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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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당신은 이런 게임은 아는가.

우선 트럼프 카드를 준비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여덟명이면 여덟장.

그 안에 스페이드 잭과 조커를 섞어둔다. 그 여덟장의 카드를 뒤집어놓고 한 사람이 한장씩 골라 갖는다.

스페이드 잭을 찾은 사람은 '탐정' 이고, 조커를 뽑은 사람은 '범인' 이다.

카드를 뽑은 여덟명의 사람중 탐정만, 자기가 탐정이라고 밝힌다. '범인' 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도 카드를 한 장 뽑는다. 당신은 탐정도 범인도 아닐 것이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다.

 

이제 여덟명은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는 위치에 각자가 대화를 나눌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앉는다.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로, 그러면서도 약간은 서먹한 위치에. 이제 다 같이 아무 내용의 잡담을 시작한다.

무슨 내용의 이야기건 상관없다. 단, 이야기를 나눌때는 상대방의 얼굴은 빤히 보고 있어야 하며, 각자가 번갈아가며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여덟명은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그때까지 번갈아 가며 웃는 얼굴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 하나가 꿈뻑 하고 크게 눈짓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 인물이 바로 '범인' 이고, 이 순간 당신은 그 인물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당신은 천천히 마음속으로 다섯을 세고 나서 갑자기 "죽었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은 일단 중단된다.

탐정은 참가자를 빙 둘러보고 범인을 맞춰야 한다. 만약 한번에 맞추지 못하면 게임은 재개된다.

다시 여덟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범인이 탐정에 의해 발견되고 잡힐 때까지 이 게임은 계속된다.

 

주인공들의 학교의 어떤 '행사' 는 바로 이 게임과 흡사하다.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행사는 3년에 한번 씩 어김없이 이루어진다.

 

이 학교의 행사에서 방금 소개한 게임의 '범인' 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요코' 라고 불렀다.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 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한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한다.]

 

 

책을 펴자마자 시작되는 '프롤로그' 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전통적인 행사.

그 행사에 연관된 4쌍의 남녀학생들. 그리고, 벌어지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너무나 평범한것을 미스테리어스하게 만드는 일본의 추리소설작가인 온다리쿠의 데뷔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학교.

문득 나도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고교입시제도는 일본강점기의 영향인지, 일본과 완전히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다.

단,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체육활동과 동아리활동을 훨~~~씬 권장한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입시를 위해 3년동안 수학, 국어, 한문, 물리, 화학따위를 주입식으로 배운다는 점은 상통한다.

즉, 학창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 우리나라 학생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964년생인 온다리쿠가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94년.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녀 역시 주입식 교육에 대한 폐해를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미스테리라는 틀을 둘러싸고 있지만, 주입식 교육에 몰입된 일본의 고교정책을 통째로 비판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그 정책 안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무의미하게 학창생활을 '낭비' 하고있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꾸지람 같기도 하다.

 

온다리쿠가 '노스텔지어의 마법사' 라고 불리우는 이유들 중 하나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언제나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그 당시의 추억들을 되짚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이 작가가 풀어내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스테리와 어우러지며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것이다.

 

지난 온다리쿠의 작품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기억이란 언제나 잊혀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과거란 언제나 미스테리함으로 가득 차있을 수밖에 없다.

 

어렸을때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가 나를 좋아했는지, 아니었는지부터도 굉장히 미스테리하지 않은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을 찾아 그 여자아이가 나를 좋아했다는 단서를 찾아나가기 시작해보면 뭔가 엄청 새로운 것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선생님들이야기라던지, 부모님들의 이야기라던지 말이다.

아마 완전히 동문서답을 들을 수도있고, 그것을 통해 또다른 미스테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런 부분들을 통찰해 여전히 짜릿할정도로 레알 '돋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온다리쿠의 재능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은 '유지니아' 처럼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뒷머리가 쭈뼛거릴정도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온다리쿠의 초기시절 스토리 텔링을 만끽할 수 있다. 독자들의 호흡을 빼앗고 감정을 쥐었다 폈다하던 기술은 이미 데뷔시절부터 상당히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문득, 그녀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고교생 주인공들을 모아 한 곳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녀도 마치 그런 상상을 했듯, 최근 '도미노' 라는 작품을 내기도 했다.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들과 등골이 오싹한 '분위기 겁주기' 의 화려한 향연.

온다리쿠의 세계로 입문하신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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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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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대의 주류 작가들은 바로 전 세대의 작가들과 굉장히 많이 다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융합과 해체, 작가주의와 대중주의, 풍요와 빈곤, 격동과 안정을 두루 경험해서 일까.

그들의 작품들은 사상적으로나 뭘로나 지나치게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쪽에서는 이쪽의 시각을, 저쪽에서는 저쪽의 시각을 절묘하게 잡아챈다.

 

그런 절묘한 균형감각을 가진 작가로 손꼽을 수 있는 이 세대의 기수라고 한다면, 단연 김연수 작가를 꼽을 수 있다.

한국 작가치고 상당히 다작하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세계는 깊고 디테일하면서도, 절묘하게 이쪽, 저쪽의 시각들을 잡아낸다.

 

북한의 공산주의화 과정에 대한 일단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밤은 노래한다' 를 살펴보면 그의 균형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당히 민감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정치적, 역사적 균형감각을 절묘하게 유지하며 물 흐르듯 흘러나가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작가주의와, 그 와중에도 '재미' 를 듬뿍듬뿍 담아 독자들을 배려한 대중주의의 절묘한 균형감도 대단하다.

 

마치 한편의 추상화를 연상케 했던 김연수 작가의 초기 단편들이나 '꾿빠이 이상' 같은 장편을 보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이 탁월한 균형감각은 나이를 먹고 경험과 사색을 통해 획득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무심한 척하지만 시대상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돋보이는 김중혁 작가도 있다.

김중혁 작가는 김연수 작가에 비해 정말 소작(?ㅋㅋ)하는 작가이다.

지금까지 나온 책은 '펭귄뉴스' 와 '악기들의 도서관'  요 단편집 두 권이 다다. 아마 여러 문집등에 단편들을 중심으로 기고하셨겠지만, 그의 톡톡튀는 단편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김중혁 작가의 단편들은 무척이나 소소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디테일과 캐릭터들이 생동감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펭귄뉴스' 의 경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스토리 텔링의 재능과 시대상을 가감없이 담아내는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독특한 건, 그의 단편들엔 '사랑' 이야기. 특히 '로맨스' 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소재가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그토록 재미있을 수 있을까?? 

 

 

 

난 사실 김연수와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관계를 잘 몰랐다.

애초에 엣세이류를 거의 좋아하지 않아서, 김연수 작가나 김중혁 작가의 엣세이 형식의 기고들을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너무나 다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 두 작가가 국딩시절부터 알고지냈던 절친이라는 사실에 그야말로 깜놀!!!

게다가, 이 작품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듯, 영화에 대한 엣세이를 릴레이처럼 이어간 작품집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깜놀!!!

 

내가 엣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소설 원작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랑 비슷할 것이다.

소설을 통해 상상하는 작가를, 엣세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큰 도박이기때문이다.

김연수 작가의 경우는 왠지 아웃사이더적이면서도 반항적이고,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김중혁 작가의 경우는 의외로 진중하면서,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끽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허나 이게 왠일.

 

엣세이를 주고받는 이 둘의 모습은 그냥 '애들' 이었다. ㅋㅋㅋㅋ

안되, 이건 뭐야!!

김연수 작가는 [밤은 노래한다] 의 김해연의 모습이어야 했다. 이름도 비슷하잖아. 아니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에서 강시우를 바라보고, 정민을 바라보던 '나' 여야 했다.

김중혁 작가는........................

그래, 솔직히 김중혁 작가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거의 비슷했다..ㅋㅋㅋㅋㅋ

엉뚱한 것들을 발명해내는 이눅씨처럼, 그는 엉뚱하지만 따뜻한 사람. 그러면서 로맨스와는 꽤나 거리가 있는..ㅋㅋ

 

김연수 작가와 김중혁 작가는 정말 절친의 모습 그대로, 서로를 흉보고 말꼬리를 잡고 말장난을 치면서 영화에 얽힌 각자의 추억들을 풀어낸다.

 

아, 이런 영화 리뷰도 있구나 싶었다.

솔직히 리뷰라기 보다는 그냥 영화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결국 소설이란 것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영화라는 것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닥 신통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두 작가의 재미난 이야기.

 

생각없이 빠져들면, 대책없는 해피엔딩이다.

 

문득, 김중혁이라는 친구가 있는 김연수 작가와 김연수라는 친구가 있는 김중혁 작가가 쬐끔. 아주 손톱만큼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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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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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밀실 살인이나 복잡한 트릭이 얽혀있는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고, 주변에 몇가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미스테리로 가득하다.

신의 존재, 우주와 지구의 기원, 공룡의 멸망, 생명의 기원, 삶의 의미...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외국에 다녀온 친구가 사온 유명 브랜드의 초컬릿!!

혼자 먹으려고 몰래 서랍 깊숙히 숨겨 놓았는데, 다음날 학교 다녀와서 보니 서랍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텅 비어 있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초컬릿의 향기만이 그 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 가족들은 모두 모른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애초에 나 혼자 몰래 먹으려고 가족들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기에, 전혀 몰랐을 것이다.

다음날, 빈 초컬릿 상자가 집에서 좀 떨어진 다른 주택의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들어있었다!!!

상자를 뜯기위해 가장 처음 칼질을 했던 바로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 초컬릿 박스는 내것이 분명하다.

과연,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내 서랍 깊숙히 숨겨져 있던 초컬릿!! 이게 어떻게 하루만에 빈 상자로 우리집도 아닌, 다른 집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들어있단 말인가?!!!

 

너무 미스테리 하지 않은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존재이다.

그리고, 미스테리-추리물은 그런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을 이용하는 문학 장르이다.

고전적인 미스테리-추리물은 독자와 작가와의 치열한 두뇌싸움이다.

작가는 사건을 터뜨리고, 군데군데 힌트들을 흩뜨려 놓는다.

그리고, 주인공을 등장시켜, 독자들을 게임 속으로 초대한다.

독자들이 쉽게 범인이나 트릭을 알아채면, 그 작품은 기본적으로 좋은 평을 얻어내지 못한다.

최대한 복잡하고, 독자들의 뒷통수를 후려칠만한 반전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을 이용해 독자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그런 와중에도 이야기의 처음 - 중간 - 끝의 개연성을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와 독자에 대한 속임수는 완벽한 별개가 되어야 하고, 독자들은 주인공을 따라 가면서도, 등장 인물과 주변 상황들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복선과 힌트를 흘리지만, 독자들은 이것들이 어떤 결말을 위한 장치인지 쉽게 알아채지 못해야 한다.

뭔가 있긴 있는데? 과연 뭘까??

명민한 작가들은 이 복선이나 힌트 마저도 독자를 홀리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이야기 전체의 논리적 개연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애드거 앨런 포우, 아서 코난 도일, 모리스 르 블랑 등이 이러한 미스테리-추리물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면, 애거서 크리스티, 시드니 셀던 등이 꾸준히 발전시켜 현대적인 감각의 미스테리- 추리물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시대의 미스테리-추리물들은 사실상 이런 전통적인 틀을 깨기 위한 도전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수많은 현대의 추리작가들은 전통적인 기법을 보다 디테일하고 정묘하게 계승. 발전시키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애쓰는 한편, 그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장르작가들 중에 꼽으라면, 전자는 히가시노 게이고, 후자는 온다 리쿠를 들 수 있을것이다.

 

전기공학도 - 의학기기 회사원에서 일약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계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트릭에 트릭을 덧붙이는 전통적인 기법에 인물간의 치밀한 관계,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범인이 등장하고, 그를 뒤쫓는 사람이 등장하며, 범죄를 위한 트릭이 존재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틀이라면 틀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온다 리쿠는 추리 작가라는 수식어보다는 '노스텔지어의 마법사' 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한 여류 작가이다.

그녀는 현대, 과거, 판타지를 가리지 않고 엔터테인먼트라는 큰 틀안에서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래도 역시 지금의 그 위치까지 오게 한 장르는 미스테리 - 추리 장르일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위에 언급한 범인, 그를 뒤쫓는 사람, 트릭. 이런것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테이블, 다과, 대화, 회상은 아주 자주 등장한다.

온다 리쿠의 작품세계는 히가시노 게이고에 비해 무척 정적이고 조용하다.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사건들이 뻥뻥 벌어지고,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로 우루루 뛰어다니기 보다는,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용히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은 주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고, 과거는 필연적으로 등장인물들간의 인연이 얽혀있다.

정말 세상 모든 일들이 '미스테리' 함을 느끼게 해주는 소재들로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온다 리쿠의 '목요조곡' 또한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4년전에 급작스럽게 자택에서 자살한 여류 작가 도키코.

그리고 도키코가 죽던 날, 도키코의 자택에 모여있던 다섯명의 여류 문인들.

그녀들이 2박3일로 도키코를 추모하기 위해 그녀가 살던 저택에 모인다.

도키코를 위한 추모 모임은 올해로 4년째. 그녀가 죽었던 그 해부터 시작되었고, 올해도 목요일을 사이에 끼고, 수-목-금. 이렇게 추모 모임이 시작된다.

목요일이 사이에 낀 이 애매한 평일 날짜에 모이게 된 이유는, 도키코가 생전에 목요일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노는 모임인 이 자리엔 생전에 도키코의 전담 편집인이었던 에이코와 논픽션 작가인 에리코, 도키코의 이복동생이자 예술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문화 비평가 시즈코, 떠오르는 신예 작가인 도키코와 혈연 관계가 있는 나오미와 츠카사.

 

그리고, 여기에 메모가 들어있는 꽃다발 하나가 배달된다.

다섯명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개봉한 메모에는 뜻밖에도,

"여러분의 죄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 이 장소에 죽은 이를 위한 꽃을 바칩니다"

라는 섬뜩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과연 이 다섯명은 도키코가 죽은 날, 그녀의 자택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 그 다섯명 중 도키코를 죽인 사람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섯명 모두가??

 

다섯명의 여인들은 한명씩 4년 전, 그 날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풀어져 나갈때마다, '그날' 의 비밀은 하나씩 공개되고, 생각치도 못한 결말이 다섯명의 여인들과 독자들을 기다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남녀가 사이좋게 분배되어 있던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도 특이할 정도로 여자들만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온다 리쿠 이거나, 그녀의 주변인물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더 즐겁기도 하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작가' 라는 직업과 '작품' 이라는 것에 대한 사상은 분명 그녀 자신의 것일 터.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그녀 자신의 세계관을 모두 드러낸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 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온다리쿠의 작품은 언제나 너무 '평범한 듯' 해서 매력적이다.

이 세상은 모두 미스테리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이 엄청난 '글감' 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작품은 '관계' 와 '죄의식' 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 안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여인들. 여기에 도키코까지 포함해서 여섯명의 여인들은 혈연과 사업으로 끈끈하게 얽혀있었다.

도키코를 중심으로 여성 특유의 감성과, 작가 특유의 상상력, 그리고 예술가 특유의 괴팍함까지 뒤엉켜 애증의 끈이 이중 삼중으로 얽히고 설켜있었다.

문득,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고, 자살한 수많은 유명인들이 떠올랐다.

미스테리-스릴러가 사람의 죽음을 전제로 시작된다면, 자살만큼 미스테리한 일은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삶은 살아있음을 전제로 펼쳐진다.

죽음은 삶의 끝일 뿐.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무無가 되는 것일 뿐이다.

사후가 어쨌건, 윤회가 어쨌건, 지구라는 세상 위에서 '나' 라는 인생은 완벽하게 종결되는 것이다.

내 육체, 육체를 통한 감각, 감각을 통한 경험, 경험을 통한 기억, 추억, 그것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

나 자신도 무無가 되지만, 나를 둘러싼 타인들에게도 '나' 라는 존재는 무無가 된다.

자신의 모든것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부정하는 행위인 '자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본능은 생존본능이다.

그런 기반을 뒤 흔드는 엄청난 사건이 과연 무엇을 통해서 일어날까??

 

 

 

이 작품은 작가들이 주인공이어서인지, 지금까지 온다리쿠의 작품들 중 내러티브가 가장 풍부하고, 디테일도 가장 뛰어나다.

실제로 이 작품속의 작가들이 살아 숨쉬고 있을것만 같다.

문득,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작품에서, 작품 속에 소재로 등장했던 책들이 각각의 제목을 달고 실제로 이 세상에 출간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가 흔히 '삼월 연작' 이라고 부르는 그것들이다.

('황혼녘 백합의 뼈',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흑과 다의 환상'은 모두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단편집에 등장하는 소재이자, 챕터의 제목이기도 하다. 후에 모두 각각의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다.)

이 작품 안에도 '삼월' 때처럼 몇권의 책들이 등장인물들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다.

작품 안의 등장인물들이 써낼 책들인데, 팬의 입장으로서 '목요조곡 연작' 을 기대하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터다.

 

작가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도 한다.

작품 안에서 온다리쿠는 '망상' 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고도 한다.

인간에게 가장 큰 능력이 있다면, 바로 상상일 것이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기도 하고, 거대한 궁전의 주인이 되어 아리따운 미녀들을 사방에 끼고 자기만의 하렘을 만들기도 한다.

확실한 건 현실은 현실, 상상은 상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상상도 거대한 심연과 같다.

이 거대한 심연속에 사로잡힌다면, 현실은 물론 삶 조차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좋으니, 나 역시 작가를 꿈꾼다. 여전히, 그리고, 아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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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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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가야의 왕이었던 김수로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한창 방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들 중에서 가야시대는 삼한시대나 고조선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역사시대이다.

그 시대에 대한 기록은 중국 역사서에 기재되어 있는 부분적인 기록이나,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간략하게 존재의 유무 정도이다.

김수로가 왜 김씨인지, 이름은 왜 수로인지, 알에서 태어났다는 건 뭔소린지, 그 부인이 정말 인도사람인지, 그 부인이 정말 바다에서 떠내려 왔는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야에 거대한 세력을 일으켰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부족국가였던 가야에 연합체를 구성하는 구심점으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즉, 그의 삶 대부분은 상상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를 제압하고 강력한 세력을 이끌었으며, 주변에 신라, 백제 그리고 동해를 넘어 왜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던 부족국가.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무리 위대한 선구자라 해도, 그 시대 사람들이 현대인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을리는 만무하다.

그들의 삶과 사랑, 발상과 행동 등 모든 것은 그 시대상에 맞게 재해석해봐야 할 것이다.

김수로가 천민이었을 수도 있고, 왕족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신라나 백제계 인물이었을 수도 있고, 고구려의 후손일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당시의 유물이나 유적, 단편적인 기록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

 

버나드 콘웰의 '윈터킹' 을 보면서 김수로를 생각했다.

고대 브리튼은 우리의 가야처럼 많은 것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역사이다.

아서왕 이야기는 우리의 단군 신화처럼 '신화'로 규정되어 있으며 로마 강점기에 대부분이 윤색, 창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아서' 라는 이름이 실제 브리튼의 단편적인 기록에서는 명확히 등장하지 않으며 '멀린' 은 거의 '환웅' 수준이다.

아서가 세운 왕국이라는 '아발론' 역시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의 성이었다는 '캐멀롯' 역시 그러하다.

실제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 확률이 미미하며, 아서왕이 찾아나섰다는 성배신화 역시 그 역사적인 시간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

 

버나드 콘웰은 이런 모든 역사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서를 새롭게 재조명했다.

드라마 '김수로' 가 천민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닥부터 왕까지 바득바득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듯, 소설 '윈터킹' 의 아서 역시 왕이라기 보다 일군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군벌(Warlord)로 묘사된다. 자신의 땅도 없이 그저 자신을 따르는 일군의 무리가 있는 군벌.

그는 브리튼의 왕 '유서'에게 인정받지 못한 서출로, 그에게 명령받은대로 한 지역을 지키는 군인에 불과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점은 바로 아서의 마인드이다.

아서는 완벽하게 당시의 군인들이 가지고 있었을만한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버나드 콘웰은 그런 그의 마인드를 너무나 디테일하고 설득력있게 잘 표현했다.

내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말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아서가 실제로 그 시대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은 생생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다.

많은 역사소설들이 간과하는 부분은 바로 이 '마인드' 즉,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다.

셰익스피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버나드 콘웰의 세계관은 같을 수가 없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로미오와 버나드 콘웰이 그리는 로미오는 그 성격과 마인드, 행동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원작소설 '로미오와 줄리엣' 과 1996년에 발표되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이 재탄생 시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김연수나 김영하 작가 같은 분들이 그려내는 이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 은 또 완전히 다를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인물을 창조해 내는 데 있어, 자신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그 시대의 세계관을 등장인물에게 완벽하게 이입시킬 수 있어야만 완벽하게 설득력 있는 역사소설을 창조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선덕여왕' 과 펄 벅 여사의 소설 '서태후' 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덕만' 은 지나치게 현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아무리 그 시대가 남녀가 지금보다 평등했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성에게 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서 살았던 덕만 역시 어느정도 그런 세계관 속에서 영향을 받았을터다.

하지만, 덕만은 현대적인 세계관에서도 특히 진취적이고 능동적인데, 과연 그것이 당시 시대상의 디테일을 반영한 캐릭터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펄벅여사의 서태후는 완벽하게 그 시대의 여성상을 보여준다. 암투가 난무하는 궁정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태후' 로서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은 당시의 시대상에서 봐도 무리가 없으며, 현대인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시 시대의 세계관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려 시대 서경 천도운동을 주도했던 '묘청' 과 관련이 있는 '정지상' 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역사소설 '국풍1135' 같은 작품은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정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 아닐까 싶다.

 

버나드 콘웰의 '윈터킹' 역시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완벽한 역사 소설로 볼 수 있다.

 

역사소설의 허구성은 마법이 등장한다거나 각종 무공이 등장하는 것으로 갈려지는 것이 아니다.

인물의 등장 순서나 사건의 순서 또한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무리 '역사' 에 그렇게 '적혀' 있다지만 기록 또하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다른 역사서와 비교해서 정당성을 결정하는 이른바 '비교사학'이 많이 발달해 있다.

바로 이 비교사학이 발달했다는 것 자체가 '기록' 에는 언제나 '오류' 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록 속의 오류를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듬성 듬성 비어있는 역사의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당시에 언제나 변방에서 머물렀을 궁녀, 후궁, 천민과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마법을 쓰던, 초능력을 쓰던, 무공을 쓰던 큰 상관은 없다.

그것을 통해 그 시대상을 디테일하고 정말 '그 시대 처럼' 그려내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윈터킹' 에는 마법도 나오지 않고, 무공도 나오지 않는다.

돌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아내는 아서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원탁 또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충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야심을 마음 깊숙히 꽁꽁 봉인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는 브리튼을 통일하고자 하는 평화를 꿈꾸는 군주의 모습은 등장한다.

사랑에 미쳐 실수를 하는 남자의 모습도 나오고, 그 죄책감에 자책하는 모습도 나온다.

 

윈터킹은 아서가 군벌에서 왕이 되어가는 모습의 도입부에 불과하다.

진정한 왕이 되어 브리튼의 통일을 이루어갈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

 

정말 '제대로' 인 역사소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훌륭한 역사소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충분히 그런 역량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꾸준히 나오는 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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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미학 - 인문학과 사회학, 심리학과 경영학을 넘나드는 종횡무진 축구이야기
프리츠 B. 지몬 지음, 박현용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고싶은대로 본다고 한다.

그림이나 음악을 보거나 들을때, 작가의 탄생 연도나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그림을 그릴때 쓴 재료나 기법, 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화음이나 악기연주 수준 등을 알면 조금 다르게 즐길 수 있듯이 말이다.

 

만화를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영화를 보거나 멋진 광경을 볼때 언제나 만화 컷 안에 들어있는 선으로 된 그림들을 상상한다.

'아 이장면은 만화로 표현하면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저렇게 할 수 있겠다...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책을 볼때도 마찬가지이다.

이 내용은 만화로 각색하면 이렇게 되겠고, 주인공은 어떻게 생긴 캐릭터로 잡으면 되겠고... 등등.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과 전공에 따라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미지' 는 머릿속에서 각각 완전히 다른 모양새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가장 많은 인구들이 즐기는 '축구' 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이다.

 

축구 역시 즐기는 사람들에 따라 각기 다르게 보일 것이다.

선수출신이었던 사람이나, 관련된 일을 하는 행정직원, 또는 축구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나, 축구영상을 찍는 TV 카메라 기사등은 분명 나같이 만화를 그리는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축구가 보일것이다.

 

이 책에서는 인문, 사회학의 대가들이 보는 축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에 심리학과 경영학자들도 참여해, 피치위에서 벌어지는 22명의 격렬한 전쟁을 통해 현실을 재조명한다.

 

축구는 흔히 피치 라고 부르는 그라운드 위에 22명의 건장한 남자들(여자들)이 공을 하나 사이에 두고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다.

손보다 둔한 발로 둥근 공을 컨트롤 해 상대방 골 문 안에 집어넣는 것이 이 싸움의 목적이다.

아마 한국의 왠만한 남자 치고 공 한번 안차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축구는 그만큼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

적당한 공간과 왠만큼 굴러가는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예전에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엔 교실 앞 복도에서 우유팩, 심지어 실내화까지 차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종이를 뭉친 뒤 테이프를 돌돌 감으면 그것 역시 좋은 공이었다.

 

애초에 축구란게 원래 성문 사이에서 돼지 오줌보를 차며 놀았던 놀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무런 목적도 없다.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고, 뭔가 엄청난 상을 차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단순히 그냥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단지 그 하나만을 위해. 그리고,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공을 차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스포츠에 인문학, 사회학, 심리학에 경영학까지 들어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축구라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팀웍, 선수들 개개인의 마인드, 골대 앞에 선 골키퍼와 그와 마주한 상대팀 스트라이커의 마음,

끊임없이 발전하는 '전술' 과 피치 밖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감독,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팀 전체의 경기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 코칭 스탭들과, 팀, 즉 구단을 운영하는 운영진들의 마인드.

 

축구는 11명이 하지만, 결코 11명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선발선수도 있고, 후보선수도 있으며, 용병선수도 있다.

팀을 이끌고 가는 감독과, 감독을 보좌하는 스탭들, 그리고 팬들이 있다.

이 모든것이 하나의 작은 사회이고, 현실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책을 통해, 인문, 사회학과 경영학의 일부를 잠깐 즐길 수 있었다.

축구를 통해 보는 세상과 사회는 좀더 치밀하고, 좀더 쉬웠다.

 

이 책은 축구이야기라기 보다는 세상 이야기이다.

축구에 담겨있는 작은 세상 이야기.

축구공은 둥글다. 지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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