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보는 유럽사 - 아테네, 로마부터 파리, 프라이부르크까지 18개 도시로 떠나는 역사기행 도시로 보는 시리즈
백승종 지음 / 사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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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 사우

 : 2021/10/17 - 2021/10/29


유럽사는 언제 읽어도 즐겁고 재미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나름 역사가 있고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큰 도시들 위주로 책이 씌여지다 보니 큰 사건들 위주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큰 사건들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쓰나, 사람을 중심으로 쓰나, 국가를 중심으로 쓰나 비슷한 것 같다. 

결국 왕이 나오고 군대가 나오고 전쟁이 나온다. 

작은 소도시 이야기도 나오면 좋겠다.  


2% 유럽의 종교인 기독교도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유교, 불교에 못지않게 금욕적이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별로 구애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조상과는 달리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5% 그리스 반도에는 언어와 신화,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비잔티움 등 수십 개 도시국각가 때로 연대하고 때로 갈등하면서 공존하였을 뿐이다

7% 그리스는 탈세의 나라이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내가 자주 찾아간 자그만 음식점이 하나 있다. 처음 몇 번은 꼬박꼬박 영수증을 끊어주더니, 서로 낯이 익자 영수증이 자취를 감추었다. '세금은 내서 뭐 해? 재벌들도 안 내는데, 우리 같은 서민이 왜' 이런 식이었다

9% 유난히도 변화와 실용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타민족의 기술, 특산품 및 장점을 수용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좋게 말해 로마 사람들은 실질을 숭상했다

11% 생태계의 재앙 앞에 천하의 로마제국도 속수무책이었다.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로마제국 말기에 이상 저온 현상이 심했다고 주장한다

14% 스웨덴은 강대국으로 착실히 성장했다. 그 정점에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있었다. 왕은 신교와 구교가 정면충돌한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에 참전하였다. 그는 신교 측의 명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이름을 떨쳤다

15% 바이킹은 술이 셀수록 남자답고 영웅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전통이 아직도 스웨덴에 남아 있다.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유독 많은 사회이다

21% 그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동방의 찬란한 기독교 도시가 이른바 십자군원정대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혔다. 기독교 국가가 십자군원정대의 침략으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25% 상인들 수중에 있었던 베니스 공화국, 그 정식 명칭은 좀 길다. 가장 고귀한 공화국 베니스이다. 그들의 자존심이 그대로 반영된 국호였다. 8세기부터 1797년까지 베니스는 무려 1천년 동안 독립성을 유지했다

32% 브뤼헤는 문자 그대로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도시 경제가 힘차게 회생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이래 그 물길이 막히고 트이고를 반복할 때마다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였다. 역사에 보기 드문 사례였다

37% 체코 지식인들은 이른바 2천어 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시민운동으로 맞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얀 후스의 후계자임이 명백했다

40% 스페인은 계속해서 대항해시대를 열어갔다. 16세기가 되자 스페인은 아즈텍과 잉카에서 막대한 금은 보물을 찾았다. 용감하다 못해 잔인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송두리째 약탈하는 데 성공했다

42% 가세트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돈키호테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스페인의 혼이라고 했다. 언제까지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라는 말이다

49% 영국 사회의 특징이 무어냐고 묻는 나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실용주의에 기초한 합리성이라고. 그래서일까, 영국에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계몽사상가는 많았으나 독일의 칸트나 헤겔에 견줄 만한 형이상학적 철학자는 없었다

54%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궁전에서 즉위했다. 여제는 오늘날까지도 비엔나 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계몽적 전제군주였다고 볼 수 있다. 테레지아는 재위 기간에 걸쳐 많은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여제가 다스리는 동안 오스트리아 황실(합스부르크 왕가)은 전성기를 맞았다

55% 여제는 조상 전래의 결혼정책을 유지했다. '축복받은 오스트리아여, 전쟁일랑 다른 나라에게 맡기고, 너희는 결혼에 힘쓰라!' 이것이 조상의 유훈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대대로 결혼정책을 중시했다

60% 내 친구 알랭이 몇 차례나 강조했듯, 프랑스인 입장에서 보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특정한 종교기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천 년 동안 프랑스가 겪은 역사적 경험의 총체가 응축된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5% 프랑스의 위그노는 조국을 등지고 베를린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낙후된 베를린을 개조하는 데 공헌했다

71% 어린이는 내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읽는다. 성숙한 어른이라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안데르센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복잡한 현실 문제를 우회적으로 고발하기 위해서 동화라고 하는 수단을 선택하였다

72% 키르케고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자로 살기를 원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타인과 균질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시대적 풍조를,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74% 미국 같은 강대국의 신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왜곡할 때가 많았으나, 스위스 언론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었다

82% 인기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얽힌 사연이다. 1936년, 그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이 상연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날 스탈린도 볼쇼이 극장에 왔다. 그러나 독재자는 혹평을 남기고 중간에 극장을 떠났다. 다음날이 되자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는 쇼스타코비치를 거세게 비난했다. 스탈린의 한 마디 때문에 영웅적 작곡가로 추앙받던 음악가가 인민의 정서도 모르는 형편없는 3류로 추락했다. 무섭고 웃기는 사건이었다

84% 현재의 푸틴 대통령은 스탈린 시대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스탈린 시대를 미화하기에만 급급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퍼스트를 외치듯, 푸틴은 강한 소련을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러시아에서 인권문제는 아직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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