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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평점 :
나도 한때는 장편과 단편 중, 장편만 주구장창 읽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읽는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일수도 있고, 작가의 이야기속에 정신없이 매몰되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단편은. 말 그대로 감질났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5권 이하짜리 책은 쳐다도 안본 것 같다.
이문열 작가의 '변경' 을 통해 느꼈던 장편의 몰입감. 제발 이 책이 100권까지 이어졌더라면...하는 마음까지 갖게 했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도 마찬가지.
그러다가, 단편의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무려 고등학교 수능 모의고사 시간이었다.
언어영역, 국어 시험지에 알퐁스 도데의 '별' 이 지문으로 실려있었다. 황순원 의 '소나기' 도 일부, 그리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도 일부.
거기에 염상섭의 '삼대' 도 일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도 일부...
아마 시험지의 지문만큼 집중해서 읽는건 없으리라.
난 순식간에 이야기와 문장속으로 빠져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국어 교과서와 문학 교과서를 마치 소설책 읽듯이 줄줄 읽어내려갔고, 몇번을 읽었더랬다.
당연히, 언어영역 국어 시험도 엄청 잘봤다. ㅋㅋ
단편의 즐거움은, 압축과 합축, 생략과 여운에 있다.
짧기 때문에,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정서가 쭉 유지된다는 것도 강점이다.
그리고, 반전의 미학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철강산업의 아버지인 '철강왕' 카네기가 이런 말을 했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재능이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다.'
대학교 졸업반때,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28페이지짜리 단편만화를 그리기 위해 두통을 느낄 정도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A4 두매나 되었던 스토리를 압축해야 했다. A4 의 반정도까지 압축해야 만화로 28페이지가 나올 수 있었다.
두바닥을 꽉 채운 스토리를 반매로 압축하는 일은 정말 미친듯이 괴로웠다.
그렇게 간신히 반매로 압축했지만, 콘티를 짜보니 무려 36페이지가 나왔다.
8페이지를 더 줄여야 했다.
단편은 그렇게 절제와 함축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도출해낸다.
짧기때문에 등장인물은 적고, 장르는 다양하다.
평소에 안해본 시도를 해 볼 수도 있고, 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도 있다.
'카시오페아 공주' 는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작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해보고 싶었던 듯 하다.
표제이자 첫작품인 '카시오페아 공주' 는 미국 드라마처럼 조금 뻔하게 전개되지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해 주다가,
다음 작품 '섬집 아기' 에서는 엄청난 흡입력을 보여주는 호러물로 진을 빼놓는다. 정말 등골이 오싹하고 천장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소름끼친다.
그러다가 '레몬' 이라는 작품으로 조금은 통속적으로 느껴질수도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나오고,
'좋은 사람' 에서는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서스펜스 스릴러가 느껴진다.
그리고, '중독자의 키스' 는 가슴한켠이 따뜻해지는 정통 로맨스의 모습을 느껴볼 수도 있다.
일단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은, 상당히 시각적이고 스펙타클한 묘사에 강하다는 점이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해봤는데, 이래서 그의 작품중에 영화화 된 것이 많구나 - 싶을정도로 플롯이 단순하고 경쾌하면서도 박동감이 넘치고 묘사가 생생하다.
그렇기에 위에 간략하게 설명했던 각 작품들의 따뜻한 감성, 오싹한 소름끼침, 담담한 사랑이야기, 잔혹한 서스펜스 스릴러가 정말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치 영화를 보듯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단편들은 '짧다' 는 특성때문에 '이야기' 의 전달보다는 '감성' 과 '정서' 의 전달에 주력한다.
때문에, 플롯이 단순해지는 대신 문장들은 수많은 압축과 함축을 담게 되는데, 말 그대로 '한 줄' 도 버릴 것 없이 플롯에 단단하게 매여있다.
배경묘사와 동작묘사 같은 문장들에도 모두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고 짜여진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장르를 넘나들지만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들이 뭔가 동적인 느낌을 준다.
문득, 이 작가분이 당대 최고의 낮 라디오 프로그램인 '두시탈출 컬투쇼' 의 담당 PD라는게 떠올랐다.
물론 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최근 몇년간 최고의 청위율을 자랑하는게 지들이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정찬우씨와 김태균씨ㅋㅋ), 생동감 있는 대본에는 컬투쇼의 작가진과 이재익 담당PD가 한 몫 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박동감 넘치는 경쾌한 필치로 그려내는 판타지와, 호러, 따뜻한 사랑이야기와, 스펙타클한 스릴러.
골고루 느낄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도 같은 작품.
뭔가 신선한, 그리고 생생한 자극을 원하시는 분들께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