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심해요 철학하는 아이 12
엘로디 페로탱 지음, 박정연 옮김, 이정화 해설 / 이마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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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급의 소심한 아이들에게 보일듯말듯한 애정을 품는다. 말로는 쏟아놓지 못하는 걸 차곡차곡 써내려간 글을 모범작품으로 함께 읽으며 수업할 때, 공개적 칭찬도 부담스러워하는 그 아이와 눈맞춤으로 고개를 끄덕여줄때, 살며시 번지는 그 아이의 미소만으로도 힘이 난다. 난 몰래 그들의 편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 얇은 책은 한 소심한 아이의 자기고백이다.
"자신만만한 사람들
큰 소리로
웃고 노래하는 사람들,
남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놀랍고 부러워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요.
우습게 보일까 봐, 사람들 눈에 뜨일까 봐
남들과 달라서 따돌림 받을까 봐 걱정돼요."

이러던 아이는
"소심함은 나를 뒷걸음치게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게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하더니 결국
"나는 소심함을 내버려 두었어요."
라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이처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소심함이든 대범함이든 조심성이든 덤벙댐이든 사람에겐 타고난 기질이 있다. 기질을 부정하고 한가지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두려움없이 도전하는 이들이 부럽다.
갈등 앞에서 회피하지 말고 침착하게 꼬인 것을 푸는 이들이 부럽다.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이들이 부럽다.
능력에 버거울 정도의 짐을 기꺼이 지고 이를 악물어 끝내 해내고 마는 의지의 인간형들이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이 부러움이 결국 소심함이다. 그래서 소심함에 그냥 만족하기는 참 어렵다.

난 외가쪽 집안 내력으로 본태성 진전증(일명 수전증)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언젠가 걱정이 되어 한의원에 한번 가봤는데 진맥을 하신 선생님이 내 체질이 '소심'이라고 했다. 아놔~ 그게 신체와도 관련이 있는거야? 진전증은 큰 병은 아니니 간호사나 정밀작업 같은 직업만 갖지 않으면 사는데 지장은 없다고 했다.... 헌데 체질이 소심이란 건 대체 어떻다는 뜻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하여간 이생망이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취적으로 돌파할 힘이 내 안에 없다. 노래할 때도 느끼지만 나는 뱃심이 없다....ㅋㅋㅋ

그래서 난 평생 좁은 범위를 정해 놓고 꼼지락거리며 살았다. 대단한 사업을 벌여본 적도 없고 남한테 크게 원망들을 일도 없고 학급운영이 대박난 적도 없지만 폭망한 적도 없고 그럭저럭 조심조심 살아왔다. 좌충우돌 부딪쳐 보는 것이 인생이라면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것도 인생이다.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어느쪽이 더 옳지는 않다.

이 책은 내 분신인 소심이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또한 반대의 아이들이 소심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거꾸로 소심이들이 반대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통찰을 줄 책이다. 말하자면 생긴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겨먹은 걸 요리조리 잘 써먹으면서 최대의 효과를 꾀하며.

"어느 날, 누군가가 말했어요. 소심함은 병이 아니라고요.
소심함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요.
큰 소리나 커다란 몸짓으로
반응하지는 않지만
편안함을 주기에
함께하길 좋아한다고요."

이게 뭐 내 얘기는 아니다.ㅎㅎㅎ 하지만 나도 소심함의 장점을 잘 찾아보고 살아가야겠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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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21-11-21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심하시니 글을 신중하게 잘 쓰시네요. ㅎㅎ

기진맥진 2021-11-24 14:4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오래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