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클래식 - 모든 길에는 음악이 흐른다
진회숙 지음 / 상상스퀘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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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길 위의 클래식
작가 : 진회숙
출판사 : 상상스퀘어
읽은기간 : 2026/04/08 -2026/04/26


음악평론가 진회숙님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쓴 산문집..

여행지마다 그 지역에 대한 소개에 더하여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소개해 준다.

덕분에 다녀온 지역은 추억과 함께 들어보고 싶은 음악리스트가 만들어졌고, 가보지 못한 곳은 그리움과 상상력이 더해져 더 가고 싶게 만든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재미있게 읽었고, 사진도 풍성해서 여행산문집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다.

'진회숙님이 썼고, 이정도의 내용이라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몰라보고 안 읽었을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했느데 출판사를 보고 바로 알았다.

내가 이 책을 왜 안 읽었는지...

출판사는 독서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집한 후 자기네 책을 읽고 홍보글을 쓰게한다고 해서 악명이 자자하다는 소문을 들은 곳이었다.

사실이건 아니건 내가 꺼리는 출판사다 보니 이런 좋은 책도 나중에 읽게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안좋다고 소문난 출판사 책을 홍보하거나 옹호할 생각이 없다.

진회숙님이 다음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시면 그때 별 많이 드리는 것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p21 노예 출신의 자유민 즉, 벼락부자들이 부상하면서 윤리의식도 무너졌다. 이는 폼페이의 건출물을 장식한 그림이나 모자이크, 조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주 에로틱한, 지그 ㅁ보아도낯 뜨거운 것들이 많다. 베티의 집 역시 이런 벼락부자의 몰취미를 보여준다. 이 집에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한 그림, 심지어는 성폭행의 대상으로 묘사한 그림도 있다. 반면에 옷을 벗고 남근을 드러낸 남성을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자 집안의 수호자로 묘사한 것이 눈에 띈다

p25 폼페이 발굴 초기에는 너무 음란하고 선정적이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에로틱한 벽화의 대부분은 지금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의 비밀의 방에서 전시되고 있다. 고대 성인 스포츠의 다양한 자세를 학구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라

p33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을 비롯해서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레오파르디, 독일의 문호 괴테, 영국의 시인 바이런, 셸리, 키츠, 스콧, 프랑스 작가 라마르틴, 뮈세, 미국 시인 롱펠로우 등 걸출한 문학의 거장들이 모두 이곳에 머물렀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페니코어 쿠퍼는 이 호텔에 머물며 소설 물의 마녀를 완성했고, 스토 부인은 소렌토의 아그네스의 영감을 얻었으며,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은 이곳에 6개월간 머물며 유령을 썼다.

p43 카루소가 묵었던 소렌토의 호텔에는 카루소 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루소를 작곡했던 루치오 달라 룸도 있고, 마가렛 공주가 특히 사랑했다는 마가렛 룸도 있으며, 특히 루치아 달라가 작곡한 카루소를 세상 누구보다 잘 불렀던 파바로티 룸도 있다고 한다. 호텔이 아니라 말 그대로 노래의 전당인 셈이다.

p63 거대한 기마상을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하자마자 갑자기 자동 대포발사기가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설계에 들어갔다가, 얼마 못 가 수직 이동이 가능한 헬리곱터에 꽂혀 대포발사기를 제쳐두는 식이었다. 다빈치가 오래 살았는데도 완성작이 별로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p71 단테를 존경했던 귀도 다 노벨로 플렌타는 자신의 고모뻘인 프란체스카가 시인의 역작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자기 가문 출신의 프란체스카를 비난하지 않고, 사랑에 희생된 가여운 여인으로 묘사한 데 고마움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p76 지은 지 1000년이 넘은 산 프란체스코 성당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가라앉았고, 그러면서 지하실에 물이 차게 되었다. 그 바람에 제단 밑의 연못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생겼다.

p93 라파엘로는 이렇게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대학자들을 한데 모아 전무후무한 장면을 연출했다. 비록 상상화지만 세상에 이처럼 지적 에너지가 충만한 그림이 또 있을까 싶다.

p100 돌 위에 파인 사람의 발자국이 실제 베드로의 발자국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성 체칠리아의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발자국 역시 믿음의 영역인 것을.

p113 양쪽에 발코니가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나는 몬테베르디가 이 구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을지 상상해보았다. 그는 발코니 곳곳에 성가대와 연주자를 배치해 사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스테레오 효과를 구사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발상과 색채적인 표현력으로 산 마르코 대성당을 아름답고 화려한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p127 그레고리오 성가는 무미건조한 음악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감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감각적인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것이 인간의 음악이 아닌 신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이렇게 과도한 장식을 지양하고,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그 안에 깃든 정신적 내용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p146 정원일에 열정적이었던 모네는 그림을 그리면서 터득한 색의 조화와 화면 구성에 대한 지식을 정원을 만드는 데 십분 활용했다. 한쪽 꽃밭에는 온갖 종류의 꽃들을 심은 반면 다른 쪽에는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의 꽃을 심었다. 마치 한 사람의 화가가 한 가지 물감을 칠해놓은 듯 말이다.

p148 모네의 그림을 음악으로 옮기면 바로 드뷔시의 음악이 된다. 모네의 그림은 눈으로 듣는 음악이고, 드뷔시의 음악은 귀로 보는 그림이다.

p178 현재 왕비의 극장은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 간 사람 중에 이 극장을 보았다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이런 극장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근처에 있는 프티 트리아농이나 그랑 트리아농만 보고 가기 때문이다

p179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는 의연히 최후를 맞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폭도들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왕비로 품위 있게 죽는 것, 그리하여 왕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 아마 그녀가 자신이 속한 계급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p200 루소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와 로시니가 오페라로 만든 볼테르의 비극 세미라미스 사이에는 프랑스어로 쓰였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루소가 소박한 민중의 삶을 그린 새로운 오페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을 때에도 볼테르는 귀족 취향의 고전 비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p205 시내에 들어오니 거리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볼테르의 동상이 보였다. 동상 밑에 페르네의 대부라는 명패와 함께, 그가 페르네를 위해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분수와 우물을 만들고, 숲을 조성하고 , 늪지대를 메우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도로와 저수지, 인공 수로를 건설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볼테르가 페르네라는 도시의 부흥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p210 서재를 가득 메웠던 7000여 권의 장서 역시 다른 사람에 팔렸다. 당시 이 방대한 장서를 사 간 인물은 계몽주의 신봉자로, 볼테르를 존경했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였다. 수십 대의 마차에 책을 싣고 가는 장면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볼테르의 장서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가 지금은 러시아 국립 박물관의 볼테르 룸으로 옮겨진 상태다.

p233 생전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왕으로 불렸는데, 이는 감자를 통해 기근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 수시에 있는 그의 무덤에 가면 참배객들이 놓고 간 감자를 볼 수 있다.

p280 전설에 나오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성 같은 건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왕은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저 재미로, 어린 시절의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성을 지었다.

p282 왕조의 홀은 비잔틴 양식 특유의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특히 짙은 푸른색과 보라색 기둥 그리고 나긋나긋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식물과 동물 모양의 바닥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p289 린더호프 궁전에는 깜짝 놀랄 만한 곳이 있다. 산에 굴을 파서 만든 거대한 인공 동굴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비너스 동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데, 보는 순간 미쳤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p297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고,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옛 귀족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바이에른 국립극장의 화려한 위용과, 그 계단에 길게 깔린 레드 카펫, 그리고 한껏 잘 차려입고 그 위를 밟는 오페라 관객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형식에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풍성한 문화적 전통의 내용을 보았다.

p301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작전이 필요하겠지만 여하튼 티켓을 사지 못한 사람은 매트와 담요 그리고 와인만 준비해 막스 요제프 광장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적당히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까.

p309 건물보다 높이 자란 가로수가 길게 늘어선 슈바빙 거리를 걷는 동안 내 나이 또래의 한국인 관광객을 여럿 만났다. 전혜린이 말한 회색빛 나의 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리라. 그러나 그날의 슈바빙 거리에 회색빛 우울은 없었다. 날씨가 화창했기 대문일까. 우울은 커녕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p318 카이저라는 작곡가오 함께 음악이 있는 희극을 구상하기도 했는데, 이때 우연히 바이마르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카이저와 함께 구상했던 희극의 모든 것이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그대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차원 높은 형태로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괴테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숭배자가 되었다.

p332 자유를 빼앗긴 사람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 실러는 도피 생활을 하던 1785년에 그 유명한 환희의 송가를 썼다. 그런데 본래이 작품의 제목은 자유의 송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군주제가 굳건하던 곳에서 자유라는 말을 쓰면 검열에 걸릴 듯해 자유를 환희로 바꾸었다.

p340 이거 왜 이렇게 멀어? 투덜거리는 남편을 내가 점잖게 타일렀다. “21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저 멀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로 이동하는 거잖아. 그 시공간의 간극을 건너뛰러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p348 리틀 스파르타는 야생의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이해하려면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정치, 철학, 사상, 문학, 신화, 전설, 음악, 미술, 예술 등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 유식한 정원이 또 있을까

p358 그대 어머니 마리 드 기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프랑스 궁전에서 자란 메리는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개신교가 권력을 장악한 상태였다. 메리는 실질적인 개신교 국가에 유일한 카톨릭 신자로 왕위에 올랐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메리는 개신교 지도자 존 녹스의 배려로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하게 카톨릭 미사에 참여할 특권을 갖게 되었지만, 개신교 신자들 눈에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p374 음탕하기 그지없는 앤 불린의 딸! 사생아에 불과한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도덕을 논해? 천박하고 음탕한 창녀 같으니! 내 저주가 네 머리 위에 떨ㄹ어질 것이다! 너같이 천한 사생아 때문에 잉글랜드 당이 더렵혀졌어! 뭐, 이정도면 그냥 날 죽여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경악을 금치 못한 신하들이 “저 여자 미쳤나 봐”를 합창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역시 메리의 죽음을 예고하는 격정적인 아리아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p380 이 대목을 해설하는 오디오 가이드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마치 연극대사를 읊는 것처럼 실감 나게 상황을 묘사한다. 중간에 비명을 지르는 효과음까지 들어가니 내가 마치 그 살해의 현장에 있는 듯 등골이 오싹했다. 당시 메리는 임신중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총애하던 시종이 눈앞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광경을 보았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p394 소년의 유령은 자넷 더글러스의 회색빛 유령, 악마와 카드놀이를 하는 비어드 백작의 유령과 함게 글래미스 성에서 가장 자주 목격되는 유령으로 꼽힌다.

p396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마음이 약해질까 걱정한다. 그래서 자기의 사악하고 강한 정신을 남편의 귓속에 퍼부어주겠다고, 황금의 왕관을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을 혀의 힘으로 쫓아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소프라노가 구사하는 거친 목소리와 고집스럽게 상승하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권력을 향한 맥메스 부인의 강렬한 의지를 상징한다.

p404 본격적인 식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로버트 번스가 지은 설커크 기도문을 낭독한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없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기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고기가 있고, 그것을 먹을 수 있으니 주여!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p409 해리포터의 촬영이 끝난 후 조개집은 철거되었지만 도비의 무덤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도비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평범한 바닷가였던 프레시워터 웨스트가 해리 포터 팬들의 성지가 된 것이다. 지금 무덤에는 방문객들이 갖다 놓은 자갈이 쌓여있다.

p419 최초의 이스테드보드는 1176년에 열였다. 웨일스 귀족과 리스 경이 카디건에 있는 자신의 성에서 웨일스 각지에서 온 시인과 음악가들의 실력을 겨루는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최고의 실력을 지닌 시인과 음악가에게는 리스 경의 의자를 상으로 수여했는데, 상으로 의자를 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p424 포트메리온에 있는 건물 중에는 마을을 조성하며 새로 지은 것도 있지만 옛날 건물을 옮겨 와 복원한 것도 있다. 애초에 엘리스 경이 내세운 슬로건이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르 ㄹ꾸미며 미래를 건설한다였는데 이처럼 과거를 보존한 건물 중에 브리스톨 기둥이 있다.

p426 이번 영국 여행의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웨일스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웨일스가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일정을 사흘밖에 잡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언제 기회가 되면 펨브로크셔 국립 해양공원 둘레길 전 구간을 걷고 싶다. 나중에 보니 웨일스 해안 먹거리 영상을 올린 그 아저씨가 투어도 한단다. 그 팀에 합류해 웨일스 해얀에 널려 있는 안주들을 초고추장, 소주와 함께 섭렵할 날을 기대해본다.

p443 증상이 나타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슈만은 또다시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천사의 소리가 아니었다. 죽음을 부르는 소리, 뭉크의 그림처럼 기괴하고 섬뜩한 소리였다. 슈만은 한 해 전에 썼던 바이올린 협주곡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작곡했다. 환청을 배경으로 작곡한 그 곡이 바로 유령 변주곡이다.

p445 이보다 더 압권인 것이 있다. 바로 절규 케이크다. 토핑으로 올린 초콜렛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얼굴이 새겨진 케이크인데, 뭉크 미술관의 카페에서 이 케이크를 팔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있는 뭉크의 절규 앞에서 그림 속 남자돠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다음 카페에 와서 절규 케이크를 먹는다.

p454 그 산을 넘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 앞에 또 다른 산이 있었다. 그렇게 ‘이 산이 아닌가벼’를 반복하며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세 번, 드디어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고원지대에 이르렀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평지에서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p458 쉐락볼튼도 그렇고 프레이케스톨렌도 그렇고, 노르웨이의 자연은 우선 그 거대한 사이즈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송 오브 노르웨이를 통해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모면 영화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고요한 피오르의 푸른 물 밑에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듯 보였다.

p464 이 코스를 돌면서 폭포는 원도 한도 없이 본 것같다. 송 오브 노르웨이에도 나오는 쌍동이 폭포 라테 폭포를 비롯해서 노르웨이에서 제일 유명한 폭포인 뵈링 폭포와 스타인달스 폭포, 그리고 우리나라 같으면 분명히 관광 명소가 되고도 남을 법한 수많은 듣보잡 폭포를 보았다.

p472 콘서트가 끝나고 음악당 뒤로 난 길을 걸었다. 그리그가 생전에 걸었을 법한 길을 걷다 보니 호수가 보이는 바위 언덕이 나타났다. 거기에 그리그의 무덤이 있었다. 황혼 무렵에 친구와 낚시를 하던 그리그가 바위에 낙조가 비치는 장면을 보고, 죽으면 그 바위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말대로 그리그와 그의 아내 나나는 지금 이 바위 밑에 묻혀 있다.

p490 음향이 좋기로 소문난 암석 교회에서는 수시로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독창회, 피아노 독주회, 실내악 연주회, 함창 공연 등 다양한데, 이 중에서 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를 가장 보고 싶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암석 교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일핏 보면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데, 파이프가 무려 3001개라고 한다. 3001개의 파이프에서 나온소리가 천연 암석에 반사되어 울리는 소리가 어떨지 궁금했다.

p492 핀란디아는 핀란드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민족송가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이렇게 국뽕에 충만한 음악이 또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웅장해지고, 뭉클해진다. 핀란드 사람도 아닌 내가 이 정도니 핀란드 사람들은 어떨까.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슴 벅찬 애국심을 느낄 것이다.

p498 예배당이라고 하지만 종교의식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따라서 일요일에도 예배가 없다. 결혼식 같은 사적인 행사도 가질 수 없다. 오로지 개인적인 평화와 고요함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p504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갈 때는 바이킹 라인이라는 페리를 이용했다. 저녁에 헬싱키를 출발해 아침에 스톡홀롬에 도착하는 심야 페리였는데, 이렇게 잠을 자면서 이동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밤바다 위에서의 낭만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p508 구스타프 6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경주에 있는 서봉총의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왕자 신분으로 일본을 국빈방문 중이었던 구스타프 6세는 일제의 요청으로 경주 고분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그 고분 이름이 서봉총인데, 여기서 서는 스웨덴을 가리키는 한자어다

p518 밀레의 피조물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신의 손가락 위에 서 있는 인간은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 팔을 힘껏 벋은 인간은 날개 달리 말 페가수스와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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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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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베토벤인가

 : 노먼 레브레이트

 :  에포크

읽은기간 : 2026/02/18 -2026/03/04


작가는 베토벤의 작품을 100곡을 뽑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연주자들도 소개한다. 

연주곡들은 자기가 들어보고 선택했는데, 잘한 작품은 아낌없는 칭찬을, 맘에 들지 않은 작품은 가차없는 비판을 쏟아낸다.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많은 연주자들이 작가의 칭찬 또는 비판의 화살을 맞았다. 

이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저자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라이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베토벤의 위대함을 크게 쓰다보니 모차르트나 하이든은 좀 폄하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적들도 많을 것 같은데 나름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니, 그정도의 불편함은 가볍게 넘기는 사람인가보다. 

음악을 들으며 뭐가 좋은지, 왜 좋은지 잘 모르는 막귀는 그저 틀리지 않고 멋지게 연주하면 다 좋다. 

그정도의 음악성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죽을때까지 많이 듣자. 


p34 리히노프스키는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과 친밀하게 지냈던 한 지인이 “냉소적인 타락자, 파렴치한 겁쟁이”라고 말한 데서 보듯 리히노프스키의 성적 취향은 방탕하게 노는 빈의 엘리트들이 보기에도 특이한 축에 속했다.

p54 하이든은 유감을 품지않고 제자의 첫 피아노 3중주 세 곡의 악보를 살펴보더니 세번째 곡이 청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곡이라고 경고했다. 리히노프스키 집에서 3중주가 초연되었을때 하이든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는 베토벤을 데리고 나가 핫초콜릿을 사주고 돈도 빌려주었다. 베토벤은 배은망덕하게도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하이든으로부터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p77 나는 어째서 8번에 끌릴까?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이곡은 교향곡 아류나 영화 추억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노래가 아니다. 베토벤은 8번을 같은 조성으로 된 전원 교향곡과 연관지어 F단조로 된 나의 작은 교향곡이라 부른다.

p80 독일인들은 예술이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현대사는 정반대 양상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독일인들은 괴테가 베토벤과 더 닮은 모습이기를 원한다.

p90 모차르트는 자기 시대의 관습 내에서 작곡한 반면, 베토벤은 관습에서 한 발 벗어났다. 모차르트가 지금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베토벤은 그 너머를 바라본다. 모차르트의 환상은 무궁무진하다. 베토벤에서 매혹적인 것은 그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려는 방향이다.

p121 비평가의 일은 큰 그림을 전하는 것이다. 작곡가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자는 연주하고, 비평가는 현장에 있거나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연주를 맥락 내에서 해석한다.

p134 무엇보다 그는 산자락의 개울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가둬놓고 포장해서 상품으로 만들고, 제대로 주목하지도 적절하게 옷을 차려입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비교할 수 있다는 착각을 자신이 조장했다는 것을 깨닫고 몸서리를 쳤다.

p151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음란함을 혐오했고, 다음의 이유를 들어 <돈 조반니> 공연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예술은 성스러운 것이니 그토록 불미스러운 주제를 변명하는 구실로 전락해서는 결코 안되네” 그는 노트에다가 이렇게 적었다. “영혼의 합일이 없는 감각적인 만족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네. 고귀한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후회의 감정만 남지”

p166 슈베르트는 같은 시를 가져다가 우리의 마음을 두 동강 내지만, 베토벤은 페이소스를 피자에 얹어 준다.

p188 여기서 대화를 나눌 때 자주 거론되는 기악곡이 세 곡 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엘리제를 위하여, 이곳 사람들이 8세기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에 나오는 달빛 이미지와 연관시키는 월광 소나타, 그리고 많은 중국인이 아는 또 한 곡이 있으니 고별이라는 제목의 소나타 26번이다. 베토벤은 고별, 부재, 재회의 세 악장으로 곡을 구성한다.

p226 그들은 거친 소리를 내는 스튜디오의 한계를 테크닉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찾았다. 1950년대 러시아에서 나오느 모든 피아노 음반은 형편없는 기계를 의지로 넘어선 위업이다.

p233 레닌의 베토벤 인용-계속해서 듣다가는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겁니다라는 코다까지 종종 곁들여서-은 소비에트 문화 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예술은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을 정화하는 혁명의 폭력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된다. 문화는 인류애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에서 문화는 계급 투쟁의 유용한 무기다.

p255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보여준 것은 짧은 바지를 입은 아이였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유대교 성인식을 한 달 앞둔 요제프 요아힘을 런던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는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겠다고 하여 스승을 놀라게 했다. 1844년 5월 27일 광란의 박수가 그의 연주에 쏟아졌고 오케스트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환호를했다.

p258 도이치 그라모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토벤 협주곡은 1979년 10대의 아네조피 무터가 카라얀과 내놓은 음반과 10대 아이돌이던 다비트 가레트의 2011년 음반이다. 무터는 단정한 모범생 소녀, 가레트는 찢어진 청부지의 불량소년이다. 영국의 나이첼 케네디가 악동 이미지로 가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p270 베토벤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는데 브리지타워가 아픈 곳을 찔렀을 수도 있다. 2020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리처드 토그네티가 한 말이다.

p280 언젠가 그가 텔레비전으로 아이스댄서 토빌과 딘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들로부터도 뭔가를 배울 수 있어요”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남들은 손가락을 떨고 기억력 저하로 고생하는 나이에 밀스타인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경쾌하게 흔들며 무결점의 연주력을 선보였고, 한 명이라도 박수를 치면 앙코르를 하러 나왔다.

p331 (대공) 3중주는 가장 붙임성 좋은 베토벤의 곡 중 하나다. 앞부분에서 힘차게 긋는 첼로 패시지를피아노가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반주한다. 베토벤은 3주만에 이 곡을 작곡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이 곡을 자유의 알레고리로 삼았다.

p367 교향곡은 그녀에게 뮌헨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주었다. 뮌헨은 음악감독 브루노 발터가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 문화의 중심지였다. 누군가 브루노 발터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의붓어머니의 표정이 경건해졌다. 그녀는 발터의 전원 교향곡 음반을 질릴 줄 모르고 들었다. 그녀가 목가적인 추억에 기분 좋게 젖어 있을 때 전화를 걸어 방해하는 자는 화를 면치 못했다.

p370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들은 존슨에게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를 살면서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것을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피난처를 찾았다. 어머니가 마침내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자 존슨은 마치 자신의 스탈린이 죽은 것만 같았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당신어머니와 사는 게 이 교향곡과 같았겠구나”

p380 1845년 베토벤 축제에서 치욕을 당한 본은 1870년 베토벤 탄생 100주년 행사를 열며 리스트를 초대 명단에서 제외했다. 베토벤 조각상을 제외하고 1845년 행사의 성과라면 마지막 음악회에서 여러 아리아와 협주곡과 함께 연주된 곡이 유일한데 그 곡이 바로 베토벤이 1810년 괴테의 희곡 에그몬트에 붙인 서곡이다.

p395 빈 필하모닉 역사를 통들어 가장 자주 연주된 베토벤 곡이 이름이 붙지도 않고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지도 않았던 교향곡, 리하르트 바그너가 춤곡에 불과하다며 무시했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카르글 박사 덕분에 나는 382회 공연된 교향곡 7번이 제법 큰 차이로 빈 필이 가장 자주 연주한 베토벤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p397 교향곡 두 곡(5번과 7번)이 정상을 놓고 다툰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2번, 4번은 목록에서 빠졌다. 교향곡 9번은 공연에서 보기가 어려운데 당연하게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뉴욕은 빈만큼 전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열정에 열광한다. 교향곡 7번은 평균적으로 매년 두 차례는 무대에 오른다.

p401 이것은 연륜있는 거장의 의견을 임의로 취한 것이지만, 교향곡 7번이 그 자체로 인기가 있다기보다 다른 요인들, 가령 비용이나 편의성 때문에 자주 연주된다는 데 다들 동의하는 것 같다.

p414 그는 신뢰할만한 중립적인 목격자가 아니었다. 베토벤은 요하나를 미워했고, 카를 카스파르는 온갖 결점에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들의 아들 카를도 마찬가지였다.

p425 그는 베토벤에게 9년에 걸쳐 총 179곡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했다. 베토벤은 흥정하기를 좋아했지만 톰슨의 턱없는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p443 토스카는 자유를 얻고자 섹스를 제안한다. 피델리오는 자유를 말하고 섹스는 완전히 억압하는 오페라다. 토스카는 추파를 던지거나 아니면 싸움을 건다. 피델리오는 오로지 도망칠 뿐이다. 잠재력을 그냥 묻어두는 등장인물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며 청중은 이런 플롯에서 만족스러운 도덕적 판단이나 지적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자료를 보지 못한다.

p446 피델리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의미의 오페라가 아니며 베토벤은 극장의 음악가가 아니다. 오페라에는 긴장과 충격, 흥분, 그리고 멋진 아리아가 필요하다.

p467 바가텐은 테이블에서 막대기와 공을 가지고 노는 게임이다. 비오는 날 상류층 지주들이 실내에 모여 즐겼다. 프랑스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은 1717년 이 용어를 악곡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베토벤은 작은 것이라는 의미로 썼다.

p472 그는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내 나를 부르더니 예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의 4중주곡을 연주해줘야겠소”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반대나 의심은 있을 수가 없었다. 베토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행해져야 했으므로 내가 까다로운 과제를 떠맡았다.

p477 베토벤의 4중주곡들은 다른 어떤 곡들보다 청자가 아닌 연주자를 위해 존재한다. 대부분의 실내악곡은, 예컨대 모차르트곡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밝게 말한다. 베토벤은 연주자가 숨겨진 모호함을 밝게 비춰야 한다. 연주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청중을 이해시킬 수가 없다.

p511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는 피날레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참고한 것이다. 현대 조성 관계에 관한 교본을 썼던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화성의 관점에서 (디아벨리 변주곡은) 베토벤의 가장 모범적인 곡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했다.

p513 아르투어 슈나벨은 부유한 자들의 화를 돋우려고 리사이틀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여기서 즐기는 사람은 나밖에 없소. 돈을 받거든.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고통을 느끼는 거요”

p526 베토벤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시대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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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10 - 비틀스, 대중의 클래식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10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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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처한 클래식 수업 10

 : 민은기

 :  사회평론

읽은기간 : 2026/02/12 -2026/02/16


원래 이 시리즈는 난처한 미술이야기가 시작이었다. 

대화체로 씌여있으면서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미술이야기에 이어 음악이야기도 계속 읽고 있다. 

미술이야기는 한동안 출간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음악이야기는 마지막편이 나왔다. 

이번 주제는 비틀즈였다. 

클래식에서 비틀즈라니... 하긴, 비틀즈면 클래식에서 다룰만한 주제이긴 하지...

비틀즈 음악은 예스터데이나 헤이쥬드 정도만 알고 있는데 책을 통해서 비틀즈의 역사와 해체이후 활동 등 비틀즈의 AtoZ를 알 수 있어서 즐거웠다. 

비틀즈는 앨범이 게속 나오면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었다. 그러다보니 나처럼 평범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후반 앨범으로 갈수록 듣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 옛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천재성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대중음악 가수들도 시간이 지나면 클래식의 반열에 올라오겠지? 

죽을때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 가수들의 이야기를 계속 볼 수 있어서 좋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p22 이때가 음악의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걸 중시했던 시대라는 사실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학계에서는 클래식이라는 말을 모범이 되는 예술이라는 의미와 함께 시기적, 장르적으로 18-19세기에 작곡된 유럽 중심의 예술 음악에 한정해서 사용하죠

p30 바그너와 바그너 음악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양가적 감정이 존재하죠. 히틀러의 음악이라 불릴 정도니 대놓고 바그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찝찝하면서도, 워낙 음악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음악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는 게 바그너에요

p40 앞서 소개한 음렬음악처럼 존 케이지 역시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오히려 작곡가의 의도를 배제한 채 오로지 우연히 음악이 만들어지길 바랐죠

p46 사람들이 외면하면 그 이유를 찾으려 노력할 법도 한데, 오히려 작곡가들은 그럴수록 자기 작업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대중을 탓했으니까요

p58 각자의 고향에서 즐기던 음악, 즉 유럽 민속음악으로 노동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달랬죠. 컨트리는 이렇게 구전된 음악으로, 시골 사람들의 정서가 그렇듯 가족애 혹은 노동하는 일상이 단골 주제였고, 목가적이며 정겨운 느낌이 가득해요

p65 로버트 존슨은 벽 코너를 바라보고 노래했는데 이를 두고 그가 수줍음을 타서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사실 그 방법은 기타의 중간 음역이 증폭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한 것 같아요

p84 그런 의미에서 all you need is love는 유쾌하고 대중적인 항거방식인 셈이죠. 이처럼 비틀스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의 선봉장이었어요. 게다가 그들은 직접 작사, 작곡, 연주까지 다 해냈는데 이것이야말로 자신들의 가치를 직접 결정하고 그 행보를 스스로 개척하는 가장 이상적인 젊은이의 모습으로 비쳤죠

p110 레논이 직관적으로 곡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가사로 표현하는 데에 탁월했다면 매카트니는 대중적인 선율을 붙이고 화성을 구성하는 재능이 있었어요.

p128 어린 엘비스는 어머니를 따라 목화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곳은 주로 흑인들의 일터였어요. 이때 흑인영가나 블루스 같은 흑인음악들을 자연스럽게 익혔죠. 그래서 엘비스는 훗날 하얀 피부의 흑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흑인음악을 능숙하게 부른느 백인으로 주목을 받아요.

p137 로큰롤 세대는 역사상 최초로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가지고 음악을 향유하며 자기 삶을 주장한 세대였어요. 10대, 즉 틴에이지라는 개념은 새로운 정체성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p153 시끄럽고 거친 환경이다 보니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격렬한 연주와 열정적인 무대매너를 선보였죠.

p160 저는 항상 클래식이 거북했어요. 베토벤, 차이콥스키, 쇤베르크 같은 거대한 이름들 때문에 듣기 꺼렸죠. 하지만 팝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팝이 곧 오늘날의 클래식이죠.

p162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매니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오늘날의 비틀스라는 밴드, 나아가 브랜드가 있기까지 중심축이 되어 왔으며, 브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라 불리는게 브라이언 앱스타인이니까요. 실제로 앱스타인이 사라진 이후 비틀스는 갈등과 균열을 반복하닥 해체하고 말아요.

p169 멤버 모두 개성과 성격이 워낙 뚜렷해서 링고처럼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웃어넘기는 멤버가 꼭 필요했어요.

p187 비틀마니아의 대표 이미지는 고함 지르는 소녀였는데요. 초창기 언론에선 비틀스만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대는 팬들의 행동을 성적 흥분 상태의 히스테리라며 경악했어요.

p215 1965년 7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기기타, 즉 일렉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어요. 그러자 관중은 야유를 보냈고 이내 포크를 불러라라고 소리쳤죠. 그들에게 일렉기타로 연주하는 음악은 진정한 포크가 아니었던 거죠

p220 이러한 포크의 성격이 대공황을 거치면서 달라지는데, 노동자와 농민들이 그들의 저항 의식을 민요 선율에 담아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하거나 공권력에 대항하면서 포크는 음악적 특성으로 규정되는 장르라기보다 민중의 목소리 그 자체로 자리매김하죠

p225 실제로 당시 대중음악계에서도 포크 가수는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사회정의를 위해 할 말은 하고 사는 활동가로 여겼어요. 소위 유흥을 위해 무대에서 재능을 파는 가수와는 급을 나누었죠

p249 환각제인 LSD를 복용하면 보통 시각가 청각에 왜곡이 일어나고 극도로 긴장이 풀어지면서 자아를 초월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p257 백 마스킹 기법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에 오늘날 각종 대중음악에서 종종 활용되는데요. 백 마스킹으로 삽입한 소리를 다시금 거꾸로 돌려서 재생할 때 의도적으로 특정 메시지가 들리게 하는 기법을 쓰기도 하죠

p259 노래에 등장하는 엘리너 릭비라는 여성과 매켄지 신부는 각자 고독한 삶을 사는 인물인데요. 엘리너 릭비가 사망한 후에도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죠.

p279소울은 1960년대에 부상한 흑인음악 장르에요. 당시 흑인음악의 양대 산맥이었던 가스펠의 풍부한 감성과 리듬앤블루스의 강한 비트를 바탕으로 탄생했죠

p286 그때가 실제로 반전운동이 활발한 시절이었음에도 일부 포크 가수들 외에는 아무도 정치적으로 강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그러니 비틀스의 발언들은 언론 및 미디어에 좋은 타깃이 되었죠

p312 총과 칼 대신 꽃을 들고 있는 이미지로 자신들을 대변하고 스스로 꽃의 아이들이라 칭했기 때문에 이를 플러우 무브먼트라고도 부르죠

p341 요코 역시 레논을 만날 때 당시 유부녀였어요. 둘의 관계가 세기의사랑으로 비칠 순 있어도 도덕적으로 떳떳할 순 없었죠. 그래서인지 레논과 요코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논쟁거리가 되곤 해요.

p344 레논은 이런 사태에 대해 레논과 백 밴드, 매카트니와 백 밴드라고 표현했는데요, 주도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나머지는 들러리마냥 음악에 참여했고, 이는 곧 우리는 분열됐다고 느끼게 만드는 지점이 되었죠

p367 멤버들은 이 앨범이 비틀스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합의라도 한 듯 열정을 쏟았어요. 멤버 네 명이 공식적으로 모두 모여 연주했던 마지막 곡은 여섯 번째 트랙인 I want you였는데요. 연초 앨범 작업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끝낸 노래기도 했죠

p384 우리가 떠올려야 할 건 비틀스가 비슷비슷한 대중음악가 중에서 1등을 했던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이에요

p385 미국의 대중문화학자 조지 립시츠는 대중음악을 사회적 기억과 역사적 경험의 매개체로 정의했어요. 대중음악은 그때 그 시대상을 기록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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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읽는 시간 -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클래식 이야기 207
김지현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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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을 읽는 시간

 : 김지현

 : 더퀘스트

읽은기간 : 2025/11/25 -2025/12/01


아침에 듣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 출발 FM과 함께..

클래식 음악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침마다 다정다감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음악도 들려주고, 퀴즈도 내고, 재미있는 클래식 이야기도 해준다.

출근을 해야 해서 모든 코너를 다 듣지는 못하지만 3분 백과에 나왔던 내용들을 묶어 책으로 출판이 됐다. 반갑다. 

음악책은 매번 작곡가 이야기만 보다가 이렇게 토목상식같은 책을 읽으니 색다른 맛이 난다. 

앞으로 계속 좋은 내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p18 지금으로부터 1,000년쯤 전, 이탈리아 아레초 마을에 살던 귀도 다레초라는 사람이 계이름을 고안해냈어요. 귀도는 수도사이자 음악이론가였습니다. 당시는 성가대가 모든 노래를 들어서 익히고 외워서 불렀으니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웠을까요? 귀도는 쉽고 정확하게 음을 기억할 방법을 찾닥, 당시 유명한 성 요한 찬가, 일명 ‘당신의 종들이’라는 성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p41 도입부에서 클라리넷이 17개 음을 미끄러지듯 상승하는 기법을 글리산도라고 부릅니다.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것을 뜻하죠. 글리산도를 악보에 적을 때는 작은 음표로 연주할 음들을 모두 적기도 하고, 시작음과 도착음만 정해주고 그 사이를 직선이나 구불거리는 선으로 쭉 그어주기도 합니다.

p87 숙련된 오보이스트는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코로 들이쉬는 순환호흡을 할 수 있거든요. 신기하게도 분명히 연주자는 입으로 숨을 내쉬며 소리를 내는데 연주자의 영쪽 뺨이 부풀었다가 홀쭉해지는 것이 보입니다.

p93 지금 소개한 곡 대부분은 19세기 이후 작품입니다. 19세기 전반까지 뵘이 음향학적으로 안정된 음정과 음질을 내는 플루트를 개량한 덕분에 많은 작곡가가 플루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더욱이 금속 재질로 바뀌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더 친숙한 악기가 됐습니다.

p111 우스갯소리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E플랫장조 3악장을 들으면 세대가 구분된다는 얘기가 있죠. 머릿속에 장학퀴즈가 떠오르는가, 초등학교 학습지가 떠오르는가? 그도 아니면 오징어게임인가?

p120 베를린 필하모닉의 호른 수석 슈테판 도어는 실수를 잊는 짧은 기억력이 호르니스트에게 필수라고 얘기하면서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것이라고 덧붙입니다.

p135 꿈 얘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타르티니도 파가니니도 기교적이고 새로운 자신의 음악에 악마적인 이미지를 이용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p138 음반매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 곡을 물으니 직원이 낙소스 음반 한 장을 꺼내 줍니다. 바흐의 샤콘느,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같은 독주곡과 차이콥스키와 멘델스존의 협주곡이 담겨 있습니다. 가만 보니 바이올린 최고의 인기곡은 곧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라는 얘기네요

p178 2024년 2월 KBS 교향악단의 제787회 정기 연주회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쇼스타코비치의 교항곡 11번이 연주되었는데, 네 대나 편성될 정도로 팀파니의 역학이 두드러지는 곡입니다. 그런데 격정적인 두 번째 악장에서 그만 팀파니 하나가 찢어졌습니다. 그러자 이원석 타악기 수석은 재빨리 못쓰게 된 악기를 빼고, 팀파니 세 대만으로 나머지 부분을 연주해냈습니다.

p199 스톱의 작동 원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압축된 공기를 특정 음색을 내는 파이프 세트에 연결시켜서 그 소리가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랬다가 연결을 끊고 또 다른 파이프 랭크에 연결하면 음색이 달라집니다.

p233 노르마나 아이다, 비올레타처럼 진지한 오페라의 소프라노가 운명에 순응하는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이었다면, 로시니의 희극 오페라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메조 소프라노는 속임수와 거짓 연기를 동원해서라도 역경을 극복하는 당찬 모습이었죠

p250 그의 세속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의 제목은 중세시대 시가집에서 가져왔습니다. 거기에는 라틴어 시가 200여 편 실려 있는데, 그 소재는 술과 쾌락, 사랑, 봄날에 대한 예찬, 젊은이의 꿈과 방황, 도덕과 종교, 국가에 대한 풍자 같은 세속적인 것들입니다. 책의 표지에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운명의 여신이 그려져 있어요.

p254 우리말로 키리에는 자비송, 글로리아는 대영광송, 크레도는 사도신경, 상투스는 거룩하시도다, 끝으로 아뉴스 데이는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미사 고유문은 입당송, 층계송, 봉헌송, 영성체송 등 절기에 따라 가사가 달라지는 부분으로 구성되죠

p259 2010년 세상을 떠난 라미레즈는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념과 인종, 피부색 또는 출신을 초월해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깊고 경건한 작품을 쓰고자 했다”

p302 이 녹음은 영국의 권위 있는 음반상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피아노 음반 부문과 젊은 예술가 부문 2관왕에 올랐죠. 음원을 발표할 당시 임윤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심장을 강타하는 연주는 시대가 내린 축복받은 천재들만 할 수 있어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매일 연습하면서 진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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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 인상 카페 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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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이 알고싶다 - 인상카페

 : 안인모

 : 위즈덤하우스

읽은기간 : 2025/10/19 -2025/10/26


재미있는 클래식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안인모님의 세번째 책..

이번 주제는 인상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이다. 

현대와 가깝기 때문에 이번 작곡가들은 녹음본도 있고 사진도 있다. 

유명한 사람들인데 녹음본도 들을 수 있으니 신기하긴 하다. 

그리고 그만큼 사료가 많아서인지 작곡가 한사람 한사람의 분량이 꽤 많다. 

책을 읽다보니 바그너만 나쁜 놈인줄 알았는데 드뷔시도 못지않게 나쁜 놈이었다.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가 이야기했듯이 신은 왜 저런 난봉꾼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재주를 주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음악을 떼어놓고 생각한다 해도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쁜놈의 음악이 너무 좋네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반면 드보르작처럼 모든게 사랑스러운 작곡가도 있다. 프라하에서 드보르작 박물관도 가보긴 했지만 책을 통해서 알게된 드보르작은 더더욱 친근감이 들고 좋다.. 

이런 맛에 음악책을 읽는다. 

20세기까지 작곡가들 내용이 와서 다음번 책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상도 소개해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도 멋진 작곡가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p22 그가 칭찬한 음악가가 과연 있기나 할까요? 심지어 그는 살아 있는 작곡가에게도 악평을 쏟아냈어요. 브람스와 바그너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파이콥스키의 솜씨를 들어볼까요. “브람스는 무식해도 된다. 과대평가되었으니, 헨델은 삼류고,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혐오스럽다. 슈만을 존경하지만 그의 비평실력은 형편없다. 참. 바그너는 쓰레기다. 오직 모차르트만이 그의 우상이자 사랑이었어요. 결론은 모차르트 빼곤 다 쓰레기다였네요.

p36 그가 누비고 다닌 도시의 숫자보다 놀라운 건 여행길에 그가 써낸 곡들이에요. 차이콥스키는 작곡이 끝나자마자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났다가 공연할 때 돌아왔고, 공연이 끝나면 바로 작곡에 돌입했어요.

p64 라흐마니노프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아요. 그날 밤, 눈물 젖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슬픔의 트리오는 12년 전 차이콥스키가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피아노 3중주와 연결됩니다.

p90 우리는 종종 거장을 평범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떠올리곤 하지요. 하지만 그 위대한 이름 뒤의 그는 손녀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양복 단추를 세심하게 고르고, 연습실 한편에서 몰래 불안에 떨기도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위대한 음악가이기 전에 반전 매력이 넘치는 인간적인 사람이었어요.

p119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말러는 이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기 시작해요. 그 결과,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 탄식의 노래가 탄생해요. 말러는 직접 가사를 쓰며 이 곡은 나의 슬픔이 맺은 열매다라고 고백했어요.

p129 교향곡 1번을 완성한 후 말러는 한 악장짜리 교향곡을 작곡해 교향시 장례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에 보내지만 거절당해요. 이 곡은 결국 교향곡 2번 1악장의 옷을 입게 됩니다. 실패조차 자신의 음악 세계로 흡후해버리는 말러다운 방식이었죠.

p133 1893년 오스트리아 슈타인바흐의 아터제 호수에서 휴가를 보내던 말러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오지 작곡을 위한 작은 오두막을 짓기로 합니다. 마치 개인 독서실처럼 최소한의 공간과 도구만 갖춘 이 작곡 오두막은 말러에게 이상적인 창작 공간이 됩니다.

p145 그는 타고난 지휘자였어요. 말러가 손을 대면 오케스트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냈지요. 해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소리를 만드는 능력은 대단히 탁월했어요. 리허설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공포 그 자체였어요. 누구도 감히 말러의 카리스마를 뚫고 분위기를 흐뜨러뜨리는 행동을 할 수 없었지요.

p155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불협화음과 반음계를 독창적으로 사용해 음악사에 혁명을 일으킵니다. 마틸데 베젠동크와 열열한 사랑에 빠진 바그너는 자신의 사랑을 오페라의 비극적 사랑에 대입합니다. 말러는 이 오페라의 전주곡에 등장하는 사랑의 시선의 주제를 자신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와 5악장에서 재현합니다.

p173 산다는 것은 죽음을 목격하는 동시에 죽음을 짊어지는 일입니다. 가족의 죽음뿐 아니라, 빈 음악원의 천재 음악가들의 이른 죽음까지도 지켜봐야 했던 말러, 그는 그 죽음의 짐을 음표로 풀어냅니다.

p193 그는 요제피나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연가곡집 사이프러스에 담아 그녀에게 바쳐요. 18개의 곡의 노래에는 첫사랑의 설렘, 갈망, 불안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사이프러스는 음악으로 고백한 그의 사랑이자, 끝내 닿지 못한 낭만적인 사랑의 일기장이었어요

p204 런던음악협회는 드보르자크를 지휘자로 초청하고, 드보르자크는 답례로 교향곡 7번을 작곡해요. 이 곡이 성황리에 초연되자 영국에서는 드보르자크를 다시 초청하고, 또 그는 새로운 곡으로 응답합니다. 그렇게 무려 8년간 영국과 드보르자크는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부르고 답하는 관계를 이어가요.

p223 그를 추모하는 문구는 아무리 봐도 생소합니다.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행복하게 살았던 위대한 음악가를 찾기란 꽤 어렵거든요.

p234 어느 날, 교실에서 드뷔시가 좋아하는 화음을 멋대로 연주하자, 화성악을 가르치는 에밀 뒤랑 교수가 피아노 뚜껑을 세게 닫으면 물었어요. “자네는 화성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선생님의 화성 원칙은 모르겠지만, 제 스타일과 음악은 이해합니다”

p244 로마의 부적응자 드뷔시는 결국 4년의 유학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2년 만에 로마를 떠납니다. 2년 후에 개최된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지요. 그는 그렇게 제도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그 자유 속에서 드뷔시라는 이름이 음악사에 선명히 새겨지게 됩니다.

p255 문제는 당시 드뷔시가 가비와 결혼식만 안 했을 뿐, 부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드뷔시는 가비와 동거 중인 상황에서 테레즈에게 청혼한 거죠. 이보다 더 나쁜 남자가 떠오르지 않네요.

p258 드뷔시는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쇼송에게도, 그리고 미망인에게도 조의를 표하지 않았어요. 6월 15일 거행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지요.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드뷔시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조의를 표하기보다는 거짓말과 구걸을 택하며, 세상 민항한 3일간의 에피소드를 남깁니다. 이 짧지만 강렬한 3일은, 우리가 알던 위대한 작곡가의 뒷모습에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가 되었네요.

p275 드뷔시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실마리는 바로 문학, 그중에서도 상징주의 시입니다.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보다는 상징주의에 가까워요.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긔 감각적 언어에 큰 영향을 받았지요.

p295 라벨이 음악원에서 쫓겨난 건, 실은 음악원장 뒤부아가 라벨을 너무나 싫어했던 게 원인이었어요. 랄로와 뒤부아 원장에게 혹사당하며 라벨을 지쳐갑니다.

p346 사티의 눈에 교회 건물들이 들어옵니다.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넋을 놓고 보며 중세의 건축과 역사, 그리고 신앙에 깊이 빠져들어요. 도서관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이 중세 시대 문서를 탐독하곤 했지요. 그리고 마치 사제가 된 듯 금용적으로 살기 시작해요. 모든 사리사욕이 없어진 사티는 파리의 무소유시스트가 되지요.

p348 사티의 대표곡이 된 짐노페디는 3박자의 아주 느린 곡으로, 두 번째 박을 좀 더 강조한 사라방드 풍이에요. 명상적인 선율 아래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진동하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단순한 반복으로 한없는 여백이 느껴지는데요.

p376 드뷔시! 라벨! 인상주의 스타일! 이젠 지겹지 않은가? 바다며 물의 요정이며 구름, 파도 다 지겹다. 하지만 사티는 사람들이 밟고 걷는 음악을 썼다. 단순성은 가장 큰 대담성이기도 하다.

p380 사티는 드뷔시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어요. 훗날, 사티는 드뷔시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엘레지를 작곡해 조용히 그를 추모합니다. 예술가 사이의 질투와 동경, 사랑과 원망이 얽힌 이 이야기는 결국 1등은 한 명인 음악 세계의 잔혹 동화 같아요

p390 드뷔시는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도 라벨과 사티의 성공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삼각관계는 어딘가 뒤틀려 있어요. 나의 성공이 기쁘지 않은 친구와는 날을 세우며 절연하고 말지요. 그들도 자존심과 인정이 중요한 보통 인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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