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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왕 ㅣ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1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2월
평점 :
"보이는 세계가 화려할수록 기반은 허약하고 몰락은 거대하다" P. 020
여느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교실에는 크게 네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먼저 공부를 잘하는 엘리트 부류.
그야말로, 교실의 1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은 이 아이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학교의 시스템도 이 아이들을 위해 움직인다. 아니지, 이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고 해야 맞을 것이다.
두번째 부류는 소위 '일진' 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역시 교실의 10%에 해당하는 아이들일 것이다.
선생님은 이 친구들은 아예 없는 학생으로 친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선생 그 자신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이 친구들을 힘으로 휘어잡을 수 있었지만, 교권이 추락하고, 교원조차 여성들이 대부분이기에 10대 후반의 덩치크고 혈기좋은 학생들을 힘으로 휘어잡는다는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세번째 부류는 '셔틀' 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이 친구들 역시 교실의 10%에 해당한다.
일진들에게 돈을 뺏기고, 심심풀이 대상으로 샌드백이 되어 얻어터지고, 교실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이다.
선생님은 이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교무실도 일종의 교실과 같다. 교장을 중심으로 계급과 체계가 잡혀있다. 우리반에 문제아 - 특히 왕따 당하는 학생이 있다고 알려지만, 그 선생님 역시 교무실 안에서 비슷한 처지가 될수도 있다. 그 밖에 여러 제도적, 장치적, 교육부 전체적인 문제로 인해 사실상 이 친구들을 구제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교실은 학생들만의 정글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정글 자체를 갈아 엎지 못하는 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이 학생들은 언제나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다.
네번째 부류는 위의 30%정도는 제외한 나머지들이다.
이 아이들은 어떤 분야에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주로 문제풀이에 재능이 없어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고, 운동신경도 보통정도에,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내재된 폭력성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운이 좋아 '셔틀'은 면한, 조용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일진들 눈에 띄지 않게 운신하며 학교를 출퇴근 하듯 등하교하는 아이들이다.
'태식' 은 네번째 부류에 속해있는 70%의 부류에 속해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부모님께 받은 도서관비를 삥땅치고, 시험기간에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떨고, 여자 연예인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출이나 큰 반항을 하지는 않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고, 공부를 잘 하고 싶기도 하지만,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니까 괜찮고, 공부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잠재된 폭력성은 소심함과 상식으로 누르며 사는 일개 소시민, 아니, 정말 그야말로 평범한 소년이다.
태식이 즐기는 게임 '판타지 온라인' 은 대한민국 최고의 온라인 게임이었다.
지금은 개발사의 여러 이유로 서서히 인기가 하락해 가고 있지만, 온라인 게임 대부분의 장르인 MMORPG의 선구자 격인 작품이었고, 아이템의 현금거래와 유저들간의 전투를 허용하고, 길드와 같은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게임속 경제구조를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탄탄한 회원풀을 구축하고 있는 게임이었다. '중경' 은 이 게임의 개발자이자 개발사인 '폴룩스 엔터'의 대표이기도 했다. 판타지 온라인의 인기 하락과 함께 폴룩스 엔터도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중경은 이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쓰는 중이다.
판타지 온라인의 세계를 양분하는 거대 세력은 '훈남 길드' 와 '인맥 길드'였다. 게임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은 대부분이 이 양대 길드 소속이었고, 게임 내 경제구조를 좌지우지 하는 최강자들이었다. 이들은 게임을 취미로 한다기보다 사업처럼 하는 사업가들이었다. 게임의 세계도 현실세계와 똑같다. 무기 아이템 하나를 얻으려고 해도, 실제로 광산에 가서 광물을 캐야 하고, 필요한 여러가지 다른 재료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대장간에서 제련을 해야 한다. 게임 유저들은 게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세계관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어떤 유저는 광산에서 광물만 캐서 다른 유저들에게 팔아 골드를 모으고, 그걸로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한다. 길드의 수익원은 이런데에서 나온다.
거대 길드가 광산을 장악하고,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사냥터를 장악해, 골드를 모으고, 희귀한 무기들을 보유한 뒤, 그것들을 현금을 받고 판다. 이것은 실제로 돈이 된다. '훈남 길드' 의 리더인 아이디 '인투더레인' 은 판타지 온라인 게임의 초기부터 뛰어난 명성을 떨치던 고수였다. 레벨 10차이가 나는 상대를 거뜬히 이겨낼 정도로 컨트롤이 뛰어났고, 공격과 회피의 타이밍을 잡는 기술이 탁월했다. '인투더레인'-'정준'은 실제로 조직 폭력배 출신이었다. 훈남길드를 만들고, 건물 지하에 컴퓨터를 여러대 놓고 유령회사로 사업자 등록까지 한, 게임으로 사업을 하는 인물이었다.
태식과 중경, 정준은 각자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건들을 맞닥뜨려 가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얽히게 된다.
한상운 작가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박감 있게 펼쳐지고, 다음 페이지를 미치도록 궁금하게 만든다. 중경과 정준은 다소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태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완벽한 소스를 제공하고, 간결하고 속도감있는 문장력과 어우러져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밸런스를 맞추는 능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 고교생들의 현실과 온라인 게임계의 상황을 면밀하게 꿰뚫고 있는 통찰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렇게 이야기로 빚어내는 능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한상운 작가의 재능. 이야기 전체의 짜임새도 아주 탄탄하다.
사건과 일이 겹쳐가며 차근차근 변화해 나가는 태식의 모습을 보는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에필로그와 같은 작품의 엔딩은 한상운 작가다운 위트와 캐릭터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묻어있어 정말 좋았다.
앞으로 태식의 삶은 어떤 식으로 변화할까? 이 리뷰의 서두에 인용한 문장, '화려한 세계' 의 주인인 중경과 정준의 앞에는 어떠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미스테리 소년 추격전] 이라는 시리즈 타이틀을 가지고 만나보게 되는 한상운 작가의 작품. 번외편까지 총 네 편으로 기획되었다는데, 나머지 권들이 엄청나게 기대된다!!!
고교시절은 누구에게나 인생을 좌우할만큼 큰 선택을 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폴룩스 엔터의 대표인 중경은 고교때는 전국 석차 100등안에 들 정도의 엘리트 부류였고, 인투더레인으로 게임 안에서 명성을 떨치는 정준은 고교시절부터 조폭 지망생이었고, 결국 고교를 중퇴하고 조폭이 된 인물이었다. 그들의 현재를 만든건 고교시절이라는 과거.
그리고 태식은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만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숱한 중고등학생들이 급우들의 폭력에 못이겨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한창 자아를 찾아나갈 시기, 그들의 삶은 폭력으로 멍들어가고 있다. 숱한 선택의 순간들을 인격적, 육체적 모독으로 물들여가고 있다.
어른들도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안달인데, 소년들의 스트레스는 누가,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일진'들은 동급생들을 괴롭히면서 풀어내고, 두배 세배의 스트레스를 받는 '셔틀' 은 결국 이 괴로움만 가득한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들이 적어놓은 유서들은 그들이 명백히 스스로 삶을 포기했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지 않는가.
누가 그들의 삶을, 숨쉬는 모든 순간이 괴로워지게 만들었는가?
'재미' 안에서 느껴지는 괴로움이 가슴 한켠을 짓누른다.
"때린 놈은 다리를 오그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거짓말이다.
때린 놈이 맞은 놈 얼굴도 기억 못하는데 무슨 소리냐.
평생 때려보기만 한 놈들이 만든 말이다.
맞은 놈만 평생 치욕에 떨며 괴로워할 뿐이다." P. 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