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거리
아사노 이니오 지음, 이정헌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타스쿠. 

원래 언덕이었던 토지를 깎아 아파트 단지를 세워서 채광이 좋다고 주민들은 '빛의 거리' 라고 부르는 이 뉴타운에 아빠와 단둘이 거주하는 타스쿠는 뜻밖에도 '자살 도우미' 이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시간이나 죽이려고 아빠의 노트북을 빌렸다가 자살 지원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발견한 타스쿠가 생각해낸 돈벌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비용으로 자살 지원자를 찾아 자살을 도와주고 그 최후를 지켜봐 주는 것이다. 타스쿠는 자살할 사람들이 자살하는 그 순간까지 용기를 갖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살하는 사람의 휴대폰을 챙김으로써 소임을 다한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인 타스쿠에게는 하루코라는 열 여섯살 짜리 여자친구가 있었다. 

연인까지는 아니고, 호감은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묘한 관계인 친구였다. 학교를 안 가고 텅 빈 아파트 단지안에서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은 타스쿠에겐 하루코, 하루코에겐 타스쿠 뿐이었다. 어느날, 타스쿠는 밤에 자판기 앞에 나왔다가 총을 머리에 대고 있는 한 중년의 남자를 발견한다. 딸과 아내를 죽이고 나왔다며, 신세한탄을 늘어놓은 남자는 타스쿠에게 방아쇠를 당겨달라고 부탁하고, 타스쿠는 자살 도우미의 본분을 살려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 남성의 머리에 총을 쏜 것이다. 

타스쿠는 평소처럼 죽은 남자의 휴대폰을 챙기던 도중,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을 발견한다.

귀찮아하며 휴대폰을 끄려고 했던 타스쿠는 휴대폰 액정화면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하루코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타스쿠는 하루코의 아빠의 머리에 총을 쏜 것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덩어리의 이야기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가장 중심적인 이야기는 타스코와 하루코 이야기이고,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호이치에게 딸려 있는 가족인 사토시와 호이치인지 사토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둘 중 한명의 딸이라고 생각되는 모모코로 이루어진 묘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약간은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만화가인 노츠와 사요 커플이 등장한다. 

이 셋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착실하게 진행되어 나가며 '빛의 거리' 에 살고 있는 다른 주변 인물들도 골고루 등장하며 전체적인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도심과 멀찍이 떨어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이른바 '뉴타운' 은 처음엔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심 주변의 위성도시에 이른바 '신도시' 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심지역에 집중되어있는 인구를 분산시키고 위성도시들을 발달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방식은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뒤이어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어 지금은 서울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일찌감치 이 방식의 실패를 인정하고 대규모 뉴타운 건립 계획을 모두 철회했으며, 일본에서 역시 그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개발된 수많은 뉴타운들은 더이상 새로운 인구 유입이 되지 않아 고령의 노인들만이 거주하는 일종의 유령도시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의도했던 도심의 인구분산도 이뤄지지 않고, 주변 개발 역시 이뤄지지 않으며 일종의 고립된 섬처럼 정체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을 소설로 옮겼던 것이 '오쿠다 히데오' 의 [꿈의 도시] 라는 작품이었다.


[꿈의 도시] 와 [빛의 거리]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글로 묘사된 '꿈의 도시' 의 황량한 느낌과  아사노 이니오의 펜터치로 묘사된 '빛의 거리' 의 황량한 느낌은 대단히 흡사하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거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도 묘하게 접점이 있지만, 시기상으로 뉴타운이 고스트타운이 되기 전에 발표된 아사노 이니오의 [빛의 거리]가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만화의 장점을 살린 넉넉한 상상력과 자극적인 소재들 역시 눈에 띈다. 


아사노 이니오는 일본에서도 문학적인 만화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만화가 소설이 되고, 드라마가 되는 이른바 '원소스 멀티 유즈' 가 활발한 컨텐츠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전작인 [소라닌]의 경우에는 원작이 거의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져 소설로 발표되기도 했고, 영화 역시 원작의 시나리오가 거의 그대로 브라운관에 옮겨지기도 했다. 

만화만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문학적인 묘사를 즐기며 현실의 이야기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원고지 위에 옮겨 넣기를 갈구하는 그의 성향은 [소라닌], [빛의 거리]를 이어 최근작인 [잘자, 뿡뿡] 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실, [빛의 거리] 는 전작인 [소라닌]과 근작인 [잘자, 뿡뿡] 에 비하면 가장 단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일단 중심적인 인물인 타스코가 가지고 있는 지나치게 싸이코패스, 쏘시오패스 적인 성향에 대한 설득력이 거의 없다. '아니 대체 이 애는 나이도 어린게 어떻게 이렇게 된거야?' 라는 의문에 대한 힌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것 만으로 아이가 이렇게 되기에는 너무 근거가 빈약하다. 오히려 더 끔찍한 과거를 겪은 하루코의 성격과 비교해봐도 타스코는 지나치게 달관한 느낌이다.

이런 캐릭터가 작가의 의도였을 수는 있겠으나, 조금 더 근거를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이야기 전체가 보다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 외에 이야기의 흐름과 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 뜬금없는 에피소드들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를 상당히 떨어뜨리는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느낌이 폴폴 풍기는 멋진 작품임은 확실하다. 


언제나 현대문학에서는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획득되는 행복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사람은 독자적인 존재이기에,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행 역시 타자와 얽히면서 생겨난다. 불행이 두려워 소통을 거부하면, 행복 또한 얻을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행복에 가장 가까운 것은 '돈' 일 터다. 이 작품 안에서도 '돈' 은 등장인물들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연인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돈' 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물약이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신비의 물약이다.

하지만, 바로 이 '돈' 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한 '인간' 의미는 그 사람의 연봉, 부동산, 통장 안의 잔고로 결정되어진다.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스스로를 그 숫자들로 이해한다.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를 보며 행복해하고, 때론 불행해한다.  

 

글쎄, 과연 어떤 삶이 옳을까?

과연 삶의 의미는 어떻게 잴 수 있는걸까?


문학이나 만화, 예술, 철학이 그런 답을 내려주지는 않고, 내려줄 수도 없다. 

작가나 철인들도 그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니까.


일단 아사노 이니오는 이렇게 말한다.


"의미가 있든 없든, 그런거 상관없잖아. 

중요한 건 무엇을 믿으면 행복해 질 수 있나... 그거 같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