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자, 먼저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완벽하게 나뉠만한 작품임을 전제하겠다.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

 

지금까지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은 정말 숱하게 있어왔다.

소설 뿐인가, 만화, 게임, 영화...

'킬러' 라는 소재는 이미 그 소재 자체로 하나의 컨텐츠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작가는 '킬러' 라는 소재를 꺼내든 순간, 그 모든 기존의 작품들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선전포고.

즉, 우리가 흔히 '클리셰' 라고 부르는 진정한 넘사벽과 진검승부를 하게 되는것이다.

이 승부의 향방은 딱 그거 한가지에서 갈린다. 넘사벽을 넘을수 있느냐, 없느냐.

'넘사벽' 이라는 신조어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이 벽을 넘으려면 최소한 '사차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을터다.

작가가 사차원을 넘는 역량이라면, 수많은 독자들은 이 작품에 '신선하다' 는 평을 쏟아낼 것이고, 삼차원정도에 머문다면 '진부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는 악플로 도배될 것이다.

 

 

'킬러' 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죄인의 목을 베는 망나니 같은 사람이나, 군인, 경찰같은 직업이 아니다.

'직업' 이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이득을 창출하는 것이잖은가?

말 그대로, 누군가를 죽여서 그 댓가를 받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킬러들이다.

 

"돈을 받지 않고 사람을 죽인 적이 있나?" 이발사가 물었다.

"아뇨, 한 번도. 지난밤에 몇 명 찌르긴 했는데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래생이 말했다.

"자네가 나에게 죽는 마지막 자객이겠군. 내가 돈을 받지 않고 죽이는 첫번째 자객이고."

p. 380

 

자, 위에 '이발사' 와 '래생' 의 대화를 보면 확연히 이해가 갈 터.

킬러란 그런 직업이다.

도덕, 윤리. 이딴거 다 무시하는 차가운 정산이 가능한 직업.

어떤 일을 되풀이하다보면, 그 일에 대한 감정들이 잦아들기 마련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인 '사랑' 도 때가 되면 잦아들듯이, 죄책감 또한 마찬가지일 터.

비록, 인간이 도덕, 윤리는 무시해도 죄책감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국 그것도 무뎌질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세상에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큰 병에 걸리거나, 사형선고를 받는 등, 어떤 식으로든 죽음이 임박했을때만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일 것이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죽음을 인식한다면, 그 공포때문에 삶 자체가 어려울 것 아닌가?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고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남을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함으로써,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욱 자주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갈 것이다.

 

목표물을 제거하듯, 자신도 반드시 제거당할 것임을, 그리고 그건 어느순간 벼락같이 찾아올 것임을 뚜렷이 인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하루하루를. 정말 '하루'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만족하는 삶을 과연 정말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래생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하루' 를 버리고, '내일' 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 두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번의 기회 모두를 저버렸다.

 

책장을 덮고 나서 래생이 두번이나 그 기회를 저버렸을까, 계속 고민했다.

왜? 왜, 대체 왜?

왜 래생은 시궁창 같았던 피로 얼룩진 과거를 버리지 못했을까?

완벽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한번은 평범하게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삶이었고, 마지막 한번은 그동안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의 복수를 할 만큼의 용기와 애정이 있었으나, 그는 내일을 기대할 용기가 없었다.

그의 삶속에서 '내일' 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은 오늘과 다를 것이고, 내일을 위해 '오늘' 이라는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나갈 힘이 없었다.

'내일' 이 기대만큼이 아니었다면, 내일 또 '오늘' 이라는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내어서 또 다시 '내일' 을 기대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래생의 삶 속에는 '희망' 이 없었다.

희망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희망이란 그렇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책을 덮은 뒤, 난 기꺼이 찬사와 호평을 날리는 쪽에 붙었다.

이 작품은 킬러가 등장하는 그 어떤 소설들과도 완전....완전....다르고 새롭다고는 못하겠지만, 정말 대단히 신선한 느낌임은 사실이다.

 

소문만 들은 '캐비닛' 은 남들이 칭찬하고 안달복달하면 나만은 쿨한척 무시하고 싶어지는 별 그지같고 생뚱맞은 기질때문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언수라는 작가가 왜 그토록 많은 작가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피비린내나는 낭만소설이다.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가 완벽하게 상이하지만, 그 조합이 신기할정도로 조화롭다.

마치,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 라는 영화에서 등장했던 감미로운 클래식이 배경음으로 깔렸던 처절한 총격씬을 처음 봤을때의 느낌이다.

그 부조화의 조화로움에 대한 경이, 경탄.

올리브 오일 파스타에 김치를 얹어먹었을때의 감탄과 비슷하달까?

 

책의 뒷장에 적혀있는 권여선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우아하면서 앙증맞고, 흥미진진 하면서 숭고하다. 모순적인 조합의 완벽한 조화이다.

게다가 그 글장난은 또 어떤가.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다가도, 툭툭 던져지는 글장난들은 한없이 키득거리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가.

한명 한명이 모두 개성적이고 사랑스럽기 짝이없다.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김언수 작가님.

성함이 비슷하신 김연수 작가님만큼 다작해 주시길.

조만간 캐비닛도 후딱 보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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