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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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먼저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완벽하게 나뉠만한 작품임을 전제하겠다.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

 

지금까지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은 정말 숱하게 있어왔다.

소설 뿐인가, 만화, 게임, 영화...

'킬러' 라는 소재는 이미 그 소재 자체로 하나의 컨텐츠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작가는 '킬러' 라는 소재를 꺼내든 순간, 그 모든 기존의 작품들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선전포고.

즉, 우리가 흔히 '클리셰' 라고 부르는 진정한 넘사벽과 진검승부를 하게 되는것이다.

이 승부의 향방은 딱 그거 한가지에서 갈린다. 넘사벽을 넘을수 있느냐, 없느냐.

'넘사벽' 이라는 신조어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이 벽을 넘으려면 최소한 '사차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을터다.

작가가 사차원을 넘는 역량이라면, 수많은 독자들은 이 작품에 '신선하다' 는 평을 쏟아낼 것이고, 삼차원정도에 머문다면 '진부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는 악플로 도배될 것이다.

 

 

'킬러' 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죄인의 목을 베는 망나니 같은 사람이나, 군인, 경찰같은 직업이 아니다.

'직업' 이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이득을 창출하는 것이잖은가?

말 그대로, 누군가를 죽여서 그 댓가를 받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킬러들이다.

 

"돈을 받지 않고 사람을 죽인 적이 있나?" 이발사가 물었다.

"아뇨, 한 번도. 지난밤에 몇 명 찌르긴 했는데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래생이 말했다.

"자네가 나에게 죽는 마지막 자객이겠군. 내가 돈을 받지 않고 죽이는 첫번째 자객이고."

p. 380

 

자, 위에 '이발사' 와 '래생' 의 대화를 보면 확연히 이해가 갈 터.

킬러란 그런 직업이다.

도덕, 윤리. 이딴거 다 무시하는 차가운 정산이 가능한 직업.

어떤 일을 되풀이하다보면, 그 일에 대한 감정들이 잦아들기 마련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인 '사랑' 도 때가 되면 잦아들듯이, 죄책감 또한 마찬가지일 터.

비록, 인간이 도덕, 윤리는 무시해도 죄책감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국 그것도 무뎌질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세상에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큰 병에 걸리거나, 사형선고를 받는 등, 어떤 식으로든 죽음이 임박했을때만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일 것이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죽음을 인식한다면, 그 공포때문에 삶 자체가 어려울 것 아닌가?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고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남을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함으로써,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욱 자주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갈 것이다.

 

목표물을 제거하듯, 자신도 반드시 제거당할 것임을, 그리고 그건 어느순간 벼락같이 찾아올 것임을 뚜렷이 인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하루하루를. 정말 '하루'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만족하는 삶을 과연 정말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래생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하루' 를 버리고, '내일' 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 두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번의 기회 모두를 저버렸다.

 

책장을 덮고 나서 래생이 두번이나 그 기회를 저버렸을까, 계속 고민했다.

왜? 왜, 대체 왜?

왜 래생은 시궁창 같았던 피로 얼룩진 과거를 버리지 못했을까?

완벽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한번은 평범하게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삶이었고, 마지막 한번은 그동안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의 복수를 할 만큼의 용기와 애정이 있었으나, 그는 내일을 기대할 용기가 없었다.

그의 삶속에서 '내일' 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은 오늘과 다를 것이고, 내일을 위해 '오늘' 이라는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나갈 힘이 없었다.

'내일' 이 기대만큼이 아니었다면, 내일 또 '오늘' 이라는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내어서 또 다시 '내일' 을 기대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래생의 삶 속에는 '희망' 이 없었다.

희망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희망이란 그렇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책을 덮은 뒤, 난 기꺼이 찬사와 호평을 날리는 쪽에 붙었다.

이 작품은 킬러가 등장하는 그 어떤 소설들과도 완전....완전....다르고 새롭다고는 못하겠지만, 정말 대단히 신선한 느낌임은 사실이다.

 

소문만 들은 '캐비닛' 은 남들이 칭찬하고 안달복달하면 나만은 쿨한척 무시하고 싶어지는 별 그지같고 생뚱맞은 기질때문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언수라는 작가가 왜 그토록 많은 작가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피비린내나는 낭만소설이다.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가 완벽하게 상이하지만, 그 조합이 신기할정도로 조화롭다.

마치,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 라는 영화에서 등장했던 감미로운 클래식이 배경음으로 깔렸던 처절한 총격씬을 처음 봤을때의 느낌이다.

그 부조화의 조화로움에 대한 경이, 경탄.

올리브 오일 파스타에 김치를 얹어먹었을때의 감탄과 비슷하달까?

 

책의 뒷장에 적혀있는 권여선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우아하면서 앙증맞고, 흥미진진 하면서 숭고하다. 모순적인 조합의 완벽한 조화이다.

게다가 그 글장난은 또 어떤가.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다가도, 툭툭 던져지는 글장난들은 한없이 키득거리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가.

한명 한명이 모두 개성적이고 사랑스럽기 짝이없다.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김언수 작가님.

성함이 비슷하신 김연수 작가님만큼 다작해 주시길.

조만간 캐비닛도 후딱 보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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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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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장편과 단편 중, 장편만 주구장창 읽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읽는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일수도 있고, 작가의 이야기속에 정신없이 매몰되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단편은. 말 그대로 감질났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5권 이하짜리 책은 쳐다도 안본 것 같다.

이문열 작가의 '변경' 을 통해 느꼈던 장편의 몰입감. 제발 이 책이 100권까지 이어졌더라면...하는 마음까지 갖게 했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도 마찬가지.

 

그러다가, 단편의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무려 고등학교 수능 모의고사 시간이었다.

언어영역, 국어 시험지에 알퐁스 도데의 '별' 이 지문으로 실려있었다. 황순원 의 '소나기' 도 일부, 그리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도 일부.

거기에 염상섭의 '삼대' 도 일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도 일부...

 

아마 시험지의 지문만큼 집중해서 읽는건 없으리라.

 

난 순식간에 이야기와 문장속으로 빠져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국어 교과서와 문학 교과서를 마치 소설책 읽듯이 줄줄 읽어내려갔고, 몇번을 읽었더랬다.

당연히, 언어영역 국어 시험도 엄청 잘봤다. ㅋㅋ

 

단편의 즐거움은, 압축과 합축, 생략과 여운에 있다.

짧기 때문에,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정서가 쭉 유지된다는 것도 강점이다.

그리고, 반전의 미학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철강산업의 아버지인 '철강왕' 카네기가 이런 말을 했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재능이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다.'

 

대학교 졸업반때,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28페이지짜리 단편만화를 그리기 위해 두통을 느낄 정도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A4 두매나 되었던 스토리를 압축해야 했다. A4 의 반정도까지 압축해야 만화로 28페이지가 나올 수 있었다.

두바닥을 꽉 채운 스토리를 반매로 압축하는 일은 정말 미친듯이 괴로웠다.

그렇게 간신히 반매로 압축했지만, 콘티를 짜보니 무려 36페이지가 나왔다.

8페이지를 더 줄여야 했다.

 

단편은 그렇게 절제와 함축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도출해낸다.

짧기때문에 등장인물은 적고, 장르는 다양하다.

평소에 안해본 시도를 해 볼 수도 있고, 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도 있다.

 

'카시오페아 공주' 는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작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해보고 싶었던 듯 하다.

표제이자 첫작품인 '카시오페아 공주' 는 미국 드라마처럼 조금 뻔하게 전개되지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해 주다가,

다음 작품 '섬집 아기' 에서는 엄청난 흡입력을 보여주는 호러물로 진을 빼놓는다. 정말 등골이 오싹하고 천장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소름끼친다.

그러다가 '레몬' 이라는 작품으로 조금은 통속적으로 느껴질수도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나오고,

'좋은 사람' 에서는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서스펜스 스릴러가 느껴진다.

그리고, '중독자의 키스' 는 가슴한켠이 따뜻해지는 정통 로맨스의 모습을 느껴볼 수도 있다.

 

일단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은, 상당히 시각적이고 스펙타클한 묘사에 강하다는 점이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해봤는데, 이래서 그의 작품중에 영화화 된 것이 많구나 - 싶을정도로 플롯이 단순하고 경쾌하면서도 박동감이 넘치고 묘사가 생생하다.

그렇기에 위에 간략하게 설명했던 각 작품들의 따뜻한 감성, 오싹한 소름끼침, 담담한 사랑이야기, 잔혹한 서스펜스 스릴러가 정말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치 영화를 보듯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단편들은 '짧다' 는 특성때문에 '이야기' 의 전달보다는 '감성' 과 '정서' 의 전달에 주력한다.

때문에, 플롯이 단순해지는 대신 문장들은 수많은 압축과 함축을 담게 되는데, 말 그대로 '한 줄' 도 버릴 것 없이 플롯에 단단하게 매여있다.

배경묘사와 동작묘사 같은 문장들에도 모두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고 짜여진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장르를 넘나들지만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들이 뭔가 동적인 느낌을 준다.

 

문득, 이 작가분이 당대 최고의 낮 라디오 프로그램인 '두시탈출 컬투쇼' 의 담당 PD라는게 떠올랐다.

물론 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최근 몇년간 최고의 청위율을 자랑하는게 지들이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정찬우씨와 김태균씨ㅋㅋ), 생동감 있는 대본에는 컬투쇼의 작가진과 이재익 담당PD가 한 몫 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박동감 넘치는 경쾌한 필치로 그려내는 판타지와, 호러, 따뜻한 사랑이야기와, 스펙타클한 스릴러.

골고루 느낄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도 같은 작품.

뭔가 신선한, 그리고 생생한 자극을 원하시는 분들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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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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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동화같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때로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보다 친모가 더 악독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백설공주처럼 관에 실려있는 시체에 키스를 하는 왕자따위는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이 세상에 그렇게 내가 내민 유리구두에 발이 딱 맞는 공주도 없을 뿐 아니라, 난 절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김경욱 작가의 이야기가 주는 매혹은 이미 익히 알고있었다.

어딘가 음울하고, 색으로 치자면 붉은기가 섞인 따뜻한 회색이 아닌, 푸른빛이 감도는 서늘한 회색에 가까운 잿빛을 담고 있는 이야기들.

약간 보랏빛이 감도는 듯도 하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소재들을 잡아채서 이야기를 빚어내는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탁월' 그 자체였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그 잿빛을 글속에 풀어낸다.

담담하기 이를데 없는 문장들은 내 마음을 잿빛으로 물들였다가, 이내 새벽같은 어두움속에 몰아넣는다.

 

'위험한 독서' 라는 제목을 가진 단편집에서 그는 사랑에 관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었다.

그의 단편들에는 언제나 회색빛 로맨스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표제작이었던 '위험한 독서' 에서도 연애감정을 언듯언듯 내비쳤었고,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에서는 결혼을 앞둔 여성의 심정을 아슬아슬하게 풀어내기도 했었다.

결국 이 작가도 장편은 사랑이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로맨스' 라는 카피를 떡하니 달고 책이 나왔다.

제목은 '동화처럼'. 역시나 어딘가 판타스틱한 소재를 잘 끄집어내는 작가답게 평범한 사랑이야기를 평범하게 풀어나가지는 않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초반부는 지나치게 통속적인 멜로물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아기자기 하지도, 가슴 설레지도, 예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지나치게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난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단편들이 떠올랐다.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가 떠올랐다.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와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도 떠올랐다.

그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미지와 뉘앙스와 미장센의 확장형에 불과한 듯 했다.

 

아마도, 작가는 이 한편을 통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삶과 사랑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고 싶었던 듯 하다.

위에 언급한 단편들이 조금은 난해하기도 했고, 압축, 축약된 장면들이 많았다고 한다면, 장편인 '동화처럼' 에서는 보다 넉넉하고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다.

 

프롤로그는 앞으로 여자주인공인 '백장미' 가 쓸 동화가 소개되고 있다.

눈물공주와 침묵왕자의 이야기.

처음엔 눈물공주의 시점에서, 그리고 다음 챕터에서는 동일한 사건을 침묵왕자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이처럼, 작품 또한 여자 주인공 백장미와 남자 주인공 김명제의 시점이 챕터마다 번갈아가며 사건이 전개되어 나간다.

 

 이렇게 통속적이고 지나치게 평범한듯한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 3부에 접어들면 180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차갑고, 회색이고, 담담하고, 무심하지만, 감각적이고 통찰력있는 글귀들이 비로소 '삶' 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가정.

그 가정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왔던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영원한 평행선.

 

그 평행선을 그제서야 명료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삶이란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직선이다.

'태어남' 이란 시작점에서, '죽음' 이라는 종결점까지 쭉 뻗어있는 직선이다. 시작점도 같고, 종결점도 같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직선을 가지고 있고, 그 위를 줄달음쳐 달려간다.

그 누구도 나의 직선 위에 올라설 수 없고, 나 또한 타인의 직선 위에 올라갈 수 없다.

내가 남의 탄생을 대신할 수 없고, 남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여기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있다.

이 두 남녀가 만난것은 우연이었지만, 자신들의 직선을 옆에 나란히 세우게 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연일지도 모르고.)

 

짜증날 정도로 담담하게 통속적인 로맨스였던 전반과는 달리, 후반부는 -하지만 역시 짜증날 정도로 - 특별한 성장기가 담겨있다.

너무 사무쳐서 결혼, 삶, 그런거 다 짜증나!! 싫어!!! 라고 소리치게 될 정도이다.

 

그래, 다 알고 있다. 삶이란 그다지 아름답지 않고, 사람들이란 그다지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거.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같이있으면 짜증나는거.

인간이란 그런 존재라는거. 싫증내고 귀찮아하고. 없으면 또 찾지만, 찾은 뒤엔 또 싫증내고 귀찮아하며 상처를 줄거라는거.

 

결국 그렇게 귀찮아하고 지겨워 할건데 꼭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할까?

어차피 같은 직선 위에서 뛸 수 있는것도 아닌데? 대체 왜?

왜 그렇게 서로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그렇게나 찾아대는가.

 

삶이란 그런것이다.

귀찮아 하고, 찾고.

싫증내고, 또 찾고.

상처내고, 치료해주고.

징그럽고 지겨워하고, 안고 쓰다듬고.

 

그리고, 살아있는 한.

함께 있는 한 그것이 행복이라는거.

 

단, 전제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드시 '깊고 솔직한 대화'를 끊임없이 할 것.

아무리 사소해 보이고, 마음에 거슬리고, 거리낌이 있더라도.

진심을 담은 대화.

 

결국 모든 갈등과 사건들은 침묵에서 시작되어, 오해로 끝난다.

그리고 모든 갈등과 사건들은 대화로 풀려진다. 

 

*덧:

꼭, 남녀가 -커플이든 아니든 - 함께 읽어봐야 할 책.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것일까.

좀 더 경험이 쌓이고, 나이라는 연륜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보다 보다 더 많은것이 이해될 책.

한번보다는 두번, 두번보다는 세번 읽을때 얻는게 많은 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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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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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래.

인간은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인간이 더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콘수' 라는 외계 종족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상상할수없을 정도의 과학력을 지니고 있던 콘수와의 조우를 통해 인간은 많은 과학기술을 얻어낼 수 있었고,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들은 개척할 행성들을 찾아내 개척민들을 장려하고, '우주 개척 연맹' 이라는 연맹을 결성해, 개척민들을 보호하는 군인들을 길러낸다.

은하계에는 너무나 많은 지성체들이 존재했고, 우주로 나올 수 있는 수준을 지닌 강력한 종족들도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외계 종족들은 '에네샤' '르레이' 그리고 '오빈' 이었다.

인류를 포함한 이 네 종족은 겉모습은 완전히 달랐지만 선호하는 행성의 환경은 비슷해서 자주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인류는 먼저 CDF라는 군인집단을 창조해냈다.

노인들의 의식을 '만들어진' 인체에 심어서 젊은 병사들로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빈 두뇌를 만들어 역시 '만들어진' 인체에 심은 특수부대원도 만들어냈다.

이들이 바로 '유령여단'. 이들이 유령여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죽은 자들의 시체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유전자를 다른 종족들과 섞고 섞어서 나온 무언가. 그 신체 안에 넣어진 지식이 만들어진 인간체.

 

'뇌도우미' 라는 기술을 활용한 이 기술은 텅 비어있는 인간의 뇌를 빠르게 채워주는 역할을 맡아, 1~2살에 불과한 인간의 두뇌를 빠르게 정보와 지식들로 채워넣는다. 그리고,인간보다 훨씬 강한 신체와 능력으로 무장된 특수부대는 인류의 우주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우주에 진출한 인류와 에네샤, 르레이, 오빈간의 치열한 음모와 처절한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SF나 판타지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창문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등장하곤 한다.

이들은 때론 인간과 대단히 흡사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인간' 인 이상 아무리 완벽하게 차별점을 지닌 종족을 탄생한다 해도, 그들에게는 언제나 '인간' 의 잣대로 매겨질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간단한 예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을것이다.

프로토스나 저그같은 종족들도 결국엔 '인간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창조물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언제나 인간이고, 그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선 창조물이 인간인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결국엔 '인간' 을 본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공상과학 작품들의 수많은 다른 종족들을 보면서 인간을, 인간의 사회를 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건에 직면했을때, 우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건 전체를 '조망'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 관점에서 공상과학소설은 인간, 나아가 인류 전체를 '조망'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종족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르레이라는 종족은 인간의 윤리와 종교성을 극대화 시킨 종족이다. 에네샤는 모계의 집단성을 극대화 시켰고, 오빈은 그 안에서 '의식' 을 결여시켰다.

 

이 작품에서 인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다른 종족들 뿐이 아니다.

바로 '유령여단' 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정체성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들이 사고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다.

지식이 처리되는 과정, 사고하는 과정, 통합과 우정에 대한 부분. 윤리와 도덕에 대한 부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과정까지, 상당히 흥미로운 이론과 논리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에서는 먼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영혼' 과 '의식'의 문제이다.

 

일단 영혼도 있고, 의식이라는 것도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영혼은 인간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영혼을 바탕으로 의식이 존재하고, 의식은 수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변화하고 성장한다.

영혼은 아직 구별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의식은 현재의 기술로도 볼 수 있다. 바로 '뇌파' 라는 것을 통해서이다.

 

이 작품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의식' 과 '경험' 이라고 전제한다.

 

참으로 단순하지만, 일견 논리적인 설정에 크게 반박할 구석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것이다.

내 유전자를 가지고 또다른 인간을 만들어서, 내 뇌를 통째로 그 새로운 인체에 옮겨 담는다.

단, 유전자로 또다른 인간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기술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그리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선택' 의 문제.

인간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가?

부모도 선택하지 못하고, 탄생과 죽음도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틀 안에서 선택이 가능하다.

 

이 문제는 종교적인 부분과도 연관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 라는 것을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유의지 라는게 잘 따지고 들어보면 제약이 엄청나게 많다.

그야말로 어떤 선택을 하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인 셈이다.

 

이 작품에도 내내 이 물음표가 떠다닌다.

 

사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묻는 공상과학 작품들은 굉장히 많았다.

로봇과 복제인간들을 통해 끊임없이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갖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인공 '재러드 디렉' 또한 그 전형이다. 

 

동양인들이 뿌리깊은 윤리관에 집착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을때, 북미나 유럽의 뛰어난 '몽상가' 들은 이런 작품들을 창조해낸다.

모든 장르문학 중 유독 SF에서 동서양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이 작품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서구의 '판타지' 장르는 동양에서는 '대하역사' 장르로 대비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인류가 과연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난 꽤나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외계인이 없다고 믿지는 않는다.

아무리 봐도 성경에 우주의 다른 종족들에 대한 구절은 전혀 없기때문이다.

우주의 다른 종족들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받아적인 모세가 당시의 과학수준으로는 도저히 그 말을 이해해서 풀어낼 능력이 없었을수도 있지 않은가??

외계에 다른 종족이 있다, 없다는 이미 인간의 범주로는 종교로도, 과학으로도 설명할 근거가 없다.

단지 추측만 할 뿐이잖은가?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를 떠나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달에 가고싶다' 는 상상력과 몽상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광활한 - 이라는 단어로는 너무나 부족한 - 우주.

난 영원히 몽상속에서만 가능하겠지만, 이런 훌륭한 공상과학 작품들을 통해 보다 농밀하고 리얼한 몽상이 가능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별 10000000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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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 월드 워 헐크 - 정식 한국어판 시공그래픽노블
그렉 박 외 지음,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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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의 작화 상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분명 실망할 것이 분명한 작화임을 알고 있었지만, 헐크와 마블의 세계관에서 이 작품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큰맘먹고 구입.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던 '헐크'의 이벤트 프로젝트였던 '플래닛 헐크' 의 후속편격이다.

'플래닛 헐크' 에서 헐크는 판타스틱4의 리즈 리처드와 실드의 새로운 수장인 아이언맨, 최고의 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저와 우주인인 볼트의 음모에 의해 지구에서 추방, 은하계 어딘가의 '사카아르' 라는 행성에 홀로 불시착하게 되었다.

헐크는 사카아르에서 우여곡절끝에 사악한 외계인의 압제에 시달리던 행성 원주민들을 구해내고 파괴자가 아닌 구원자로서 추앙받는다.

행성의 여왕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사카아르의 행성 원주민들을 친구로 사귀기도 했으나, 자신이 타고왔던 우주선이 대 폭발을 일으키며 행성은 삽시간에 황무지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구해냈던 행성의 원주민들과 사랑하는 행성의 여왕도 폭발에 휘말려 허망하게 죽고만다.

순식간에 모든걸 잃어버린 헐크는 자신을 그 우주선에 태워 보낸 지구의 슈퍼 히어로, 리즈 리처드와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지와 볼트를 처단할 것을 맹세한다.

(리뷰: http://blog.naver.com/fireflag/150074325130 )

 

 

월드 워 헐크는 바로 그 뒷 이야기이다.

행성 사카아르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몇몇 생존자들과 함께 지구로 날아온 헐크.

그의 분노를 막기 위해 지구의 슈퍼 히어로들이 총 출동하지만 분노가 정점에 달한 헐크는 그들을 한명한명 제압해 나가며 최후로 치닫는다.

 

 

 

지금까지 봤던 마블 코믹스의 작품들 중 가장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박진감 넘치는 이슈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헐크 시리즈 특유의 큼직큼직하고 시원시원한 액션들도 단연 돋보인다.

확실히 '헐크' 시리즈는 마블의 다른 이슈들에 비해 단순한 플롯에 많은 액션들이 호탕하게 짜여져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헐크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자체가 복잡하고 촘촘한 음모와 관계들로 맺어져 있는 에피소드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플래닛 헐크' 를 통해 영웅서사시를 풀어냈던 그렉박은 이번에도 호쾌하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복수, 절망, 상실, 우정 거기에 반전까지 아주 적당하게 재미있는 요소들이 잘 조합된 맛깔스러운 헐크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헐크가 강력한 슈퍼 히어로들을 박살내는 모습들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토너먼트식 대전을 연상케 하고, 감정과 오해들이 맞물려 일으키는 갈등으로 인한 거대한 대립은 무협지를 연상케도 한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히어로인 아이언맨이나 판타스틱 포를 악당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서, 헐크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들에 통쾌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에 비해 작화가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거의 무료배포용 코믹스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상당히 많이 아쉽다.

차라리 이 작품이 아주 예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만 하지만, 내가 알기로 이 작품은 미국에서도 2007년인가 2008년에 출간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적 최신작인데 이정도 수준이라 너무 아쉽다.

플래닛 헐크의 카를로와 아론이 이 작품까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다.

그림만 놓고 본다면 원화도, 컬러링도 모두 수준 이하라 솔직히 돈이 좀 아까웠다.

 그래서 별 두개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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