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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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의 문장들이 죄다 농담처럼 느껴지는건 [농담하는 카메라] 때문도 아니고, 그의 문장들이 죄다 맛깔나게 느껴지는건 [칼과 황홀] 때문도 아니리라. 그의 문장들이 시종일관 스펙타클하고 긴장감 넘치게 읽히는 건 역시 [도망자 이치도] 때문도 아니고, [왕을 찾아서]때문도 아니리라. 그의 문장들은 그의 작품집, 또는 장편 소설, 산문집의 제목들처럼 농담처럼 재미있고, 음식처럼 맛깔나고, 추격전처럼 숨가쁘고, 뒷골목 건달들의 권력싸움처럼 피비린내난다. 서두를 이렇게 들어가고 보니, 맞다. 이 책 [위풍당당] 은 딱, 성석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성석제 작가만의, 성석제 작가의 작품세계에 화려한 전반기를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작품을, 성석제 작가의 독자를 위한 액기스 모음이라고 느낀 것은 나만은 아닐것이다!! 


 이야기는 경관이 수려한 강가에서 시작된다. 천 리 길이의 강이 만들어낸 최고의 승경으로 손꼽힌다는 지천벽의 용소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한 가족. 영필과 여산, 그리고 소희와 이령, 새미와 준호 남매와 스님 한분, 그리고 용석이까지 끼워줘야 하겠지?

 이 가족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드라마를 찍고 난 뒤 버려진 세트장이다. 조선시대인지 어디인지, 초가삼간에 아궁이까지 달린 집들이 모여있는 하나의 작은 마을. 하지만, 모든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을, 죽어있는 마을. 

 그리고 이 가족들 또한, 피를 나눈 진짜 가족은 아니다. 

아픈 과거를 잊고 강으로, 산으로 모여든 이들. 아주 우연히 한명이 다른 한명을 만나고, 그 한명이 또 다른 한명을 만나 옹기종기 플라스틱 마을에 모였다. 마치 드라마나 연극처럼,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인 것 처럼 그렇게 모여들게 되었다. 각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각자 중요한 능력 - 어찌보면 누군가는 쓰잘데기 없다고 할만한, 음식은 귀신같이 알아챈다던가, 오토바이가 있다던가 등등 - 을 하나씩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묘한 공동체에 사건이 벌어지는데, 성석제 작가의 작품속에서 사건의 발단은 대부분 여자때문에 일어난다. 게다가, 엄청 예쁜. 남자들이 훅~ 홀리는, 아니 수컷을 훅~!! 가게 하는 아름다운 미녀, 새미. 아니, 여자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구나. 성석제 작가의 작품속에서 사건의 발단은 대부분 여자에 홀린 멍청한 남자때문에 일어난다. 이렇게 강마을에 살던 평범한 작은 공동체는, 역시 근처 산속 별장에서 합숙중이던 소박한 정묵이네 조폭 일가와 엮이게 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공동체의 대결로 압축된다.  이 두 공동체 모두 '가족' 과 닮아있다.

영필과 소희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면, 여산과 이령은 아빠와 엄마. 용석이는 삼촌같고, 새미와 준호는 말썽쟁이 자식들이다. 스님은 증조할아버지쯤? 3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이다. 조폭들 또한 서로를 '형님, 아우' 라고 부르곤 한다. 알 카포네의 갱단은 스스로를 '패밀리' 라고 불렀고, 역시 그 태생이 갱과 같은 조폭들 또한 스스로를 가족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영필과 여산을 필두로 한 강마을 가족은 서로가 서로의 유익을 위해 모였기보다는 어쩔 수없는 상황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얹혀있는 형태이다. 혈연들과의 관계속에서는 정말이지, 고통밖에는 없었던 상황. 영필도, 여산도, 이령도, 새미와 준호도...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처절한 고통뿐이었다. 그들에게 혈연적인 '가족' 은 고통의 근원,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구속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자신의 혈연들을 떠나서 도피해온 공간. 그 순간 그 공간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거듭나게 된다. 플라스틱 일색인 강마을이 그들에게는 그 어떤 낙원보다 따뜻하고 아늑했을터다. 

 정묵의 조직은 '폭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필연적으로 폭력에 폭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시 폭력을 전제로 한 단체가 필요하다. 뭉치는건 폭력을 행사하기에도, 폭력에 대응하기에도 유리하다. 때문에 서로가 '필요' 하다. 이 두 공동체 모두 생존을 위해 뭉쳐진 '가족' 들이지만 이 두 가족의 성격과 끈끈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둘의 본질적인 차이는 피비린내나는 대결을 통해 낱낱히 드러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이름은 스스로에게 독자성을 부여한다. '나' 는 '나'. 라는 자각. 스스로를 자각함과 동시에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갈구한다. 가족을 이루고, 집단을 이루어 사회를 구성한다. 영필을 비롯한 강마을 가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가족' 에서부터 버림받은, 혹은 그것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다. 정묵의 폭력배 조직도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여러 이유에서 자신들의 '가족' 에서, '사회' 에서 버림받았다. 치열하고 피비린내나는 대결을 벌이는 이 두 집단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빛은 시종일관 따스하다. 비록 엄청난 고통을 겪게되는 여산과 정묵이지만, 이 둘은 살기위해 아둥바둥거릴 뿐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살기위해 투쟁한다. 


 어디에서 읽었더라...가족은 가장 큰 선물이자, 가장 큰 짐이라고 했다. 

영필과 여산의 강마을 가족과, 정묵의 폭력배 조직. 영필과 여산의 강마을 가족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혈구들처럼 정묵의 조직의 공격 앞에서 점점 더 끈끈하고 강해진다. 그렇다면 정묵의 조직은 어찌될까? 어차피 정묵의 조직은 배신과 하극상이 넘실대는 곳이다. 아마 정묵은 보스의 위신을 잃고 오른팔인 명철에게 '작업' 당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아빠가 되고, 큰아빠가 되어주었을 뿐이니까.

 영필과 여산은 조폭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진짜 남편과 진짜 아빠로 거듭나고, 정묵의 조직원들은 영필과 여사의 가족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아빠인척, 큰아빠인 척 하던 밑천이 거덜난다. 

가장으로써 가족들을 지키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영필과 여산을 바라보는 소희, 이령과 새미, 준호 역시 진짜 아내와 진짜 엄마, 진짜 자식들로 거듭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참으로 신기하다. 조금이라도 받으면, 조금이라도 더해서 돌려주고 싶어진다. 진짜 가족이란, 그렇다. 그게 받은 사람에게 돌려주건,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내리사랑으로 돌려주건. 받아봐야 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조폭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다. 


영필과 여산의 가족들은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어쩌면 작품 말미에 등장한 조폭보다 더 무서운 4대강 전도사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필과 여산의 가족들은 소희가 키워내는 작물들처럼 생명력을 가득 머금고 쑥쑥 자라날 것이다.  

그들에겐 진정한 사랑의 뫼비우스의 띠가 얽혀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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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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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다. 

얼마전 손상된 오른쪽 무릎의 반월상 연골판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느라 정형외과에 2주 가까이 입원했더랬다. 20평쯤 되 보이는 병실에는 무려 7개의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어떤 침대는 보호자가 자리잡을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연골판을 봉합하기 위해 관절경 수술을 했는데, 그 원리는 이렇다. 일단 무릎 피부에 한쌍의 구멍을 뚫는다. 그 안에  수압이 강한 물을 쏴서 뼈와 근육, 혈관들을 분리해 낸다. 그리고 그 안으로 집게와 니들을 넣어 찢겨지고 접혀지고 말려 올라간 연골판들을 잡아 특수한 실로 꿰맨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쨌든 수술을 마친 내 오른쪽 무릎은 뼈와 근육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하나로 붙어야 하는 것이다. 척추 마취가 풀리고 2~3일간 극심한 격통에 나는 마약 성분(아마 몰핀이겠지?)이 들어있는 무통주사 기구에 달려있는 '약 두배씩 들어가게 하는' 버튼을 사정없이 눌렀더랬다.

 4~5일 뒤 극심했던 격통은 잦아들었고, 어느정도 견딜만해졌을 즈음, 맞은편 침대에 있던 환자가 나와 비슷한 수술을 하고 왔다. 그 역시 무통주사의 버튼을 자주 눌러댔음은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이미 어느정도 견딜만해졌지만, 여전히 꽤나 욱씬거리는 나의 고통에만 관심이 있었다. 불과 며칠전에 겪었던 - 맞은편 침대의 그 남자가 겪고있는 - 고통은 잊은지 오래였다. 

만약 그 옆 사람이 다리를 절단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무릎이 더 아팠을것이다. 물론, 내가 수술하기 전날 하루 금식하는 동안, 옆 침대에서 보호자와 함께 치킨과 맥주, 족발을 먹던 환자도 나의 허기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역시 내가 입원하기 전날 다른 어딘가의 수술을 이미 받은 뒤였으니까. 


 우리는 사실 타인의 모든 것에 무감한 편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상상하고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곤 한다. 그 뿐이다. 상상력의 결과일 뿐,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골반을 부수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완벽하게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외로움은, 절대적인 고독성은 생득권인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이러한 절대적인 고독함을 이해하는 과정, 혹은 절대적인 고독함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태생적으로 감수성이 더 풍부한, 아니 감수성이 풍부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직함을 갖게 된 '작가' 라는 종족들은 어떨까? 그들은 절대적인 고독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해의 대상? 혹은 어떻게든 싸워 이겨 내야 하는 타도의 대상? 


내가 처음으로 접한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약간의 조울증 속에서 '상대적인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던 시기에 위로처럼 파고든 제목에 이끌렸던 것이다. 철저히 독립된 개체이지만,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 감동했고, [꾿빠이, 이상]과 [밤은 노래한다]를 통해 그의 치열한 '글쓰기' 라는 행위에 매료되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에서 치열한 그의 장편에서 볼 수 없었던 재치와 유머를 볼 수 있었고, 그가 젊은 시절에 썼던 글의 개정판인 [7번 국도REVISITED] 를 통해 그가  치열하게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했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더보이]를 접했을때의 느낌은, [꾿빠이, 이상] 을 읽어내려가던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느낌말이다. [꾿빠이, 이상]은 이야기의 플롯 자체가 논픽션에 가까운 흐름이었고, 실제로 김연수 작가가 일본의 헌책방들을 뒤지고 국립 도서관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였지만, [원더보이]는 주인공 정훈이에게 김연수 작가가 투영되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과 비슷하다. 특히 정훈의 부모님의 과거가 짜맞춰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의 클라이맥스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김연수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읽힌 것은, 문장마다 짙게 베어있는 진정성이 와닿았기 때문일터다. -열세살 열무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 같은 느낌이었달까.-

덕분에,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에 대한 부분보다는, 화자인 정훈의 성장담과 김연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 '혼자' 에 관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버지를 놓치고, 독심술같은 초능력을 손에 쥐고 삶으로 귀환한 정훈.

그에게 남겨진 건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함. 때로는 우리 주변의 환경이, 사회가, 역사가 나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고독함과 외로움은 '자각' 의 산물이다. 내가 '나' 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모두 '혼자' 임을 알게 된다. 육십억 분의 일. 나는 언제나 오롯히 나일 뿐, 내가 네가 될 수는 없다. 영원히 나는 나. 너는 너이다. 

 내가 외로운 존재임을,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을때, 비로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혹은, 그 반대의 순서도 가능하다. 타인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외로움과 고독함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정훈이 초능력을 잃어가는 과정은 그가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냥 거기 내려놓으면 돼!"

"너의 그 마음을."

"이렇게 두 팔을 펼쳐봐.네 몸은 종이처럼 가벼워질 거야."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P.300


그 외로움과 고독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어쩌면 인간의 유구한 역사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겨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기에, 함께 갈 사람들을 찾고, 붙들고, 부둥켜 안고. 타인과의 접촉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으며, 타인의 고통도 함께 느껴볼 수 없고, 타인의 말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으며,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 순간, 

당신은 나에게 있어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호모 사피엔스의 수 1천 65억여명 중,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하나가 아니라,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호모 사피엔스의 수 1천 65억여명 중,

유일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외롭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다면, 나에게 그런 특별한 '또다른 하나'는 필요 없을 테니까.


외로움과 고독함이 고통일까?

작품 안에서 외로움과 고독함은 '밤' , '어두움' 으로 은유된다. 

그것은 고통과는 다른 이미지이다. 

내가 유일자라는 것. 혼자라는 것이 고통인가? 

그것이 고통이라면, 난 영원히 타인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모든 인간들에게 동등하게 내려진 것이다. 

누구는 누구보다 더 외롭고, 누구는 누구보다 덜 고독할 수 없다. 수많은 가족들 틈에서도, 외딴 무인도 안에서도, 행인들로 가득한 대로에서도, 광활한 황무지 위에서도, 모두가 똑같이 외롭고 고독하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외로움과 고독함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찾아갈 수 있다.

네 손을 붙잡고, 네 따뜻한 몸을 안으면서, 나는 더더욱 외로울테고, 더더욱 고독할테고, 

나는 더더욱 네 손을 붙잡고, 네 몸을 껴안을테니까. 


삶의 반은 고독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그것들을 껴안고 영유하는 것일테지. 어쩌면 그 순간이, 작품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 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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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월드 Blue World 1~4 세트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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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 분화구처럼 솟아있는 블루홀.

블루홀을 통과하면 태고의 지구로 시공간을 초월한 이동을 할 수 있다. 일종의 '타임 터널' . 

시공간의 통로 [블루홀]이 발견된 뒤, 세계 열강들은 블루홀 너머에 있는 '과거의 지구' 에 대한 지배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들어간다. 마치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집어삼키던 모습처럼 블루홀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다. 

 
 한편,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 호'. 

'UMA'(미확인 동물)의 대표적 동물인 '네스호의 괴물' 이 등장하는 바로 그 네스 호수. 

미국의 프리 저널리스트인 '해리 스틸' 은 최근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공룡의 사체들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국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있기에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었으나, 해리 스틸은 그 공룡 사체들이 '구멍' 즉, 블루홀에서부터 나온 것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해리 스틸은 영국 정부가 네스 호에서 비밀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료인 마지, 피터와 함께 소형 잠수정으로 네스 호의 밑바닥까지 들어간다. 호수 밑바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을 발견하게 되고, 일행을 태운 소형 잠수정은 강력한 해류에 휩쓸려 구멍을 통과하게 된다.

 그 구멍이 바로 세계 각지에 출현한 [블루홀]들 중 하나.

해리 일행은 블루홀을 통과해 쥐라기 시대의 지구로 이동하게 되고, 원시 생명체의 습격을 받아 피터가 죽고, 해리와 마지도 큰 곤경에 빠진다. 그 순간 그들을 구해준 영국 해군. 

 이미 그 세상에는 영국과 미국이 합동으로 과학 기지를 건설해 둔 상태였다. 해리와 마지는 기밀유지를 위해 연구소의 그록 대위, 진 하트 중위, 카멜롯 교수 등과 함께 하게 된다. 

그 안에서도 미국측과 영국측의 대립은 확연하고, 민간인 과학자들과 군인들의 의견대립도 발생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불의의 사고로 건설기지가 완파되고, 현실 지구와 모든 통신 시설도 파괴된 채 쥐라기의 지구에 고립되고 만다. 

문명의 이기는 각자 개인 소지품만이 유일한 상황. 

과연 그들은 쥐라기 세계에서 현실로 무사히 생환할 수 있을까?


만화계의 아서 C. 클라크라고 불리우는 호시노 유키노부의 [블루홀] 연작의 두번째 작품이자 완결작인 [블루 월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전작 [블루홀] 이 현실 세계와 과거 세계를 이어주는 '타임 터널' 의 근거와 역할에 대해 설명하는데 비중을 두었다면, 이번 [블루 월드]는 세계 열강들의 이권다툼과 미지의 세계에 떨어진 인간 군상들의 치열한 생존경쟁과 그 안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과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룡, 그리고 그보다 더 광활한 밀림, 역시 끔찍할정도로 거대한 각종 곤충들과 역시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없기에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식량들. 그리고, 거대할 뿐 아니라 포악하고 공격적이며 사냥에 능한 포식자 공룡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도 포악해질 수 밖에 없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사람들간의 갈등과, 그와함께 드러나는 깊숙한 밑바닥의 본성들. 

그 뿐 아니라 과거의 세계와 현재의 세계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톱니처럼 맞물려가는 자연의 섭리를 거장의 손길로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체계적이고 설득력있는 설정과 치밀한 구성,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

'하드SF'를 보기 힘든 요즘, 정통 SF를 만화로 만나볼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극화체의 그림도 작품과 아주 잘 어울린다.

자연의 거대한 위용을 잘 표현해내는 거장의 손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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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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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한 소녀의 이야기.

한 남자의 손에 잡혀 자루속에 던져지던 기억이 아마도 그녀의 첫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랄라 아스마라는 사람에게 판매되어서, '밤' 이라는 뜻의 '라일라' 라는 이름을 얻게된 아프리카 태생의 소녀. 선량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랄라 아스마 덕에, 유괴되어 팔려간 소녀 치고는 올바른 교육을 받게 된다. 물론, 사랑이나 애정과는 거리가 있었을테고, 랄라 아스마의 아들과 며느리때문에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앞으로 그녀가 겪을 여정들에 비하면 그 시절은 '평탄했다' 고 할 수 있을터.

 라일라는 랄라 아스마로부터 받았던 그 시절의 교육들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지역을 거쳐 프랑스로, 미국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삶을 시작하게 되고, 역경과 고난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게 된다.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간이 사유를 시작한 이래 가장 의미있는 질문인 동시에, 무의미한 질문.

인간으로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인 동시에, 인간이기에 영원히 고민해야 할 화두.

라일라는 왜, 무엇을 위해 그토록 떠돌았을까? 왜 그토록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자신의 근원지  - 고향을 찾아 헤매야만 했을까?

그녀의 삶은 텅 비어버린 삶일까, 가득 찬 삶일까?

마치 고속철도의 창밖으로 사라지는 풍경들처럼, 그녀의 삶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랄라 아스마, 조라, 아벨, 자밀라 아줌마, 후리야, 게오르크 쇤, 들라예 부인, 마리 엘렌, 프리메제아 부인, 노노, 하킴, 엘 하즈 할아버지, 시몬과 베아트리스, 엘 세뇨르...

 그녀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그녀의 인생에 크고작은 영향을 미치고, 그녀에게 길을 내어주고, 길을 가로막고, 길을 안내하고, 길을 만들어준 수많은 사람들. 그녀를 갖고싶어했던 사람들과, 그녀에게서 위안을 찾고싶었던 사람들과,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

 인생과 인생, 수많은 인생들이 얽히고 또 얽히고 설키고 엉킨다.

 

그들은 왜, 무엇을 위해 그리 했던가?

라일라를 유괴했던 그. 그는 왜 그리 했던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던가.

 

수많은 질문들을 만나고, 수많은 목적들을 만나고, 수많은 무의미와, 유의미를 거치고 거쳐, 그녀는 음악을 만난다.

음악이 그녀의 삶 속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있다. 그녀의 음악을 통해 치유받고 회복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었고, 그녀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주했을 터다.

 그것은,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을까, 무언가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을까? 

 

라일라의 삶 전체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표류' '항해' '파란만장' '역경' '미로' 등이 떠오른다. 

그녀의 삶은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비참할정도로 가난할때에도 지역에 설치되있는 무료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공부했고, 쓰레기 하치장을 뒤지며 살았을때도 쓰레기로 버려진 책들을 쌓아놓고 읽었다.

그녀의 삶은 표류처럼 시작되지만, 결국은 목적지를 찾아내, 항해로 바뀐다.

수많은 역경들이 있고, 수많은 막다른 골목을 만나지만, 역경 속에는 언제나 헤쳐나갈 구멍이 있고, 막다른 골목 역시 벗어날 방법이 있다. 삶이란 언제나 그러하다.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오고, 좋은일엔 나쁜일이 따른다.

하늘위로 높이 치솟은 파도는 반드시 땅 속 깊숙히 꺼지기 마련이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 중 잘 읽히는 편에 속한다' 는 평처럼,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린 작품이다.

라일라의 삶의 여정은 쉼없이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몰아치고, 수영 뒤에 싸이클, 그리고 마라톤까지 완주해야하는 철인 삼종경기처럼 숨가쁘게 진행된다. 그 안에서도 르 클레지오 특유의 서정적이고 현학적인 문장들이 대단히 감미롭고 아름답다.

 이 작품은 라일라라는 한 흑인소녀의 인생 그 자체가, 거대 서구문명에 잠식되어가는 소수민족의 전통문명에 대한 메타포로 보는 해석도 있지만, 그런 거대담론에 파묻지 않아도 충분히 깊이있고 무거우며 어렵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엄청나게 무겁거나, 음울하거나, 어둡지 않다.

색채로 따지면, 온화한 노란색, 그리고 깊이있는 와인색. 이 두가지가 번갈아 펼쳐지는 느낌이랄까.

'밤' 이라는 뜻을 담고있는 '라일라' 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라일라는 햇살처럼 반짝이는 소녀이다. 그녀를 갖고싶어했던 남자들,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이 충분히 이해될 정도이다.

 

 라일라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당당했고, 올곧았다.

그녀는 일단 - 지금 당장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울먹이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거나 갈팡질팡 헤매이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눈 앞, 발 앞. 일단 앞에 놓인 그것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밝음' 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엄청난 낙관주의자이거나, 낙천적인 성향은 아니었다. 첫 기억이 - 시커먼 손에 붙들려 자루 안에 던져지는 것인 소녀가 낙관주의적이거나 낙천적인 성격으로 성장했을리는 만무하니까.

그런 것과는 차별되는 '밝음' 을 지니고 있었다.

 어떠한 절망과 고통과 위기속에서도, 깊은 어둠속으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무저갱의 구멍 속에 떨어져도, 꿋꿋하게 사다리를 찾아 한칸 한칸 올라올 것만 같은 밝음.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만큼 아주 밝고, 아주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 그녀는 그냥 평범하게 내 옆을 지나쳐가는 흑인 소녀였을터.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반짝거리며 또박또박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시커먼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물고기처럼 말이다.

 

 

 

"더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이제 나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름을 떨친 나의 조상 빌랄처럼, 노예였다가 예언자 마호메트가 속박에서 풀어주고 세상으로 내보낸 그 사람처럼,

드디어 나는 또 하나의 빌랄 족이 되어 부족의 시대에서 사랑의 시대로 들어선다."

 

p. 27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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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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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보아야 할까??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아야 한다.

글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많이 보고, 듣고, 느낀것들이 작가 개인의 경험과 철학이 맞물려 상상할 수 없는 산고를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작품을 낳아낸다.

 

 한국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인 김경욱은 자신의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아예 태내에 품고있는 '독서' 그 자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낳았다. [위험한 독서] 부터 [황홀한 사춘기] 까지 총 8편의 단편들이 모여있고, 모든 단편들은 창작, 글, 문장, 단어, 읽기, 이해하기 등과 같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독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차용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험한 독서] 라는 첫 작품은 단편집의 시작답게 그 의도를 확연히 드러낸다. 

첫 단편인 '위험한 독서' 의 화자는 책치료사이다. 치료를 원하는 상대방- 환자에게 환경과 사건, 심리에 맞는 책을 소개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트라우마를 치료해 나간다. 일종의 심리 치료자인 셈이다. 상담을 통해 적절한 처방을 내리고, 그 처방전은 바로 '책' 인 것이다.  [책] 을 이용한 [심리 치료]. '책치료사' 라는 소재는 그 아이디어 자체가 참신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의 설득력도 상당하다. 미술치료, 음악치료도 있는 마당에, 문학치료가 없을리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독서는 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체 게바라는 물론 마오쩌둥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독서는 수많은 위인들의 첫 길잡이였다. 하지만, 독서가 한 인간에게 언제나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히틀러 역시 상당한 다독가였다고 알려져있다. 지식이란  '힘' 과 같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활용되는 법.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책' 이다. 책이란 일종의 '간접경험' 이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이 한 사람의 사고를 바꾸기도 하지만, 간접 경험 또한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걸 이용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이다.  

그 방식은, 환자 - 피상담자의 인생을 한권의 책에 오롯하게 대입시키는 방식이다. 환자-피상담자는 치료사의 추천으로 책을 접하고, 그 책 안에서 자신과 꼭 닮은 등장인물을 만나게 된다.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등장인물. 그를 통해 환자-피상담자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사건과 문제점들을 미리 알아챌 수 있고, 그것을 해결하고 이겨내는 과정들을 미리 알아낼 수 있다. 환자 자신과 같은 상처나 과거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을 읽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책의 '해석' 과 '적용' 은 오롯하게 독서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책 치료사는 '안내' 만 해줄 뿐인 것이다.

  

 예로부터 '한권의 책' 은 '한 사람의 인생' 처럼 여겨져오기도 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발터 뫼르스' 등의 작가들은 책에 생명을 부여하기도 했고, '알폰소 슈바이거트르' 역시 '책' 이 갖고있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김경욱 작가 또한 그들처럼 '책' 그 자체에 대한 하나의 담론을 펼쳐낸 것이다.  

  


작가의 창작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한 [천년여왕] 은 극중 화자가 밝혔다시피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맥도날드 사수작전] 은 과장과 익살스러운 표현들 속에 자본주의의 허상과 언론의 기만이 절묘하게 숨겨져있고, [공중관람차] ,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는 현 세대의 결혼, 연애, 육아 등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위트와 날카로운 풍자를 가득 담고 리얼과 판타지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간다. 이 작품을 통해, 훗날 나오게 될 김경욱 작가의 장편인 [동화처럼] 이라는 사실주의적인 연애소설의 태동을 예감할 수 있다.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황홀한 사춘기] 는 한국 사회의 교육현실을 아주 냉정하게 짚어내고 있다.

군대식 기숙입시학원이라는 공간과, 권위주의로 점철되어있는 환경들은 한국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요소요소에 스며있는 절묘한 상상력들이 사실주의적인 문장들과 어우러져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리얼리즘을 오히려 극대화 시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유쾌하면서도 씁쓸하고, 허무맹랑하면서도 설득력있다.

 

언제나 이런 멋진 단편들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단편이야말로 작가의 역량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효과적인 창구이다.

김경욱이라는 작가의 단편들은 지나치게 꼬여있지도 않고,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번득이는 반전들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들 속에서 주제가 정확하고도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쉽고 효과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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