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안 맞아! 신나는 책읽기 62
전수경 지음, 윤봉선 그림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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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을 보고 집어든 책이다. , 우주로 가는 계단작가님 맞나? 맞네.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 다른 책이다. 두 번째 책 별빛 전사 소은하까지는 비슷한 느낌이 이어지더니 이 책에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저학년 동화라는 것부터. 솔직히 난 전작 두 편의 느낌이 워낙 강렬해서 이 책은 아주 평범하게 느껴졌다. 근데 평범한 게 나쁜거야? 그렇지 않다. 늘 힘만 주고 있을 수는 없듯이 작품도 강약 조절을.^^ 그리고 내용과 느낌이 일상적이라고 해서 술술 쉽게 써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 써봐서 모르지만 이런 일상 동화가 더 쓰기 어려울지도.

 

아빠랑 안 맞아!” 이 제목에 공감하는 어린이들이 꽤 많지 않을까? 물론 엄마랑 안 맞아!”도 많겠지만.... 많은 아빠들이 자녀들과 맞추는 일에 실패한다. 이 책도 많은 부분 그 실패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읽는 내내 아빠랑 안 맞아!” 라는 불평을 보게 되지만 그건 심각하다기보다 귀여운 불평에 가깝다.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행복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에 환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빠가 딸 하루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참 신기해.”

뭐가?”

하루랑 같이 있으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날도 멋진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아빠는 늦게 결혼하고도 한참만에 하루를 낳아서 나이가 많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도) 엄마의 파견근무를 대신해서 휴직을 하고 하루를 돌보는 중이다. 꼼꼼하지도 못하고 구멍 투성이라 하루한테 구박을 들을 지경이다. 전업주부로 사는 일상은, 뭐 다들 알다시피 잘해봐야 본전이다. 일해봐야 티도 안 나고. 그런 일상 속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나는 이 작품의 빛을 보았다. 뭔지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누구의 사회적 성취나 경력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특히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 원할 때 언제든 경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부모 양쪽 모두 늦게까지 맘놓고 일하라며, 아이들을 학교에 12시간씩 잡아둘 궁리나 하지 말고 말이다!!

 

사회가 분위기를 그런 쪽으로 몰고 가자 가정에서의 양육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시간 죽이는 의미없는 일로 전락했다. ‘집에서 애나 돌보는루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돌봄시설이 있는데 내가 왜 굳이 힘든 시간을? 하면서 본인이 돌볼 수 있는 시간에도 아이와 떨어져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추구하는 부모들도 많아졌다.

 

이런 시대에, 저 늙수구레한 아빠가 1년 회사를 쉬면서 아내도 없는 집에서 안해본 살림을 하느라 후줄구레한 운동복을 입고서 저런 말을 하다니. “너와 함께 있으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날도 멋진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아 정말 너무 중요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자식이랑 있는 시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 다 큰 아이들은 말고 어린 자녀들 말이에요) 자녀들이 크는 거 보고 있으면 막 아깝지 않은가요.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 후줄근한 옷을 입었고, 오늘의 실적은 하나도 없고, 잘하던 것도 퇴보하는 것 같고,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아요. 가장 멋진 하루를 보낸 거예요. 그보다 더 가치있는 시간은 없어요.

 

이 책의 주제가 실제로 무엇이든, 양육의 가치라고 우기겠다. 사회는 돌봄보다 양육의 가치를 높이 보고 최대한 그 방향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돌봄은 최후의 수단이다. 왜 멀쩡한 집을 컴컴하게 비워놓고 딱딱한 교실에 불을 밝히고서 아이들을 하루종일 살라고 한단 말이오? 아이들이 얼마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지 알아요? 어른들도 근로기준법 8시간 일하게 되어있잖아요. 끝나면 집에 안가고 싶어요? 하던거 끝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건 모든 존재들의 공통점이라구요.

 

흥분했다.....ㅠㅠ 부디 세상을 이상하게 만들려는 자들의 획책이 뜻대로 되지 않길 빌며... “아빠랑 안 맞아!” 하면서도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이 부녀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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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고슴도치의 오늘도 좋은 날♥ 어린이문학방 저학년 6
하라 마사카즈 지음, 이시카와 에리코 그림, 신명호 옮김 / 여유당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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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색 대비의 표지가 너무 예쁘다. 빨강과 초록이 주는 강렬함보다도 귀여움과 따뜻함이 더 돋보인다. 사랑스런 존재들을 보면서 기부니가 좋아지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처음 보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일본의 작품들도 물론 스펙트럼이 넓지만 내가 자주 받는 느낌은 조근조근함? 작고 조용한 느낌? 그런 것들이다. 좁은 범위 안에서 꼬물꼬물 지내는 내 취향과 좀 맞는 편이다.^^

 

표지색은 선명하지만 본문 그림들은 흑백이다. 가는 펜선 위주인 그림이 귀여워서 화려한 그림들보다 더 눈이 머문다. 60쪽 정도의 분량에 그림책보다는 약간 많은 글밥. 그림책과 줄글책의 다리를 놓아줄 책으로 가장 적당하지만, 중학년이나 고학년 아이들과 음미하며 읽기에도 좋겠고 나같은 어른들 독서모임에서 중간쯤 쉬어가는 느낌으로 함께 읽어도 괜찮겠다.

 

4장으로 되어있다. 1장 제목 뾰족뾰족과 포실포실은 등장인물을 말해준다. 뾰족뾰족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고슴도치, 포실포실은 누굴까~? 바로 토끼다. 둘이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고슴도치를 처음 본 토끼는 놀라 주저앉으며 말했다.

너 큰일 났어. 온몸이 가시에 찔렸어.”

, 하하하하. 이 가시? 찔린 게 아니라 난 거야.”

둘은 털에 대해 이야기하다 둘다 자기 털이 빠진 뒤에도 쓸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증명하기 위해서 벼룩시장에 내 보기로 했다. 자리를 펴고 앉아 뾰족뾰족 고슴도치 가시 사세요! 포실포실 토끼털 사세요! 하고 외쳤지만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와 토끼털이 날아가고... 그런데 그걸 잡으러 간 건 토끼가 아니고 고슴도치였다. 자신의 것도 아닌 걸 힘들게 붙잡아 호두껍질 안에 고이 넣어온 고슴도치. (착해, 예뻐) 그동안에 잠이 깨어 고슴도치 가시에 작은 빨간 열매를 꽂아놓은 토끼. (너도 착해, 예뻐) ~ 서로 만들어 준 그 물건들이 합쳐져서 무엇이 되었을까요? 빠르고 편리한 상품들이 넘치는 시대에 작고 소박한 물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게 작가가 의도한 주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는 느려지고 소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별거 아닌 걸 예뻐하고 별거 아닌거에 기뻐하고. 그 옛날 사금파리들을 보물처럼 모아 소꿉장난을 하던 시절처럼. 나도 지금 여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2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친구가 된 두 아이가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이번에도 호두껍질이 나오는데, 거기에 새로운 소품, 거미줄이 등장한다. 두 호두껍질 사이를 거미줄이 연결했지요. 그게 뭘까~? 우리 애들 어릴 때 종이컵 전화기 만들어 신기해 하면서 놀던 추억이 있는데, 딱 그거! 호두 전화기로 둘이 나누는 우정의 대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 츤데레라기 보다는 배려의 마음.^^

 

3내일을 위해서에서는 고슴도치가 기분이 별로다. 빠진 가시가 X자가 되면 운이 나쁘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그게 들어맞는 날이었기 때문.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 세상은 달리 보이는 법. 그렇게 4장으로 넘어간다.

 

4민들레 씨에서도 고슴도치의 가시는 X자가 되었지 뭐야! 우울해하는 고슴도치를 토끼가 끌고 밖으로 나온다.

에잇, 말파리 때문에 재채기를 했어. (그런데 그 재채기 때문에 민들레 씨가 날아가잖아!)

에잇, 넘어졌잖아! 아파! (, 근데 멧돼지 아주머니가 애타게 찾던 브로치를 발견했어! 여우 언니가 찾고 있는 약이 되는 꽃도 찾아주고.)

에잇, 연못에 빠지기까지! 역시 나오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이하 생략^^)

 

내가 괴로워 죽겠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 쥐어박아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소곤소곤 작은 긍정들을 알려준다. 어설프고 작고 귀여운 존재들이 허부적거리다가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살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 아름다움은 대부분 이런 존재들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어디를 보고 찾아헤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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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필요해 소원어린이책 18
박상기 지음, 이지오 그림 / 소원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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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이야기! 그런데 이건 또 전혀 색다른 이야기네.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읽었다. 고양이를 중요한 소재로 했지만 고학년 여학생들의 관계문제(무리짓기와 배제하기), 저작권과 표절에 대한 내용이 잘 버무려져 들어있었다. 원래 이런 의도적 동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그 의도가 매우 노골적임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작품성이 괜찮아서라고 하겠다.

 

이 작가님의 전작 <바꿔!>를 읽다가 엥? 이분도 초등교사시네 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교사 작가님들이 은근히 많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니 아무래도 소재 면에서 유리하지 않을까 라는 짐작을 해본다. 이 작가님은 아이들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청소년소설과 역사동화도 쓰셨네. 그것도 꼭 읽어봐야겠다. 작가 후기에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많은 소설을 습작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오셨구나. 작가 내공을 많이 쌓으신 분 같다.

 

이 책의 화자는 4학년 유나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고, 성격은 소심하다. 새학년의 3, 친화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힘든 시기다.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나는 은빈이 무리에 들어가고 싶다. 걔네들이 학급의 인싸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고양이를 키운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그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심한 유나는 말도 붙이지 못하고, 언제나 혼자 지내며 겉돈다. 고양이 영상이나 게시물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마음만 간절할 뿐 키우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날 유나는 혜연의 냥상이라는 블로그에서 쿠키라는 고양이와 눈이 맞아버렸다. 혜연이라는 주인장에게 댓글도 달고, 퍼가지 말라고 주의가 붙어있는 쿠키 사진을 캡처해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빈이에게 고양이 예쁘다며 톡이 왔다! 유나는 어버버 하다가 퍼온 사진이라는 말도 못하고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은빈이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꿈에 그리던 상황이면서 바늘방석에 앉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상동안 고양이를 인증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어찌어찌 넘기면서 유나는 고민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실제 집사가 되는 것이지만 부모님의 허락은 여전히 나지 않았고 유나는 좌절과 슬픔에 빠진다. 그러다 블로그 주인인 혜연 언니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친근하고 유쾌한 혜연 언니 덕분에 유나는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게 된다. 혜연 언니는 크게 웃었지만, 괜찮다고 봐주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제 유나의 결단만 남았다. 유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 과정에서 이미 저작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급에서 있었던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는 표절과 관련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통해 표절과 오마주의 차이점까지 설명한다. 그 부분이 이질적이지 않고 작품에 잘 녹아있었다.

 

유나는 옳은 선택을 했지만, 그 결과 고초를 겪는다. 우리는 깽판을 쳤으면 깽값을 물어야 한다.”는 진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감수하면 된다. 깽값을 물고나면 만회의 상황이 온다. 안 물겠다고 몸부림치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진다. 잠시의 고초 후에 유나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따뜻하고 달콤한 행복에 내 마음도 흐뭇해진다. 요즘의 트렌드대로 예쁜 고양이도 나오면서 저작권, 표절, 친구관계, 책임까지 잘 어우러져 들어간 이 동화는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추천할 만하다. 주인공들이 4학년이니 4학년이 딱이고, 3,5학년 정도도 괜찮겠다. 저작권교육을 이 책으로 하는 것도 찬성이다. 다른 부수적인 효과도 덤으로 붙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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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응원해! 문학의 즐거움 65
이지마 아츠코 지음, 마루야마 유키 그림, 모카 옮김 / 개암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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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북에서 지인이 공유한 기사를 읽었다. 최근 출판시장의 특징으로 정신과 의사가 집필한 책들이 대세라는 사실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렇구나... 주로 아이들책을 읽어서 잘 몰랐다. 그런데 어라? 마침 어제 읽은 책이 소아과 의사가 쓴 책이라고 했는데? 일본의 의사가 쓴 책이다. 위의 기사와 다른 점은 문학(동화)이라는 것.... 개인적인 느낌으로, 서사적인 재미는 그닥 크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다. ADHD를 가진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성은 흥미롭다. 본문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주인공 히마리의 글과 교차구성 되어 있어서 히마리가 화자인 1인칭 시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히마리는 학교생활이 괴롭다. 학교 가봤자 좋은 소리 듣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날카롭게 쏘아보는 담임 미유키 선생님의 눈초리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히마리와 부모님은 학교 심리상담사 선생님의 발달장애가 의심되니 병원에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병원을 찾게 되었다. 히마리는 어릴때부터 다니던 소아과에서 ADHD 진단을 받았고 약도 먹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학교에서의 돌발행동이 줄어들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대목을 읽으며 히마리가 겪은 혼란과 어려움이 짐작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담임선생님의 입장에 마음이 갔다. 독자들에게는 원망스러운 존재일테지만 나보다는 못하지 않은 선생님.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과 소란을 싫어하고 원칙을 고수하려 하는 면이 나와 비슷하다.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과 완성도 높은 수업을 지향하는 교사들에게 히마리와 같은 존재는 결코 달갑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함께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전체 발걸음과 히마리의 개별 발걸음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그 둘이 통합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주는 결말로 이끌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미유키 선생님과 나는 둘 다 부족한 교사다. 다행히 히마리도 선생님도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다행스러웠고, 배째라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특성 안에서 최대한 노력해보려는 히마리의 모습이 고맙기까지 했다.

 

주변의 실제 상황에 대입해보면, 일단 상담선생님께 인계하기도 어렵고, 장애를 언급하며 부모를 설득했다가는 된통 당하고 뒤집어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너무나 조심스럽고 어렵다. 물론 히마리 부모님처럼 상식적고 좋으시며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시는 분들이 더 많다. 하지만 똥물은 한 방울도 똥물이니까... 치명적이다.ㅠㅠ

 

히마리는 약을 먹는 것 외에도 자기조절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 첫 번째가 글()을 쓰는 것이다. 책 이름을 <히마리의 멋진 하루 일과>라고 지었다. 그 책을 쓸 때마다 친구인 마유한테 보여준다. 마유는 재밌게 읽고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여기서 긍정적인 피드백의 중요성을 보았다. 열광적인 은 소용없다. 진심은 거의 보이니까.... 내가 쓴 글을 진심으로 재미있어 하면서 읽어주고,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주고. 이런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SNS에서의 이런 친구들은 허상이 많지만, 그래도 인간 심리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에 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루일과> 책에서 작가님의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드러난다. ADHD의 특징, 그리고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덜 하기 위해 연습하면 좋을 루틴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호인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은 히마리 같은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님이 보셔도 매우 좋을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히마리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기를 주고, 히마리는 히마리대로 주변을 힘들게 하지 않겠어!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겠어!’ 라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서로서로 신뢰하고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히마리가 이런 노력을 할 수 있게 기반을 다져 주고 연결해 주고 점검해 주는 부모님의 역할도 인상적이다. 누구나 보는 것을 부모만 부정하거나, 아무것도 안하면서 분풀이만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힘을 합해야 선한 결과를 이룰 것 아닙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내가 남을 어쩌겠나.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뿐이지. 이 책에서 나의 부족함만 찾아도 넘친다. 그리고 이 책에 스며든 전문가의 여러 설명 중에서 끝부분에 나오는 부감이라는 용어에 많은 공감을 했다. 나의 모습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듯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너무 흉한 행동을 하고 있는 학생에게 땡땡아, 너 지금 너한테서 빠져나와 봐. 여기쯤. 그래 여기서 너를 봐. 어떤 모습이야?” 이런 적이 있는데, 그걸 부감이라고 하는구나. 내가 했던 게 나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이게 쉽게 잘 되는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히 쓰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작은 일부터 시작해 성취감을 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동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일이다. 이 책에서 그랬듯이. 물론 이것도 '알긴 하지만 잘 안되는 일'에 해당된다. 


마지막 티슈 안의 만엔사건이 풀리는 대목은 아주 재미있었다. 우리는 모두 스펙트럼의 어디쯤 있구나. 그렇다면 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의학적 치료, 주변 사람들의 조력, 본인의 의지 3박자를 맞추며 현실에 적응해가는 히마리의 이야기를 잘 읽었다. 동화면서도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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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골 강아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실종 사건 보름달문고 86
이선주 지음, 정인하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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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동화도 많이 쓰셨지만 청소년소설 쪽을 조금 더 많이 쓰신 것 같다. 이 책이 내가 읽어본 이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인데, 청소년소설에 어울리는 문체를 가지셨다고 생각했다. 동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도 그렇고 풀어가는 방식도 어린이로 치면 조숙한 어린이 같다고 할까. 뭔가 산전수전 다 겪고 침착해진 아이의 통달을 보는 것 같달까. 하룻강아지가 아닌 어린이.^^

 

아미골이라는 시골 마을의 순수한 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민수는 너무 흔한 자신의 이름 때문에 작은민수라고 불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요즘 민수라는 이름 그렇게 흔하진 않은데.... 민준이라면 한 반에 한명씩은 있지만.^^;;;) 민수의 유일한 친구 용찬이는 심장이 약해서 조심할 것이 많고,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내용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주인공 아미골 강아지. 주인이 없어 이집저집 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유기견이라 말할 수는 없는 자유견? 민수는 개를 키울 형편이 못되어 속상해하다가 그 강아지를 자신의 강아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디서든 부르면 오고, 함께 뛰어노니까! 그리고 민수처럼 흔한 이름 말고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고민한다. 장고 끝의 작명이 바로 제목에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강아지는 이 이름에 반응했다. 민수와 용찬,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사건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일어났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실종사건이다. 어느날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다가도 부르면 나타나던 강아지가 보이지 않자 민수의 가슴은 철렁한다. 불길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해가 바뀌도록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상실감과 함께 아이들은 조금씩 더 자란다.

 

그러다 용찬이가 인근 도시의 동물원 사진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보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말이 되나? 동네 강아지가 왜 동물원에? 하지만 용찬이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둘은 모아둔 돈을 털어 어른들 몰래 동물원을 찾아갔다. 거기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었다! 우리 안에. ‘한국 토종개 삽살개라는 간판을 달고. 아 맞다, 얘가 삽살개였지. 그들의 만남은 생각보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 다음부터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 하겠다. 안타깝게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민수와 용찬이는 어떻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되찾을 것인가? 여기서 포기하면 얘기가 되겠어? 둘은 모종의 작전을 세운다. 그 작전은 꽤나 긴박감이 넘쳤다. 성공하려는 찰나! 발각되고, 추격전이 벌어지고.... 어린이 독자들이 가슴 졸이며 읽을 수 있는 아주 재미난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 이후 결말로 가는 방식에서 이 작가님이 좀 남다르다고 느꼈다. 흑흑 우리 이젠 절대 헤어지지 말자 뭐 이런 류의 신파는 나도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좀 너무 감동이 없는거 아니야? 그래도 결말에는 드라마틱한 뭔가가 있긴 있어야지. 새드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피엔딩도 아닌 뭐랄까 현실엔딩?ㅎㅎ

 

그 현실엔딩은 쓸쓸한 느낌이 살짝 들고, 등장인물들은 내가 이러려고 그 감정의 격동을 겪었던가. 내가 잠깐 미쳤었나 봐. 뭐 절대적인 건 없나 봐. 사는 게 그런 건가 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테고, 나도 변하고 다른 존재들도 다 변한다. 그건 한편으론 쓸쓸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보라라고 할 때 빨강이었던 시절과 파랑이었던 시절은 다 의미없는 것일까? 흑역사였다거나 부질없었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변하면 변하는대로 지금의 진심은 소중한 것이다. 그것으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전반부에서 아미골의 배추할매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사람들은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배추할매 돌아가셨어요!”

어쩌다가?”

주무시다가요.”

잘됐다.”

할아버지가 아구구구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복 받았네. , 복이지, .”


이런 대목은 동화로서는 매우 낯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된 것이지. 이처럼 이 동화는 굳이 어린이 독자만을 상정하고 쓰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 어떤 포인트에서 공감하고 어떻게 감상하는지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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