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2 - 영원한 현재 : 고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2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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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미술 이야기2

 : 최경원

 : 더블북

 : 2022/01/13 - 2022/01/19


우리 미술이야기의 두번째 책.

이번에는 고려시대 이야기다.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상감청자외에 그리 알려진게 없는 고려시대.

유물이 남아있는게 도자기가 많아서인지 30개의 작품소개중 상당수가 도자기다. 

일부 청동거울이나 은제 주전자가 있지만 역시 메인은 상감기법을 활용한 도자기다.

사진으로만 봐도 무척 화려한데 저자가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해주니 더더욱 이해가 잘되고 집중이 된다.

잘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을 그림을 그려 용, 토끼, 개구리 등을 보여주며 디자인적으로 설명해주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장점이다.

박물관에 가면 더 가까이, 더 자세히 보게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배워가는 즐거움이 참 좋다.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더 많이 읽어야겠다. 


p15 많은 색채이론이나 서적에서 빨간색을 정열적이라느니, 주목성이 강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들이 빨간색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심리적 취향이 아니라 색의 주파수라는 물리적 성질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26 기술이 끝나는 곳에 예술이 시작된다라는 영국의 미수라학자 허버트 리드의 말처럼 기술은 예술을 위한 하나의 조건일 뿐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측에서는 중요한 것이겠지만, 감상하는 처지에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p38 옥을 모조하기 위한 중국 역사의 길고 긴 프로젝트는 고려에서 완성을 봤던 것입니다.

p47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청자가 안 만들어졌던 것은 기술이 낙후돼서가 아니라 문화적 비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p58 상감기법은 도자기를 굽기 전에 표면을 그림 모양으로 파내서 색이 다른 흙을 채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의 마치 붓으로 막 그려놓은 것 같은 터치들은 조각도로 하나하나 파내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p105 고려청자의 양식적 일관성은 바로 고려라는 국가 체제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고려청자에는 항상 국가가 개입돼 있었습니다. 가마 제작이나 장인들의 조직체계나 청자의 제작 분배의 시스템 뒤에는 항상 국가가 있습니다.

p111 그리스 미술이 서양미술의 시작점이었다는 것이 18세기에 증명됐을 때,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던 그리스 조각의 모사품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남아 있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로마시대의 모사품은 모사품을 넘어서서 그리스의 조각이 저장되어 있는 문화적 메모리 칩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입니다.

p133 특이한 형태로 만들어진 청자들을 봐도 그 형태가 장인의 개성보다는 당대에 공통된 조각적 경향이나 시대양식을 따라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공예와는 거리가 먼 현상입니다.

p136 고려청자에서는 표준화 경향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청자를 비롯한 고려문화의 매우 중요한 특징입니다. 표준화는 대량생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p182 고려문화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장식이었고, 장식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한 고려문화의 모습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p204 이 찻잔안의 풍경은 단지 그릇에 새겨진 그림이 아니라 찻잔속을 연못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p215 이 그림들은 붓으로 그린 게 아니라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상감기법은 도자기 표면에 원하는 그림이나 장식을 파내고, 그 위에 색이 다른 흙을 메꾸어서 선명한 장식을 하는 방법입니다.

p228 고려의 금속 상감의 성취도 청자에 못지않았습니다. 금속 상감에서 표현된 장식의 스타일이나 경향은 청자와는 조금 달랐지만 세련된 디자인이나 정교함에서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p236 표현된 뛰어난 미학적 가치를 뒤로 하고 제작기법을 두드러지게 앞세우는 것은 오히려 이 정병의 가치를 가리는 일이 됩니다. 허버트 리드는 그래서 “기술이 끝나는 곳에 예술이 시작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p293 상감청자는 장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법입니다. 그런데 같은 상감청자라도 금속의 타출 기법에 못지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미를 자랑하는 것이 많습니다. 청자로 만들어진 베개가 그중 하나입니다.

p306 이렇게 절제된 색으로 극도의 화려한 상감기법을 표현했기 때문에 긴 역사 동안에도 피로감을 주지 않고 항상 신선해 보이는 것입니다.

p314 이 장도집의 구조를 보면 전체적으로 네 개의 마디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마디 안에는 상감청자 베개처럼 새 같은 캐릭터가 있고, 그 주변을 액자 같은 장식 테두리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역시 영역을 넘어서는 고려의 양식화된 장식적 경향을 따르고 있습니다.

p337 투조된 장식 층의 아래 족에 공간이 있어서 주둥이 바로 밑이 비어 보이는데, 그래서 이 주전자의 주둥이 부분은 몸통과 분리되어서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나오는 물이나 술도 빈 공간에서 나오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유발합니다.

p349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유럽의 장식적인 주전자는 공예적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고려의 이 은제 주전자는 전면적이지는 않았지만 산업적으로 생간됐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p351 요즘의 명품들은 대량생산되면서도 공예의 손길을 거칩니다. 그런 점에서 고려의 이 은제 주전자와 요즘의 명품들은 엄밀히 얘기하면 봉건사회의 호사품이 아니라 관료사회의 호사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62 워낙 작고 섬세해서 사진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코앞까지 가서, 확대경이라도 대고 봐야 보일 정도로 작고 섬세합니다.

p412 자세를 비대칭적으로 취하고 있으므로 팔다리의 위치나 포즈가 다양하게 만들어져서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p427 연기가 이 구 형태를 통과하면서 불규칙한 흐름이 형성되는데, 그 흐름을 타고 연기가 매우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면서 피어오르게 됩니다.

p435 오랫동안 보다 보니까 이 주전자의 용은 완전한 모습을 표현해 놓은 것이 아니라 물고기에서 용으로 변하는 모습을 과정적으로 펴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447 우리는 이 청자만을 보고 감탄할 것이 아니라 이런 수준의 조각적 장식으로 삶을 아름답게 꾸렸던 고려시대 선조들의 격조 높은 삶에 대해서 더 많은 감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p465 논산에 있는 관촉사에는 고려 광종 때부터 지금까지 당당히 자리잡은 돌로 만들어진 불상이 있는데, 높이가 무려 18.2미터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은진미륵으로 알려져 왔는데, 미륵보살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이라는 설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아무튼, 부처님은 아닙니다.

p476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을 보면 사실적인 표현을 하더라도 일본과는 달리 내면의 깊은 인상까지도 표현하는 단게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사실적인 표현에서는 거의 최고의 경지에 올라갔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경지에까지 올라갔다면 그다음은 어떤 단계를 지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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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지음 / 아카넷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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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문명 기행

 : 김헌

 : 아카넷

 : 2021/12/24 - 2021/12/30


그리스를 답사하며 알려주는 그리스 신화와 문명이야기.

내가 해보고 싶은 직업이다.

역사적 장소를 다니며 그 장소의 역사를 알려주고 의미를 해석하며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스에서 있었던 4대 축제 장소를 다니며 그리스신화를 듣는건 또다른 즐거움인것 같다.

그리스를 가보긴 했지만 사실 볼 게 없다.

대부분 기둥이나 터만 남아있다보니 상상력이 아주 많이 필요한 여행지다. 

그 상상력을 키워주고 일으켜줄 길잡이와 함께하니 더 재미있다.

혼자 갔으면 그냥 돌덩어리만 보다 왔을 것이다.

그리스를 언제 또 가게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다시금 여행하고 싶은 맘이 든다.

빨리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11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축제로 거행되는 올림피아 제전을 비롯해, 전 그리스인들이 함께 모인 퓌티아, 이스트미아, 네메이아 제전을 4대 제전이라 부른다

p36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되었던 올림피아 제전이 1896년에 다시 부활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96년에 고대 네메이아 제전도 부활했다

p53 한 스타디온은 성인의 발크기를 600번 합한 거리다. 192미터가 되려면 발의 크기가 무려 320밀리미터여야 한다. 도대체 누구의 발이 이러헤 왕발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헤라클레스의 발이었다

p61 펠롭스는 힙포다미아와 결혼한 후, 장인을 추모하고 아내의 죄를 씻는 진혼과 정화의 제의로서 마차 경기를 개최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올림피아 제전에 마차 경기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펠롭스는 존경받는 왕이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제우스 신전과 헤라 신전 사이에 그의 무덤 펠로피온이 세워질 정도였다. 펠로폰네소스반도라는 명칭도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p80 찬란했던 뮈케네는 트로이아 전쟁 이후 도리아인들에게 짓밟히고, 인근의 아르고스에 의해 폐허가 된 이후, 30세기 가까이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p110 그곳에서 오매불망 달을 기다리던 데메테르가 딸을 만나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땅에 떨어지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며 봄이 시작된다

p125 그러나 그 기다림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얻은 신탁은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했지만,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는 물론 그리스 바깥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끼리 서로 나누는 정보들의 쓸모가 그 자체로 쏠쏠했다

p134 시인 칼리마코스는 섬을 두고 그 이름이 아스테리아였을 때 “뿌리도 없이 떠돌았지만” 남매가 태어나자 해저에 뿌리를 내렸고, 척박했던 섬의 바위와 종려나무와 시냇물이 모두 금빛으로 눈부셨다고 노래했다. 이들의 탄생을 축하하듯 섬의 이름은 델로스가 되었다

p144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스레 다시 확인된 것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 어디를 가도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 하더라도 다 나름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세한 내용은 생소한 것이 많지만,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신들과 영웅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p154 신과 같이 불멸하고자 하는 인간의 불경스러운 욕망이 또다시 경건한 신전을 더럽히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슬기로운 거절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신이신 폐하께서 다른 신을 위해 신전을 짓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거절당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사제들의 지혜를 존중하며 에페소스를 떠났다

p179 그들의 지혜는 그들의 면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삶에 유익하고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p187 그리스에서 만나는 풍경 하나한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깃들어있고,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스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런 놀라운 풍경들이 먼 옛날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p199 디오뉘소스가 나타나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아리아드네는 디오뉘소스에게 자식을 낳아주며 평생 충실했고, 디오뉘소스도 그녀를 아꼈다. 나중에 아리아드네가 죽었을 때, 디오뉘소스는 하데스로 내려가 그녀와 자신의 어머니 세멜레를 함께 데리고 나와 올림포스 궁전으로 올라갔다. 부활 승천한 아리아드네는 디오뉘소스의 사랑 때문에 불멸의 여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p218 처녀의 집이라는 뜻의 파르테논은 영원이 독신으로 지내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을 가리킨다

p227 테아트론은 그냥 공연을 보며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연극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깊이 통찰하는 곳인 셈이다

p232 비극을 통해 인간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디오뉘소스 극장과 병들고 다친 몸을 치유하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아닐까

p253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뿌리를 둔 페니키아 문명의 원천을 그리스로 연결시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은 자민족 중심주의적 역사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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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1 - 미완의 시작 : 선사, 삼국, 통일신라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 우리 미술 이야기 1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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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미술이야기1

 : 최경원

 : 더블북

 : 2021/12/17 - 2021/12/23


박물관에 있는 유물중 상당수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것이다라는 것.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예쁘게 보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든 물건들이라고 생각하니 달리 보였다. 

디자인을 보며 실용성을 어떻게 추구했었는지를 알려준다.

물론 상당수 유물들은 미적으로도 참 아름답다. 그리고 실용적이다. 

고구려는 철이 흔해서 상당수의 농기구도 철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배웠고, 가야나 신라의 유적에는 저 멀리 로마의 양식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도 배웠다.

백제의 유물들은 너무나 많이 도적질을 당해서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남은 유물들만으로도 찬란한 백제의 문화사를 볼 수 있다.

국뽕 가득하고 우리나라 유물들에 대한 찬사가 계속 이어져서 객관적인것 같지는 않지만 허무맹랑하지도 않다. 그만큼 잘 만들고 뛰어난 유물들이니까...

조만간 2권도 읽어야겠다. 


p7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물ㄹ이 고고학적 대상이나 고미술의 대상으로만 설명했습니다. 감상을 위한 미술품으로 만들어지거나 고고학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p17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의 저자 닐 맥그리거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에 주먹도끼를 만들 때 사용했던 뇌의 부분과 말할 때 사용하는 뇌의 부분이 겹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주먹도끼가 본능이 아니라 지적 능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20 기능 중심으로 주먹도끼를 살펴보면, 거친 모양과는 달리 대단히 기능적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p24 주먹도끼를 비롯한 구석기 시대의 도구들은 모두 이동하는 중간중간 필요할 때마다 손쉽게 만들어 썼던 일회용이었습니다.

p39 청동검의 재료인 청동을 석기 시대의 돌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청동은 자연에서 바로 채취할 수 없습니다. 경험에서 발전시키거나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가 아니고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화학적 재료입니다.

p44 청동검의 양식은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확인되는 양식적 경향입니다. 이후로 나타나는 문화들에서는 직선이나 딱딱한 형태보다는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일관된 경향을 보여줍니다.

p52 한국식 청동검에서 발전된 부분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검의 몸통가운데 부분에 세로로 길게 파인 두 줄의 홈입니다. 이 홈을 피홈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청동검이 무기임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p60 오리 모양 토기는 오리와 비슷하게 만들어졌지, 오리와 똑같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한번 보면 우리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오리가 연상됩니다.

p75 자세히 살펴보면 일관되면서도 변화무쌍한 것이, 마치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스타들이 무대 위에서 일사분란하게 군무를 추는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안정된 양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p99 장식적 형태들을 조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조화된 형태들이 강력한 자기만의 인상을 가지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식에는 유려한 곡선의 느낌이 강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을 동시에 지니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인상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p128 곡선을 다루는 능력에서 우리나라도 단연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 문화를 살펴보면 곡선을 단지 아름답게만 다룬 게 아니라, 다양한 인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경지에가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p152 고구려는 철로 무기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망치나 도끼, 톱, 자귀, 끌과 같은 공구도 많이 만들었고 가래, 괭이, 호미, 보습, 삽, 낫, 쇠스랑 등 농기구도 만들어 썼습니다. 당시에는 귀한 재료였던 철을 고구려에서는 일상생활 용품에까지 적용했던 것입니다.

p155 고구려의 이 이동용 부뚜막에 파팅 라인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바로 이 부뚜막이 붕어빵처럼 형틀에 의해 대량 생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이 유물은 장인이 정성 들여 만든 공예품이 아니라 산업제품입니다.

p172 조선 시대의 흰색 옷이나 고구려의 이 벽화에서 그려진 흰색에 검은색을 곁들인 옷은 일상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사람들이 선호했던 당대의 럭셔리한 차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p177 개성의 그 수많은 고려 시대 능들이나 백제의 왕릉들이 모두 도굴당한 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였습니다. 유물 몇 점을 빼앗긴 수준이 아니라 역사를 완전히 통째로 파괴당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었지요.

p179 예술이 지향하고 확보해야 할 자연스러움이 훼손되어 버린다는 것은 아주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그래서 많은 조형이론에서는 통일감과 함게 변화를 강조합니다

p221 유물을 볼 때 적어도 삼국 시대의 유물부터는 디테일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문화가 고도로 발달해서 전체 상태도 물론 뛰어나지만 각 부분을 매우 정교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p240 미니멀함과 복잡함을 대비시키는 백제 특유의 조형원리가 이 보도블록에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백제의 문화는 당시 상당히 안정적으로 통합되어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p258 화려하게 장식하기보다는 연꽃무늬를 단순화했습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단순화된 수막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직 백제만 수막새를 장식적이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p265 백제는 조형에서 특히 탁월했습니다. 금동대향로나 사리함 등을 보면 장식성이나 정교한 솜씨 그리고 세련된 스타일에서 백제가 당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p267 장식이 화려하면 전체적인 조형적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좋게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류의 조형역사는 오랫동안 장식이 이끌어왔습니다. 고딕이니 바로크니 로코코하는 양식들은 전부 시대를 이끈 장식적 유형을 일컫는 말입니다

p290 이 잔의 말 모양이 사실적이지 않아서 좋은 점은 일단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은유적 표현이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지요

p295 가야나 신라의 유적들을 살펴보면 그리스나 로마와 문화를 교류한 정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누금귀걸이나 북유럽풍의 칼 등도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이 동아시아의 한쪽 끝 지역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정말 미스테리한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p303 이 귀걸이를 잘 살펴보면 자잘한 금 알갱이들이 번쩍거리며 장식적인 형태들을 이루어서 눈부시게 화려해 보입니다. 이렇게 작은 금 알갱이들을 붙여서 정교하게 장식을 하는 것을 누금세공이라고 합니다

p304 그리스와 로마의 누금세공은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유목민, 특히 금장식품을 많이 만들었던 흉노족을 통해 신라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p312 이 금귀걸이는 멀리는 그리스와 로마, 가까이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외부에서 기술이나 양식들을 도입하면서 항상 자기 스타일로 번역했던 신라 문화의 태도도 아주 짙게 읽을 수 있습니다

p316 토기는 기술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매우 잘 만들어져 있는데 토우들은 전혀 그렇지 않게 생겼습니다.

p322 일부러 서로 어울리지 않은 것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조형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p360 일본에 통일신라의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렇다면 통일신라 시대의 다른 유물들에 대한 의문도 이런 식으로 풀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p388 지금이야 안압지가 통일신라 시대의 동궁, 즉 태자가 거주했던 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통일신라가 망한 이후부터 이곳은 완전히 황폐해져서 발굴되기 전까지는 안압지, 즉 기러기나 오리가 몰려오는 연못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p395 지금 남아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이처럼 많이 담고 있는 일본의 고대 유물들은 통일신라 시대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문화가 훨씬 발달했던 통일신라에서는 일본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훨씬 양질의 유물들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p404 이렇게 장식도 하나 없이, 순전히 돌덩이리의 비례만으로 이루어진 3층 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완성된 탑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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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문 - 단 한 번의 삶, 단 하나의 질문
최태성 지음 / 생각정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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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샐일문

 : 최태성

 : 생각정원

 : 2021/12/13 - 2021/12/16


믿고보는 최태성 선생님의 신작

역사 에세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역사적 인물들을 소개하며 설명했다.

에세이다 보니 역시 쉽게 읽힌다. 

맨 마지막장의 내용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나도 공감이 됐다.

우리 시대가 마치 모두가 민주화운동을 했던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그당시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매우 소수다.

대부분은 자기 욕심에 따라 살았고 나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가질고 있었을 뿐...

최태성 선생님은 그 미안함을 모든이에게 양질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으로 갚고 있고, 나는 미안함만 갖고 내 욕심대로 살고 있는 것이 다를뿐...

멋진 분의 좋은 책을 잘 읽었다. 


p49 그는 당 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정치 문답을 적어둔 정관정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왕학의 교과서라 칭송받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때를 도모한 것이죠

p64 일본어를 일본인보다 잘하고 오히려 한국어가 어눌한 한국인이라니, 혹시 일본에 매수된 스파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을 겁니다. 게다가 이봉창은 술과 노래를 좋아해 취하면 일본 노래를 유창하게 부르며 호방하게 놀아 일본 영감이란 별명까지 얻었다고 하니,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p79 현명한 어머니, 어진 아내였던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신사임당이 조선시대의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신사임당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죠

p102 치열한 연구와 노력의 결과,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주최 books전시회에 직지심체요절을 금속활자본으로 출품했고, 얼마 후 국제 동양학 학자대회에서도 직지심체요절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임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그결과 2001년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p121 김산처럼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 10-20대에 3.1운동을 겪은 사람들을 3.1운동 세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3.1운동 세대인데, 대표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공포에 떨게 만든 의열단 단장 김원봉,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이봉창과 윤봉길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p124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하죠. 그런 누가 합니까?

p138 서정주는 친일 시를 많이 남긴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그 뛰어난 재능, 놀라운 필력을 우리나라 청년들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는 일제를 위해 자신의 붓을 사용한 흔적이 너무나 많은 명백한 반민족 행위자입니다.

p182 김정희는 이상적의 도움으로 끝까지 세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학문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남긴 것이 그 유명한 세한도인데, 이상적에 대한 김정희의 마음이 세한도에 덧붙인 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p201 세종은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고, 자신이 즉위할 때 천명한 "어짊을 베푸는 것"을 국정의 최대 목표로 삼았습니다

p203 내 벼슬이 정승일 뿐 만백성이 벗 아니겠소. 사죄니 무례니 하는 말은 말고, 앞으로도 함께 재미있게 낚시를 즐깁시다

p224 역사는 단순히 시험을 보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올바른 의식을 갖고 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겁니다

p226 임시 정부가 독립하면 돌려주겠다며 채권을 발행해 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로가 한 것이죠. 하지만 나라의 실체가 없다 보니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했고, 이에 그 채권을 과연 누가 살가 하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채권 대부분을 이민자들이 사들였습니다.

p247 바꾸고 싶은 과거를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직시할 때, 그래서 변화해야 할 부분을 면밀히 파악할 대, 그렇게 변화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정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요.

p284 삼국이 서로 항쟁하던 시기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겨루는 경쟁자들이었을 뿐입니다. 백제 입장에서는 진흥왕이 의리 없는 사람이지만, 신라에는 국익을 챙긴 위대한 왕입니다

p286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p326 우리나라 사람, 그것도 시대를 대표하는 엘리트이자 나라를 다스리던 대신들이 팔아먹은 그 나라의 독립을 위해 타국의 이방인들이 헌신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p381 신채호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이를 토대로 그가 주장한 것이 낭가사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일제에 위축되고 움츠러들었지만, 사실 우리 민족은 본디 밝은 성품, 호연지기를 가졌다는 주장이었지요

p401 두려움과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용기를 내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제가 가진 능력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우리를 위한 시도를 두려워만 해온 제가, 작고 미약하더라도 일단 용기를 내서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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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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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관계의 미술사

 : 서배스찬 스미

 : 앵글북스

 : 2021/11/08 - 2021/12/04


좋은 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겐 너무 어렵고 잘 안맞았다.

같은 시대의 라이벌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는 2명의 예술가를 묶어서 전기를 쓴 것 같다.

그런데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미술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긴시간동안 읽을 분량은 아닌것 같은데 이상하게 책이 잘 안넘어갔다.

그나마 처음에 나오는 모네와 드가, 피카소와 마티스는 좀 읽으만 했는데 폴락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미술에 관심많은 사람들은 재미있을 것 같다. 

역시 미술은 어렵다. 



p37 당시 마네는 완전히 새로운 욕망과 생동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도발적으로 아이러니한 면모를 띠었으며 장난스럽게 짜 맞추는 방식을 보이곤 했다

p40 인상파 그룹에 속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조혼을 피했고, 나중에 결국 결혼한다 해도 대개는 상대가 몇 년간 관계를 지속해온 정부였으며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 뒤였다

p41 마네가 점차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의 외양을 어떻게든 획득하려는 것처럼 보였다면-그는 자기 그림에서 위트가 번뜩이는 간결성이 드러나길 원했다- 드가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진지해지기 위해 장애물을 극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던 것 같다

p44 마네는 동료 예술가들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친구인 앙리 팡탱라투르에 따르면 마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언제가 긍정적으로 보았다"

p92 이 충격적인 사건은 피카소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사건의 여운은 피카소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제르멘느와 연인이 되면서 그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파리에 온 피카소는 카사헤마스의 침대에서 제르멘느와 잠을 자고, 카사헤마스가 사용했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p96 결과적으로 봤을 때, 거트루드의 초상화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은 것이 피카소로서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거트루드는 후에 피카소의가장 막강한 후원자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p131 오늘날 우리는 피카소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느낌에 익숙해 있다. 그림이 전하는 불협화음은 우리를 더이상 놀라게 하지 않는다

p136 그 아프리카 미술을 피카소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마티스는 자신이 발견했던 것을 피카소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작품에 끌어다 쓸 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p152 드쿠닝의 어두운 어린 시절과 그 후 돌연 미국으로 떠난 이야기는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가 언젠가 언급했던 "미국 역사의 기본토대를 이루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p172 "저는 지금 이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태 미국에 와서 본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그림이에요. 이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p174 감미롭지만 정신을 흐트리는 사교계로 플록을 끌어들인 구겐하임은 그를 유혹하고 나섰다.(구겐하임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육체적 욕구를 푸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결과는 어색한 원나잇 스탠드로 끝났고 플록은 또 한바탕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시게 되었다

p183 드쿠닝은 전통적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직접적이고 건강하며 심지어 격정적인 감정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회화 양식을 제시해주었다

p191 플록은 자신에게 찾아온 성공과 그에 따른 엄청난 변화에 도취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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