의 히미, 소련 NKVD의 기록 보관소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p317 앞선 논의에서 명백히 확인된 이유들 대문에 이제는 AI를 이질적인 지능의 약자로 간주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AI는 진화함에 따라 (인간 설계에 대한 의존도 측면에서) 덜 인공적이 되고 더 이질적으로 변한다

p320 2022년에 최고 기술 기업들은 미국에 로비하는 비용으로 거의 7,000만 달러를 썼고, 유럽연합 기관에 로비하는 비용으로 1억 1,300만 유로를 썼다. 이는 석유 회사와 제약 회사가 지출한 로비 비용을 앞지르는 액수다.

p327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졸업생 중 제2의 오드리 탕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몇 배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잡스, 저커버그, 머스크가 되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민간 기업을 창업하고 싶어 할 것이다.

p340 오늘날 스마트폰은 때때로 그렇게 한다. 게다가 이오시페스쿠가 뉴스를 읽고, 친구와 잡담을 나누고, 먹을거리를 사는 것처럼 컴퓨터의 도움 없이 했던 활동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지금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네트워크는 우리가 뭘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훨씬 알아내기 쉽다.

p347 인간의 뇌 안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점점 실현 가능한 일이 되고 있지만, 그러한 데이터를 인간의 비밀을 해독하는 데 사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p331 FBI는 차량 번호판이 찍힌 영상을 토대로, 뉴욕에 사는 한 남성이 1월 6일 아침 6시 6분 8초에 헨리 허드슨 브리지를 건건 순간부터 그날 밤 23시 59분 22초에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건너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동선을 정확히 파악했다.

p359 트립어드바이저는 카메라나 스파이웨어에 투자할 필요도, 고도로 정교한 생체 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할 필요도 없다. 수백만 명의 인간 이용자들이 회사 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고 거의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트립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이 하는 일은 인간이 매긴 점수를 집계하여 웹에 게시하는 것뿐이다.

p362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점수화하기 위한 비화폐 시스템이 존재했는데, 이것은 명예, 지위, 평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사회신용 시스템의 목적은 평판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표준화하는 것이다.

p364 사회신용 시스템은 전체주의적 통제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있다.

p370 양자역학에서는 아원자 입자를 관찰하는 행위가 입자의 행동을 바꾼다. 인간의 관찰 행위도 마찬가지다. 관찰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영향력도 커진다.

p372 관심을 놓고 경쟁하는 유튜버들은 거짓말로 가득한 터무니없는 영상을 올리면 알고리즘이 수많은 이용자에게 그것을 추천해주고 따라서 인기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분노의 강도를 낮추고 진실을 보여주면 알고리즘은 그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고리즘이 이런 식으로 강화 학습을 제공한 지 몇 달 만에 많은 유튜버가 트롤로 변신했다.

p379 저울을 진실 쪽으로 기울이려면, 정보 네트워크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개발하고 유지해야 한다. 이런 자정 장치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진실을 얻고 싶다면 반드시 그것에 투자해야 한다.

p381 인스턴트 아티클이 출시되자 “미얀마에서 하루아침에 낚시성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자극적인 흥미 유발용 콘텐츠를 만드는 레시피만 알면 페이스북으로부터 매달 수천 달러의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는 평균 월급의 열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p386 나폴레옹은 기존의 구조를 해체하여 독일인들과 이탈리아인들에게 민족 통합의 경험을 맛보게 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독일과 이탈리아의 최종 통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p390 보스트롬이 지적하고 싶었던 점은 컴퓨터의 문제는 특별히 사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강력하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강력해질수록 우리가 컴퓨터의 목표를 정의할 때 궁극적인 목표에 정확히 부합하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p391 보스트롬의 사고실험은 컴퓨터의 경우 정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두 번째 이유를 강조한다. 컴퓨터는 유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도 떠오른 적이 없어서 우리가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전략들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p392 목표는 B인데 A에 보상을 제공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렬 문제의 본질이다.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이용자 참여를 극대화하는 행위에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

p394 컴퓨터 네트워크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사전에 합의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이해하기 위해 클아우제비츠의 전쟁론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합리성을 부합성과 동일시하는 그의 논리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은 모든 행동은 궁극적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그런 목표를 정의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p404 동성애는 자연 질서에 위배되며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만든다는 견해는 아이히만 같은 나치가 강제수용소의 동성애자들을 살해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동성애자들은 동물보다 낮은 수준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인간을 살해하며 안 된다는 칸트의 보편 법칙은 동성애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p417 이 시스템은 친사회적 행동과 반사회적 행동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까? 만일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외국 문헌을 읽거나, 소수 종교를 믿거나, 종교가 없거나 저신용자들과 어울릴 때마다 신용 점수를 차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p418 안타깝게도, 수많은 연구는 컴퓨터도 대개 뿌리 깊은 자체 편향을 가지고 있다느 ㄴ사실을 보여주었다. 컴퓨터는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며, 의식도 없지만, 디지털 마음과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일종의 상호 컴퓨터 신화도 가지고 있다.

p423 불행히도 실제 회사들이 이미 어떤 종류의 편향에 물들어 있다면, 아기 알고리즘은 이런 편향을 학습하고 심지어 증폭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 데이터를 통해 좋은 직원의 패턴을 찾으며 학습한 알고리즘은 다른 조건이야 어떻든 사장의 조카를 채용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사장의 조카가 지원하면 대개는 채용되며 거의 해고되지 않는다는 것을 데이터가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p433 신기술의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클지라도, 해피엔딩에 이르는 길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따른다. 새로운 기술은 종종 역사적 재앙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그 기술이 본질적으로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p436 인류 문명의 생존도 위태롭다. 우리가 생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산업사회를 건설한 능력은 아직 없어 보이므로, 지금의 인류 세대가 그토록 자랑하는 번영은 다른 생명체와 미래 인류 세대의 희생이라는 끔직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다.

p449 설거지나 간호가 영원히 자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2050년에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지적 능력 못지 않게 운동 능력과 사회성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p457 트럼프 지지자들은 기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처음부터 새로 건설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이 옳든 그르든, 이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사실상 혁명이다. 보수의 자멸에 진보는 경악했고, 미국 민주당 같은 진보 정당들은 구질서와 기존 제도를 수호하는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p464 COMPAS 알고리즘은 노스포인트사의 사적 자산이었는데, 회사는 알고리즘의 방법론이 영업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어떻게 그 결정을 내렸는지 모른다면 루미스나 판사가 그 알고리즘이 편향이나 오류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도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p467 너무 이례적인 수라서 이세돌은 응수하기까지 15분이나 걸렸고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에서 걷기까지 했다. 통제실에서 지켜보던 우리는 그 긴장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종반전으로 접어들면서 실수처럼 보였던 수가 결정적인 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p483 화폐 위조에 적용되는 원칙이 인간을 위조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정부가 화폐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똑같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p490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등장했다. 이 기술이야말로 전 세게의 스탈린들이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AI는 기술적으로 힘의 균형을 전체주의에 유리하게 기울일 수 있다. 실제로 정보가 밀려들 때 인간은 압도되어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 있지만, AI는 효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AI는 정보와 의사 결정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p496 일전에 체르노빌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가이드가 내게 말했듯이,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은 질문하면 고난에 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다. 하지만 ‘질문하면 곤란에 처한다’는 원리에 따라 알고리즘을 훈련한다면 알고리즘이 어떻게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

p498 위대한 지도자는 감시 및 안보 알고리즘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결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알고리즘을 믿지 않으면 국방 장관에게 암살당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알고리즘을 믿고 국방 장관을 숙청하면 알고리즘의 꼭두각시가 된다.

p508 카타르 같은 다른 소규모 국가들은 지정학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카타르는 인구가 겨우 30만 명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중동에서 야심 찬 외교 목표를 추구하며 세계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아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텔레비전 네트워크인 알자지라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p514 이스라엘은 이를 이용해 이스라엘 군이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는 데 사용할 레드 울프, 블루 울프, 울프팩 같은 앱들을 개발했다. 이란에서는, 고양이 이미지를 인식하는 기술이 히잡 법 집행을 위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자동 인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p531 나는 생활과 관계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옮김으로써, 중력에 의해 활동을 제약받고 불완전한 육체에 시달려야 하는 유기적 세게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누릴 수 있다. 이곳은 생물학 법칙과 심지어는 물리 법칙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p545 2010년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의료 예산이 국방 예산보다 많다는 사실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행동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결과였으며, 이전 세대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렸을거다

p551 냉소적인 사람들은 탄 슈웨와 네타냐후가 역사적 사실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모종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 목표야말로 역사에 대한 깊은 신념에서 나온다

p556 세금 기록, 거룩한 책, 정치 선언문, 비밀경찰 파일 들은 강력한 교회를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이런 강력한 정보 네트워크는 왜곡된 세계관을 가지고 권력을 남용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마녀사냥이 극성을 부리기 싶다.

p560 정글의 법칙이 신화인 것처럼, 역사의 호가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는 생각도 신화다. 역사는 여러 방향으로 휘어져 매우 다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철저히 열려있는 원호다

p568 하라리의 가장 큰 걱정은 이런 낯선 지능이 우리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p571 하라리는 흥미진진한 글로 독자를 몰입시키지만, 정작 자신은 세속적인 생활과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매일 두 시간씩 명상하며, 매년 한 달 이상 수행하며 침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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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삶이 풍요로워지는 여덟 번의 동양 고전 수업
강경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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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강경희

 : 포레스트 북스

읽은기간 : 2025/06/20 -2025/06/26


어렸을 때 많이 듣던 4서3경. 동양의 고전이라 하면 역시 4서3경이지.

장자, 논어, 사기, 시경, 주역 등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이 있는 동양의 고전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현대인들은 무겁고 진지한 것을 싫어해서인지 가볍고 힐링의 느낌으로 책이 씌여진 느낌이다. 

원전의 무게감과 현대인의 해석의 편안함 사이에서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좋은건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무게감에 비해 읽기가 수월해서 좋기는 한데 이렇게 수월해도 되는 건지 죄책감도(?) 든다. 

어쩌면 그 편안함때문에 시경과 주역에 도전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p17 학식이 매우 넓고 깊어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세상에 쓰이지 못했던 것은 “언사가 거센 물결처럼 자유분방해 왕공대인들로부터 훌륭한 인재로 평가받지 못했”던 탓이다. 그의 사상은 당시 기득권층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으로 매우 진보적이었다.

p23 장자는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과장이 심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동양철학서 중의 하나로 알려진 까닭에 막연히 철학 논문같은 담론을 기대한 사람들은 많이 놀랄 수도 있다.

p29 이처럼 각각의 존재는 자신이 처한 시공간에서 각자가 속한 세계의 규칙을 내면화하며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한다. 장자는 이것을 성심이라 불렀다. 성심이란 이미 만들어진 마음이라는 뜻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성심을 가지고 있다.

p35 대신 제안이 원숭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바로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원숭이들이 기뻐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p56 맹자는 예의 죽음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예가 활쏘기라는 기술과 지식만 가르치고 사람다움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재앙을 당했다는 것이다.

p75 이처럼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에도 수없이 많은 우연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세인의 인정이란 세인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도를 낮추어 세상과 타협하려다 보면 결국 자신의 도를 포기하는 데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공에게 “너의 뜻이 원대하지 못하다”라고 나무랐다.

p77 군자다운 사람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도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법이다.

p92 부가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채찍 잡는 일일지라도 내 기꺼이 하겠다. 그러나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논어, 술이)

p106 그의 벼슬길에는 조정 재임, 지방 전출, 유배라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삼십 년이 채 안 되는 관직 생활 가운데, 공무에 참여할 수도 없고 안치소를 떠날 수도 없는 상태로 귀양살이한 세월이 대략 십삼 년쯤이다. 그러므로 그의 환도는 유배로 인한 유랑의 세월이 거의 반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겪은 유배 시기에 그의 문학은 가장 찬란하게 꽃피웠고, 그의 정신적 경지는 가장 빛났다.

p108 강이 깊으니 불고기가 맛나겠고, 대숲이 온 산을 덮었으니 죽순도 맛있겠다니, 이것이 유배당한 사람의 눈에 비친 풍경이라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놀러온 사람의 눈에 보이는 풍경일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p131 나의 삶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중 일부만 현실이었다라고 했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92퍼센트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p163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진실로 중하게 여긴다. 하찮은 인간들이나 비분하여 자살하곤 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용기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실력이 없기 때문에 계획을 바꿔서 실현할 용기가 없는 것뿐이다.

p170 사마천은 춘추가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의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정의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며, 그것을 거울삼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이해했다.

p183 포숙은 바로 그런 관중을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탐욕스럽다, 모자란다, 비겁하다, 수치를 모르는 배신자다 등 세인이 관중에게 던진 모든 비난 뒤에서 감히 발화되지 못한 관중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어준 사람은 오직 포숙분이었다. 훗날 관중이 재상이 되어 눈부신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포숙이 있었기 때문이다.

p192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에서 녹을 받고 십여 대에 걸쳐 봉읍을 소유했으며, 늘 유명한 대부가 되었다. 천하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지 않고 포숙이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것을 칭찬했다.

p212 세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가슴에 갇혀 몰래 앓는 신음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결국 심장을 산산조각내는 법이니 슬프에 언어를 주어라라고 했다.

p226 치유로서의 시 쓰기를 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현재 느끼고 있는 고통으로 인한 감정의 세밀한 결을 집요하게 만나고 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둘째, 분노, 원망, 슬픔 등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느끼는 대로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셋째, 욕설과 비속어 사용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p243 맨 마지막 구의 원문 논비홍수는 가는 봄의 처연함을 네 글자로 압축시킨 명구로 오랫동안 많은 시인의 격찬을 받았다. 살질 비와 수척할 수자의 대비를 통해 시들어가는 꽃에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변화해가는 사람의 모습을 겹쳐놓은 그 솜씨,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해가는 꽃빛 그리고 그 위에 청춘의 빛을 잃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어린다.

p270 주역은 이미 결정된 숙명을 예측해서 보여주는 대신 주어진 상황속에서 최선의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통해 길흉회린의 결과를 만드는 조건을 다시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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