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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안 맞아! ㅣ 신나는 책읽기 62
전수경 지음, 윤봉선 그림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작가 이름을 보고 집어든 책이다. 엇, 『우주로 가는 계단』 작가님 맞나? 맞네.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 다른 책이다. 두 번째 책 『별빛 전사 소은하』 까지는 비슷한 느낌이 이어지더니 이 책에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저학년 동화라는 것부터. 솔직히 난 전작 두 편의 느낌이 워낙 강렬해서 이 책은 아주 평범하게 느껴졌다. 근데 평범한 게 나쁜거야? 그렇지 않다. 늘 힘만 주고 있을 수는 없듯이 작품도 강약 조절을.^^ 그리고 내용과 느낌이 일상적이라고 해서 술술 쉽게 써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안 써봐서 모르지만 이런 일상 동화가 더 쓰기 어려울지도.
“아빠랑 안 맞아!” 이 제목에 공감하는 어린이들이 꽤 많지 않을까? 물론 “엄마랑 안 맞아!”도 많겠지만.... 많은 아빠들이 자녀들과 맞추는 일에 실패한다. 이 책도 많은 부분 그 ‘실패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읽는 내내 “아빠랑 안 맞아!” 라는 불평을 보게 되지만 그건 심각하다기보다 귀여운 불평에 가깝다.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행복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에 환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빠가 딸 하루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참 신기해.”
“뭐가?”
“하루랑 같이 있으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날도 멋진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아빠는 늦게 결혼하고도 한참만에 하루를 낳아서 나이가 많다. (모르는 친구들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도) 엄마의 파견근무를 대신해서 휴직을 하고 하루를 돌보는 중이다. 꼼꼼하지도 못하고 구멍 투성이라 하루한테 구박을 들을 지경이다. 전업주부로 사는 일상은, 뭐 다들 알다시피 잘해봐야 본전이다. 일해봐야 티도 안 나고. 그런 일상 속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나는 이 작품의 빛을 보았다. 뭔지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누구의 사회적 성취나 경력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특히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 원할 때 언제든 경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부모 양쪽 모두 늦게까지 맘놓고 일하라며, 아이들을 학교에 12시간씩 잡아둘 궁리나 하지 말고 말이다!!
사회가 분위기를 그런 쪽으로 몰고 가자 가정에서의 양육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시간 죽이는 의미없는 일로 전락했다. ‘집에서 애나 돌보는’ 루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돌봄시설이 있는데 내가 왜 굳이 힘든 시간을? 하면서 본인이 돌볼 수 있는 시간에도 아이와 떨어져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추구하는 부모들도 많아졌다.
이런 시대에, 저 늙수구레한 아빠가 1년 회사를 쉬면서 아내도 없는 집에서 안해본 살림을 하느라 후줄구레한 운동복을 입고서 저런 말을 하다니. “너와 함께 있으면 평범하고 그저 그런 날도 멋진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아 정말 너무 중요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자식이랑 있는 시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아, 다 큰 아이들은 말고 어린 자녀들 말이에요) 자녀들이 크는 거 보고 있으면 막 아깝지 않은가요.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 후줄근한 옷을 입었고, 오늘의 실적은 하나도 없고, 잘하던 것도 퇴보하는 것 같고,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아요. 가장 멋진 하루를 보낸 거예요. 그보다 더 가치있는 시간은 없어요.
이 책의 주제가 실제로 무엇이든, 난 ‘양육의 가치’라고 우기겠다. 사회는 돌봄보다 양육의 가치를 높이 보고 최대한 그 방향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돌봄은 최후의 수단이다. 왜 멀쩡한 집을 컴컴하게 비워놓고 딱딱한 교실에 불을 밝히고서 아이들을 하루종일 살라고 한단 말이오? 아이들이 얼마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지 알아요? 어른들도 근로기준법 8시간 일하게 되어있잖아요. 끝나면 집에 안가고 싶어요? 하던거 끝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건 모든 존재들의 공통점이라구요.
흥분했다.....ㅠㅠ 부디 세상을 이상하게 만들려는 자들의 획책이 뜻대로 되지 않길 빌며... “아빠랑 안 맞아!” 하면서도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이 부녀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권한다.