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래.

인간은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인간이 더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콘수' 라는 외계 종족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상상할수없을 정도의 과학력을 지니고 있던 콘수와의 조우를 통해 인간은 많은 과학기술을 얻어낼 수 있었고,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들은 개척할 행성들을 찾아내 개척민들을 장려하고, '우주 개척 연맹' 이라는 연맹을 결성해, 개척민들을 보호하는 군인들을 길러낸다.

은하계에는 너무나 많은 지성체들이 존재했고, 우주로 나올 수 있는 수준을 지닌 강력한 종족들도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외계 종족들은 '에네샤' '르레이' 그리고 '오빈' 이었다.

인류를 포함한 이 네 종족은 겉모습은 완전히 달랐지만 선호하는 행성의 환경은 비슷해서 자주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인류는 먼저 CDF라는 군인집단을 창조해냈다.

노인들의 의식을 '만들어진' 인체에 심어서 젊은 병사들로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빈 두뇌를 만들어 역시 '만들어진' 인체에 심은 특수부대원도 만들어냈다.

이들이 바로 '유령여단'. 이들이 유령여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죽은 자들의 시체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유전자를 다른 종족들과 섞고 섞어서 나온 무언가. 그 신체 안에 넣어진 지식이 만들어진 인간체.

 

'뇌도우미' 라는 기술을 활용한 이 기술은 텅 비어있는 인간의 뇌를 빠르게 채워주는 역할을 맡아, 1~2살에 불과한 인간의 두뇌를 빠르게 정보와 지식들로 채워넣는다. 그리고,인간보다 훨씬 강한 신체와 능력으로 무장된 특수부대는 인류의 우주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우주에 진출한 인류와 에네샤, 르레이, 오빈간의 치열한 음모와 처절한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SF나 판타지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창문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등장하곤 한다.

이들은 때론 인간과 대단히 흡사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인간' 인 이상 아무리 완벽하게 차별점을 지닌 종족을 탄생한다 해도, 그들에게는 언제나 '인간' 의 잣대로 매겨질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간단한 예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을것이다.

프로토스나 저그같은 종족들도 결국엔 '인간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창조물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언제나 인간이고, 그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선 창조물이 인간인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결국엔 '인간' 을 본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공상과학 작품들의 수많은 다른 종족들을 보면서 인간을, 인간의 사회를 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건에 직면했을때, 우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건 전체를 '조망'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 관점에서 공상과학소설은 인간, 나아가 인류 전체를 '조망'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종족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르레이라는 종족은 인간의 윤리와 종교성을 극대화 시킨 종족이다. 에네샤는 모계의 집단성을 극대화 시켰고, 오빈은 그 안에서 '의식' 을 결여시켰다.

 

이 작품에서 인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다른 종족들 뿐이 아니다.

바로 '유령여단' 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정체성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들이 사고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다.

지식이 처리되는 과정, 사고하는 과정, 통합과 우정에 대한 부분. 윤리와 도덕에 대한 부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과정까지, 상당히 흥미로운 이론과 논리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에서는 먼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영혼' 과 '의식'의 문제이다.

 

일단 영혼도 있고, 의식이라는 것도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영혼은 인간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영혼을 바탕으로 의식이 존재하고, 의식은 수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변화하고 성장한다.

영혼은 아직 구별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의식은 현재의 기술로도 볼 수 있다. 바로 '뇌파' 라는 것을 통해서이다.

 

이 작품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의식' 과 '경험' 이라고 전제한다.

 

참으로 단순하지만, 일견 논리적인 설정에 크게 반박할 구석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것이다.

내 유전자를 가지고 또다른 인간을 만들어서, 내 뇌를 통째로 그 새로운 인체에 옮겨 담는다.

단, 유전자로 또다른 인간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기술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그리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선택' 의 문제.

인간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가?

부모도 선택하지 못하고, 탄생과 죽음도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틀 안에서 선택이 가능하다.

 

이 문제는 종교적인 부분과도 연관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 라는 것을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유의지 라는게 잘 따지고 들어보면 제약이 엄청나게 많다.

그야말로 어떤 선택을 하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인 셈이다.

 

이 작품에도 내내 이 물음표가 떠다닌다.

 

사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묻는 공상과학 작품들은 굉장히 많았다.

로봇과 복제인간들을 통해 끊임없이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갖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인공 '재러드 디렉' 또한 그 전형이다. 

 

동양인들이 뿌리깊은 윤리관에 집착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을때, 북미나 유럽의 뛰어난 '몽상가' 들은 이런 작품들을 창조해낸다.

모든 장르문학 중 유독 SF에서 동서양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이 작품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서구의 '판타지' 장르는 동양에서는 '대하역사' 장르로 대비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인류가 과연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난 꽤나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외계인이 없다고 믿지는 않는다.

아무리 봐도 성경에 우주의 다른 종족들에 대한 구절은 전혀 없기때문이다.

우주의 다른 종족들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받아적인 모세가 당시의 과학수준으로는 도저히 그 말을 이해해서 풀어낼 능력이 없었을수도 있지 않은가??

외계에 다른 종족이 있다, 없다는 이미 인간의 범주로는 종교로도, 과학으로도 설명할 근거가 없다.

단지 추측만 할 뿐이잖은가?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를 떠나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달에 가고싶다' 는 상상력과 몽상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광활한 - 이라는 단어로는 너무나 부족한 - 우주.

난 영원히 몽상속에서만 가능하겠지만, 이런 훌륭한 공상과학 작품들을 통해 보다 농밀하고 리얼한 몽상이 가능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별 10000000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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