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통행증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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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슬픈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영혼 통행증』


사람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거짓도 진실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p.10)


에도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야베 월드 제 2막. 그 안에서 다시 몇 가지 시리즈로 구분할 수 있다. 이번에 나온 『영혼 통행증』은 미시마야 시리즈다.

미시마야 시리즈를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다. 미시마야에 있는 '흑백의 방'에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러 손님들이 찾아오는 구성이다. 필연적으로 단편집의 구성이 될 수밖에 없어 좋아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러 손님이 오니 그 방에는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오치카가 결혼을 해 떠난 자리에 지금은 미시마야의 차남 도미지로가 있다.

듣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규칙은 동일하다.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꾼 한 명에 듣는 사람도 한 명, 한 번에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는 결코 흘리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화염 큰 북. 한결같은 마음. 영혼 통행증.

세 편의 이야기 모두 슬픈 사연이 묻어나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화재를 막아주는 큰북에 얽힌 이야기.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다가, 마지막의 반전에 다가갈수록 예측되는 결말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긴 여운이 남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게 된 상황의 속사정이 안타까웠다. 한순간에 인생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여인이 안타까웠다. 상처만 가득한 피해자만 남고 그녀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람들은 삶을 잘 누리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진다.

마지막 이야기 표제작 영혼통행증은 그런 마음을 지닌 독자들을 조금이나마 풀리게 만들어주는 내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이한 모습의 손님이 내민 '복잡한 문양에 붉은 밀랍으로 봉한 한 통의 문서'. 그가 머물기 시작하면서 여관집 아들과 안주인이 귀신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여관집 아들은 그 손님과 가까워지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고, 그래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이 책의 표제작이 된 걸까?


한편 이번 『영혼 통행증』에서는 지난 '듣는 사람'이었던 오치카의 반가운 소식도 전해지는데, 흑백의 방을 떠났더라도 계속해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오치카의 이야기는 미시마야 시리즈의 다음 권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한다. 더불어 장사를 배우러 간 곳에서 장남 이이치로가 돌아오고 혼담이 진행되면서 도미지로와의 이야기가 생긴다 하니, 기대감을 높여 본다.

후기를 보니 이 '듣는 사람'은 두 명 정도 더 있을 예정이란다. '흑백의 방'에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마음을 갖게 된 오치카처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도미지로도 결국 자신의 인생을 찾아 흑백의 방을 떠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영혼 통행증』 마지막에 나온 맨발의 기이한 남자와 도미지로의 대화에서, 그에게도 '사촌 누이보다 소중한 것'이 생길 거라는 예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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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플레이어 그녀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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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취향이 아니어도 읽어보기, 『포커 플레이어 그녀』


『포커 플레이어 그녀』는 평소 같았으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아르 분위기, 포커라는 주제, 무엇보다 프랑스 작가의 책이라는 점.

취향과 전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음에도, 이 책을 읽기로 했다.

그건 글쓴이의 전작 『루거 총을 든 할머니』때문이다.

그 책, 읽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눈에 자주 띄어서 언젠가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글쓴이의 신작 『포커 플레이어 그녀』가 나온 것이다.


프랑스 소설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독성이 정말 좋다.

프랑스 작가의 글은 이상하게 읽기 힘든 면이 많았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며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영상 매체와 관련된 이력이 있는 작가이기 때문일까? 생동감 있고, 속도감 있게 플롯이 흘러간다.


"나도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면서 살았거든요."

다른 차원의 여자를 목격한 여종업원이 말했다.

"거기 비하면 난 새발의 피예요. 네…… 그 여잔, 그 여잔 끝내주는 전사예요." (p.262~263)


주인공 일행은 총 네 명이다. 막신, 작크, 발루, 장.

주로 작크와 막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종종 발루의 시점도 나온다.

도박에 중독된 아버지 밑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성장 과정을 겪은 작크.

포커판에서 승리한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한 남자를 처절하게 응징하는 막신.

여성을 위협하는 범죄자를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발루.

세 사람 모두 독자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사건이 참 강렬해 초반부터 글의 분위기를 잘 잡아둔다.

포커판에서 마주한 그들은 막신의 제안으로 콜베르를 대상으로 한 큰판에 끼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변수가 생기면서 이야기는 점점 속도를 붙여간다.


책을 읽으면서 왜 글쓴이의 전작, 『루거 총을 든 할머니』를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건지 깨달았다.

캐릭터들이 생생하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일행 모두에게 상처입은 내면을 부여함으로써 연민에서 비롯되는 호감을 가지게 한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으면서도 짜임새가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독자들이 즐거운 독서 시간을 누리게 하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 읽고나서도 취향은 아니었던 책이지만, 가끔은 평소 읽지 않는 장르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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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비우기 연습 - 1만여 명을 치유해온 정신과의사가 엄선한 인생에서 버려도 될 42가지 생각들
이노우에 도모스케 지음, 송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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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생각 비우기 연습』


『생각 비우기 연습』은 책 소개를 보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되었다.

많은 정보들을 습득하고,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이것저것 생각할 것들이 많다. 그건 모두 신경 쓰이는 일들이고, 걱정의 단초가 된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가끔은 다 비우고 싶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걸까, 새로운 걱정이 생길 뿐이다. 이럴 때 누가 대신 답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독특했다.

책을 읽기 전, 소개글을 읽으며 눈여겨 보지 않았던 저자의 이력, '정신건강을 상담하는 산업의'.

일본에는 일정 규모의 기업에는 전문 상담 산업의인 '산업 카운슬러'를 둔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서 마주한 문제들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회사' 속에서의 고민과 관련한 조언과 처방을 이야기한다.

정신 건강과 관련한 책을 그간 몇 읽었지만, 모두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생각 비우기 연습』은 '직장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신선한 느낌이다.

처음에 문제 상황은 4컷 만화로 처리했는데, 귀여운 그림체라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하고 집중도를 높여준다.

각각의 조언들은 한 이야기마다 두세쪽 정도의 분량인데다 핵심적이고 간단해 부담없이 읽기 좋다.

직장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신 건강과 관련된 내용이므로 결국 개인적으로 겪을 수 있는 고민에 대한 처방.

읽으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때로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놓아주는 것도 필요함을 생각한다.

맨 처음에 일목요연하게 차례를 정리해 두었으므로 현재 느끼는 문제와 관련한 부분들을 골라 읽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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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권력 - 인터넷을 소유하는 자 누구이며 인터넷은 우리를 어떻게 소유하는가
제임스 볼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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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권력 구조와 변화를 말하는 책, 『21세기 권력』


『21세기 권력』은 현대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터넷의 권력 구조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코로나 시대로 온라인 환경에서의 활동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지금, 인터넷 환경과 관련한 부분들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었다.


『21세기 권력』은 기술, 돈, 전투 3가지 파트로 나누어 인터넷이 점차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권력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차근차근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보여준다.

초반부터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케이블과 컴퓨터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네트워크'라 한다. 인터넷을 구성하는 케이블에는 소유주가 있고, 컴퓨터들이 모인 데이터센터에도 소유주가 있다. 그 뒤에는 또 투자자가 있고 각국의 인터넷을 관할하는 정부 규제기관이 있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는 현실과 별개의 공간이 아니다. 오프라인에서의 권력이 온라인 권력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게 되는 다양한 정보들이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미디어로 인해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왜곡되거나 잘못된 정보들도 섞여 있으므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인터넷을 활용하면서 생겨나는 데이터들도 하나의 정보가 되어 모르는 사이에 흘러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쓰이게 된다.

특히 망 중립성과 관련해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최근의 이야기는 씁쓸한 부분이 많다.

책에서는 더 나은 인터넷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평등하고 중립적인 온라인 세상을 위해, 각자가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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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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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에 대한 고민을 끌어내는 SF 소설, 『어둠의 속도』


SF는 과학 기술의 발달 자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 발달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영향들에 관해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 장르인 것 같다. 예전에 가졌던 SF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기술 발달로 현재와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래 사회에 대한 감탄과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SF가 현재 시점에서도 충분히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장르라는 것을 안다.

이번에 읽은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도 그런 고민을 끌어내는 소설이다. 자폐인 주인공이 마주하는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 통해 생각하게 되는 문제들이 많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게 적절한 것인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은 것인지, 타인을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혼란을 느낀다.


마지막 자폐인 세대인 주인공 루 애런테일.

그가 사는 세계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임신 중에 자폐를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세상이 말하는 '정상'의 선에서 어긋난 아이들이 탄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일까. 세상은 그들이 설정한 '정상'이라는 기준에서 어긋나 있는 주인공 일행도 억지로 변화시키려 한다.

루와 그가 속한 A부서 모두는 자폐인으로, 특별 복지 헤택을 받고 있는데 새롭게 부임한 상사가 혜택을 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들을 '정상화수술'을 시켜 정상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이들이 '정상'이 되는 걸 원할까? 그들은 정상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있어도 꽤 괜찮은 삶을 누리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부분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인권이 있다. 그들만의 관점으로 인지하고 살아가는 삶이 이미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만큼이나 흥미롭고 어쩌면 더 빠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누군가 알아낼까? (p.11)


읽으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아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첫부분부터 그랬다. 포넘 박사와의 대화에서 루가 속으로 생각하는 부분들을 읽으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일정한 틀 안에 포함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주인공을 포함한 자폐인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다가온 것도 아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그들의 모임 이야기를 읽다보면 묘하게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다가도 복지 혜택을 없애려는 상사와 팀 리더 간의 대화를 읽다보면 다시 생각이 바뀐다.

마음이 이리 쏠렸다가 저리 쏠렸다가 하니 혼란스러운 것이다.

결국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장애'라고 판정을 내리고 우리와 다른 '비정상'이라고 규정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그 판단에서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이들도 아주 넓은 스펙트럼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들과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다르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 결국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무언가를 제외한다면 그 사람은 이전의 그와 같을 수 있을까? 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게 하는 게 더 나은 일일까?


최근에 읽는 SF들은 기술 발달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는 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주 감정적인 부분들을 건드리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다.

그만큼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 여러 관점에서 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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