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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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 폴 오스터의 책만 몇만원어치를 사서 쌓아놓고 미친듯이 읽어제꼈던 후로 오랜만에 다시 접한 폴 오스터였다.

[달의 궁전] 을 시작으로 [폐허의 도시],[우연의 음악],[환상의 책],[뉴욕 삼부작] 과 [거대한 괴물]에 [어둠속의 남자] 까지 쉬지 않고 한번에 몰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폴 오스터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화자인 주인공이 마치 고행을 갈구하는 구도자처럼 스스로를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몰아부치는 상황들이 종종 등장한다. 


 '선셋파크' 역시 그와 같이 스스로가 일종의 '징역형' 이라고 명명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마일스 헬러'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결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크나큰 죄의식속에 빠져있는 마일스는, 어느날 갑자기 주변과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게 된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족들의 곁을 떠난 마일스. 마일스는 정들었던 고향과 가족, 좋아하던 대학생활과 전도 유망하던 미래 전체를 거부하며 7년동안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다가 플로리다에서 '필라' 라는 고등학생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얽힌 어떤 사건으로 인해, 플로리다를 떠나야 할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그나마 오랜기간 쭉 연락을 해오던 고등학교 동창인 '빙 네이선'의 도움으로 고향 뉴욕으로 귀향하게 된다.

 뉴욕 변두리 '선셋파크' 라는 외진 동네에서도 아주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버려진 건물에 불법으로 무단점거하게 된 빙과 그의 친구들 - '엘런', '앨리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는 마일스. 어찌보면 '홈리스' 들이기도 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각자의 사연과 절망과 희망을 안고 삶을 꾸려 나간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마일스 헬러' 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엄청난 죄의식을 지니고 큰 상처를 입은 마일스.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죄의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귀환병이나 베트남 전쟁 당시의 파병 군인들과 다를 바 없다. 작품 안에서도 끊임없이 마일스가 겪은 일을 '전쟁' 과 비교하곤 한다. 과거의 죄의식에 묶여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연명' 해나가는 마일스. 마일스가 작품 초반 가지고 있던 직업인 "주택보존 서비스" 가 버려진 집들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작품 후반, 선셋 파크에서 시간떼우기로 주로 했던 일이 "공동묘지 배회하기" 와, 결국 마지막에는 빙의 직업이었던 "망가진(버려진) 물건들의 병원" 이라는 점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마일스는 '버려진 것들' 즉 과거에 묶여있는 삶을 살고 있다. 과거에 겪었던 사건의 죄의식에 묶여 있기도 하고, 하는 일들과 갖는 직업들도 하나같이 '과거'이다. 스스로를 계속 과거의 기억에 가두면서 끊임없이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마일스는 '필라' 라는 희망을 만나게 된다.  아직 10대인 필라는 마일스로 하여금 '미래' 를 꿈꾸게 만든다. 앞으로 쌓아갈 수많은 지식들, 그리고 둘이서 키워나갈 커다란 사랑. 미래를 바라봄으로써 마일스는 비로소 죽음에서 벗어나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마일스가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해주는 통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불법 거주' 중인 선셋파크의 버려진 주택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빙과 엘런, 앨리스와 함께 불법 거주하게 되는 마일스의 상황은 전 세계적인 불경기로 삶의 어려움을 겪고있는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생협 - 생활협동조합' 을 떠오르게 한다. 사정과 나이가 비슷한 젊은이들이 서로 상호간에 생활을 보조해주는 일종의 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다. 버려진 건물을 불법점유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 친구들은 서로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받으며 힘겹지만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꾸려내는 이른바 '생활 자체' 를 위한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다. 

 이에 대비되는 세대가 바로 마일스의 부모인 '모리스'와 '메리-리' 일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어느정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지금까지 누려온 것도, 이뤄낸 것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게 순탄하고 탄탄하지만은 않다. 사업체는 휘청거리고, 자식들은 통제할 수 없고, 부부관계마저 위태롭기도 하다.    

  

  폴 오스터의 작품들은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든다. 읽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아, 그렇다고 문장이 난해하다거나 서사구조가 복잡한 건 절대 아니다. 폴 오스터의 문장은 매우 매끄럽다. 한편으로는 현학적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유려한 면도 있지만, 그의 문장은 언제나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엄청나게 잘 읽히는 문장이다. 서사구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에는 주로 시간의 흐름 순이나 인물의 변화 순으로 읽기 쉬운 서사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기술' 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작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주 애용하는 '열린결말' 역시 독자의 취향에 따라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서두에 언급했듯,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주인공들 역시 마음이 불편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기도 하고. 틀림없이, 그의 작품들은 펴들고 읽다보면 정신없이 빠져들어 순식간에 한 권을 덮게하는 엄청난 몰입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렇게 다 읽고 책을 덮으면, 아득한 마음속 어딘가에 큼지막한 바위가 떡, 놓여지는 느낌이다. 그 바위에는 아마 '인생 별거 없어.' 라고 새겨져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소설들이 그렇듯,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름일 것이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갖고있는 큰 장점들 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선셋파크' 의 주인공 마일즈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덜 고집부려도 좋을텐데, 저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을텐데, 답답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요인과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상황들을 매우 세세하게 풀어내주는 작가의 따스한 시각이 충분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책 속 인물들이 비록 지금은 매우 절망적이고,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버겁지만, 그 안에 소소한 행복들이 있고, 즐거운 시간들이 있으며, 언듯언듯 내비쳐지는 행복과 희망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시간들 중 대부분은 불행하다.

아니, 말을 바꿔야겠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대체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불행에 관련된 통증, 고통, 괴로움, 슬픔, 미움, 증오, 외로움, 두려움 등의 감정들은 행복감을 주는 기쁨, 쾌락, 환희, 즐거움, 들뜸, 설렘, 애정, 부드러움 같은 감정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물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된다. 좋은 감정들은 쉽게 잊혀지지만 나쁜 감정들은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글쎄, 어쩌면 그런 '나쁜 감정' 들이 '죽음' 과 더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주는 것들은 최대한 조심해야 할테니, 본능적으로 뇌가 나쁜 것들을 오래토록 기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나쁜 감정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삶의 대부분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마일스는,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을 터이고. 

 

어쩌면 마일스가 끊임없이 부모를 거부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으면서, 과거를 필사적으로 끊어내기를 갈구하는 욕망이 부모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마일스의 부모는 미래를 향한 디딤돌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일스는 결국 그 사실을 깨닫게 될까? 

책의 마지막 단락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듯 하다.

 

"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그래, 어쩌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사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지옥같은 현실을 하루하루 버텨내는 마일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옥같은 현실을 이겨내는 방법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야. 너를 사랑하고 챙기는 빙과 너와 비슷한 처지에서 현실을 바득바득 살아내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엘런과 앨리스. 그리고, 너를 지켜보는 아버지. 그들이 바로, 네가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이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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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Thunderbolts 2 : 우리 안의 천사 시공그래픽노블
워런 엘리스, 마이크 데오타토 주니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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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유니버스에 가장 큰 사건이었던 '시빌 워(내전)' 은 슈퍼 히어로들에게 엄청나게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어벤져스의 양대 거목이었던 '아이언 맨' 과 '캡틴 아메리카' 가 '초인등록법안' 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파벌을 형성해 격렬하게 대립했던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으로 아이언맨이 이끄는 찬성파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초인등록법안 이라는 법안 상정 자체가 정부는 '히어로' 와 '빌런(슈퍼 파워를 지니고 있는 슈퍼 악당)' 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정의했다는 증거였다. 닉 퓨리에 이어 초인 국가기관인 'S.H.I.L.D(이하 '쉴드')' 의 국장을 맡게 된 아이언맨은  초인등록법안에 찬성하고, 반대파를 일소하며 신뢰를 쌓는 듯 했지만, 오히려 시빌워를 통해 발생한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떠안고 쉴드라는 단체 자체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기에 이른다. 
 그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슈퍼 빌런 '그린 고블린' 의 이중 인격체인 '노먼 오스본(스파이더맨의 숙적)'이었다. 시빌워 때 캡틴 아메리카와 스파이더맨, 데어 데블 등을 위시한 초인등록법안의 반대파들을 숙청할 때 실제로 빌런들을 활용한 작전이 정부 고위 인사에 의해 시행 되었었, 당시 노먼 오스본은 이 작전을 비교적 잘 통제하며 상당한 신임을 얻었던 터였다. 캡틴 아메리카가 죽고 데어 데블 등이 체포되며 초인 등록법안 반대파는 와해된 것으로 보였으나, 아직 등록하지 않은 히어로들은 너무나 많았고, 그들 중 누가 반대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초인등록법안의 주체가 되고 남은 반대파들을 숙청해야 할 쉴드가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판에, 노먼 오스본이 '통제'하는 빌런 팀 '썬더볼츠' 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이제이. 악당으로 영웅들을 때려잡는 상황이었지만 , 정부의 입장에선 법안에 반대하는 자들은 빌런과 다를바 없었다. 실제로 노먼 오스본은 제어하기 힘든 사악하고 강력한 악당들을 비교적 잘 통제하며 등록하지 않은 히어로들을 '죽이지 않고' 합법적으로 체포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이뤄낸다.  하지만, 악당은 어디까지나 악당. 썬더볼츠의 가장 핵심적인 멤버 중 하나였던 '불즈 아이(데어데블의 숙적)'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노먼 오스본의 또다른 인격체인 그린 고블린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며 깊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썬더볼츠' 는 완벽하게 악당들이 주인공과 화자로 전면에 등장하는 타이틀이다. 'JOKER' 나 '웃는 남자' 처럼 악당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들은 종종 봐왔지만, 악당들이 팀을 짜서 등장하는 타이틀은 꽤나 생소했다. 사실 미국 히어로 그래픽 노블들이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강력한 주인공에 버금가는 강력한 악당이다. 배트맨을 '가지고 노는' 조커나 슈퍼맨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렉스 루터, 아이언맨을 떡실신 시키는 만다린, 캡틴 아메리카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레드 스컬 등 슈퍼 히어로를 상회하는 능력을 지닌 악당들이야말로 이야기의 꽃이랄 수 있다. 
 '썬더볼츠' 는 이러한 미국 그래픽 노블들의 생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파이더맨의 가장 강력한 숙적인 '노먼 오스본'은 스파이더맨의 세계관 속에서 거대한 과학 테크놀로지 기업인 오스코프사社의 평범한 연구원이었지만, 방사능 실험과 오컬트적인 영향으로 인해 엄청난 파워와 광기를 지닌 '그린 고블린' 이라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린 고블린이라는 악당이 재미있는 부분은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평소엔 노먼 오스본의 인격 아래 숨어있다는 점이다. 그린 고블린은 노먼 오스본의 이면에 자리잡고 마음 깊숙히 숨어있는 악마성과 광기를 이용한다. 샘 레이미의 첫번째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에서는 '웰렘 데포'가 그러한 양면성을 굉장히 잘 표현해냈다. 노먼 오스본은 처음에는 그린 고블린의 힘을 두려워하고 거부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강력함에 유혹을 느끼며 결국 그 스스로도 진정한 악당이 되어가는 인물이다. 아무리 공포스러운 힘이 있더라도 거대기업의 일반 연구원이 회사를 통째로 집어삼키기는 힘들다. 그는 그만큼 술수에도 능한 인물로서 뛰어난 모략과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무기들로 끊임없이 스파이더맨을 괴롭힌다. 심지어 이 인격은 아들에게 유전이 되기도 하는데, 스파이더맨의 본래 모습인 스콧 파커와 노먼 오스본의 아들인 해리 오스본과는 절친으로써, 두 부자 고블린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기도 한다.
 이런 캐릭터인 노먼 오스본이 썬더볼츠의 수장으로 악당들을 통제할 수 있었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대 기업의 오너로써 정치계에도 줄이 닿아 있었고, 모략과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악당들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여 통제한다.  

사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그 수가 꽤 많아서, 어떤 악당이 어떤 히어로와 관계가 있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는 없다. 꽤나 많은 수가 등장할 뿐 아니라, 진짜 거물급 악당은 노먼 오스본과 불스아이, 베놈 정도에 불과하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서도, 그게 맞는 설정이긴 하다. 진짜 강한 거물들은 이런 혼란기에 섣불리 운신했다가 불똥을 얻어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노먼 오스본은 그런 틈새를 노려 정치적인 술수를 발휘해 상당한 권한을 획득한 것이다. 

악당들이 왜 악당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악당들은 왜 항상 질 수 밖에 없는지를 악당들 내부에서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노먼 오스본이 아슬아슬하게 악당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상당히 스릴있고, 노먼 오스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자신 안의 그린 고블린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도 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물론 등장하는 악당들의 여러가지 슈퍼 파워들을 감상하는 것도, 히어로들의 슈퍼 파워들을 즐기는 것 만큼 재미있다.  

항상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결국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의 그래픽 노블들에 질리셨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이 사악한 악당은 어떤 방식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결국 어떤 결과를 향해 나아가게 될것인지 꽤나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악당은 왜 악당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악당들의 회합은 결국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지, 직접 감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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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거리
아사노 이니오 지음, 이정헌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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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타스쿠. 

원래 언덕이었던 토지를 깎아 아파트 단지를 세워서 채광이 좋다고 주민들은 '빛의 거리' 라고 부르는 이 뉴타운에 아빠와 단둘이 거주하는 타스쿠는 뜻밖에도 '자살 도우미' 이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시간이나 죽이려고 아빠의 노트북을 빌렸다가 자살 지원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발견한 타스쿠가 생각해낸 돈벌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비용으로 자살 지원자를 찾아 자살을 도와주고 그 최후를 지켜봐 주는 것이다. 타스쿠는 자살할 사람들이 자살하는 그 순간까지 용기를 갖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살하는 사람의 휴대폰을 챙김으로써 소임을 다한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인 타스쿠에게는 하루코라는 열 여섯살 짜리 여자친구가 있었다. 

연인까지는 아니고, 호감은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묘한 관계인 친구였다. 학교를 안 가고 텅 빈 아파트 단지안에서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은 타스쿠에겐 하루코, 하루코에겐 타스쿠 뿐이었다. 어느날, 타스쿠는 밤에 자판기 앞에 나왔다가 총을 머리에 대고 있는 한 중년의 남자를 발견한다. 딸과 아내를 죽이고 나왔다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은 남자는 타스쿠에게 방아쇠를 당겨달라고 부탁하고, 타스쿠는 자살 도우미의 본분을 살려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 남성의 머리에 총을 쏜 것이다. 

타스쿠는 평소처럼 죽은 남자의 휴대폰을 챙기던 도중,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을 발견한다.

귀찮아하며 휴대폰을 끄려고 했던 타스쿠는 휴대폰 액정화면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하루코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타스쿠는 하루코의 아빠의 머리에 총을 쏜 것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덩어리의 이야기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가장 중심적인 이야기는 타스코와 하루코 이야기이고,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호이치에게 딸려 있는 가족인 사토시와 호이치인지 사토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둘 중 한명의 딸이라고 생각되는 모모코로 이루어진 묘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약간은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만화가인 노츠와 사요 커플이 등장한다. 

이 셋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착실하게 진행되어 나가며 '빛의 거리' 에 살고 있는 다른 주변 인물들도 골고루 등장하며 전체적인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도심과 멀찍이 떨어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이른바 '뉴타운' 은 처음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심 주변의 위성도시에 이른바 '신도시' 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심지역에 집중되어있는 인구를 분산시키고 위성도시들을 발달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방식은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뒤이어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어 지금은 서울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찌감치 이 방식의 실패를 인정하고 대규모 뉴타운 건립 계획을 모두 철회했으며, 일본에서 역시 그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개발된 수많은 뉴타운들은 더이상 새로운 인구 유입이 되지 않아 고령의 노인들만이 거주하는 일종의 유령도시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의도했던 도심의 인구분산도 이뤄지지 않고, 주변 개발 역시 이뤄지지 않으며 일종의 고립된 섬처럼 정체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을 소설로 옮겼던 것이 '오쿠다 히데오' 의 [꿈의 도시] 라는 작품이었다.


[꿈의 도시] 와 [빛의 거리]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글로 묘사된 '꿈의 도시' 의 황량한 느낌과  아사노 이니오의 펜터치로 묘사된 '빛의 거리' 의 황량한 느낌은 대단히 흡사하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거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도 묘하게 접점이 있지만, 시기상으로 뉴타운이 고스트타운이 되기 전에 발표된 아사노 이니오의 [빛의 거리]가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만화의 장점을 살린 넉넉한 상상력과 자극적인 소재들 역시 눈에 띈다. 


아사노 이니오는 일본에서도 문학적인 만화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만화가 소설이 되고, 드라마가 되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 유즈' 가 활발한 컨텐츠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전작인 [소라닌]의 경우에는 원작이 거의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져 소설로 발표되기도 했고, 영화 역시 원작의 시나리오가 거의 그대로 브라운관에 옮겨지기도 했다. 

만화만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문학적인 묘사를 즐기며 현실의 이야기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원고지 위에 옮겨 넣기를 갈구하는 그의 성향은 [소라닌], [빛의 거리]를 이어 최근작인 [잘자, 뿡뿡] 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실, [빛의 거리] 는 전작인 [소라닌]과 근작인 [잘자, 뿡뿡] 에 비하면 가장 단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일단 중심적인 인물인 타스코가 가지고 있는 지나치게 싸이코패스, 쏘시오패스 적인 성향에 대한 설득력이 거의 없다. '아니 대체 이 애는 나이도 어린게 어떻게 이렇게 된거야?' 라는 의문에 대한 힌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것 만으로 아이가 이렇게 되기에는 너무 근거가 빈약하다. 오히려 더 끔찍한 과거를 겪은 하루코의 성격과 비교해봐도 타스코는 지나치게 달관한 느낌이다.

이런 캐릭터가 작가의 의도였을 수는 있겠으나, 조금 더 근거를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이야기 전체가 보다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 외에 이야기의 흐름과 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 뜬금없는 에피소드들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를 상당히 떨어뜨리는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느낌이 폴폴 풍기는 멋진 작품임은 확실하다. 


언제나 현대문학에서는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획득되는 행복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사람은 독자적인 존재이기에,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행 역시 타자와 얽히면서 생겨난다. 불행이 두려워 소통을 거부하면, 행복 또한 얻을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행복에 가장 가까운 것은 '돈' 일 터다. 이 작품 안에서도 '돈' 은 등장인물들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연인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돈' 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물약이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신비의 물약이다.

하지만, 바로 이 '돈' 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한 '인간' 의미는 그 사람의 연봉, 부동산, 통장 안의 잔고로 결정되어진다.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스스로를 그 숫자들로 이해한다.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를 보며 행복해하고, 때론 불행해한다.  

 

글쎄, 과연 어떤 삶이 옳을까?

과연 삶의 의미는 어떻게 잴 수 있는걸까?


문학이나 만화, 예술, 철학이 그런 답을 내려주지는 않고, 내려줄 수도 없다. 

작가나 철인들도 그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니까.


일단 아사노 이니오는 이렇게 말한다.


"의미가 있든 없든, 그런거 상관없잖아. 

중요한 건 무엇을 믿으면 행복해 질 수 있나... 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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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오스 폴립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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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딱 한마디로 소감을 풀어보자면, 퓰리쳐 소설상에 노미네이트 된 미국 현대소설을 한 편 감상한 느낌이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들 중,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낸다는 점을 포함시키는 데에 동의한다면, 이 한 편의 만화는 문학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리라.

만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치들 중, 주인공의 내면이나 자아를 시각적인 표현, 즉 그래픽 내러티브로 구현해 낸다는 점을 포함시키는 데에 동의한다면, 이 한 편의 만화는 충분히 높은 반열에 올려 놓아도 무방하리라.

 

 유망한 건축학과 교수로서 탄탄대로의 인생을 걸어왔지만, 이혼남. 돌싱인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오십번째 생일에 차가운 비를 맞으며 자신의 전재산이 화마에 집어 삼켜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반백년을 산 몸뚱이 하나와 지갑안에 든 얼마간의 현금만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맨하탄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페이퍼 아키텍트' 라고 불리우는 인물이었다. 그는 존경받는 건축가였지만, 그의 명성은 어디까지나 설계 때문이었고, 그 설계를 가지고 실제로 지어진 건물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설계 가운데 실제로 지어진 건물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공모전에서 입선했고, 온갖 상을 받았으며 이것만 가지고도 상당히 성공적인 경력을 얻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가 전재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무작정 떠나서 도착한 '어포지' 라는 시골 마을에서 얻게되는 직업은 자동차 수리공이었다.

이전까지는  종이 위에서나 가능한, 이론과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돈을 벌었지만, 이제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동차를 수리하게 되고, 나아가 부품들을 가지고 거의 못 움직이게 된 자동차를 수리하게 되기도 한다.

자동차 수리점 사장의  집에서 하숙하게 된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지난 50년과는 완벽히 다른 환경속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그다지 화목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 자동차 수리점 사장 '스티플리 메이저' 부부와 그 아들, 그리고 주변인들과 섞여들면서 지나온 세월들을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마치 현실인식, 자아성찰, 현대문명, 자본주의, 가족, 연인, 외로움, 사랑, 타인과의 관계 등 인생의 거의 모든 것들을 모두 담아내려 한 듯 보인다. 어쩌면, 작가인 데이비드 마추켈리가 품고있는 모든 사상을 그려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터다. 재미있게도 모든 페이지에 넘버링이 되어있지는 않지만, 책 정보에 적혀있는 344페이지에 달하는 볼륨이 그것을 증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작품 초반에 작가는 "만약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단순히 자아의 연장이라면 어떨까?" 라는 질문을 던진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각 개인이 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 그 때문에 어떤 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서로 잘 지내는 듯 보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안 그런지 설명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한다.(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초반에 던지는 이 화두야말로 아스테리오스 폴립의 삶을 통해 작가가 증명코자 하는 명제이다.

 대학이라는 공간과 교수라는 직함은 아스테리오스 폴립에게 다른 사람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다. 때문에 그는 각자 자신의 세계를 가진 수 많은 학생들을 평가하고, 때론 모욕할 수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세계관을 주장하고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였던) '하나', 그리고 그 주변의 예술가들과 아스테리오스 폴립이 어포지에서 겪고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각자가 경험하는 자기만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어포지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들을 깨닫게 된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아내, 하나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인식하게 되는데, 그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그녀만의 세계를 충분히 존중하고 인정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현실속에서 풀어내려 했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인 하나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라는 필터로 걸러내기 바빴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너무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의 그러한 행동 방식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주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대로 주변 환경들이 그에게 그런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하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나는 작가가 아스테리오스 폴립의 삶을 통해 우리가 타인들과 맺는 관계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각자가 경험하는 현실은 오롯하게 그 사람만의 것이다. 대학교수에서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현실을 경험하고 있고, 그것은 결코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각자에겐 그들 각자만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타인과 교감할 수 없고, 결국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파국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상당히 심오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아스테리오스 폴립과 하나의 말다툼 장면이나, 발바닥의 물집에서부터 시작되는 파노라마같은 하나와의 기억 같은 씬들(다시 언급하지만, 책 전체에 페이지 넘버링이 전혀 없어서 페이지수를 적을수가 없다) 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단순하고 평범한 듯 하면서도, 디테일하고 사랑스럽다. 종종 등장하는 팝아트와 모던아트를 넘나드는 참신한 발상의 그림들로 자아나 현실인식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풀어내기도 하고, 평이한 흐름의 이야기를 실험적이고 기발한 컷 연출로 단조로움을 극복하기도 하고, 특히 깜짝 놀랄만한 마지막 페이지는 작품 전체의 여운을 오랫동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세상에 60억명이 있다면, 60억개의 현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현실들 중, 가장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 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생, 한번쯤은 꼭 읽어보고, 두번 세번 곱씹어볼 만한 작품임은 확실하다.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타인과의 관계에 몰두하는가?

그래, 어쩌면, 인간은 태생이 외롭기 때문일수도 있다.

다들 자기만의 현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외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타인을 갈구한다. 

수많은 의문과, 고민과, 고통 속에서도,

한순간의 행복. 

그것이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고, 살아갈 힘을 주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 행복은 아마도 타인과 함께 함으로써 생겨나게 되리라.

 

마지막으로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아스테리오스 폴립과 하나가 키웠던 고양이 '노구치'의 죽음에 관해 나눈 대화 부분을 옮겨보고자 한다. 나도 고양이를 키워서인지 쉬이 보아넘길 수 없었다.

 

하나: "...내 생각에 그 녀석은 잘 살다 간 것 같아."

아스테리오스 폴립: "그게 다 당신 덕분이지."

하나:"당신도 알겠지만, 그 녀석은 내가 어떻게 생겼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어. 가끔은 밤에 내가 정말 안좋은 모습을 보이는 때도 있었는데도...

그 녀석은 늘 나를 찾아와서 내 옆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잤어.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말이야. 그 녀석 신장이 고장나고, 폐가 고장나고...

그런데 난 차마 그 녀석을 보낼 마음이 없었어. 그럴 힘도 없었고...

그래도 그 녀석은 여전히 오는 거야. 마치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건 마치, 자기가 무슨 일을 겪든 간에 아무 상관없이, 언제든지 가능한 한 행복을 부여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어. 

그게 겨우 매일 5분에 불과한 시간이라도 말이야.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내내 나는 그 녀석이 정말로 행복했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아스테리오스 폴립:" 아마도...그거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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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구본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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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문명의 상징인 기독교의 성경은 헬라어(그리스어)로 쓰여졌다. (신약은 라틴어)

성경이 처음 쓰여졌던 당시에 서구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언어가 그리스어였기 때문이었다. 철학, 종교, 과학, 예술. 모든 서구문명은 모두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지적인 능력은 이미 그 시대에 모두 개화되었고, 실제로 지적인 능력은 그 시대의 인간으로부터 단 1mm도 성장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단지 축적된 지식의 차이만 있을뿐, 기본적인 인지능력과 사고력, 창조력등은 그 시기의 인간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에 찬성하든 반박하든 상관없다. 어쨌든, 서구문명의 근간은 그리스에 기인한다. 종교는 물론이고 크게는 유럽 대륙의 이름부터 작게는 원소의 명칭까지 그리스에 기인한다. 그 어떤 분야이건, 그리스에 대한 지식이 있는지와 없는지에 따라 그 깊이가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최근들어 부쩍 그리스에 관련된 서적들이 눈에 띄는 것 같다. 물론, 최근 몇년간 불고 있는 인문서적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일 터다. 결국 모든 인문서적의 근간도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을테니까.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는 미케네 문명부터 차근차근 그리스의 역사를 풀어주고 있다. 

일단은 호메로스의 작품들과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을 기저에 깔고,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역사와 신화를 구분하여 신화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유추해 내고, 인물의 성향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시기별로 크게 3개의 부로 나뉘어 있고, 각 부는 다시 크게 시기별 문명으로 목차가 나뉘어 있다. 각 목차 안에는 각 문명시기의 중요한 인물들이 소문단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명은 물론 미케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줌으로써 문명시대의 문을 열어준 프로메테우스와 그리스 최초의 모험가였던 페르세우스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메두사와,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가 핵심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미케네의 화려한 서막을 열어젖히는 페르세우스로 마무리된다. 뒤이어 크레타, 아테네, 테베 목차가 등장하고, 1부가 마무리되어, 2부에는 트로이 전쟁이 주로 다루어진다. 3부는 오디세우스의 지난한 여정이 그려지고, 로물루스가 로마시를 세우면서 마무리된다.   

 각 인물 목차는 작가의 비평으로 마무리되는데, 인물의 행동방식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하여 당시 그리스의 시대상이나 사회 구성 과정등을 풀어내고, 당시의 개념들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발전하거나 변화된 방향등을 설명하기도 한다. 인물 목차를 담고 있는 큰 문명별 목차의 말미에는 따로 작은 목차를 준비해서 신화들을 풀어낸 부분도 좋았다. 신화와 역사를 확실히 구분하면서도, 주고받은 영향등을 풀어내기에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나 그리스 역사의 개괄 정도로 이해하고 보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얕은 책은 절대 아니다. 인물의 성향을 유추하여 그리스 시대상을 그려내는 방식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도 충분하다. 문장력도 충분하고, 내용도 아주 풍성하며, 특히 많은 도판들이 적절하게 들어있어 이야기에 몰입되는 것을 충분히 도와준다. 두께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버릴부분은 충분히 버리고 폭넓게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와 소재들을 매우 적절히 선택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그리스 문명은 서구문명의 근원으로써, 이에 대해 아는것과 모르는 것은 문학이나 미술 등 여러 예술품들을 감상하는 데에도 큰 차이를 준다. 심지어 니체나 마르크스 같은 현대 철학의 선구자들 역시 그리스 문화를 충분히 깨우치고 있었다.  

그리스 문명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도, 어느정도 알고 본격적으로 들어가볼 사람에게도 추천할만한 질 좋은 입문서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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