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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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과 대하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널바나나 쥬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이나 메가데쓰등의 헤비메탈만 주구장창 들으며, 메탈리카는 이제 변절해서 팝에 가까워졌다느니, 본 조비는 락을 오염시킨 장본인이라느니, 가요는 동요수준이라느니 씹어대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5권 이하의 책은 상종도 안했고, 한권짜리가 왜 장편이야? 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작품이나 공모전 제출용 단편 만화 시나리오를 짜면서 생전 처음으로 편두통이란 걸 경험했다. 명징한 주제, 입체적인 캐릭터, 발랄한 상상력.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한정된 지면' 이었다.  어떤 유명한 위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기억엔 강철왕 카네기. 확실치는 않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풀어내는 것은 평범한 재능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 뛰어난 재능이다.' 이 말 역시 확실치는 않지만 의미는 맞을 것이다. 

단편 만화 시나리오를 짜면서 수많은 단편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카프카, 카버, 이상, 김영하... 물론 이분들은 리얼리즘의 화신 같은 분들이라 내가 만화 시나리오를 짜는데 직접적으로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 '끝난 것 같지만 끝난게 아닌, 그러니까, 완결은 되었고, 결국 완성도란 것이 반드시 이야기 자체가 종결되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 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와중에 김중혁의 [펭귄뉴스] 라는 단편을 접했더랬다. 비슷한 시기에 신처럼 모시던 필립 K 딕과 러브 크래프트, 로저 젤라즈니 같은 기라성 같은 SF작가의 단편들을 읽고 있었는데, 뭐지, 이 김중혁이라는 사람은... 신처럼 모시던 작가들에 대한 신앙심을 잃게 만든 것이다. 특히, 펭귄뉴스의 그 음울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과 리얼리즘의 묘한 조화. 같은 제목의 작품집에 있던 [무용지물 박물관]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 [바나나 주식회사] 등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고, 다음 단편집인 [악기들의 도서관] 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더랬다. 단순히 발랄한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는 것 뿐 아니라, 대단한 작품성과 문학성까지 함께 녹여낼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내 만화 시나리오는 전혀 상관없는 액션 무협으로 짜서 공모전에서는 보기좋게 떨어졌지만, (여전히 그런곳에서는 죽죽 떨어지는 중이긴 하지만) '장편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대던 시절' 에는 확실히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작가의 역량이나 재능, 그리고 문학적 정수는 단편에서 읽어낼 수 있다.  


 김중혁 작가의 작품은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은 대부분 다 읽었다. [악기들의 도서관] 뒤에 장편이 두권 나왔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단편보다 별로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야기의 구조도 좋고, 완성도도 좋았지만, 내가 '김중혁' 이라는 '브랜드'에 바라는 컨텐츠에 비해서 좀 평범한 느낌이었다. 그러한 아쉬움을 한방에 깨뜨려 준 작품이 바로 이번 신작 [1F/B1] 이다. 


 [ C1+Y=:[8]:] 이라는 읽기도 버거운 첫 작품부터 마지막 [크랴샤] 라는 작품까지 총 일곱 작품이 꽉꽉 들어차 있다. 

이번 작품집의 작품들은 모두 '도시' 를 연상시키는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마치 연작소설집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먼저 첫작품인[ C1+Y=:[8]:] 은 제목부터 풀어보자면 'CITY = :[8]:'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8]: 은 스케이트보드를 위에서 바라본 모양을 기호와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즉, [도시 = 스케이트보드] 라는 제목인 것이다. 제목부터 기똥차기 짝이없다. 작품 말미에나 등장하는 화자의 친절한 해설을 듣고보니 너무나 그럴싸하다. 도심 곳곳을 가로지르는 발랄한 스케이트 보더들. 그리고 그 뒤를 쫓으며 도시와 정글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는 '도시 연구가' 인 화자 '나' 의 이야기가 경쾌하게 굴러간다. 


두번째 작품인 [냇가로 나와]는 '뗏목'과 '강' 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뗏목과 강은 얼핏 생각하면 도시와 큰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전통적으로 큰 도시들은 대부분 물길을 주요 교통로로 삼기도 했다. 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좁은듯도 한 '천천' 과 뗏목의 주인 '통나무 김씨' 그리고 전설적인 고등학생 '하마까' 에 대한 회상이 주 내용이다. 


 세번째 작품인 [바질] 은 도시 한구석 공터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수풀을 떠올리게 한다. 나도 어린 시절, 연립빌라 한켠에 무성하게 자라있던 수풀들을 기억한다. 아주 작은 동산에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들이 모여들어 생명력 강한 잡초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빳빳하고 질긴 생명들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모습은 경이롭고 공포스러웠다. 그러한 감성이 작품안에 잘 스며들어있다. 김중혁 작가의 작품 최초로 '연인' 이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네번째 작품인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우주와 우주킬러가 등장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연상케 한다. 개인적으로는 배명훈 작가가 많이 떠올랐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큰 숫자가 등장하는 점이나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무미건조한 묘사가 배명훈 작품의 특징과 비슷했지만,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감성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 엔딩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작품의 세계관이나 인물들을 장편으로 만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다섯번째 작품이 이 작품집의 제목이기도 한  [F1/B1] 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작품 역시 배명훈 작가가 아주 많이 떠올랐다. 전작까지는 몰랐는데, 김중혁 작가와 배명훈 작가가 여러 점에서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완벽히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작용하는 한 채의 거대한 빌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낸 배명훈 작가의 연작 [타워] 시리즈가 떠올랐다. 김중혁 작가의 [1F/B1] 은 그런 거대한 빌딩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주 활동무대가 되는 '네오타운' 이라는 빌딩의 이름만 들어봐도 주상복합적인 빌딩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작고 소소한 발상을 거대 담론처럼 표현하는 방식도 상당히 닮아있다. 사실 김중혁과 배명훈. 배명훈과 김중혁 이 두 작가의 작품세계는 상당히 닮아있는데, 언젠가 신경써서 다뤄봐도 재미있을 듯 싶다. 

[ F1/B1]은 '건물 관리자 연합' 의 이야기이다. 이름 그대로 빌딩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이야기인데, 빌딩들이 무려 지하통로로 연결되어있다는 설정이다. 전에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사라진 직업들' 에 대한 책을 소개해준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등장했던 지하 우편 배달 통로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자갑 같은 빌딩 속에서, 상자갑 같은 사무실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우화적으로 표현된 듯 하다. 


 [유리의 도시] 는 미스테리 스릴러이다. 건물들이 모여있는 강남 테헤란로나 종로타워등을 보면 건물 전체가 유리로 뒤덮인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저 엄청난 높이에서, 저 엄청난 바람을, 기압을 유리들이 정말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하기사, 총도 폭탄도 막는 유리도 있으니까. 만약 그런 유리가 어느날 갑자기 떨어져서 지나가는 행인을 덮친다면 어떨까?? 그런 끔찍한 상상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시체와 죽음이 즐비하게 깔려있다. 


 작품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크랴샤] 는 내가 읽은 모든 김중혁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순위 맨 위에 올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특히 작품집의 마지막에 배치한 편집자의 센스가 탁월했다. 만약 이 작품이 맨 앞이나 중간 즈음에 실렸다면 이만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어떤 책이건 앉은자리에 한번에 다 읽어치우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게 무슨 상관이랴, 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  [크랴샤] 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매조지하는 느낌이 있다. 현실과 회상, 도전과 좌절, 늙음과 젊음이 조화롭게 모여있는 이 작품이 김중혁 작가의 작품세계에 일종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중혁 작가의 작품들은 '재기발랄함' 이라는 단어로 가려지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마이너리티'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잘 담아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싱글. 솔로남들도 마이너리티 일 수 있겠고. ^^) 이 작품 안에서도 도시를 떠도는 어린 스케이트 보더들, 냇가에 오두막을 짓고 뗏목으로 내를 건너는 일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 건물 관리자, 목공사, 마술사 지망생 등. 그의 단편들에서는 언제나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기발랄한 소재와 어우러져 따뜻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번 단편들은 보다 깊어진 느낌이다. 


이 작품의 리뷰를 하기 전에 2008년 4월경에 쓴 [악기들의 도서관] 리뷰를 다시 찾아봤다.

'8편의 사랑스러운 단편들이 아글아글 모여있는....' 로 시작되는 서두를 그대로 다시 가져와서 이 긴 감상문의 마무리로 써도 될 것 같다.

 

7편의 사랑스러운 단편들이 아글아글 모여있는, 누구에게든 선물하고 싶고, 몇번이라도 보고 싶은. 

듣고 듣고 또 들어도 듣고싶은 음반같은 책. 







"사흘이 지나자 어딘가 아파왔다.

아프긴 했지만 상처를 집어낼 수는 없었다. 

살을 파고 뼈를 헤집어 상처를 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처는 계속 이동했다.

때로는 무릎에 아팠고, 때로는 등이 아팠고, 때로는 발뒤꿈치가 아팠다.

마음이 아플 줄 알았는데 몸이 아팠다.

모든 고통을 이별로부터 왔다. "

p. 89 [바질]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헤어진 사람.

그 중에서 제일 피해야 할 사람이 헤어진 사람이에요."

p. 114 [바질] 


"네 개의 벽이 방을 둘러싸고 있지만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때, 그 벽은 무의미해진다. 

벽이 사라지면 우주 전체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져서, 몸이 수축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그 때문인지 윤정우는 어두운 방에서 자신이 점점 줄어들어 작은 모래 알갱이가 되는 꿈을 자주 꾸었다. "

p. 179 [1F/B1]


"모든 통로가 이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윤정우는 가끔 어두운 통로에다 머리를 들이밀고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어디선가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p.204 [1F/B1]


"모든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유리의 자살로 마무리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벽에 붙어 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래로 뛰어내린 거죠.

그늘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서, 사무실 안녕, 하면서 말예요."

p. 209~210 [유리의 도시]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안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지 않는다.

나는 삶과 마술을 때때로 바꾸고 싶어진다.

화장지가 붙는 대신 어머니가 되살아나는 장면을, 스카프가 비둘기로 변하는 대신 돈으로 변하는 장면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p. 273. [크라샤] 


"그 자리에는 이미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섰는데, 내게는 가끔 운조빌딩이 보인다.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책상 같던 운조빌딩이 나타난다.

고개를 젓고 눈을 깜빡여본다.

환각은 금방 사라진다.

동그란 가로등 불빛이 수십 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눈이 침침하다.도시는 절대 낡지 않는다.

나만 낡아갈 뿐이다.

p. 274 [크라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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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그타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5
E. L. 닥터로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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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비교적 상류층 가정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잘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외삼촌과 이야기의 화자인 아들로 이루어진 백인가정. 이야기의 줄기들은 바로 이 가정을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당대 최고의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마술사였던 후디니가 우연히 이 가정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외삼촌이 사랑했던 여인 에벌린 네즈빗, 에벌린 네즈빗을 사랑했던 스탠퍼드 화이트와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인 에벌린 네즈빗의 남편 해리 K 소. 그리고 에벌린 네즈빗이 만나게 되는 차별받는 이민자 가족인 타테와 그의 어리고 예쁜 딸. 그리고 타테가 에벌린을 이끈 모임에서 만나게 되는 무정부주의 운동가 옘마 골드만. 그리고 옘마 골드만과 만나게 되는 외삼촌. 소년의 어머니가 우연히 구해낸 산채로 땅속에 묻혀있던 유색인 갓난아기와 그 아이의 엄마였던 세라. 그리고 세라를 사랑했던 남자이자 산채로 땅속에 묻혀 죽을 뻔 했던 갈색피부 아이의 아빠인 품위있던 니그로 피아니스트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가 타고 다니던 포드 자동차의 주인인 헨리 포드와 그와 함께 하고싶었던 미국 금융업계의 지배자 피어폰트 모건. 


 수많은 인물들이 소년의 가족들 주변에서 점멸하고, 소년은 담담하게 인물들의 뒤를 좇는다. 얼핏, 소설이 아니라 르포같은 느낌이지만, 분명한 소설이다. 그것도 완벽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의. 하지만, 시간과 장소의 흐름의 기준점을 이 '소년' 으로 잡음으로서 마치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 처럼 느껴진다. 대단히 독특한 경험이었다.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 외삼촌은 먼저 후디니라는 인물과 만나면서 심경에 작은 파문을 경험한다. 후디니는 미국사회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두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탈출묘기의 명수.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마술사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피어리와 함께 북극 탐험에 동행한다. 피어리 역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북극점을 정복한 미국의 위대한 탐험가이다. 에벌린 네즈빗은 '빨강머리 앤'의 실존모델로 유명한 당대 최고의 슈퍼모델, 핀 업 걸이었다. 그녀는 강렬한 매력은 당시 브로드 웨이 무대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 무대의 구성과 연출을 뒤바꿀 정도였다고 한다. 옘마 골드만은  알렉산더 버크만과 함께 당대의 노동운동을 이끈 무정부주의 운동가였으며,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는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흑인 테러리스트였다. 이렇게 당시 미국 사회의 전반에서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한 작은 가정에 일으킨 변화를 살피는 일이 상당히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에 나뉘어있던 계층, 앵글로 색슨 계열의 백인 가정과 유럽의 이민자, 노예에서 벗어난 흑인들, 최 상류층 은행가와 사업가, 인기 절정의 여배우와 공연가등 각계 각층의 인물들의 삶이 단편적이지만 명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정리되어 지나간다. 현대 미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금융과 기업,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문화의 시초를 잠깐씩이나마 맛볼 수 있다. 중간 중간,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거대한 철로와 필라델피아의 대규모 공업단지도 구경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마치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다. 허나, 차창을 통해 지나가는 문장의 풍경들은 그저 피상적인 '스크린' 이 아니다. 창 밖으로 거대한 역사가 도도하게 흘러간다. 미국 현대소설의 특징이랄 수 있는 부사나 형용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간결한 문장은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의 흐름과 어우러져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적당한 호흡으로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분절되며 시종일관 지루할 새 없이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던 인물들의 점은 이야기의 중반에 등장하는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와 함께 하나의 선으로 모아진다. 역자 후기에도 등장하지만, 짧고 간결하고 빠르다고 깊이가 없고 함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문장과 문장들이 모인 문단들, 심지어 문단 사이의 여백에까지도 작가의 함의가 깊이 배여있다. 당연히 그 함의를 찾아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일터다. 까메오처럼 등장하는 미국의 정치가들과 1달러지폐에 그려있는(각종 음모론의 소재가 되는) 피라미드와 눈 심볼의 기원으로 추측되는 사건, 미국 노동조합의 탄생과 여성인권운동과 아나키즘의 접목,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위 계승자 프란츠 대공의 암살까지, 가볍게 넘길 문장들이 단 한 줄도 없다. '천천히 읽으라' 는 역자의 말과, 역시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맨 앞장의 인용 문구 "이 곡은 빨리 치지 말게. 래그 타임은 절대 빨리 치면 안 돼..." 라는 스콧 조플린의 문구까지, 충분히 이해된다. 

 

 문학은 독자들에게 해답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 사람들을 선도하거나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건 정치가들의 몫이다. 소설가는 단지 현실을 그려낼 뿐이다. 어떤 독자들은 그 현실을 보고 해답을 찾거나, 꿈이나 희망을 얻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당연히 독자 개인의 몫이다. 당연히 작가에게는 독자를 감동시킬 의무도 없고, 깨달음을 줄 의무도 없다. 위로를 받건, 절망을 하건, 모두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을 읽고 당신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평생에 한번쯤은 일독을 해 볼 만한 작품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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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3 : 디럭스 에디션 시공그래픽노블
그랜트 모리슨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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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미래의 총입니다. 

내일의 전쟁에서는 보시는 바와 같이 동물을 원격 조종하여 싸우게 될 것입니다.

생물병기입니다. 의원님.

인간의 새로운 친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비밀 연구소에서 생체 병기가 완성되었다.

동물들을 소재로 한 Animal Weapon, 통칭AWE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이다. 세 기의 시험기가 탄생했고, 그들에게 WE3 라는 코드명을 붙였다. 개犬가 팀의 리더로서 코드명 원One, 고양이는 투Two, 토끼는 쓰리Three 로 불리게 되었다. 팀 WE3는 작은 몸집과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빠른 감각으로 통풍구와 하수구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위험한 임무들을 충실히 수행한다. 테러조직을 소탕하고, 미국의 적이 될만한 요인들을 성공적으로 암살해 낸다. AWE 프로젝트를 총괄한 상원의원은 대량으로 양산형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 시험기들을 폐기처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인물인 로잔느 베리 박사는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베리박사는 자신의 자식같던 WE3 멤버들을 베이스 연구소에서 탈출시킨다.  



최첨단 탱크 한 대 급의 화력을 갖추고 있는 개犬- 원 , 스텔스 기술이 접목되고 강력한 살상무기로 무장된 고양이 - 투, 지뢰와 독가스 등 대량 살상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토끼 - 쓰리. 이 위험한 병기들을 제압하기 위해 수많은 군인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인간의 수배가 넘는 반응속도와 감각을 가지고 있는 WE3에게 군인들과 평범한 무기들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최첨단으로 무장되었으며,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은 가차없이 말살시키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최첨단 생체병기였으니까. 







 이 작품은 이제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메이져 만화사 '마블'과 'DC'가 아닌 '버티고VERTIGO' 라는 회사에서 나온 작품이다.  버티고는 히어로물 일색인 마블과 DC와는 달리 성인 취향의 진지하고 어두운 작품들을 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V 포 벤데타] 같은 작품들도 버티고가 발굴해낸 역작이다.

WE3 역시 잔인하고 참혹한 묘사가 여과없이 등장한다. 사실, 이정도 묘사는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이나 만화 등에 비하면 별 것 아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19금] 딱지를 붙이고 발간되었다. 


 작품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불가능한 임무들을 충실히 수행했던 생체병기 WE3. 하지만, 인간도 아닌 동물 - 그것도 미국 전역의 어느 가정에서나 쉽게 만나볼법한 개와 고양이 그리고 토끼가 모여있는 팀의 해체와 팀원들의 '처리' 는 그들에겐 너무나 쉬운 명령이었다. 이들은 프로그램 유지를 위한 약물 공급만 끊겨도 죽어 없어질 존재들이었다. 그런 WE3 였지만, 인간들의 제어를 벗어난 이상 그들은 우리를 벗어난 맹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정식으로 AWE 프로젝트를 국책사업으로 지원을 받고자 하는'윗대가리' 들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을 터. 결국 군대를 동원해 연구소를 탈출한 WE3를 제거하려고 하고, WE3 멤버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할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전쟁에 특화된 유능한 요원들이 실컷 부려먹히다가 결국엔 효용가치가 떨어져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으로부터 쫓기게 되는 내용. 그런 내용에 주인공을 '동물'로. 게다가 인간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물로 바꾸면 된다. 충분히 교육받고 약간의 말을 할 정도로 언어능력까지 습득했지만, 그래도 동물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 부분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개犬 인 원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아주아주 충실한 살인병기 애완견이고, 고양이인 투는 비록 제멋대로인 성격이긴 하지만, 리더인 원을 존중하는 살인병기이다. 토끼인 쓰리는 역시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일때도 있지만, 순한 초식동물의 습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살인병기이다. 

 동물들은 살인병기로 개조되었음에도 애완동물로서의 모습을 유지한다. 주인에게 사랑받던 애완동물로서의 본능이 또렷하지만 자신들에게 적의를 갖는 대상은 가차없이 '처리' 하도록 '프로그램' 되었을 뿐이다. 주인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한다. 물론 '자신에게 적의를 갖지 않는 한.' 

 그런 연출들이 굉장히 감성적이면서도 만화적, 문학적으로 잘 그려져있다. 모든 컷들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통해 앵글과 시선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들도 모두 일러스트처럼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컷 하나를 봐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는데, 각 컷의 많은 앵글들이 동물의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주로 인간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점이라던가,  인간보다 훨씬 빠른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의 시선을 정적인 네모칸 안에 넣기 위해 시도한 여러가지 표현방법들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디럭스 에디션' 이라는 제목답게 책의 말미에 DVD의 서플먼트처럼 작가들의 말이 실려있다. 특별한 컷에 대한 작가들의 의도와 아이디어 발상 과정, 작업 과정등이 상세하게 실려있는 것이다.  이런 친절함들을 통해 작품을 더욱 깊이있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미국 만화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나아가 미국 문화의 근간이나 다름없다. 

만화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글과 그림을 통해 다양한 연상작용을 도와주기에 전달력이 그 어떤 매체들보다 빠르다. 미국 만화는 히어로물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수많은 스토리 텔러들은 그런 만화를 통해 수많은 메시지들을 전해왔다. 슈퍼맨은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친구들,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태생 자체가 반전反戰과 생명존중에 대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헐크와 같은 히어로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렉스 루터나 조커 같은 악당들 역시 모두 범인류적인 메시지는 물론, 문학작품들 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의 이면들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WE 3] 는 보다 또렷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대단히 쉽게 펼쳐내고 있다.

생명 존중은 비단 인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 

그런 메시지들을 우리와 가장 가까운 애완동물들을 통해 적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종일관 비극적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몇 사람에 의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해피엔딩의 키는 두명의 과학자와 한명의 노숙자가 쥐고 있다. WE3 멤버 중 하나였던 토끼와, 토끼를 닮은 박사 한명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다른 둘을 살려낸다.

인간들에 의해 길러지고, 인간들에 의해 개조되고, 인간들에 의해 다른 인간을 죽이도록 명받은 순수한 동물들은 다시 자신들의 자리인, 사람의 품과 무릎 위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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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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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에서부터 시작된 유럽과 오리엔트의 '종교 분쟁' 은 약 250여년 동안 이어졌다. 

1권에서는 십자군 원정의 시작과 예루살렘을 탈환한 1차 원정대의 성과가 그려졌고, 2권에서는 1차 십자군 원정대가 이슬람 세력 안에 자리잡은 십자군 국가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끈질기게 지켜 나가다가 살라딘의 등장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잃고 큰 위기에 처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250여년간의 분쟁을 매조지하는 [십자군 이야기] 3권은 두권의 책을 합친 것 만큼 방대한 볼륨을 자랑한다. 일단, [십자군 이야기] 3권의 1권에 해당하는 전반부에서는 십자군 국가에게 전략적 요충지인 항구요새도시 '티루스' 까지 뺏길 심각한 위기 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술, 전략은 물론 전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리처드는 티루스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순식간에 전황을 뒤엎는다. 리처드가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결정적인 무기는 바로 '함대' 였다. 리처드가 이끈 십자군은 거대한 투석기를 실은 제노바와 피사의 함대를 이용해, 현대전에서의 '함포 사격'과 같은 방식으로 원호를 받으며 바닷가를 따라 이동하며 전략적 요충지들을 점거해 나갔다. 결국 리처드는 열세였던 전황을 우세로 뒤바꿔,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 측과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3권의 중~ 후반부에 걸쳐 중세 유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발전과 이슬람 왕국 내에 섬처럼 세워진 십자군 국가의 몰락, 교황 중심이었던 유럽사회의 변화, 그리고 불처럼 타올랐던 '성지 수복' 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드는 과정이 차분하게 그려진다. [십자군 이야기] 3권 중~후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성당 기사단의 최후에 관한 내용이다. 현대의 많은 스토리 텔러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성당 기사단에 대한 전설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들이 프랑스와 유럽 정세와 얽혀 상당히 신빙성 있게 풀어진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는 탄크레디와 보두앵 1세가, 2권에서는 문둥왕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이 인상적인 인물들이었다면, 3권에서는 단연 사자심왕 리처드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일 것이다. 탄크레디와 보두앵 1세, 보두앵 4세, 살라딘과 리처드가 모두 영웅적인 활약으로 인상에 남는다면, 프리드리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상에 남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거침없는 '인물평' 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추측성 문장을 넣기를 꺼린다. 하물며, 인물평에 대한 부분은 거의 겁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굳이 사가가 인물에 대한 평을 넣을 때는, 다른 권위있는 역사가의 인평을 인용하던지, 참고한 사료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다른 사료를 참조해 인용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인물에 관해서만은 거침없이 "~~ 이랬던 것 같다." 와 같은 추측성 문장을 과감하게 쓰곤 한다. 

 [로마인 이야기] 가 로마제국 전반에 걸친 방대한 역사서이지만, [로마 이야기] 가 아니라 [로마인人 이야기] 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역사서들이 각종 사료를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여 서술하는데 그치는 반면, 시오노 나나미는 그 사건들 직면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추론한다. 당연히 그러려면 일반 역사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료를 참조해야 할 것이고, 훨씬 더 많은 탐방을 해야 할 것이며, 훨씬 더 많은 비교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수많은 사료들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정리해서 펼쳐낸 뒤 "이러므로 이랬던 것 같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 누군들 설득되지 않을쏘냐!! 

 [로마인 이야기] 에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 본연의 권력욕을 파고들었던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은 '신앙' 에 기초했다는 '십자군 원정' 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결국 당시 유럽 사회에서 종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볼모로 한 강력한 권력이었다. 정말 불가사의 하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한 신을 믿고, 한 책을 믿는다. 완벽하게 점 하나까지 다 믿는다. 그 책에 '태양이 뜨는 쪽이 서쪽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 전 세계는 태양이 뜨는 쪽이 동쪽이냐, 서쪽이냐를 갖고 수세기동안 전쟁을 치를 것이다. '신앙' 이란 그런 것이다. 신앙의 지도자는 신과 비슷하게 추앙받았을 터다. 하늘이 내려준 권력. 교황의 권위는 그런 것이었다.  [십자군 이야기] 에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종교적인 본성보다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역사란 대부분이 '추측', 가설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록이란 것은 언제나 100% 객관적일 수 없다. 특히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었고,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기록을 날조하고 왜곡시킨다. 우리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었던 민족이다. 중국에게. 일본에게. 중화 사상에 젖어있던 무렵의 기록,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 의해 무수하게 왜곡 되었던 기록들, 그리고 그에 맞서기 위해 무수하게 각색된 기록들. 결국 후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중국과 일본, 우리의 각각의 기록들을 비교해 보는 수밖에 없었을 터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역시 비교사학이 크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어떤 기록이든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이고, 완벽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십자군 이야기] 안에서도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이 접한 기록의 허구성에 대해 명백히 밝히고,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군 이야기] 안에서 읽어야 할 부분은 사건과 인물 뿐 아니라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부분들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유럽 사관들의 기록은 물론, 이슬람측의 기록들까지 꼼꼼히 살피고, 중첩된 부분들은 서로 비교하며, 때로는 다른 사학자의 역사서까지 비교해가며 자신이 기록을 접하는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서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평은 단어 선택 자체가 틀린 것이다. 역사서는 원래 모두가 주관적이다. 역사서는 결코 객관적이 될 수가 없다. 누가 얼마나 더 뚜렷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주장' 을 펼쳤느냐가 '역사' 이다. 얼마나 '덜 주관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록들을 모아서, 얼마나 '더 그럴듯한 인과관계' 를 그려서, 얼마나 더 '설득적으로' 풀어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한 인간이 한 행동을 하는 데에도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다. 내가 이 리뷰를 쓰는 요인만 따져봐도, 족히 열가지는 될 터다. 나는 언제나 읽은 책은 리뷰를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일이 다 끝나서 약간의 한가한 틈이 있기도 했고, 마침 컴퓨터가 켜져 있기도 했고, 인터넷도 서버 점검 없이 원활히 잘 돌아가고 있으며, 졸립거나 피곤하지도 않았고, 딱히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마침 이 책의 리뷰대회가 있기도 했고, 무려 오늘이 그 대회 마감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것에 대해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적었다." 는 기록을 했다면, 후세의 역사가는 바로 그 한줄의 글을 가지고 가설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올린 다른 리뷰들도 찾아보고, 내가 끄적거린 다른 잡문들도 찾아보며,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글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추측으로 가설을 만들어 '주장' 하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하물며, 한 사람이 아닌, 한 집단이, 한 국가가, 아니, 유럽 전체가 움직인 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이야기] 는 내가 [로마인 이야기]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이후 세번째 작품이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고 난 후 당시의 시대상을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 찾아 읽었다. 확실히 [십자군 이야기] 는 [로마인 이야기] 나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보다 주장을 보다 또렷하게 개진한다. "이 부분은 내 주장이야," 라는 부분이 보다 확실히 와닿는다. 그것은 역시 사료의 빈약함 때문일 터다. 위에도 언급했듯 십자군 이야기는 유럽 전체는 물론 중동지역 전체가 맞물린 거대한 '연합체' 의 충돌이었다. 정말 다양한 성격의 사료들이 정말 다양한 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정확성을 가늠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의 서문에 쓴 글귀가 생각난다.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 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 사냥도, 화약 음모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도(...)없다고 상상해보라."

이런 문장을 서두에 적었지만, 리처드 도킨스도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종교 자체가 이런 거대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십자군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시오노 나나미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에도 썼듯, 인간의 행동 요인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가 결정적인 '구실' 로 작용했음은 확실하다. 십자군 전쟁의 후반부는 단순한 영토 분쟁이었다. 신앙의 힘은 초반에만 활활 타올랐고, 중반부터는 서서히 연료로써의 동력이 떨어져갔다. 

 인류가 '역사' 를 시작한 이래 종교가 함께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것은 즉, 종교를 구실삼은 분쟁이 끊인 적도 없다는 의미이다. 종교란 지구 위에서 죽음을 자각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신과, 사후 세상에 대한 꿈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많은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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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귀를 기울이면 - 제17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문학동네 소설상 17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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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가 아직 국민학교였던 무렵, 우리 반에도 지능지수가 약간 모자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때는 그렇게 모자란 아이는 반 아이들이 다 조금씩 도와주는 분위기였다. 학기 중간에 아이들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이 끝나면 선생님은 짝바꾸기를 실행하셨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짝으로 하게 해주고, 그 여자아이와 집이 가까운 아이들을 주변에 앉게 해서 자연스럽게 등하교를 챙겨줄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자아이에게 찍힌 남자애는 무슨 잘못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땐 어린 마음에도 다들 배려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때 그 여자아이가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도 기억난다. 

 "어떠니, 네가 짝 해줄래?"

 남자아이는 조금 고민하더니, 그 여자아이 옆에 가서 앉았고, 그 여자애는 조금 부끄러워 하며 엄청 환하게 웃었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그리고 난 그 여자아이와 집이 가까웠기에, 역시 그 여자아이와 집이 가까운 다른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해 내가 집안 사정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 갈 때 까지 우리는 자연스레 학교 안팎에서 자주 어울렸더랬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세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일우' 도 지능지수가 약간 모자란 아이다.

하지만, 사람이 달랐던 건지, 아니면 세상이 달라진 건지. 일우는 보호받기는 커녕 학대당했다. 그렇게 깊은 상처를 가지고 안으로, 안으로 자꾸 파고 들게 된 일우. 나는 국민학교 이후로도 쭉 그렇게 지능지수가 약간 모자란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게 되었다. 사실 그런 친구들은 주변에 굉장히 많다. 굳이 만나려고 하지 않아도, 한 학년에 서너명쯤은 있었고,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간 그 아이들 중 한명과 한 반이 될 확률은 생각보다 높았으니까. 20세 이후 나름 열심히 활동했던 교회 청년부 안에도 그런 형이 한명 있었다. 

7~10세 사이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잘 챙겨주며 사회성을 길러주면, 지능지수가 15~18세 정도까지는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당연히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일반인 수준까지는 못 되더라도, 꾸준히 성장한다.

단지, 그 속도가 느릴 뿐이다. 일우는 그 때문에 가족들에게 학대 당하고, 동네에서 학대당하고, 학교에서도 학대당했다. 

애초에 남들과 동등한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들인 세오시장 상인협회 총무 정기섭과 네오 프로덕션 PD 박상운은 서로의 꼼수가 맞아 떨어지면서 [더 챔피언] 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일우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세명의 인생이 맞물리기 시작한다.

 최근 우리 나라의 방송용 TV쇼들은 그야말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천국이다. 대부분의 방송사는 동일한 플롯, 심지어 소재마저 동일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소재만 조금씩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여러개가 난립하고 있다.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치열한 경쟁을 담보로 성공을 꿈꾸는 수많은 도전자들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많고, 문의 갯수는 적다 . 문을 통과하기 위해 옆 사람보다 잘해야 한다. 문을 통과할 때 마다 다른 문이 나타나고, 그 수는 점점 더 적어진다. 단순하게 말해,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네가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발랄하고 경쾌한 필치로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들을 그려나간다. [더 챔피언] 이라는 프로그램 안에 속해있는 일우도, 프로그램을 만든 기섭과 상운도 모두 똑같은 상황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외길위의 상황. 모두 큰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고, 뭔가 대단한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뿐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회는 거짓말처럼 왔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와 함께, 균형을 이루며 공생의 모습을 하고 있던 상운, 기섭, 일우의 상황 역시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같은 형태로 흘러간다. 세 명이 모두 성공의 달콤함을 맛볼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셋은 서로를 물고 늘어져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서로에게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큰 야망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살기 위해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작품은 아주 잘 만들어진 한편의 블랙 코미디 영화처럼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경쾌한 필치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담아냈다. 무엇보다 작가의 메시지가 뚜렷하고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는 점이 매우 큰 미덕이다. 문장은 간결하고 재기 발랄하면서도 전달력이 뛰어나고, 캐릭터들은 굉장히 입체적이다. 그 와중에도 [더 챔피언]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의 소재가 되는 '쓰리컵 대회' 자체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허무맹랑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얼개 속에서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만나 놀라울 정도의 현실감으로 가공된다. 그것이 작가의 문장과 캐릭터들의 적절한 균형, 적당한 밀고 당기는 호흡과 어우러져 대단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특히, 공생의 모습으로 시작된 세 주인공들의 구도가 서바이벌로 변해가는 과정의 인과관계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우가 맞이하게 되는 클라이맥스가 너무 안타깝다. 결국 생존을 위해 다시 공생을 시도하는 박상운, 정기섭, 김일우이지만,    일우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현실에서 해갈 할 수 없는 법 아니던가. 


순간 김일우는 여기가 어디고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왔는지 잊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붉은 방.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슬퍼. 불쌍해. 한심해.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뭐가 될까.

그때 멀리 어딘가에서 쾅 하고 커다란 빛이 터졌다. 순간 김일우의 심장도 펑 하고 터졌다.

심장이 터지며 가슴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도망쳐!"

p. 297

 

일우가 들은 소리들은, 그 소리들로 느낀 세상은, 그리고 그 안에 속해있는 자기 자신은, 과연 어떻게 느껴졌을까? 











[더 챔피언]의 티져 포스터를 만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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